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바(각설이 타령의 후반귀에서 장단구실을 하는 의성어)는 1981년 당시 일로읍 공회당 인의예술회를 통해 문화 활동을 해오던 이고장 출신 김시라(본명 김천동1945.12.1~2001.2.8 시인,극작가)의 각색, 연출과 정규수(1대 품바)출연으로 시작되었다. 일로읍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품바 발상지에 기념비(2000년1월1일)를 세웠다.
* 김시라는 전남 무안 일로에서 출생하여 한영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66년 시 <오 자네 왔는가>를 발표하였고, 1975년부터 1980년 까지 고향 무안에서 농사를 짓고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시를 쓰는 한편,1976년 에는 인의예술회를 창립해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참혹성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때부터 연극에 뛰어들어 각설이 타령을 기초로 한 민족 1인극 <품바>를 만들어 이듬해 일로읍 공회당에서 지역민을 상대로 공연하였다. 1983년 무대를 서울로 옮긴 뒤에도 <품바>를 계속 공연하면서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민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한때 공연 내용을 문제삼은 당국에 의해 해외 공연이 금지되기도 하였지만, 2003년까지 총 4500회의 공연을 가질 정도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
극단 가가 창단대표, 소극장 왕과 시 대표, 가가마당 강강술래 대표, 국민시 생활운동 벽시 동인회 및 상황문학회 창립 회장을 지냈고, 한민방언시학회와 한민족 방언연극제 조직위원회를 창립 발조 시켰다. 1996년에는 연극 <품바>가 한국 연극 사상 최장기 공연으로 인정되어 <한국기네스북>에 수록되었고, 이듬해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와 일본 순회공연을 가졌다. 저서에 희곡집 <품바/꽃관/ 피터교수>, 소설 <품바시대>상 하, <품바타령집>, 방언시집 <오 자네 왔는가>등이 있으며 한국백상예술대상특별상(1988), 한국기독교문화대상(1997) 등을 수상했다.
나와 김시라형은 같은 고향이다. 생전에 만나 뵌 적은 없다.
|
행복한 시인되기
최창일
빛을 일으키는 새벽을 향하여 기도하라.
행복한 언어를 만드는 시인으로 살기 위하여
봄이 오면 봄비가 고여 있고
겨울 가면 눈 녹은 맑은 물이
가득 고여 흐르듯이
마음에 품는 것마다
밝고 행복하여라.
행복을 향하여 웃음을 던지고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모든 것을 지닌 것 보다, 지금이 행복함이라.
먼 산을 올라 소리 지름이
찬란한 별들을 바라봄도 축복임을 깨달아라.
마음에 사랑의 집이 있으면
꽃밭에 꽃이 피어 있음이요.
행복을 모종하는 사람이 되리라
희망을 모종하는 사람이 되리라
새해, 이 땅의 시인이여
사랑이 감기운 언어의 실타래를 풀어 헤치고
국수 가락이 나옴같이
행복한 언어 가락이 뽑혀 나오거라
장미 같이 아름다운 언어의 강물이 되어라
가시에도 향기가 날리운 언어가 되어라.
깨끗한 정신의 붓끗
카랑카랑한 기침소리가 묻어나는 시인이여.
각설이를 위한 타령
-고 김시라 시인을 추모하며
이오장
찌그러진 밥그릇 허리춤에 매달고
월령가에 발맞추는 아침거리가
왜 이렇게 어둡고 무거우냐.
대문 걸어놓고 돌아앉은 사람들아
귀 열고 이내 말 들어 보소
춘삼월 낳았다고 사는 길이 봄날이고
오곡이 풍성할 때 쌓아놓고 태어나면
한평생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던가.
우리 부모 날 낳을 때
온갖 꽃 만발하고 절간공양 지극했어도
다리 밑 잠자리에 옷 한 벌 남았구나.
바가지 구박하며 등 돌리는 사람들아
그대들 밥그릇은 몇 개나 된다던가.
그릇 하나로 한세상 살아가며
남의 것 탐하지 않고 궂은 일 도맡아 하는
무지렁이 등허리에 대못 박지 마소
하루 이틀 굶어도 담 넘지 않는다네.
