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7/월/맑음
오전에 직원회를 마치고 심방 준비가 되다 않고 임목사 집무실 준비로 인하여 오전 10시에 청년들이 모여 책을 옮기기로 되었는데 모이지 않아 점ㅎ심을 먹고 옮기기러ㅗ 하여 교회에서 점심을 해 먹고 남녀 7명이 책을 옮겼다. 나는 내 서재실에서 자료를정리하고 ㅅ간사는 커피포트등을 사왔다.
오후 3시에 금수장에서 광주 교단협의회 주체로 기자 초청하여 4.13 총선에 관한 교계입장을 발표하였다. 총선연대의 이방으 ㄹ지지하면서도 어느 특정인의 낙선 운동은 반대입장이라고 표현하였다.
발표후 교회로 와서 서재실을 정리하였다.
저녁 8시에 기도회를 가져 마4-6장까지 읽고 기도하였다.
2000/2/8/화/눈
새벽부터 눈이 와서 교통이 불편하여 구역장 교육에 모두가 늦어 참석이 부진하였다. 지역장으로는 강권사 이에자권사 박은자권사가 참석하여 김영님권사만 불참하고 구역장으로는 오숙자와 정지순과 신해남만이 참석하엿다.
신해남집사가 장로님과 교역자들을 접대하고 싶다고 하여 다음주 화요일 점심에 하기로 하였다. 교육 점심을 먹으려가려는데 김대운 장로가 이야기하자고 하여 교육관에서 대화하다.
내용인즉 주일 점심전에 일도와 민구 학자금에 대하여 논란이 되었고 퇴직 적립금에 대하여 녾란이 되엇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퇴직금은 지금까지 불입한 것으로 모든 20년간을 결산하고 새로이 하면 되겠다는 것이다. 김장로의 입장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현재로서 받아 놓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퇴직금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논란이 되는지 모르겟으며 지금 부담이 되지도 않는데 논란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지금 퇴직금에 대하여 논하자 않고 싶고 그런 것은 재정부에서 찾든지 따로 부금을 붙든지 하라고 했다 나는 찾는다든지 결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자녀 학자금문제로 너무 많이 들어가니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에산이 700만원인데 이번학기에 일도가 340만원 민구가 190만원으로 약530만원으로 거의 다 써버리는데 다주지말고 어느 정도 줄여서 주자고 하며 전남대학교에 보내지 왜 비싼 서울로 보내냐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서울로 보내라는데 장로님은 광주로 보내겟느냐고 묻자 자기도 서울로 보내겟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700만원 예산 내에서는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재정부장 결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구제비로 이송현과 이나래를 위하여 75만원씩 구제비에서 주자고 한다. 그래서 공동의회에서 그렇게 부탁하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결시키며 난리를 벌리면서 이제는 왜 주자고하는지 참으로 고약스럽다 주님 저런 저들의 악함을 그대로 두시렵니까?
2000년 2월14일
광주와 대전분교 졸업식
10시20분발 대전행 고속버스를 타고 박은수 학생과 그 부인과 아이 둘이 대전가다. 이윤희 목사와 식에 참석자들과 같이 식사하고 졸업식에 참석하여 축도하다. 졸업후 신학교에 모여 다과를 나누었다. 재학생들이 풍성하게 준비하였다.
식에 끝내고 노회장 서의석 목사 차를 타고 정읍까지 오면서 대화하다. 김영모와 김재선 목사의 거취가 지난 월례회를 끝내고 이탈하겠다는 의사와 금주 목요일에 대화의 시간을 내어 대화하자고 하였다. 내용인즉 연방총회의 모임이 싫고 또 하나는 개 교회의 문제를 왜 노회에서 신경을 써야 하느냐는 거이다. 이것은 노회를 모르는 그들의 무지의 소치이다. 교회의 문제는 노회의 문제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웁다. 나는 지금까지 그들이 우리교회 문제에 대하여 손을 써 주지 못하여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라니 지금까지 내가 잘못 가르친 결과이다.고 생각한다.
