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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과제 - 각성과 자각의 길
권혁수
1908년 “도화임본(圖畵臨本)”의 삽화(이도영 그림)로 시작된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층위의 시대적 명제를 갖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60년대까지는 도구적 기능에 의한 <삽화>의 시대였고, 70년대는 시각 디자인의 장르 특성을 가시화한 <그래픽 아트>의 시대, 80년대는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독립적 인식, 즉 <시각 언어>의 시대였다. 이 시대적 명제들은 한 시대를 설명하는 특징적인 형식이면서 동시에 일러스트레이션의 내용적인 원리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가 이를 따르고 있다. 선사시대의 동굴의 벽화로부터 고대의 그림문자, 중세의 필사본 삽화, 르네상스의 판 인쇄화, 근대의 대중미술, 현대의 멀티 미디어 아트에 이르기까지 일러스트레이션은 그 시대의 초상(portrait)으로서 주술적 예식, 종교적 신념, 관습적 일상, 정치적 이슈, 공공적 합의 등을 언론, 광고, 출판, 통신, 패션 등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건네고 주고받는 소통방식의 예술로 존재해왔다.
특히 7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은 그 세계를 크게 확장하면서 시각 디자인분야 전영역에서 중요한 크리에이티브 프로그램으로 활용되었다.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과 토이북 일러스트레이션, 신문.잡지의 저널리스틱 일러스트레이션(만평, 만화), 광고분야의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과 제품 일러스트레이션, 정보분야의 유아 학습, 생태, 의학, 정밀 기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션 등 시각문화 환경 전반에 팬시용품에서 벽화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실험과 성과가 있었다. 특히 80년대에는 미술형식의 사회적 실천이라는 예술 이데올로기와 함께 리얼리즘 미학의 전위적 미술운동의 전략적인 모델로서 그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기도 했다.
90년이 지난 오늘, 1998년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은 몇 가지 사실과 함께 한 해를 마감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해방 이후 1세대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들의 타계 소식이다. 9월과 10월 이우경, 김영주 님의 잇따른 영면이었다. 50여년 동안 주로 신문과 잡지에 삽화를 그렸고,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어온 이들은 무지개회,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국출판미술가협회를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션계의 원로로서 활동해왔다. 여전히 국내의 미술, 디자인 전문지로부터 주목받지 못한 채, 신문의 인물동정란에 단신으로 전해진 두 예술가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도 쓸쓸했다. 두 번째는 일러스트레이션 연구분야의 학술적인 자료로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의 선구자격인 18세기 영국의 풍속화가 윌리엄 호가드(William Hogarth)의 삶과 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서가 번역 출판된 것이다. 런던대학 미술사학과 데이비드 빈드먼(David Bindman)교수가 쓴 이 평전은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미술사적 가치를 재고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세 번째는 한국출판미술가협회와 한국일러스아트학회(SOKI : The Society of Korea Illusart)가 각각 공모전 - <’98 한국출판미술대전>, <‘98 SOKI 국제 CyberNet 공모전> - 을 통해 “순수 일러스트레이션”, “갤러리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별도의 일러스트레이션 유형으로 공식화했다는 것이다. 이 유형은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즉 <순수 미술과는 구별되는, 사회적인 목적에 따른 미술형식 =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등식에 상반되는 것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의 예술적 존재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 <일러스트레이션과 회화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또 하나의 혼란스러운 논제를 쟁점으로 끌어내고 있다. 미술사 밖의 쓸쓸한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의 출발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 일러스트레이션의 순수성 논란. 이 세 가지 명제가 오늘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일러스트레이션계는 80년대의 성과(일러스트레이션 장르의 이론적인 개념 정립, 실제적인 전업활동, 미학적인 전위 운동)와는 무관하게 퇴행의 늪으로 침몰하는 듯하다. “미술과 디자인 조형의 표현기법으로 전락하고 있다”, “클립 아트(clip art)나 편화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는 혹평과 함께 시각 디자인의 표현 형식중 소극적인 프로그램(컴퓨터에 의한 테크놀로지에 비해)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 덧붙여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선입관, 즉 마이너(minor) 미술형식으로 사실적이고 설명적인 도해(圖解), 글에 종속된 삽화(揷畵), 저급한 상화(商畵)라는 인식으로 인해 그 위상이 크게 위축되고 상대적으로 기예적 속성이 마치 본질적인 것인양 부각되는 기형적인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전업작가인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활동도 몇몇 중진들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작품이나 작가세계를 읽을 수 없는 형국이다. 