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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야기
# 아래 말들은 시를 쓰면서도 제대로 시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시작이 되고 있는 시인들을 상대로 시간을 갖고자 한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고자 하는 시학도와 일반 독자들에게 몇 가지 시 읽기와 시 쓰기의 길잡이가 될 수있는 시학지식을 예시를 통하여 설명해보고자 한 시학 입문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감상하는 데 필수적인 지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시가 무엇이고, 시는 어떻게 쓰여지고, 시인은 어떤 자질의 사람이어야 하고, 시의 운, 리듬, 이미지, 비유는 무엇인가 등 시학의 초보적인 기초지식에 국한시켜 시들을 분석하고 논의 하는데 여기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시인의 감정이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그 정신은 입김 서린 거울처럼 흐려서 판단력을 상실하여 오히려 사물을 주관적으로 개념화하게 된다. 센티멘털한 시나 개념시, 혹은 웅변조의 시 등은 모두 감정에 이끌려 쓴 졸렬한 시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 아래에서 詩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詩 이야기
ㅁ잘 쓴 시와 못 쓴 시
1. 서론: 시에서 감정은 무엇인가
시는 감정을 서술하고 감정을 쏟아내는 글이다. 즉 시가 감정의 표현이라는 생각은 동서양 마찬가지다. 감정의 표현이다라는 이 생각은 18세기 낭만주의 문학의 시작 이 후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시는 운문으로 표현된 일종의 수사학이라고 생각되었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은 워즈워즈이다. 그는 시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수사여서는 안 되고 '힘찬 감정의 자연스런 발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정(혹은 열정)결여된 글은 시가 아니라 산문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이란 말과 '정서'라는 말은 시론에서는 동의어로 써도 상관 없고, 감정은 인간의 희노애락의 심리적 반응을 총칭하는 말로 시는 시인의 감정에서 출발하여 독자의 감정에서 끝나는 시의 본질이다.
감정이란 말에 해당하는 희랍어 파토스는 본래'고통','병'과 동의어로 쓰인 말이다. 시인에게 요구되는 원숙하고 세련된 감수성은 풍부한 감성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냉정한 지적인 자세'가 따라야 한다.
시인의 감정이 이성적 지배를 받지 않으면 그의 정신은 서리 낀 거울처럼 흐려져서 판단력과 직관력을 상실하여 오히려 사물을 주관적으로 개념화하게 된다. T.S.엘리엇(1888~1965)은 감성과 이성의 통합을 주장하면서 지성시인들은 '사상을 장미 향기처럼 맡는다'라고 말했고, 에이츠(1865~1939)는 '새벽처럼 차고/정열적 한 편의 시를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엘리엇은 시는 구체적인 것이고 산문은 추상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이 말은 시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이고 지식 이전의'사실'이지만 산문은 사실에 '관한' 지식이라는 뜻이다. 부언하자면한 알의 사과는 사실(현실)이고 구체적 존재지만 '사과는 맛있다'라는 진술은 추상적 지식이다. 애인과의 이별은 구체적 사실이지만 '애인과의 이별은 슬프다'라는 진술은 추상적 지식이다.
그러면 시인은 그 성명 불가능의 세계를 어떻게 시로 표현하는가. 엘리엇의 시론에 의하면 시인은 감정의 同價物(같은 값의 존재)을 제시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메타포(수사학에 있어서 비유적 표현 즉 암유. 은유)는 그 동가물을 가리킨다. 메타포 안에서 이성과 감성은 통합된다. 결국 시는 메타포의 문제에 귀착되고, 엘리엇의 영향 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시론에선 메타포가 주요한 비편기준이 되고 있다.
2. 감격조의 시는 좋은 시인가
여기서는 '감격조'란 말은 '감상적'이란 말과 같은 뜻이다. 영국 낭만시대의 시인 테니슨(1809~1892)의 시를 보자.
눈물, 쓸모없는 눈물, 나는 가닭을 모르겠다.
어느 거룩한 절망의 깊이로부터 시작하여
가슴에 솟아올라, 눈에 괸다.
이렇듯 테니슨은 감상적이고 명상적인 체질의 시인이었다. 이런 시를 센티멘털한 감정을 토로한 시라고 한다.
에이츠는 훨씬 성숙한 자세의 시를 썼다.
나무들은 제각기 곱게 가을로 단장하고,
숲속 길들은 메마르다.
