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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답사 스크랩 타이완(대만) 3박4일 답사기 (4)
김창집 추천 0 조회 244 11.09.08 19: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형 포장마차의 먹거리, 소라고동 구이)

 

◎ 2003년 10월 5일(일요일) 흐린 후 맑음

 

▲ 오징어 있어요, 소주도 있어요

 

 국립 예류(野柳) 해상공원 출구는 바로 먹거리를 파는 포장마차처럼 긴 가게를 지나도록 되어 있다. 그것도 깔끔한 유리 온실로 40m쯤 지어놓고 그 속에는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 요리부터 각종 과일 화채, 빙수, 건어물, 여행기념품까지 온갖 것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 충분히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며 아쉬운 대로 카메라에 몇 컷 담아 부랴부랴 식당에 와보니, 이 식당에서도 가게에서처럼 먹음직스럽게 생기진 않아도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나온다.

 

 식사를 끝내고 아래로 내려와 수족관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커다란 고기들이 놀고 있었다. 돔 종류도 있고 부시리 종류도 있는데, 고기가 우리 나라처럼 색이 산뜻하지 못하다. 베트남에서 1년간 살면서 낚시도 해봤지만 이쪽 더운 지방에서는 고기는 잘 잡히는데, 그 모양은 한결같이 날렵하지 못하고 어두운 빛을 띤다. 우리 나라 해역처럼 온대나 한대지역으로 올라갈수록 고기 빛이 선명해지고 살도 탄력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우리 나라처럼 회를 먹을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싸우지 못하게 살아있는 게의 집게발을 끈으로 묶어놓은 게 우습다.

 


(대형 포장마차 안의 먹거리들, 소라 볶음)

 

 주차장 한쪽으로는 건어물과 이 지역 각종 특산물을 파는 가게가 시장처럼 늘어서 있다. 길쭉하게 말린 오징어를 구워 팔고 있는 곳이 있어 50원(한화1600원 정도)을 주고 한 마리를 샀는데, 숯불에 부채까지 부치며 잘 구워준다. 다음 행선지인 국립고궁박물원으로 가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우리 차의 가이드는 미스 요(姚)는 우리 나라 사람이어서 애교를 부리며 잘도 설명을 해주는데, 1호차의 가이드 미스 마(馬)는 무슨 때문인지 샐쭉해져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이다. 답사를 나오면 모두 합심하여 분위기를 돋움으로써 화기애애한 가운데 재미있는 여행이 되도록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쉬는 사이 나의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오징어와 소주를 가지고 다니며, 고맹맹이 소리로 "오징어가 있어요. 소주! 소주가 있어요. 오징어!"를 외치자 갑자기 차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징어 맛을 본다고 조금씩 나눠주고 한라산 소주를 조금씩 부었더니, 평소 술을 안 드시는 공옥자 여사께서도 한 잔을 받아 마시고 분위기가 그만이라고 마이크를 든다. 올2월 호남의 해안가와 남쪽을 도는 답사 때도 같이 하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지난여름 유럽의 열러 나라를 돌아봤지만 이번처럼 분위기 좋은 여행이 못되었다고 '파우스트'까지 들먹이며 의미심장한 얘기를 해준다.

 


(타이완의 자랑 국립고궁박물원 앞에 선 필자)

 

▲ 70여만 점의 보물 창고 '국립 고궁 박물원' ①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리고 러시아의 엘미타주 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5대 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는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원!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박물관을 구경할 기회가 왔다. 중국 5천년 역대 왕조 문화의 진수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 아닌가? 물론 10여 년 전 중국에 가서 자금성은 보고 왔지만 원래 그 속에 있었던 보물들은 이제서야 여기서 보게 된다.

 

 이 박물관은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중국의 내전을 피해 베이징에서 타이베이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중국 본토에 있던 청(淸), 명(明)나라 시대에 황제가 직접 구입하여 보관하던 유물을 약 70여만 점 가져 왔는데, 이 유물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장제스 총통의 동상이 서 있는 박물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뒤 투박하게 지어진 박물관으로 들어가면서 안내서를 보았더니, 이 박물관의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연중 무휴로 개관하며 09:00부터 17:00까지가 관람 시간이다.

