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전신주/김수연 폐허 위에 서 보기로 했어, 척추 하나로 흔들려선 안 된다고 바랍도 허리 감았어 녹슬어 깨부서져도 기둥이고 싶었던 거야. 김수연<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443-9> [차상] 도공 김씨 -문경 조선요 /황재연 망뎅이 흙가마에 적송만 사루는 이 구리빛 삶이더라 조선의 미소더라 힘차게 밀고 당기는 풀무질도 신명나고. 순백의 혼을 톺아 하늘 가득 띄우는 이 눈부신 빛이더라 다독인 외롬이더라 혼신의 힘을 다하니 쏟는 땀이 구슬 되는. 화산재 털어 내며 눈물을 흘리는 이 결 고운 흙 한 뜸이 무문의 달로 뜨면 마침내 흙이 백자로 환생하는 것이라. 황재연<경북 문경시 신기동 1073> [차하] 새벽/임정집 새벽마다 어머니는 물을 이고 오십니다 단잠 든 머리맡에 차르르 쏟아부으며 동해의 파도 소리로 나를 자꾸 깨웁니다. 짹짹짹 초침 소리로 참새 떼가 찾아와 무거운 책가방, 도시락 들려주면 움직인 볼펜 사이로 새 희망이 싹틉니다. 가야할 길이 멀어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냥 주저 앉아 소리내어 울고 싶지만 처얼썩 가슴을 때리는 어머니의 파도소리. 임정집<울산시 남구 무거1동 1205-3> * 심사평 ----------------------------------------- 장원작 군더더기 없고 작가 통찰력도 뛰어나 ----------------------------------------- 투고 작품 중 시조의 전형을 갖춘 작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조의 정형을 익히지 않았거나 시조의 자수율을 모른 채 투고 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좋은 작품을 쓰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보인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한다. 즉 한 편 한 편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분신처럼 최선을 다하는 시정신이 필요하다. 장원으로 뽑힌 김수연의 '전신주'는 단형시조의 맛을 한껏 살려낸 작품이다. 이미지가 좋고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어느 한 군데 군더더기가 없는 작품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 담아내고 있으며, 시조를 다루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 다른 투고 작품도 고른 수준을 보여 쉽게 장원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차상에ㅔ 뽑힌 '도공 김씨'의 황재연 역시 시조를 많이 창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공이 혼신의 힘을 다해 백자를 구워내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소재의 신선도 면에서 진부함이 느껴졌으나, 함께 투고한 '주흘산 여궁 폭포'의 종장 '여궁의 판소리 완창을 가슴에 담고 왔네'라는 표현 등이 뛰어나 차사에 올려놓았다. 차하에 뽑힌 임정집의 '새벽'은 자식을 위한 부모의 정성에 대해 그 자식이 품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동해의 파도소리로 나를 자꾸 깨웁니다'라는 1연의 종장 처리가 깔끔했다. 다만 시적으로 승화되지 않은 부분이 엿보였으나,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이만한 작품을 완성했음은 물론 투고작들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높이 산다. 계속 정진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김원각. 오종문> =================================== 2000년 10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갈 증/김병환 회색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수리매여 오늘도 맑은 하늘 열어보지 못한 채 내 삶의 삭정이밭 위로 또 하루해는 지고. 몸 채로 울며 칼날 보듬는 밤이 오고 한 사내 속타는 울음 긴긴 밤 뒤척이면 또 한 겹 허물을 벗는 새 아침은 열릴건가. 비 젖은 풀꽃마다 스며나는 맑은 향기 눈물겨운 색깔들로 세상 가득 채워질 때 아 나는 무슨 줄기를 튀어 거기 입술 댈 건가. 