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대한민국 문화재청장이라는 막중한 직함을 새로 떠맡은 유홍준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붓글씨로 돼 있는 광화문 현판을 갈아치우겠다며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박정희의 붓글씨 솜씨 자체를 비판한 적이 있다.
유청장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던 1995년 한 신문 지면(2005년 1월26일자 조선일보 31면)에 사령관의 호령 비슷한 기합이 넘치는 박대통령의 필획이기에 ‘광화문’ 글씨 같은 데서는 “살기(殺氣)조차 느낀다”고 평하며 이를 ‘사령관체’라 작명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의 글씨를 아주 재밌게 평했다.
▲이승만-기교와 술수가 돋보이는 글씨
▲윤보선-조용하고 신중한 글씨
▲박정희-사령관체
▲최규하-펜글씨 교본 같은 주사체(主事體) 글씨
▲노태우-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비자금체(돈을 많이 훔친 걸 풍자한 듯)
▲김영삼-‘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휘호를 많이 써서 대도무문체
왜 전두환과 김대중의 글씨체가 빠졌는지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유씨가 평한 박정희 사령관체 글씨에 대한 세부 비평이다. 왜 잘 쓰지도 못하는 글씨를 갖고 만인이 보는 현판을 써서 보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글씨 고생시키냐. 이것이 유홍준의 박정희 글솜씨에 대한 견해다. 아마추어 미술애호가로 행세해온 내가 봐도 이건 너무 심하다. 미술평론가가 무슨 근거로 타인의 작품을 놓고 그토록 제왕 같은 폼으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남을 평할 때는 감정과 편파가 개입되게 마련이지만 상대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아닌가. 멀쩡히 살아 남아 있는 유족들은 어쩌라고.
-친구들아 광화문 현판을 어찌했으면 좋겠니-
그리하여 나 조영남(서울 용문고 10회 졸업생)은 지난 2일 고교동문 몇몇과 함께 이택래 선배(5회)가 운영하는 청담동 ‘연경’에서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박정희 붓글씨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다. 조영남 돈으로 경향신문 1년치를 보내준다는 빌미삼아 다음과 같은 소박한 시민 동문들의 답변을 받아냈다.
질문1.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를 알고 있었는가?
질문2. 박정희는 글씨를 잘쓴다, 못쓴다 어느 쪽인가?
질문3. 박정희의 광화문 한글현판을 교체해야 하는가?
맹세컨대, 나는 이때까지 이들 앞에서 질문 전후에 박전대통령이나 유청장이나 혹은 누구의 붓글씨 등에 관해서 일절 언급을 안 했다. 선입견 없는 답변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나의 고교 후배들은 모두가 박전대통령의 한글 서예를 알고 있었고 잘쓰고 못쓰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으나 현판 교체는 모두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자! 다음은 용문고 전설의 ‘뺀드부’ 트럼펫 주자, 용문고 교지 창간호 발행인 및 용문고교 미술부장 출신 가수 및 화가 겸 칼럼니스트(이런 영어 단어가 있었던가) 조영남이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붓글씨, 특히 한글 붓글씨 솜씨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차례다.
그 유명한 추사의 한문 서예에 관한 한 대한민국 문화재청 유홍준 청장과 가수 조영남의 견해는 일치한다. 나도 충청도 우리동네 출신 김정희 아저씨의 붓글씨를 보면서 ‘서예가 현대미술일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 터득했다. 그러나 한글 서예는 좀 달랐다. 초등학교때 서예 시간에 붓을 들고 몇 차례인가 ‘푸른 하늘 깊은 강물’ 같은 걸 써본 이후 한글 서예 자체에 쭉 관심이 없다가 언제부턴가 광화문이나 남산터널 같은 데서 박정희체 붓글씨를 접하게 되면서 급기야는 판에 박은 듯한 도식적인 대부분의 한글 서예 중에선 박정희 것이 예술적·문화적 가치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수하다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었다.