집에 들어와 몸이 불편하여 누어있다가 8시 저녁 기도회 시간이 되어 교회에 나간;ㅣ 불을 환히 켜저 있고 청년들은 청년실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나는 한 시간동안 9시까지 기도하고 나오도록 청년들은 나오지 않고 청년실에 잇다. 교히의 불을 끄고 나오니 임목사도 차를 타고 짐으로 가는 길에 나를 태워 아파트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2000년 2월 19일
오후 4시경에 당회실에서 김대운장로와 대화하다
내용은 연방총회의 장소문제와 설교를 책망하는 설교를 지양해주고 등기를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등기를 보여는 주갰지만 줄수는 없다고 했다.
청년부장을 맡고 있어 청년들과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면서 가자고 하나 가기 싫어서 가지 않았다.
2000년 2월 20일 주일
2부 예배후 학습과 세례교육에 참석자가 없어 참석한 정승모는 다음의 기회로 삼기로 하고 재정부실에 연방총회문제로 언급하기 위하여 들어가니 최병철집사가 또 난리를 부린다. 차량연료를 많이 썻다는 것이다. 특히 김지전도사는 약20만원을 한달 동안 사용했으니 이것은 지입차보다 더 많이 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보다 관리를 하라는 것이다. 서간사앞에서 당회장이 나무라듯이 최집사가 말하는 꼴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누가 당회장이요 집사인지 체면이 서지 않는다. 주여 언제까지 참아야하며 주님의 조치를 기다려야 합니까?
속히 저들을 제어하여 주소서
최집사가 자기 집에 가서 이야기 하자고 한다.
최집사집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김대운 배식 최병철 그리고 내가 식사를 하고 대화하였다. 지난번 퇴직금에 대하여 내가 노동청 운운했다고 하면서 세상에 목사가 노동자인지 노동청 운운하였는데 목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여 나의 목회를 하지 못하게 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고약하다.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는가 누가 퇴직금을 달라고 했나 지금 정산하자고 했나 자기들이 퇴직금을 언급하여 이제는 나에게 뒤집어 쉬우는 저런 악한자들을 주님 보시옵소서
그러면서 이제 목사가 교회에서는 1년치 퇴직 적립금을 한꺼번에 주던지 할테니 목사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협박 공갈로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재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있단는 것이요 나는 너희들이 잘하는가 보자 하고 방관하고 있으니 이 꼴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왜 목사가 통제 관리 감독해야하는데 하지 않고 있다고 소리지른다.
그래서 내가 통제 감독할수 없으니 엊지 해야하는가 그래서 이제부터 재정부도 말하고 감독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감독할 수 없는 것은 무슨 말을 하면 트집을 잡고 문제를 만드는데 어찌하여 감독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금주 주보를 보면서 왜 호남여자신학원 졸업을 광고에 시비를 건다. 그래서 우리교인 정혜자집사님이 졸업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막무가네다.
2000년 2월 21일 월요일
오전 11시에 연방총회 준비위원들이 총회 장소를 허락 받기 위하여 방문키로하여 터미널커피솝에서 만나기로하여 김대운장로와 같이 다방에 가다 미리온 우찬무총회장과 전기영총회장이 와 있었고 나중에 김대형총회장이 오고 제일 늦게 윤재언총회장이 오셔서 교회로 가다 운전은 김용일집사가 봉사하다. 교회에서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준비위원장안도) 점심을 먹으려 가다 김용일집사가 운전봉사하고 부목사와 연방총회에서 온 4명과 김대운 김형철장로가 같이 봉고로 회순의 약산염소탕을 먹고 왔다 김요일 집사가 부담하였다. 가시는 차비도 김용일집사가 부담하였다 약 10만원 이상 들었을 것 같다 김대운 장로는 심지어 다방의 차값까지도 부담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지불하며 영수증을 받으라고 했지만 재정부에 신청도 하지도 않는다. 고속버스로 모두 상경하엿다.