잘 산다고 들어앉아 헛기침하는 사람들아
우리네 살아가며 웃을 일만 있겠는가.
기와집에 고기반찬 날마다 배불러도
내일 아침 알 수 없는 청맹과니 세상사
없다고 괄시 말고 더럽다고 침 밷지 마소
오늘도 빈 그릇 들고 거리를 헤매지만
내일은 언제나 웃고 사는 우리 거라네.
그대 시간은 몇 시인가
이오장
지금은 몇 시일까
낙엽 쌓인 거리는 햇살 걷히고
시계바늘은 마냥 헛돈다.
걷고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그 누가 어지럽게 돌려대는지
한 가닥 줄 잡지 못했다.
팽팽하게 태엽을 감고
구두끈 질끈 묶고 종소리 기다려도
언제나 한걸음 늦어버리는 출발
등 뒤의 박수소리만 들어야 하는지.
사방으로 뻗은 갈래길에
스쳐가는 걸음들 따라
숨 가쁘게 뛰다가 쉴 곳을 찾는다.
이제 대관절 몇 바퀴나 남았는지
머리끈 동여매도 눈앞은 뿌옇기만 하다.
그대 시간은 지금 몇 시인가
헛도는 내 시계바늘
오늘도 시간은 맞질 않는다.
깨소금 만드는 아내
지창영
빈곤한 시간을
잘근잘근 부순다.
무심한 남편에게 항의하는지
아내는 깨를 빻는다.
밤 공기를 몰고 온
남루한 외투에 배어드는
고소한 내음새
텅 빈 밥상이 부끄러운지
비빔밥을 만들려 한다며
아내는 수줍게 고개 숙인다.
자그마한 공이가
조근조근 드나드는 절구통 속에서
무수한 깨알들이 재잘거린다.
안에는 깨소금 밖에는 싸락눈
냉기 서렸던 외투 깃에
어느덧 물방울이 맺힌다.
홍매화에게
유회숙
톡톡 볼가진 봉오리마다
설익은 열기 살가운 사춘기 무렵.
이쁘장한 얼굴에 여드름투성이
친구 이름 가물가물한데.
좁다란 골목길 '동네슈퍼' 옆집
얼추 자란 홍매화 나무 가쟁이.
담 너머로 무슨 꿍꿍인지
수업시간 혼쭐난 친구야.
괜스레 마음 쓰이는 요 며칠 사이
금방이라도 '누구야' 부를까
뒤돌아 봐지네, 자꾸만.
푸른 달빛
-마흔에 길 떠난 친구를 추모하며
정 희
무명초 끄나풀에 매달려
어둠으로 떠나가는 나뭇잎
황톳길 부여안고 달빛에
떨어지지 않는 걸음이 새벽별에 눈물겹다.
아린 가슴으로 보듬고,
바라보아야 하는 하늘이
유난히도 아프다.
꽃길 밟으며 걸어가라.
고통을 풀고 묻어둔 달빛이
바다에 잠들 때까지...
바람으로 멀리 간 친구
흥태는 마흔에 푸른 별이 되었다.
황노인과 황소
오정수
와우산자락 다랭이 논빼미에
묻혀 사는 황노인.
간밤에 내린 비가 하 반가워
새벽 잰걸음으로 달려왔다네.
아들은 돈 벌러 대처 나가고
딸내미는 소식 끊긴 지 오랜데.
평생 대처 구경 한번 못했지만
가기만 하면 다시 오지 않은 자식을.
내 아비도 이 논 일구다 저 언덕에 묻혔고
내 자리는 바로 그 앞이라고
가리키는 옹이 박힌 손마디.
산그늘이 길게 이어지자
대를 이어 함께 산다는
늙은 황소 눈망울에
저녁노을이 어리네.
고분벽화
-무용총 수렵도
송선애
무덤 속의 벽화에는
활들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은
죽음의 순간을 말하고 있었다.
사력을 다해 달아나는 야수 뒤로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손
그 손끝에서 날아가는 살촉이
바람을 가르며 울고 있었다.
