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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와 사냥꾼 2
18.바다소의 눈물
사슴과 코뿔소의 뿔, 그리고 사향노루나 사향고양이의 사향은 모두 값비싼 정력제이고 만병통치약이다. 가르토는 마드리드가 자기 제안을 그렇게 쉽게 받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으레 거절할 줄 알고 전화로 가볍게 이야기했는데 마드리드는 선뜻 응했다. 가르토는 그래도 그녀가 자기 제안을 잘못 알아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다시 제안 내용을 설명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대규모 야생 동물 수용소에 자기와 같이 가서 열흘 동안 그곳 동물들을 돌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거기에 필요한 여비와 숙박비는 지급되지만 그 외에는 식비와 일당 정도가 지급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대답은 역시 같았다. 마드리드는 그때 벌써 보통 동물관리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야생동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수의사이며 관리인으로서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영국과 유럽의 큰 동물원에서 그녀를 서로 모시려 경쟁했다. 그녀는 수입과 명성을 지닌 여류 명시였다. 그러한 마드리드가 보잘 것 없는 보수를 받고 싱가포르의 야생동물 수용소까지 가겠다고 나선건 뜻밖이었다.
하긴 가르토 자신이 야생동물 수용소의 주인인 중국인 양 영감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그 수용소에 자기가 팔아넘긴 몇 종류의 동물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상품을 구입해 준 거래처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를 한다는 생각으로 조건부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건이란 영국에서 수의사를 한사람 데리고 간다는 것이었다. 양 영감은 그 조건은 받아들이겠으나 여비, 숙박비, 일당 등은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가르토는 마드리드의 승낙을 받고도 걱정이 되었다. 마드리드가 야생동물 수용소의 형편없는 시설을 보고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수용소는 좁고 불결한 곳이어서 동물들이 그 안에서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양 영감은 돈을 버는 데는 천재적인 중국인이다. 그러나 동물 수용소를 만들어 동물 도매상을 하겠다는 그의 계획은 잘못된 것 같았다.
그는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등에서 진귀한 동물들을 헐값으로 사들여 와서 세계 각국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에 비싸게 팔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수용소를 많은 사람들에게 유료로 관람시키고 수용소에서 동물들을 대량으로 번식시키겠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물들을 사육시키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그 계획은 성공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 동물 수용소에서는 동물번식은커녕 동물들이 떼죽음 했다.
가르토가 아는 사실만 해도 보르네오산 오랑우탄이 세 마리나 죽었고, 호주산 캥거루가 세 마리, 북극의 힌곰이 두 마리가 죽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만주산 범한마리가 죽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막대한 손실이었으며 그 사업은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양 영감은 계속 야생동물들을 사들였다. 그로고 양 영감은 수용소 동물 관리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전문가를 초청하여 야생동물들의 사육법과 치료방법 등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그건 바람직한 계획이었으므로 가르토는 협조해 주기로 했다. 마드리드는 정확한 시간에 런던 비행장에 나타났다. 그녀는 마치 주말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메스나 주사기 등 수술기구와 약품이 든 가방은 별도로 탁송해 버렸고, 옷이 든 자그마한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서 있었다. 가르토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딴 사람 같았다. 동물들의 똥오줌을 온통 덮어쓰면서 동물들을 치료해 주었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젊고 건강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캡틴 가르토.“ 가르토는 웃었다. 그는 그런 미인과 같이 여행하게된 것이 즐거웠다. 그들은 다정한 부부처럼 팔짱을 꼈다. 그러나 그날 오후 늦게 도착한 싱가포르는 무더웠다. 거기다 마중 나오겠다던 양 영감도 보이지 않았다. 호텔은 모두가 만원이었고 3급으로 보이는 호텔에 겨우 방이 하나 비어 있을 뿐이었다. 가르토는 당황하고 초초했다. 잘못하면 거리에서 밤을 새워야할 판이었다.
그러나 마드리드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녀는 호텔 안내인에게 물었다. “비어 있다는 방엔 침대가 두 개 있나요?”“하나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더 넣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좋아요 그 방을 쓰겠습니다.”그녀는 숙박부에 기입했다. 미스터 가르토 앤드 미세스 가르토. “감사합니다. 미세스 가르토.”그녀는 가르토에게 한쪽 눈을 감아 보였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아가씨였다. 그러나 방에 침대가 하나 더 들어오자 마드리드는 엄숙한 얼굴로 선언했다.
