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 박상률
■ 핵심정리
․갈래 : 장편 소설, 성장 소설
․작가 : 박상률(1959∼ ), 전남 진도 출생. 1990년 '한길 문학'에 시 '진도 아리랑'과 '동양 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함
․구성 : 복합 구성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배경 : 현대, 진도와 목포
․제재 : 어느 소년의 가출 사건
․주제 : 어느 섬 마을 소년의 꿈과 좌절, 사춘기 소년의 이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
․출전 : [봄바람](1997)
․특징 : 향토적인 배경 묘사를 통해 깨끗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자아낸다.
․성격 : 서정적, 동화적, 고백적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어느 섬 소년이 성장 과정에서 가졌던 꿈과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가출'이라는 사건을 통해 주인공은 세계에 대해 점차 눈을 떠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겪는 인물의 내면 풍경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서의 주요 이동 경로인 '섬'과 '항구'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전자의 공간이 소년의 안온한 유년의 삶을 나타낸다면, 후자의 공간은 성인이 된 주인공이 살아가야 할 각박한 현실 세계의 삶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에서 이러한 배경을 설정한 것은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렀던 유년기의 인물이 점차 성장하면서, 세계에 눈을 떠가며 겪게 되는 정신적 갈등과 인간적 성숙의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 전체 줄거리
주인공 훈필은 섬(진도) 소년이며, 뼈빠지게 일해야 입에 풀칠하기 바쁜 농사꾼의 초등 학교 6학년 아들이다. 훈필은 뭍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봄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마을 누나, 형들의 가출은 훈필 또래의 아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 실패하여 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워낙 가난해서 중학교조차 진학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그래도 고등 학교라도 졸업하고 가난한 농사꾼을 벗어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비 마련을 위해 염소를 키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자 하는 훈필의 꿈은 염소가 죽음으로써 흔들리게 된다. 물론 염소의 죽음만이 훈필이의 가출을 부추긴 것은 아니다. 짝사랑하는 은주와의 거리,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던 훈필은 가출을 결심한다. 훈필의 가출은 새로운 꿈을 향한 일종의 도전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린 소년에게 너무 냉혹했다. 그의 꿈은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3일 만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년은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뜬다.
다음은 박상률의 작품 '봄바람'의 일부분이다. 이를 잘 읽고,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이 작품은 사춘기의 한 소년이 사랑과 외로움을 동시에 배워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겉으로 잘 드러내진 않지만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농촌 소년 훈필이의 열정과 영혼의 방황을,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린 성장소설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이성에 대한 관심, 가출 등 청소년기에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다소 해학적인 문체를 통해 펼쳐지고 있다.
''봄바람은 따뜻하기도 하지만 자꾸만 몸을 들썩이게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봄바람을 가볍게 여기진 못할 거예요. '' 저자는 열세 살에서 열여덟 살까지의 시기를 인생을 시작하는 봄이라고 보고 이 책을 통해 인생의 '봄에 부는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생각할 문제
1. 이 소설에서 '나'는 '은주'와 '서울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보자.
[끌어주기] 이 활동은, 은주에 대한 짝사랑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글의 주인공인 '나'의 심리를 파악해 보는 활동이다. '나'는 '은주'와 '서울 아이'와 비교하면서 '서울 아이'가 '은주'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은주'의 무관심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가 있다. '나'가 '은주'와 '서울 아이'를 비교하는 부분을 잘 살펴보면서 '나'의 생각이 줄곧 '은주'를 떠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예시 답안]
-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 줄 사람은 은주보다 서울 아이라고 생각한다.
- 은주보다 서울 아이를 더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 성격이나 말씨 외모 면에서 서울 아이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2. '나'는 왜 외로움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자.
[끌어주기]
'봄바람'에 대한 내용 학습 활동이다.작중 인물인 '나'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 글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자. '훈필'의 외로움은 은주에 대한 사랑, 그리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서울 아이'에 대한 관심 또한 훈필에 대한 은주의 무관심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훈필이 외로운 이유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전체 줄거리와 훈필의 심리적 양상을 되돌아 본다. 자의적인 생각 보다는 작품에 근거를 두고 생각하자.
[예시 답안]
'나'의 외로움은 '은주'에게서 비롯되었다. '나'는 '은주'에게 꽃도 갖다 주며 여러 번 환심을 표현한다. 그러나 '은주'는 그런 나에게 무관심하다. 그러자 '나'는 '은주'를 대신해서 '서울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 본다. 그러나 '서울 아이'는 산토끼일 뿐, 간수해야 할 집토끼는 '은주'이다. 그러나 '나'는 은주에게 말라 비틀어진 코스모스 꽃다발처럼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당산거리에서 '서울 아이'의 생일에 초대되어 갔을 은주를 기다리며 외로움을 느낀다.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틈바구니에서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을 느낀다. '은주'에 대한 사랑, 그리움, 기다림과 동시에'나'는 '외로움'을 배워 가고 있다.
■ 참고자료
꽃동냥치 / 박상률
밥 한 주먹 담아 먹을 양재기 하나 없어도, 동전 몇 닢 받아 넣을 깡통 하나 없이도, 그는 동냥치다. 한 면에 한 마을씩 가가호호 제삿날만 챙겨 두면 먹고사는 일 정승 판서 부럽지 않은 그. 등짝에 지고 다니는 망태기엔 철 따라 달리 피는 들꽃 가득하여 꽃동냥치라 불리지만, 그는 여태껏 무얼 동냥한 적이 없다. 어쩌다 제사 없는 날엔 아침 뒷산에 올라 마을 사람 아침잠을 다 깨운다.
“ 내 며느리들 빨리 일어나서 나 먹을 아침밥 지어라!”
졸지에 한 마을 아낙이 모두 그의 며느리가 되고 만다.
그가 죽어 그의 꽃 망태기도 같이 묻혔다. 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났다.
지금 내가 그에게 동냥을 청한다.
“꽃 한 송이, 내 등짝에도 피어나게 해 주세요.”
<배고픈 웃음>, 시와시학사
■ 꽃치에 대한 부가 자료(독후감)
봄이 되면 훈필의 마을로 들어오는 이가 있다. 꽃치다. 망태기에 꽃을 넣고 다니는 동냥치.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꽃치라 한다.
꽃치는 말이 없다. 노래만 부를 뿐이다. 마을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꽃치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덧 그의 존재를 인정해간다. 밥을 얻어먹고 그 보답으로 일을 해주고, 그를 주저 앉히려는 노력만 보이면 그는 말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훈필에게도 그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나에게도 그는 단순한 동냥치로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이기는 하다. 하지만 꽃치는 자신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 바라면서, 아니 바라기 보다는 남을 인정해 주며 세상을 살아간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남과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생각만 들어도 남과 같아지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꽃치는 남과 같아지려고 애를 쓰기는커녕 같아지라고 권하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에게서 도망가 버린다.(112쪽)
작가는 꽃치를 통해 순수한 영혼을 얘기하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사는 건지,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게 그는 마을을 떠났지만 영원한 자유인으로 그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꽃치를 표현하는데 있어 너무 추상적·관념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인물이 현실적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말없는 꽃치와 말 많은 선생님을 대비시킨다. 노총각인 담임 선생님, 그는 아이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기 좋아한다. 이 말 많은 선생님은 농촌이 못사는 것은 농촌 사람들이 게으른 탓이라며 정신상태를 뜯어 고치려는 듯 정신교육에 몰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헤퍼서 탈이에요.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낱알을 흘리지 않고… (중략) … 밀레의 정신을 본받도록 해요. 그러니까 내말은 보리이삭을 주워오라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잘 살 수 있는 거예요…"(60쪽)
"그러나 누구하나 이삭 줍기를 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결코 헤픈적이 없고 건성건성 일하는 경우도 없었다. 주울래야 주울 이삭이 없었던 것이다." (61쪽)
선생님의 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가벼움! 남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지도 않으며, 정체도 알 수 없는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
꽃치와 선생님의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를 반성하게 만든다. 부끄럽게 만든다. 잔잔하지만 단호한 어른세계에 대한 작가의, 아니 훈필의 비판으로 받아 들여진다.