사냥이 끝나고
말발굽 소리 멈추면
바람도 달빛도 풀잎을 연주하고
살육의 활은 가야금 줄이 된다.
사량도(島)
박기동
먼 산 잔잔한 그리움으로 다가와
푸르디푸른 품안에서 길을 잃는다.
만남은 만남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섬
새벽어둠을 깨워
산허리 옹골차게 박혀 있는
솔 바위 이슬이거나
사시사철 솔잎 되어 기다리리.
만남은 저 산
설악 같이 다가와
바다에 떠 있는 사량도(島)
수없이 뒤척이는 마음 한 곳에
섬 하나 생기는 일
만남은 그저 그런 것이 아니다.
공친 날
이병훈
일기예보를 듣고 단단히 무장을 하였다.
쇠꼬챙이 같은 칼바람도 한파를 견딜 수가 없는지
헐떡거리는 가슴속으로 자꾸만 파고든다.
추운 날일수록 빨리 서둘러야한다.
만약 허탕이라도 친다면
마땅히 웅크릴 곳도 없을 터이니,
엄동설한에는 모닥불 둘레만 대목이다.
빈손들이 화력이라도 거머쥐느라 분주하다.
늙은 티가 날까봐 억지로 가슴을 편다.
팔려가지 못하면 냉동실보다 추운 날인데도
오뉴월 좌판대 생선토막보다 빨리 상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면
제 뼈라도 깎아야 하는 하루.
웅성거리던 그림자들
온기 잃은 불씨처럼 사그라져 간다.
식은 재위에 발자국 무겁게 찍어 놓고……
가로등과 달맞이꽃
최연숙
서녘 하늘에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면
대문 앞 가로등에 이끌리어
달맞이꽃으로 피어나네.
불어오는 미풍에 깜박이더니
어둠 속에서 헤매이다
자유 찾아 남쪽으로 떠나며
산 넘고 넘었네.
빛을 삼킨 골목길 더듬거리다가
담벼락에 부딪칠 때 마다
시간은 정지된 듯 싶었고
내 발걸음만 비추던 가로등빛
온 동네를 환하게 밝히어
골목마다 무수히 피어나고 있네.
밤이 깊어지고 더욱 또렸해지는 자태로
향기 피어올려 새벽을 밝히네.
불타버린 자리에 서서
최혜숙
아직도 피어오르는 연기
타다만 운동화 한 짝
저만큼 나동그라져 있다.
건너 편 수퍼 앞
길바닥에 앉아 있는 사내
말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드러난 맨발
한 쪽 신발이 없다.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두 아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고
손안에 움켜진 줄 알았던 빛
어느새 빠져나가
빈손엔 어둠뿐이다.
물끄러미 어둠 속을 바라보다
일어서서 길을 건넌다.
신호등이 바뀌고
사람들은 바삐 지나가고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
오래도록 혼자서 비척거리며 걸어간다.
어느 공원의 한 나절
안중득
출렁이는 도시
공원의 어둑한 모퉁이에
피어난 꽃들이 안개를 쓸어내고
비둘기똥 말라붙은 긴 의자에
노인의 젖은 눈빛이 흐리다.
하릴없이 누워있는 이
무거운 짐 등에 얹힌 듯
습한 몸뚱어리에 곰팡이꽃 슬고
비어있는 소주병 속에
길을 떠도는 가족들
휴지를 줍는 이가 빈 병을 거두어 간다.
발자국 쌓이는 공원
쪼르르 엄마 따르는 세발 자전거가
노인의 지팡이 앞에 멈춰서고
모이 한 웅큼에 모여드는 비둘기 떼
금세 공원은 싱그러운 바람이 인다.
한 나절 지나
공원을 벗어나 미끄러져 나가는 지팡이
뒤를 따르는 세발 자전거에서
떨어진 꽃씨 몇 알, 새싹이 돋는 소리
갑자기 소나기 한 차례 지나가고
햇살 퍼지면서
꽃 피웠던 나무가 열매를 달고
도시 저 켠으로 걸어간다.
