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에 대하여
1.개요
열왕기는 다윗 왕의 말년(BC970년)에서 여호야킨 왕이 바빌론 제국 유배에서 풀려난(BC561년) 때까지 410년간의 왕정 이야기이다. 상권에서는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나아갈 때 번영했지만, 하느님을 배신했을 왕국이 쇠퇴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권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배반한 원인과 과정, 그 결과를 경고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말씀 안에 살게하기 위해 저술되었다.
2.내용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 실패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열왕기는 400년간 거듭된 불충한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이다. 국왕도 지도자도 백성도 야훼 하느님을 믿어 그분께 의지하려는 마음은 없고 병력,무기, 강한 이웃 나라의 외세에 의지하려는 꼴이 되었다. 백성은 백성대로 무슨 이익이 있을까하여 우상에 매달린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받았던 약속의 땅을 빼앗기고, 하느님이 계시는 증표인 성전을 파괴당하고 영원하리라는 다윗왕가의 왕도 포로로 끌려가 모든 것이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백주간 도움책)
3.서명
히브리어로 ‘뮬라킴(임금들)’이라 한다. 열왕기란 서명 우리말도 여기서 나왔다.
4. 저술시기
유다왕국 예루살렘에는 몇가지 역사적인 자료들이 있었다. 거기에 유대 시대에 보충되고 유배후에 현재의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추정한다.
5.저자
(1)열왕기 편집자는 이전의 자료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열왕기가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 아닌 여러 단계를 거쳤음을 시사한다.(어떤 학자는 신명기도 포함시킨다) 1열왕 11,41;14,29;19,29는 ‘솔로몬의 실록’,‘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유다 임금들의 실록’을 제시한다. 이런 실록들은 본문 편집 출발의 기본이 되는 문헌들이다. 또한 성전문서고들이 있었다(1열왕 4,1-6;7-19;5,7-8). 스바여왕의 이야기는 별도 전승이다(1열왕 10,1-18).아합왕에 대해서는 지지와 비판의 상반된 두 자료가 드러난다.(1열왕22,9,35).요시아왕의 기록(2열왕 22-23,30)은 공식적 기록이 아닌 다른 사료에서 나온 것일수도 있다
(1)먼저 여호수아.판관기 사무엘기의 기초자료를 있었을 것이다.
(2)열왕기 첫 번째 편집자는 1열왕 1장에서 2열왕 20장까지를 저술하였을 것이다. 그는 임금들의 연대기에 솔로몬 행적기와 왕들의 실록이 담긴 문헌,구전전승을 이용하고,기원전 587년 망국사건 목격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팔레스티아의 한 사제가 기원전580년경에 썼을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3) 기원전 550년경에 두 번째 편집자가 나타나 선임자의 자료에 자신이 수집한 일화와 전승을 이용하여 보완하였을 것이다. 그가 첨가한 내용은 다윗의 왕위 계승과 관련된 이야기(1열왕 1,1-2,11)와 에루살렘 포위하는 본문(2열왕 18-19장 이사 36-39장)을 들수 있다. 스바 여왕의 전승도 이 때 편집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언자들과 모세 율법이 이 편집 안에서 각별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연결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여호수아기에서 열왕기 하권까지 이어진다), 이 두 편집자를 예언자 집단에 속한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예레미야의 제자가 아니었나 추정한다.
(4)기원전 6세기경 레위지파 서기관들이 이 책에 부차적인 요소를 첨가한 것으로 추정한다.
6.자료
열왕기 본문은 수많은 역사적 자료가 있다. 그러나 단순한 역사 기록만의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 역사의 일정 기간에 대한 신학적 반성이라 할 수 있다.
1)실록:
솔로몬 실록(1열왕 1,41)과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19), ’유다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20)이다. 이 실록들은 현재 열왕기의 편집의 출발 문헌들이다. 이 문헌들은 대립적인 남북관계 입장 서로 관점이 다르다. 연대기적 혼란은 필사자의 시대에 대한 혼란과 편집자의 오류 가능성이다.
