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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추구와 사랑의 구현
박성배(朴聖培) 작가작품론
박상재
Ⅰ. 작가에 대한 조명
기독교의 핵심 사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랑의 정신이다. 그 사랑은 힘들고,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누어질 때 더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박성배는 교육자이자 동화작가이면서 개신교 장로를 지낸 참된 신앙인이다. 그 때문에 박성배 동화에는 기독교적 사랑의 정신이 면면히 녹아 있다. 그의 동화에 나타나는 사랑의 정신은 가난하고, 공부 못하고, 힘없고, 자신감이 없어 늘 따돌림당하거나 사고 등으로 인한 좌절감 때문에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어린이에 대해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박성배는 1946년 전남 무안군 무안면 매곡리 수암에서 부친 박현국과 모친 정복덕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은 교도관으로 있다 후에 목회자의 길을 걸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치는 단초가 되었다. 목포 산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달중학교와 문태고등학교를 거쳐 1968년 서울교육대학을 졸업하였다. 이어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심리를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서울 송정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직의 길을 걷다 서울노원초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전형적인 교단작가이다. 그는 동화의 환상성을 중시하고 현실에 뿌리를 둔 판타지동화 창작에 전념하여 많은 성과를 거둔 작가이다.
1969년 월간 <횃불> 11월호에 동화 「마귀를 이긴 선희」가 박홍근에 의해 추천되며 동화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75년 제2회 서울특별시교원문예작품 모집에 동화를 응모하여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소설을 응모해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무렵 권오훈, 김학선, 정용원, 정용한, 노원호, 유창근, 최영재 등과 함께 ‘서울아동문학동인회’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인 동화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78년 서울신문신춘문예에 동화 「선아만의 비밀」이 당선되면서부터이다. 그는 1986년 「천사의 눈」으로 한국아동문학 작가상을, 1988년 꿈꾸는 아이로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을, 1994년에는 「사랑의 빵」으로 한국동화문학상을, 2005년에는 고추잠자리 꿈쟁이의 흔적으로 천등아동문학상을, 2012년에는 예총예술문화상 대상을, 2014년에는 행복한 비밀 하나로 김영일 아동문학상, 2018년에는 꼬리에 리본을 단 꼬마쥐로 삼봉문학상과 종로문학상, 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새싹한테서 온 전화(교학사, 1981), 달밤에 탄 스케이트(꿈동산, 1983), 천사의 눈(꿈나무, 1985), 꿈꾸는 아이(아동문예사, 1988), 쫓겨간 꼬마 도깨비(교육문화사, 1988), 부러운 연애편지(상서각, 1993), 천사를 만난 바람(동아출판사, 1993), 나팔꽃의 사랑(꿈동산, 1995), 초록색 초대장(민지사, 1997), 말괄량이와 개구쟁이(관일미디어, 1997), 벽 속에 갇힌 아이(한국독서지도회, 2002), 왕따 문숙이(글사랑, 2006), 아빠 구두 닦는 행복을 아세요?(지팡이, 2008) 행복한 비밀 하나 (푸른책들, 2011), 꼬리에 리본을 단 꼬마쥐(아침마중, 2017)등의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박성배는 문단 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도봉문인협회 회장, 계간문예작가회 회장 등을 지냈다. 2021년 봄 뇌일혈로 쓰러져 투병하다 10월 7일 타계하여 양주 하늘안 추모공원에 영면해 있다.
Ⅱ. 박성배 동화에 대한 분석적 접근
1. 꿈을 매개로 한 현실과 환상의 접목
「선아만의 비밀」은 작가를 본격적으로 동화작가로 등단하게 한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겨울 방학 중 집에 불이 나자 방을 빠져 나오던 선아는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일기장을 챙기고, 새장 속의 카나리아까지 날려준 뒤에 쓰러져 팔과 얼굴에 화상을 입게 된다. 병원에 입원한 선아는 개학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흉터를 보고 놀릴까봐 걱정을 하게 된다.
선아가 일기장만 꺼내 가지고 빨리 나왔더라면 화상을 입지 않았을 텐데, 새를 살려 주려다 다친 것은 선아만의 비밀인 것이다.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하늘에서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자리를 찾아보고 그 사이에 있는 북극성을 찾는데 누군가 선아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중략-
“너를 볼 수 있는 것부터가 눈이 밝아진 거라고? 너는 누군데.”
“후후 또 그런 질문. 나는 말이야 요정이지.”
요정은 선아의 볼을 따스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선아를 데려온 요정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했습니다.
“일어나야지?”
선아는 귓가에 닿는 어머니의 따스한 숨소리를 느끼며 눈을 떴습니다.
