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모기와의 전쟁
평소에 '사람 사는 곳에 파리도 모기도 살겠지......' 하는 나는,
'근데, 내 피는 맛이 없는지, 다른 사람에 비해 모기가 덜 타는 편이야.' 하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쿠바에 와 보니, 다른 쿠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모기가 나만 무는 것이었다.
그건, 이제 우스갯소리가 아닌, 나에겐 전쟁이기도 했다.
*
첫 잠에서 깨어나 보니 2시 20분이었는데, 일어나서 제 7권 작업을 하다가,
내일(18일) 떠나는 걸로 했다.
물론 갑작스런 일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미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동적이랄 수만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새벽인데도, 바다에서 모자반 썩는 냄새가 풍겨왔다.
기분 나쁜 냄새......
그뿐 아니라 모기가 어찌나 극성맞은지, 내가 견딜 수가 없었다.
아침은 먹거리가 시원찮아서 우유 한 잔에 망고 두 개 먹는 것으로 때웠다.
어제 사놓았던 고구마를 쪄놓았다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 텐데, 뭐든 내가 세웠던 계획대로 돼주진 않는다.
여기도 ‘우기’가 있는지, 오늘 아침엔 일찍부터 비가 오더니, 멈추는가 싶은 8-9시 반 까지의 무풍지대가 펼쳐졌다.
여태까지는 그나마 바람이라도 있어서 견딜 만은 했는데, 바람마저 없으니 정말 짜증이 가중되는 것이었다.
거기다 방안에 개미들마저 장사진을 치고 있다 보니,
벌레들 때문에라도 떠나야 할 것 같다.
오늘 오전 중에 윌리암이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그대로 내일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윌리암이 또 망고 큼직한 것 열 개쯤을 통에 가득 담아 가지고 나타났다.
그가 온 거야 그렇다 쳐도, 그는 가끔 그런 식으로 나를 감탄하게 만든다.(스케일 큰 게 내 맘에 든다.) 그러면서,
"인야, 이렇게 좀 푸르스름한 건 밖의 세면대에 놔두세요, 익게......" 하기에,
"우리들 송별 점심 문제는 어떡할 건데?" 하고, 그에 따른 연락도 없이 오지도 않았던 것을 질책하듯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을 했더니,
"오늘 하면 되잖아요." 하기에,
"그럼, 안토니오 영감님께는 윌리암 니가 알려. 이따가 식당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근데, 내 떠나는 문제는 또 어떻고?" 하자,
"글쎄요... 그것도 상황을 봐야 하는데......" 하는 걸로 보면, 산티아고에서 온 트럭에 나를 실어보낸다던 그의 계획은 아직도 확실한 건 아닌가 보았다. 그러니 그것도 애매했다.
어차피 내가 떠나는 것, 내가 주체가 되어 떠나면 그 뿐이지만,
아무래도 그가 주선해 주는 게 편리하긴 할 터라, 내가 지금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고민 중이라서.
그러다 보니 거기 산티아고에 있는 부부에게 내 일정을 확실히 알릴 상황도 아니라서, 나도 현재로썬 뭐라 단정지을 수가 없다. (오늘 윌리암 오지 않아서 점심 약속이 깨졌다면, 그 책임을 윌리암에게 돌려버리고 내일 떠나려고 했고, 산티아고에 있는 부부에게도 내일 가겠다고 확실히 알리려고 했는데......)
그래서,
"근데, 왜 문어는 안 가져오는 거야?" 하고 또 한 마디 했더니,
"얼린 걸 녹혀야 하는데......" 하더니, "아무튼, 오늘 중으로 가져올 게요." 해서,
"여기, 고구마 사놓은 건, 또 어떡하고?" 하자,
"그것도 내가 쪄올 게요." 하며 주섬주섬 챙기기에,
나는 그동안 먹다 남겨진 망고 껍데기 등도 버리려고 나가려는데,
"그것도 주세요. 내가 버릴 게요." 하기에,
"왜, 맨날 니가 버린다는 거야? 내가 먹은 거, 내가 뒤처리를 한다는데?" 했는데도,
"이리 달라니까요!" 하며 그것마저 본인이 빼앗듯 들고 나가 버렸다.
그러니 오늘도 내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망고 쓰레기 버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망고라는 과일이 먹기도 좀 까다롭지만, 그 커다란 씨등 뒤처리 역시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누구든 꺼릴 일인데......
그나저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렇게 되면 내 출발 날짜가 또 하루 이틀 정도는 늦춰질 것 같은데(산티아고에서 온 트럭의 향방과 관련), 거기도 못 맞추게 된다면, 어쩌면 주말도 넘길지 모를 일이었다.
이거야 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기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설사 그렇드라도 내주 초에는 뭔가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이대로 질질 끌며 시간만 허비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바람도 없는 후텁지근한 오전이 이어지고 있는데,
몸의 땀기가 짜증나게 했다.
그 얼마 뒤 윌리암이 문어를 삶아 가져왔는데 금방 삶은 것이어서 따끈따끈해서 그걸 식혀 냉장고에 넣어야 할 것이었고, 점심 약속은 1시로 잡았다고 했다.
#싱거운 송별회#
오늘 송별회를 했다.
어쨌거나 내가 여기 '까보 끄루스'에 와서 두 달 정도를 지냈는데, 떠나는 마당에 최소한 여기서 잘 지냈던 두 사람과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던 내 요청에 의해서.
그런데 그것도 정말, 내가 그들에게 사정사정해서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지,
(잘은 모르겠지만)그들은 헤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들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약속을 한 마을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걸로 송별회를 했는데,
나와 안토니오 영감님이 조금 일찍 식당에 도착했고,
이미 예약은 윌리암이 했기 때문에, 우리는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는데,
곧 물이 나오더니, 이어서 바로 음식도 내오는 것이었다.
내가 다소 당황스러웠는데,
이번에는 안토니오 영감님이 수저를 들고 음식을 먹으려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내가,
"세뇨르 안토니오, 우리 윌리암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렸다가 하면 안 될까요?" 하고 말려서야,
"아, 그럴까요?" 해서 그 위기는 넘겼는데, 시계를 보니 17분 전이어서, 내가 거기 종업원에게,
"우리가 1시에 예약을 했는데, 이렇게 사람도 오지 않았는데 음식을 내오면 어떡합니까?" 하고 다소 짜증스럽게 반응을 하자,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는 얼굴로,
"그럼, 우리가 윌리암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를 걸지요." 하면서 주방쪽으로 갔다.