 

 입장료는 비교적 쌌는데, 일반이 100원(3,600원 정도), 20명 이상 단체가 80원이다. 학생증을 소지한 외국 학생이나 박물관학회 회원증 소지자는 반값인 50원이란다. 이곳에서 나온 안내서에는 전시실 내에서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며, 서예, 그림, 도서 문헌 및 갑골문 등 고지돼 있는 것은 촬영을 금지하나, 그 외의 전시실은 국부적으로 촬영을 개방하고 있다.

 


(상나라 말기 갑골문자가 씌어진 거북의 등뼈, 갑골각사[甲骨刻辭])

 

 고궁(故宮)이란 말뜻 그대로 '옛날 궁전'을 뜻하는 것으로 현재에도 베이징에 남아 있는 자금성을 가리킨다. 고궁박물원에 전시된 문물도 원래는 베이징의 고궁인 자금성에 소속된 것이었다가, 근대 중국 혼란기에 수 차례의 산란, 파괴, 약탈의 위기 때문에, 세계적인 민족유산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중요 문물은 베이징(北京)에서 난징(南京)으로, 그리고 다시 이곳 타이베이(臺北)로 아주 멀리서부터 운반(운송시 물품의 파손은 하나도 없었다고 전해진다)해다 소중하게 보존돼 왔다.

 

 1965년, 타이베이의 북동쪽 약 8km 지점인 스린취 와이상시의 산골짜기에 고궁박물원을 짓고 문물을 일반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중국 중세기 궁전 건축 양식에 비취색의 유리 기와를 얹은 4층 전시관, 왼쪽에 행정집무 빌딩, 오른쪽에는 중국 송대의 정원을 복원해 놓은 즈산위안이 펼쳐져 있다. 본관 뒷산 지하에는 온도와 습도를 완벽에게 조절할 수 있는 보관 창고를 지어, 1천여 년에 걸쳐 송에서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이 수집, 애용한 문물 70여만 점을 보관하고 있다 한다.

 

 총건평 5,378평, 4층 본관은 1∼3층이 전시실, 각층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견학하도록 동선이 이루어졌다. 70여만 점의 소장품 가운데 약 2만 점이 전시돼 있으며, 절세의 걸작으로 불리는 수백 점의 상설 전시 이외에는 3∼6개월 단위로 전시품이바뀐다. 그렇게 되면 소장품을 다 둘러보는 데만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청나라 때 옥으로 만든 돼지고기 모양의 돌[肉形石])

 

▲ 70여만 점의 보물 창고 '국립 고궁 박물원' ②

 

 박물관에는 특별실과 강연실 등도 갖춰져 여러 가지 문화 행사도 다수 개최되고 있다. 관내를 구석구석 감상하는 것은 하루로는 어림도 없다고 한다. 입구 오른쪽의 '화하문화(華夏文化)' 즉 중국 문화와 세계 문화를 대비해 놓은 패널이나 멀티미디어 영상실에 들러 중요 문물을 소개해 놓은 것을 참고삼아서 보고 싶은 부분을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전시실은 105호실의 청동기부터 시작해 109호실의 갑골문, 111호실의 은허(殷墟)로 이어진다. 이 문물들은 상(商)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문물들인데, 1층 왼쪽에는 '근대관'으로 중국의 근대와 현대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관을 지키는 귀여운 모습의 수호신들이 자리한 111호는 은허실(殷墟室)이다. '후가장(候家蔣) 1001호 대묘(大墓)'라는 타이틀로 전시되었는데, 허난성(河南省)의 안양에서 1932년 박굴된 은상(殷商) 시대 황제의 묘는 남북 69m,동서 46m에 이르는 거대한 관이 지하 10m 되는 지점에 있었는데, 도굴에 의해 유골과 보물, 문헌 등이 사라져 아직 누구의 무덤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대리석과 옥, 해골 조각, 청동기와 도자기 파편 등의 부장품이 다수 출토됐으며 사람과 짐승을 합체한 수많은 석조상에는 당시의 종교 관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춘추전국시대 감송록석[嵌松綠石], 공작석[孔雀石], 금속사희존[金屬絲犧尊])

