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에 대해서
유럽의 3대 신화로 그리스·로마신화(이하 ‘그리스신화’, 켈트신화, 북유럽신화를 들 수 있는데, 북유럽신화는 이런 대표적인 신화임에도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많은 문화 매체들이 북유럽신화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스신화와 북유럽신화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둘 다 신과 거인의 대결이 등장하나 그리스신화는 거인들이 지배하던 무질서한 우주를 신들이 타파해 조화롭게 재창조했다고 본 반면 북유럽신화는 신과 거인의 공멸 그리고 세상의 완전무결한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 그리스신화의 신들은 말 그대로 불사신이지만 북유럽신화에서는 최고신 오딘이 늑대에 잡아먹힐 정도로 참혹하고 수치스런 죽음을 맞는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야기의 분위기도 그리스신화가 밝고 긍정적인 데 비해 북유럽신화는 어둡고 비관적이며 그리스신화의 주류가 인간이라면 북유럽신화에서는 인간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원작 소설은 북유럽신화를 배경으로 쓰인 것이고, 청소년층에서 인기를 받고 있는 온라인 RPG게임 <라그나로크>의 줄거리를 이루는 기본요소도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배경을 끌어들여 사용하고 있다. 이밖에도 영화 토르라든가, 웹툰 마왕을 위한 동화도 북유럽신화를 차용한 예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꽤 긴 영화인 <반지의 제왕>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보려하고, 온라인 게임 유저들이 새벽이 밝는 줄 모르며 <라그나로크>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 오늘날 사람들이 판타지 문학과 환상적 요소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 세계에는 실제로는 없으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인간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모험심 같은 것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판타지 문학과 그에 관련된 매체에 이러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배경이 된 북유럽신화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신화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 세계관 등을 파악할 수 있고 이는 역사를 연구하는 기본 바탕이 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신화와 역사가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고, 한 시대의 문화도 결국 역사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다면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로 북유럽신화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북유럽신화가 오늘날의 역사, 문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데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북유럽신화들의 초기 원형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바이킹의 시인들이다. 바이킹이라는 말은 ‘뱃사람’, ‘전사’, ‘식민자’ 등의 의미이며, 게르만 대이동 때 북유럽에 남아 있던 게르만의 일파를 일컫는 말로, 덴마크인, 노르웨이인, 스웨덴인을 지칭한다. 게르만인들이 민족대이동을 하면서 로마문명과 접하게 되고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는데, 바이킹들은 북유럽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고유의 신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 바이킹이 여러 곳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간직하고 있던 신화가 그 원형대로 유럽 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바이킹이라고 하면 모험적이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모습이 모험을 즐기고 항상 자신감에 충만하며 당당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크게 보면 이 사람들도 게르만민족에 속하기 때문에 영국, 독일 등에도 이런 신화의 모습이 남아 있고 이것을 ‘게르만신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르만신화는 실제로 북유럽신화와 거의 같은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는데,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나 내용이 약간씩 다른 것도 있다. 그리스신화도 아무것도 없는 Chaos 상태에서 시작하듯, 북유럽신화의 세계도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한다. 오직 북쪽의 추위와 남쪽의 더위 사이에 있는 이 빈 공간을 북유럽인들은 긴눙가가프라고 불렀다. 우리말로는 '하품하는 심연' 또는 '거대한 아가리'다. 북쪽의 추운 공간은 니플하임, 남쪽의 더운 공간은 무스펠하임으로 이름지어졌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니플하임의 차가운 서리와, 무스펠하임의 뜨거운 불꽃이 긴눙가가프 가운데에서 만나 서리가 녹아 물방울이 되고, 물방울은 뜨거운 열기의 힘으로 생명을 얻어, 거대한 거인이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태초 거인 이미르다. 그리고 서리 녹은 물에서 거대한 암소 한마리가 저절로 태어났는데, 이 암소가 바로 태초 암소 아우둠라다. 이 거대한 두 생명체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모두 구성할 만큼의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들이었다. 태초 암소 아우둠라는 소금기 섞인 돌을 핥아먹고 살아갔고, 아우둠라의 젖에서는 네 줄기의 젖이 강물처럼 흘러나왔고, 태초 거인 이미르는 이를 먹고 자랐다. 거대한 텅 빈 공간에서 단 둘뿐인 이미르와 아우둠라는 배고플 땐 먹고, 졸릴 땐 자며 살아간다.
아우둠라가 소금돌을 핥자, 첫째 날 돌에서 머리카락이 튀어나왔고, 둘째 날 머리통이 생겨났으며, 셋째 날 완전한 한명의 남성이 되었다. 바로 이 남자가 부리이며 그가 바로 북유럽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상이 된다. 부리는 남자이면서 여자이었기 때문에 아내 없이 혼자서 뵈르를 낳았습니다. 태초 거인 이미르는 젖소의 젖을 먹고 잠을 자면서 땀을 흘렸는데, 왼편 겨드랑이에서 흐른 땀으로부터 남자와 여자가 나와 모든 거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이미르는 그 뒤로 계속 잠을 자는 동안 땀을 흘리고 그 땀에서 거인들이 계속 태어났다. 뵈르는 거인 여인 베스틀라와 짝을 맺어 오딘, 베, 빌리라는 세 아들을 얻었다.