새떼도 살 곳 찾아 둥지 비우고 떠나던 날 내 상념의 새 한 마리도 봄빛 찾아 떠나갔고 길 떠난 세월과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김병환 <울산광역시 남구 야음3동 712-6 야음주공아파트 29동 103호> [차상] 갈 대/최광민 흐르는 강물 속에 몸담은 시간들이 허공 위 먼 하늘로 푸른 꿈 산란할 때 노을빛 그리움 가득 젖어드는 빈 들녘. 고독에 나부끼고 슬픔에 나부끼어 한줄기 실바람에 제 몸을 띄웠건만 가슴에 뿌리 맺은 한(恨) 제자리만 맴돌 뿐. 한 가닥 바램에도 온몸을 흐느끼며 무수히 울어대는 말못할 사연들은 아득한 기억 속에서 밤하늘을 더듬네. 최광민 <부산광역시 사하구 신평동 산 41-10 부산 대동고등학교> [차하] 단 풍/김은총 울고 있다 단풍이 온 산을 흔들고 있다 추억 속에 널브러져 온 가슴을 태우고 있다 이렇게 벌개져서는 차마 너를 보낼 수 없다. 울고 있다 단풍이 애써 고개 숙이고 있다 슬플수록 아려(雅麗)한 미소 주는 것이 사랑이기에 사랑은 헤어질 때도 저리 곱게 물이 든다. 김은총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AID아파트 11동 207호> <심사평>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비해 질과 양적인 면에서 매우 풍족했다. 시 쓰기가 좋은 계절인 가을 때문인 것 같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이 고뇌한 작품으로는 '갈증' (김병환), '갈대' (최광민), '단풍' (김은총), '샛별' (손수목), '돌의 노래' (이현범), '첫눈' (권민애) 등이었다. '샛별' 은 새벽 하늘에 홀로 빛을 발하는 샛별의 의미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종장 처리가 깔끔했다. '돌의 노래' 는 같이 보낸 여러 편의 응모작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다른 작품들과 너무 큰 편차를 보였다. '첫눈' 은 고등학생이 쓴 작품으로 "새하얀 이불호청이 앞뜰에 소복하네" 와 같은 명징한 이미지가 돋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입선작에 올리기에는 아직 더 정진이 필요할 것 같아 모두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다. '갈증' 은 내면 세계를 잘 그려내고 있을 뿐아니라 전체적인 흐름 또한 무리없이 잘 전개돼 장원으로 올려놓았다. 다만 종장 처리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갈대' 는 주위의 사물 하나에까지 마음을 주는 시인의 심성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장원작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지만, 아직 고등학생이라 다음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라 믿어 차상으로 밀렸다. 밝고 건강한 시를 대하기를 기대해본다. 차하의 '단풍' 역시 깔끔한 시조였다. 그러나 좀더 담금질 과정을 거쳐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차라리 1연의 초.중장과 2연의 종장을 단시조로 해서 투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심사위원 : 김원각.오종문> ================================= 2000년 9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백련/이승현 내 몸을 썩히는 흙탕물이 싫지 않아 수많은 티끌도 가슴에 꼬옥 품고 오로지 하얀 꽃으로 환생한 날 오기만을. 무심한 인간들이 허겁지겁 쏟아내는 끈적이는 타액도 가슴에 담을 줄 알면 비로소 흰 꽃이 되어 진흙 속을 벗는게지. 이승현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한일아파트 110동 301호> <차상> 새벽/김조수 아직 덜 깬 어둠을 물고 퍼져오는 산종소리 둥지에 알을 품던 산새들도 깨어나고 새파란 바람 불어와 별 하나가 웃고 있다. 화선지에 수묵 처리된 큰산 성큼 다가와서 귀 시린 계곡물을 줄줄이 풀어놓고 밤 지샌 무거운 생각들 소리소리 씻고 간다. 김조수<울산광역시 동구 전하1동 현대중공업(주) 중장비 자재운영부> <차하> 가을과 낚시꾼/김정래 말간 하늘 물결 속에 가을이 내려앉고 낚시 찌 잠긴 눈길 멈춘 입질 언제려나 흰구름 허수아비 함께 긴 그림자 끌고 있다. 드리운 월척의 꿈 노을되어 차오르고 풀벌레 속삭임만 엷은 잠 맴을 돈다 눈감은 물빛 아련히 또 하루가 접혀가고 쪼그려 앉은 채로 세월만 낚은 하루 먼 불빛 밤을 새며 어둠을 밀어낼 때 하현달 꿈꾸는 새벽 장중방울 눈을 뜬다 김정래 <전남 순천시 연향동 현대2차아파트 201동 1001호> <심사평> 시조는 정형시다. 