2000년 2얼 22일 신학교 졸업식
오후 3시반에 식장에 도착하니 순서지에 나를 이사장으로 해놓았다 이것이 시비가 될 것같아 김안식 이연수가 있는 가운데 왜 이사장이라고 했느냐고 했더니 최병갑목사가 자기가 그렇게 했다고 하면서 내가 이사장도 아닌데 이사장으로한며 되겟느냐고 하니 그렇게 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식장에서 소개는 전신학장으로 하고 축도하고 식을 마치니 누구하나 수고에 격려하는 자 없었다. 허탈했다. 교수들 도곡에 목욕 가자고 하여 억지로 가서 목욕만 하고 와버렸다
이처럼 비통한가 지금까지 힘들여 학생들을 양육한다고 했는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저녁에 강단기도하다.
2000년 2월 26일 토
학생회 단합대화라고 하는데 부장인 배식이 오지 않고 학생들도 별로 모이지 않앗다.
11시에 박찬혁 아이 출산예배를 드리다.
2000년 2월 27일 주일
1부 예배 준비기도회에서 교회등기를 김대운장로님께 건내주었다
2부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에 가니 배식이 흩어보고 있다 뭇근 감사를 하는 것같이 보는 모습이 꼴 사나웠다. 보고 달라고 했으니 돌려줄지 의문이다.
저녁예배를 드린후에도 주지 않느다.
왜 개인의 집으로 교회등기를 재정부장이 가지고 가는가 참으로 못 마땅하다.
주여 저런 횡포를 보시옵소서
2000년 3월 10일 금
빅영우씨의 북경반점 개업예배를 드리고 김정자 집사의 문병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느데 이은혜권사(신학생) 면담차 방문하고 대화하다. 결론은 졸업장을 달라는 것이였다, 그래서 나한테 없고 최목사에게 달라고 하고 마치 전대병원 문병차가니 가는길이라면 같이 가자고 하여 동승하여 문병가다가 서현교회앞에 다리에서 내려주었다 심방대원으로 부목사 전도사 박은자 시신애가 같이 갔다왔다
2000년 3월 11일 토
오후 김대운과 대화하다 김대운 장로가 신입생과 면담을 했느냐고 물으길래 하지 않았다고하면서 금요일 신학생과 면담을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2000년 3월 12일 주일
2부 예배를 마치고 서재실에 있는데 김대운 배식 최병철이 찾아와서 왜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서 신학생 면담을 물어 보길래 사실이다.,고 했다 그랫더니 최병철은 이제는 목사님을 대적하는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식이 먼저나가고 이어서 최병철이 나가니 김대운은 그 자리에 앉아 있어서 내가 왜 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있는데 밖에서 최병철이 김대운 장로를 나오라고 소리지른다. 김대운장로가 나가고 나는 우둑커니 앉아 있었다
3시경에 집에 들어가니 최병철에게서 전화가 와 만나지고 한다. 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하여 밥도 먹지 못하고 또 끌러 나갔다. 소가 도살장에 끌러가듯이 갔다. 주여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합니까? 주여 도우소서
겨우 저녁예배 `15분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배에 참석한 후 만나자고 한다.
자기는 예배도 참석하지 않으면서 ........
저녁에 불사우나에 가자고 한다 예배 후 정리하고 집에서 옷을 가라입고 전화하니 배집사와 같이 있으니 엣 양3파출소 앞으로 오라고 한다. 또 끌러 가는 송아지가 되고 말았다 가서 주일이니 가지 말자고 하니 믿음 없는 자기가 돈을 쓰겠다고 또 끌고 간다. 난생 처음으로 주일에 영업집에 들어갔다. 주여 이렇게 해야됩니까? 아니면 싸워야 합니까? 주여 도우소서 오늘도 또 끌러왓나이다. 언제까지 참고 참아야 합니까?
최병철집사차로 불사우나아갔다 1인당 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가볼만한 곳이었다. 배식 최병철과 대화
대화는 곧 나는 몯느 대와 관계를 끝내는 거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들은 그거 이 아니라 노회와 총회를 끝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직 목회에만 전념하겟다고 하니 들어 주지 않고 나가던지 노회를 옮기던지 하자는 것이다. 결말이 나지 ㅇ낳은 상태에서 끝내고 돌아왔다.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더 되었다 주여 어찌해야 됩니까?