金詩羅 詩人 5주기 추모 특집
품바 경제학 김 시 라 21C의 꿈이 모자라오 오늘밤은 견딜 수 없소.
神의 공식적 행동 원리는 인간의 詩적 분열에서 비롯되오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차이는 비인격적 기술상의 문제임이 또한 견딜 수 없소.
인류의 5/10는 종교적 절망하는 안이함과 칸딘스키의 가변적 추상 속에 살며 5/10는 대답이 없소.
꿈과 사랑이 없는 곳엔 지나친 존재나 떨어진 운석이 있을 뿐 진실한 존재에는 시간이 없소.
시간은 인류는 한가족이라는 유대감에서 벗어나 인류는 한사람이라는 일체감을 조성하는 데만 필요할 뿐이오.
|
지금은 번성한 종교일수록 더욱 더 악마의 편이오 자유 의지에 의한 모든 상상력을 봉쇄해 버리고 조재나 시간을 파멸시키려 드오 신은 혐오와 저주에 싸여 있기 때문에 부정처럼 보이오.
뒷산에 늑대야 모든 것은 인간과 아무 상관이 없단다. 아무리 서둘러 詩를 써 보아도 유토피아는 고사하고 플랙토피아의 가망도 없구나.
내 자신이 왜 이리 하찮고 더러우며 비겁한가 나의 연극은 매양 이 모양인가 뒷산의 늑대야 나의 모든 것을 물어다 처먹어라 먹기 싫거든 갈기갈기 찢어나버려라 최후의 노래는 없단다.
오늘 아침도 정확한 가정을 내릴 수 있는 전문은 “안된다, 없다, 못핀다 따위는 꽤 어려운 학문임”이것뿐이다. |
허나 우리 품바경제학에서는 자유ㆍ사랑ㆍ평화에 관한 한 감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음이라 기술되어 있으나 오늘도 날씨는 무덥고 도처엔 파리떼만 웅성거리는데 세상은 너무 배부르고 채워진 술잔에는 파도 한번 일렁이지 않는다. |
오~ 자네 왔능가! 김 시 라 오~ 자네 왔능가! 이 무정헌 사람아.
그래, 청풍(淸風)에 날려 왔나 현학(玄鶴)을 타고 왔나.
자넨 묵(墨)이나 갈게 난 자우차(慈雨茶)끓임세.
|
달과 詩人 김 시 라 이백(李白)은 달을 몹시도 사랑했네.
온 강물을 먹(墨)물 삼아
달의 온 몸에 시(詩)를 쓰는 게 소원이었지.
강물에서 미역감은 보름달을 더욱 사랑해
껴안으려 뛰어든지 천년이 지난 후 이제 알았네.
달의 알몸에 검게 보이는 부분이 그가 써넣은 진한 연시(戀詩)때문인 것을 |
모깃불에 달 끄스릴라 김 시 라 노~란 달빛이 안개 낀 산마을을 폭포수가 쏟아지듯 내리고 집집 마당마다 피어나는 정겨운 이야기들이 싱싱한 물고기가 되어 그 물줄기를 거슬러올라 월궁의 항아에게 나들이 가는 한여름 밤 동네 처녀 총각들이 멍석에 모여 앉아 처녀들은 수양버들가지를 타고 내리는 달빛을 함지박에 담아 참외와 수박을 씻으며 총각들이 불어대는 단소가락에 맞춘 간드러진 노랫소리가 어울어지고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수밀도마냥 금방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보름달이 우리들의 즐거운 이야기에 심취하여 잠 자리에 들려는 과년한 처녀의 알몸을 하고 울가 버드나무 등걸에 누을 즈음! 갓 찐 옥수수와 손수 만드신 콩설기를 가지고 나오시던 어머님이 연기만 피어오르던 모깃불더미에 불이 확! 타오르자 “얘들아!불 좀 꺼라! 모깃불에 달 끄스릴라!” 그 말씀을 반기는 처녀 총각들의 웃음소리가 가늘한 산마을을 느린 황소걸음으로 빠져 나간다. |
자네 맴씨보다야 더 곱것능가! 김 시 라 여보게! 오늘따라 황혼의 꽃구름이 왜 이리 곱당가? 이 사람아! 아무리 곱기로서니 자네 맴씨보다야 더 곱것능가!