초장, 중장, 종장 안에 하늘과 땅의 이치를 비롯해 인간이 사는 이치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시형의 그릇이다. 한 마디로 간결하고 단백하고 시의 깊이가 있는 것이 바로 시조다. 이번 응모작을 살펴본 결과 많은 이들이 시조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조의 기본적인 자수율도 지키지 않은 작품이 많았다. 습작하는 과정에서는 시조의 정형을 지키면서 창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오래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달의 장원으로 뽑힌 이승현의 '백련'은 위의 것들을 충족하는 작품이었다. 시조의 정형을 지켜내면서도 서정의 맛을 잘 살려낸 깔끔한 시였다. 연꽃을 소재로 깔끔한 시를 뽑아냈지만 시재 선택에 신선한 감이 결여되어 있음이 아쉬웠다. '새벽'의 김조수는 시조를 많이 다뤄본 것 같다. 그러나 투고된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의욕만 앞섰을 뿐 마음을 담아내는데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좀 더 시적으로 승화시키는 아쉬움이 남아 차상으로 밀렸다. 차하 '가을과 낚시꾼'의 김정래 역시 시의 맛을 살려낼 수 있는노력을 더 해야겠다. 언어를 조탁하는 면에 있어 좀 더 신중했으면 한다. 아울러 이번 달에는 고등학생들의 응모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시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았다. 시조집을 많이 읽고 , 많이 창작한다면 좋은 결과 가 있으리라 믿는다. 계속 정진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김원각, 오종문> ================================== 2000년 8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꽃/권진희 꾹 꾹 눌러 참았지만 터졌어 생무지 피가… 아파도 사랑하려 열꽃이 터진 거야. 생살이 툭 툭 잘려나갈 아픔조차 잊은 채. 권진희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291-6> <차상> 대포리 포구에서/송재원 누구의 목마름이 그림자로 서 있는가 미친 듯 출렁이는 푸른 도포 앞섶 닫고 태초에 젖은 두 발이 소금꽃으로 타고 있다.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 하나가 흑회색 휘장을 조금씩 거둬내면 밤새워 뒤척인 몸 위에 금분을 받는 포구여. 한사코 아프기만 한 생이 어딨는가 남은 눈물 섞어도 좋을 저 바다 한복판에 오래된 붕대를 풀고 당당하게 나가리라. 송재원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마두1동 백마마을 한양아파트 405동 402호> <차하> 풀벌레 우는 밤/정원숙 귀 열어봐 저 소리 별들이 날아올라 하나 둘 셋 무수한 별들이 날아올라 마을이 별의 음악으로 넘쳐 흐르고 있어 하나의 별이 뜨기까지 엎드려 본 적 있니 지난한 사랑으로 기다려 본 적 있니 마음의 집을 비우고 별의 소리 들어보아 정원숙 <제주도 남군 남원읍 위미2리 1606> 심사평 인터넷 시대에 시조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변하고,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의 과속을 거듭하고 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문학이 혁명적으로 변하고 시조 또한 어디까지 변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방식이 변한다 해서 본질까지 변할 수는 없지 않을까. 특히 우리의 정서를 가장 독특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형시인 시조는, 시조만의 특성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을 것이다. 시조만이 지니고 있는 풀어짐과 조임, 울림은 우리의 정서를 더욱 심화시켜 인터넷 시대에도 더욱 소중하게 빛나지 않을까. 좋은 시 한 편을 읽는다는 것은 어떠한 일보다 기쁜 일이다. 물론 시를 쓰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될지 모르지만. 이번 달에도 많은 응모작이 접수되어 선자를 놀라게 했다. 많은 작품들이 이산가족 상봉, 의약분업, 추석을 앞둔 탓인지 고향 등 현실정서를 반영하고 있어 정형시가 지닌 우리의 서정을 작품으로 창작한 것은, 시조는 시조시인만의 전유물이 아닌 범국민적 장르임을 실감케 했다. "생살이 툭 툭 잘려나갈/아픔조차/잊은 채" 이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절제의 미학인가. 