좌우간 이들은 이런 면에서 보면, 뭔가 어설프고 정리가 덜 돼 있는 것이다.
그 얼마 뒤 결국 윌리암이 헐레벌떡 도착해서야(윌리암도 정확한 사람이라, 늦은 것도 아니었는데) 내 송별회 점심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윌리암은 앉자마자 식탁을 둘러 보더니, 자기 생선 튀김을(큼직한) 반절로 잘라 그 한 조각을 나한테 묻지도 않고 내 접시에 얹어주는 거 아닌가. 나는 '돼지 갈비'를 시켰는데, 그게 양이 적어 보였던가 보았다.
그래서 약간 내가 당황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런 면이 나로하여금 그를 더 신뢰하게 만들기도 해서, 그냥 웃어 넘겼다. 분명, 그게 그의 본심이니까.
그런데 제일 늦게 도착한 그가 정신없이 밥을 먹기에, 그리고 음식이 어느새 반절 정도까지 줄어 있어서,
"윌리암, 너 무슨 바쁜 일 있냐?" 하고 내가 물었더니,
"아니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기에,
"근데, 왜.. 마치 5분 뒤에 나갈 사람처럼 밥을 그리 빨리 먹어?" 하자,
본인도 멋쩍은 듯 피시식 웃는 것이었다.
물론 안토니오 영감님도 묵묵히 식사만 하고 있었는데,
사실 명색은 '송별회 식사'이긴 했지만, 여기는 비노도 없고, 그저 맹숭맹숭하게 음식만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분위기마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재미도 없고......
그나마 내가 어제 마셔서 알고 있던 '따마린도 쥬스'를 시켰기에 망정이지(그런데 그것도 어제는 차가워서 좋았는데 오늘은 미지근해서 별로였다.) 그렇잖았다면 그저 맹물만 마셔야 할 판이었다.
이들은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인데다, 식사 중에 물이거나 음료수도 별로 마시지 않는 듯했다. 그러니 물이 식탁에 있어도 마시는 건 나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 재미도 없어서 내가 에둘러,
"윌리암, 그나저나... 나는 언제 가게 되는 거야?" 하고 슬그머니 다시 물었는데,
"나도 몰라요." 하기에,
"그럼 누가 아는데?" 하면서 나는, "나는 웃겨. 여기 올 때도, 버스표 사야 하는 곳에서, '어디에 갑니까?' 물었을 때도, '모르는데요......' 했다가 망신만 당했던 사람인데, 지금도, 떠날 당사자인데도 언제 가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나도 참 이래저래... 미스테리한 사람이야......' 하고 자조적인 농담을 했더니,
밥을 먹고 있던 두 사람도 킥킥대며 웃었다.
그것 뿐이었다.
그동안 큰 신세를 지면서도 단 한 차례 식사도 함께 하지 못했던 윌리암과, 역시 이방인인 나를 친절하게 맞아준 안토니오 영감님과 단출하나마 오붓하게 식사 한 끼를 하기 위해서 일부러 내가 마련했던 자리였는데,
이들은 이런 자리가 어색한 듯(안토니오 영감님은 지난번 니께로 여동생 집에서도 그랬는데, 윌리암하고는 첫번째 식사자리였는데도, 둘 다 술도 못 마시는 데다 대화도 없이),
그렇게 정말 재미도 어떤 느낌도 없이 식사만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식사비용도 내가 지불했는데,
한국이거나 스페인의 그런 풍성한, 무엇보다도 여기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니, 이럴 경우의 스페인에서라면 풍성한 음식과 비노를 곁들인 식탁 문화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던 나에겐,
싱거워도 너무 싱거운 송별회였다. #
점심을 먹고 나는 안토니오 영감님과 함께 그분의 집으로 갔고,
바닷가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누다 결국 바다에 몸을 담갔다.
이제 떠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물속에 들어가는 게 재미가 붙어(어차피 물속이 제일 시원하니까.) 한참을 놀다가 돌아오려는데,
영감님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곧 집에서 나온 영감님은 이미 물에 들어올 채비를 갖춘 모습이어서, 나는 다시 영감님을 따라 더 깊은 바다 쪽으로 나가, 오늘이 제일 오랫동안 물 속에서 보낸 꼴이다.
그래봤자 구명장비에 의지한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물 밖으로 나왔는데, 안토니오 영감님이 갑자기, 내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하모니카를 불어준 사람이라며,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하모니카를 불어줄 수 있겠느냐기에,
"그럼, 내일 할까요?" 하면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샤워를 하고, 대충 문어와, 망고, 빠빠야 등으로 저녁을 챙겨 먹었는데,
윌리암이 또 고구마를 쪄와,
언제 갈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갈 때까지 아침저녁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밤이 되었는데, 어째 뭔가 잠잠한 것 같아서 보니 오늘도 정전이었다.
게다가 오늘 밤은 바람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보니, 차라리 답답한 기운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낮에 바다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피곤했던 건 좋았는데, 그래서 잠을 자려니,
바람은 없고, 그 와중에 비가 잠잠하게 내리기 시작하는데,
방 안에 모기가 있어서 선풍기를 틀려고 해도 정전이라 그러지도 못해, 모기를 피해 밖으로 도망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비가 뿌리지 않는 테라스 채양 안쪽으로 서성이다가,
아무래도 너무 피곤해서, 안으로 들어와 침대 시트를 뒤집어쓰고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귓가에는 모기 잉잉거리는 소리가 내 잠을 다 빼앗는 기분이었다.
'여기라고 모기가 없을 리 없지! 더구나 여기는 열대기후인데 어떻게 모기가 없겠어?'하기도 했지만,
분명한 건, 여기 ‘바람 잘 통하는 방’에 바람이 세고 잘 통할 때는 모기가 없었지만, 이제 더구나 여름이 가까워지면서는 적지 않은 모기가 나를 못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첫 잠에서 깨어나니 11시 경이었는데, 전기가 들어온 듯 가로등도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바람은 없고 비만 내리고 있었는데, 오늘 따라 왜 이리 후텁지근한지,
'무슨 이런 밤이 다 있을까?' 하고 있었다.