무엇이 그토록 우수한 건가. 한글 서예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한 번 척 보고 누구의 글씨인지를 아는 건 유일하게 박씨의 한글체다. 이것은 마치 화가 박수근의 그림이 언뜻 예술성이 더 많아 보이는 이중섭이나 김환기의 그림보다 압도적으로 선호되는 이유와 똑같다. 그냥 척 보면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있다. 개성이 강하다는 뜻이다. 개성은 독창성에서 나온다. 유씨가 평했듯이 박씨의 사령관 글씨체에서 살기조차 느낀다 함은 개성이 강하다는 뜻이고 독창성을 보유했다는 뜻이다. 유씨도 그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내심 출중한 글씨체로 인정해놓고 느닷없이 잘쓰지도 못하는 글씨로 깔아뭉개는 건 앞뒤가 안 맞음이며 게다가 ‘그런 글씨를 써서 보는 사람 피곤케 하고 글씨 고생시키느냐’ 이러는 건 또 웬 ‘구라꾼’식의 말투인가(나처럼 이것저것 아는 척하며 사방에 떠들고 다니는 사람을 속된 표현으로 ‘구라꾼’이라고 부른다).
방법은 하나 있다. 유청장과 ‘조카수’가 붓글씨 쓰기 시합을 해서 이긴 사람의 의견을 따르게 하자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박전대통령의 붓글씨 자체를 엉터리로 취급하는 것은 마치 가곡 ‘가고파’나 ‘동심초’에 비해 ‘뜸북이’나 ‘고향의 봄’ 같은 노래를 유치한 노래로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 많이 불리고 더 많은 사람한테 더 많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건 단연 ‘뜸북이’나 ‘고향의 봄’이다. 그래서 더 잘 만들어진 노래로 높임을 받아야 한다.
차라리 유씨가 “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박씨의 글씨도 싫습니다” 했으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한발 더 나가서 “현 정부가 제게 문화재청장 자리를 줬으니 저도 뭔가 보답 차원에서 아쉬운 대로 광화문 현판이라도 갈아치워 드리겠습니다” 했으면 동정의 박수라도 받을 수 있었을 터이다. 몇 년 전부터 복원계획이 있었다느니 옛 건물에 한글 현판이 맞지 않다느니 하는 소리는 너무 옹색하게 들린다. 정치적 복선이 없다니. 만에 하나 다른 정권이 들어선다면 다시 또 돈을 들여 원상대로 교체할 게 뻔한데 어찌 그렇게 잡아뗄 수가 있는가. 잘쓴 글씨다, 아니다 못쓴 글씨다, 현판을 쓸 자격이 있다 없다, 현판을 교체해야 한다, 해선 안 된다…. 이렇듯 광화문 현판은 충분한 논쟁의 요건을 갖췄다. 이쯤에서 나는 논쟁을 일거에 끝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겠다. 그것은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유청장과 조카수가 붓글씨 쓰기 한판 시합을 벌이면서 이긴 사람의 의견을 따르게 하는 거다. 심판관으로 나는 송복(宋復) 연세대 명예교수를 추천한다. 이 어른은 최근 박씨의 현판 글씨를 “기세가 대단하다, 기백과 힘이 넘친다. 웅지를 머금고 살아서 뻗친다”고 공개적으로 극찬을 해버렸다. 송교수를 신뢰할 수 없다면 김인수(金仁秀)는 어떤가. 김씨는 붓글씨로 여러 번 상을 탄 내 매니저의 친구 되는 사람이다. 심판 고르다가 세월 다 가겠다. 그만두자.
▲추신:내 생각에 현 정부가 엄청 잘한 일 중에 몇 가지는 강금실을 법무부 장관으로(법무부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렸다), 이창동을 문화부 장관으로(‘스트레이트 문화인’이 문화정책 관리하는 게 너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유홍준을 대한민국 문화재청장으로 스카우트한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 이전에는 대한민국에 문화재청이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유청장! 술 한잔 합시다, 그려.
〈조영남/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