권진희씨의 '꽃' 을 장원으로 뽑은 이유다. 함께 투고한 '섬' 도 흠잡을 데 없다. 단수 두 편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어 앞으로의 가능을 믿고 장원으로 올린 것이다. 차상은 3편을 응모한 송재원씨의 '대포리 포구에서' 로 정했다. 장원과 비교할 때 시를 다룬 솜씨나 내용에서 뒤지지 않았지만 응모작 전체의 완성도에서 선자는 권진희씨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한사코 아프기만 한 생이 어딨는가' 는 '대포리...' 의 시인도 장원 못지 않게 좋은 시를 쓸 시인이다. 차하의 정원숙씨의 '풀벌레 우는 밤' 은 매끄럽게 언어를 다루고 있지만 알맹이를 채우지 못한 가벼움이 아쉬웠다. 아름다운 서정시를 쓸 가능성이 엿보인다. 내면을 다지는 의미 있는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이우걸.김영재> ================================= 2000년 7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물의 자서전/서정교 그는 스스로를 화가라고 말한다 비춰지는 그대로를 화폭에 담아내는 투명한 밑그림 위로 시간들이 그어진다. 지나치는 것들 모두 어머니라 부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옹아리하며 눕는다 날마다 풀어헤치는 그 정갈한 옷고름. 같이 사는 법을 그에게서 배운다 내가 아닌 우리로 하여 마을이 되어버린 모두가 주인인 그 곳 길을 따라 모인다. 서정교<충북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 3-1 우주동백아파트 203-807> <차상> 안 개/김은주 새하얀 물고기가 강물 위로 눕는다 키 작은 유년의 푸른 꿈을 간직한 채 거치른 물살 가르며 역류하는 연어 한 마리. 시간의 통증이 알들을 쏟아낸다. 바람의 목젖이 山의 이마 밀어내면 한 생애 낡은 비늘을 말없이 털어내는 강. 김은주<부산시 수영구 광안1동 120-93> <차하> 민들레/김용대 언젠가는 꽃잎이 지듯 언젠가는 꽃씨가 날듯 설레는 마음으로 부푸는 꿈 감당키 어려워 한번쯤 흔들리는 바람에 내 몸 맡겨 보련다. 김용대<인천시 동구 송림3동 93-129 2/4> <심사평> 중앙일보 시조백일장이 회를 거듭할수록 독자의 반응과 응모자들의 나이, 직업 등의 폭넓은 계층과 응모편수로 단번에 달 수 있었다. 학생 응모자도 고등학생에서 중학생에 이를 만큼 시조백일장은 범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어 매우 흐뭇하고, 현대시조의 밝은 미래를 예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품 응모 편수를 놓고 볼 때의 흐뭇함이지, 막상 작품을 한 편씩 정성들여 읽어가면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수 없다. 유감스런 일이다. 지유시에 비해 시조의 학교교육이나 창작교실이 많지 않음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아무튼 열정을 다해 응모해 준 내일의 시조시인들에게 고마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선자가 뽑은 이 달의 작품은 장원 서정교의 '물의 자서전', 차상 김은주의 '안개', 차하 김용대의 '민들레'다. "투명한 밑그림 위로 시간들이 그어진다"는 '물의 자서전'의 투명하고 산뜻한 표현은 앞으로의 역량을 예감하게 한다. 물이 지닌 속성이나 상징성을 자서전답게 나타내고 있다. 반면에 전체의 흐름이 모호하게 그려지고 있어 긴장감과 통일성을 놓친 점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두 수로 압축했더라면 내면의 흐름을 성실하게 담아내고 시조가 지닌 흥취나 참맛이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안개'의 김은주씨는 다른 응모작에서도 시쓰기에 혼신의 노력을 쏟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서두르는 감이 있어 조금 차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조의 꽃은 단수의 절창에 있다. '민들레'의 김용대씨의 선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이우걸, 김영재> ================================= 2000년 6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우리 어머니/김중섭 "여자가 너무 커서 안 좋더라" 하시던 크고도 훤칠했던 그 몸매 어디 두고 지팡이 앞에 세우신 꼬부랑 할매 되셨네 평생을 호미질한 긴 밭둑 쓸어안고 "사람이 흙냄새가 싫어지면 다 산 게야" 앙상한 쇠스랑 손을 살래살래 저으신다. 