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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말읍(葛末邑)
철원군의 지역으로서 조선 정조 2년(1778년 10월) 갈종면(葛宗面)으로 편재되어 서자곡리(西自谷里), 눌치리(訥稚里), 지습포리(池濕浦里), 용선리(龍仙里), 풍전역리(豊田驛里), 지혜동리(知慧洞里), 상사와리(上絲臥里), 하사와리(下絲臥里) , 소후리 (所厚里) ,동막리(東幕里), 갈고개리(葛古介里)의 1)개 동리였던 것이 조선 제26대 고종 32(1895)에 갈말면(葛末面)으로 개편되면서 상사동막(上絲東幕), 내대(內垈), 토성(土城), 지혜(芝慧), 문현(文峴), 군탄(軍炭)의 7개 리를 관할하다가 일제하인 1914년군, 면 폐합에 따라 상사(上絲) , 동막(東幕), 내대(內垈) , 토성(土城) ,문혜(文惠) , 군탄(軍炭), 지포(芝浦)의 7개 리로 개편하였다. 해방후 38°선 이북지역으로 1545년부터 1950년까지 공산치하에있다가 6․25동란때 전선의 북상과 함께 남하 피난했던 주민들이 향리를 찾아 왔다가 멈춰 사는 실향민들의 집결지가 바로 갈말면이다. 1954년 4월 7일부터 면내의 남쪽 일부지역에 주민이 정착하였으며 군정하에 있다가 그 해 법률 제350호(1954. 10. 21)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 공포에 따라 11월 15일 행정권이 민정으로 이양되었으며 동막리, 상사리 전 지역과 토성리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 지역이 입주하게 되었으며 1959년 10월 21일에는 상사리의 일부지역에도 입주하게 되었다. 1959년에 지포리(芝浦里)를 분할,강포(江浦), 신철원(新鐵原)의 2개 리로 토성리(土城里)를 분할,지경리(地境里)를 신설하여 10개 리가 되었다. 1972년 12월 28일 법률 제 2395호에 의거 전 평강군 남면 정연리가 철원군 갈말면에 편입되었으며 1971년 12월 10일 120세대가 정연리에 재건촌을 건립 입주하였다. 1979년 5윌 1일 대통령령 제9490호에 의거 갈말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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