주 2)는 환상의 세계로의 이입 부분이고 주 3)은 환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빠져나오는 장면이다. 선아가 요정을 만나는 장면은 결국 꿈속에서의 일이다. 이와 같은 몽환적 판타지는 꿈이라는 허무감 때문에 판타지의 격조를 떨어뜨리게 된다. 꿈에서의 이탈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거나 꿈이 아닌 심리적 판타지로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삽화이다. 이러한 꿈을 삽입한 판타지의 전개 방식은 70년대까지 주류를 이루던 한국 동화의 전통적 판타지 작법이었다. 이러한 작법은 판타지의 지경을 확대하지 못했고, 스케일을 넓히지 못하여 판타지의 활성화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판타지 동화가 보편화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꿈의 처리는 환상과 현실의 튼튼한 접목을 위한 시도로 보여진다.
「선아만의 비밀」은 요정 꿈을 꾸고 난 선아가 어머니로부터 흉터는 없어지겠다고 한 의사 선생님의 말을 전해 들으며 환히 웃는 장면으로 끝나게 된다. 결국 그 웃음은 선아가 요정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으로 아무도 모르는 두 번째 ‘선아만의 비밀’인 것이다. 이 동화는 입체적 구성과 판타지를 지향하는 동화의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작법상 판타지의 본령을 꿰뚫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동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꿈꾸는 아이」는 몽환적 판타지로 분류할 수 있는 본격 환상동화이다. 월간 <아동문예>에 연재했던 이 작품으로 작가는 대한민국문학상(우수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대에 창작된 장편류는 아동소설이거나 생활동화가 대부분이었다. 「꿈꾸는 아이」는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고리가 비교적 튼튼하게 설정되어 동화에 생명력을 획득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접경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기술이야말로 동화의 문학적 성패를 평가해 주는 척도인 것이다.
이 동화의 주인공인 준석이는 바보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다. 공부도 못하고 체육도 미술도 못하는 자신감 없는 아이이다. 그 때문에 주근깨, 왕고집, 바보왕자, 외톨이 같은 별명으로 통하는 아이이다. 어느 날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다가 짝인 보라의 코피를 터뜨리고, 아이들에게 쫓겨 ‘철거예정 건물’인 창고 속으로 숨는다. 창고 안에 있던 낡은 뜀틀에서 손짚고 공중돌기를 하려던 준석이는 뜀틀이 무너지는 바람에 곤두박질치고 만다.
창고 안이 뱅그르르 돌아갑니다. 희미하게나마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깊은 잠에 빠져들 듯 점점 더 까무러집니다. 그때, 창고 밖에서 준석이네 반 아이들이 준석이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중략-
“얘, 일어나.”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는 준석이를 누군가 흔들어 깨웠습니다.
‘난 못 일어나.’
준석이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었지만 그런 대꾸를 하고 싶었습니다. -중략- 준석이는 그 아이가 하는 대로 조금씩 나누어 따라 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햇살이 깔린 듯한 환한 길이 눈앞에 훤히 나타났습니다.
창고 안으로 숨어 들어간 준석이가 뜀틀을 넘다 곤두박질쳐 의식을 잃고 환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장면이다. 환상의 세계로의 이입 과정이 스르르 잠 속에 빠져들 듯 매끄럽게 설정되어 거부반응을 느낄 수 없다. 준석이가 만난 아이는 그의 분신인 환상의 아이이다. 환상 아이는 준석이를 이끌고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하늘에서 땅까지 구름계단이 만들어지고, 꽃비가 내리고, 무지개로 만든 집이 구름처럼 떠다니는 환상세계로 가서 환상세계의 왕을 만난다. 환상세계의 왕으로부터 칠색구슬을 받아든 준석이는 ‘일곱 빛깔이 다 없어져야 현실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환상아이의 도움을 받아 일곱 빛깔의 별을 찾아가게 된다.
빨강빛깔의 별에서는 ‘노력’이라는 거인 소년을 만나 수영과 뜀틀운동, 만들기를 잘하게 되고, 주황빛깔의 별에 가서는 ‘친절’을 만나 서로 돕는 생활을 배우고, 노랑빛깔의 별에서는 ‘불안’을 만나 용기를 배운다. 또 희망나라인 초록별에서는 ‘생각’을 만나 산수 문제를 풀어주고, 파랑별에서는 ‘의욕’을 만나 멈춰 있던 꽃시계의 바늘을 돌리고, 남색별에서는 청도깨비와 마라톤 경주를 하여 이기고, 보라색별에서는 불칼 아이를 만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워 노래도 잘하게 된다.