2000년 3월13일 월
오후에 교육관에서 최병철과 대화
내용: 마지막 기회로 권면한다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버리면 교인들이 다라 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목사님의 길은 파행의 길밖에 없다고 한다. 그럼녀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교회 성장 발전위원회에 교회의 진로며 모든 것을 맡끼면 (옮기던지, 독립으로 있던지, 쫒겨나던지) 자기가 앞장 서서 목사님이 쫒겨나는 것은 막겠다고 한다, 그러나 장담하수 없는 것은 모두가 그렇게 주징하면 자기도 엊절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할 것이니 그 길만이 최선이라고 한다. 대화를 하는 중 내일의 연방총회 준비를 위하여 부목사를 불러 지시한다. 그래서 최집사의견과 같이 맡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최집사가 노회장 서목사와 같이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없어 녹음하여 놓았다. 녹음을 듣고 서목사한테서 전화가 와서 광주로 오라고 하였다.
저녁에 최집사 사무실에서 서의석노회장과 같이 가니 이미 김대운 배식이 긷리고 있었다. 동석하여 노회를 옮길 것을 대화하다. 노회를 옮기면 목회를 열심히 돕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랫더니 최집사가 그러면 목사님께서 잘 알아서 교단을 정하여 달라고 하면서 3개월의 시간을 주겠다고 한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이러한 협박 공갈에 못살겠다. 주님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까?
2000년 3월 14일
연방총회 개최하였다. 오전에 구역장 교육후 손님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 바쁜 ㅅ가운데 손님들이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식당은 한울회관으로 정하고 식권을 발행하였다. 붕뚝 정식으로 4000원으로 정하였다/. 약ㄷ 100명을 에상했는데 276,000원이 나왔다 우리교인도 같이 먹었으니 약 60여명이 온셈이다. 2시가 되어 개회하다, 내가 설교하고 윤재언목사가 사회를 보다. 개회에 앞서 서기 우찬무 목사로 호명케 하니 박재식 총회장과 공명래가 나서서 왜 우참무 목사가 서기로 호명하느냐하면서 이의를 제기하여 총회장들을 교육관에 모이도록 하고 서기 문제를 다루었다. 본래 4개교단이 출발ㅎ시 선정했던 서기와 부서기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겟느냐하니 준비위원으로 하자고하여 우찬무 목사가 서기로 하기로하고 총회를 호명하니 16개 교단중 12개 교단이 참석을 보고하니 제2회 개회를 선언하였다. 개회를 선언하고 준비위원장이 등단하여 임원 선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공명래가 나서서 긴급동의로 총회가 부저이라고 하고 박재식목사과 김진복목사가 나서서 소리지른다. 임원선거를 위하여 다시 총회장을 교육관으로 모여 이사장만을 뽑고 나머지는 다응으로 미루고 총회장은 나를 유임시켜 놓았다. 그래서 발표시에 김대형목사에게 총회장을 보류하도록하여 발표케 하였다. 그리하여 겨우 폐회를 하고 다시 총회장들을 교육고한에 모이도록하여 내갸 총회장을 하는 것은 두 번 죽이는 것이 되니 절대 불가를 하니 김대형목사를 총회장을 겸하도록하고 끝을 맺고나니 밖에서 김진복목사가 누구와 큰소리지르며 싸우고 있다. 참으로 챙피한 노릇이다.
겨우 마무리 짓고 나니 총회장 김대형목사께서 10만원 헌금하셨다. 식사비와 프랑카드비용을 부목사를 통하여 서기 우친무 목사에게 연결하니 돈이 부족하여 식사비만 내 놓고 프랑카드비는 다음에 보내겟다고 하고 상경하였다.