훈필이 가출 후 집에 돌아와 있을 때, 길에서 문득 마주친 꽃치는 훈필에게 이렇게 말한다. “꽃이 아름답지 않냐!” 꽃치에게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다. 훈필은 그 말에서 꽃냄새를 맡는다. 희망인 것이다. 그를 그리워 하는 것도 ‘희망’에 대한 그리움이다.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에게 ‘봄바람’이라는 희망을 남겼다.
■ 실전 수능(2004년 4월 대성모의고사문제)
(가) 머슴 대길이 / 고은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떡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 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나) 자모사(慈母思) / 정인보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補空)되고 말어라
어느 해 헛소문에 놀라시고 급한 편지
네 걸음 헛디디면 모자 다시 안 본다고
지질한 그날그날을 뜻 받았다 하리오
※ 보공 : 입관(入棺)할 때 빈 곳을 채우는 옷가지 따위의 물건
(다) 꽃동냥치 / 박상률
밥 한 주먹 담아 먹을 양재기 하나 없어도, 동전 몇 닢 받아 넣을 깡통 하나 없이도, 그는 동냥치다. 한 면에 한 마을씩 가가호호 제삿날만 챙겨 두면 먹고사는 일 정승 판서 부럽지 않은 그. 등짝에 지고 다니는 망태기엔 철 따라 달리 피는 들꽃 가득하여 꽃동냥치라 불리지만, 그는 여태껏 무얼 동냥한 적이 없다. 어쩌다 제사 없는 날엔 아침 뒷산에 올라 마을 사람 아침잠을 다 깨운다.
“ 내 며느리들 빨리 일어나서 나 먹을 아침밥 지어라!”
졸지에 한 마을 아낙이 모두 그의 며느리가 되고 만다.
그가 죽어 그의 꽃 망태기도 같이 묻혔다. 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났다.
지금 내가 그에게 동냥을 청한다.
“꽃 한 송이, 내 등짝에도 피어나게 해 주세요.”
1. <보기>는 (가)-(다)에 대해 평을 한 것이다. ㉮-㉲ 중, 작품을 잘못 이해한 것은?
세 편의 시는 모두 언어로 그녀 낸 초상화라 할 수 있다. 이 세 편은 공통적으로 화자가 경험한 인물의 인상적인 모습을 포착해서 그려 내고 있다.
㉮ [화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세 인물의 인간적 미덕이다. 세 인물은 비록 잘나거나 출중한 학식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잊기 쉬운 미덕을 간직하고 있다.] ㉯[(가)의 ‘대길이’는 비천한 머슴이지만, 화자에게 글을 가르쳐 준 인물이다. 화자는 더불어 사는 삶을 그에게서 배웠다.] ㉰[(나)의 ‘어머니’는 헌신적으로 자식을 길러 온 인물이다. 자식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노심초사(勞心焦思)한다.] ㉱[(다)의 ‘꽃동냥치’는 운치 있는 삶을 추구한 인물이다. 그는 늘 꽃을 가까이 했다.] ㉲[세 화자는 지금 그 인물들을 각각 회상하고 있다. 이러한 회상은 화자들이 아직까지도 그들의 강력한 자장(磁場) 안에 있음을 뜻한다.
① ㉮ ② ㉯ ③ ㉰ ④ ㉱ ⑤ ㉲
2. <보기>를 통해서 ㉠의 ‘불빛’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그림 제시는 생략함.. 굳이 보지 않아도 풀 수 있을 것임)
① ⓐ 숯불 :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온기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② ⓑ 촛불 : ‘그’는 자신을 희생해서 남들을 위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③ ⓒ 전등 : ‘그’는 내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나서서 손쉽게 해결해 주었다.
④ ⓓ 등대 : ‘그’는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에서 좌초하지 않게 내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⑤ ⓔ 별빛 : 잇속에 밝은, 그러기에 어두운 세상에서 ‘그’는 이타적인 삶의 빛을 발했다.
3. <보기>의 관점에서 (나)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시인이 어떤 형식을 택할 때, 그가 머릿속에 그려 둔 내용은 그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군다나 그 형식이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 오면서 관습이 켜켜이 내려앉은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시인이 그 형식을 택하는 순간, 그의 의식은 이미 일정한 관습적 영향 속에 들어와 있다.
① 낯익은 사실에서 낯선 의미를 끄집어내어 참신성을 강조하고 있다.
② 조선 시대 시조의 ‘육친에 대한 효’라는 주제를 계승하여 제시하고 있다.
③ 3장으로 짜이고 4음보가 한 장을 이루는 틀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④ ‘말어라’, ‘하리오’와 같은 표현을 통해 예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⑤ ‘바릿밥’, ‘보공’, ‘지질한’과 같이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 시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4. (나)의 화자를 시민 운동 단체의 간사라고 가정하고 ㉡을 상상해서 써 보았다. 어색한 것은?
① 이 어미는, 우리 나라가 올바르게 나아가는 데 네가 작으나마 보탬이 되어 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왔다. ② 그런데 요즈음 네가 지위를 이용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취한다는 말을 들었다. ③ 매사를 조용히 처리해야지. 남들 입에 오르내리니 마음이 언짢구나. ④ 엉뚱한 데 욕심을 품는 사람은 내 자식이 아니니, 그것이 헛소문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⑤ 네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 어미 믿고 싶구나.
5. <보기>를 고려할 때, (다)의 시인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보기>
이 시에 등장하는 동냥치는 망태기에 들꽃을 담고 다녀 꽃동냥치로 불린다. 왜 꽃을 담고 다닐까? ‘산화공덕(散花功德)’이란 말에서 해답을 구해야 할 듯하다. ‘산화’는 부처님 앞에 꽃을 뿌려 공양하는 일을, ‘공덕’은 좋은 일을 많이 한 힘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정승 판서 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화자는 그에게 자신의 등에도 꽃이 피어나게 해 달라고 청한다. 화자도 그 동냥치처럼 사람들에게 꽃을 주고 싶은 것이다.
① 내가 갈고 다듬어 엮은 말의 섬세한 무늬에 독자들이 주목했으면 좋겠다.
② 내가 지은 시를 읽은 독자들의 영혼이 위안을 받아 평안해지기를 바란다.
③ 독자들이 나의 시를 읽고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소망한다.
④ 시란 무엇인가를 천착한 나의 시를 통해 독자들이 시의 본질에 다가섰으면 한다.
⑤ 삶에 대한 깊은 지혜를 시 속에 담아 넣었으니, 독자들에게 혜안(慧眼)을 줄 것이다.
<정답>
1. ④ 2. ③ 3. ② 4. ③ 5. ⑤
■ 시인 정호승 발문
박상률 시인의 소설 <봄바람>을 읽는 것은 지난 봄날이었다. 그는 겨우내 마무리한 그 소설을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하고 내게 넌지시 건네 주었다.
평소 나는 이 다양화된 사회에서 일부러 문학의 한 쟝르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해 왔다. 왜냐 하면 시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소설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간 감수성과 이야기성을 동시에 풍부한 글을 써 온 박상률 시인이 쓴 소설 <봄바람>을 접하게 되자, 나는 우선은 반갑고 떨리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짬짬이 읽을 생각이었으나, 열세 살짜리 소년 훈필이의 생각과 행동에 푹빠져들고 말았다. 훈필이를 통해 마치 소년 시절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혼자 마음 저리기도 하고 혼자 낄길 웃기도 했다.