보라색별이 사라지게 되자 준석이는 맨 처음 환상아이를 따라서 왔던 곳에 서있게 된다. 준석이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때 환상세계의 왕이 나타나 이별의 악수를 하고 환상아이와도 악수를 나눈다.
“네가 네 자신 속에 숨겨 있던 훌륭한 너를 찾게 돼서 나도 기뻐.”
준석이는 환상아이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씩!’ 웃어 보이고는 동그란 햇살을 힘껏 던졌습니다.
그러자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비치듯 빛나는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중략- 햇살길은 학교 창고 안으로 뻗어 있었습니다. 준석이가 창고 안의 낡은 매트 위에 풀썩 뛰어내린 순간 햇살길이 다 타 없어졌습니다. / 창고 안은 바로 앞도 안 보이게 캄캄했습니다. / 준석이는 매트에서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 머리가 띵합니다.
환상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세계로 이입되는 장면이다. 주인공 준석이가 뜀틀 운동을 하다 다쳐 정신을 잃고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준석이가 체험한 판타지 세계는 꿈일 수도 있고, 주인공의 몽미한 의식이 엮어내는 심리적 판타지일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작가는 ‘준석이가 엉뚱한 상상 때문에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는 삽화로 치밀하게 사전조율을 해놓고 있다.
정신을 차린 준석이가 창고문을 힘껏 열려고 했지만 문 앞에 쌓아둔 책상과 의자들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준석이가 창고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새로 들여온 책상과 의자를 창고 문 앞에 쌓아두었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없어진 준석이를 찾아나섰지만 책상이 쌓인 창고 안은 들여다볼 생각을 안 한 것이다. 이처럼 명료하게 설정된 리얼리티는 이 동화의 환상성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준석이가 “밖에 아무도 없어요”하고 큰소리로 외치자, 손전등을 든 부모님과 선생님, 아이들이 책상과 의자를 치운다. 엄마 품에 안기게 된 준석이의 당당하고 의젓한 모습을 본 모두는 나무라거나 핀잔 줄 생각은커녕 소중하게 생각한다.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던 준석이가 환상여행을 하면서 의젓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박성배는 환상의 개념을 기독교적 신앙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천지창조를 하나님의 환상의 산물로 본 것이다. 천지를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한 것이나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한 것도 하나님의 환상의 산물로 보고, 우주의 삼라만상 또한 하나님의 환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신화 역시 환상의 고리로 연결시키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벌로 환상세계에서 쫓겨난 셈이지. 그러나 옛날처럼 사람들의 환상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길을 한 가지 남겨 두시긴 했어. 그건 사람들이 그만큼의 수고와 노력으로 땀을 흘리는 일이야.” -중략-
“물론 어렵지. 그래서 아기 때는 옛날 죄를 짓기 전에 사람들이 환상을 하던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자기 마음껏 환상의 날개를 펴기도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환상을 아예 포기해버리고, 먹고사는 데에만 힘을 쓰게 되고 말았지.”
박성배는 장로의 직분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는 환상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성경을 이처럼 동화라는 그릇에 담아 거부감 없이 재수용하고 있다. 성경이나 불경, 코란경 같은 경전은 신화라는 특성 때문에 경이와 신비로 가득 찬 환상의 보고일 수밖에 없다. 박성배는 이처럼 성경의 일부 혹은 신화 모티브를 동화에 접목시키는 수법으로 환상의 지경을 넓히고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경전의 스토리를 전폭 수용하여 재구성하는 성경동화나 대장경동화와는 다른 시도로 환상의 역동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문학성까지 증폭시킬 수 있는 반면 잘못 다루면 치졸함을 면할 수 없는 이중구조를 갖고 있다.
2. 공동체적 사랑의 정신
「무엇이 꽃으로 피나?」는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에서 감사하는 마음의 소중함을 그린 동화이다. 산기슭에서 한 번도 꽃을 피워보지 못한 채 살던 난초가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되면서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꽃을 피우지 못해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던 난초는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꽃을 피운 후 자신들이 꽃을 피울 수 있게 도와 준 모두에게 감사하는 것을 본다. 그 때 죽음을 앞둔 잠자리가 난초 잎에 내려앉아 서로 대화를 나눈다.
난초는 지친 잠자리를 어떻게 하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난 나에게 날개를 주신 분께 감사해. 그동안 세상을 마음껏 구경했거든. 세상은 정말 넓고도 아름다워. 난 나의 모습을 닮은 잠자리가 될 알을 낳고 왔어. 이젠 할 일을 다한 거야. 그리고… 네 곁에서 눈을 감게 돼서 더 행복해.” -중략-
난초는 꽃도 피우지 못한 보잘것없는 자기 곁에 있고 싶어한 잠자리가 고마웠습니다. / 그러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리듯, 난초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습니다.