최병철집사로부터 전화가 와서 내일 재정처리하고 기도원에 가곘다고 하니 가기 전에 전화를 달라하였다. 무슨 말을 할 것같이 이제 모든 것을 끝냈으니 새로운 시작을 하겟다고 하니 좋다고 하면서 내일 올라가기 전에 전화달라고하여 무슨말을 하리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다 끝이 난 마당이고 민구 엄마가 한번 죽으면 말지 두 번 죽느냐고 하면서 위로한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2000년 3월15일
오전에 피시뱅킹으로 재정처리하고 최병철에게 전화하니 한번 올라가겟다고 한다, 민구엄마와 같이 헐몬수양관에 올라가서 점심을 먹고 나도 힘이 나지 않는다. 주여 힘을 주소서 누가 당회장이며 누가 집사인가요 나는 힘이 약하고 미약하오니 저들을 제어하여 주옵소서.
2000년 3월 19일 주일
1부예배 준비기도회를 마치고 강단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김대운 장로가 또 잔소리를 한다. 교단을 옮기는 것을 지헤롭게 말을 잘하라는 것이다. 듣기가 싫다 지금까지 몸을 담고 잇는 고단을 옮긴다는 것이 싫다.
1부에서는 설교중에만 넣고 2부에서는 설교와 광고를 직접하였다. 특히 새벽기도회와 저역기도회를 강조하였다. 예배후 배식집사에게 목양비 도서비 여비 심방비를 영수증을 주니 목양비 영수증을 보더니 누구와 식사를 하였느냐고 하길래 말하고 싶지 않다고하며 꼭 밝히라고하면 청구하지 않겠다고 달라고 하니 말은 하지 않으면서 그냥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달라고 하니 주지 않아 놔두엇다. 바로이어서 이층에서 학습세례교육하고 나니 1시가 되어 사무실에 가니 재정부원들은 다 정리하고 가고 없고 배식이 혼자서 내가 청구한 영수즈을 정리하고 있다..
거기에는 시집사와 부목사 부부와 간사와 전도사가 있었고 유년주교 총동원주일 간식으로 준비된 토스토를주어 먹고 집으로 왓다
저녁예배는 부목사에게 헌신에배를 인도하라고 했는데 (노인복지헌신:회장 선영모집사) 설교가 헌신예배가 아니라 엉뚱한 설교를 하고 있다 경우를 모르는 설교였다 헌신에 대하여서는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2000/3/24/금
2000/3/25/토
오전에 주보를 작성하고 부교역자들은 배열을 문병하다. 12시에 만나 유덕순권서의 생신예배겸 아들의 풍암동 이사겸하여 예배드리고 식사하기 위하여 두분의 장로님과 교역자들ㅇ과 지역장이신 이예자권서 구역인도자이신 정지순집사가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디고 식사하다.
식사후 교회에 도착하여 정기 당회를 하려고 하는데 김대운이 또 무슨 약속이 있다고 하여 갔다가 와서 하자고하여 교회에서 기다리다가 당회를 하다
안건은 피택공동의회를 연기하는 것과 임명의 건으로 양산문흥을 분구하여 양산에 현정덕 인도에 시신애 염주금호를 분구하여 염주구역장에 임미자와 인도에 강향춘 금호에 구역장 김순례와 인도에 정혜자임명 유년주교 교사에 임목사 딸 임진희를 중고등부교사에 김승재 김창두 옥윤주 4명ㅇ늘 임명하다.
3.28화
구역장 교육을 임목사에게 전체를 맡끼고 설교 요약만 내가 했다.
구역장교육후 나물캐려 가자고하였으나 비가 올것같아 가지 않기로하고 다 귀가한후 박은자권사와 시신애 정혜자가 교회에서 밥을 해먹기로하고 앞집에서 밥을 먹다. 먹은후 김대운 장로의 산에 가서 나물캐러가자고하여 김대운 부부와같이 갔다. 과연 냉이가 많은 밭이 잇었고 나는 산을 두러보았다.
귀교하는 도중에 김형철장로님께서 전화가 오기를 오삼용부인이 가나병원에서 오후 5:30에 척추 수술을 한다고 연락되어 교회에서 만나 가기로하여 교회에 도착하니 이숭용구역장도 있어 같이 문병하고 기도하고 돌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