나 자신만 해도 훈필이 나이 때에 공연히 엄마가 미워 외할머니가 계신 경주에라도 갈까 하고 대구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린 일이 있었다.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10원, 20원 용돈을 모으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또 <봄바람>에서처럼 옆집 은주나 서울에서 온 아이는 아니었지만 나보다 한 살 많던 사촌 누나를 짝사랑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 맞다. 내가 살던 대구 신천동에도 <봄바람>의 꽃치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
사촌 누나가 살던 외삼촌 집에서는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과꽃이 피는 봄이 되면, 해마다 꽃치처럼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과수원에 나타나 밥만 얻어먹고 가곤 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수염이 무상한 그 남자가 사촌 누나의 손을 잡는 것을 보고 화가 났지만 무서워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아, 그리고 꽃치를 생각하면 하루 종일 골목마다 다니시며 담배꽁초만 줍던 외할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 누구보다도 총명했다는 할아버지가 말을 타다가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어딘가 조금 모자란 듯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외할아버지의 마음의 세계는 어쩌면 꽃치와 같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청소년 시절에는 마땅히 읽을 책이 없었다. 조흔파 선생이 쓴 <얄개전> 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 처음부터 청소년을 독자로 쓴 소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는 책을 빌려 주는 대본소가 닥 한 군데 있었는데, 청소년들이 봐서는 별로 유익할 것 없는 성인용 대중 소설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른들 몰래 그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공연히 감당할 수 없는 성적 흥분만 일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지금도 청소년을 위해 우리 나라 작가들이 쓴 소설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어버지가 되어 중학생이 된 아들과 같이 서점에 가서 우리 나라 작가들이 청소년을 위해 쓴 소설이 뭐 없을까 하고 찾아보았으나 마땅히 사 줄 책이 없었다. 성인들이 보는 책은 어려워 오히려 책과 멀어지게 하지는 않을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초등학생 때 보인, 만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황당한 동화책들을 사 줄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 때 이 <봄바람>과 같은 소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순수한 시기에 인간과 인생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이 마땅치 않다는 것은우리 아이들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소설 <봄바람>은 작가의 고향 진도가 그 공간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또 소설의 주인공 훈필이는 작가의 또 다른 내적 자화상이다. 실제로 작가의 고향 마을에는 꽃망태기를 짊어진 동냥치가 해마다 봄이 되면 나타나곤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꽃동냥치 때문에 썼다고 할 수 있어요. 봄에 왔다가 가을에 가 버리는, 판소리에서부터 흘러간 옛 노래까지 구성지게 부르는, 한 동냥치에 대한 열세 살짜리 소년의 호기심이 결국 이 소설을 쓰게 했다고 할 수 있지요."
직가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인간의 영혼이 가장 순수한 시기를 시점으로 한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정채봉 씨의 성장 소설 <초승달과 밤배>에서 느껴진 것 같은, 순수함으로써 더욱 찬란한 감동이 베어나온다.
<봄바람>은 현실을 통해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이루게 해 주는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이 소년기에 겪은 현실적 체험에 구체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높이 사고 싶다.
청소년 독자층을 위한 소설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막연한 환상의 세계에 경도돼 있다면 나는 이 소설에 많은 불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꿈은 진정한 꿈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봄바람>은 보다 현실을 노래함으로써 보다 더 큰 꿈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바다 건너 삼에서 자라는 한 소년의 뭍에 대한 동경은 환상에 의존해 있지 않고 가난과 눈물과 사랑에 의존해 있어서 보다 감동적이다.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한 소년의 꿈은 참으로 소중하다. 인간은 어릴 때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진다.
나는 <봄바람>을 읽으면서 훈필이와 같은 가출은 소년기에 있어서의 정신적 가출이다. 순수한 영혼의 가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훈필이는 현실적으로 좌절감을 느낀다. 중학교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키우던 염소가 죽고, 친구들한테는 따돌림을 당하고, 짝사랑하는 은주나 서울 아이는 여전히 새침하니 모른 척하고 하는 상황에서 훈필이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방황한다. 그 때 나는 소설 속의 훈필이에게 빨리 집을 더나 보라고 쿡쿡 옆구리를 찌르고 충동질을 하는 심정이었다. 청소년기의 영혼의 방황은 성장의 한 발자국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고귀한 인생을 위해 보다 자주 영혼의 가출을 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가출이야 말로 한 소년의 꿈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훈필이가 사흘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듯이, 가출은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하나의 지름길이다.
소설 「봄바람」 에는 한 소년의 첫사랑이 있고 첫 가출이 있다. 열세 살짜리 소년의 맑은 꿈이 있고 동경이 있다. 인생의 비밀을 엿보고 싶어하며, 인간으로서 경험해야 할 것들을 조금 일찍 경험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있고 배짱이 있고 서정적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른의 세계에 대한 설렘이 있고 반감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훌쩍 커 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보충자료
바람이 불어 왔다. 봄바람이다. /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바다 건너 봄바람이 불어온다. / 봄바람은 처음엔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봄이 좀 깊어진다 싶을 때쯤 해선 제법 강해져서 마당 우물가에 있는 양철 세숫대야를 굴러 다니게 할 정도로 기운이 세진다.
바람...... / 그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리 마을 어른들은 들에 나가 일을 시작하고 , 이십 리 길 너머 바닷가 어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어른들은 봄바람이 불면 몸이 근질근질해져서 들이나 바다로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런데 봄이 되면 정말로 몸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디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조용히 농사일을 배우던 머시마와 가시나들.
그들 가운데 몇몇이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뭍으로 가는 배를 탄다. 그래서 해마다 이 집 저 집 돌아가며 한바탕 소동이 인다. 머시마와 가시나들이 몇 명씩 사라져 버리는 날, 그날은 틀림없이 봄바람이 심하게 분 뒷날이다.
시, 희곡, 소설, 동화 등 문학 전 분야를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 박상률(45)이 성장소설 <봄바람>(사계절)을 펴냈다. 이 책은 '봄바람', '만장하신 여러분', '비를 몰고 오는 바람', '은주 신랑', '이삭 줍는 사람들', '자전거', '땡볕'을 포함, 모두 스무 꼭지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작가가 최근에 새롭게 쓴 신작은 아니다. <봄바람>은 1997년에 '사계절 1318문고'로 첫 선을 보인 책이다. 이 책을 펼치면 자신도 모르게 동심의 향수에 풍덩 빠지게 된다. 왜일까? 이 책 곳곳에 몸이 근질근질할 정도로 불어대고 있는 봄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봄바람이 불 때만 되면 마을 어귀에서 어김없이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라며 들려오는 꽃치의 노랫소리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주인공 훈필이가 짝사랑하는 은주에게 삐비를 선물하고 싶었지만 삐비를 건네 줄 기회가 없어 그동안 모아두었던 삐비를 스스로 씹어 없애야 하는 그런 안타까움 때문일까.
"내 어렸을 때 사내아이인 경우 밥 한 그릇 뚝딱 비울 나이가 되면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지게가 생겼다. 나도 내 좁다란 등짝에 짝 달라붙게 맞추어진 지게가 생기자 재 너머 밭에서 보릿단을 두세 뭇 져 나르기 시작했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지겟작대기로 지게를 받쳐 놓고 쉬었다. / 그때마다 목덜미를 간질이며 지나가던 바람이라니! 봄바람이었다."
나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은주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내 속을 어떻게 들여다보았는지 은주 신랑이라고 놀렸다. 그것도 은주가 같이 있는 곳에서. / 아이들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을까? 내 얼굴에 '나는 은주를 좋아한다.' 라고 쓰여 있기라도 한 것일까.