“캡틴 가르토 이건 내 침대예요. 그리고 저건 당신 침대고요. 절대로 혼용해선 안돼요.”그들은 그날밤 침대를 혼용하지는 않았으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면서 즐겁게 보냈다. 마드리드는 가르토와 함께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방서에서 고압 호스를 대기시켜 놓은 채 시베리아산 호랑이들의 교미를 도와주었던 일, 돌고래의 등에 난 종기를 치료해 주다가 두 사람이 함께 물에 빠진 일, 난산의 얼룩말 모자를 살리기 위해 함께 밤을 새운 일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특히 마드리드는 질식된 상태로 엄마 배에서 나온 얼룩말 새끼를 둘이 교대로 인공 호흡시킨 끝에 기어이 살려낸 뒤 가르토가 자신을 안고 키스했던 일을 상기시켰다. “그때 켑틴은 나에게 세 번 키스했는데 두 번은 빰에 하고 맨 마지막은 바로 입술로 했어요. 얼룩말 새끼의 분비물이 묻은 그 더러운 입으로,,,.”그녀는 계속해서 유머 넘치게 이야기하면서 가르토를 웃겼다. 가르토는 그제야 그녀가 보잘 것 없는 보수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까지 온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새로운 일, 신기한 일, 재미나는 일들을 찾아 고생을 자청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끊임없이 탐구욕과 생활 의욕이 넘쳤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인간들과 동물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깔려 있었다. 다음날 아침 가르토의 전화를 받은 동물 수용소 소장이라는 40대의 중국인이 허둥지둥 호텔로 달려왔다. 그는 중국어와 프랑스어, 영어가 뒤섞인 말로 양 영감이 급한 일이 생겨 비행장에 나가지 못해 자기가 대신 왔다고 말했다.
“급한 일이라뇨? 영국에서 사람을 불러놓고 마중도 하지 않다니...” 소장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해명했다. 세 번째 부인이 급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양 영감이 병원으로 달려가자고 하지 두 번째 부인이 꾀병이라며 가지 말라고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금당했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마드리드는 깔깔 웃었고 가르토는 더 이상 양 영감의 실례를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은 곧 소장의 안내를 받아 동물 수용소에 갔다. 수용소는 싱가포르에서 7km나 떨어진 교외에 있었는데 도착하기 전 100m 지점부터 벌써 시큼한 냄새가 풍겨왔다. 동물들의 똥오줌 냄새였다. 냄새가 점점 심해져서 가르토는 코를 막고 수용소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드리드는 그런 냄새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수용소는 축구 경기장 정도의 넓이인데, 그 안에 우리가 60여개 있고 뭇 동물들이 꽉 차 있었다. 우리 속은 똥오줌과 먹이가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드리드는 그 불결한 관리 상태를 보더니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동물 수용소도 아니고 동물원도 아니군요. 이건 동물들의 감옥이야.” 중국인 소장은 워낙 많은 동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중얼거렸다. 사실 그곳에는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영국의 일류 동물원에 없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좁은 우리 속에 동물이 너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동물들의 털이 빠지고 피부병이 생겼다. 개중에는 중병에 걸린 동물들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사장처럼 시끄러웠다. 일본 홋카이도산 불곰 한 마리가 옆 우리에 수용돼 있는 서너 마리의 다른 곰들을 보고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그놈은 계속 고함을 지르면서 우리의 철봉을 뒤흔들어댔다. 소장은 그 곰은 미친 곰이기 때문에 곧 처분할 거라고 말했으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가르토는 곰이 날뛰는 이유는 옆 우리에 있는 수놈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곰이 무리를 지어 살게 되면 그 가운데서 가장 강한 놈이 보스가 되어 다른 곰들을 지배하는데, 그 곰은 보스를 결정한 싸움을 하지고 요구하던 것이었다.
가르토는 그 곰은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니 옆 우리의 수놈과 싸움을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의 마운틴고릴라들이 가슴을 치며 철판을 쾅쾅 치는 것도 또한 정당한 요구였다. 그들은 우리가 너무 좁고 더럽다고 항의하는 것이었다. 고릴라는 동물 가운데 인간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영장류가 아닌가. 그러니 ‘인권’을 주장할 만하다는 게 가르토의 설명이다. 그곳 소장은 그런 고등 동물에 대한 특별 배려가 전혀 없었다.