5 . 17
*
비는 멈출 듯 멈출 듯 멈추지 않고 오전 10시 반 이후까지 계속 내렸다.
그렇게 겨우 비가 그치자, 윌리암이 바나나 두 개를 가지고 나타났는데,
여기 와서 내가 그렸던 그림들 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의외였지만,
어쨌거나 나에 대한 관심인지라, 그에게 그림 한 장 한 장을 탁자에 펼쳐 놓으면서 사진을 찍게 해주었다.
그랬더니 인터넷하러 자기 집에 가자기에, 또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오늘은 인터넷 접속이 잘 안 돼서 시간이 지체되었는데, 한참만에 연결이 돼서,
나는 까페에 글을 올린 뒤, 멕시코에 있는 K씨와 문자 교환도 할 수 있었다.
내 쿠바를 떠난 뒤의 일정에 대해서 의견교환을 했던 것이다.
점심을 먹은 뒤, 일 하던 것들을 정리한 다음 안토니오 영감님 집으로 갔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어서,
'낮잠 주무시나?' 하고 나무 그들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런데도 소식이 없어서, 이제는 아예 혼자 바다에 들어가, 둥둥 떠 있다가 나왔는데,
오늘은, 그 시간에도 내 일을 조금 해두었다.
다른 때는 영감님과 함께 있다 보니 주의가 산만해질 것 같아(체통이 서질 않기도 해서) 자제를 했던 일인데,
오늘은 자연스럽게 혼자 있다 보니 자유롭기도 해서, 나는 디카를 자동으로 놓고 내 자신의 물에 뜨는 장면 사진도 찍고 나중에는 동영상까지 찍을 수 있었던 것으로, 그건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혼자 실컷 자유를 누리면서 일까지 했는데도 아무 기척이 없어서,
"세뇰, 안토니오!" 하고 두어 차례 크게 불렀더니, 그제야 영감님이 나왔는데, 막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 안을 보니, 아침 나절에 비가 쏟아졌을 때 물받이로 사용했을 크고 작은 그릇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한 번 비가 오면 엄청 쏟아지는데, 그럴 때마다 영감님이 천장에서 새는 빗물과 전쟁을 치를 모습이 상상이 돼, 나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렇게 오늘은 아예 집 안에 들어가는 대신 바닷가 나무 그늘에 앉았는데,
"어제 부탁하신 대로... 하모니카를 불까요?" 하자,
"그럽시다!" 하고 좋아하셔서,
'바람' '아, 길이여!' 등 내가 즐겨부는 몇 곡을 다시 불었는데, 아까 이미 하모니카를 불어선지 오늘따라 입에 수분이 부족해 하모니카가 뻑뻑해서 고전을 했다.
그래도 아픈 입술로 몇 곡을 부는 것으로, 영감님이 원했던 내 하모니카 연주(?)도 끝을 냈다.
그런 뒤에도 한참을 앉아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집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먼저 들은 것 같아)
"전화 온 것 같은데요?" 하자,
영감님이 서둘러 전화를 받으러 가는데, 아무래도 연세가 있어선지 그리고 서두르다 보니 발걸음 자체가 비쩍비쩍 곧 넘어질 것 같아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아, 저 연세에 저러다 여차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하면서,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가장 필요한 게 '무선 전화기'로구나!' 하게 되었고, '어떻게든 '무선 전화기' 하나 마련해 드려야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쿠바에서 해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윌리암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구해올 수도 있겠지만, 워낙 물자가 부족한 나라이다 보니 그런 걸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그런 걸 알아보러 다니는 것 역시 많은 시간과 정열이 필요할 터라, 어차피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영감님 여동생의 딸 사진을 확대해서 보내드릴 건데, 그럴 때 무선전화기도 함께 보내드리는 방법을 이용하는 게 낫겠다. 그러면 설치하는 건 윌리암이 해 드릴 테니......' 하고도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4시 반이 되었기에, 샤워하고 빨래도 빨아 널고 막 동영상을 확인하려는데 윌리암이 다시 나타났다.
내가 먹을 '저녁 거리'를 데워주겠다기에, 문어와 점심먹기 전에 덜어놓은 음식 접시를 주었더니 가지고 갔는데,
벌써부터(저녁이 돼가고 있으니까) 밤이 걱정스러워지는 것이었다.
모기와의 전쟁이 곧 시작될 터라......
5 . 18
하룻밤 보내는 게 전쟁이다.
어젯밤만 해도 몇 차례 깨어났던가.
잠 잔 시간보다 그 사이에 깨어나, 모기를 피해 시간을 때우는 게 더 길었던 기분이다.
어젯밤엔 남쪽에 심한 번개가 끊임없이 쳤었다.
그곳엔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기에......
그렇다고 여기가 잠잠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새벽녘에 들었던 아침잠 중에 비는 내려, 내가 깨어났을 때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뒤였다.
요즘, ‘우기’ 같다.
정신은 흐리멍텅하고 몸은 찌뿌등하고, 날은 우중충하고, 몸은 끈적거리고......
그렇게 아침을 맞으면서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모기들과의 싸움이(낮 11시가 넘어야 그나마 밤의 모기의 흔적이 사라지니) 차라리 지겹기까지 하다.
지금도 오랜만에 해가 나서 타월을 내다 널어놓았는데, 어느새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다시 걷어 들였다.
그러니 마음 둘 데 없고, 어서 쿠바를 떠나고만 싶은데,
저가 항공권을 사서 왔던 이유로 항공 일정을 바꿀 수가 없다 보니, 어쨌거나 6월 14일 까지는 쿠바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데,
다음 행선지가 될 R과 M 부부가 사는 산티아고의 ‘꼬브레(Cobre)’라고 모기가 없으리란 법 없으니,
거기에 가도, 여기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을 터라, 썩 가고 싶은 기분도 안 난다.
그나마 여기는 방에서 바다라도 내다 볼 수 있는 조건이고, 맘 먹으면 바닷물 속에 몸을 담글 수도 있지만,
거기는 내륙지방이라......