아마 사람은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면 그 감정이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는가 보다. 아니면 소리 없는 방귀가 더 구린 것처럼 이미 나한테서 묻어나는 어떤 낌새를 마치 구린 방귀 냄새 맡듯이 맡아 냈는지도 모른다. 내가 전혀 내색한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은 이미 내가 은주네 집을 기웃거리는 것과 은주네 교실 앞 복도를 어정거리는 걸 다 알고 있었다. / 어쨌든 원두막 사건으로 인해 은주에게 내 존재를 뚜렷하게 확인시켜 줄 기회는 얻은 셈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은주와 나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 되었다고. ('은주 신랑' 몇 토막)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농촌 소년 훈필이는 열 세살 먹은 소년이다. 바닷가를 낀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누구나 뭍으로 나가 성공해서 돌아오는 것이 최고의 꿈이다. 훈필이 또한 마을을 벗어나 보다 드넓은 세계를 향한 꿈을 꾸면서도 짝사랑하는 은주라는 소녀 땜에 열병을 앓는다.
그런 어느날, 훈필이의 아버지가 염소 한마리를 사 온다. 그 염소는 바로 훈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밑천이다. 그때부터 훈필이는 염소를 열심히 돌본다. 그 염소는 바로 훈필이의 미래이기도 하다. 염소 새끼를 늘려 푸른 목장을 세우고, 마침내 은주와 결혼을 해서 그 목장을 열심히 경영하는, 그런 꿈 말이다.
하지만 훈필이가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도 은주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런 은주에게 지친 훈필이는 서울에서 전학을 온 '서울 가시나'에게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은주에 대한 첫사랑의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한다. 급기야 훈필이는 첫사랑에 대한 좌절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이 시시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게다가 애지중지하던 염소마저 죽어버리자 끝없는 절망감을 느낀다. 마침내 훈필이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시골을 벗어나 뭍으로 나가 성공을 해서 돌아올 생각으로 가출을 한다. 하지만 훈필이는 집에서 몰래 갖고 나온 노자돈을 몽땅 소매치기 당하고 마는데….
배가 고팠다. 그러나 구리돈 한 닢조차 없으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 문득 담임 선생님이 언젠가 우리에게 했던 정신 교육 가운데 한 대목이 떠올랐다. 담임 선생님은 걸핏하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며 서양 어느 아저씨의 말을 곧잘 들먹였다.
선생님은 마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봐서 인생의 쓴맛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꿔 봤다. / '눈물 젖은 빵이라도 먹어 본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다. 두 끼 이상 배를 곯아 보지 않은 사람과는 아는 체도 하지 말라!' / 물어 물어 부두를 다시 찾았다. ('나그네 식당' 몇 토막)
"소설 <봄바람>에는 한 소년의 첫사랑이 있고, 첫 가출이 있다. 열세살짜리 소년의 맑은 꿈이 있고, 동경이 있다. 인생의 비밀을 엿보고 싶어하며, 인간으로서 경험해야 할 것들을 조금 일찍 경험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있고, 배짱이 있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있다."(정호승, 시인)
작가 박상률의 <봄바람>은 1960년대 말 전형적인 농어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꿈과 짝사랑, 방황과 좌절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작가는 훈필이를 통해 아이들에게도 결코 어른들이 흉내낼 수 없는 드넓은 세계가 있으며, 아이들은 그 세계를 통해 보다 야무진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꼼꼼하게 들추어낸다.
■ 작품 맛보기
푸른 목장
나는 서울 아이를 볼 때마다 은주를 떠올렸다. 다시 말해 은주의 얼굴 위에 서울 아이의
얼굴을 겹쳐 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가당치 않은 욕심이지만 은주도 서울
아이처럼 서글서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은주가 그런 내 마음을 알면 몹시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였다.
서울 아이 때문에 학기초를 들뜬 채 보낸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꿈동이인 염소를 돌보
는 일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널따란 푸른 목장에서 은주와 같이 지내는 꿈을 결코 포
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꿈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기 위해서 염소를 늘 매어 놓
는 산언덕을 이미 '푸른 목장'이라고 이름까지 지어 놓고 학교가 끝나기만 하면 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언젠가 그 산은 내가 목장장이 되고 은주가 목장장 부인이 되는 푸른 목장의 터
전이 될 것이라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푸른 목장에 은주가 찾아왔다. 서울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뒷이야
기로 아이들이 수군대던 무렵이었다. 은주는 삶은 옥수수 두 개를 들고 우리의 푸른 목장에
찾아왔다.
"응, 이거"
"……."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은주가 내미는 옥수수를 받아 들고는 앞니로 베어 물었다. 알이 상
당히 딱딱했다. 사실 옥수수를 삶아 먹는 시기는 조금 지났다. 그런데도 은주가 옥수수를 삶
아 일부러 푸른 목장까지 찾아온 것은 뭔가 할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남 앞에서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생각은 남 이상으로 할 줄 안다. 은주는 다짜고짜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 애…… 서울에서 전학 온 애 말야……."
나는 은주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싶어 적당한 대답거리를 찾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그 애 참 안됐더라……. 그 애 아버지가 사업에 망해서 목매달고 죽어 뿌렸대."
"뭐라고?"
그제서야 나는 은주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왔는가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은주가
나에게 그 이야기를 굳이 들려주는 뜻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시골로 이사 왔는갑서. 그 애 엄마 고향은 우리 면이 아니고 읍내라고 하더라. 근
디 마침 삼거리 다방 자리가 나게 되어 우리 면으로 이사 오게 되었디야."
나는 은주의 이야기를 듣고 있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가 그다지 중요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그 애, 참 안됬쟈?"
은주가 그렇게 물으면서 내 표정을 살짝 살피는 눈치였다. 나는 은주가 그렇게 묻는 속뜻
을 몰랐다.
"글씨……."
나는 그렇게 밖에 대답을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은주가 묻는 말에 곧이
곧대로 대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 '글씨…….' 라고 대답한 것이다. 은주는
뭔가 할말이 더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말을 아끼는 표정이었다. 나는 괜히 안달이 났다. 그러
나 내 말주변으로는 은주와 어색하지 않게 있을 재주가 없었다. 마침내 은주가 뭔가 단단히
결심을 한 말투로 더듬더듬 물었다.
"니도, 훈필이, 니도 말이다, 서울 아이가 좋냐?"
그 말을 하고서 은주는 쑥스러운지 염소한테로 가서 괜히 염소의 등을 긁는 시늉을 했다.
나는 정말이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질문을 받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아
이가 좋은 건 사실이지만 은주에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은주 니가
그 애보다 더 좋다.' 그렇게 말할 만한 용기도 없었다. 나는 곁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어 산 아래로 냅다 던졌다. 머얼리, 힘껏.
은주도 나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주는 여전히 염소의 잔등을 쓰다듬고 있
었다. 은주는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보일 듯 말 듯 웃고선 전혀 엉뚱한 말을 했다.
"지난번에 방학책 빌려 줘서 고마웠다야."
방학책에 대한 인사는 이미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은주는 왜 새삼스럽게 그 얘기를 또 꺼
낼까? 그러나 나로선 듣기가 거북하거나 싫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산 그림자가 제법
길어져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조금씩 먹어 오고 있었다. 나는 염소를 매어 놓은 말뚝을 뽑
아 들었다.
"야, 은주야. 내려가자."
달리 할 말이 별로 없어 겨우 내려가자고 하고 말았다. 좀더 근사하고 그럴싸한 말은 없었
을까?
은주와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염소 뒤를 따라 내려왔다. 산을 다 내려와 막 큰길
에 들어섰을 때, 우리 마을 쪽에서 한 여자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
었다. 은주와 나는 거의 동시에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전거를 탄 아이는 서울 아이였다.
"야, 너희들 염소 키우니?"