10월 석양 아래 물은
고요한 하루를 비추며
이하생략
그러나 이 시도 인생의 덧없음을 명상한 시다.
또 다음에 인용하는 소월의 걸작으로 <초혼>을 읽어보자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이하 생략
이 시도 감격적 어조가 두드러진 시다. 초혼이란 말은 사람이 죽었을 때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난 후에 장례식을 치르는 관례에서 연유한 말이다. 시인은 죽은 애인을 못잊어 비탄에 잠겨 절규한다. 이 절규를 통하여 슬퍼서 몸부림치는 시인의 비애의 감정이 처절하게 호소해 온다.
영국 시인 토마스 하디(1840~1928)는 죽은 부인이 사무치게 그리워<목소리>라는 시에서그리움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무치게 그리운 여인이여, 당신은 어떻게 내게 말을 하는가요,
지금의 당신은 이전의 당신이 아니라고.
이하 생략
위의 시를 보면 환각으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이끌려 비틀거리며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시인의 외로운 심정이 이 짤막한 한 편의 '극'을 통해서 잘 전달된다.이 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을 인물과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감정의 절제를 기하여 낭만적 한탄과 초월에서 벗어나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방법중의 하나가 극적 수법이다.
T.S.엘리엇은 잘 쓰여진 시는 아무리 짧은 한 편의 서정시라도 극적이지 않은 시가 없다고 말했다. 시의 초보자들이 개척해야 할 부분이 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테니슨의 시보다 예이츠와 하디의 시가 잘 쓴 시이고<초혼>보다<진달래꽃>이 잘 쓴 시라고 평할 수 있다.
다음에 인용하는 서정주(1915~2000)의 <부활이란 시도 김소월의 시, 하디의 시와 같은 주제를 다룬 시로서 시인의 감정이 어떻게 형상화 되어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내 너를 찾아왔다. 수야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니.
수야, 이것이 몇 만 시간이냐.
시인은 이 아이가 죽은 뒤 '새벽 닭이 울 때마다 보고싶'어서 그 모습이 늘 눈에 밟혀 종로바닥을 걸으면서도 다른 아이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착각에 시달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를 읽어보면 애절한 감정의 표출도 없이 장면과 이미지만으로 잘 전달되고 있다.
이상의 시들에서 감격조의 시가 좋은지 좋지 않은지 알수 있을 것이다.
3. 웅변조의 시는 좋은 시인가
시에서 웅변은 금물이다. 10세기 프랑스의 상징파 베르렌느(184~1896)는 그의 유명한 시작법에서 '웅변을 잡아서 그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라'라고 외쳤다.
서정시인은 독자가 알아듣건 말건 자신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시를 쓴다.필립시드니(1554~1586)가'한 편 서정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써야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마음 속'이란 마음의 상태에 알맞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할 것이지 어떤 주장이나 의견이나 교훈적 진리를 교묘한 말로 전달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여기서 어떤 시가 웅변조인가, 또는 이 웅변조의 시가 어떤 의미에서 서정시와 다른가를 한 번 보고 넘어가자. 아래의 시를 쓴 시인은김형원(1900~1950)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옷 같은 것은 나에게 쓸데없다.
나는 벌거숭이다.
제도 인습은 古人의 옷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시비도 모르고 선악도 모르는.
이하 생략
위의 시는 휘트먼의 시<풀잎>을 모방한 시다. 여기서 휘트먼의 시<풀잎>을 모방 하려면 시적 방법을 모방했어야 한다.
다음에 인용하는 셸리(1792~1822)의 시도 웅변조 시의 표본이다.
만일 내가 네가(서풍) 실어가는 한 개의 죽은 잎사귀라면,
만일 내가 너와 함께 날을 한 점의 빠른 구름짱이라면,
네 힘에 눌려 네 힘의 충동을 못이겨 신음하는
한 이랑의 파도라면, 물론 너 만큼
이하 생략
4. 교훈조의 시는 좋은 시인가
시인 중에서도 상상력보다는 개념적 사고 능력이 우세한 시인들의 작품에서 교훈조의 시를 많이 볼 수 있다. 서정시를 논의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런시가 좋은 시라고 보기 어렵다. 다음 인용한 <빛>이란 시는 이광수의 교흔조 시세계를 잘 보여준 시다.
