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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초등학교 제22회 동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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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문화생활 스크랩 단군은 비를 내리는 비들기, 대웅천황(大雄天皇)
갈매기(김임권) 추천 0 조회 80 08.10.27 13: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단군은 비를 내리는 비들기, 대웅천황(大雄天皇)

 박달나무()가 아니라 "비들기" 유화 할머니 대웅(大雄)이다

                     

 은나라 탕왕시대 찬송가가 기자조선이 마한으로 망명하여 전라도 노래, 사투리로 남아있다

 비들기소리로 비를 부르는 찬송가가 황조가에서  정읍사 백제소리에서 아리랑등 모든 한국민요 소리로 남아있다    

한국음악은 단군시대 종교음악을  신라통일로 성주푸리 후백제에서 정읍사로 사용하다 

고려 조선시대 농부가 군악 군가로 남아서 아리랑등 민요로 그역사를 확실하게 증명한다  

단군 하늘새  종교는 일본의 신사당으로 그대로 남아있고 조선시대 명나라 식민지로서  민족종교 말살로 마을 솟대만 남아있다 

 

놀기 만하는 휴일 개천절에 민족의 문화역사를 다른길로 찾아내어 제시한다     

현대판 갈릴레이 같은  처지로서 역사가 분명한 고증으로 한국미래를 밝게 한다   

 

 비들기 모양의 삼족오는 비들기 단군을 상징한 출토유물

                   비들기를 닮은 것이 온조왕의 할머니 유화의 상징유물로 보인다

 

 

 

                     3마리의 비들기와 꾀꼬리를 3신령을 모신 마을 솟대

 

금개구리 금와왕은  금개구리가 아닌 금꾀꼬리

단군왕검 건국신화는 은나라 왕조와 비슷한 연대(2300년대)이고 당시는 무당이 임금이다

 은나라 탕왕이 농사짓는 것이 국가의 흥망인데 농사의 풍년은 비를 내리게하는 것이 임금의 책임이다

단군왕검은 은나라 탕왕시대의  임금으로  비들기와  꾀꼬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큰새하늘왕 대웅천황(大雄天皇)을 말하고 있다

이 하늘에서 내려온 대웅천황(大雄天皇)은 비를 내리는 천신이다

이런 큰 하늘새를  대웅전(大雄殿)이라고 불교사찰의 문패로 비들기 이름이 남아있다

그리고 단군왕검은 석가모니의 무사로 강등시켜서    대웅전 앞의 사천왕문(四天王門)에 문지기 급으로 내려서 모셔저 있다

불교나 기독교등 쉽게 들오오지 못하고  이차돈, 김대건등 수많은 순교자 학살 같은  긴 시간 거치면서 은나라 부여 고구려 동명성왕신전 대웅전이 그대로 불교사찰의 건물로 느리게 변천된  단군왕검과  동명성왕 신당이름이다 

고구려 백제의 강국시대에 비들기 꾀꼬리 천신신당 대웅전이 당나라의 국가종교 불교를 식민지 간섭으로 통일신라에서 비들기 꾀꼬리는 밖으로 내몰리고 신전에는 석가모니를 모셨다

그런데 큰 하늘새집 이라는 대웅전 간판은 종교적 위압에 버리지 못했다

버려진 단군왕검은 마을 의 솟대에 비들기와 꾀꼬리로 남아 있다

솟대의 새가 3마리로 남은 것은  비들기와  금와 꾀꼬리, 고주몽(새끼꾀꼬리)의 3신령으로 모시기도 한다

솟대를 새대, 조탑, 오리대, 별신대로도 부른다

                                                    대웅전은 비내리는 천신  비들기 큰새집이라는 뜻 대웅전이다

 

                               사당패 들의 노래를 청나라 경극처럼 한문으로 가사를 권삼득이 가르친 함열 성불암       

                                               

석가모니는 새가 아니고 인도국 왕자이다

대웅전은 불교와는 무관한 차용된 단군 비들기의 이름이다

대웅은 그대로 환웅천왕이며 단군왕검으로 그 이름이 분명히 하늘의 새(대웅大雄)였으나 노래소리가 가장 음악적인 소리 비들기와 꾀꼬리를 선택하여 가장아름다운 예술을 지닌 민족이 되었다

웅자를  영웅에 비교하는 데 영웅(英雄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것도 삼국지 조조가 처음 한말이며 큰하늘새 대웅과는 무관하다

단군왕검은  비 내리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을 거느리고 내려왔으니 비들기 천신이 분명하다

비들기 임금은 “유화 ”부인이고   아들 고주몽은 꾀꼬리 임금인데  “왕검”으로  잘못 전해왔다

                                                                       