2)다른 자료들:1열왕 4,1-19;5,7-8참조
3)특별한 단편 전승들:스바 여왕 이야기(1열왕 10,1-13)
4)아합왕에 대한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헌:비판적이며 긍정적(1열왕 22,9.35)
5)요시아왕 실록: 2열왕 22-23,30은 공식적 실록이 아닌 별도의 실록일 가능성있다.
6)예언자들의 설화(엘리야, 엘리사.아히야,예후, 미카야, 요나)
예언자 제자들에 의한 구전자료.
7.열왕기의 연대: 부정확한 이유
1)편집자가 두 왕국 연대 동시 제시하는데 이것은 부정확 체계의 기본 원인이 된다.
2)필경사들의 오류: 원래의 숫자를 뒤바꾸어 놓거나 다른 숫자와 혼동했을 가능성
3)열왕기 안에 서로 겹치는 여러 연대체계가 있다.
예: 왕국분영에서 아합왕의 통치 말기까지를(기원전 933-853)를 80년으로 보는데, 유다 연대에 의하면 84년, 북왕국은 78년이다. 그래서 이 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는 75년이 된다.
8. 구분
히브리말 성경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어 번역자들이 이것을 둘로 나누웠다. 이후 이 분리는 점차 굳어져 아하즈야 왕 통치 시대(1열왕 22,52-54~2열왕 1장)와 엘리야 예언자 이야기(1열왕 17장~2열왕 2장)를 상*하두 권에 갈라놓았다. 열왕기는 독립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를 포함하는(여기에는 신명기도 포함) 하나의 역사 문헌에 속해 있었으리라고 본다.(예: 1열왕 1-2,11은 다윗의 통치를 전하는 2사무엘기와 곧바로 연결된다) 사무엘기와 열왕기가 왜 구분되었는지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한다. (혹시 다윗과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역대기 신학 사상 반영은 아닐까? 이 입장은 북 왕국에 비판적이다. 가령, 사무엘기는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가 사울왕부터 시작되었음을 전한다. 반면 열왕기는 다윗왕부터 시작한다)
열왕기는 상*하권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열왕기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에 대해(1-11장)과, 남북분단(12-22장)이다. 2열왕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1-17장) 남 유다의 멸망(18-25)장이다.
성서백주간 구분은 1열왕기를 다섯으로 구분한다.
-1열왕:
=1-2장,다윗의 최후/ 3-10장, 솔로몬의 번영/11장,솔로몬의 암영/12-13장,왕국분열/14-29장,왕국분열
2열왕:
1-17장, 북왕국 멸망/ 18-25 남왕국 멸망
9.신학
신명기계 어휘와 표현들이 많다. 열왕기는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반성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 가운데 하나인 오므리 왕의 통치를 매우 간단한게 다룬다(1열왕16,2-26). 또한 3년간 계속된 북왕국 사마리아 포위와 북왕국 붕괴를 단 몇줄로 처리한다.(2열왕 17,3-6;18,9-12) 예언 문학은 신명기계를 계승한다.
1)왕정 제도
신명기계와 예언자사상이 전하는 왕정신학을 제시한다. 참다운 임금은 하느님의 규정을 지키는 인물이다. 왕은 주님의 길을 걸으며, 그분(율법)의 명령을 지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와 증언을 지킨다.(1열왕2,3) 임금은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을 섬기고(1열왕 12,7-8), 그들을 지혜와 정의로 다스리려야 한다.(1열왕 3,8-9) 이 두 가지가 기준으로 임금들에 대해 짧은 평가를 내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임금보다 ‘악한 짓을 저질렀다’고 평가를 받은 임금이 34명이나 된다. 예를 들면 주님께 불충은, 우상숭배, 억압과 폭력이며, 예언자들에 대한 박해, 주님이 허락없이 전쟁, 어린이 인신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북왕국 왕들에게 대한 가장 큰 비난은 율법을 거스리는 경신례로 죄를 지은 것이다. 열왕기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금들과 백성들의 이러한 죄의 결과라고 본다.