뵈르의 자손들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르의 땀에서 태어나는 거인들은 점점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오딘과 형제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미르를 죽이게 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와 같은 규모의 물질을 담고 있던 이미르가 죽자 어마어마한 피가 흘러나왔고 그 피가 지금 우리가 보는 바다가 되었다. 태초 암소는 이 바닷물에 휩쓸려 가버렸고, 거인들도 모조리 빠져죽었으나, 거인 베르겔미르와 그의 아내만이 겨우 배에 올라타 이들이 새로운 거인족들의 조상이 된다. 오딘과 그의 형제들은 이미르의 몸을 나누어 피가 빠져 단단하게 굳은 몸은 바다 한 가운데 고정하여 "딴"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바다가 땅을 둘러싸게 되었다. 이미르의 큰 뼈는 산과 낭떠러지가 되었고, 작은 뼈와 이빨들은 돌덩이가 되었고, 머리카락과 털은 나무와 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미르의 두개골을 땅 위에 덮어 씌워 "하늘"을 만들었다. 오딘과 그의 형제들은 이미르의 뇌수를 하늘에 흩뿌렸는데 이게 "구름"이 되었다. 죽은 이미르의 살 속에 꿈틀대던 구더기들을 이용해 오딘과 그의 형제들은 "난쟁이"들을 만들고, 그 중에서 넷을 붙잡아 세계의 네 가장자리에 세워 동서남북을 정했다. 그리고 무스펠하임에서 불꽃들을 가져다 이미르의 두개골 여기저기에 박아 "별"을 만들었다.
오딘이 이미르를 죽인 그의 형제들, 빌리와 베와 함께 바닷가를 거닐다가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를 발견하였다. 삼형제는 물푸레나무로 남자를, 느릅나무로 여자를 만들었는데 오딘 신이 생명의 숨결을, 빌리 신이 이성과 움직임을, 베 신이 청각, 시각, 그리고 언어를 주었다. 신들은 남자에게는 아스크르, 여자에게는 엠블라라는 이름을 주고 그들이 미트가르트라고 이름을 붙인 중간계에 살게 해주었다. 아스크르나 엠블라는 각각이 그들을 만들었던 나무의 이름과 같은 뜻이다. 이렇게 인간들이 살게 된 미트가르트 바로 위에 신들의 세계를 두었다.
신들이 사는 세계인 미트가르트 사이에는 비프뢰스트라는 다리가 있었다. 인간들의 눈에는 무지개처럼 보이는 이 다리는 오직 신들과 거인들만이 오고갈 수 있었다. 신들은 거인들로부터 연약한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미르의 눈썹과 속눈썹을 뽑아 중간계 가장자리를 빙 두르는 성벽을 쌓았고, 거인들은 그 주위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이곳의 이름이 요툰하임이고 그 가운데 있는 거인들의 성은 우트가르트라고 불리었다. 인간들이 사는 중간계 아래 땅속에는 난쟁이들의 세상인 스바르트알프하임이 있고, 이들의 친척이지만 피부가 하얀 난쟁이들은 알프하임에 사는데 이는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트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땅속 가장 깊은 곳에는 죽은 이들의 나라인 헬이 존재하는데, 이곳은 최고신 오딘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죽은 자들의 여신인 헬이 다스리는 공간이다.
이렇게 하늘에 있는 세 세계(아스가르트, 바나하임, 알프하임), 땅에 있는 두 세계(미트가르트, 요툰하임)와, 땅 속에 있는 두 세계(스바르트알프하임, 헬)까지 총 일곱 세계와, 태초부터 존재했던 북쪽의 추운 니플하임과 남쪽의 더운 무스펠하임 두 곳을 합치면 총 아홉개의 세계가 된다.
그리스신화에서 신들은 불멸의 삶을 사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신화에는 창세신화만이 있고, 신들이 멸망하는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북유럽신화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북유럽신화에서 세계는 거인의 시체로부터 생겨나고, 신과 거인의 마지막 전쟁인 라그나로크로 인해 모든 것이 멸망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신화의 기둥 줄거리는 신과 거인의 대결이다. 신의 세계와 거인의 세계가 공존하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대결 양상을 보인다. 그렇지만 그 대결에서 결국은 신들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고, 거인들은 신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바이킹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며 활발한 정복활동을 벌였다. 바이킹의 삶은 정복의 삶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모습이 신들과 거인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싸움이 벌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 신화가 바이킹의 입장에서 쓰인 만큼 결국은 자신들이 승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신들이 이기고, 거인들은 패배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것 같다. 바이킹은 모험을 즐기고 멀리 항해하는 걸 좋아하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오딘이나 토르가 끊임없이 모험을 찾아 떠나려고 하는 내용의 신화가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과 거인들은 화해의 분위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신들과 거인들이 극도로 대립 양상을 보이기만 한다면 서로를 앙숙처럼 생각하고 서로 결혼하려 할 때 완강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일텐데, 북유럽신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뇨르드와 프레이 두 남신은 거인족 여인과 결혼했고, 오딘과 토르는 수많은 거인족 여인 정부를 두었다. 그리고 오딘의 정부인 거인족 여인이 토르에게 무기를 빌려주어 도움을 주는 얘기도 등장한다. 바이킹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때 그들의 문화에 동조되기도 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내용들이 전개되다가 신화의 마지막에는 ‘라그나로크’라는 최후의 장면이 등장한다. 신들과 거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마지막 전쟁인 라그나로크는 ‘위대한 신들의 운명’이라는 뜻인데, 이 전쟁을 통해 세계는 종말을 맞이하고 그 후에 발데르와 다른 몇몇 신들 및 두 인간이 살아남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오딘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중 최고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딘은 제우스처럼 거인과 싸워 이김으로써 최초의 세상을 창조한 신이다. 지혜가 풍부하고 마법에 뛰어나, 적의 눈을 속이고 적의 무기를 무디게 함으로써 항상 승리를 거둔다. 그는 더욱 많은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한쪽 눈을 미미르의 우물에 던져 주고 우물물을 한 모금 얻어 마셨기 때문에 외눈이 되어 항상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이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9일 밤낮을 나무에 매달려 있음으로써 마력을 가지고 있는 ‘룬문자’를 획득한다.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어떤 힘든 시련도 견디기 때문에 경외심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는 ‘전쟁의 신’이기도 한데, 승리를 고취시키고 패배를 결정하기도 한다. 마치 일리아드 이야기에서 전쟁터의 승패를 결정짓던 제우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또 전장에서 쓰러진 용사를 자기의 발할라 궁으로 맞아 최후의 결전에 대비하기도 하는데, 그는 지혜와 전쟁, 정확히 말하면 승리의 신이었다. 그는 직접 싸움에 참여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그는 전략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발이 여덟인 자신의 준마 슬레이프니르를 타고 달리기도 하고, 다른 형상으로 변신하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여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법의 창 궁니르를 가지고 다니고, 그의 어깨에는 두 까마귀 후긴(생각)과 무닌(기억)이 앉아 있다.