더구나 이렇게 비가 올 거 같은 상황에서는 불던 바람마저도 자니, 사람 미칠 지경이다.
여기에 바람마저 없으면 정말 최악인 것이다.
잠깐 소강상태던 비가 9시 50분이 되면서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비가 내리면서 바람이 불어주어 그래도 숨통이 터지는 기분이어서, 마음을 달래느라 비내리는 아침풍경 동영상을 찍어두기도 했다.
그러다 30분 쯤 뒤엔 다시 해가 솟아나왔는데, 다시 바람은 자고, 또 구름이 해를 덮고......
내가 여기 기후 연구를 하려고 온 기상학자도 아닌데, 요즘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는 기분이고,
일할 엄두를 못내다 보니, 일도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샤워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보니, 시커멓게 탄 건 물론 정말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보이도록 말라 있었다.
5 . 19
'흠, 마음은 이미 쿠바를 떠나 있었구나......' 하다가, '심적으로도 안정이 안 되다 보니 몸이 성할까?' 하면서는,
요즘 신경을 쓰고 있는 글 작업 '독일 이야기'에도 '장출혈'로 죽네사네 하는 내용이 있어서,
'그러고 보니, 여기 '까보 끄루스'에서도 공교롭게 그와 연결되는 일이 하나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인데......' 하면서,
따로 정리해 둔, 제목이 좀 이상한 에세이를 가져오기로 했다.
#똥 색깔#
여기 ‘바람 잘 통하는 방’에서 지내면서 어느 날(한 달 정도 이전) 아침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대변을 보고 화장실 물을 내리려는데(변기의 물도 잘 안 내려간다. 여기는), 똥의 색깔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나야 이 나이 먹도록 하도 ‘장출혈’의 경험이 많았던 사람인지라, 그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또 똥의 색깔만을 봐도 어느 정도 정확한 자가진단까지 내릴 수 있을 정도인데,
특히 요근래 장출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소에도 소화기 계통에 신경을 많이 쓰는 터라 쿠바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똥 색깔이 좋았기(황금색?)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약간 연한 색깔이어서(미색),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장에서의 출혈은 아닐 것이었다.
만약 출혈이라면, 당연히 검은색이어야 할 텐데, 그것과는 너무 다른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상하네! 이거, 열대기후에 와 지내서, 내가 모르는 뭔가 ‘풍토병’에 걸린 건가?'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는, '그렇다고, 내가 알 수가 있나......' 하는, 뭔가 심각한 문제와 맞닥뜨린 기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당연히 좋은 기분일 수 없었던(일종의 '공포감'까지 느꼈던) 나는,
'내일도 그럴까?' 하면서,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고, 일단 지켜볼 수밖에......' 하고 애써 진정을 하긴 했지만, 어찌 아니 불안했겠는가.
'좌우간, 무슨 놈의 팔자가 평생을 소화기 문제로('똥 색깔'의 변화에 전전긍긍해야만 하는) 고통을 당해야만 하니!' 하고 짜증 섞인 불평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 참, 걱정이네! 병원에 가봐야 하나?'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앞이 까마득하기만 했다.
여기 쿠바에서, 특히 이 바닷가 마을에서(그렇잖아도 세상의 '끝 마을'이라고 여기고 있던 난데) 차를 타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더구나 여기는 서울도 아닌지라(나 같이 여기저기 국제적으로 떠돌며 살아온 사람에게) 그 문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보니 급기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거, 미치겠네! 이제 겨우 쿠바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한 가지 이상한 건,
물론 '똥 색깔'이 이상한 건 사실이지만, 몸에 다른 특별한 증상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몸 안에서 피가 샌다면 당연히 '현기증'이 있어야 할 텐데, 이건 분명 피가 새는 건 아니고, 뭔가 '풍토병'이라면 속이 아프다거나 설사를 한다거나 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뭐, 어지럽거나 매스껍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몸의 이상한 증상이라고 해봤자,
모기에 물린 팔과 다리 언저리가 온통 울긋불긋 꽃이 피어 가려운 거 말고는 없기 때문에,
'일단은 두고 보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현상은 2-3일이 지나고, 4-5일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그 상태로.
그러면서 나는 뭔가 그 이유를 추적해보고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먹는 것하고도 관계가 있을 터라,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한 순간,
"아!" 하게 되었다.
100% 확신할 순 없지만, 내 '똥의 색깔'과 내가 아침마다 먹는 여기 ‘분유’ 색깔이 거의 같다는 걸 알아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 바닷가 마을 '까보 끄루스'에서 지내기로 결정한 뒤,
스스로 요리해 먹을 수 없는 환경이자 조건이어서, 그렇다고 날마다 하루 세 끼를 사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그럴 만한 돈도 없다.), 점심 한 끼만 여기 숙소에서 사 먹고, 아침과 저녁은 먹거리를 준비해 냉장고에 보관한 채로 혼자서 해결하고 있는데, 거기에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아침에 우유 한 잔 마시는 게 여기 뿐만이 아닌 한국에서의 일상이기도 한데,
쿠바에서는 '생우유'를 팔지 않고 '분유'를 판다는 사실을 윌리암을 통해 알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분유를 사서 아침마다 물 한 컵에 타서 마시고 있는데,
그 분유의 색깔이 '똥 색깔'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해답은 거기에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상당히 정확한 추론일 것이었고, 그러면서 나는,
'분유가 그렇게 독한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우유를 마시면(한국뿐만이 아니라, 여기 오기 직전 미국에서도), 똥 색깔이 흰색으로 변하지 않는데, 왜 분유를 먹은 뒤부터 똥이 분유색깔로 바뀌었는지,
더구나 여기서의 내 다른 먹거리를 봐도 '밥' '쿠바 빵' '생선' '닭' '고구마' '유까' 등이 주를 이루지만, 대부분이 다 흰색 계통인데, 다른 먹거리는 전혀 대변과 연결이 안 되는데, 왜 '분유'색깔만 영향을 끼치는지......