2) 다윗 왕조
다윗은 이상적 군왕으로 제시되어 역대 임금들의 평가 기준이 된다(긍정평가: 솔로몬, 아사, 요시아). 다윗 왕손들의 불순종은 멸망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저자는 다윗 후손이 주님이 명령하신 조건에 충실하다면, 다윗 왕좌에 대한 주님의 약속은 영원하리라고 한다.(1열왕 2,4;2사무7,12-14)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등불 하나를 남겨두신다(2열왕 8,19;1열왕15,11) 바빌론 제국 유배살이 가운데서 유다 왕손 여호야킨은 살아남는다(2열왕 25,27-30).
3) 예루살렘 성전과 사제계급
신명기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 열왕기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예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이 선택하신 도성이다(1열왕 8,12). 그곳은 성전의 성읍이다. 성소의 중요성은 성전 봉헌시 솔로몬이 바친 기도에서 드러난다. 성전은 하느님의 백성이 생존 환경에서 하느님과 도움을 빌며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이다(탈출 33,7 만남의 천막 참조). 종교개혁도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2열왕 22-23장), 하느님의 가르침인 율법을 발견한 곳도 성전이며 이후 모든 이스라엘의 예배 생활의 중심이 된다. 열왕기 저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이전에 예루살렘 밖에서 제사가 바쳐졌음을 여러 번 제시 한다. 사실 예루살렘 밖에서의 이러한 제사는 역사적으로 합법한 것이었다(1열왕 3,2;22.41/2열왕 12.4.14,4;15,4.35절;1열왕 18장). 열왕기 저자는 레위지파와 아론가문의 사제들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만을 중심으로 한 경신례 정통성을 철저히 강조한다. 경신례의 분열은 왕조의 분열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성전을 경신례 생활의 중심으로 부각시킨 탓에 사제들은 경신례에 의해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요시아의 종교 개혁에 의해 제사 봉헌 권한은, 레위 지파에 속한 사제들에만 귀속된다. 1열왕 8,1-6은 솔로몬 시대부터 이것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아턀야 여왕 시대 반역을 도모하여 요아스를 왕위에 앉히고 성왕으로 이끈 사람도 여호야다 사제였다.(2열왕12,3)
4) 예언자
열왕기는 예언자들(엘리야, 엘리사, 나탄, 스마야, 아히야, 미카야, 이사야, 여예언자 훌다)의 말이나 행동의 특별한 위치를 반영한다. 예언자들은 종교영역(기적) 못지않게, 사회 특히 정치적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것은 정치와 왕들이 모두 한 분 “임금님”께 속하기 때문이다(이사 6,5;44,6;즈카14,16).
나탄은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1,10~ 17) 엘리야는 하자엘을 아람 임금으로, 예후를 이스라엘 임금으로 기름 부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1 열왕 19,15 이하; 2열왕 9,1-3;3 8,11-13 참조). 그런가하면 죽음의 신탁을 전하여 임금과 그 집안에 파멸을 선언하는 것도 예언자들의 몫이다. 아히야 예언자와 예로보암 임금(1열왕 14, 10- 11), 엘리야 예언자와 아합 임금(1열왕 21,21- 24)경우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 제국의 승리를 예고한다(2열왕 20,14-19). 그런가 하면 예언자들이 적대국과 싸우는 이스라엘 임금들의 승리를 알려 주거나( 엘리사:2 열왕 7장 1- 13; 17절-19; 이사야 2 열왕 19 장), 전투 행동에 개입하기도 한다.(무명의 예언자 1열왕, 20, 13-14;미카야 1열왕 22, 19- 28. 엘리사:2 열왕 3,9-19;6,8-7,20). 엘리야는 아합 임금 앞에서 포도밭 임자 나봇의 재산을 빼앗았음을 비난한다(1열왕 21,3-17이하).
참조:주교회의 주석서, 성서백주간 도움책 역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