여기서 오딘의 어깨에 앉아 있는 까마귀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노르웨이계 바이킹이 아이슬란드를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로 이주하던 때인 815년경 로갈란드의 플로키는 페로에제도(덴마크)를 출발했다. 아이슬란드 근처에 도달했을 때 그는 어느 길로 가야할지 알아보기 위해 까마귀 두 마리를 날려보냈다. 그리고 그 새들을 따라갔다. 곧 섬이 뚜렷이 보였다.” 이 이야기가 실제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이킹들은 까마귀를 중요시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항해 방향을 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까마귀를 날려서 따라가야겠다는 약간은 무모할 수도 있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운명을 까마귀에게 맡겼던 것 같다.
딘의 아들이며 천둥의 신인 토르는 신들 중에서 서열이 두 번째다. 그는 ‘묠니르’라는 망치를 갖고 있어 그것을 거인에게 던져 쓰러뜨린다. 거인을 쓰러뜨린 이 망치는 저절로 날아 돌아오는 망치다. 토르는 힘은 세지만 다소 지혜가 모자라서 거인의 왕에게 우롱을 당하고, 아버지인 오딘으로부터도 “싸움도 못하는 멍텅구리바보”라는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그는 힘이 대단했기 때문에 아스가르드에 사는 신들은 토르가 곁에 있는 한 안전하다고 믿을 정도였다. 그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자작농을 옹호하였다(농민의 수호신이다).
보통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아름다운 갈기를 휘날리는 말을 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오딘도 슬레이프니르라는 말을 타고 다니는데 반해, 토르는 항상 수컷 산양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닌다. 이 두 마리는 고기가 되어 토르의 배로 들어가도 그 뼈를 모아서 묠니르로 깨끗하게 하면 다시 살아나는 불가사의한 산양이었다. 토르는 이 산양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녔다. 이것은 토르가 농민들로부터 숭배 받던 신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북유럽은 추운 지방이라서 양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우유도 짜고 고기도 얻고 양털로 직물을 짜서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르는 산양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표현된 것 같다. 제우스는 번갯불을 던지지만,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주요 신들의 경우에는 각자 자신의 주요 무기를 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딘이 지닌 창 궁니르와 토르가 지닌 망치 묠니르는 모두 난쟁이들이 대장간에서 만든 것들이다. 이 무기들은 쇠로 만든 것인 만큼 그들의 강력한 힘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난쟁이들은 한마디로 대장장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오늘날의 기술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물건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바이킹 문화가 전파되면서 사회에도 변화가 왔고, 전문적인 장인 계층이 출현했다. 그 당시 대장장이는 주목 받는 계층이었는데, 그 이유는 쇠를 다루고,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원정의 승리를 보장하는 각종 무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는 바이킹들의 이야기인 만큼 그 시대에 중요시되던 대장장이들이 난쟁이들로 묘사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프레이는 뇨르드의 아들이며 프레야의 오빠로서, 오딘이나 토르 다음 가는 제3위의 신이다. 원래는 대지의 생산력과 관계가 있는 바니르신족의 일원이었으나, 오딘이 속해 있는 에시르신족과의 전쟁에서 평화협정을 맺고 에시르신족의 일원이 된다. 그는 비와 햇빛을 다스림으로써 대지의 축복을 자유로이 내릴 수 있었다. 풍작과 평화, 재산 등에 관하여 그에게 기원하면 가호가 내려졌다. 프레이는 농경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풍요의 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보물 중의 하나로 ‘스키드블라드니르’라는 마법의 힘을 지닌 배가 있었다. 이 배는 프레이가 가진 보물 중의 하나로서 작게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넓게 펼치면 모든 신들과 무기를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번 닻을 올리면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배가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뒷바람, 즉 순풍을 부르는 힘도 갖추고 있었다. 바이킹이 해상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바이킹 배다. 한편으로 그들의 해상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날씨였을 것이다. 폭풍우라도 치는 날에는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것조차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풍요의 신인 프레이가 마법의 힘을 가진 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 같다. 바이킹들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항로를 통한 침략활동을 계속 벌여야 했고, 항해가 순조롭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가는 방향으로 적당한 바람이 불어줘야 하는데, 그러한 조건을 갖춘 배를 풍요의 신에게 부여함으로써 자신들의 해상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기도했던 것이 아닐까?