'거참, 희한하네......' 하긴 했지만, 내가 내릴 수 있는 진단은 그게 전부였다. 그러니 이제는,
'글쎄, 나는 그런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도(분유를 먹는) 그럴까?' 하고 다소 안도의 숨을 쉬고는 있지만, 내가 그걸 확인할 수는 없으니,
아무튼 내가 ‘쿠바’라는 나라에 와서, 그런 현상과도 맞닥뜨리고 있는 걸로만 봐도,
세상은 참 넓다는 것이고 또, 우리가 일정한 장소에 가보지 않고서는 알(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벌어진다는 걸 느낀, 한 예이기도 하다.
'똥 색깔'로...... #
마, 좋기만 한 일은 없어
이 세상 어디에 있든 좋기만 한 일은 없듯,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까보 끄루스'에서 초반의 그 꿈 같던 행복한 나날이 짧기만 했고, 한 번 부정적인 일들이 벌어지면서 나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런 일들이 이어져, 내 의욕과 기운을 빼고 있었다.
#물 한 병도 쉽게 못 사먹는 나라#
내가 쿠바에 처음 도착한 뒤 여기 ‘까보 끄루스’에 오는 과정에서, 두세 차례 물을 사먹으려다 어려움을 겪은 뒤, 나에겐 저절로 여기 쿠바는 ‘물 한 병도 쉽게 못 사먹는 나라’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여긴 ‘사회주의’ 경제 체제라 ‘자본주의’ 국가와는 너무 다르게, 거리에서 물을 잘 팔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먹드라도 ‘비자 카드’로 결재를 해야 하며 ‘여권’까지 보여줘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니,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어! 물 한 병 사 먹는 일 가지고?" 하고 불평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상대방들도,
“여기는 쿠바라서 그래요.”할 정도로 그들도 스스로 인정해주는 일이기는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도 여기서 지내는 사이에 몇 차례 사람들이,
"아니, 어떻게 한국 사람이 여까지 오게 됐어요?" 하고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물어올 때는, 내 도착 상황을 말해주면서 버릇처럼,
“아, 내가 물도 제대로 못 사먹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하곤 했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은 머쓱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현실을 인정하곤 했다.
그런데 그 일로 사건 하나가 터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안토니오’ 영감님하고였다.
물론, 그분도 이미 내가 어떻게 여기에 도착했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는 사실이지만, 처음 그 얘기를 했을 때도 그분 역시 웃으며 그 사실을 인정했었는데,
오늘 말 끝에,
“영감님도 아시다시피, 여기 쿠바는, 물 한 병도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는 나라잖아요?” 했는데, 갑자기 영감님의 표정이 확 바뀌면서(처음 그런 표정을 보였다.),
“우리 쿠바는 물을 안 사 먹어요. 수돗물을 그냥 먹기 때문에, 물을 안 파는 거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분의 정확한 의도를 모른 채,
“그래서 하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여기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어떻게 물을 먹습니까? 사 먹을 수밖에 없는데......” 하자,
“우리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소독도 하고 통제를 하기 때문에 물을 사 먹을 필요가 없지요.” 하는 다소 동문서답식으로 말을 하기에,
“그럼, 여기 오는 관광객들은요? 물 없이 어떻게 여행을 합니까?” 하자,
“그냥, 수돗물을 마시면 되잖아요? 정부에서 믿고 마시게 준비해 주는 거니까.” 하던데,
사실 그쯤에서 나는 얘기를 다른 식으로 돌려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전히,
"저 같은 관광객이 도심을 가다가 갑자기 목이 마려운데, 수돗물을 어디 가서 마시죠?" 하고 따지듯 물는데,
잘은 모르지만, 영감님은 다른 세상에 대해선 전혀 모르기 때문에(쿠바에서도 이 부근에서만 살아서) 요즘 세상에 어디를 가도 관광객들이 물을 사 마신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한 말이란 걸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구나 내 입에서 너무 쉽게 나온, ‘물 한 병 제대로 못 사먹는 나라’라는 말이, 쿠바를 얕잡아보고 하는 말이란 오해를 한 것 같았는데, 그로 인해 기분이 몹시 상했던가 보았다. 나름 자존심은 강한 분인데, 그 분 앞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해대니.
여태까지는 그런 식으로 거부반응이거나 방어자세를 취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이 세상에는요, 그러니까 다른 나라들은요, 어딜 가드래도 다 물을 판답니다. 물론 그런 나라들 모두도, 여기 쿠바처럼, 어쩌면 더 철저하게 정부에서는 수돗물을 관리하면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그냥 마시도록 홍보도 하면서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그 나라를 찾아온 관광객들은 물을 사 마시지요. 그리고 저만 해도, 집에선 그냥 수돗물로 음식해서 먹거든요. 그렇지만 어딘가 여행을 할 땐, 그저 편하게 현지에서 쉽게 사 마시거든요?” 하는데도,
“우리 쿠바는 물도 깨끗해서, 안 사먹어도 되거든요.” 하시기에,(그건 거부반응이 분명해서)
나는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로 이분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하는, 나 역시 당황한 상태로.
그러고 보니, 그건 또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안토니오 영감님과 며칠 전 '니께로'의 그분 여동생 집에 갔을 때의 얘기하고도 이어질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돌아다니며 떠돌이처럼 살고 있다고 하니까, 그 여동생 분이,
“우리 쿠바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 갈 곳이 너무 많거든요? 그 구경만 하려고 해도 몇 달은 걸릴 텐데......”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쿠바도 아름다운 나라니까.
그렇지만, 그분 역시 70 평생 해외 여행 한 번 나간 적이 없다고 했고, 안토니오 영감님 역시 80 평생 쿠바 자체 내에서만 사셨기에,
요 근래에도 영감님과 얘기를 나누다, 내가 다녔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얘기를 할라치면,
“아, 사실은 나도 그렇게 세상 여기저기 다니며 살고 싶었었는데......” 하며 나를 부러워하곤 했던 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이 세상은 너무나 넓고 커서, 우리가 모르는 아름다운 비경이 너무나 많이 숨어있답니다. 물론 쿠바도 아름다운 곳이 많겠지만, 꼭 여기 쿠바만 아름다운 게 아닌, 이 세상은 여기만큼이나 아니면 더 아름다운 곳들도 있을 겁니다. 사람에 따라서 보기에 따라서 다 다르겠지만요......’ 하는 말도 해드릴 수 없어서, 그저 생각만을 해왔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는 더더욱 영감님과 그런 바깥 세상 얘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분위기는 썰렁해져 있었고, 약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에,
“여기는 바다가 참 맑아요!" 하면서, "오늘도 여기에 왔으니, 바닷물 속에나 들어갈까?” 하고 나는 딴청을 부리며 그 상황을 모면하기는 했는데...... #
*
어젯밤에도 몇 차례 깼는지 모른다.