비유하자면 올해 아도비(Adobe)사가 개발한 컴퓨터 환경의 그래픽 프로그램 ‘일러스트레이터 8.0’과 경쟁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의 시대인 것이다. 표류하는 일러스트레이션, ! 이것이 오늘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현주소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르 자체를 무효화하는 듯한, 이른바 “순수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돌파구도 대안도 아닌 도피행각 - “갤러리 일러스트레이션”이 그것이다. 이것은 장르 현실에 대한 일러스트레이터 개인의 불만이나 울분에 찬 잠적, 또는 행방불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마치 장르의 위상을 고수하기 위한 순수한 열정인 양 확산되고 있는 이 현상은 오히려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미술형식 자체를 분별하는 인식적 태도를 무효화하고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미학적 모순속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의 근대성을 소각하는 불장난과도 같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표류’하는 한국 일러스트레이션계에 18세기의 일러스트레이션 사자(使子)가 찾아 왔다. 윌리엄 호가드, 일러스트레이션 역사의 첫장을 다시 읽는다.
허버드 리드(Herbert Read)는 예술과 사회(Art and Society)의 관계를 통해 미술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윌리엄 호가드를 하나의 장(chapter)으로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다. “호가드는 예술에 있어서 대량생산의 유효성을 발견한 최초의 화가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흥 중산계층의 전형적인 대표자였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어떤 선택에 대하여 신중해야 했을 것이다. 그는 홀바인이나 반 반다이크 처럼 부유한 상류계층의 후원체계에 비굴하게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값 싸지만 보다 넓은 시장을 겨냥하기 위한 방법을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우연이었든, 계획적이었든지 간에 호가드는 후자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소통(유통)할 대상이 오랜 전통의 감식가가 아니라 대중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사실과 함께 일러스트레이션의 선구적 존재임을 인정한 것이다.
호가드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열전 맨 앞에 거론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판화, 만화작품을 18세기의 일러스트레이션 참고도판으로 활용하지 않는 일러스트레이션 역사는 없다. 그러나 그가 사회사상가요, 사회사업가로서 어떤 결심을 했고 어떻게 실천했는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그림이 복제 가능한 판화나 만화형식이였고 사회적인 이슈를 그림의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정도로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적 위치를 가늠해왔다. 그림 형식과 내용으로서의 일러스트레이션 이전에 작가의 예술적 태도와 미학적 입장으로서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러한 작업방식은 새로운 것이었고 당분간 성공하였다. ... 하지만 ... 가족이 필요한 것을 모두 충당할 만큼 충분한 벌이가 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나는 작품을 주문해오는 사람에게 다른 화가를 추천하였고 한층 새로운 방식, 즉 어떤 나라나 시대에도 위축되지 않을 현세의 도덕적 주제에 관한 회화 및 판화를 제작하기로 작정하였다.” 일러스트레이션 역사가 호가드를 주목하는 것은 몇몇 작품이 아니라, 이처럼 그가 정한 예술의 존재방식과 존재형태에 대한 동시대적인 인식이다. 소통의 예술, 대중적 미의식과 복제 커뮤니케이션의 예술적 기술(미술)이 바로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지금 한국에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분주한 활동은 뚜렷하지만 이러한 일러스트레이션 정신의 미학적 태도, 일러스트레이션 정의의 역사적 정체는 불투명하다. 물론 시각문화 전반의 과시적인 활동과 그 결과들이 시장을 넓혀가고 있고 대중적인 인식도 눈에 띄게 확산시키는 효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효과가 시각적 문화환경을 저급한 수준으로 재생산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무책임한 어린이 그림책, 유치한 어법의 삽화, 조잡한 캐릭터, 거칠고 불안한 조형물들이 도처에서 대량으로 양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미래는 무엇인가?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쓰레기 하치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왜 일러스트레이션인가? 일러스트레이션이란 무엇인가?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정신은 있는가? 직종과 업태 이전에 장르로서 어떤 역사가 있는가? 이 질문들은 모두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근대적 기획’을 향한 것이다.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근대적 기획은 1979년 와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이다. 