 

 '갑골문'은 약 3천년 전의 상(商)나라 시대에 거북이의 등껍질이나 소뼈 등에 점술가가 문자를 새긴 후 새긴 껍질을 불에 구울 때 생기는 금이 간 모양으로 길흉을 점치던 것이다. 이 갑골에 새겨진 문자가 갑골문자인데, 세계최고의 문자이자 한자의 원형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발견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99년 청(淸)나라 학자 왕이롱(王懿榮)이 감기약으로 '용골(龍骨)'을 샀는데, 용골에 문자 같은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해 다른 용골들을 찾아 조사해보았더니 지금까지 없던 고대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고, 1001호 대묘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갑골문자 4천 자 가운데 반은 아직까지 해독조차 하지 못했다.

 

 다음은 청동기 시대 유물실. 중국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 이전 하(夏) 시대부터 시작해 기원전 1000년께의 상(商)∼춘추시대에 전성기를 맞는다. 청동기 가운데도 특히 존중된 것은 예법인 솥(鼎)으로, 권력과 통합의 상징이었다. 또한 술잔은 종류, 형태와 함께 명칭도 다채로운데 무엇보다 고대부터 술 문화가 발달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밖에 계랑기와 식기, 조리 등 일상생활 잡화로 쓰인 청동기에도 디자인이 멋진 제품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그 가운데 황제가 쓴 것에는 그 상징인 용의 문양이 절대 빠지지 않고 사용되었다.

 


(송나라 때 황정견[黃庭堅]의 글씨, 자서송풍각시[自書松風閣詩] 부분)

 

▲ 70여만 점의 보물 창고 '국립 고궁 박물원' ③

 

 2층은 주로 도자기와 서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도자기는 소장 작품수가 무려 2만 4천 점으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도자기는 신석기 시대(약 8천년 전)의 채도(彩陶)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며 긴 역사와 광범한 지역, 그리고 고도의 기술, 권력자의 사치스러운 욕구 등에 의해 태어난 작품은 한없이 심오한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글씨(書)는 약 1만 5천 점, 그림 약1만 2천 점으로 모두 엄청난 수를 자랑하지만 서화는 손상되기 쉽고 퇴색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1회의 전시 기간은 3개월 이내로 제한하는 등 보존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한다.

 

 글씨와 수묵화는 중국에서 시작하고 발전해온 예술이다. 서는 정(靜)과 동(動) 두 파로 나뉘었는데 정파에서 글씨의 원조는 진 나라의 왕희지(王羲之)작품인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이 유명하다. 1층 '화하문화와 세계문화' 코너에 벌레 먹은 구멍까지 재현한 모사품이 전시되어 있다. '동'파의 글씨는 악동하는 듯한 강력함이 있다. 당의 회소(繪素)가 그린 '자서첩(自敍帖)'은 그전형으로 불린다. 서도 역사 속에서 새로운 작풍이 생기며 뉴웨이브의 기수라고 할 수 있는 송의 4대 서가인 채양(蔡襄),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미불(米 )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11세기 북송(北宋)의 정계에서 활약했으며, 왕헌지(王獻之)가 구축해온 유풍(遺風)부터 안진경(顔進卿)의 새로운 작풍까지 능숙하게 흡수해, 대범한 서풍을 구축했다.

