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간판들과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음악소리.
그 중의 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골목까지 침범해있는 락까페며 술집들..
그 중의 한 락까페로 들어가는 입구.
그곳에서 나오는 음악이 입구에서도 들리기 시작하면서..
# 2 락까페 안
청춘들이 춤을 추고 있다.
그다지 인테리어도 되어있지 않은 비좁은 실내.
그 한구석, 계단처럼 되어있는 좌석에 승희가 앉아있다. 팝콘을 씹으며 음악이나 춤을 추는 사람들에는 별 관심이 없이.
// (시간경과)
음악도 바뀌어있고. 춤을 추는 이들도 바뀌어있고.
그리고 구석의 승희는 음악 속에서 잠이 들어있다.
# 3 일식 주방 /
이하 몽따쥬의 기분.
펄펄 뛰는 한 마리의 고급 생선이 도마 위에 올려진다.
그 생선을 손질해가는 과정. 숙련되고 약간은 잔인해보이는 솜씨로 생선 한 마리가 분해되고 회뜨기 좋은 몸통으로 발라진다. 내장 등이 옆의 냄비로 담겨지고. 도마에서 다른 도마로 생선이 옮겨지고..
생선의 머리만이 접시에 담겨지는데 아직 숨을 쉬는 듯 아가미가 헐떡거리고 있다. 그 위로 얇게 떠진 회조각들이 몸통 부분에 올려지고... 그 옆으로 장식들이 놓여지고.
마지막 장식을 올리고 나서 만족하여 보는 조리사. 태성이다.
(이상의 과정은 장소가 다를 수도 있고 조리하는 사람이 다를 수도 있는데 주로 생선 클로즈의 앵글)
태성, 눈을 가늘게 뜨고 접시 위의 회요리를 살펴보다가 한 곳을 살짝 움직여 완벽하게 해놓는다.
완벽해진 회요리 접시에서 아직 머리통의 아가미가 펄떡거리고 있다.
# 4 수납원 휴게실
영은 잔뜩 흥분해서
영은 너 그거 배짱도 아니고 자존심도 아니야. 너.. 그거
너두 같이 미쳐가구 있다 그러는 거야. 너 미쳐가니?
승희 (뚱하니 앞에 앉은 채 ) 나 할 수 있어.
영은 헛소리 고만하구. 오늘 당장 짐 싸서 우리집으루 와.
회사에 휴가원 내는 건 내가 해줄게. (말하다가 잠깐)
..그렇지. 이 기회에 우리 같이 휴가 떠나자. 설악산 갈까?
승희 여름에 벌써 빼먹어 놓구 무슨 휴가.
영은 하여간 너 제발 미련 좀 떨지 마. 일단 우리 집으로 와. 그리고..
승희 언제까지. 어디까지 도망쳐? 그런 놈 땜에 내가 왜 도망을 쳐.
영은 왜는 뭐가 왜야. 그놈이 미친 놈이니까 그렇지.
승희 나 그런 놈들 알어. 뒷구멍에 숨어서 고양이 쥐 사냥하듯이 하면 서 좋아하는 놈들이야. 나 쥐새끼 아니야. 그놈한테 더 이상
장난감 되주지 않을거야.
영은 (전술을 바꿔서 달래듯)
그래. 그런 놈에 대해서 너 잘 알겠지. 그런 놈을 주인공으루
소설도 쓰는데 왜 모르겠어. 그런데.. 일단 도망치자 응?
도망쳐서 안나타나면 그 놈두 심심해가지구 다른 쥐새끼를
찾을지 모르잖아.
승희 그 다른 쥐새끼가 니가 되면 어뜩할래?
영은 ...뭐?
승희 나 대신 딴 사람 밀어놓구 만세 부르라구?
영은 (멀뚱해서 보는)
승희 그리구.. 그런 놈들은 그렇게 쉽게 안 물러서. 도망치면 더 신나 할거야. 그놈 좋아할 짓은 절대루 안해.
# 5 지하 주차장
차가 한 대 커브를 돌며 지나가고 있다. 바퀴가 노면에 미끄러지며 나는 굉음.
# 6 정산소1
차가 진행해가는 곳에 정산소가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입구.
승희. 멈춘 차에서 주차권을 받아 찍어본다.
승희 두시간 할인해드리고 초과 이천원입니다.
승희 슬쩍 보는 곳에 감시용 카메라가 보인다.
운전자가 돈을 내밀고 승희 처리한다. 차가 떠나가고.. 승희 슬그머니 서랍을 열어본다. 그 안에는 가스총이 있다. 승희, 자기의 가방(등에 메는 실용적인 색 종류)을 아래로 하여 가스총을 자기 가방 안에 넣는다. 그 위로..