서울 아이는 자전거에서 내리면서 그렇게 물었다. 은주는 얼굴이 조금 붉어지면서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그때 엉뚱하게도, 정말로 내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대답이 내 입에
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응, 나중에 은주랑 같이 목장 할라고 지금부터 연습 삼아 길러 보는디 잘될런가 모르겄
어."
"야, 멋있는 생각이다. 목장 잘되면 나도 초대해서 구경시켜 줄 거지?"
"……"
나는 내 대답이 뜻밖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 아이의 물음 또한 뜻밖이어서 뭐라고 다
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말았다. 서울 아이는 나중에 또 보자고 인사하며 여유 있게 자전거
를 몰고 면 소재지 마을 쪽으로 갔다. 자전거 짐받이엔 짚으로 엮은 달걀꾸러미 두 줄이 대
바구니에 담긴 채 실려 있었다. 나는 서울 아이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
의 자전거까지 있다는 사실까지 두 눈으로 확인해 버린 터라 서울 아이에게 물어볼 말은 영
영 없어져 버렸다.(가운데 생략)
생일 선물
나는 콩클 대회에서 서울 아이 어머니의 노래를 듣고 난 뒤부터 서울 아이에 대해 그전과
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서울아이는 처음 전학 올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명랑하고 사
근사근했다. 물어볼 말고 없고, 말을 나눠야 할 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엉뚱하
게도 콩클 대회 이후 푸른 목장에 어울리는 밀짚모자 아가씨는 은주보다 서울 아이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은주는 무뚝뚝하고, 서울 아이는 쾌활하다. 은주는 시골말을 쓰고, 서울 아이는 서울말을
쓴다. 은주는 키가 작고, 서울 아이는 키가 크다. 은주는 얼굴이 검고, 서울 아이는 얼굴이
희다. 은주는 향단이고, 서울 아이는 춘향이다.
나는 자꾸만 그렇게 은주와 서울아이를 비교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은주네 사립문 안에 꽃다발을 수도 없이 걸어 놓았는데도 은주는 그 동안 꽃에 대해
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갑자기 은주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가시나, 내가 갖다 놓은 줄 알면서도 새치름하긴.'
사립문 안쪽에 걸어 놓은 꽃다발을 내가 갖다 놓은 줄 은주가 어떻게 알리요만, 난 은주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 아이 같으면 어땠을까? 내가 갖다 놓았다는
걸 눈치 채면 바로 나에게 고맙다며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말했을까?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꾸만 서울 아이 같았으면 절대로 남의 마음을 몰라주지 않고 꼭 반응을 보였을 거라
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이 지나면서 찬이슬이 내리는 날이 많아지자, 슬슬 염소의 겨우살이 준비를 하기 시작
했다. 풀을 베어다가 말리기도 하고, 콩깍지를 말리기도 하고, 고구마를 캔 밭에서 거둔 고
구마술을 밭둑에 널어서 말리기도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집 염소는 소와는 달리
솔잎도 곧잘 먹어서 겨울에도 솔잎은 따다 줄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
하면서부터 산의 풀도 시들기 시작해 그 파랗던 산등성이가 조금씩 갈색으로 변해 갔다. 푸
른 목장에 염소를 매어 놓을 일은 없어졌지만, 은주와의 추억을 생각해 가끔씩 푸른 목장에
올랐다. 벌써 나한테도 추억이 생긴 것이다! 열세 살 자리의 가슴에도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산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들국화가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서리를 맞을수록 더 아름다워
지는 그 꽃은 과연 들의 꽃이었다. 대부분의 꽃은 봄이나 여름에 몰려 피는데 들국화는 늦
가을에 피어 더욱 빛난다. 그것도 집 울타리 안이 아니라 찬서 리를 맞으며 거친 들에 피니
더욱 야무져 보인다.
집에 돌아온 나는 손에 들고 온 들국화 다발은 내 방 앞 토방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런데
돌아서는 순간 들국화로 꽃다발을 만들어 누구에게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같
으면 선물을 줄 사람이 당연히 은주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다르다. 나도 모르게
은주보다는 서울 아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를 따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학교에선 다른 아이들 눈이 있어 내 뜻대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한가지이다 아침 일찍 그 아이가 학교에 오기
전, 삼거리 다방 앞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서울 아이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
렸다. 그 동안은 은주 때문에 미처 그 아이를 만날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사
정이 다르다. 서울 아이를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사실 푸른 목장에 어울리는 밀짚
모자 아가씨는 서울 아이다. 적오도 푸른 목장엔 서울 아이처럼 세련된 아가씨가 어울린다.
나는 저녁 숟갈을 놓자마자 내 방으로 들국화를 들고 들어가 꽃과 잎사귀를 가지런히 잘
다듬은 뒤 다발을 지어 실로 묶었다. 그런 다음 하얀 시험지로 아랫부분을 감쌌다. 방안에
두면 시들까 봐 바람이 통하는 헛간 바깥쪽 벽에 조심스럽게 걸어 둔 뒤 잠을 청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했지만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슨 이유를 대며 서울
아이에게 저 꽃다발을 줄 것인가가 걱정되었다. 방금 까진 무조건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다가 괜히 얼굴 붉힐 일이나 생기지 않을는지 왠지 망설여졌다. 또 마음 한켠에선 가는
토끼 잡으려다 잡은 토끼 놓치는 꼴이나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일기도 했다. 그렇다면 산
토끼 잡으려 애쓰지 말고 집토끼나 잘 간수해야 할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저걸 들고 은주네 집에 가 볼까? 날씨가 쌀쌀하니까 은주 고모도 마당에 나와 있지 않을 것
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금방 지워 버렸다.
'은주 고 가시나, 한번쯤 날 찾아올 때가 되었는디도 찾아오지 않다니…….'
난 자꾸만 은주를 고깝게 생각하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움 포개서 미움 있
다더니, 요즘 은주에 대한 나의 마음이 그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입 안이 깔깔하고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간밤에 뒤척이느라 잠을 깊이 자
지 못한 탓이리라. 나는 보통 때보다 훨씬 더 정성 들여 세수를 했다. 그리고선 오늘 주번이
라서 학교에 일찍 가야 한다며 어머니에게 서둘러 아침을 차려 달라고 졸랐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엔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양치질까지 했다. 굵은 소금을 잘게 빻아 만든 양치 소금을
손가락에 묻힌 뒤 이를 빡빡 문질렀다.
자, 이제 출발이다!
나는 책보를 어깨에 가로질러 단단히 맨 다음, 꽃다발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학교 가는 길에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서늘해진 아침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신 뒤 내쉬기를 몇
번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다리까지 후들거릴 정도로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학교 앞에까지 왔다. 학교 운동장에도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아직 등교하기엔 이
른 시간이었다. 나는 행에라도 아는 아이들을 만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학교 앞을 지나 면
소재지 마을로 들어설 때까지 다행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마침내 삼거리 다방 앞에 섰다. 다방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다방을 돌아 다방 안집을 기
웃거렸다.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
니 일단 부딪쳐 보자고 결심했다. 다방 안집을 들여다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조바심
이 났다.
'서울 아이가 어서 나왔으면…….'
그렇다고 큰 소시로 그 아이를 불러낼 수도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학교 가는 아이가 나를
볼까 봐 다방 뒤쪽에 몸을 잘 숨긴 뒤서울 아이가 집을 나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
렇게 1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도 집안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러나 학교 갈 시간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었으므로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엉뚱하게
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 아침 일찍 웬일이니?"
서울 아이였다.
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꽃다발을 놓칠 뻔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쪽에서 그 애가 나타
났기 때문이다. 서울 아이는 손에 개줄을 쥐고 있었다. 개가 내 발 밑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
다.
'에라, 모르겠다.'