글메! 오늘 모처럼 낚시를 나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地球를 낚었으니 쇠주나 댓병으로 너덧궤짝 가져오게 이놈 낚느라 땀 말깨나 흘렸네.
허! 쾌사 중 쾌사네 은하수로 담근 은하주(銀河酒)를 차고 갈 테니 매운탕이나 잘 끓여놓게 그란디, 그놈의 괴기가 오염이 심해 그냥 묵어도 될랑가 모르것네. |
사 랑 김 시 라 물드네! 금빛 노을이 꽃피네! 은빛 물살이
기러기 알을 품던 영산강변의 그 찬연한 입맞춤을 영 참을 수 없어
하늘을 뛰어가고 바다를 뛰어가고
노을을 노을에서 불러보곤 한다
눈물방울이 진주가 된 그 이름을!
|
파랑새 김 시 라 참! 내 뜰엘랑 어저껜 눈깨비 퍼렁이더니
오늘 아침 바람기 띤 파랑새 한 마리가 “꽃분 사러 나들이 가는 달님의 황금마차를 보았노라!”고 해맑은 나래를 접고 간 뒤
오~메! 이제 보닌께 매화송이 맺혔구려.
|
님 김 시 라 마냥 맘 속일랑 붉은 댕기 치렁치렁 원앙금 긴 긴정을 수 놓아 펼쳐두고 뜰 안 매화 향기 입 속에 품었다가 청마소리 들리거던 가얏고에 실을래라.
|
나는 무엇으로 웃는가 김 시 라 나는 공식이나 통계표를 정말 싫어한다 논리적인 정의는 더욱 싫어한다 계산은 하지만 숫자적 동물임을 더욱더 싫어한다.
그럼, 나비등이나 타고 노는 장자라면 어떨까 자신의 머리칼 속에 둥지를 만들어 지구라는 알을 순수이성으로 부화시키려는 칸트라면 어떨까.
나는 노란꽃으로 비어나는 초저녁의 별들을 음표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꿈을 꾸고 지는 꽃이 서러워 한 방울의 눈물 같은 詩를 짓고 눈 내리는 겨울 밤 골목 청소부들과 모닥불 가에 소주 한 잔 부어놓고 지난 삶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팀이 적시안타를 치고 뭐, 이런 것들 때문에 나는 오늘도 웃는다.
꼭 웃어야할 또 다른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가 해와 달을 두 바퀴로 한 새 자전거를 타고 우주여행을 떠나야 하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시는 수고를 또 하셔야 하는가. |
나는 오늘 여기 있는 것만으로 웃는다 그러나 이 안에 진실과 사랑이 없다면 나의 삶은 한낱 통계표의 기타 등등에 속할 뿐이다.
|
우리 아버지 김 시 라 사람 좋아허시는 우리 아버님 오늘은 동냥나온 걸인들을 안방으로 불러 집안 식구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한 후 “우리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배우고 닦음은 어떠한 방법으로 베풂이 가장 효과적이고 즐거움인가를 알기 위함 뿐이며,” 걸인들을 사립 밖까지 정중하게 배웅하시고 “하늘에 사는 천사가 죄를 지어 하나님께서 날개를 떼고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보낼 적 자신들은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인간들에게 베푸는 연습을 시키는 일이 유일한 사명인 저 고귀한 분들이 날개 없는 천사 들인께 항상 하늘 대하듯 해야 후분치레가 있는 벱이다” 사립에 문패대신“오~자네 왔능가!”란 현판을 걸어 두고 오늘도 나그네건 엿장수건 반기는디.
|
머시 꺽정인가! 김 시 라 여보게! 먼 고북(苦北)이 태남(笞南)같은가 그리 곱던 얼굴이 한 방울 눈물처럼 보이네
아직 자네의 꿈 만큼 하늘이 있고 사랑만큼 은총이 있다는디 대체, 머시 꺽정인가!
달이 뜨면 님과 함께! 해가 뜨면 벗과 함께! 어둠이 오면? 별빛으로 모이면 되제!