고릴라 우리 옆에는 같은 영장류인 오랑우탄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역시 비참한 모습이었다. 그 오랑우탄은 암컷인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소장은 그 암컷은 얼마 전에 유산했으며 그 후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드리드가 쏘아 붙였다. “저 암컷은 유산된 새끼를 꼭 안고 있어요. 이미 죽은 줄 모르고 저렇게 안고는 있지만 새끼의 시체는 자꾸만 썩어가는 걸요. 그대로 두면 어미도 미쳐 죽어요.”“그럼 어떻게 하죠?“
“어미 품에서 새끼를 빼난 다음 어미를 달래 주어야 해요.”“하지만 아가씨, 저 괴물은 80kg이나 되고 힘이 굉장히 셉니다. 새끼를 빼앗으려 들다가는 내가 먼저 찢겨 죽을 겁니다.” “바보 같은 소리, 당장 우리 문을 열어요.” 마드리드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이힐을 벗어던지는걸 보고 가르토가 기겁하여 말렸으나 그집쟁이 아가씨는 듣지 않았다. 가르토는 하는 수 없이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권총을 꺼나 안전장치를 풀었다. 마드리드가 우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오랑우탄을 처다 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동물과 시선을 마주치면 경계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오랑우탄도 그녀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드리드는 그렇게 5분이나 앉아 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오랑우탄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조용히 대화를 시작했다. “넌 착한 여자야. 그러니 내 말을 들어. 그 애는 죽은 아이야.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야. 그런 건 내게 줘.” 오랑우탄은 여전히 무표정 했으나 경계심이나 적의는 없었다. 마드리드가 등을 손으로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었다.
마드리드는 계속 오랑우탄의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이 오랑우탄에게 통할 리는 없지만 적어도 감정은 통하는 것 같았다. 같은 여성끼리 여성들만이 겪는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걸까? 오랑우탄의 표정이 더 슬퍼져 곧 울 것만 같았다. 그러자 마드리드가 오랑우탄의 품에 안겨있던 새끼의 시체를 빼냈다. 그리고 시체에게 젖을 먹이려는 시늉도 하고 귀엽다고 흔들어 주기도 했다. 오랑우탄은 그래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자신도 새끼가 죽었다는 사실을 이제 시인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마드리드가 새끼의 시체를 안고 우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가르토는 비로소 권총을 집어넣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소장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눈만 껌벅거렸다. 마드리드는 오후 늦게까지 수용소 안을 시찰하면서 치료나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의 상태를 상세하게 메모했다. 모두 열두 종류 서른 마리의 동물이 중병에 걸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소장은 코끼리, 기린, 코뿔소 등 대형 동물들이 또 다른 곳에 수용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일 보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해요. 난 배가 고파요.”가르토와 마드리드는 새로 예약해 둔 특급 호텔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두 사람이 호텔에 들어서자 로비에 있던 신사, 숙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마드리드에게 쏟아졌다. 그녀의 옷이 동물의 똥오줌 투성이일 뿐 아니라 고약한 냄새를 풍겼기 때문 이었다.
호텔의 신사, 숙녀들은 똥오줌 투성이가 된 젊은 아가씨를 노려보았으나 마드리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수군거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드리드는 자기 방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가르토에게 밖에 나가 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호텔 음식은 맛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마드리드는 하필이면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든 시장의 판잣집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런 곳에서만 그 지방 특산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때껏 보지 못했던 음식들이 있었다. 마드리드는 덮어놓고 그 가운데 한 가지를 주문했다. 향료를 곁들인 고기 요리인데, 짭짤하고 맛이 있었다. “요리 재료가 뭔가요?”“ 염려 마십시오. 살아 있는 놈들을 갓 잡은 것입니다. 거짓말 이라고 생각되시면 이리로 와 보십시오.”그 판잣집 뒤에 음식 재료일 만한 동물이 한 마리 있었다. 자그마한 원숭이였다. 마드리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음식 값만 지불하고 그곳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한참 후에 그곳에서 나왔는데 얼굴이 창백했다. 먹었던 음식을 억지로 토해 낸게 분명했다. 그녀는 호텔 앞까지 와서는 가르토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해놓고 시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웃으면서 돌아왔다. 그녀의 윗저고리 안에 원숭이 한 마리가 숨어 있었다. “그대로 두면 죽을 테니까 요리 재료를 내가 사왔지요. 주인은 살짝 데쳐 털을 벗기고 마늘, 생강 등으로 요리하념 특미가 된다고 말했어요. 마드리드는 호텔 방에 원숭이를 숨겨 갖고 들어갔다.