헤임달은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와 지상을 잇는 무지개의 다리 비프로스트 옆에서 보초를 서며 아스가르드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신이다. 밤에도 100마일 밖의 물건을 볼 수 있으며, 양의 털이나 풀잎이 자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걀라르호른’이라는 뿔피리를 가지고 있어, 위험이 닥칠 경우 그것을 불어 신들에게 경고한다. 헤임달은 리그라는 다른 이름으로 인간계를 방문하여 노예·농민·귀족의 3계급을 부여한 신이다. 한마디로 인간들의 조상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로키와 앙숙지간으로 몇 차례나 싸웠으나, 마지막 라그나로크에 그와 싸우다가 함께 죽는다. 그의 아버지는 신들이며, 어머니는 아홉 명의 거인 자매였다.
북유럽 신화의 전반에 걸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숫자가 바로 ‘9’다. 신화의 배경은 9개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고, 오딘은 9일 밤낮을 나무에 매달려 있음으로써 룬문자를 획득한다. 프레이가 사랑하는 게르드를 9일 후에 만나기로 하고, 발데르가 죽었을 때 아우인 헤르모드가 지옥이 있는 곳인 니플헤임에 갈 때도 말을 타고 9일 동안 달린 끝에 도착한다. 이처럼 숫자가 등장하는 곳에는 거의 다 9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각 민족마다 유난히 좋아하는 숫자가 있는데 북유럽 사람들은 9라는 숫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9라는 숫자는 0부터 9까지의 숫자 중 가장 끝에 위치한 숫자이고, 마지막, 끝,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숫자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라그나로크로 인해 결국 세계가 멸망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9 다음에 나오는 숫자는 순환적으로 0이 되는데 세계의 멸망 후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고 문화 컨텐츠에 가장 많이 차용되는 것이 바로 라그나로크다. 라그나로크는 북유럽 신화에서 세계의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신들과 거인들이 모두 함께 일어나서 최후의 전쟁을 하는 것을 말한다. 헤임달이 뿔피리 소리를 내고 오딘이 창 궁니르를 던짐으로써 모든 신들, 로키와 그의 세 아이들, 거인들이 모두 다 함께 전쟁을 벌인다. 신들의 왕인 오딘은 로키의 자식인 늑대 펜리르에게 죽임을 당하고, 토르는 뱀 요르문간드의 독에 의해 죽는다. 그리고 프레이는 불의 나라의 우두머리인 수트르의 손에 죽고, 헤임달은 로키와 싸우다가 서로 죽는다. 이 전쟁에 의해 대부분이 죽고 세계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새로운 세상이 등장한다. 이 신세계를 지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신 발데르가 지배한다.
이처럼 북유럽신화에는 그리스신화와 같은 다른 신화들과는 달리 신화의 끝이 있다. 신화가 천지를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했듯이 세계가 멸망하면서 신화가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신을 생각하면 영생불멸의 삶을 사는 절대자를 떠올리게 되는데, 뜻밖에도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들처럼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을 죽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보통 신을 절대자로 표현하는 이유는 인간들이 신의 막강한 힘에 의지하고픈 마음이 있기 때문일 텐데, 북유럽 사람들은 강인한 독립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추운 지방에 살수록 힘겨운 삶을 이어가기 위해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그로 인해 신에게 의지할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신도 인간처럼 죽는 것으로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바이킹은 수많은 침략 전쟁을 벌였던 민족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겠지만, 패배하고 나서 다시 재기하는 과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하는 도중 그들의 지도자가 죽으면 새로운 지도자를 다시 선출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라그나로크 이야기를 통해서 막강할 것 같은 신들이 죽고 다시 새로운 세상이 출현하며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한편 전쟁 이외에도 삶을 살다보면 큰 재난을 겪게 될 때가 있다. 그 중에서도 자연 재해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자연 재해는 예방을 통해 어느 정도 막을 수도 있지만, 너무나 큰 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고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재해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다시 희망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다같이 힘을 합해 노력한다. 이러한 우리의 삶의 일부분도 라그나로크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들은 언젠가 신과 거인들의 싸움인 라그나로크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최후의 전쟁은 신들의 숙명이었다. 자연 재해로 건물이 무너지고 우리의 터전이 황폐화되고 초토화되는 것은 어찌 보면 공동체의 멸망과도 같이 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그나로크로 인해 세계가 멸망하는 것으로 나타내고, 우리가 새로운 희망으로 더 나은 삶의 터전을 꾸리려 하듯이 신화에서도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발데르가 지도자가 되는 것으로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멸망과 그 후의 새로운 세계의 등장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으로써 새로운 희망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멸망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것 같다.