우리가 누군가, 하늘이 낸 한민족이 아닌가
|
당신을 생각하면 눈시울에 눈물이 먼저 돕니다 김 시 라
당신을 생각하면 눈시울에 눈물이 먼저 돕니다 아마도 진실이란 눈물과도 같은 것인가보군요 파아란 하늘과 흰 구름을 그리도 좋아하시던 당신이 〔저 하늘을 닮자! 저 하늘을 닮자!〕고 외치다 빨간 동백꽃 같은 피를 토하고 녹두장군처럼 떠나갔던 당신이 돌아온다면 이 눈물 많은 소저는 어떻게 당신을 맞이할까요 당신이 오신다면〔사립문에서 광화문까지〕 문이란 문은 모두 활짝 열고 기다리겠어요. 설령 때 아닌 설한풍이 몰아쳐도 폭우가 쏟아져도 절대 문을 닫지 않겠어요 몸져 눕는것은 차라리 원했던 바이니까요 당신이 본래의 건장하고 활기찬 발걸음으로 우리 뜰에 들어서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만 돌아와 이 뜰을 가꾼다면 그 때 우리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 〔우리의 시인은 훌륭했소! 우리의 가족은 강했구료! 우리의 이웃은 의로웠습니다〕라는 신명굿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
지금도 우리의 뜰에는 당신을 사랑했던 시인들이 당신을 맞을 채비에 여념이 없다오.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그 시인들이 흘렸던 눈물이 〔당신이 오시던날!〕방긋! 방긋! 꽃으로 피게하려는 그리움에 부풀어 있다오 당신이 정말 보고 싶군요 당신이 동아만 온다면 꼬옥! 부둥켜안고 천년이라도 울고 싶은게 지금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신이여! 나의 이 간절한 소청을 거두어 주소서 밖에는 아직도 바람 끝이 차갑습니다. 꽃샘 추위라면 좋겠군요.
|
개나리꽃은 웃고 홍도화는 울고 김 시 라 울가에는 내 누이 사춘기 설레임 같은 진노란 개나리꽃이 살포시 웃고
방안에선 애끓은 임방울의 ‘쑥대머리’가 사랑(舍廊) 앞 홍도화(紅島花)마냥 피를 토하듯 울고
|
반 달 김 시 라 임진강 물 위에 외롭게 떠 있는 반달! 바라보니
참았던 눈물이 한반도의 뺨 위에 적시네
다른 반달도 한 몸으로 있건만
이 밤! 님 찾는 백호(白虎)만 슬피 우네.
|
‘품바’ 해설
천국의 메시지
최 은 하
천사! 날개 없는 천사!
품바를 보고 있노라면 사설 마디마디마다 저 멀리 천국에서 들려오는 완성자의 메시지로 들려온다. 내가 크리스찬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金詩羅, 그의 집과 사무실을 겸한 안국동 뒷골목 초라한 방엔 예수님의 사진 밑에 품바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여기에서 나는 품바와 예수님 이 상통하고 있음을 느낀다.
“천국은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며, 가장 낮은 자세로 낮은 자를 돌보면서 가야한다”는 완성자의 진리 말씀을 품바를 통해 그는 들려주고 있다. 또한 그는 왜 걸인을 ‘천사’, ‘날개 없는 천사’라 했는가를 이야기한다.
“천국에 사는 천사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천사의 날개를 떼고 인간 세상으로 보내 죄업을 닦고 오게 했는데, 그들이 바로 걸인이다. 허기진 배나 겨우 채우고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잠자리면 만족하여야 했고, 경조사를 두루 찾아다니며 구걸을 함으로써, 인간에게 어떠한 경우에건 ‘베푸는 연습’을 시켰으니 그것이 바로 하늘에서 받은 걸인들의 사명이다.”
이제 그의 나이 40세, 모세가 뜻을 세운 나이다. 품바시대, 천사시대를 외칠 나이도 된 것이다.