이 두 개의 기획은 80년대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독자적인 장르영역과 예술세계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미술형식의 대중적 통속성에 의한 “삽화”, 시각 디자인의 이미지 표현 기술인 “그래픽 아트”로 인식되어 온 일러스트레이션을 독립적인 예술형식, 또는 디자인 장르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또한 80년대 한국 미술의 리얼리즘 운동을 지원하는 전략적 매체기술로서 일러스트레이션이 대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디자인 활동과 예술 운동의 일러스트레이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월간디자인사가 주최, 기획한 는 일년여 기간의 공모전 예고 칼럼을 편성하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정의, 특성, 기능들에 대한 담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기회는 단순히 공모전 행사의 차원을 넘어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장르 내,외적 위상과 전망을 세우는 운동적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시각 문화”라는 의미를 부여한 일러스트레이션의 약진운동이었다. 월간디자인사가 기록한 이 공모전의 배경을 살펴보면, “광복 후 30여년간 진정한 의미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부재했다고 볼 수 있다. 1965년경부터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병행하여 인쇄술, 광고기술, 매스미디어의 다양화와 그래픽 교육의 전문화로 그래픽 디자인계의 급진적인 발전과 변모를 가져왔다. 이 상황에 대처해야 할 시각적 문화는 새로운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를 너무나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배경은 80년대 이후의 일러스트레이션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으로 출판, 잡지, 그림책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를 크게 확장시켰다.
한편 <현실과 발언>은 1979년에 동인이 결성되고 일년 후 창립전을 열기까지, 여러 차례 창립 취지와 전시 목적을 토의하는 회합이 있었다. 이 회합을 통해 미술형식의 사회적 조건(현실)과 동시대의 예술행위(발언)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졌고, 창립 취지문에 각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 1. 현실이란 무엇인가? 미술가에 있어서 현실은 예술 내부적 수렴으로 끝나는가, 혹은 예술 외부적 충전의 절실함으로 확대되는가? 2. 현실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3. 발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발언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누가 발언자이며 무엇을 향한 발언인가?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누구의 발언인가? 발언자와 그 발언을 수용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4. 발언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어디서, 어떤 효율성의 기대 아래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질문이었다. 특히 <발언의 방식>에 대해서는 1982년 보다 구체적인 소집단 운동으로 나뉘어 벽화, 판화, 출판미술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80년대의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 확장, 운동 전개는 디자인 활동과 예술운동이 서로 통합, 상호작용하지 못하고 각각의 특성이 패쇄적인 자기운동만을 거듭함으로써 인식에 걸맞는 실천적 성과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물론 디자인계에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현장의 전문직업과 대학의 전공분야가 생겼고 현실주의 운동의 전위적인 모델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그 성과는 몇몇 작가들의 성공신화나 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증명하는 차원에 머물러 역사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과거의 기록이나 추억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1990년의 <출판미술연구회>, 1995년의 <일러스트레이션 공통체>가 결성되었다. <출판미술연구회>는 미술과 디자인의 소통성과 일러스트레이션의 대안적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으로 발기 취지를 밝히고 출판미술운동의 90년대를 열고자 했다.
“기존의 상업적인 유통구조의 맥락에서 이루어져 온 일러스트레이션이라든가 편집디자인, 타이포그라피 등과 같은 작업들은 물론 그 나름대로 미술이 지닌 정보전달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하나, 그것은 대개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기능적인 요소로서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가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의사소통이나 사회적 발언의 욕구가 발현될 여지도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80년대 미술운동에서는 순수미술의 이념적 허구성을 극복하고 미술개념의 확장을 시도했지만, 아직은 넓게 보아 타블로 회화나 판화, 걸개그림 등 전통적인 미술작품의 틀을 벗어나 있지 못하거나, 또는 벗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보다 진보된 시각 소통방식의 전반적인 현실에 비추어 볼때 아직 그 효과는 미미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자각이었다.