만물른 빛으로 이어서 하나,
중생은 마음으로 붙어서 하나,
마음 없는 중생 있던가?
빛 없는 만물 있던가?
이하 생략
이광수의 사상은 불교의'보편불성'혹은 범신론의 만유신성론에 해당한다. 또한 미국 브라이언트(1794~1878)의<사관>이란 시를 인용해보자
......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휴식처에
그대 혼자만이 가는 것이 아니고, 이보다 더
장엄한 자리를 바랄 수 도 없느니라, 그대는 눕게 된다.
이하 생략
이 시에서 시인은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물로 환원하는 것이고, 죽음은 인간의 운명이고 영원한 자연의 섭리인즉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죽음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설교한다.
이상 인용한 몇 편의 시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시들은 한결같이 시의 형식을 빌어서 어떤 신념이나 주의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시인의 신념이나 사상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상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하고자 하는 포인트다.
ㅁ 시는 어떻게 쓰여지나
1. 서론: 시인에게 영감은 무엇인가
시인에게 영감의 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영감은 무엇이냐? 사전에는 '신의 영묘한 감응' 또는 '신의 계시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이렇듯 시인은 시작과정에서 자력이 아닌 초월자의 힘으로 시의 소재나 언어, 리듬 같은 것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리처즈는 말하기를 시인이 다루는 체험은'일상적인 경험이 한층 전개된 것이고 한층 섬세하게 조직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나타난 작품 속의 체험은 시인 자신의 체험과는 다른'만들어진 체험', 즉 시인 자신의 개성에서 벗어난 '몰개성'의 '예술적 체험' 이라는 것이다.
2. 시상을 품 고 시인은 잠을 설친다
詩情을 조지훈은 '선율'이라했고, 엘리엇은 '리듬'이라 했다. 시가 리듬에서 시작한다는 말에서 시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고, 시는 그 본질상 같은 문학의 장르인 산문과 가깝다기보다 음악과 유사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엘리엇은 그 감정을 '청각과 상상력'이라고 이름 붙였다. 199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렌드인셰이머스히니(1939~)도 자신을 나르시서스에 비유하여 시 창작과정을 말했다. 다음 시는 조지훈의 초기 시<승무>의 일부다.
얇은 紗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 고깔에 감추우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이하 생략
19세 때 구상하여 구상한지 11개월, 붓을 든지 7개월 만에 탈고했다고 하니 오랜 회임기간이었다고 하겠다.이 시상을 얻은 것은 열아홉 상적 어느 가을날 수원 용주사에서 齋가 올려지는 자리에서 승무를 본데서였고, 그때의 감동을 그는 "그 밤 나의 정신은 온전한 예술정신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되고 말았다"라고 술회하기도 했다.오랜 시간 끝에 비로소 몇 장의 스케치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김은호(1892~1979)화백의 <승무도>를 보고서였다.
조지훈의 <승무>는 학국의 전통적 민요조의 리듬을 바탕으로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금은 세공품을 다듬듯이갈고 다듬은 정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 서정주의<국화 옆에서>가 우여곡절 끝에 회임을 했다고 시인은 술회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서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이하 생략
"나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이미지는 국화가 아니라 한 중년 여인의 상이었다. 사십대 여인의 미의 영상은 2~3년 그 표현의 그릇을 찾지 못한채 내 속에 잠재해 있었다" 고 했다.그러던 차 어느해 우연히도 저년무렵 정원 한 구석에 피어 있는 한 그루의 국화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의 '형상화 공작'이 시작 되었다. 그 이후 이것을 시로 쓰려고 썼던 것이 겨우 3연 뿐이었다.
3연을 써 놓고 몇 시간을 누웠다 앉았다 하는 동안 1연과 2연의 이미지가 저절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마지막 연만은 표현이 되지 않아 새벽까지 누웠다 앉았다 하다가 그만 자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 상태로 며칠 동안 '시병'을 앓고 있던차, 어느 싸늘한 새벽 창밖의 국화꽃 생각을 떠 올리며 비로소 시상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그는 '내가 안 자고 혼자 깨어있다'는 생각 끝에 밖에서 서리를 맞고 서 있는 국화꽃을 생각하면서 제4연의 시상을 얻었고, 많은 문구상의 수정 끝에 이 시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가 일단 시인의 손에서 떠난 후엔 시는 이미 시인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고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 가의 문제는 비평상의 문제로 남는다.