난초는 마음을 열고 햇살과 맑은 공기와 흙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주위의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불평만 하던 지난날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자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된다. 박성배의 동화에는 이처럼 사랑과 감사의 정신이 주제로 녹아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이 투철한 기독교 신앙인임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정신은 「사랑의 빵」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은주는 새 옷을 입고 교회에서 나누어 준 ‘사랑의 빵’ 저금통에 정성껏 모은 용돈을 가지고 주일학교에 간다. 은주는 교회에서 준미를 만나자 왜 자기를 생일 잔치에 초대하지 않았냐며 따진다. 그런데 준미가 가지고 온 ‘사랑의 빵 저금통’에는 동전 대신 만원짜리가 십만 원도 넘게 들어 있었다. 준미는 신문에서 본 소말리아의 굶주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생일 잔치를 하지 않고 성금으로 가져온 것이다.
“그래, 네 생일에 꼭 필요한 친구들을 초대했구나.”
선생님은 신문을 접으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습니다. -중략-
“은주 참 예쁜 옷 입었구나.”
사찰 집사님이 은주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은주는 못 들은 척 걸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옷을 벗어서 사랑의 빵 저금통에 넣고 싶어.’
은주는 아까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준미가 가져온 신문에 난 소말리아 어린이들의 뼈만 남은 사진을 보고 선생님이 우는 장면과 함께 준미를 오해했던 은주의 마음을 그린 이 동화의 에필로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삽화는 주제를 노출시켜 문학성을 훼손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화는 빈틈없는 구성에 힘입어 문학성의 폄하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동화에서 짜임새 있는 구성의 역할이 중차대함을 반증하는 예이다.
3.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의 구현
「천사를 만난 바람」은 그의 필력이 무르익은 90년대 전반기에 쓰여진 장편동화이다. 이 동화는 부제를 통해 스스로 밝혔듯이 사람의 혼을 안고 살다 간 바람의 이야기이다. 설화문학의 범주에 드는 민담이나 전설, 전래동화에는 귀신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애니미즘에 입각한 설화문학은 물론 현대문학에서도 영혼이나 마귀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동화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화에서 귀신이나 혼령의 이야기를 흥미 본위로 접근하게 되면 문학성을 떨어뜨리는 딜레마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사람의 혼을 안고 살아가는 바람을 의인화한 우의적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문학성에 힘입어 완성도가 돋보이는 가작이다. 그것은 유려한 필체와 짜임새 있게 전개되는 작품의 구성력에 기인한다.
바람을 의인화한 동화들은 많이 있다. 바람은 시공을 초월하여 세상을 마음껏 떠돌아다닐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은닉성 때문에 동화의 소재로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유의 동화들은 대부분 바람 자체를 의인화하는데 머물러 판타지의 동력이 미약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 때문에 단순히 내레이터에 머물거나 주변인물의 역할을 수행하는 게 고작이며, 비록 중심인물이라 하더라도 역동성을 수반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타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천사를 만난 바람」은 바람 자체가 사람의 혼을 지닌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살아있고, 그 결과 판타지에 역동성을 공급하여 힘있는 동화가 되고 있다.
이 동화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기독교 사상의 핵인 사랑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장래 희망이 발레리나인 지예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발레를 배운다. 어느 날 체육 시간에 뜀틀 운동을 하다가 친구인 희라를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구하려다 다리를 다쳐 목발신세를 지게 된다. 좌절감에 빠진 지예는 가출을 하여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혼절하게 된다. 이 때 빠져나간 지예의 혼을 지나가던 바람이 안게 된 것이다. 혼을 지닌 바람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바람을 다스리는 천사를 만난다. 천사는 바람에게 지예의 혼은 아직 하늘나라에 올 때가 되지 않았다며 돌려줄 것을 요구하지만 바람은 욕심 때문에 듣지 않는다. 결국 바람은 앙겔리라는 천사와 함께 세상 구경을 나선다.
바람은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어 휠체어를 탄 민호와 어머니의 사랑을 지켜보다 혼자라는 외로움과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자살을 한 준식이를 보며 많은 혼의 정체를 깨닫는다.
“저 불빛들이 모두 천사니?”
“천사들은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 오르기도 하고 죽은 사람의 혼을 나르기도 하느라고 조금도 쉴 틈이 없이 하늘을 오르내린단다.”
“그런데 왜 색깔들이 모두 다르지?” -중략-
“결국 사람들의 몸이란 혼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은거야. 물이 그릇에 담겨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듯이 혼도 몸 안에 담겨 있어야 쓸모가 있는 거야.”