김중섭 <서울시 노원구 중계본동 104-1> <차상> 이천 도예마을에 가서/황승현 화닥화닥 타는 불길 가쁜 숨 몰아쉰다 날름대는 푸른 혀,절정의 고비 내달리고 캄캄한 불가마 속에 벌거벗은 여인된다. 잉걸불 접시꽃에 몸의 곡선 달궈낼 때 비취빛 청자 가슴,꿈도 익어 도드라질 때 은하수 무등 태우고 넘실대는 바다된다. 황승현 <경기도 오산시 세교동 321> <차하> 가끔은 섬이 되는/김소해 우리 이제 손을 놓고 가끔은, 섬이 되세 속살 같은 그리움을 귀 하나에 열어 두고 멀어서 더 고와지는 별빛으로 만나세. 김소해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1동 937-101 산일아파트 301호> <심사평> 6월에는 시조가 ‘이 시절의 노래(時節歌調) ’라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하는,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또 고교생과 대학생들의 응모작이 기대 이상으로 늘고 있으며, 시집 한 권 분량을 보내오는 등 중앙시조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이 직설적 표현,관념어 남용과 자연예찬에 치우쳐있으며 이른바 ‘시조(형식) 는 있되 시(내용) 는 없다’는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김중섭의 ‘우리 어머니’를 장원으로 밀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담한 대화체 구사,노쇠하신 어머니의 “앙상한 쇠스랑 손”이 “살래살래”라는 시늉말과 어울려 빚어내는 애잔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차상을 차지한 황승현의 ‘이천 도예마을에 가서’는 형식체험이 이끌어낸 노련미가 눈에 띄지만 뭔가 모르게 갇혀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지나치게 낡은 수사에 의존한다는 데 있다. 참신한 소재와 활달한 상상력을 기대해 본다. ‘가끔은 섬이 되는’으로 차하에 오른 김소해는 우리에게 이제 손을 놓고 가끔은 섬이 되라고 권한다. 현란한 문명이,진정 그리워해야 할 것들을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리운 것은 언제나 멀리 있고,멀리 있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시안(詩眼) 이다. 특별히 학생 응모자들께 ‘시조집 많이 읽기’를 권한다. <심사위원 윤금초·홍성란> ================================== 2000년 5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바다/나대영 비, 바람, 안개, 어쩌면 눈물도 일부(一部)가 되어 별빛에 씻기우고 제살로 기워지더니 끝내는 나뉠 수 없어 빗살무늬로 살아난다. 밤새도록 엉엉 울던 설움에 가득한 강(江) 바람 만한 그 중량(重量) 가벼운 탄식마저도 이제는 파도(波濤)가 되어 수평선을 넘고 있다. 나대영<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31-13> <차상> 요즘 고향/김현수 산은 잘려 1급 장애, 시사만평 같은 향리 목타는 동구밖 향수의 저 주막집은 굉음을 들이마시고 팬텀기로 왁자지껄. 김현수<경북 의성군 가음면 현리 1097번지> <차하> 단오 부채/정하선 한겨울 대숲바람 긴 마디 하나 잘라 그늘에 놓아두고 모진 성깔 다스려 쪼개고 곱게 다듬어 활짝 편 살 만들고 닥나무 속옷으로 떠 놓은 전주한지 한쪽은 네 마음을, 한쪽은 내 마음을 가위로 둥글게 오려 아교풀로 맞붙이고 시 한줄 써 넣을까 산수화를 그릴까 붓 끝에 대롱대는 생각을 떨구고 태극을 곱게 그리다 흐려지는 눈시울. 정하선<인천시 계양구 서운동 17-4> <심사평=윤금초, 홍성란> ------------------------------------- 고교생 응모는 늘고 있지만 수준은 미흡 장원‘바다’비극적 아름다움 잘 그려 ------------------------------------- 이른바 N세대라 불리는 고교생들의 응모작이 다달이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퍽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에서 N세대의 발랄한 감수성을 발견하기 어렵고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연초록 오월에는 장원에 나대영씨의‘바다’, 차상에 김현수씨의‘요즘 고향’, 차하에 정하선씨의‘단오 부채’를 뽑았다. ‘어쩌면’이라는 능청스런 수사를 통해‘눈물’을 은폐하고 싶은 장원작‘바다’에는 눈물→설움→탄식으로 고조되는 비극적인 아름다움이 펼쳐진다.