3. 시인은 모방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를 쓰는 일은 창작행위이기 때문에 모방은 표절만큼이나 부도덕한 일로 본다. 즉 시는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학에서 모방은 필연적인 것임을 강조하였는바, 그렇다면 시의 초보자들은 모방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방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도 당연하다. 모방과 인용은 또 다르다. 모방은 본떠서 만듬이나 흉내를 내는 것이며, 본받음이라는 뜻이며, 인용은 남의 문장이나 사례를 끌어 씀을 말한다.
여기서 모방을 한 시인의 시를 보자
김소월의 데뷔작이고 대표작인 <진달래꽃>은 김안서가 <꿈>이란 제목으로 번역한 아일란드 시인 예이츠의<그는 하늘나라 옷감을 원한다>를 모방하여 쓴 시다. 김안서의 번역시 <꿈>을 읽어보자.
내가 만일 광명의
황금 백금으로 짜아내인
하늘의 수놓은 옷,
낮과 밤, 또는 저녁의
푸르름, 어스럿함, 그리하고 어두움의
물들인 옷을 가젓을지면,
이하 생략
소월은 이 시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겸허하고 헌신적인 마음 자세를 읽어 내어 그 뜻을 기조로 하여 한국적 풍경을 배경으로 한 한국의 여인상에 초점을 맞추어 <진달래꽃>을 썼다고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모방시의 역사는 이어져 30년대의 정지용, 김기림 등에서 영국의 모더니즘시대의 반영을 볼 수 있다. 엘리엇의<황무지>를 모방한 김기림의<<기상도>>와 정지용의 이미지즘의 계열의 시는 한국현대시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시들이다.
ㅁ시와 시인
시인은"남달리 생생한 감수성과 열의와 애정이 있고, 인간성에 대한 남다른 이해심이 있고, 일반인보다 폭넓은 종합적인 정신을 갖춘 사람이고, 현상에 들어나 있지 않은것에도 그것을 실재하는 듯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워즈워즈는 말했다.
1. 서론: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워즈워즈는 하늘에 나타난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고, 물가에 수선화가 무리지어 피어 바람결에 춤을 추는 것을 보고서 <인으로서의 어찌 흥겹지 않겠느냐>고 노래하기도 했다.
현대 시인상을 대표하는 우리나라의 시인을 말한다면 이상(1910~1937)과 김수영을 들 수 있다. 이상은<어느 시대에나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시대와 역사의식이 투철한 시인이었다. 그는 시대와 맞서 대결하다가 각혈하며 쓸어진 '박제된 천재' 시인이었다. 김수영은 남달리 시대와 맞대결하는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시를 썼다. 김수영의 시의 주제는 '자유','설움'이다.(그의 시 <풀>은 폭풍우에 휩쓸려 '바람보다 먼저눕는' 풀의 참담하면서 끈질긴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2. 시인에게 기교는 무엇인가
주제에 생명을 부여하는데 쓰이는 언어를 주무르는 시인의 솜씨를 기교라고 한다. 워즈워즈는 조작된 장식어는 쓰지 말것,이 말은 '시는 힘찬 감정의 자연스런 표출'이어야 하지 인위적으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 우위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인이 기교를 경시하고 감정을 쏟아내는데 주력하는 경우와 기교에 주력하는 경우는 시론상의 차이 이상으로 작시과정에서는 시의 성패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주장했지만 기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던게 좀 유감이다.
시인이 표현하고 싶은 것, 그것을 느낌이라 해도 좋고, 아픔이라고 해도 좋고, 실상(리얼리티)이라고 해도 좋고, 주제라고 해도 좋다.그'주제'는 언어 이전의 추상, 즉 없음의 상태다. 시의 출발을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 감정은 모양도 이름도 없는 구름 같은 것이다.
엘리엇은 표현과 내용의 조화로운 상태를 강조하여 그 경지를'고요'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기교파시인은 정지용이 그 대표적이고 영.미에서는 17세기의 왕당파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로버트 헤릭에드먼드 월러20세기 초 에즈라 파운드 등이 있다. 그러면 여기서 정지용의 <해협>을 읽어보자.
포탄으로 뚫은 듯 동그란 船窓으로
눈썹까지 부풀어오른 水平이 엿보고,
하늘이 함폭 나려앉아
크낙한 암탉처럼 품고 있다.