막 잠이 들었는데 옆방에 사람이 들어오는 바람에(문을 쾅 쾅 닫고, 큰 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저절로 잠에서 깼고,
짐을 풀고 나가는 바람에 다시 누웠다가 일어나 보니 11시 경이었다.
여기는 창은 있는데 유리가 없는 구조라,
나무로 된 창틀 차단막은 그 각도에 따라 빛과 바람과 빗물이 들어오거나 차단되는데,
아무리 꽉 닫아도 그 틈이 존재해(이들 하는 일이 엉성하고 뒷마무리가 허술하다 보니) 어느 틈 사이로도 물보라가 들어오니(당연히 모기 등 벌레들도 들어와),
비만 내렸다 하면 창 쪽에 있는 물건들은 눅눅해져,
모기에게 물리면서도 불을 켜면 또 다른 벌레들도 몰려오기 때문에 그냥 어둠 속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들이 돌아왔고,
다시 어수선하게 떠들다가 불을 끄던데,
그 얼마 뒤에야 나는 다시 모기를 피한답시고 조용히 테라스로 나가 산책(무작정 천천히 걷기. 가만히 있으면 모기들 극성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을 하는 등 시간을 보냈다.
그런 뒤 들어와 다시 누웠는데, 일어나 보니 2시 20분경이었다.
또 그저 앉아 있다 다시 누워 일어나 보니 4시.
그렇게 몇 번을 눕고 깼는지 모른다.
그래도 어젯밤은 시종일관 바람이 불었고, 비는 내리지 않아 모기가 그다지 많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물론 몸은 끈끈하고 눅눅했지만......
아침잠이 잠시 들어주었던 것 같은데, 역시 눅눅한 몸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곧 6시 반 버스가 들어왔고, 그 얼마 뒤 마을 가운데 모퉁이에 서 있던 사람들을 태우고 니께로를 향해 떠났다.
내내 주변의 닭 우는 소리가 시끄럽고, 바람이 몹시 부는 아침이다.
그만큼 바다의 움직임도 부산스럽다.
고구마 한 쪽과 망고 하나로 아침을 때웠다.
그런데도 바람이 자질 않아, 정문 현관을 닫고 앉아있었는데,
오늘은 아침인데도 방안에 개미가 어찌나 많은지, 시간대별로 나타나 그 개미들이 음식물 떨어지거나 단 것이 있으면 장사진을 치며 방안을 점령해 버려(개미도 한 종류가 아닌, 내가 보기로도 서너 종류는 되는데, 방바닥, 벽, 침대, 작업대 등 천지 사방 냉장고 속 빼고는 안 다니는 데가 없이, 노트북이며 디카 핸드폰에도 들러붙어),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도 긴장을 해야 하는 등 보통 신경이 써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나면 또 모르지만, 이것들이 가끔 가다 물기까지 하니, 그렇잖아도 모기한테 물리는 것도 짜증나는데 개미까지 물어대니 짜증만 나,
'오늘도 하루를 어떻게 보낸다지?' 하는 걱정만 앞선다.
그런데 바람이 세다는 건 뭔가 날씨의 변화가 클 거라는 뜻이고,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심란하기만 했다.
그래봤자 오늘이 20일.
앞으로도 내가 쿠바에 머물어야 할 날이 많이 남아있는데, 도대체 나는 이 마을을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게 우울한 기분으로 오전을 보내고 점심이 됐는데,
며칠 전 돈의 맛을 들였을 땐 반짝 잘하던 윌리암이 도통 나타나질 않는 것이었다.
어제 오후에, 본인이 오늘 내 점심을 가져온다고 했었고,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그 얘기를 하던데......
그런데 점심 때가 지나가고 있는데(그것도 좀 늦게) 와서는,
"인야, 내가 점심을 준비할 수 없으니, 차라리... 지금 식당에 가서 밥을 주문해, 내가 여기로 가져오면 안 될까요?" 하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던 나는,
"뭐야? 식당이 어딘데(제법 멀다), 거기서 밥을 배달해 와? 나도 다리가 있거든?" 하고 화를 내면서, "내 발로 찾아가 먹을 테니, 너는 니 일이나 하셔!" 하고는 나와버렸다.
그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길로 나는 아랫마을 쪽으로 가다가 중간의 다른 식당에 들렀다.
그런데 거기도 서비스는 엉망이었고, 식탁보를 까는데 보니 제대로 닦지도 않은 채(이전에 먹었던 사람들의 오물이 남아있을 정도)여서, 밥맛이 싹 달아나고도 있었다.
'이들 하는 일이 그렇지......' 하는 심정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밥이 나왔는데,
밥은 어찌나 많이 갖다 주는지(여기도 바나나 요리(나는 손도 대지 않았고), 오이만 잘라놓고 간도 돼 있지 않은 걸 샐러드라고 가져와)
그래도 생선은 싱싱해서, 생선하고 밥 3분의1 정도만을 먹었을 뿐이다.
그런 뒤, 이제는 안토니오 영감님 집으로 향했다.
오늘이 마지막 발걸음이었다.
#영감님과의 이별#
오늘은 안토니오 영감님과 이별을 해야 하는 날이다.
점심을 먹은 뒤, 천천히 걸어서 영감님 집으로 향했다. 햇볕이 뜨거웠는데,
‘오늘이 마지막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약간 스산한 기분이기는 했다.
그런데 오늘은 영감님이 집 안이 아닌, 바닷가에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다가가도 모르다가,
“세뇰, 안토니오!” 하고 부르니,
“오! 아미고!”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저께의 말다툼으로 약간 소원했던 걸 서로가 감추려다 보니,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무래도 이별 인사를 해야만 하다 보니,
‘노인에게 무슨 말로 이별을 한단 말인가......’ 하는 걱정에, 나는 자꾸만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6월 초에 내 큰 아들이 오는데, 그 때 되면 당신이 내 아들을 알게 될 거요.” 하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혀왔다. 그렇지만,
“근데, 그때엔 제가 여기에 없는데요......” 할 수밖에 없었는데,
“언제 갈 건데?” 하고 묻기에,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 같습니다.” 고 그 분의 눈을 바라보자,
“벌써?” 하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허망한 표정이었다.