‘나뉠 수 없어’수평선에 닿은 격정의 바다(파도)를 탄탄한 구도 속에 잘 그려내고 있다. 대상(세상)을 긍정적으로 밝게 바라보는 경향의 작품도 함께 보고 싶다. 차상인‘요즘 고향’에는 국토의 난개발로 시끄러운 신문지상의 한 컷 짜리‘시사만평’이 들어있다. 마구 파헤쳐지고 잘려 나가는 산허리에 1급 장애를 가한 인간은 자연에 어떤 치유와 보상을 해주어야 할까? 주막에서 탁주 한 사발에 정담을 나누던 목소리가 이제는 팬텀기의 굉음으로 묘사되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차하‘단오 부채’에는 부채의 제작과정이 시적 구도 속에 무리없이 형상화되는 가운데 부채얼굴에‘네 마음’과‘내 마음’을‘아교풀’로 맞붙이고 싶은 아름다운 연정이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열흘남짓 있으면 단오절이다. ‘단오 부채’가 만들어낸 산수화가 그려진 쥘부채에, 태극무늬 들어있는 둥글부채 자루에 옥으로 꾸민 매듭 선추(扇錘) 하나 달아주고 싶다. ================================= 2000년 4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작설차를 마시며 -사월, 산을 마주하고/노영임 야들야들한 애순 신신하게 깨납니다. 물빛 찻잔에 번지는 쌉싸롬한 끝 맛 한 뼘씩 건너뛰면서 쪼아낸 봄햇살. 사월, 온 산에 깨깨 마른 나뭇가지마다 쪼르르 나앉아 새살 까던 참새 떼 연두빛 산그림자에 모둠뜀 뛰어 내뺍니다. 노영임<충북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우미아파트 101동 401호> <차상> 꽃/이경옥 실개천 사이사이 스며든 작은 들꽃 그 어릴적 울먹이던 내 마음의 생채기 물결 속 일렁이는 빛 아로새겨 숨겨두고. 해맑은 웃음 뒤에 숨겨진 내 아픔을 따스히 도닥이던 노오란 손가지들 꽃망울 피어났을까 실개천가 고운꿈. 이경옥<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종합고등학교 1학년> <차하> 달맞이꽃/김지선 이윽고 달맞이꽃 하얗게 속삭여도 하나가 될 수 없는 절절한 가슴앓이 참 오랜 기다림인가 사모의 정 깊어라. 철없던 옛 추억을 고요 속에 되삼키고 숨겨둔 나의 넋이 나래를 되찾고자 내 안의 향기 풍기네 꽃잎 하나 피우네. 김지선<서울 정의여자고등학교 2학년> <심사평> 이 달에는 작품양에 비해 눈에 쏙 들어오는 작품이 적었다. 모두들 부자유스럽게 상자안에 갇혀 있거나 종장처리에 미숙함을 보여 주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해 버리면 그 작품은 융통성이 없어지고 읽는 이에게 답답하고 숨쉴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형식을 다스릴 때 그 작품은 보다 더 자유스러워 보이고 시조만이 가지는 특유한 감칠맛이 더하기도 한다. 장원으로 뽑힌 노영임의‘작설차를 마시며’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비유가 기성시인 못지 않게 잘 다듬어져 있다. 차나무와 참새와 봄이 함께 어우러진 참신한 표현이 여간이 아니다. 그러나 종장의 드러나지 않는 어색함이 옥의 티였다. 그래서 선자가 약간의 손을 보았다. 계속 정진하길 바란다. 차상과 차하는 일반인들의 투고작이 고만고만해 시조대중화와 보급의 측면에서 고교생의 작품을 뽑았다. 이 달에는 학생작품이 많이 응모됐고 눈에 띄기도 했다. 모두 시조는 알고 있으나 필요없는 사족과 종장의 1·2음보 3·5를 어기는 경향이 많았다. 차상 이경옥의‘꽃’은 어릴적 보았던 들꽃과 현재의 자신을 비유한 여고생으로서의 감수성과 서정성이 좋아 뽑았다. 차하 김지선의‘달맞이꽃’은 4수로 쓰여진 것을 3, 4번째 수를 추렸다. 달맞이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형상화 했는데 그 의도가 좋았다. 차상과 차하는 모두 종장부분을 선자가 손을 보았다. 시조종장의 3·5·4·3은 시조만의 특성을 지닌 꼭 지켜야 할 부분이다. 원래의 작품과 비교해서 계속 공부하길 바란다. <심사위원=박시교·이재창> ================================= 2000년 3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지심도/김동호 섬 하나 안고 있거나 마음 그저 섬이거나 어쩌다 그런 사람이 지심도에 대이면 길마다 가슴이 널려 동백 툭툭 질 것 같아. 저 망망(茫茫) 난바다가 이 작은 섬 그냥 두듯 구성지달밖에 없는 기름진 잎 길러 놓고 여민 속 엉엉 붉어라 꽃통곡이 터진다. 김동호<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1444 미리샘마을 206동 1903호> <차상> 봄기별/박용하 아지랭이 바람 타고 청계산을 넘어온다 산수유 먼저 알고 노란 꽃 자리 펴고 개나리 자목련 나무 잔치 준비 한창이다. 