'아니, 잘됐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이란, 시루에 켜켜로 안쳐진 떡처럼 한
꺼번에 여러 가지를 포개어 할 수도 있다는 걸 난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나 내 입에선 참
멋없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개, 데리고, 어디, 갔다, 으니?"
더듬거리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나는 서울 사람들의 말투인 '니'자를 끝에 붙여 말하고 있
었다. 서울 아이는 구김살 없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응, 메리 운동 좀 시키고 오는 길이야."
"개를……운동을……시켜?"
그냥 풀어놓으면 개 스스로 알아서 뛰어다닐 텐데 목줄 매달아서 일부러 운동을 시키다니!
이것도 서울씩인가? 그러나 그것보다도 개에게도 누렁이나 백구가 아닌, 사람 식의 이름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메리라니, 메리라니? 이 개는 분명 토종
진돗개인데 서양식으로 메리라니?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도 그렇게 미끌미끌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나는 그런 사실을 서울 아이를 통해서 배운 것이다. 하긴, 이
세상 어느것 하나 이름 없는 것이 있으랴. 살아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눈에 들어오는 것
이면 모두 저마다의 이름이 있는 법이다.
나는 마냥 망설이고 있을 수만도 없어 다짜고짜 꽃다발을 내밀었다.
"응, 이거……"
"웬 꽃이니?"
"어제 산에서 꺾어 왔어……."
끝내 '너 주려고' 라는 말은 달지못했다. 왠지 쑥스러워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
다.
"어머, 예쁘다! 이 꽃, 나주는 거니?"
"응"
"근데, 오늘이 내 생일인 줄 어떻게알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오늘이 서울 아이의 생일이라니! 나는 뭐라고 대답할말이
없었다. 내가 귀신이 아닌 바에야 오늘이 서울 아이의 생일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나는 얼렁뚱땅 둘러댔다.
"꼭 생일이라서 그런 다기보다는 꽃이 이뻐서 니 생각이……."
그 순간엔 나도 내 자신을 잘 몰랐지만, 아마 '니 생각이 나서'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얼른 돌아섰다. 그 자리에 더 서 있다간 말이 어디로튈지 모를 일이
기 때문이었다. 서울 아이가 "얘, 훈필아, 낮에 학교 끝난 뒤……." 하며 뭐라고 터라 내 이
름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그 다음 말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뒤꼭지
가 근질근질함을 느끼며 길을 되짚어 학교로 향했다. 여전히 학교 가는 길에 아이들은 없었
다. 텅 빈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가슴을 뒤로 젖히고 "야! 야! 야!"하고 크게 질렀다. 그
동안의 긴장감과 화끈거림을 넓은 운동장에 다 쏟아 내 버리기라도 하듯이. 가슴 한쪽에 말
로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 아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사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들
은 전 학년의 이름을 거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학 온 지 한학기도
되지 않은 서울 아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그날, 우리 반 머시마들의 정보에 따르면 오늘 학교가 끝나면 옆 반 가시나들은 서울 아이
의 집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정보엔 내가 서울 아이
에게 생일 선물로 준 격이 되고 만 꽃다발 얘기는 없었다. 내겐 벌써 아이들이 모르는 비밀
이 생겨 버렸다. 다른 열 세살 짜리아이들 몰래 생긴 비밀. 난 그만큼 웃자라 있었다.
서울 아이가 자기 생일이라고 자기 반 아이들을 초대한 모양인데, 은주도 거길 갔을까? 특
별히 안 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못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주
는 고모 때문에 학교 갔다 오면 곧장 집으로 가 집을 지키는 게 일과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
다. 은주 고모는 보통 땐 혼자서 히죽히죽 웃거나 뜻도 이어지지 않는 소리를 중얼거리긴
해도 일거리를 저지르진 않으므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발작을 하게 되
면 똥을 싸서 온몸에 바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울다 웃다 하다 펄펄 날뛰며 발가벗은
몸으로 집을 뛰쳐나가려 한다. 그런데 발작했을 때의 은주 고모는 기운이 항우 장사 이상이
었다. 사실 그런 고모를 어린 은주가 감당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그렇지만 최소한 발가벗은
알몸으로 집밖으로 뛰쳐나가는 것만이라도 막기 위해 은주는 늘 집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발작이 끝났을 때에는 고모의 몸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 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은주가 서울 아이의 집에 갔느냐, 가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
점심을 먹고 은주네 집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은주네 집에 들어갈 적당한 명분이
없었다. 밤 같으면 어둠을 틈타 슬며시 들어갈 수가 있는데, 낮에는 다 큰 녀석이 괜히 남의
집을 어정거리다 어른들이라도 만나면 실없는 놈으로 취급받기에 딱 알맞다. 그렇다고 해서
궁금즘을 참고 있기엔 너무 조바심이 났다. 괜히 집을 나와 마을 골목을 한 바퀴 돌았다. 그
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은주네 집 앞에 섰다. 집안이 조용했다. 사립문 안쪽
을 들여다보니 내가 전에 갖다 둔 것이 틀림없는 코스모스 꽃다발이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채 아직도 거기 있었다. 묘한 부끄러움과 서글픔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누가 볼세라 얼른 말라비틀어진 코스모스의 잔해를 집어들고 은주네 집 앞을 벗어났
다. 느낌에 은주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서울 아이의 집에 간 것이 틀림
없다. 당산나무 거리에 나와 괜스레 어정거려 보았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놀러 나
오는 아이도 없었다. 추수가 다 끝난 들녘엔 머물 곳 없는 늦가을 찬바람만 가끔씩 외로움
을 견디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길 위에고 논 위에고 산 위에고 사람은 하나도 보
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숨어들었을까?
사람이 그립다. 나는 비로소 외로움이라는 말을 나에게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열세 살
짜리들보다 웃자란 죄로 나는 외로움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껴야 했다. 나는 열세 살
의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계절의 틈에서, 그 틈 사이엔 외
로움이 있다는 걸 알아야만 했다.
사랑, 추억, 희망, 성공
사람 속에서 살지만 나는 어쩌면 사람 속에서 살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부모님, 친구들,
학교선생님, 어느 누구하고도 나는 속을 터놓고 지내지를 못한다. 이미 비밀이 많아져 버려
서 나 자신을 아무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밀이 많은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누구를 원망할 만한 건더
기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금 누구 탓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내가 사람 속에서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은주하고도 더 이상 가까워지지 못하고 서울 아이하고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어쩌면 그 가
시나들은 나 같은 놈에게 관심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에게 이렇다 저렇
다 말 한마디 없을 수 있겠는가?
특히 은주는 가을 내내 나에게 말 한마디도 없었다. 그새 내가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긴
걸까? 아니면 아이들에게 나와의 관계가 소문나는 게 싫은 걸까?
가는 배 순풍이면 오는 배 역풍이라 더니, 그 동안 은주와이 관계가 잘 풀리는가 싶었는데
지금 와선 뭔가 비비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은 한 번 좋다 한 번 나빴다 하는 걸까?
그렇다면 저번엔 뭐하러 푸른 목장에까지 찾아왔으며, 서울 아이가 같이 있는 곳에서 나중
에 자기랑 푸른 목장을 한다고 했을 때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알 수가 없었
다.
은주는 그렇다 치고 서울 아이는 왜 자기 생일날 이후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을까? 그 동안
직접 맞닥뜨린 일은 없지만 자기가 나를 만나려 했다면 얼마든지 나를 찾아올 수 있지 않았
을까? 내가 운동장 구석 느티나무 옆 화단가에 혼자 앉아 아이들 노는 걸 쳐다볼 때라든지,
내가 주번일 때 물 주전자를 들고 복도를 왔다 갔다 할 때 눈여겨보고 있다가 다른 아이들
눈을 피해 얼마든지 나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초겨울 바람이 창호 문을 흔들 정도로 쌀쌀했다. 일요일이자 마침 읍 장날이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장에 갈 준비를 하면서 나보고 손수레를 끌고 같이 가자고 했다. 어머니는 가을
걷이한 것 가운데에서 장에 갖다 낼 것이 많아 면 소재지 장보다는 장이 더 큰 읍장을 보기
로 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큰장에 가야 값을 한 푼이라도 더 쳐서 받을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참깨며 달걀이며 찹쌀이며 메밀 자루 등을 손수레에 실었다.