신화는 원래 언어로 이야기하는 이미지다. 언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시각적 이미지만큼 뚜렷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지만 우리에게 의구심과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러한 의구심과 여운은 이미지를 전달받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화는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생각하게 하는 상상력의 보고로써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와 영상 매체의 발달은 언어로써 표현된 신화의 내용을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신화는 결코 낡은 유물이 아니다. 옛날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만은 아니다. 신화는 사람들과 호흡하며 변해가고 그 속에서 그 사회의 숨결을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다. 신화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 속에는 역사처럼 교훈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신화 - 신들의 전쟁
올림포스 신들과 티탄들의 전쟁부터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티탄[Titan]이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신족이 등장하기 이전에 세계를 지배하던 거인족의 신을 말한다. 통례적으로 오케아노스, 코이오스, 크리오스, 히페리온, 이아페토스, 크로노스의 6주의 남신과 테이아, 레아, 테미스, 므네모시네, 포이베, 테티스의 6주의 여신을 말하며, 모두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땅)의 자식이다. 이들 이름의 일부는 그리스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주민족에서 계승된 것이라고 생각되며, 또한 일부는 추상명사의 의인화다.
티탄의 전쟁(Τιτανομαχία)을 티타노마키아라고 한다.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우주의 지배자가 되었는데, 자신도 아들의 손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저주를 받는다. 이에 크로노스는 누이이며 아내인 레아가 아기를 낳을 때마다 삼켜 버렸다. 레아는 막내인 제우스를 낳은 뒤, 가이아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를 속이고 돌멩이를 삼키게 하였다. 가이아는 제우스를 크레타 섬으로 데려가 이다산의 동굴 속에서 자라게 하였다. 장성한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토하는 약을 먹여 삼킨 자식들을 토해 내게 만들었다. 이때 크로노스가 토해낸 자식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저승의 신 하데스를 비롯하여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불과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 훗날 제우스의 아내가 된 헤라 등이다. 또 제우스는 가이아의 충고를 받아들여, 크로노스에 의해 저승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타르타로스에 유폐된 헤카톤케이르와 키클로페스를 구해주었다. 키클로페스는 제우스에게 번개를,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을, 하데스에게는 머리에 쓰면 보이지 않는 투구를 만들어 주었다. 세력을 규합한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도전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 티탄 신족 가운데 오케아노스를 비롯하여 이아페토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 스틱스와 그의 자식들인 크라토스·비아·젤로스·니케 등은 제우스의 편을 들었다. 10년(또는 9년) 동안 계속된 티타노마키아는 제우스의 승리로 끝났다.
패배한 티탄 신족은 타르타로스에 감금되었으며, 헤카톤케이르가 이들을 지켰다. 티탄 신족의 하나인 아틀라스는 특별히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았다. 티타노마키아의 승리를 거둔 제우스는 하늘을 다스렸으며, 공을 세운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각각 바다와 저승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로부터 제우스를 주신(主神)으로 하는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가 열렸으며, 이후 기간테스와의 싸움을 뜻하는 기간토마키아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올림포스 신들의 지배가 확고해졌다.
티탄신족은 자연신이다. 크로노스(Cronos;시간) 형제들의 의미들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오케아노스(Oceanus;대양), 테티스(Tethys;강), 므네모시네(Mnemosyne;기억), 히페리온(Hipherion;높은 곳을 달리는자) 등은 모두 자연을 상징하는 신들이다. 이에 비해 올림푸스신족은 인격신이다. 제우스(Zeus), 헤라(Hera), 포세이돈(Poseidon), 하데스(Hades), 데메테르(Demeter) 모두 하늘, 바다, 지옥, 대지의 여신 등의 의미가 있지만, 그들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티타노마키아 전쟁은 자연신과 인격신의 전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올림푸스신족이 티탄신족을 제압하고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는 자연을 정복하는 그리스인들의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인족(巨人族) 단수형(單數形)은 기가스다. 천공(天空)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大地)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이다. 우라노스가 자신의 아들인 크로노스에 의해 생식기를 잘렸을 때 흘린 피가 대지에 떨어져 24명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들이 바로 기간테스[Gigantes]다. 힘이 세고 사나운 종족으로서 흔히 인신사족(人身蛇足)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도전하여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정복당했다. 이 ‘거인들의 싸움’을 기간토마키아(Giganthomachia)라고 하는데, 서사시의 좋은 소재로 다루어졌으며, 조각이나 벽화 등의 조형미술 분야에서도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다.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제압하고 신들의 지배자가 된 뒤에 그에게 대항하였던 티탄신족(神族)을 타르타로스에 가두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가이아가 기간테스를 부추겨 올림포스신들을 공격하게 하였다. 거인족인 기간테스는 커다란 나무와 바위를 무기 삼아 신들을 습격하였으며, 땅이 울리고 해일이 일어나는 등 격렬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올림포스신들은 번개로 무장한 제우스가 앞장서고 포세이돈과 헤파이스토스·아폴론·아레스·아테나·디오니소스 등이 전투에 나섰으며 승리의 여신 니케가 이들의 편에 섰다. 기간테스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몸에 사자가죽을 걸치고 약초의 보호를 받는 인간의 힘이 필요하다는 신탁에 따라 제우스는 아테나를 보내 헤라클레스를 데려오게 하였다. 한편 가이아는 기간테스에게 불사(不死)의 생명을 줄 약초를 찾아 나섰는데, 이를 알아차린 제우스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달의 여신 셀레네,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 자신이 약초를 찾아낼 때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암흑을 드리운 뒤 약초를 먼저 찾아 없애 버렸다. 올림포스신들의 편에 선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독을 바른 화살로 빛나는 공을 세웠다. 기간테스의 우두머리인 알키오네우스가 그에게 죽었으며, 에피알테스는 왼쪽 눈에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오른쪽 눈에 아폴론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헤라를 범하려던 포르피리온도 헤라클레스의 화살과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죽었다. 올림포스신들을 정복하고 아테나를 아내로 삼겠다고 큰소리치던 엔켈라도스는 아테나가 집어던진 시칠리아섬에 깔렸는데, 그의 숨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에트나산의 화산을 통해 불을 토해 내고 있다. 그밖의 기간테스들도 올림포스신들에게 죽었으며, 죽지 않은 자들은 뿔뿔이 도망쳐 올림포스신들의 지배력이 확고해졌다. 기간테스는 하반신은 뱀의 형상이고 거대한 거인의 상반신을 한 모습이다. 일설에 기간테스는 그들이 태어난 땅에서는 불사의 몸이기 때문에 땅에서는 부상만 당하고 죽지 않았는데, 헤라클레스가 그들을 하늘로 들어올려서 죽였다고 한다. 전쟁에서 패한 기간테스는 지하에 묻혔는데 남부 이탈리아의 화산들 밑에 감금되었다고 하며, 고대인들은 화산활동은 기간테스가 화를 내는 것이라 믿었다. 기간토마키아는 야만성에 대해 문명이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 기원전 2세기에 페르가몬 왕 에우메데스 2세가 침입해온 갈리아인을 물리친 기념으로 만들었다.
