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 된 비극은 빛나는 슬픔이요, 슬픔은 카타르시스로 승화된다. 그렇다. 신화의 시대에서는 울고 웃는 것도 신들의 특권이었다. 인간은 신을 닮기를 바랄 뿐이요, 신들의 선처 속에서 헤매는 정신없는 영혼을 가진 피조물일 뿐이었다. 영웅이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신의 개입'으로 얻어지는 카리스마일 뿐, 신의 손길이 스쳐 지나면 남는 건 온통 비극이었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때려잡는 순간,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치는 순간,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의 목을 조르는 순간,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목덜미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오뒷세우스가 구혼자들의 심장을 향해 활을 당기는 순간, 이 모든 순간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카리스마의 시위에 걸린 화살촉은 비극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신의 개입'이 현저히 줄어든, 이러한 용어조차 쓰지 않는 이 시대에 비극은 인간의 내면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슬픔을 내맡기는 시대는 가고 혼자서만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시대다. 신화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신화를 풍요롭게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건만 사람들은 신화를 잃어버렸다. 근대의 목가적 낭만도 증기기관이 발견되기 전까지의 신화가 되어버렸다. -혼돈의 카리스마, 혹은 비극 中에서
어떤 약속도, 무모한 계획도, 또 어떻게 웃어도 다 좋을 때가 가끔씩 있다. 백 걸음을 앞서서 출발하는 사람도, 백 걸음을 뒤쳐져서 출발하는 사람도, 또 중간에 불쑥 끼어든 사람이라도 모두 같은 자리에서 잠시 머무는 시간이 있다. 그렇다면 점지되는 이런 순간들은 봄의 전령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고운 섬광 탓일까. 아닐게다. 그건 각자의 의지 탓이다.
계절에 걸맞는 의지를 지닌 꽃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걷고 손 흔들며 조그마한 탄성을 소리내어 입 밖으로 내어보는 것, 꽃 지는 시간이 와도 우리 함께 있었다고 위안을 해보는 것, 그때는 나도 그네들처럼 명랑하고 수줍어했다며 기억 한 줄 써보는 것.
날이 참 좋았다.
첫댓글 독토의 야행
멋집니다
비 오는 날인듯 합니다ㅡ
꽃도 피고
꽃은 지고
비도 오고예 ~~~좋습니다ㅡ좋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