어머니가 뒤에서 밀긴 했지만 손수레를 끌고 시오리 길을 가는 건 힘에 부쳤다. 차가운 날
씨인데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요즘 들어 사는 재마가 없어 힘이 더 들었는지도 모른다.
장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이것저것 값을 잘 흥정해서 가지고 온 물건을 거의 다 팔아냈다.
손수레가 다 비자 어머니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동안 나는 손수레를 장터 한쪽으로 끌고 가
어머니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고무신 가게며 옷가게 등을 다니며 장을 보았다. 꽤나 시간이
지나서 어머니를 기다리는 게 지루해질 때쯤 장터를 돌아다니는 은주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얼떨결에, 아니 반가운 마음에 은주를 불러 세웠다.
"은주야!"
"……."
은주는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 뒤 말없이 내 앞으로 왔다. 나는 멋쩍어서 얼른 말을 뱉어
냈다.
"장에 낼 물건을 싣고 오느라고……."
나는 왠지 모르게 조금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은주 손엔 여자용 코고무신 한 켤레가 들려
있었다. 은주 어머니는 머리에 삼태기를 이고 장꾼들 사이를 분주히 헤치며 돌아다니고 있
었다.
"이따 집에 갈 땐 여기다 물건 싣고 같이 가."
나는 손수레를 가리키며 은주에게 '같이 가.' 에 특히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은주는 그 말
엔 대답하지 않고 입을 삐쭉 내밀며 내가 미처 짐작하지도 못한 말을 했다.
"훈필이 너, 서울 가시나랑 좋아지낸담시롱?"
나는 정말이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누가 그래?"
"피, 우리 반 가시나들은 다 안다 뭐. 니가 그 가시나 생일 땐 꽃다발도 해 주었다던디? 그
가시난 지 생일 잔치 때 니가 온다며 기다리더라. 그런데 왜 안 왔냐?"
정말 은주답지 않은 말투였다. 은주는 한번도 비아냥거리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또 이처
럼 장황하게 말을 한 적도 없었다. 나는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비로소 어렴풋이
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은주는 기어코 한마디를 더 던져 놓고 자기 어머니 쪽으로 가 버
렸다.
"내 생일엔 한번도 꽃다발을 해 주지 않았음시롱 서울 가시나한텐 새벽부터 찾아가서 꽃다
발까지 해 주고……."
일이 참 이상하게 꼬여 있었다. 서울 아이가 나에게 꽃다발을 받았다고 자기 반 가시나들
한테 자랑삼아 말해 버린 모양이었다. 옆 반 가시나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 반 머
시마들도 그 사실을 다 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 반 머시마들은 왜 나에겐 한마디
도 하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딸이 하는 식당은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건물은 낡았지만 식탁이 여남은 개 놓여 있을 정도로 실내는 넓었다. 부두가 가까워서 뜨내기 손님이 많은지 출입문 위엔 '나그네 식당'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할머니의 딸은 은주 고모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였다. 점심이 나오자, 할머니는 자기 밥그릇에 있는 밥을 내 밥그릇에 덜어 주면서 걱정스레 말했다.
"많이 먹그라. 객지에 나오면 배곯는 설움이 제일 큰 것인께."
나는 순간적으로 콧등이 시큰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밥을 다 먹고 나자, 할머니의 딸이 다짜고짜 나에게 호통치듯 말했다.
" 너, 뭣 땜시 집 나왔어? 씰데없는 생각 말고 다시 돌아가그라. 에미, 애비 속 좀 그만 썩이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할머니가 거들었다,
"에미 찾는다고 하더구먼."
그러자 할머니의 딸이 까르륵 하고 웃었다.
"고 방울만한 녀석이 거짓말도 상당하게 하네. 느이 어무니는 집에 있을 것인디 목포 바닥에서 으찌께 찾는다냐?"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딸은 나 같은 놈은 수도 없이 많이 봤다는 태도였다.
"너 몇 학년이냐? 아직 학교 댕길 나이로 보이는디, 학교나 졸업하고 집을 기어나와도 나와라. 으이구, 이 녀석!"
할머니의 딸은 기어코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나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꾹 참았다. 성깔대로 했다간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포 바닥에 있다간 언제 집으로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친 김에 서울로 가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할머니의 딸은 나에게 자기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 배로 할머니와 같이 다시 돌아가라고 윽박지르다시피했다.
이마빼기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녀석이 일찍 도시물 먹어 봐야 건달밖에 더 되겠느냐는 것이 할머니 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나는 이미 인생이 뭔지 나름대로 겪을 것 다 겪고 집을 나온 것이다. 그런데 나보고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녀석이라니!
나는 거기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서 잘 먹었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선 후닥닥 뛰쳐나왔다.
막상 나그네 식당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기차 타는 역을 물으며 걸었지만, 역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도시의 거리는 어마어마했다. 길가로 죽 늘어선 상점들, 길거리를 씽씽 달리는 차들, 그리고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
나는 조금씩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목포가 이 정도면 서울은 얼마나 더 대단할까?
나는 바지 주머니 속의 돈이 잘 있는지 수시로 만져 보면서 길을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그 길이 그 길 같았다. 발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걷고 나서야 목포역을 발견했다.
태어나서 여객선도 처음 타 봤는데 이젠 기차까지 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이제 기차 차례다!'
역사 너머로 기차가 보였다. 기차를 보자 벌써 서울에 다 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배를 탈 때처럼 표를 끊지 않고 적당히 따라 들어갈 만한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배를 탈 때처럼 공짜 차를 타야 쓸 것인디…….'
여객선과 달리 기차는 타기가 훨씬 복잡했다. 어떤 시간에 어떤 차를 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개찰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제복 입은 아저씨의 자세도 배 검표원과는 달랐다. 더구나 그 아저씨는 아까부터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나같이 '쥐방울만한, 쬐끄마한' 것들이 공짜 차를 자주 타서 그러는지도 몰랐다.
나는 대합실에 피워 놓은 난롯가에 앉아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지금까진 그래도 일이 수월하게 잘 풀렸는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난롯가에 앉아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아침부터 긴장한 채 일찍 설쳐서 그런지 엉뚱하게도 졸음까지 밀려왔다.
"야, 임마, 일어나!"
나지막하나 거친 시비조의 목소리였다. 하마터면 난로에 이마를 찧을 뻔하면서 잠을 깼다. 검게 물들인 군대 야전(野戰) 점퍼를 입은 청년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 했다. 튀느냐, 대꾸하느냐…….
청년은 깡말랐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은 더 날카로워 보였다. 역 직원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튀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의 머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도 여러 생각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걸 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나는 불과 10초도 안 될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도시에 나가면, 특히 역 주변에 불량배가 많다는 소리 정도는 도시 경험자들로부터 많이 들은 이야기이다.
가시나들은 친절하게 다가오는 아줌마를 조심하고, 머시마는 거칠게 말을 거는 청년을 조심하라!
떠났다 돌아온 이들이 들려 준 가출 요령 제1장 1조에 나오는 수칙이다.
친절한 아줌마는 틀림없이 술집 주인이고, 거친 청년은 틀림없이 껌팔이 두목 아니면 소매치기 두목이다!
나는 청년을 쳐다보는 척하다가 잽싸게 일어나서 역사 밖으로 튀어나갔다. 뒤에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앞만 보고 한참을 달렸다.