천사의 말은 이번에도 지예의 혼을 돌려줘야 한다는 말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사는 바람에게 지예의 혼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지만 바람은 번번히 그 요구를 묵살한다. 때로는 들어줄 것 같기도 하다가 들어주지 않고, 필요없는 아집과 변덕을 일삼는 바람의 행위는 열한 살 소녀의 혼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러한 아집과 묵살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풀릴 듯 풀리지 않고, 밀고 당기는 팽팽한 이야기의 긴장감은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 박성배는 이 동화를 통해 때로는 ‘어린 왕자’의 멘트를 연상할 만큼 울림이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람을 설득하는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네 혼을 지예에게 돌려줄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면 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을 하는 셈일 거야.”
천사는 나의 눈치를 보며 말했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지?”
“기억에 남게 되지.” -중략-
“남의 기억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동화나 시를 쓰든, 음악이나 미술을 하든, 모든 예술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작가에 대한 기억을 현세나 후세에 널리 전승하는 데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예술 그 자체에 탐닉하여 창작혼을 불사르며, 성취감에서 오는 희열 그 자체에 만족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가람이 아니고 냇물일 뿐이다. 어디 예술뿐이랴! 세상을 전설처럼 아름답게 살다 들꽃 같은 향기를 남기며 간 인물들의 삶과 추억을 향수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러한 향수는 자신도 훗날 그러한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소망이자 대리만족의 소산인지도 모른다.
“어려운 중에서도 저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있지 않니?”
“그게 사랑이라는 거야. 사람은 저렇게 ‘사랑’을 해야만 살 수 있지. ‘사랑’을 못하는 몸은 물을 주지 않은 풀처럼 시들시들 말라 가게 되지.” -중략- “생각할 수 있는 혼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못하는 몸은 혼을 갖고 있을 자격이 없는 거야.”
박성배 문학의 알파와 오메가는 이러한 사랑의 정신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러한 사랑의 주제는 「천사의 눈」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서울 맹인학교에 다니던 송이는 눈이 안 보이는 대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한다.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병원으로 위문을 가서 독창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불치의 병에 걸린 혜선이 언니를 알게 된다. 송이는 혜선 언니가 숨을 거두며 선물로 주고 간 눈을 선물받고 빛을 찾게 되며, 그로 인하여 송이는 세상일을 긍정적으로 보며사랑을 실천한다는 이야기이다.
“그 뒤로 얼마 못 가서 혜선이 언니는 지구보다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의 눈 수술 경과는 좋아 이렇게 아름다운 눈을 갖게 되었고요…. 저는 프리즘을 통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또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혜선이 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이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미란이는 누구보다도 먼저 손뼉을 힘껏 쳤습니다.
송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시샘하던 미란이도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하게 된다. 혜선의 안구 기증으로 빛을 찾게 된 송이는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의 힘은 닫혔던 마음의 문까지도 활짝 열게 하여 사랑의 향기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의 철학이다. 타율적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촛불과 같아서 작은 힘이 소중하고 숭고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천사의 날개」는 다리가 성하지 못해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재활치료를 받는 준구가 이웃에 사는 혜란이 누나의 도움으로 마음의 날개를 달고 밝게 살아간다는 줄거리의 동화이다. 혜란이의 준구에 대한 도움은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의 발현인 것이다.
“…하늘에서 눈부신 옷을 입은 천사가 하얀 날개를 들고 와서는 다리를 못쓰는 대신 이 날개를 달고 맘껏 다녀 보아라 하지 않겠어? 날개를 받고 좋아하다가 누나 부르는 소리에 깨어보니, 누나 편지가 왔었어. …이것 봐. 내 날개 천사가 준 날개야.”
준구는 주머니에서 혜란이의 편지를 꺼내 들고 가볍게 나는 시늉을 했읍니다.
혜란이가 준구에게 보낸 편지야말로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준 천사의 날개인 것이다. 준구는 밝은 마음으로 지팡이(목발)를 짚고 축구를 하는 등 마음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게 된다. 결국 준구가 짚고 있는 목발이 혜란이의 눈에는 천사의 날개로 보인 것이다. 이처럼 몸이 불편한 준구는 혜란이라는 마음 따뜻한 이웃의 도움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광명의 세상으로 나와 밝게 살아가게 된다. 결국 「천사의 눈」의 혜선이나 「천사의 날개」의 혜란이야말로 우리의 이웃에 살고 있는 천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박성배가 창조한 천사는 우리와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 그래서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인물인 것이다.