수탉의 긴 울음소리 봄빛 불러 내리고 암탉들 바람이 났나 골골대며 구애하네 양지쪽 아기 냉이도 두 손 들어 달 그린다. 박용하<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993-6 골든타운 101> <차하> 자수(刺繡)/최지현 어매의 손끝에서 바늘이 움직이면 정성스런 한 땀 한 땀 살아 숨쉬는 고운 문양 꽃잎 위 앉은 나비가 살며시 날아가고… 요술같은 어매 솜씨 잠깐만 빌려다가 까막까치 날고 나는 눈물같은 오작교를 두쪽난 한반도 위에 수놓고 싶어라. 최지현<울산 학성여고 3학년> <심사평> 어느시대건 좋은 작품은 당대의 사회현실을 어떻게 형상화 해 냈는가에 따라서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에 큰 감동을 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예민한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한 편의 작품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없다. 투고한 많은 작품들이 이러한 시대성이 부족하고, 시조의 정형성을 무시한 채 쓰여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였다. 시조에 있어서 율격은 기본이다. 이런 기본이 되어있지 않으면 시조라고 할 수 없다. 이번에 입상작들은 얼마나 기본에 충실했는지에 초점을 뒀다. 장원으로 뽑힌 김동호의‘지심도’는 나름대로의 시조에 대한 기본이 잘되어 있고 공부한 흔적이 보인다. 시조의 정형을 잘 살리면서도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서정성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수준작이다. 차상으로 뽑힌 박용하의‘봄 기별’은 아직은 시조의 현대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봄소식을 알리는 연상기법이 좋다. 차하의 최지현‘자수(刺繡)’는 고교생으로서 수준을 능가한 작품이다. 시조를 풀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둘째수는 가히 수작이다. 이러한 시조 꽃나무들이 곳곳에 자라고 있다는 것은 시조단의 앞날이 밝다는 것을 의미해 준다. 또 입상에서 밀려났지만 김혜미양(철산여중 3학년)도 시조의 기본기를 터득하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종장처리 문제에 대해 공부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박시교·이재창> ================================= 2000년 2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떡살/조달옥 풀면서 감으면서 가꿔온 세월이여 빛 부신 나들이길,엄동설한 귀가 길 어머니 내 마음 찍어 두드려요,이 하늘에. 닫혔던 문을 열면 불현듯 다가서는 참 이슬 머금은 들꽃 같은 얼굴들 그 모습 함께 모두어 여기 나를 새깁니다 조달옥<경남 창원시 대원동 대동1차 아파트 106동 401호> <차상> 창너머 남쪽/김순실 등 기대고 흔들리는 잡풀속 남새틈에 풀물 묻은 맨발로 밟아보는 사질양토 그대의 문패 걸어 둘 텃밭 하나 갖고 싶다 망초꽃 세워놓고 만연체로 짙은 안개 개울 지나 돌밭 넘어 길목 앞 서성이는 떠돌다 다시 온 바람 그 텃밭에 심고 싶다 김순실<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 1570> <차하> 홍시/조순옥 감나무 가지끝에 매달린 저 홍시 지나던 산까치가 고맙다 쪼아먹네 내마음 콕콕 찍힌듯 몸이 그만 간지러워. 조순옥<교사·서울시 양천구 신월6동 신남초등학교> <심사평> 삶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문학은 그 중에서도 언어를 매개로 한다.그런만큼 생각의 뼈대에 적절한 언어의 살을 입혀 생명력을 얻게 하기까지는 오랜 숙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시조는 특히 일정한 틀-초장(3·4·3·4),중장(3·4·3·4),종장(3·5·4·3)-이 있어서 언뜻 자유로움을 제한하는 듯이 보인다.그렇지만 정형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흡사 법을 준수하면서 삶의 자유와 진실성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매력적이다. 이 달에도 자신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시조 3장의 그릇안에 진지하게 담으려고 애쓴 작품들을 선보인다. 