"어유, 까딱했으믄 큰일날 뻔했네."
역에서 100미터쯤 멀어진 뒤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그제서야 부르튼 발이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모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짧은 겨울 해는 이미 꼬리를 감춰, 거리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 어찌코롬 해야 되까?'
그러나 별로 뾰쪽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 서울 가는 기차를 타지 못하면 잠은 어디서 자야할지 우선 그것부터 걱정이었다. 저녁밥도 먹긴 먹어야 할 텐데, 밥을 싸게 먹을 수는 없을까?
나는 나의 재산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바지 주머니 속의 돈이 퍼뜩 떠올랐다. 어? 그런데 잡히지 않았다. 돈이 업어져 버린 것이다. 세상에! 눈앞의 길과 건물이 출렁했다.
아무래도 아까 그 야전 점퍼를 입은 청년의 짓인 것 같았다. 도시에선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당장 역으로 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청년은 틀림없이 아직도 역 근처에서 어슬렁대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서.
그들에게 잡히면 끝장이다. 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오늘 저녁을 당장 어디서 보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가출 요령 제2장 1조에 잠은 주로 역에서 자면 된다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지금 역으로 갈 수도 없다.
새삼스레 집 생각이 났다. 이어 배에서 만났던 할머니 딸 집을 떠올렸다. 그러나 내 길눈으론 그 곳을 다시 찾아갈 능력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날까지 어두워져 앞인지 뒨지 천지간을 분간할 수도 없다.
(후략)
■ 중요 지문 읽어 보기
(전략)
할머니의 딸이 하는 식당은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건물은 낡았지만 식탁이 여남은 개 놓여 있을 정도로 실내는 넓었다. 부두가 가까워서 뜨내기 손님이 많은지 출입문 위엔 '나그네 식당'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할머니의 딸은 은주 고모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였다. 점심이 나오자, 할머니는 자기 밥그릇에 있는 밥을 내 밥그릇에 덜어 주면서 걱정스레 말했다.
"많이 먹그라. 객지에 나오면 배곯는 설움이 제일 큰 것인께."
나는 순간적으로 콧등이 시큰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밥을 다 먹고 나자, 할머니의 딸이 다짜고짜 나에게 호통치듯 말했다.
" 너, 뭣 땜시 집 나왔어? 씰데없는 생각 말고 다시 돌아가그라. 에미, 애비 속 좀 그만 썩이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할머니가 거들었다,
"에미 찾는다고 하더구먼."
그러자 할머니의 딸이 까르륵 하고 웃었다.
"고 방울만한 녀석이 거짓말도 상당하게 하네. 느이 어무니는 집에 있을 것인디 목포 바닥에서 으찌께 찾는다냐?"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딸은 나 같은 놈은 수도 없이 많이 봤다는 태도였다.
"너 몇 학년이냐? 아직 학교 댕길 나이로 보이는디, 학교나 졸업하고 집을 기어나와도 나와라. 으이구, 이 녀석!"
할머니의 딸은 기어코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나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꾹 참았다. 성깔대로 했다간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포 바닥에 있다간 언제 집으로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친 김에 서울로 가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할머니의 딸은 나에게 자기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 배로 할머니와 같이 다시 돌아가라고 윽박지르다시피했다.
이마빼기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녀석이 일찍 도시물 먹어 봐야 건달밖에 더 되겠느냐는 것이 할머니 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나는 이미 인생이 뭔지 나름대로 겪을 것 다 겪고 집을 나온 것이다. 그런데 나보고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녀석이라니!
나는 거기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서 잘 먹었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선 후닥닥 뛰쳐나왔다.
막상 나그네 식당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기차 타는 역을 물으며 걸었지만, 역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도시의 거리는 어마어마했다. 길가로 죽 늘어선 상점들, 길거리를 씽씽 달리는 차들, 그리고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
나는 조금씩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목포가 이 정도면 서울은 얼마나 더 대단할까?
나는 바지 주머니 속의 돈이 잘 있는지 수시로 만져 보면서 길을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그 길이 그 길 같았다. 발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걷고 나서야 목포역을 발견했다.
태어나서 여객선도 처음 타 봤는데 이젠 기차까지 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이제 기차 차례다!'
역사 너머로 기차가 보였다. 기차를 보자 벌써 서울에 다 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배를 탈 때처럼 표를 끊지 않고 적당히 따라 들어갈 만한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배를 탈 때처럼 공짜 차를 타야 쓸 것인디…….'
여객선과 달리 기차는 타기가 훨씬 복잡했다. 어떤 시간에 어떤 차를 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개찰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제복 입은 아저씨의 자세도 배 검표원과는 달랐다. 더구나 그 아저씨는 아까부터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나같이 '쥐방울만한, 쬐끄마한' 것들이 공짜 차를 자주 타서 그러는지도 몰랐다.
나는 대합실에 피워 놓은 난롯가에 앉아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지금까진 그래도 일이 수월하게 잘 풀렸는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난롯가에 앉아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아침부터 긴장한 채 일찍 설쳐서 그런지 엉뚱하게도 졸음까지 밀려왔다.
"야, 임마, 일어나!"
나지막하나 거친 시비조의 목소리였다. 하마터면 난로에 이마를 찧을 뻔하면서 잠을 깼다. 검게 물들인 군대 야전(野戰) 점퍼를 입은 청년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 했다. 튀느냐, 대꾸하느냐…….
청년은 깡말랐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은 더 날카로워 보였다. 역 직원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튀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의 머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도 여러 생각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걸 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나는 불과 10초도 안 될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도시에 나가면, 특히 역 주변에 불량배가 많다는 소리 정도는 도시 경험자들로부터 많이 들은 이야기이다.
가시나들은 친절하게 다가오는 아줌마를 조심하고, 머시마는 거칠게 말을 거는 청년을 조심하라!
떠났다 돌아온 이들이 들려 준 가출 요령 제1장 1조에 나오는 수칙이다.
친절한 아줌마는 틀림없이 술집 주인이고, 거친 청년은 틀림없이 껌팔이 두목 아니면 소매치기 두목이다!
나는 청년을 쳐다보는 척하다가 잽싸게 일어나서 역사 밖으로 튀어나갔다. 뒤에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앞만 보고 한참을 달렸다.
"어유, 까딱했으믄 큰일날 뻔했네."
역에서 100미터쯤 멀어진 뒤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그제서야 부르튼 발이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모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짧은 겨울 해는 이미 꼬리를 감춰, 거리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 어찌코롬 해야 되까?'
그러나 별로 뾰쪽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 서울 가는 기차를 타지 못하면 잠은 어디서 자야할지 우선 그것부터 걱정이었다. 저녁밥도 먹긴 먹어야 할 텐데, 밥을 싸게 먹을 수는 없을까?
나는 나의 재산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바지 주머니 속의 돈이 퍼뜩 떠올랐다. 어? 그런데 잡히지 않았다. 돈이 업어져 버린 것이다. 세상에! 눈앞의 길과 건물이 출렁했다.
아무래도 아까 그 야전 점퍼를 입은 청년의 짓인 것 같았다. 도시에선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당장 역으로 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청년은 틀림없이 아직도 역 근처에서 어슬렁대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서.
그들에게 잡히면 끝장이다. 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오늘 저녁을 당장 어디서 보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가출 요령 제2장 1조에 잠은 주로 역에서 자면 된다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지금 역으로 갈 수도 없다.
새삼스레 집 생각이 났다. 이어 배에서 만났던 할머니 딸 집을 떠올렸다. 그러나 내 길눈으론 그 곳을 다시 찾아갈 능력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날까지 어두워져 앞인지 뒨지 천지간을 분간할 수도 없다.
(후략)
첫댓글 담아 갑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