물론 호텔은 짐승들의 숙박을 사절한다. 그러나 마드리드는 원숭이를 침대 밑에 넣어 두었다. :이젠 됐어요. 맛없는 호텔 음식이라도 먹읍시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동물 수용소 소장이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가 뒤섞인 말로 고함을 질렀다. 기린 한 마리가 쓰러져 죽어 간다는 말이었다. 마드리드는 택시를 잡아타고 수용소로 달려갔다. 가르토는 지치고 허기졌으나,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
“여기요, 여기! 그 기린은 며칠 전에 새끼를 낳았는데 어미가 죽으면 새끼도 죽을 겁니다.” 기린은 긴 목과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쓰러져 있었다. 아직 숨을 쉬고 있었으나 눈은 감고 있었다. 기린의 하복부에는 모포가 덮여 있었는데 뻘건 피가 스며 나왔다. 뭔가 하복부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가르토는 피투성이 모포에 덮여 있는 기린을 보고 벌써 사태는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기린은 잘 때도 서있는 동물이다. 한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안되겠는 걸.” 가르토가 중얼거리자 마드리드가 소리쳤다. “바보 같은 소리. 기린을 살리는 건 내가 할 일이지, 당신이 할 일이 아니에요.” 마드리드가 기린의 하반신을 덮고 있는 모포를 벗겼다.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기린의 양다리 사이에 거대한 육괴가 있었다. 밀가루 자루만한 크기의 살덩이였는데 거기에 꼬리 같은 줄이 달려 기린의 음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자궁탈입니다.” 마드리드가 속삭이듯 말했다. 새끼를 낳고 후산할 때 자궁 전체가 난소를 붙인 채 골반관을 뚧고 나와 버린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자궁이 뒤집어진 상태로 배 속의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버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드리드는 자신 있게 소리쳤다. “끓인 물과 깨끗한 수건을 갖고 와요.” 소장과 가르토는 그 지시에 따랐다. 마취 주사를 놓을 때 뒷다리를 잡고 있던 가르토는 걷어차여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드리드가 그 꼴을 보고 웃었다. “거봐요. 이 기린은 아직 힘이 있어요. 그리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드리드가 국부 마취제를 주사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린이 조용해지자 뒤집어져 밖으로 나온 자궁의 내벽을 깨끗하게 닦고 소독했다.
“자 이젠 됐어요. 자궁이 뒤집어져 나왔으니까 이번에는 바로 안으로 밀어 넣어야 됩니다.”
마드리드는 자궁을 밀어 넣으려 했으나 워낙 무거운 물체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르토가 힘껏 자궁을 밀어 넣었다. “조심해요. 상처가 생기면 안 되니까. 그래요. 그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밀어 넣어요.” 자궁이 기린의 배 안으로 모두 들어가 버렸다. 마지막 부분이 들어갈 때는 쭉 하고 스스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마드리드는 자궁이 제자리에 들어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오른손 전체를 음문 안으로 넣에 세심하게 조사하더니 손을 뺐다. “ 아직 덜 들어간 것 같으니 손이 긴 캡틴이 더 밀어 넣으세요.” 이번에는 가르토가 손 전체로 장궁을 밀어 넣었다. 그 때 기린의 몸 안에서 누런 액체가 분출되어 가르토는 그걸 뒤집어써야만 했다. “ 됐어요. 이젠 됐어.”마드리드는 일단 제자리로 돌아간 자궁이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수술용 클립으로 음문 여기저기를 집어 놓았다.
수술은 그것으로 끝났는데 소요시간은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마드리드는 기린의 맥박과 호흡을 조사하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 기린을 수술한지 세 시간 만에 일어났다. 그리고 건강하게 돌아다녔다. 그건 정말 마술과 같은 솜씨였다. 가르토는 마드리드가 일급 수의사라는 소문을 들었으나 그렇게 훌륭하게 수술하는 줄은 몰랐다. 가르토는 기린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호텔 특실 침대 위에서 들었다. 그때 그는 딱딱한 널빤지 침대 위에 있었으며 가르토의 등 위에는 중국인 여자 안마사가 올라타고 있었다.
기린의 뒷발에 걷어차인 타격으로 허벅지에 시커먼 멍이 들어 거동이 불편해진 그는 중국인 안마사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동물 수용소장인 중국인은 흉뷰 타박상을 입고 아예 영국인이 경영하는 병원에 입원했다. 마드리드는 가르토의 그 꼴을 보고 깔깔 웃어댔지만 그래도 그게 밉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기어코 기린을 살려낸 여류 과학자에게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캡틴, 그 기린을 살려낸 것은 내가 아니고 당신이에요.
바른대로 말한다면 난 기린의 자궁을 원위치로 밀어넣을 힘이 없었어요. 그걸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캡틴이에요.”마드리든 겸손할 줄 아는 여자였고, 캡틴 가르토도 그걸 받아 넘길 수 있는 남자였다. “날 부려 먹는 건 좋은데 앞으로는 제발 이 꼴로 만들지는 말아요. 하긴 여자 엉덩이 밑에 깔려 있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중국인 여자 안마사가 그 영어 회화를 알아들었는지는 몰랐지만 갑자기 엉덩이에 힘을 주고 목을 비틀었다. 가르토는 비명을 질렀다.
가르토가 싱가포르에서 겪은 수난은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중국인 소장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다음날 또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에는 코끼리가 죽어 간다는 이야기였다. 죽어가는 코끼리는 인도산 코끼리가 아니라 값비싼 아프리카산 코끼리라고 했다. “제발 값비싼 코끼리를 살려 주십시오.” 가르토는 벌컥 화를 내며 인도산이건 아프리카산이건 내가 알게 뭡니까? 라고 소리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지만 마드리드는 벌써 진료 기구를 챙기고 있었다.