10년 가까이 계속된 티타노마키아는 제우스의 승리로 끝났다. 패배한 티탄신족은 타르타로스에 감금되었다. 승리를 거둔 제우스는 하늘을 다스렸으며, 공을 세운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각각 바다와 저승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로부터 제우스를 주신(主神)으로 하는 올림포스신들의 시대가 열렸으며, 이후 기간테스와의 싸움인 뜻하는 기간토마키아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올림포스신들의 지배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신화의 황금모티프는 사랑과 권력과 명예를 위한 전쟁의 상징이다. 세계 신화는 으레 태초에 세계가 생성된 후 신들이 벌이는 전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들이다. 그것은 바로 이민족이 토착민을 정복하면서 두 민족이 모시던 신들이 서열 다툼을 하면서 벌인 전쟁이다. 이 전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벌어진다. 하나는 이민족의 남신들이 토착민의 여신들을 누른다. 다른 하나는 이방의 남신들이 토착민의 남신들을 누른다. 위의 두 전쟁은 이 두 사실을 모두 반영한다. 예를 들면, 우라노스를 거세한 크로노스, 그리고 크로노스 등 티탄12신을 제압한 올림포스12신은 각각 이방의 남신들이 토착민의 남신들을 누른 것을 반영한다. 우라노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서 태어났지만, 가이아를 누르고 신들의 왕이 된 후 어머니를 슬며시 아내로 바꾸어버리는데, 이것은 토착의 여신을 누른 것을 반영한다.
그리스 신화의 “전쟁과 모험담”은 역사적 사실을 신화적으로 반영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신들의 전쟁은 영웅들의 전쟁의 축소판이고, 그 주인공은 제우스신이다. 제우스신은 그의 형제(부족)들과 힘을 합하여 티탄12신을 누르고 올림포스산을 근거로 권력을 잡게 된다.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는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기며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하여 자신의 왕국을 평화롭게 통치한다. 그래서 제우스의 통치 시기는 로마의 ‘팍스 로마나’와 비견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정의일까? “신화는 승자가 기록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기원에 관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그리고 오르페우스 이야기들의 특징을 비교해보자. 세계의 기원에 관한 호메로스, 오르페우스, 헤시오도스의 이야기 중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가장 간단하며 단편적이고 암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림포스의 신들과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그의 책 ‘일리아스’에서 헤라 등의 신들은 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오케아노스와 테튀스라고 말한다. 여기서 오케아노스는 하나의 강이나 시내의 신이며 물의 남성성을 상징하고, 테튀스는 물의 여성성을 상징한다. 즉, 호메로스의 이야기에서는 오케아노스와 테튀스라는 ‘태초의 물’에 의해 세계가 만들어지고 신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리아스’ 속의 신들의 대화 속에서 세계의 기원을 단편적으로 암시한 호메로스와 달리,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세계의 기원에 대해 비교적 체계가 잘 잡혀 있으며, 내용 또한 더 세밀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헤시오도스가 기억의 여신 므네모쉬네의 딸들인 무사이들에게 청원하여 들었다는 태초의 창조이야기는 카오스의 출현을 시작으로 하여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결별로 완성된다.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결별 이전까지는 시간과 공간이 정돈되지 않아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우라노스가 거세되어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결별하면서 만물이 제자리를 찾고 공간이 정돈되고 시간이 펼쳐져 비로소 질서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천지창조의 세 주역은 카오스, 가이아 그리고 에로스다. 가장 처음에 존재한 것은 카오스인데, 여기서 카오스는 혼돈이 아닌 공간, 갈라짐을 뜻한다. 이 카오스로부터 짙은 어둠의 신인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인 뉙스가 태어났고, 이 둘은 결합하여 낮의 여신 헤메라와 천체의 빛인 아이테르를 낳았다. 카오스로부터 어둠이 생겨나고, 어둠에서 밝음이 잉태된 것이다. 카오스 다음으로 존재한 것은 가이아인데 가이아는 혼자 힘으로 우라노스(하늘), 오레(산), 폰토스(바다)를 낳고 우라노스와 결합하여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 12남매와 키클롭스 3형제,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를 낳았다. 우라노스가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이아를 껴안고 누르고 있었기에 티탄 남매 등은 가이아의 뱃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가이아는 스스로 낫을 만들어 크로노스로 하여금 아버지를 거세하도록 했다. 