승희E 해바라기는 영주가 좋아하는 꽃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영주는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깊은 슬픔을 느꼈다.
# 7 수퍼마켓 내부 / 밤
가방을 등에 멘 승희가 김밥과 커피 우유를 고르고 있다. 그 위로 계속..
승희E 씨앗 주머니 주위로 못생긴 꽃잎을 대책없이 달고 있는 그 멍청 한 모습이.. 햇살 한조각에 감격하여 태양만 따라도는 그 헤벌
레한 양순함이.. 영주는 슬펐다.
승희, 계산을 하며 종업원을 유심히 본다. 종업원은 승희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승희 조심스레 수퍼 내부를 둘러본다.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승희E 그래서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진 해바라기를 보았을 때
영주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추적자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는지..
봉지를 든 승희가 수퍼를 나선다.
# 8 골목길 / 밤
봉지와 가방 등을 든 승희가 걸어가고 있다.
주위는 인적이 드문 어둠.
승희 문득 걸음을 멈춘다. 슬그머니 주위를 살핀다. 아무도 없다.
# 9 승희 집 현관 앞 / 밤
걸어온 승희. 현관문 앞에 서서 열쇠를 든 채 잠시 망설인다. 열쇠를 꼽고 나서 심호흡을 하는 기분. 열고 문을 벌컥 연다.
(내부는 불이 켜져있는 상태입니다)
# 10 승희 집 내부 / 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는 승희.
어제밤, 불을 켜고 뛰어나간 그대로의 집안.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그대로 놓여있다.
승희 안으로 들어선다. 문을 닫고.
문을 잠그고.. 체인도 잘 걸고.. 돌아서서 신을 벗고. 거실로 올라온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천천이 걸어와 가방과 봉지 등을 내려놓다가 문득 돌아보는 곳. 싱크대 위에 생선 봉지가 그대로 놓여있다.
비닐 안으로 비치는 생선이 기괴해보인다. (이미 상해있을..)
승희,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역시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거실 창문 쪽으로 가더니 커텐을 활짝 열어젖힌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두어번 심호흡을 한다.
// 벽에 걸려있는 해바라기의 그림. 여전히 비뚤게 걸려져있다. 그 위로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닥타닥 소리가 들린다.
승희가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승희E 영주는 어느덧 그 추적자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어있었다.
도대체 누군가. 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영주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전화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영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계속 치는)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글쓰기를 멈춘 승희. 조심스레 전화기를 돌아본다. 전화기는 조용하다.
# 11 빌딩 전경 / 밤
# 12 정산소 1 근처
태성의 차가 진입해 들어오고 있다.
카드를 넣었다 빼고.. 정산소의 옆까지 와서 태성이 기웃하여 본다. 승희는 고개를 숙인 채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
태성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지나쳐간다. 승희 뒤늦게 힐끗 차를 본다. 태성의 차라는 것을 안다.
//태성이 차를 몰아 코너를 돌다가 문득 백밀러를 보더니 차를 멈춘다. 뒤를 돌아보면. 승희가 정산소에서 나와 차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태성, 얼른 창문을 내리면 승희가 가쁜 숨을 쉬며 옆에 와 선다.
승희 저기.. 부탁이 있는데요.
태성 말씀하세요.
승희 저녁에.. 시간 있어요?
태성 (보다 웃더니) 이거 꼭 데이트 신청하는 말 같은데요.
승희 (무표정하게 보며) 데이트.. 하고 싶은데요.
태성 (잠시 멈춰보다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 진심이에요?
승희 (끄덕인다)
태성 내가 아는 데이트라면 같이 저녁 먹고, 드라이브도 하고 그러는 건데 ..맞아요?
승희 (다시 끄덕이는)
태성 8시 반에 퇴근이죠? 아홉시면 되겠어요?
승희 네
태성 (웃고 잠시 딴데를 보다가 승희를 보고) 좋아요.
승희 좋아요.
승희 돌아서 간다. 가다가 머뭇거리며 돌아본다. 할말이 남은 듯. 그러나 태성과 눈이 마주치더니 다시 돌아서 가버린다. 태성, 웃음기가 지워지며 승희를 보고 있다.
# 13 일식 주방
상식이 야채 다듬는 정도의 일을 하며 흘낏거리고 보는 곳.
과장과 그 옆의 태성이 식재료들을 체크하고 있는데, 태성은 꼼꼼이 생선을 뒤집어보고 만져보며 선도를 체크하다가 그 중의 하나를 집어든다.