아프리카산 코끼리를 진찰하러 가겠다는 말이었다. 가르토는 어쩔 수 없이 절름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 난폭한 아프리카산 코끼리가 마드리드를 코로 말아 내동댕이치도록 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의 코끼리는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침만 흘려 아마도 한 드럼쯤은 흘렸을 것이라는 게 관리인의 말이었다. 코끼리는 기진맥진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위급 상황이었다. 마드리드는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주었다.
코끼리는 바나나를 받아먹긴 했으나 이내 토해 버렸다. 이번엔 물을 주어 보았으나 물도 역시 토해 버렸다. 식욕이 있는 것 같았으나 바나나나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듯 했다. 목에 이상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어제 아침에 뭘 먹였지요?”“홍당무, 배추, 사과 등이지요.” “사과? 사과를 어떻게 주었지요?” 그냥 통째로 서너 개 먹였지요.“ 마드리든 ㄴ펄쩍 뛰었다. 통째로 먹인 사과가 목구멍에 걸려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하죠?“ 마드리드는 밤까지만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내버려 두어도 사과가 저절로 내려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과는 내려가지 않았다. 코끼리는 여전히 침을 흘리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채 침만 흘렸으니 탈수증에 걸린 것이리라. 탈수증은 코끼리 같은 큰 짐승에게 치명상이 될 수 있었다. 덩치가 큰 만큼 많은 수분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캡틴, 코끼리에게 관자을 시켜야 되겠어요. 저놈이 날뛰지 못하도록 해주세요.”
가르토는 그 작업을 두 시간 만에 끝냈다. 굵은 통나무로 코끼리를 꼼짝 못하게 받쳐 놓고 로프로 코끼리 코를 묶어 놓은 것이다. “됐어요. 이젠 관장해요.” 관장 기구는 소방서에서 빌려온 펌프였다. 펌프의 호스를 코끼리 항문 속에 쑤셔 넣고 펌프로 물을 주입시켰다. 펌프는 수동식이어서 가르토가 맡았는데 곧 힘이 빠져 버렸다. 그러나 마드리드는 어서 계속하라고 독촉해 댔다. 한 드럼 정도의 물이 들어간 뒤에야 코끼리 배가 불러왔다. “이젠 호스를 빼 내세요.”
호스를 항문에서 빼내자 장 속에 들어있던 물들이 역으로 분출되어 나왔다. 똥오줌까지 섞인 물이 가르토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가르토는 분뇨탱크에 빠진 꼴이 되어 버렸다. 가르토가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돌아와 보니 마드리드는 그때까지 계속 코끼리를 돌봐주고 있었다. 밤12시가 넘었는데도 그녀는 저녁도 먹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소용없어요. 관장도 효과가 없어요.”그녀는 초조해졌다. 코끼리만큼 지쳐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머리카락은 흩어져 있었다.
“마드리드 숙직실에 가서 눈을 좀 붙여요. 여긴 내가 지켜볼 테니까. 내일 아침까지 쉬도록 해요.” 마드리드는 그 충고도 무시하고 우리 속에서 밤을 새웠다. 그녀는 아침에 커피 한잔과 빵 한 조각을 먹었을 뿐이다. 코끼리의 용태는 이젠 절망적이었다. 충혈 된 눈에서는 고름까지 흘러내렸고 침에는 핏기가 있었다. 더 이상 서있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마드리드는 중대한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물리적인 힘으로 식도를 막고 있는 사과를 밀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개 수술은 불가능하다.
가슴을 절개한 뒤 6톤이나 되는 그 거대한 짐승의 폐에 산소를 공급해줄 기계가 없기 때문이다.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코끼리를 마취 시켜놓고 식도에 관을 밀어 넣어 힘으로 사과를 밀어내는 방법이다. 그 방법ㄷ 위험하긴 했다. 우선 마취하다가 코끼리를 죽일 위험이 있고 관을 잘못 넣어 식도를 뚫어 버릴 위험이 있다. 마드리드는 마취제 대신 강력한 진정제를 다량 사용했다. 주사를 놓은 지 반시간 만에 코끼리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마드리드는 코끼리 식도에 주입시킬 관을 직접 만들었다. 긴 고무호스 끝에 탁구 공 만한 쇠구슬을 단단히 박아놓은 것이다. 마드리드는 신중했다. 그 관을 주입하기 전에 그보다 가는 고무관을 코끼리의 식도에 밀어 넣었다. 관은 상당한 길이까지 들어가다가 그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바로 사과가 막혀 있는 곳이었다. 마드리드는 관을 빼내고 관이 들어갔다가 막힌 위치를 측정했다. 사과는 심장 옆 부위에 막혀 있었다. 위험한 위치였다.
