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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죄일 (히 : 욤 키푸르)
<단락 1> 여호와의 절기인 나팔절과 대속죄일, 그리고 장막절은 서로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우선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나팔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날입니다. 그래서 새해의 히브리어는 ‘로쉬 하샤나’이며, ‘로쉬’는 머리를 뜻하며, ‘하샤나’는 그 해 또는 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새해라고 했을 때, 희망찬 미래와 소망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시간표에서 새해 (나팔절)는 회개와 참회하는 첫 날로 삼게 됩니다. 그 이유는 새해는 (나팔절) 하나님의 심판하심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팔절의 또 다른 이름은 ‘욤 하딘 (심판의 날)’ 입니다. 나팔절에 하늘의 심판의 문이 열리고, 심판의 일정이 시작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나팔절 절기에 나팔을 부는 이유는 영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일깨워 다가올 심판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 소리입니다. 그리고 대속죄일에 심판의 문이 닫히고 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래서 나팔절부터 대속죄일 10일 (경외의 날) 동안 하나님은 그 다음 해 (천년 왕국의 해)에 누가 살고, 누가 죽어야 할지를 결정하십니다. 그 이후에 선한 책 또는 악한 책에 적혀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새해부터 시작되어 대속죄일에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 때, 우리가 점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를 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주인 된 삶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회개 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으로 끝내버립니다. 그리고 동일한 죄를 지으면서 종교적 행위가 반복됩니다. 이것은 회개기도가 아니라,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회개는 죄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1. 출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과 문설주에 바름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유월절이란? 죽음의 재앙이 지나가고, 구원이 시작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무교절에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애굽에서 급히 나와야 했습니다. 무교절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 이 땅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결단하여 순종하는 절기입니다 (레 23:6). 그렇다면,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계시지 않으면, 절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순절에 시내산에서 그들이 애굽 (세상)의 생활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닌, 거룩한 생활방식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의도는 거룩한 나라가 되었으면 그 법을 기준으로 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다가 넘어지고 실수하면 다시 하나님의 법대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잃어버리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남편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사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을 하나님이 주신 명령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십계명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결혼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즉, 십계명은 신랑 하나님이 신부에게 주는 결혼 서약서입니다 (히 : 케투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결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부는 결혼 서약서 (토라 : 하나님의 말씀)를 가지고, 장막절 (신랑 예슈아와 혼인잔치하는 날)까지 단장해야 합니다 (계 19:7-8). 이처럼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슈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예슈아의 신부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모습 (육신의 종노릇했던 모습)을 십자가에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거룩한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다음은 우리가 대속죄일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2) 레 23:27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29.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대속죄일은 히브리어 ‘욤 (날짜)’과 ‘키푸르 (속죄, 덮다)’의 합성어이며, 이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우리의 죄들을 덮어 주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대속죄일날, 성회 (히 : 미크라 : 최종 예행연습)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금식)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레 23:27). 금식이란? 자발적으로 연약함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금식을 하는 이유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금식을 하다보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 문제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알게 됩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은 문제와 환경으로부터 자유케 되어집니다. 그리고 금식을 통하여 세상의 것들이 끊어지게 되며, 그의 비워진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즉, 우리의 약함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금식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민감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해 줍니다. 그리고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성령님의 능력을 더욱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우리 자신을 두는 일입니다.
(1) 고전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에서 강한 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과 명예와 권력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 당신의 강함을 나타나기 위해서 자발적 연약함 (금식) 가운데 들어가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자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열정, 열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3) 레 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31.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34. 이는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에 한 번 속죄할 것이니라 ...
대속죄일의 시작은 출애굽기 32장에 나와 있는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깨어진 결혼 서약서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한번 시내산에 올라가 40일간 금식하며 중보 기도한 다음에 내려오게 되는데, 그 날이 대속죄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대속죄일에는 항상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민족의 속죄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1년 중 단 하루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나아가 국가적인 차원의 속죄사역을 행하는 날이기 때문에, 1년 중 가장 거룩한 날로 불리며,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불리게 됩니다. 안식일 중의 안식일의 뜻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예행연습이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반차인 대제사장 되신 예슈아는 우리의 속죄를 위해 하늘 성소에 들어가십니다 (히 10:3-14).
그런데 우리는 이미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슈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는데, 왜 또 속죄를 받아야 합니까? 우선, 유월절은 예슈아의 어린양의 피로 사단의 속박에서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대속죄일의 속죄는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하나님과 맺은 결혼 서약서를 배반하고 우상 숭배한 죄를 용서받는 속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은 우상숭배한 적은 없고, 내가 원하는데로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점령 후,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되어집니다. 그 이후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서 우상을 함께 섬기며, 예배하게 됩니다. 그들이 이렇게 되어진 이유는 자신들이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고, 우상숭배를 통해 복을 받고 번성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상숭배하는 모습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속죄일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속죄가 아닌 공동체적인 (국가적인) 차원의 속죄를 말합니다. 이것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단락 2> 2. 슥 3:8 ...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예슈아)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예슈아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 (예슈아를 거절한 것에 대한 애통) 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재판장 되신 예슈아께서 지상 재림하셔서, 이스라엘 땅의 죄악을 단 하루 만에 제거하시는 날은 언제입니까? 대속죄일입니다. 그리고 이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력한 회개의 영이 부어져, 예슈아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에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밑에 앉는 것은 이스라엘의 번영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돌감람나무인 우리를 이스라엘 안으로 초대하고 계시며,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번영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도바울은 로마서 11장 17절부터 27절에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하였고, 에베소서 2장 15절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루게 될 한 새 사람 (One New Man)에 대해서 말씀하였습니다.
1) 슥 8:3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14:14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 때에 사방에 있는 이방 나라들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예슈아께서 예루샬라임에 다시 오셔서 열방의 왕들을 심판하시고,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입니다 (슥 2:8-10, 시 2편, 사 24장, 사 66장, 계 17:14). 우리는 한 나라 (하나님 나라)의 한 임금 예슈아 한 분만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슈아께서 예루샬라임에 다시 오시는 이유는 태초 전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기 결정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 장소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아담이 하나가 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예루샬라임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아버지의 집이 될 것이며, 재림 예슈아께서 왕으로 열방을 통치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예루샬라임 성전에 왕의 임재가 없지만, 왕이신 예슈아께서 예루샬라임 성전에 다시 오실 때, 그 분의 영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까지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케 하신 목적은 단순히 천국 가기 위함이 아니라, 예루샬라임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함 입니다 (시 37:29, 시 78:68, 사 60:20-21, 겔 37:25, 겔 38:12). 그러나 현재 기독교의 천국에 대한 개념은 땅과 하늘을 분리시켜 놓았습니다 (헬라적 이원론). 만약 개인 구원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라면, 예슈아께서 굳이 다시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믿고 죽어서 천국가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때, 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수도인 예루샬라임을 위하여 적그리스도와 싸우는 여호와의 군대로 세워집니다. 교회는 예루샬라임 앞으로 정렬되어야 합니다. 정렬이란? 하나님의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스라엘과 연합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엡 2:15 한 새 사람 One new man), 여호와의 군대로 함께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랑 예슈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신부인 교회와 이스라엘을 데리러 곧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2장 14절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말씀합니다. 신랑 예슈아의 결혼식에 청함 (초청)을 받은 자의 숫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의 숫자는 적습니다. 이는 천국에 들어가는 숫자가 적다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슈아의 십자가 은혜로 신부로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것을 선택하는 믿음의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 7: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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