4. 인간성 회복과 자연 사랑
「쫓겨간 아기 도깨비」는 운동에 소질이 없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던 기돌이가 화를 풀려고 산에 갔다가 도깨비 방망이를 줍게 되면서부터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동화의 배경은 서울의 위성도시인 신도시로 다이너마이트로 산을 무너뜨려 아파트를 짓는 개발지역이다.
기돌이가 주운 울퉁불퉁한 방망이는 다이너마이트 폭음에 놀란 꼬마도깨비가 허겁지겁 달아나다 빠뜨리고 간 것이다. 그 방망이를 기돌이 삼촌이 대패질을 하여 매끈하게 다듬어 준다. 마을 대항 야구시합이 벌어졌을 때 기돌이는 그 방망이를 이용하여 역전 만루홈런을 쳐 주윗사람을 놀라게 한다. 기돌이가 밤늦게 잠자리에 누웠을 때 꼬마도깨비가 찾아온다.
꼬마도깨비는 혹처럼 작은 뿔이 나 있었습니다. 눈은 길게 찢어졌고 코와 입이 유난히 컸습니다. 몸은 약간 푸른색이었으며 털이 많이 나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피면서 있는 동안 서서히 무서움이 가시는 듯했습니다. -중략- 기돌이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꼬마도깨비의 손을 잡으려다가 흠칫했습니다.
“손을 안 잡아도 괜찮아.”
둘이는 조심조심 기돌이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불을 켜지 마.”
기돌이가 전깃불을 켜려고 하자 꼬마도깨비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도깨비 또한 여느 작품에 나오는 도깨비들처럼 전깃불을 싫어한다. 그런데 도깨비는 힘이 없어 보인다. 박성배는 도깨비의 입을 빌려 ‘사람들이 자연을 병들게 하면서 도깨비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가는 병에 걸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깨비는 방망이가 깎여진 것을 보고 실망을 하지만 효력을 알아보기 위하여 “꽃 나와라 뚝딱!”을 외친다. 종래의 도깨비방망이들이 금이나 돈 등 재물을 나오게 하는 구조에 비하여 꽃을 주문한 것은 이미지가 신선하다. 이는 작가가 날로 팽배해지는 황금만능주의와 배금사상을 경계한 의도적인 포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꽃은 나오지 않고, 창가에 있던 선인장에서 꽃이 핀다. 결국 방망이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효력 대신 이미 있던 물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만 남아 있는 것이다. 기돌이는 꼬마도깨비에게 학급 대항 야구시합에서 쓸 수 있도록 하루만 더 빌려달라고 부탁하여, 비밀을 지켜줄 것을 약속하고 허락을 얻는다. 작가는 도깨비방망이의 효용성을 존속시키기 위하여 기돌이의 팔에 도깨비방망이의 신통력을 불어넣어 알통을 나오게 하는 수법으로 판타지의 동력장치를 설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돌이는 운동회 전날 밤 도깨비를 학교로 데리고 가서 교실 마루 밑에 숨게 한 후 운동회 때 함께 탈춤을 춘다. 기돌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탈을 썼지만 도깨비는 탈을 쓰지 않은 채로 등장시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와! 저 아인 진짜 도깨비 같다”라고만 말하며 도깨비를 의심하지 않는다. 과연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대낮에 도깨비를 보고도 도깨비탈을 쓴 아이로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사소한 비현실적 접근이, 다시 말하여 리얼리티의 부분적 상실이 환상의 풍선에 바늘구멍을 내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꼬마 도깨비는 흥에 겨운 나머지 방망이를 휘두르다가 내리치며 소리쳤습니다.
“꽃 피어라 뚝딱!”/ “열매 맺어라 뚝딱!”
그러자 꽃밭에서 아직 덜 핀 국화가 활짝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봄에 피는 목련도 하얗게 피어났습니다. 개나리꽃, 진달래꽃, 아카시아꽃도 피어났습니다. 한 번도 열매를 맺은 적이 없던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었고 감나무, 참나무, 벚나무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러한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자 도깨비방망이임을 알아차린 어른들이 그것을 빼앗기 위하여 꼬마 도깨비에게 달려든다. 산으로 달아난 도깨비를 잡기 위해 사람들은 사냥개와 총까지 동원하여 뒤를 쫓지만 놓치고 만다. 기돌이가 도깨비를 쫓아버린 사람들이 야속해 돌팔매질을 하자 돌멩이는 어른이 던진 것만큼이나 멀리 날아간다. 꼬마도깨비가 팔에 넣어준 방망이의 신통력이 발휘된 것이다. 이 동화가 도깨비가 도망친 것으로 끝을 맺었다면 동화의 지향점이 바르게 설정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도깨비를 소재로 한 동화는 많이 창작되었다. 그런데 도깨비방망이의 효력을 사람의 몸에 불어넣어 힘을 발휘하게 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학의 창작 행위는 상투성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요, 이 상투성을 타파하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이 동화는 산업화와 도시개발에 밀려 숲이 사라지고, 자연이 파괴되는 데에도 물질과 허영만을 쫓다 자멸해 가는 인간들의 이기심을 질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도깨비가 힘을 넣어준 팔로 열심히 연습하여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한 기돌이의 결심은 환상적이고 희망적이어서 동화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보여 주고 있다.