마드리드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그 위험한 시술을 시작했다. 끝에 쇠구슬이 달린 굵은 고무호스가 조금씩 조금씩 코끼리의 식도 안으로 들어갔다. 잘못 밀어 넣으면 고무호스관이 기관 안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코끼리는 질식하게 된다. 다행히 관은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함부로 밀어 넣다가는 식도가 파열될 위험이 있다. 마드리드는 한 치 한 치 조심스럽게 관을 밀어 넣었다.
시술을 시작한지 두 시간 만에 고무관이 사과에 닿았다. 이젠 사과를 밀어내야 할 차례다. 그러나 사과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마드리드의 얼굴과 등에서 땀이 비 오듯 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무관을 밀어 넣었다. 식도가 찢어지느냐, 사과가 밀려 내려가느냐 마드리드는 힘에 부친 듯 가르토를 쳐다봤다. “좀 도와주세요. 내 손목을 잡고 있다가 내가 힘을 쓸 때 힘을 보태 주세요.”그건 미묘한 협동 작업이었다. 가르토는 마드리드의 손목에서 전달되어 오는 힘에 맞추어 자기 힘을 보태 주었다.
마드리드는 밀었다 뺐다 하는 동작을 점점 빠르게 점점 강하게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있는 힘을 다해 고무관을 밀었고 동시에 가르토도 그렇게 했다. 꽉 막혀있던 고무관이 갑자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만해요.” 마드리드가 서서히 고무관을 빼냈다. 고무관 끝에 박아 놓았던 쇠 구슬에 누런 액체가 묻어 있었으나 염려했던 핏자국은 없었다. 식도가 다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마드리드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청진기를 코끼리 가슴에 댔다. 폐에서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에도 이상이 없었다. 마드리드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젠 진정제의 효력이 끊어질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코끼리는 두 시간 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후에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났다. 마드리드는 신선한 물이 들어 있는 물통을 코끼리 코앞에 놓았다. 커끼리는 물 냄새를 맡은 것 같았으나 그의 코는 힘없이 덜렁거리기만 했다. 마드리드가 그 코를 잡아 물통 안에 넣어 주었다. 코끼리가 물을 빨아 올렸다. 물이 소리를 내면서 코끼리의 식도로 들어갔다. 물이 그대로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식도를 막았던 사과는 분명히 내려간 것 같았다. 마드리드가 환성을 지르면서 가르토의 목을 껴안았다. 가르토는 그녀의 뺨과 입술에 키스를 했다. 시술은 완벽하게 성공했고 코끼리는 바나나도 먹고 야채도 먹었다. 그리곤 천천히 기력을 회복해 갔다. 마드리드가 기린뿐만 아니라 코끼리도 살려 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나갔다. 곧 그녀는 죽어가는 동물들을 살려 주는 마술사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린 동물들을 데리고 몰려왔다.
수십 명의 동물 애호가들이 개, 고양이, 말, 당나귀, 심지어는 새들을 데리고 동물 수용소로 몰려들었고, 어떤 사람들은 마드리드가 머물고 있는 호텔까지 찾아왔다. 마드리드는 남몰래 호텔을 옮겼다.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오랜만에 호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물 수용소의 주인이자 그 지역의 유지인 양 영감이었다. 영국에서 손님을 초청해 놓고 1주일 동안이나 영접도 하지 않은 위인이었다. 양 영감은 그 점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는 집안에 급한 일이 있어 실례를 저질렀다고 변명했다.
집안에 급한 일이 어떤 것인지는 그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얼굴 여기저기에 반창고가 붙어 있고 그의 눈은 그의 눈은 수면 부족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 사이에 끼여 수난을 겪은 것이 분명했다. 가르토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양 영감은 그간의 사례금을 가르토가 요구한 대로 지불하고, 특별한 일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경영하는 동물 수용소가 또 한군데 있으니 그쪽 동물도 좀 봐달라는 말이었다.
다음날 아침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양 영감의 안내로 그곳에 갔다. 동물 수용소는 싱가포르 교외에 있는 광대한 양 영감 저택 마당 한 구석에 있었다. 그건 기괴한 동물 수용소였다. 첫 번째 우리에는 열 마리 정도의 사슴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사슴들에게는 모두 뿔이 없었다. 다음 우리에는 세 마리의 코뿔소가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모두 뿔이 없었다. 뿌리에서부터 코뿔이 잘려나간 코뿔소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세 번째 우리에는 사향노루가, 다음 우리에는 사향고양이가 있었다. 사향고양이는 자그마한 상자에 갇힌 채 꼼짝도 못하는 상태로 슬피 울고 있었다. “왜 저렇게 사향고양이를 가두어 놓았지요?”“아랫배 음부 부근에서 조금씩 분비되는 사향액을 받아내기 위해서지요.”그 말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사향고양이의 하복부에는 그릇이 놓여 있었고 거기에선 강렬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제야 알만했다. 사슴과 코뿔소의 뿔이 없는 것도 그것들이 모두 정력제로 알려진 때문이었다.