박달나무단(檀)의 새김음이 “비들, 박달, 버들,같은 소리다  글자가 없이  소리로 전하는 역사에서 각기 다르게 전달되었다

단군과 유화는  비들기 즉 하늘새 환웅(桓雄) 검은(玄) 비들기가  비 내리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을 거느리고 내려오니  금와(금개구리: 금꾀꼬리)가 있어서  사람되기를 원하여 결혼하여 고주몽을 낳았다

단군이야기 "호랑이와 곰"에서 호랑이는 환웅천왕이고 곰은 새웅(雄) 글자를 곰웅()글자로 잘못된 이두문자  불교신자 일연 스님 해석으로 본다

 

환웅은 새웅(雄)자를 사용하고 현재의 사찰이 모두 대웅전(大雄殿)이란 “큰 하늘새집” 이라는 말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가 아닌 해부르, 헤모수, 로 부여왕으로 금와의 아버지를 뜻한 다

석가모니 이름으로 사용하는 대웅전(大雄殿)이란 “큰 하늘새집” 이라는 말 웅을 감추기 위하여  곰으로  낮춘것으로 본다

호랑이는 짐승이 아니라  신라 화랑도로 하늘님 환웅을  말하며 조선시대 무관벼슬을 "한량" 이라고 하고 지금도 경상도 남자무당을 "화랭이"라고 말한다

모계사회라서  여자가 남자를 찾아갔고 하늘새 비들기와 꾀꼬리 신앙종교에서

고주몽은 새알로 태어났고 주몽의 아들 유리왕은 비들기 꾀꼬리 3신의 목각상 솟대 아래서 고구려 유리왕은 가출한

왕비 치희(雉姬)가 돌아오기를 황조가노래인 비들기(유화) 꾀꼬리(고주몽)소리로 찬송하며 빌었다 

신단수 단군이러는 박달나무단(檀) 글자 는 배달. 밝다. 흰색.라는 듯이 아니고 비들기 를  유화신 비들기를 표시하였는데 불교신자 일연이 석가모니, 제석등 신으로 위상을 높이려고 비들기새를 높여 당산나무 박달나무로 표시하였다

 "비들기 (鳩) "  "버들 (柳) "  "박달(檀)"은 모두 비들기 표현하는 발음으로 사용된 같은 뜻 이두문자 이다

 그러므로 신단수(神檀樹)는   박달나무가 아니라  비들기 하늘새 (大雄)를 모신 비를내리는 농사신 비들기를 모신 솟대이며 궁중에는  창경궁 비원에 마을에는 당산숲에 일본의 도리이 처럼 비들기 꾀꼬리솟대를 세웠다

                           고구려 황조가를 구상한 현대 조각작품

 조선시대에는 단군과  고구려 신화를 부정하는 명나라 식민지  모화 맹종의 시대이므로 한민족 신앙을 숨기고  물오리가 물을 가지고 화재 불을 막는다는   의미로 비하하거나 숨겨서 사용했다

비를 내리는 천신 고구려  유화의 이름  비들기를 감추고  비들기대신 물을 상징하는 물오리를 조각하여 종교제사를 지냈다

고조선의 단군은 고구려신화 비들기 유화로 고려시대 공민왕이 노국공주 환생을 위해 비들기를 그려서 빌엇다

단군왕검 신단수 당산성역이 조선시대 거의  양반 묘지로 만들었다 (정읍 산성리)

 

조선 세종때까지 박연이 비원 숲에 비들기상을 철거하였으나 세조 성종 연산군시대 유자광의 공으로 비원 숲에 비들기등  여러가지 새들을 솟대조각하여  세우고 그밑에서 천신제사  산대놀이 탈춤 처용무등 축제를 시작했다

놀이는   신앙제사가 다 끝나고  마지막에 서민 천민이 새소리 농악등으로 약간 즐기는 정도이다

 삼국지 조조의 위나라 책 동이전 한조(韓條)에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한다. 긴 장대에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귀신을 섬긴다.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마한(馬韓)을 중심으로 한 삼한에서는 매년 1∼2차에 걸쳐 각 읍별로 제주(祭主)인 천군(天君)을 선발하여, 특별 장소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다.