(소 설 ‘품바시대’上 - 1987.12.20)
❁ 김시라(金詩羅) 약력
4278(1945)년 12월 25일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2001.2.8.오전8:50 별세 )무안 <개산재 녹음詩會>의 회원이셨던 조부님(金永會)과 늘 漢詩를 지으시던 한학자 부친(金斗星)의 영향으로 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고교시절 조지훈 선생님의 “僧舞”<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라는 詩句를 접하고 詩人으로 뜻을 품게 되었다. 19세때 죽마지우 정규철군과 습작을 시작한 후 21세때 집안의 가훈인 <오~자네 왔능가!>를 詩題로 첫 詩作을 하였다. 한마을의 정규철군의 전사(당시24세)와 선배이신 정영래 시인(당시23세)의 절필은 두분의 몫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다가와 그는 시혼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시 狀況詩 40여편이 분실된 후 시민들을 위로하고자 만든 연극<품바>등의 바쁜 공연 일정으로 詩 발표를 미루어 오다가, 1992년<상황문학회>와 1993년<한민족 방언시학회> <벽시동인>등을 동료문인들과 조직하였고 1982년<미족과 문학>으로 문단에 나온 후 <우리문학>지를 시발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30여년간 집필한 400여편의 詩를 간추린 150여편을 방언시집<오~자네 왔능가!>, 상황시집<머시 꺽정인가!>, 詩民시집<형이중학/形而中學 >등 3권의 시집으로 나누어 수록, 출간하였다.
근래에는 國民詩生活운동의 하나로 詩의 대중화를 위하여 시극(詩劇), 시회(詩會)등을 준비 중이다.
가족으로 부인 박정재(연출가,배우)님과 자제 현재(18세), 추리(16세), 현서(13세)를 둠.
■ 다시 찾아 읽는 글 (수필)
나의 애송시(愛誦詩)
법 정
심심 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청마(靑馬)유치환(柳致環)의 <심산(深山)>이라는 시다. 시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읽을 때마나 내 생활의 영역에 탄력을 주는 이런 언어의 결정(結晶)을 나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말년을 어떻게 회향(回向)할까를 생각했다. 새파란 주제에 벌써부터 말년의 일이냐고 탓할지 모르지만, 순간에서 영원을 살려는 것이 생명현상이 아니겠는가. 어떤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를 보다 풍성하게 가꾸어주는 수가 있다. <심산>은 내게 상상의 날개를 주어 구만리장천을 날게 한다.
할 일 좀 해놓고 나서는 세간적인 탈을 훨훨 벗어버리고 내 식대로 살고 싶다. 어디에도 거리낄 것 없이 홀가분하게 정말 알짜로 살고 싶다.
언젠가 서투른 붓글씨로 <심산>을 써서 머리맡에 붙여 놓았더니 한 벗이 그걸 보고, 왜 하필이면 궁상맞게 이를 잡느냐는 것이었다. 할 일이 없으니 양지 바른 바위에 앉아 이나 잡을밖에 있느냐고 했지만, 그런 경지에서 과연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물론 불가에서는 조그마한 미물이라도 살생을 금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저쪽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 끊어지는 일이니까.
각설, 주리면 가지 끝에 열매나 따 먹고 곤하면 바위 아래 풀집에서 잠이 든다. 새삼스레 더 배우고 익힐 것도 없다. 더러는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안개에 가린 하계를 굽어본다. 바위틈에서 솟는 샘물을 길어다 차를 달인다. 다로(茶爐) 곁에서 사슴이 한 쌍 졸고 있다. 흥이 나면 노래나 읊을까? 낭랑한 노랫소리를 들으면 학이 내려와 너울너울 춤을 추리라.
인적이 미치지 않은 심산에서는 거울이 소용없다. 둘레의 모든 것이 내 얼굴이요 모습일 테니까.
일력(日曆)도 필요 없다. 시간 밖에서 살 테니까.
혼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얽어매지 못할 것이다.
홀로 있다는 것은 순수한 내가 있는 것. 자유는 홀로 있음을 뜻한다.
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어디에도 거리낄 것 없이 산울림 영감처럼 살고 싶네.
태고의 정적 속에서 산신령처럼 무료히 지내고 싶네.
(女性東亞, 197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