또한 <일러스트레이션 공동체>는 1995년과 1997년 2회의 워크샵을 기획, 진행하면서 특히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현실을 제도적으로 개혁하려는 실천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운동과 생산활동을 지향하고 있다. “그림책의 새로운 문화를 열자”는 슬로건 아래, 90년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환경(작품, 이론, 기획, 유통)을 재조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한다는 목표로 결성된 이 공통체는 강의, 세미나, 작품 심사, 이벤트 기획, 순회전시, 독자상담 등 일러스트레이션의 현실을 구성하는 생산(창조), 유통(소통), 소비(수용) 전 분야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영국의 목판가이자 인쇄업자였던 에드먼드 에반스(E, Evans)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에반스가 월터 클레인(W. Crane), 랜돌프 칼데콧(R. Caldecott), 케이트 그리너웨이(K. Greenaway)를 지도했듯이, 공동체 동인들은 작가이면서 동시에 교육자, 기획자의 길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동체의 활동과 더불어 최근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는 길벗어린이, 비룡소, 재미마주 등의 출판사들의 빛나는 기획물들이 이념적 공동선을 형성하면서 조용한 혁명을 주도! 하고 있다.
90년대의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지표를 설정하기 위한 시도가 또 하나 있었다. 1995년 예술의전당에서 기획한 <차세대의 시각 - 내일에의 제안전>은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언어와 현실”이라는 주제를 정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형식들(사진, 건축, 패션, 만화 등) 중의 한 장르로서 새로운 미술형식, 일러스트레이션의 내일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 기획전은 일러스트레이션 언어의 현실주의 원칙을 통해 80년대의 성과와 90년대의 정향을 연결해보려는 시도였다. 미술의 소통역량과 일러스트레이션의 대화방식을 세 가지 어법, 언술방식으로 구분하여 ‘수사(rhetoric)’, ‘발언(protest)’, ‘서사(narrative)’ 등을 편성하고 각각의 방식에 9가지 유형의 작가와 작품을 선별했다.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을 ‘계몽의 언어’, ‘소비의 언어’라는 양면성의 관계로 그 특성과 한계로 규명하고, 장르 현실과 이상을 공시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의 개념적(소통, 복제)이거나 선언적(사회화, 민주화)인 차원의 분석(analysis)으로부터 진일보한 것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의 언어적 관점을 종합(synthesis)함으로써 일러스트레이션의 바른 ! 지향점을 제시했다.
이렇듯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적 정체는 다른 어느나라의 상황과도 구별되는, 독자적인 환경속에서 형성되었다. 이 환경을 작가 개인의 일기로 삼거나 ‘그때, 그시절’의 다큐멘터리로 추억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이 환경을 구성한 일러스트레이터나 아트디렉터, 비평가, 출판인 들을 칭송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제안했는가’를 생각하고 그 제안을 통해 “일러스트레이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고 답하는 현실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미술사의 부록편에 기대어 그 역사를 흠모하고, 조형적 기술에 매달려 소통능력을 비하하고, 쉽게 그린 그림과 쉬운 그림 사이에서 스스로를 포기하는 오류를 중지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환경에서 ‘손 그림’이나 ‘아날로그 이미지’를 지칭하는 듯한 기법적 차별성에 일러스트레이션 정의를 세우는 웃지못할 희극도 막을 내려야 한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나는 20여년을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 온 한 작가를 만났다. 그에게 일러스트레이션은 무엇인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일러스트레이션은 저자거리에 있는 땅의 예술이다. ‘지금 여기’라는 시장에서 ‘미술’이라는 노동을거래하는 자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래서 그는 자칫 장사꾼으로 내몰리거나 그의 작품이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속에 자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는 차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열고, 꿈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는 이 절망의 90년대 일러스트레이션 환경속에서 ‘순수’하지 못한 일러스트레이션의 ‘진정성’을 존중하고, 아직도 ‘좋은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 8.0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있다. “내 그림은 이 사회에 무엇인가?” 를 스스로 묻고 있다. 이러한 태도를 견지한 일러스트레이터들에 의해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근대적 기획이 이루어졌고 오늘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이 회복해야 할 것이 또한 이 “각성(覺醒)하는 태도? 굼甄? 신영복 선생을 따르면, “각성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達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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