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삶이 지겨워서' 13살적부터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는 앳된 세 청년이 들고 나온 데뷔 앨범 [Showbiz]가 대번에 대중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일약 브릿팝계의 초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TRAVIS가 그 주인공이었다면 올해는 MUSE가 뭔가 일을 내지 않을까 하는 감이 든다. 울먹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찍어낸 'Muscle Museum' 뮤직비디오는 최근 이들의 인기에 불을 댕기고 있다. 하긴 뮤즈라는 밴드명과 'Muscle Museum'이라는 타이틀은 얼마나 절묘하게 공명하고 있는가. 새로운 스타가 절실했던 브릿팝계의 정황을 미루어 볼 때 뮤즈는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잡기도 했다.
내용물을 봐도 [Showbiz]는 현 영국음악계의 트랜드를 한 눈에 보여준다.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진들은 거의 헤비한 기타록으로 헤쳐모여를 외치는 추세인데, 이는 팝/록 절충주의에서 출발한 브릿팝이 다시금 록으로 선회하고 단서로 보여 매우 흥미롭다. 아직 데뷔 앨범도 내놓지 못했지만 영국 음악지의 뜨거운 기대를 모으고 있는 TERIS도 뮤즈와 더불어 하나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록의 성분이 한층 진해졌다는 점 외에도 이들 삼 세대 브릿팝퍼들은 라디오헤드RADIOHEAD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는 공통적 모습을 보여 재미있다. 뮤즈의 경우 작년 트래비스의 논란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라디오헤드와 유사한 사운드를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혐의는 뮤즈의 보컬에 집중되는데, 확실히 창법의 차원을 떠나서 보이스 칼라 자체가 톰요크의 그것을 많이 닮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라디오헤드의 톰요크는 곡마다 어울리는 창법을 다채롭게 구사하는 편인데(VELVET GOLDMINE O.S.T.를 한 번 들어보라. 톰요크의 보컬은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다), 뮤즈의 Matthew Bellamy는 톰요크보다도 더 톰요크적인 창법을 일관되게 구사하고 있다. 불퉁하게 질러대고 가성으로 끝장보는 스타일로 앨범 전체를 불러제끼고 있는 것이다. 흐느낌의 수준은 가히 THE CURE의 스미스를 연상시킨다. 패러노이드한 격렬한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는 점에 있어서도 라디오헤드 성분은 뚜렷하다.
하지만 보컬이 누구를 흉내낸다는 차원을 떠나서 뮤즈의 음악적 색채가 현재 브릿팝씬에서는 어느 정도 고유한 입지를 가질 만하다고는 생각한다. 일단 'Muscle Museum'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듯 그 느낌이 특이하다. 첫맛을 들이기에 저항이 만만치 않아서 love or hate 식 반응을 얻기 쉽겠지만 바로 이점 덕택에 뮤즈는 골수팬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신인치고 곡쓰는 솜씨가 기특하다는 점도 이들이 가진 큰 강점이다. 요새 많은 밴드들의 신곡을 보면 어색한 흐름과 빈곤한 아이디어로 감상자를 거북하게 만드는 때가 흔한데, 뮤즈의 [Showbiz]에는 결코 그런 구석이 없다. 라디오헤드 증후군만 제거된다면 뮤즈는 단명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앨범 안으로 들어가 보면 'Sunburn'이 일단 눈길을 끈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곡은 절정으로 치달아 가는데 그 비극미는 SUEDE에 못지 않은 수준이다. 낭만적인 피아노 플레이를 적절히 배치해 곡의 구성이 깔끔하다는 점도 돋보인다. 이어지는 'Muscle Museum'은 앨범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데, 멜로트론이 만들어내는 애쓰닉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마치 공연 후 쓰레기만 널려진 서커스장을 보는 듯 황량하다. 기타 스트록과 함께 클라이막스로 달려가는 스타일은 'Creep'이 자동적으로 떠올라 실소를 자아낸다. 'Fillip'은 그 강렬한 스타일로 미루어볼 때 MANICS 쪽에 차라리 가깝지만 음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중반부의 브리지에는 스매싱 펌킨스의 흔적 또한 역력하다. Matthew Bellamy의 특이한 호흡법도 귀에 들린다. 'Falling Down' 역시 흔한 스타일이지만 높낮이가 뚜렷한 드라마틱한 전개는 역시 뮤즈답다. 그런지 리프가 전면에 부각된 'Cave'도 유의할 만한 넘버. 'Unintended'는 이들이 과연 영국산임을 확인시켜 주는 트랙인데, 록발라드로서 꽤 인기를 모을 만하다. 'Uno'는 'Muscle Museum'의 후편처럼 들린다. 앨범 발매 이전에 싱글로 분위기를 돋우던 노래.
[Showbiz]는 보컬도 쓸만하고 꽤나 노력을 하고 있는 레코드임은 분명하며, 더욱이 오늘날 씬에서 환영받을 만한 요소도 많아 보인다. 여러 모로 가능성있고 미쁜 신진 밴드가 출현했음은 분명하다. 단 라디오헤드 팬들을 위한 대체제로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이들의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지만 말이다.
PS. 마지막으로 앨범 커버 한 마디. PULP의 [This Is Hardcore]와 PLACEBO [Without You I'm Nothing] 이후로 가장 호감을 끄는 아트워크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