투명한 魚族이 행렬하는 위치에
흔하게 차지한 나의 자리여
망토 깃에 솟은 귀는 소랏속 같이
소란한 무인도의 角笛을 불고-
해협 오전 2시의 고독은 오롯한 圓光을 쓰다.
서러울리 없는 눈물을 소녀처럼 짓자.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다음 날 항구의 개인 날씨여
항해는 정히 연애처럼 비등하고
이제 어드메를 달밤의 태양이 피어오른다.
<해협>전문
정지용의 해협은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는 기선의 선창으로 내다본 해협의 인상을 그려낸 풍경화이다. 주로 직유로써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나열한 이 시에서 특히 주목을끄는 것은 "하늘이......크낙한 암탉처럼 품고 있다"든지 "귀는 소라속같이/소란한 무인도의 角笛을 불고"와 같은 기발한 비유들이라 본다.
3. 시로 쓴 시론
베르렌느는 말라르메,렝보와 함께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상징파 시인이다. 본래 상징주의시는 음악성과 암시성을 중요시 한다.
시는 주장도 아니고 메시지를 전달함도 아니고 오직 분위기, 감각을 마비시키는 분위기라는 것이 상징시의 주장이다.
김춘수의 裸木과 시를 보자.
시를 잉태한 언어는
피었다 지는 꽃들의 뜻을
든든한 대지처럼
제몸에 그대로 안을 수가 있을까.
이하 생략
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시와 언어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시는 우리의 감성적 경험을 언어로써 드러내는 예술이다. 시인은 안타까움을 여러가지 표현으로 제시한다.
스티븐스는 사물의 색채나 감각적 인상에 매우 예민한 시인인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철학적 눈을 가진 시인이다.
그러면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 <우리들의 풍토의 시>를 보자
찬란한 사발에 담긴 맑은 물,
핑크 빛 흰 빛 카네이션, 눈을 반사하는
하얀 공기 같은 방안의
햇빛, 오후가 돌아왔을 때
겨울의 끝 무렵 갓 내린 눈.
핑크 빛 흰 빛 카네이션-우리는
그것 이상의 것을 바란다. 그 날(日)자체가
단순화 된다, 하얀 빛의 사발,
찬, 하나의 싸늘한, 납작하고 둥근 자기가
오직 카네이션만이 거기에 있는 것으로.
이하 생략
이 시엔 그 양면이 잘 드러나 있다. "찬란한 사발에 담긴 물", "핑크 빛 흰 빛 카네이션", 겨울철에 갓 내린 눈과 반사하는 방안의 하얀 공기 등 시각적 영상이 찬란하다.
스티븐스는 시인을 연기자로 비유하고, 연기자의 마음과 시를 동일시 한다.
메리언 무어의 <詩>라는 시를 보자
나도 그것이 싫다. 이런 속임수 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아주 멸시하면서 읽노라면 결국 그 속에서
진정한 것을 위한 자리를 보게 된다.
이하 생략
이 시는 시론을 시로 쓴 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시의 소재는 언떤 것이고, 시의 본질은 무엇인가의 문제를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이미지로써 보여 주고 있다.
또 아치볼트 메클로시<詩法>이란 시를 보자
시는 둥근 과일처럼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엄지손가락에 만져지는 오래된 큰 매달처럼
말을 안 해야 한다
이끼 자라난 창턱의
소매 스쳐 닳은 돌처럼 침묵해야 한다-
이하 생략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시 쓰는 법을 시로 표현한 시이다. 이 시론은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 중심의 시론이나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의 시론과 큰 차이가 없다.
ㅁ 리듬은 시의 생명이다
생명의 원리는 다름 아닌 자연의 리듬에 화합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의 리듬에서 출발하여 거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예술이 시, 노래, 무용 등이다.
...이런 예술들이 다른 분야의 예술보다 더 생명의 충족감을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1. 서론: 리듬이란 무엇인가
시가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산문과 대비시켜 보아야 한다. 같은 문학 안에서도 소설이나 희,곡, 비평 같은 글은 산문이라 하고, 시만은 유독 운문이라고 한다. 운문은(운율)리듬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 리듬은 반복의 원리에서 생겨난다. 리듬은 곧 자연의 호흡이고 생명의 맥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리듬의 효과는 반복과 그에 따르는 기대감에서 생겨난다는 것이 리처즈 같은 학자들의 해석이다.