 


(송나라 때 마원[馬遠]의 그림 '산경춘행[山徑春行]' 부분)

 

 중국 화풍은 선왕(善王)과 폭군(暴君)을 대비해 벽에 그린 인물 풍속화를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중국의 그림은 인물화를 필두로, 산수화·화조화·죽석화·종교화 등 10종류로 나뉘어 발전해왔다. 중국 화단에서 일류 화가로 불리려면 그림의 기교는 물론, 글씨에도 능해 시(詩)를 이해할 수 있는수준의 교양이 필요했다. 다음은 도자기실. CHINA라고 하면 중국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자기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중국의 도자기가 해외에 수출되기 시작한 송대(10∼13세기), 명대 이후에는 세계의 시장을 CHINA가 독점해왔다. 중국의각 시대별 도자기의 최고봉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고대의 도자기, 유명한 당 삼채, 경덕진(景德鎭) 등 세련된 도자기의 변천사, 지역성이 가득한 가마의 특징 등이 볼 만하다. 특히 송대부터 역대 왕조는 직영 가마(관궁)를설치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격전을 벌여왔다. 송대의 대표적 가마로서 백자가 훌륭한 정요(定窯), 청자의 여요(汝窯), 자주색의 요변(窯變)이독특한 조요(釣窯), 관입(貫入, 금)이의 대표 가요(哥窯), 담청색이 절품인 관요(官窯) 등이 있다.

 


(청나라 때 강희요에서 나온 유리 3색 산수 필통 : 높이 14cm)

 

▲ 70여만 점의 보물 창고 '국립 고궁 박물원' ④

 

 3층은 박물원 가운데 예술적, 실질적으로 가치가 있는 보물들만 모아놓은 곳으로, 역대 왕조의 강력한 권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그래서 3층에는 특별전 전시장으로 사용되는 방이 많다. 4천 년 전의 제사 용품과 옥, 청대의 화려한 자기와 칠보구이인 법랑(琺瑯), 비취와 상아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조각을 새긴 미술공예품, 황제의 장난감 상자로 불린 진완(珍玩) 등 놓칠 수 없는 전시품들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도 '취옥백채(翠玉白寀)'와 유머러스한 '육형석(肉形石)', 부자 3대에 걸쳐 완성했다는 치밀한 세공에 정신이 혼미할 듯한 상아 조각 등이 인기를 독차지하는 전시물이다.

 

 조각은 중국인의 뛰어난 손끝에서 재료가 새롭게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상아구층탑(彫象牙九層塔)'은 받침대를 빼고는 모두 1개의 상아에 조각된 작품이다. 각 층에는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한 보살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파풍(破風)에 흔들리는 풍령(風鈴)까지 재현했다. 제작법이 알려지지 않은 조상 아투화 인물투구와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듯 얇은 투각기법의 조상아사층투화제식합, 돋보기로 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치밀한 조각품들이 가득하다. 상아와 코뿔소의 뿔, 비취, 목재부터 나무열매의 씨앗까지 이곳은 치밀한 중국 조각의 집대성해 놓았고, 극한에까지 이른 세밀한 조각에서 중국의 강한 끈기를 찾아볼 수 있다.

 


(명나라 때 만력요에서 나온 5채운룡 개관 : 높이 11.8cm)

 

 법랑은 금속제품에 규석(硅石)과 점토 등의 유약(釉藥)을 발라 구어 성질을 유리질로 변성시킨 것을 말한다. 칠보구이라고도 하는데, 서양에서 전래된 기법이다. 법랑에는 겹사( 絲) 법랑, 내전(內塡) 법랑, 필회(筆繪) 법랑 등세 종류가 있으며, 각각 유선칠보, 장르칠보, 칠보그림으로 불린다. 적, 녹, 청등의 에메랄드 질감의 고운 색이 도자기에 화려함을 더하고 액세서리 등 소품부터 테이블과 병풍 등에 이르는 규모가 큰 제품까지 많이 이용된다. 옥과 비취 등에는 영적, 신비적인 힘이 들어있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제기와 액막이 장식품 등의 소재로 귀중히 여겨왔다.