5.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
「이티보다 멋있는 친구」는 그늘진 환경 속에서 소외받으며 외톨이로 지내는 이웃을 사랑으로 이해하고 감싸 마음을 열고 더불어 살아가도록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제를 담은 동화이다. 이 동화의 주인공 역시 아이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받아 늘 외톨이로 지내는 성철이라는 아이다. 박성배는 이처럼 그늘지고 소외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당당히 나서는 어린이상을 동화에 담아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여름방학 후 개학날 여자아이들은 미선이를 중심으로, 남자아이들은 세권이를 중심으로 방학 동안 있었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이들의 화제가 UFO에 미치자 외톨이인 성철이가 UFO를 봤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아이들은 거짓말을 한다며 성철이를 놀렸지만 미선이는 그 말을 믿으려 한다. 마침 새로 자리를 바꾸었는데 성철이는 미선이와 짝이 되었다. 미선이는 아이들과 말도 안 하고 숙제도 안해오며 공부 시간에도 멍하니 앉아있는 성철이를 변화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철이는 다시 이티도 보았다고 말한다. 미선이는 다시 핀잔을 주는 아이들에 맞서 성철이 편을 들어준다. 이튿날 성철이가 결석을 하자 미선이는 실망감으로 선생님에게 짝을 바꿔달라고 한다. 선생님으로부터 성철이가 참다운 우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미선이는 몇 아이들과 함께 산 중턱에 있는 성철이네 집을 찾아간다. 허술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근처 숲속에서 성철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티야, 나의 친구 이티야. 난 지구에서는 친구를 가질 수 없단다. 그러나, 너를 친구로 가져서 외롭지 않아. 참, 너에게 미선이 이야기를 해 주었었지. 그 애도 내가 싫은 모양이야. 나하고 짝이 하기 싫다고 했거든.”
아이들은 성철이가 말하는 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티를 볼 수가 없었읍니다. -중략- 미선이는 생일날 꼭 와야 한다는 초대장 밑에 이렇게 덧붙여 썼읍니다.
“우린 이티보다 네가 훨씬 좋아. 난 네가 상상해서 이야기해 주는 이티 이야기가 듣고 싶어. -중략- 너의 짝꿍 미선이가.”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으로 감싸고 따스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를 다룬 또 다른 동화로는 「진짜 어린이」를 들 수 있다. 이 동화는 또래들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으며 억눌리고 소외당하며 살아가는 어린이의 위상을 높여 참된 인성의 가치를 제시한 동화이다. 공부 못하고 어눌하여 늘 무시당하는 성민이를 우주선을 탈 수 있는 훌륭한 어린이로 설정하여 인간성의 회복을 주창한 사랑의 정신이 깃든 동화이다. 이러한 소외된 아동에 대한 깊은 사랑은 앞에서 논의한 두 작품 외에도 「꿈꾸는 아이」의 준석이, 「쫓겨간 꼬마 도깨비」의 기돌이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외를 극복하고 밝은 세계로 나아가 희망찬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그려진 아동상이다.
어린이날 전날 성민이네 반 아이들은 교문에서 나누어 준 낙엽으로 된 초대장을 받는다. 단풍잎 초대장에는 ‘진짜 어린이만 초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지만 공부 잘하고 똑똑한 영태와 준호는 ‘진짜 어린이는 똑똑한 어린이를 말하는 것’이라며 성민에게 분수를 알라고 핀잔을 준다. 공부도 못하고, 부끄럼을 잘 타며 말까지 더듬는 성민이는 자신은 진짜 어린이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멀리서 구경만 할 생각으로 초대장소인 호암산 약수터로 간다. 그 곳에는 진짜 어린이들을 싣고 갈 우주선이 있었는데, 성민이도 영태, 준호 등과 함께 진짜 어린이를 뽑는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제시된 문제는 어미새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새둥지에서 새알 한 개가 떨어지는 그림을 보고 무엇이 생각나는지 답을 쓰는 것이었다. 준호는 제일 먼저 떨어진다는 뜻으로 1등이라고 썼고, 영태는 네 개의 알을 식구끼리 먹겠다는 뜻으로 ‘우리 식구끼리만 냠냠’이라고 썼다. 성민이는 떨어지는 알이 불쌍해서 알에다 날개를 그려 준다. 생명경시 풍조와 극단의 이기주의를 성토하는 이 삽화는 바른 인성의 소중함과 생명의 가치를 절감하게 해 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 엉터리다. 바보가 합격하고 우리는 떨어지다니.”