2. 시에서 리듬은 무엇인가
시는 리듬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똑같은 글이라 해도 리듬에 의하여 산문과 운문으로 갈라진다. 시의 핵심적 요소가 리듬이기 때문에, 언어가 다르고 쓰여진 시대가 달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가지 공통적인 점은 시에는 행과 연의 구분이 있고, 몇 개의 시행들이 모여서 하나의 시연 혹은 한 편의 시를 이루는 점이다.
여기서 헨리 기싱의 수필 한 대목의 우리말 번역을 읽어 보자.
5월의 영광을 짓밟는 혹독한 찬바람 같은 것이 얼마나 자
주 나에게서 원기와 희망을 앗갔던 것인가.
5월의 영광을 짓밟는
혹독한 찬바람 같은 것이
얼마나 자주 나에게서
원기와 희망을
앗아 갔던 것인가.
이렇게 비꾸어 놓으면 산문 떄보다는 사뭇 다른 전달효과를 갖는 것은 그것이 행의 반복에 의한 리듬이 있는 글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우리시에서 예를 들어 리듬의 효과를 설명해 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3.3.4
뜰에는 반짝이는 金모래 빛.3.4.4
뒷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2.3.5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자. 3.3.4
이 시의 리듬은 대체로 3음절 3음절 4음절로 한 시행이 이루어진 3.3.4조의 율격이다.
3. 리듬과 운
율격 다음으로 시의 리듬에서 중요한 요소가 韻이다. 반복되는 어투가 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본다.
4. 리듬은 정서와 직결된다
리듬의 형태는 감정의 상태로써 결정된다. 유쾌할 땐 경쾌하고 활달한 리듬이 생겨나고 우울하고 침통할 때엔 완만하고 가라앉은 리듬이 생겨난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
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이하 생략
반복의 연속은 이 시의 리듬을 주도하는 요소들이고 특징이다. 짧고 경쾌한 문장과 어구들의 반복은 마치 장단 맞춰 북치는 소리 와도 같다.
5. 자유시의 리듬
그러면 자유시는 어떤 시인가를 보기로 하자. 즉 상대격인 정형시와는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보자. 정형시 하면 시조를 떠올리지만 시조 이외의 모든 시는 자유시냐 하면 그렇지 않다 김소월의 시들이 정형시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율격이 규칙적인 시가 아니라 해도 운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반복어나 반복어구가 규칙적으로 쓰인 시들도 엄격한 의미에서 근대시가 추구하는 자유시와는 다르다.
자유시는 인습적인 시어나 비유법을 배척하고 일상 쓰이는 구어체(보통 대화에 쓰는 말) 언어로 쓰이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는다. 그렇다고 시가 산문과 혼동 될 수는 없는 것이니, 산문정신과 시정신이 구분되고 시정신과 시로서의 특징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유시의 리듬은 구어체의 리듬이고, 자유시에서도 리듬은 여전히 시의 생명이다. 다음 예에서 보자.
걸어서 港口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紙錢에 그려진 빈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대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數三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위 작품은 황동규의 <寄港地>전문이다. 완전히 구어체로 쓰여져서 율격도 반복어의 사용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형적인 자유시라고 할 수 있는 이 시에 리듬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길게 부는 寒地의 바람/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의 4행만 보더라도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조절된 각 시행은 낱말의 연속과 休止(쉬고 그침)반복으로 리듬이 형성된다.
여기서 황동규 작품<寄港地>와 같은 소재, 기법, 시인적 자세 등을 보여주는 시를 읽어보자. 자유시를 표방하고 나선 이ㅣ미지스트 시인의 대표적인 T.E.흄(1883-1917)의 <가을>은 구어체 리듬으로 쓰여진 소품이지만, 좋은 시다.
가을밤의 싸늘한 감촉-
나는 밖을 거닐었다.
그리고 시뻘건 달이 담장너머로
붉으레한 얼굴의 농부처럼 걸쳐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말을 건네지는 않았지만 끄덕였다.
그 주위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
도시 아이처럼 하얀 얼굴로 나와 있었다.