 

 황제들은 옥의 6색을 가려 썼는데 창(蒼)-천(天), 황(黃)-지(地), 청(靑)-동(東), 백(白)-서(西),적(赤)-남(南), 흑(黑)-북(北)을 정해 '육기(六器)'를 숭상했다. 이런 관습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진귀한 옥과 투영한 옥 조각품이 역대 황제 밑에 모여 있다. 복식부에는 역대 황제와 황후가 입은 복식품 다수가 진열되어 있다. 화려한 자수와 보석 등을 여기저기 박아놓은 관과 의복, 손톱을 장식한'지갑투'와 화려한 팔찌 '탁여반지' 등의 액세서리는 궁정 권력의 상징이다. 황족의 복식관계를 전시하는 311호실이지만, 주로 기획전시장으로 쓰인다.

 


(청나라 때 옥의 원색을 살려 만든 취옥백채[翠玉白菜])

 

▲ 박물원 부속 시설 및 기념품 가게

 

 3층까지 대충 둘러보고 나니, 이외로 단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박물관이 오래 전에 지어져 상설 전시실의 규모가 적기 때문이다. 나를 따르는 분들이 남은 30분을 어디 가서 보내느냐 묻는다. 답은 간단하다. 주마간산격으로 보았기 때문에 기념품점에 가서 도록(圖錄)이라도 하나 사야지 집에 가서 글 쓸 때도 참고하고, 두고두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념품점에는 그 박물관의 특색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어 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1층 로비에 있는 기념품점에 들어서는 순간, 23권으로 된 백과사전 크기의 도록을 보고 이 박물관의 유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인 판매 기간이었는데, 돈을 다 털어도 턱없이 모자란 가격이어서 저걸 사서 택배로 부쳐 어느 도서관에 기증해 놓고 두고두고 봤으면 하는 마음이간절하다. 약식으로 된 것이 어디 없을까 하고 기웃거리다 '고궁도람(故宮導覽)'이라고 쓴 책을 발견했다. 영문판과 한문판 2가지가 있었는데, 값도 399냥이어서 적당하다. 한문판 1권을 샀는데 여기 곁들여진 사진은 이 책에서 스캔 받은 것이다. 다시 분야별로 아담하게 만들어진 '고궁보급(故宮寶 )' -옥기(玉器), 도자(陶瓷), 도서문헌 편을 500냥 주고 샀는데, 여기 나오는 도자기 그림이 이 책에서 스캔 받은 것이다.

 


(청나라 때 작품으로 상아 조각인 조상아산수인물소경[雕象牙山水人物小景])

 

 이것저것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에 밖에 있는 부속 시설은 가보지 못했다. 안내 책자에는 4층에 중국식 찻집 '싼시탕인차스'가 있어 맛있는 차와 만두를 판다고 되어 있다. 나오다 본관 오른쪽에 송에서 명대의 정원을 본떠 지은 즈산위안(至善園)을 바라보았다. 작은 시냇물을 감싸는 약 2만3천㎡의 부지에 세워놓은 암석은 높은 산처럼 보이고, 연못은 호수와 바다로 상징되는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커다란 비단잉어들이 노니는 커다란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지었다는 망루(望樓)에 앉아 쉬고 있는 한가로운 사람들.

 

 만약 이런 박물관이 가까이 있어, 시간 나는 대로 와서 한 곳 한 곳 찬찬히 살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기념품점에는 유명 미술품 모사본들이 값이 아주 싸다. 차에 올라 그림이 맘에 들어 한 점 샀다는 아주머니의 그림을 펴 보며, 잘 샀다고 칭찬을 했는데 전형적인 중국의 산수화다. 비디오 테입을 산 분도 있고 아담한 도자기류를 내놓고 자랑하는 분도 있다. 중국의 그 드넓은 자금성에 이들 유물 모두를 진열해두고 본다면 어울리겠다싶은 생각을 말했더니, 그러면 그곳에 지금 모아 놓은 것은 어떡하느냐고 웃는다.

 

* 다음은 룽산쓰(龍山寺)와 야시장 얘기입니다. (계속)

 


(청나라 때, 운수평[渾壽平] 그림 모란[牧丹])

 

♬ 追夢人 - 고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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