녹용과 코뿔소의 뿔, 그리고 사향노루나 사향고양이의 사향은 모두 값비싼 정력제였고 만병통치의 영약이었다,“병에 걸린 동물은 어디 있죠?”양 영감은 마드리드를 안내했다. 우리 주위에는 천막이 쳐져 있고 안에는 희미한 전등이 켜져 있었다. 그 안에 커다란 관 같은 상자가 하나 있었다. 커다란 관에는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마드리드는 그걸 보고 뒷걸음질을 쳤다. 마드리드는 그런 짐승은 처음 봤다. 몸체는 돌고래처럼 생겼으나 콧등은 소와 비슷했다. 몸길이는 3m쯤 돼 보였고 짙은 회색이었다.
“놀라것 없어요. 저건 바다소(海牛)라는 겁니다.”가르토가 설명했다. 바다소는 인어라고 불린다고 했다. 바다소는 미국이나 인도 등지의 얕은 바다에서 살기도 하고, 브라질에서는 강에서도 서식하며, 가슴에 달린 젖으로 새끼를 키우는 포유동물이다. 바다소가 새끼를 안고 젖을 먹이는 광경을 멀리서 본 사람들은 그 모습이 사람과 같다 해서 인어라고 불렀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과는 닮은 데가 없다. 이 짐승은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데다 어쩐지 둔하고 바보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마드리드는 설명을 듣고 가까이 다가가 바다소를 관찰 했다. 바다소는 비참한 상태였다. 피부는 갈라지고 눈에서는 고름이, 입에서는 피거품이 나오고 있었다. 바다소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으나 멀지 않아 죽을 것 같았다. 가르토가 양 영감에게 물었다.“왜 바다소를 이런 식으로 사육하죠? 바다소는 물속에서 사는 짐승이고 물이 없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그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필요한건 이놈의 눈물입니다. 난 이놈의 눈물을 받으려 하거든요.”
“눈물? 눈물을 왜?”“그건 정력제입니다. 코뿔소의 뿔이나 사향고양이의 사향보다도 귀중한 정력제이지요.”양 영감이 실토랬다. 그는 작년부터 갑자기 정력이 떨어져 그것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쩌다가 소식이 있는가 하면 힘이 없어 이내 오므라든다고 했다. 그런데 그에겐 마누라가 셋이나 된다. 첫 번째 부인은 이미 여자로서 기능을 잃어 별 문제가 없었으나 둘째, 셋째 부인은 이제 한창이었다. 특히 30대인 셋째 부인은 매우 아름답다. 양 영감은 그 셋째 부인의 환심을 사려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양 영감의 남성이 말을 듣지 않으니 딱한 노릇이다. 그는 두 여인에게 시달림을 받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몹시 쇠약해져있었다. 그래서 그는 거액의 돈을 들여 정력제를 구했다. 그러나 산삼, 녹용, 백사, 코뿔소의 뿔, 사향노루와 사향고양이의 사향 등 이름난 명약을 모두 써 봐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바다소의 눈물에 기대를 걸어 복 있다고 하소연했다. “아가씨, 제발 저 바다소의 눈을 고쳐 주시오.”양 영감은 마드리드에게 매달렸다.
“난 저 짐승을 브라질에서 많은 돈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현지 부락의 점술사가 시키는 대로 이런 식으로 사육하면서 눈물을 얻으려고 했지요. 저렇게 가두어 두면 저놈은 슬퍼서 운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놈은 울지 않았어요. 매일 아침 대나무로 매질을 해도 저놈은 눈물을 흘리지 않더군요.”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건 가장 악질적인 동물 학대행위였다. 하지만 우매한 중국인 노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르토는 화가 나 그 영감을 주먹으로 때려눕힐까 생각했으나 마드리드는 조용하게 말했다. “바다소를 좀 더 상세하게 진찰해 봐야 되겠어요. 내일쯤 치료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마드리드는 양 영감을 보낸 다음 바다소의 몸에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소독제로 바다소의 상처를 닦아 주고 비타민제를 물에 섞어 먹였다. 바다소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눈으로 뭔가를 하소연 하는 듯했다.