이 시는 가을밤의 정경을, 그 감촉과 하늘의 달과 별들에 집중시켜 제시한 전형적인 자유시다. 산문의 리듬에 따라 시가 전개되고, 즉물적 이미지의 제시와 극적 구성 등에서 황동규의 시와 유사한 현대 자유시의 표본이다."붉으레한 농부의 얼굴과 같은 달","도시 아이들과 같은 하얀 얼굴들의 별들" 등의 참시한 비유에서, 자유시는 산문과 유사하되 산문과는 달리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 쓰여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ㅁ시는 이미지가 말을 한다
너와 내가 체험한 것들은 결국 이미지로 바뀌어 마음 속에 잡다하게 쌓인다. 그러니까 경험이 풍부한 사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이미지가 많이 쌓여진 마음의 부자인 셈이다. 시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언어를 쓰지 않는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시가 좋은 시다.
1. 서론:이미지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 속에 갖가지 印象(보거나 듣거나 했을 때,대상물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느낌. 첫~/ ~이좋다) 들이 쌓여있다.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음성, 기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감동한 것들의 필름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새겨진감각적인 인상들을 이미지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미지는 실제로 체험한 것들의 영상이지만, 실제 그 자체는 아니고 복사본과 같은 것이다. 이미지란 어원적으로 모방한다. 복사한다. 재현한다. 등의 뜻을 지닌 말로서, 마음 속의 그림이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다섯 감각으로 체험한 것들은 결국 이미지로 바뀌어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잡다하게 쌓인다.
2. 시의 이미지
시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언어를 쓰지 않는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가 좋은 시다. '기분이 상쾌하다'는 말보다'날아갈 것 같다'는 말이 더 구체적인 표현이고, '조용하다'는 말보다'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런 말들은 모두 ,비유에 관계되는 말이다.시인은 이론이나 설명으로 생각을 전달하지 않고 이미지로써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며, 독자 역시 시에서 추상적인 이론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하여 정서를 체험한다. T.S 엘리엇은 "시는 정서에서 출발하여 정서로 끝난다"라고 시의 정의를 내린바 있다.
3. 마음 속의 이미지와 시의 이미지
시의 이미지는 앞에서 밝혔다. 마음 속의 이미지는 으리의 체험에서 얻어지는 사사로운 것이다.독자가 시에서 바다의 이미지에 접하면, 어떤이는 해일과 난파를 가져오는 성난 바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시를 이해하려고 하고, 어떤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기잡이 돛단배가 둥실 떠 있는 그림 같은 바다를 연상하기도 한다. 이것이 하나의 사물을 가지고 느끼는 서로가 다른 이미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4. 정서적 이미지
우리의 감정(정서)을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말에는 기쁨. 그리움. 미움. 원한. 동경. 감탄. 고독. 희망. 혐오. 열정. 동포. 등이 많다. 시의 이미지가 주로 어떤 정서를 불러이르키는데 쓰이는 경우를 정서적 이미지라고 한다.
5. 감각적 이미지
이미지가 정서를 불러이르킨다기보다는 표면적 감각에 와 닿고 마는 경우가 있다. 지나치게 새빨간 달리아꽃을"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달리아여"라고 표현한 시인도 있다. 이런 경우를 감각적 이미지라고 부른다.
6. 상징적 이미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서 보면 국화꽃. 소쩍새. 먹구름. 천둥. 무서리 등의 이미지는 모두 상징적 기능을 갖는다. 이 시는 시인이 국화꽃을 바라보며 그 향기나 색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국화꽃이 피어나는 원리에 대하여 종교적. 철학적 명상을 거듭한 결과 라고 말할 수 있다.
ㅁ비유는 시의 본질이다
우리가 일상 쓰고 있는 비유는 그것이 자주 쓰이는 동안에 신선미와 탄력성을 상실한 점에서 생명력이 끊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언어도 일반 도구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사용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변질되어 시대에 맞지 않고 전달 효과가 줄어든다.
1.서론: 일상에 쓰이는 비유
일상용어에는 비유로써 표현되는 말이 많이 있다. "쟁반 같은 보름 달","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태산 같이 믿었던 자식", 이런 비유는 옛날부터 써내려 오고 있는 비유적 표현이고,"빙산의 일각", "고속도로의 병목 현상","등 이 같은 말들은 근자에 와서 쓰는 비유적 표현이다.