우라노스가 거세당하면서 우라노스와 가이아는 결별하게 되었고, 비로소 세계의 질서가 잡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에로스는 가장 사랑스러운 신으로 불리며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더불어 에로스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실체로 나타나기 보다는 모든 것을 결합시키는 추동력으로서 기능하며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결합 이후 모든 성적 결합은 에로스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오르페우스의 세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엄밀히 따져서 오르페우스가 말한 것이 아닌 오르페우스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보존했던 성서 속에 전해져 내려온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르페우스교는 신과 사물의 기원을 밤의 여신 닉스로 본다. 검은 날개를 가진 새인 닉스가 바람의 신을 임신하여 에레보스의 무릎 안에 낳은 은빛 알에서 바람의 아들인 에로스(파네스, 프로토고노스라고도 불린다)가 태어나 은빛 알을 기준으로 하늘과 땅이 나뉘었다는 것이다. 에로스는 하늘과 땅을 섞이게 하여 오케아노스와 테튀스를 출산시킨다.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오르페우스 이야기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호메로스의 경우 그의 저서 ‘일리아스’ 중 신들의 대화 속에서 세계의 기원(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이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임을 암시할 뿐이며,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기원이 불분명하다. 또한, 오르페우스교의 우주관은 한 가지 이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타고라스의 의견이나 음유 서사시의 내용 등 여러 의견들이 병존해 있는 상태이며 오르페우스 신앙의 문헌은 헤시오도스에 비해 단계적이지 않고 복잡하다.
반면, 헤시오도스는 ‘신통기(Theogonia)’를 통해 세계의 기원에서부터 신들의 계보까지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세계의 기원에 있어 태초의 존재를 무엇으로 보는가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호메로스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태초에 강, 개울, 샘과 땅을 둘러싸고 순환하는 바다 전체의 원천인 오케아노스와 테튀스를 신들의 기원 즉, 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았으나 오르페우스 교도들은 밤의 여신 닉스를 태초의 존재로 보고 닉스가 낳은 에로스가 하늘과 땅을 결합시켜 오케아노스와 테티스를 출산한 그 이후부터 사물이 생겨났다고 보았다. 한편, 헤시오도스는 처음에 카오스가, 그 다음에 가이아와 에로스가 있었고 카오스로부터 에레보스와 닉스가, 가이아로부터 우라노스 등이 나옴으로써 세계가 생겨났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여성과 남성에 대한 태도를 보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여성에 대하여 비교적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오르페우스 신앙은 여성을 매우 사악한 존재로 보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테튀스는 모든 신들의 어머니로, 만물을 키우는 젖줄로서 나타나는 등 호메로스의 천지창조 부분에서 여신은 부정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남신과 함께 천지의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 잡는 긍정적인 존재로 표현된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보다도 여성을 중시하였는데, 주로 남신을 중요시한 호메로스와는 달리 여신을 더욱 강조하였다. 반면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오르페우스는 사랑한 여인을 잊지 못하고 일편단심 그 사람만 바라보다 죽음까지 이르게 된 지고지순한 존재로 나타나지만, 오르페우스를 사랑한 여인들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급기야 오르페우스를 찢어 죽이는 존재들로 묘사되어 있다. 즉 남성의 사랑은 매우 숭고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여성의 사랑은 그저 질투와 복수에 휩싸여 있는 대단치 않은 것 정도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르페우스 신앙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북유럽 신화인가?
우리는 신화를 상상력의 보고라고 말한다. 신화에서 그 영감을 받은 많은 예술 작품들이 있다. 신화는 언어로 이야기되는 이미지다. 그리고 언어는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보다 애매모호함을 남겨 끊임없이 우리가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신화는 사회의 맥락에 따라 재해석의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에 여러 형태로 차용될 수 있기도 하다.