이미 '송별회'까지 했음에도, 노인 역시 내가 떠날 차량편에 대해서 알고 계셨기 때문에, 내 출발일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고 있어서겠지만(어쩌면 앞으로도 한참 걸릴 거라는 생각이었던 듯),
그러니 나도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사람은 만나면 언제든 헤어지는 거잖아요?” 하고 말았는데,
잠시 멍하니 앉아 계시던 그 분이,
“앞으로 그리워질 거 같은데......” 하는 것이었다.
나는 움찔하기는 했지만 거기에 따른 대답은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80이신 홀로 사는 노인께, 내가 미래에 대해 무슨 말(덕담?)을 한단 말인가.
그러고서 둘이는 한참을 그렇게 바다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는데,
그 양반 평소와는 달리, 혼자 무슨 노랜가를 웅얼대기도 하던데,
그래도 나는 그대로 있었다. 그러자,
“오늘은 바다에 안 들어갈 거요?” 하고 물어,
“그러게요. 아무래도 마지막 날이니... 들어가 봐야겠지요? 바다하고도 작별을 해야 할 테니까요......” 하자,
바로 일어나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 내가 타던 구명장비를 내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바다에 들어갔는데,
가만히 보니 오늘이 여태까지 들어갔던 중 어쩌면 바닷물의 수위가 제일 높은 것 같았다.
더구나 그저께는 말끔했었는데, 오늘은 이 쪽까지 몰려와 있던 모자반 때문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래도 한참을 물에서 놀았다. 아니, 마지막이니 얼마든지 물속에서 놀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수심이 조금 깊어진만큼 물살이 세진 것도 있어서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마지막으로 허공에 떠있던 ‘군함조’와 같은 ‘부유(浮游)’를 느껴보기 위해, 나도 물 위에 누워 있어 보았다. 한참을......
그래, 내가 여기 ‘카리브 해’에 와서야 이렇게 물에 떠 있는 기분을 제대로 느껴본 거지. 평생 동안 알지 못했던......
물론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그건 진심이고 나는 그랬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을 그림에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를 했으니까.
그러다 물에서 나오려는데 영감님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집 안에 들어가셨나 보다.’ 했는데, 상의를 벗고 물을 짜낸 다음 뭍으로 올라오니,
어?
그분은 나무에 누워있는 거 아닌가.
적잖이 놀라긴 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로와 보여, 나는 얼른 디카를 챙겨 셔터를 누르려는데, 하필이면 그때 몸을 움직이며 눈을 뜨면서,
“나오셨어?” 하며 웃었다.
“예,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저도 이 바다가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 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아, 여태까지 정전이었는데, 지금 풀린 모양이오.” 하던데,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말 끝에,
“오늘 정전도, 예보는 있었다오.”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 내가 또 다시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그저껜가?
그 날도 역시 정전이었고, 영감님이 음악도 못 들으신다기에,
“여기는 정전이 너무 잦은 것 같아요.” 했더니,
“한국은 어떤데요?” 하기에,
“한국은 1 년에 한두 번, 아니면 서너 번? 정전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정전이 있다고 해도 미리 며칠 전부터 예고를 하구요.(여기는 어떤 때는 하루에도 갑자기 두세 차례 정전이 되곤 해서 했던 말이었다.) 근데, 만약 한국에서 이렇게 정전이 잦았다가는, 그 관계자가 당장 목이 잘릴 겁니다.” 하고 말했던 게 화근이었다. 내 말에 기분이 상했던지 영감님의 표정이 약간 바뀌면서,
“한국은 돈이 많은 나라라 그런가 본데, 우리는 가난해서 그래요. 그렇지만, 여기도 정전이 될 때는 예고를 한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아차, 실수했구나!’ 하고 머쓱해 하면서도,
"제가 돈 문제를 얘기한 게 아니라, 삶의 모습을 얘기하려 했던 건데......" 하고 어물거렸었는데,
거기에 따른 반응이라는 게 분명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어색해질 것 같아, 그리고 어차피 그러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얼른,
“마지막으로 전화 한 통 쓰고 가겠습니다!” 하고 일어나자,
“얼마든지 쓰세요.” 하면서 영감님 집안으로 들어가,
‘산티아고 데 쿠바’에 있는 ‘R’과 통화를 했다.
아직도 확실하진 않지만, 내일이나 모레 사이에 트럭이 나를 태우고 그 쪽으로 간다면 바로 그 전에 전화를 걸겠고, 그렇잖으면 월요일 아침 내가 여기를 출발한 다음, ‘니께로’에 내려서 바로 전화를 하겠다고.
그렇게 전화를 건 뒤, 천천히 집안을 살펴 보니,
어제 오후에 쏟아졌던 폭우의 흔적이 여실했다. 이 나무집은 천장이 새기 때문에 비만 오면 적잖은 물이 떨어져서, 그 아래에 그릇이란 그릇은 다 받쳐야 하는데(그러고도 물의 양이 많아서 수시로 갈아줘야 할 것인데) 그 그릇들이 또 그럴 경우를 위해 대기중이었고, 물기가 마른 바닥은 비교적 깨끗했지만, 그 사이엔 두어 군데 고양이 똥인지가 보여, 나에게선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떠날 사람인데, 이젠 그런 것들을 다 잊어야만 할 것이었다.