아마도 자신을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다음날 양 영감이 호텔로 마드리드를 찾아왔다.“아가씨. 바다소의 눈병을 고칠 방법을 발견했습니까?”“바다소의 눈병보다 당신의 정력을 회복시키는 일이 더 급한 게 아닌가요?”“그야 물론 이지요. 그렇게만 된다면야...”“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세요. 난 어젯밤 꿈에 하니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그대로 해야 합니다.”“네.네, 무엇이든...”“우선 그 바다소를 나에게 넘겨주세요.
그놈을 브라질까지 운반할 비용도 함께 주세요.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바다소의 눈물을 받아 주겠어요. 바다소가 감사하가도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겁니다. 당신은 그걸 드세요. 그럼 정력이 회복될 겁니다.“ 양 영감은 두말없이 마드리드의 지시대로 했다. 마드리드는 그 바다소를 브라질로 운송시킨 다음 양 영감을 불러 바다소의 눈물이라는 것을 주었다. 그것은 비타민제였다. 동물용으로 만든 강력한 비타민제였는데 그게 효과가 있을지 없는지는 마드리드도 몰랐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1주일 후에 가르토와 마드리드가 그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양 영감이 찾아왔다. 그는 딴 사람처럼 건강해 보이고 명랑했다.“고맙습니다, 아가씨.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영감은 잃었던 정력을 회복했고 그의 부인들이 즐거워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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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와 사냥꾼 2권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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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티 (해우)
매너티의 분포
매너티(manatee)는 바다소목에 속하는 포유동물의 총칭이며, 분류학적으로는 매너티과에 속한다. 학명은 Trichechus manatus 이다. 몸길이는 5m 정도이고 몸무게가 650kg쯤 나간다. 초식동물로 열대와 아열대의 산호초가 있는 연안에서 생활하며 바닷말을 주식으로 한다. 윗입술은 반씩 갈라져 있어 식물을 먹을 때 집게처럼 사용한다. 매너티는 하루에 45kg 이상의 수초를 먹어치운다. 피부는 엷거나 짙은 회색이며, 짧고 뻣뻣한 털이 온몸에 흩어져 있다. 앞다리는 노처럼 생겼고, 꼬리는 둥그스름하며, 뒷다리는 없다. 입 밖으로 나온 엄니는 송곳니가 아니고 앞니이다. 입은 돼지와 비슷하고 몸은 토실토실 살쪘으며, 꼬리에 큰 꼬리지느러미가 있다. 겁이 많으며, 다른 동물로부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다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1시간 이상 잠수하여 바다 밑바닥에 정지해 있기도 하다. 동작은 둔하여 유영속력도 시속 6km 정도이며, 밤에는 드물게 해변 가에 상륙할 때도 있다.
하위분류로는 매너티속(Trichechus) 하나밖에 없다. 영어의 ‘sea cow’를 직역하여 바다소 혹은 해우라고도 불린다. 매너티과와 듀공과는 두개골과 꼬리의 모습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듀공은 꼬리가 갈라진 반면 매너티의 꼬리에는 물갈퀴가 있다.
종으로는 아프리카 서해안에 서식하는 서아프리카 매너티(Trichechus senegalensis), 남아메리카 동해안에 서식하는 아마존 매너티(T. inunguis), 그리고 카리브해에 서식하는 서인도제도 매너티(T. manatus)가 있다. 한때는 플로리다 매너티를 독립된 종으로 분류했었으나 ITIS에서는 이를 서인도제도 매너티의 아종으로 분류하여 이것이 일반화되었다.
한때는 기름과 고기 때문에 수렵,18세기 스텔라 매너티가 멸종당하는 일도 있었으나 현재는 법으로 보호받고 있다. 현재 서인도제도 매너티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동물보호덕분에 매너티의 천적은 없지만,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어가고 있으며, 많은 개체가 모터보트의 프로펠러에 등이나 다리에 부상을 입고 있다. 매너티는 가끔 먹이를 먹다가, 주변의 낚시도구를 삼키기도 한다. 낚시 바늘과 낚시 추보다 낚시 줄이 매너티에게 더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매너티의 소화능력을 떨어뜨려 서서히 죽이는 것이다.
매너티는 발전소의 따듯해진 냉각수를 찾아 모이기도 한다. 그 환경에 적응하여 겨울에 따뜻한 곳으로 이주하지 않고 눌러앉아서 사는 경우도 있다. 미국남부의 마이애미에서도 따뜻한 날씨에 적응한 매너티들이 번식을 위해서 찾아오는데, 현지주민들은 비디오 촬영 등으로 그들의 방문을 환영한다. 최근에 발전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매너티에게 주는 환경 변화가 알려지면서 U.S. Fish and Wildlife Service는 매너티를 위하여 물을 덥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야생동물보호단체 중에는 매너티에게 후원자를 정해주어서 보호하는 단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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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