비유는 두 가지 사물이나 체험이 연결되고 거기에 유사성이 내재한다는 조건에서 성립된다. 비유는 일상적인 비근한 사물이나 체험끼리가 관련되지만, 시에서와 같이 감정이 세련된 사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쓰는 비유는 아주 동떨어진 것끼리가 결합되어 듣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비유법을 설명하는데 있어 직유와 은유로구분하여,'...와 같이, ...처럼, 이란 말을 써서 비유의 주체와 객체가 관련지어지면 그것은 직유이고, 그 양자가 동일화되면 그것은 은유이다. 그러나 그 구분은 사실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쟁반 같은 보름달"이라는 표현은 '쟁반'과 '보름달'의 두 가지 사물이 외견상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연결된 직유이다. "河海 같은 은혜"라고 하면 '은혜'와 '하해'의 외견상 유사성이 아니라 은혜라는 말의 질적인 의미가 바다의 양적인 면과 연결되어 추상적인 의미를 구체적 이미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표현된 직유이다.
비유는 두 가지 사물을 대비함으로ㅓ써 과장하거나 은근히 야유하거나 희화화戱畵化하는 구실도 하여 대화의 묘미를 더한다. "한 끼니 굶더니 해골이 다 됐다" 라는 표현은 일종의 은유인바 여기에는 과장적인 뜻이 드러나 있고, "샛별 같은 눈동자","우뢰 같은 박수 소리","구슬땀을 흘린다" 등의 비유는 과장조이지만 미화의 효과를 드러낸다.
2. 잘 된 비유와 잘 못된 비유
일상에서 스고 있는 비유는 자주 쓰는 동안에 신선미와 탄력을 상실한 점에서 '죽은 비유'라고 한다. "유수와 같다" 라는 비유는 진부한 비유여서 죽은 비유로 보면 된다.
3. 비유는 상상력에서 이루어진다
비유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상상력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실제로 있지 않는 것, 경험한 일이 없는 것을 마음 속에 어떤 모양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을 말한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제시된 국화와 인고의 여인상의 결합은 유사성을 통한 동일화의 예이고,"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명워ㅓㄹ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경에 일장검 짚고 서서..."의 시조에서는 삭풍. 찬눈. 만리 변경 같은 유사한 이미지들이 병치(둘 이상의 것을 같은 장소에 두거나 베품, 나란히 놓음 또 나란히 설치함)의 수법으로 결합된 경우이다.
4. 정서와 이미지의 결합
서정시의 경우 정서나 감정은 시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서라는 것은 모양도 냄새도 없는 것이어서 개념적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시인들은 그것을 이미지로 파악하여 제시하고 독자도 그 이미지를 통하여 받아들인다.
다음 이장희의<청천靑天의 유방乳房>이란 시를 읽어보자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따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별을 놓으며
불룩한 乳房이 달려 있어
이슬맺힌 포도 송이보다 더 아름다워라.
탐스러운 乳房을 볼지어다.
아아 乳房으로서 달콤한 젖이 방울지려 하누나
이때야말로 哀求의 정이 눈물 겨웁고
주린 食欲이 입을 벌리도다
이 무심한 식욕이 복스러운 乳房......
슬쓸한 심령이여 쏜살 같이 날라지어다.
푸른하늘에 날라지어다.
시인은 이 시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는 동경과 희구의 정서를 어머니의 유방의 이미지에 결합시켰다. 여기서'청천의 유방'이란 푸른 하늘에 유방이 붙어있다는 뜻도 아니고, 청천이 유방과 유사하다는 뜻도 아니다. 청천에서 느끼는 정서와 어머니의 유방에서 느끼는 정서가 동화 융합되었다 함이 옳을 것이다.
5. 사물과 사물의 결합
시에서 사물과 사물이 그 외견상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결합되어 비유를 이루는 예는 가장 흔하고 이해하기 쉽다. 시인 조지훈은 '
달빛에 젖은 탑'의 모습을 여인의 몸매와 동일시하여 생각한다. 이것이 사물과 사물의 유사성을 통한 비유이다.
물에서 갓 나온 女人이
옷 입기 전 한때를 잠깐
돌아선 모습
달빛에 젖은 塔이여!
이하 생략
6. 사상과 이미지의 결합
사상이나 이념, 주의 주장 같은 것은 마땅히 산문으로 써야 격에 맞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용에 따라 시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시적 운율을 갖느냐, 아니냐, 그리고 이미지로 체험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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