 소도에 영고(鈴鼓)를 단 큰 나무를 세우고 제사지내던 당시의 주술적인 민속신앙은 오늘날에도 유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솟대가 그것이다.                                                                                                                                                    

 솟대는 나무로 오리를 조각하여 길다란 나무 꼭대기에 꽂아놓는데, 그 대부분 한마리씩 세워놓지만, 3 마리의 오리를 하나의 나무에 꽂아놓거나, 3개의 솟대가 한 조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솟대를 보통 '당산(堂山)', '별신대(別神臺)'라고도 부르는데, 길다란 장대라는 뜻으로 '짐대' 또는 '진대', '용대(龍臺)'라고 하며, 액막이란 뜻으로 '수살대(守煞臺)', '추악대(推惡臺)'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지방에 따라 '당산할머니', '진떼백이 서낭님', '거릿대 장군님', '대장군 영감님' 등으로 의인화하여 부른다. 일부 지역에서는 오리 주둥이에 오리에게 먹이를 물어준다는 의미에서 물고기조각이나 나뭇가지를 걸쳐놓기도 하며, 심지어는 흰천 예단으로 감아놓는 경우도 있다.

당산은 "신당 " "신단수" 라는 준말로서 단군신당 동명왕신당으로 명칭에서 유래되고  별신대, 별스럽다 라는 말은 비들기 신대라는 이름으로 생각해 본다


 3개의 솟대가 한 조를 이루는  전북 순창군 구림면 금창는 돌무지와 함께 있다

구림면은 비들기 천신의 이름으로  백제 부흥군  동학군 남부군이  항쟁하는 군사요새지로

마지막으로 하늘에 기도하는 지역이다

 

또는 3마리의 오리가 한 조를 이루는 형식들이 전해지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를 관장하는 여신(女神)으로 믿어온 '삼신(三神)할머니'라는 관념과 상통한다. 삼신할머니는 곧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인데, 솟대가 세워진 소도(蘇塗) 또한 생명의 탄생과 관련된 것이어서 3개가 한 조를 이루는 형식은 이같은 삼위일체의 관념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와 같이 미개사회에서는 신단수가 제정의 근원지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녔었다.

우리의 창조신화에는 박달나무를 달리 신단수(神檀樹)라고도 합니다.

신단수란 비들기를신으로 모신 비들기 새 솟대 나무라는 뜻입니다.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군조선은 박달(비들기)나무 아래에서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첫 단군왕검을 박달나무 단자를 써서 단군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새 환웅(桓雄) 검은(玄) 비들기가  비 내리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비를 내리는 무당제사장입니다


비들기는  한민족 은나라 시대 탕왕이 비들기를 울게하여 기우제를 제사하고 새를 사냥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비들기 나라 단국(檀國)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배달(倍達 ;두배통달)민족이라는 한문으로 억지 표기했다

 

 

 비내리는 천신 비들기  한민족 한류 소리를 이루게 한 근본이다

중국은  아악으로 천둥소리를 천신으로 모신다

 

유교 종교적 상식으로 우리말 비들기를 버들(유화)나무나 배달이란 고상한 이름으로 바꾸었다

삼족오(삼족烏)와 세발솟(三足鼎) 모두 1비들기(유화) 2꾀꼬리(금와) 3꾀꼬리새끼(고주몽) 3신령인데 이런 3신을 다리만 3개로 붙이든지 당산의 솟대, 별신대, 신단수에서 3개의 새를 조각한 오리 솟대로 남아있다

이를 "짐대" 라고도  하는데 짐대는 임금의 뜻 짐(朕)이거나  또는 짐승이란 말로 새를 모시는 솟대를 새대 조탑으로 말하기도한다

 

공자의 학문을 독재정치에 적합하게 창조한 자가  몽고에게 망한 송나라 주희 즉 주자이다

명나라 시조 주원장은 송나라 주희  후손이다  명나라는 이런  유교를 이용 명을 통치하고 조선 통치에 유교를 강요하여 고구려를 상징하는 비들기를 물오리로 화재막이로  숨겨 계승되어 있다

고개마다 박달재, 빗재, 새재, 조령, 매봉, 소리재, 소단재로 비슷한 이름만 전한다

 불교 사찰마다 일주문 건축은  비들기 모양과 색이 같다

일주문은 비들기를 모시는 고구려시대 기와 없는 건물

 

 

일본의 단군신당종교격인  일본 시조신 신사당에는 이런 솟대 (큰 하늘새()가 내려앉는 일주문)

 

 아래에 기존 학설의 단군신화를 아래에 소개한다  비교하기 바란다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의 산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 일렀다.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맡아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때마침,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이 때, 신(神)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서 먹었다. 삼칠일(三七日) 동안 몸을 삼가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범은 능히 몸을 삼가지 못했으므로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자기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檀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빌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웅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다.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조선)이라 일컬었다. 또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다. 그 곳을 또는 궁(弓) ― 혹은 방(方) ― 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한다. 그는 일천오백 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일천구백여덟이었다.


  권희덕 notany3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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