이처럼 상상력의 보고인 신화는 사건은 범주로, 인물은 원형으로 간직한다. 예를 들어,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장님 테이레시아스가 그의 뛰어난 예언력 덕분에 예언자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에 예언자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등장하는 것이다. 신화가 인물을 원형으로 사건을 범주로 간직하기 때문에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전혀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의 창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장난감 블록으로 장난감을 만드는 것처럼, 또는 손재주꾼이 중고품을 이용해 마치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새로운 신화는 창조될 수 있다. 신화는 기존의 언어를 사용하여, 즉 이미 만들어진 재료를 사용하여 수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화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화의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현실의 세계에서 인간이 채울 수 없는 욕망들을 채워준다. 인간은 자기보다 강하거나 지혜 있는 사람에 대한 경이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남이 대신하는 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현대인은 결코 과거에 살던 사람들보다 자유스럽다고 할 수 없다. 헌법 조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다’라고 써있기는 하지만 경쟁이 만연하는 이 시대에서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신들의 행위는 사람들에게 동경을 자아내게 마련이고 그러한 것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이처럼 신화가 현대인들의 목마른 감수성을 자극해서 하나의 문화코드로써 삶의 활력소로 이용되는 것이다. 현대인의 목마른 감수성을 자극하고 새로운 문화상품 창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신화는 현대의 문화 코드로써 자주 이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신화가 과연 어떠한 측면을 지니고 있기에 다른 신화들보다 더 많이 차용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첫째, 북유럽신화에서는 신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리스신화에서 인간은 신의 아래에 있는 존재로, 인간의 운명은 신에 의해 결정되어 있으므로 인간은 운명에 저항할 수 없고 그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 또 이카루스나 니오베처럼 신의 권능을 훼손하는 불경죄를 지었다가는 엄청난 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북유럽신화에서는 신이 인간의삶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커다란 원형대지가 주축을 이루고, 원형대지를 둘러싼 커다란 바다가 있고 다시 그 너머를 끝을 알 수 없는 안개가 둘러싸고 있다. 원형대지는 신들이 살고 있는 ‘아스가르드’와 인간이 살고 있는 ‘미드가르드’와 그 바깥에 거인족들이 사는 ‘우트가르드’로 나뉜다. 신들은 자신들의 신전과 거주지의 안전을 위해 ‘미드가르드’ 안쪽에 장벽을 짓고 살며,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생활할 뿐 인간 세계에 관여하지 않는다. ‘비프로스트’라는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를 연결하는 통로(무지개다리)가 있긴 하지만 신들이 이 통로를 이용해 인간의 삶에 간섭하지는 않는다.
서양의 경우, 중세를 넘어 근대의 출발점은 신이 더 이상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게 된 때부터다. 중세에는 모든 진리는 신의 말씀이었으며, 인간은 신의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인간은 신과 독립된 당당한 주체로서 일어섰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존재로서 여겨졌다. 근대에 들어 발생한 철학들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서양에서 근대에 새롭게 발생한 개인주의는 보편적 이념처럼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고 누구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주체’로서가 아닌 ‘객체’로서 생각되어지는 불쾌한 일이 되었다. ‘자유’와 ‘평등’이 보편적 이념으로써 받아들여지고 개인주의가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인 오늘날, 북유럽신화는 개개인의 기본적 사고방식에 파고 들어가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신화는 척박한 토양에서 살아온 북유럽인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다. 북유럽신화의 배경이 되는 나라들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영국,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북유럽 전반에 걸쳐 전해진다. 이 지역은 유럽 남부지역에 비해 일사량도 적고 날씨가 춥다. 이러한 기후환경 속에서 고대 북유럽 사람들은 주로 수렵생활을 했다. 거친자연환경과 수렵민족으로서의 삶은 그들의 신화에 반영되어 북유럽신화에는 폭력적인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한편 오늘날 사람들은 화려한 것에 길들여져 밋밋한 영상에는 흥미를 잘 느끼지 못한다. ‘반지의제왕’이나 ‘매트릭스’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에는 화려한 영상이 큰몫을 차지한다. 사람들이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기 때문에 영화 뿐 아니라 다른 많은 문화 상품들도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추구한다. ‘매트릭스’와 ‘반지의 제왕’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상미를 보여주었다. 이런 점을 볼 때 폭력적 성격이 강한 북유럽신화는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현대 사람들의 문화 코드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낮은 인지도다. 보통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아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기 쉽다. 물론 자기가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겠지만 어느 정도 무지의 영역과 아는 영역이 혼재 되어있다면 이것은 흥미를 끌기 좋은 주제다. 이러한 심리적 측면에서 북유럽신화의 장점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 비해 북유럽신화는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낮은 인지도가 오히려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덕분에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많은 문화컨텐츠 사업들이 북유럽신화를 너도나도 채용하고 있다.
넷째, 인간적이고 비권위적이라는 이유를 들 수 있다. 북유럽신화에는 ‘라그나뢰크’라는 종말이 있다. 종말은 북유럽신화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른 신화에서도 등장하기도 한다. 성경에도 심판의 날로 나타나는 세상의 종말이 있다. 하지만 성경이나 다른 신화의 종말과는 다른 세계관을 북유럽신화는 지니고 있다. 여타 다른 신화에서는 종말이란 신의 심판과 거의 동일어로 쓰인다. 인간의 죄악이 쌓이고 쌓여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을 때가 됐을 때 신이 인간에게 심판을 내린다. 다른 신화에서 종말이란 인간의 종말이지 신의 종말은 아니다. 같은 유럽계 신화인 그리스신화를 살펴보아도 신의 존재가 서서히 줄어들며 인간 영웅들의 이야기로 전화될 뿐이지, 최소한 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북유럽의 신들은 파멸로 그 끝을 장식한다. 그리스신화의 신들이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인간과 달리 불멸의 삶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인간과 같은 죽음을 가지고 있는 북유럽의 신들이 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지 않는 불멸의 신보다는 인간과 같이 죽고 다치는 신이 오히려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상적이다. 북유럽신화에는 다양한 종족들과 마법이 등장한다. 수없이 많은 환상적인 마법은 우리의 이목을 끈다. 북유럽신화의 주신인 오딘은 마법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마법과 같은 화려한 요소는 화려한 영상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소재다. 그 뿐만 아니라 환상적인 것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인터넷 문화에도 잘 어울린다. TV의 보급과 함께 시각적 이미지가 우리에게 더 친숙하고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시각적 이미지는 그것이 환상적일수록 더 우리에게 쉽게 기억된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 멀티미디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시각이 정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북유럽신화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마법은 우리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데 좋은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