우주선으로 들어가는 성민이를 보고 섰던 준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우주선은 어린이만 사는 별나라에서 왔습니다. 어린이답지 않은 생각이 어린이 나라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전염되면 그 별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진짜 어린이만 초대하는 것입니다.”
준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우주선에서 말소리가 들려 나왔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바보가 합격하고 이기적인 똑똑한 아이들이 떨어지는 반전의 묘방이 바로 동화의 매력이다. 인심이 각박해지고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현대사회에서 마음 따뜻한 바보가 영악한 똑똑이들을 물리쳤다는 것은 바른 인성의 승리이며 동심 만세의 쾌거인 것이다. 박성배 문학이 지향하는 어린이상은 이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순박하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인간상이다. 어린이다운 생각을 가지고 어린이답게 성장하고, 바른 인성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어린이상인 것이다.
Ⅲ. 맺는 말
박성배는 동화를 ‘산문으로 쓴 시’로 정의하고, 스스로를 환상에서 시작되고 환상에서 끝나는 동화의 매력에 빠진 작가로 규정하였다. 그는 1969년 「마귀를 이긴 선희」로 동화를 쓰기 시작한 이래 50여 년 동안 동화의 핵심요소인 환상동화 창작에 주력하였다. 그는 동화작가이기 전에 성실한 교육자로서 어린이 글짓기 지도에도 힘써 2004년에 제35회 한인현글짓기 지도상을 받았다.
김영훈은 박성배 동화의 특성을 환상성 추구, 동심의 회복, 교육적이고 기독교적인 윤리의식으로 요약하고 있다. 오태호는 박성배의 동화문학은 우정의 회복, 장애에 대한 편견 극복, 환상성의 차용, 계도성의 강조 등의 핵심 요소를 텍스트에 기입하면서 형성된다고 하며 ‘우정과 사랑의 표현’에 주력한다고 파악했다. 김경흠은 박성배 동화의 열쇠어를 합일 정신으로 요약하고, 결말의 현현과 합일 정신, 상반합의 합일, 상련적 합일, 언어 유희를 통한 합일로 정리하였다.
박성배는 세속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투철한 종교적 신앙 이외에 또 다른 굳건한 믿음이 있다면 동화애요 어린이 사랑일 것이다. 권모술수나 세속적 이재추구에는 낯선 박성배 문학의 고갱이는 소외 계층에 대한 사랑의 구현이다. 그들을 끌어안고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사랑의 정신은 기독교적 신앙에 모태를 두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에 천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의 동화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예증이다. 「천사를 만난 바람」에 등장하는 다양한 실체적 천사나 「천사의 눈」, 「천사의 날개」 등에 등장하는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천사들이 그러한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그의 동화에 등장하는 소외된 이웃들은 한결같이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며, 말주변도 없어 늘 어눌한, 그러기 때문에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이다. 「꿈꾸는 아이」의 준석이, 「쫓겨간 아기 도깨비」의 기돌이, 「진짜 어린이」의 성민이, 「이티보다 멋있는 친구」의 성철이 등은 한결같이 자신감이 없고, 의기소침한 인물들인 것이다. 그들은 환상과 사랑의 내면화를 통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당당하고 희망찬 어린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박성배 동화에는 장애와 좌절을 딛고 굳
건히 일어서는 아동상이 제시되고 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새를 구해주다 입은 화상으로 고민하다 꿈속에서 만난 요정의 도움으로 웃음을 되찾게 된 「선아만의 비밀」의 선아,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쳐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하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천사를 만난 바람」의 지예나, 시각 장애로 어둠속에서 살지만 아름다운 노래로 그늘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로하다 불치의 병으로 숨져가며 안구를 기증한 혜선 언니의 도움으로 광명을 되찾은 「천사의 눈」의 송이, 다리가 성하지 못해 좌절 속에서 살다 혜란 누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재활치료를 받으며 굳세게 일어서는 「천사의 날개」의 준구 등은 박성배 동화에 나타나는 좌절을 딛고 새 삶을 찾는 전형적인 어린이상인 것이다. 박성배가 추구한 동화의 대주제는 인간성 회복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사랑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박상재(e-mail:macaca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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