천천히 집을 나왔던 내가 영감님 쪽으로 가자,
"전화 통화는 잘 했소?" 하기에,
"예, 하긴 했는데요... 아무튼, 이제 저는... 가야겠습니다.” 하자,
“나에겐 여기가 천국이라오.” 하는, 역시 뭔가 동문서답의 말인 것 같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여 드리면서도, 머릿속에선,
‘그 말씀은 물론 맞지요, 그런데 영감님 혼자 사시는데, 좀도둑이 가끔씩 귀찮게 굴고(지금도 점점 조여오는 느낌이던데), 비만 내렸다 하면 천장이 새서 집안 가득 물난리가 나고, 모기장 안에서 자야만 하는데도 ‘천국’이라시니......’ 하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이별은 현실이어서, 뭔가 이별의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다시 온다'거나, '행복하게 잘 계시라'는, '건강하게 어느 날 다시 만나자'는, 그런 얘기가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서, 허투루 그런 말을 꺼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뭔가 희망적인 말도, 그렇다고 절망적인 말도 할 수 없었다.(여든 된 다른 세상을 알지 못하는 노인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대로,
"안녕히 계세요(Adios)!" 하면서 동양식으로 고개를 숙이는 인사를 하며 돌아서자,
"좋은 여행 되세요(Buena Suerte! Y Buen Viaje!" 하는 소리가 들렸고(영감님도 삶의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미련이 남을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뒤 돌아봤자 서로가 미련만 생길 터라... 그냥 꼿꼿한 척 그 길로 돌아와버렸다.
상당히 어려운 이별이기도 했다. #
그렇게 돌아와 속이 출출해서 냉장고 안에 있던 문어와 망고 등으로 간단하게 저녁까지 챙겨먹은 뒤,
샤워를 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내다 보니, 윌리암이 저녁을 갖고 도착해 있었다. 그러니,
"야, 윌리암! 나, 방금 전에 저녁 챙겨 먹었거든? 그리고, 이제와 이게 무슨 소용이야? 점심은 이미 지나고도 또 지났는데!"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그는,
"오늘,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고, 한 녀석은 늦게 와서... 이래저래 경황이 없었어요." 하는데, 어차피 변명이었고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저녁을 가져온 성의는 인정을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윌리암, 어차피 나는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이걸 먹을 순 없어. 너도 알잖아? 내가 음식을 조금밖에 먹지 않는 걸.... 그러니, 아까운 음식 다 식고 굳을 텐데......" 하고 난색을 표하자,
"그럼, 그냥 가져갈까요?" 하기에,
"아무래도 그게 낫겠어. 아직은 따뜻하니 집에 가서 바로 먹어도 될 거고......"
"알았어요." 하면서 그가 그대로 돌아가려 하기에,
"그럼, 내일 점심은?" 하고 내가 다시 묻자,
"내가 가져올 게요." 하기에,
"그럼, 내일 나는 식당에 가지 않는다, 알아서 해." 하고 재차 확인까지 해주었다.
초저녁부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그나마 기분이 좀 나아지고 있었다.
5 . 20
'이 즈음은 하루 일기가 퍽 기네!' 하면서도 나는, '나도 가끔씩은 종잡을 수가 없어...... 어떤 때는 단 한두 줄 써놓고 끝났다고 하는 사람인데......'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
오늘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어저께 안토니오 영감님과도 이별을 했고,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휴대용 가방(하도 메고 다녀 땀(염분)에 절어선지 그 끈이 끈적거려)을 빨고, 어젯밤 입고 잤던 티셔츠도 빨아 널었다.
해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떠난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짐을 싸기 위해 조금씩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못 가게 될 것 같았다.
나를 ‘산티아고 데 쿠바’에 실어갈 트럭이 오늘에나 여기에 오게 된다는데,
그게 연결이 잘 안 되나 보았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월요일에나 떠나게 된다는 얘긴데......
두 밤이나 더 자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도 예상해둔 일이긴 했다.
그렇지만 한 번 떠난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어서 빨리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기 전에 아랫마을 사진을 두어 장 찍어두려고 나가려는데,(여태까지 바다 사진은 수도 없이 찍었지만, 마을 사진은 없어서)
윌리암이 나타났는데, ‘망고 쥬스’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시원하게 쥬스를 마시면서,
"나 돌아가는 건?" 하고 물으니, 그 역시 아직도 정확히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좌우간 이 나라는, 여행도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문제다.
그러면 어쨌든, 오늘 내일 가기는 그른 것 같았는데,
이틀 정도 늦게 떠난다는 자세로 돌입해야 할 듯했다.
가기는 할 텐데, 이거... 가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오후가 되면서 날은 미친 듯 이상해져 갔다.
하늘엔 여전히 뿌연 구름이 껴있는데, 해 역시 뿌옇게 그 구름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기를 내뿜어 날이 점점 후텁지근해져 갔다.
여기 사람들이 왜 다 웃통을 벗고 다니는지 알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끈적거리고 옷에 땀이 배 눅눅해지니, 차라리 웃통을 벗고 있는 게 훨씬 시원하고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런데 나는 아직도 간과하고 있었던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마을에 오는 길이 험난했기 때문에, 이제 '아바나'로 돌아가는 길은 수월할 줄 알았다.
그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고, 하기도 싫으니까.(미리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하면 안 될 리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게 내 생각처럼 만만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내 딴에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시간을 갖고 ‘돌아가는 길’에 대한 준비를 해왔음에도(윌리암과 상의도 했고, 다그치기도 수 차례), 결과적으로 뭐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는 것이다.
이들 말로는, 내가 산티아고에서 온 트럭을 타고 가면, 중간에 차를 바꿔 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쉽게 갈 수 있다기에, 당연히 나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산티아고에서 오는 트럭이 내 일정과 맞아야만 한다는 뭔가 ‘운’(?)과 관련돼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내가 가고 싶어도 그런 차량이 오지 않으면, 그리고 설사 왔다 해도 그 차량과의 조율에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그 차량을 얻어타고 가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지인들만 믿고 그렇게 되겠지 하고 기다려 왔던 나는, 이제는 가야 할 때가 됐는데도(지나고 있는데도)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이, 여전히 ‘산티아고에서 오는 까미온(트럭)’에만 목을 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우스갯소리로,
"나는 올 때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행선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언제 가는지조차 모르는 나그네가 돼버렸네!" 하곤 했는데,
나를 도와줄 그들도 그 소리에 그저 웃기만 할 뿐, 뭔가 확실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거,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겠는 걸?' 하는 우려가 아니 들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것도 이제 막바지로 접어든 상태에서......
그러니,
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여행마저 맘대로 할 수 없으니, 나는 어쩌란 말인가......
5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