먼저 장원으로 봅힌 조달옥씨의‘떡살’은 주제를 담아내는 가락에 탄력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전통적인 소재를 삶의 애환과 접맥시켜 신선한 이미지를 엮어낸 점이 돋보인다.다만 둘째 수에서 다소 안이한 부분이 있어 약간 손을 보았다.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차상에 오른 김순실씨는 적잖은 분량의 작품을 보내왔는데 그 중에서‘창너머 남쪽’을 가렸다.큰 욕심을 부리고 있지는 않지만 생활속에서 오고가는 생각들을 다듬어 우리 가락에 싣는 솜씨는 적잖은 공정을 쌓은 듯하다. 조순옥씨의‘홍시’를 차하로 뽑는다.한편의 단아한 동시조로서 품격을 잘 갖추고 있다.이밖에도 문무열·박철순·안경수·강효백(중국동포)·윤재훈씨 등의 작품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중학3년생인 심영화양의 작품‘석탑’은 입선권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큼 깔끔함을 보였다.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유재영·이정환> ================================== 2000년 1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고사목(枯死木)/이구학 노고단 고사목들 할 말 다 걸어두고 성성한 머리칼에 앙상한 몸 버티며 딛은 발 힘에 겹지만 내색 않고 서 있다. 광주공원 한 켠에도 노인들이 서성대리 송곳바람 끝을 갈아 뼈마디를 쪼아대면 어금니 지긋이 물며 시린 강물 흘려보내리. 가진 것 다 주었다. 여기는 고려장지(高麗葬地) 등 돌려 내려가는 자식을 걱정하며 해어름 지켜보는 눈길, 술에 취한 저 노을빛. 이구학 <광주시 북구 유동 117의 13> <차상> 화석을 꿈꾸며/정능아 숨죽인 듯 조용하다 낯선 환상 만나듯 시간을 가늠하는 캄캄한 눈금이여 지층은 먼 선대 아침 꿈꾸는 비상이다 와불(臥佛)로 또 천년 침묵도 음각하는 은유의 공간으로 투명한 너의 세상 차라리 귀달린 침묵 숨어사는 이미지 정능아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107의 1> <차하> 간절곷/장명술 문득문득 스치는 소금절은 추억들 굽굽이 달려드는 싱싱한 파도앞에 간절곷 맑은 물살로 씻어지고 있었다. 용광로 불길마다 더 뜨겁던 내 푸른 혼 공작의 부채깃으로 새 영토를 데워간다 아침은 저인망에 끌려 은비늘로 퍼득인다. *간절곷은 우리나라에서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다는 울주군의 대송등대. 장명술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 장백아파트 708-1608> <심사평> 시조에서 형식은 기본 뼈대다. 정형은 하나의 제약이기도 하지만 분명 그 속엔 한 마디로 규정치 못할 깊은 묘미가 숨어 있다. 현대시조는 기본형식에 충실하면서도 언어미학적으로 높은 시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백일장에 투고하는 이들은 먼저 시조의 형식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투고작품 중에 간혹 형식과 동떨어진 작품들이 보이기 때문에 일러두는 말이다. 새 천년에도 '중앙시조 백일장' 이 더욱 풍요로운 시조마당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응모작들을 대했다. 장원의 자리에 오른 '고사목' 을 쓴 이구학씨는 함께 묶어 보낸 작품들에서도 오랜 수련의 흔적이 엿보였다. 특히 고사목은 첫 수와 둘째 수에서 노고단의 고사목과 광주공원 노인들의 삶을 대비시킨 점이 참신했고, 세째 수에서 '고려장지' 에 빗댄 것도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진지한 탐구자세로 읽혔다. 차상으로 뽑힌 '화석을 꿈구며' 는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이 형식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하여 작품을 손보았다. 원래 작품과 비교하면서 정형에 대한 공부를 깊이있게 해보기를 권한다. 현대적인 감각을 담으려고 힘쓴 점은 눈여겨 볼 만했다. 차하 '간절곶' 은 네 수 가운데 앞의 두 수를 빼고 싣는다. 한 주제를 두 수 정도나 단수로 압축하여 형상화하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인다면 시조단에서 새 시인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밖에 서울 상계고등학교 김광섭, 한강전자공예고 김동관, 부천 서초등학교 이진명의 작품들도 나름의 짜임새를 보여주었다. <심사위원 유재영.이정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