과장 (태성의 눈치를 보듯) 선도 괜찮은데요.
태성 (옆의 바구니에 그 생선을 던져버린다) 못 씁니다.
바구니에는 벌써 몇마리의 생선이 들어있다.
과장 그래도 그건 제일수산에서 특별히 보내주는 건데..
태성 업자 바꾸는게 낫겠습니다. (다음 생선을 보는)
과장 (아주 못마땅하지만 참는)
상식 보다가 얼른 다시 야채를 다듬는다. 태성은 저쪽으로 가고 과장은 상식 쪽으로 온다. 과장, 상식 옆의 다른 조리사에게 낮게..
과장 단골 많다고 유세를 떠는 것도 정도껏이지 말이야.
조리사 (자신의 일을 하며 역시 낮게) 오늘은 유난히 저기압인데요.
상식이 조심스레 문을 잠그더니 주머니에서 뒤적거리며 담배갑을 꺼낸다. 담배갑 안에 넣어두었던 라이터를 부시럭거리며 꺼내는데.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상식 동작을 멈춘다. 가까워지는 발소리. 귀를 기울여 듣는데. 다음 순간 쓰레기통을 냅다 발로 차는 소리. 상식, 깜짝 놀라 웅크려드는데.
# 15 화장실 내부
세면기를 붙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태성.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현재 안에서 나오려는 또 하나의 그와 전투중이다)
태성, 자제를 하느라고 떨리는 손으로 수도꼭지를 틀려다가.. 헛손질을 하다가 결국 멈추고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태성 아니야. 아직 아니야.
그러다가 고통스러운 얼굴이 된다. 마치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무엇인가를 누르고 있는 듯.
# 16 칸막이 내부
상식 얼어붙은 채 멈춰있다. 밖이 잠시 조용하다. 상식 저도 모르게 슬며시 귀를 기울이는데.
그E 너는 빠져. 그 여잔 나를 찾아오는 거야. 내가 불렀어.
상식 (이상해서 듣는.. 이건 누구의 목소리인가..)
그E 너두 알잖아. 맨 처음 그 여자를 알아본 건 나야.
# 17 화장실 내부
거울을 향해 눈을 질끈 감고 있던 태성이 천천이 눈을 뜨더니
태성 알어. 아는데.. 아직은 좀 더 기다려봐. (힘들여 달래는)
날 믿어. 믿어두 돼. 응?
잠시의 시간이 흐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태성 뒤를 돌아본다.
거기 칸막이가 몇 개 주루루 서있는데 그중 한 곳만 문이 닫혀있다.
# 18 칸막이 내부
상식이 숨을 멈추고 구석에 박혀 서있다.
밖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식, 두려운 눈으로 잠겨져 있는 안의 고리를 확인한다.
잠시 후, 밖의 발소리가 멀어져간다. 문이 열리고 닫기는 소리. 그리고 정적.
상식, 그제야 비로소 숨을 내쉬며 떨리는 손으로 고리를 연다.
진땀이 배어있다.
# 19 화장실 내부
방심하여 칸막이에서 나오던 상식. 그대로 얼어붙는다.
화장실의 문 안에 우뚝 선 채 말없이 상식을 바라보고 있는 태성.
그 무표정함.
# 20 수납원 휴게실
승희가 재빨리 도망치려는 것을 등덜미를 잡아 채는 손길. 영은이다. 영은은 한손에 립스틱을 든 채 승희를 강제로 의자에 앉히고.
영은 고만 좀 속 썩이구 입 벌려봐.
승희 (할수없어서) 아아..
영은 너 지금 치과에 왔냐? 에에 해봐.
승희 에에..
영은, 조심스레 승희의 입술을 발라주며
영은 제발 그 퉁퉁 부은 얼굴 좀 풀고, 웃기도 하고. 말도 좀 이쁘게 하고. 이런데 일식집의 일급조리사면 웬만한 회사 과장 부장보다 낫대. 그러니까 장래도 좀 생각해보라구.
(입술 그리기를 끝내고 다시 살펴보는)
승희 갈게. (일어서 문으로 가는데)
영은 (얼른 쫓아가 세우며) 너 오늘 밤에 또 니 집으루 들어갈거야?
승희 어제도 아무 일 없었어.
영은 ...너 그런 얘기 아니?
승희 무슨 얘기.
영은 진짜 사랑은, 자고 나서 시작되는 거다.
승희 (언뜻 이해가 안 오는데)
영은 한번 해봐. 그런가 안그런가.. 일석이조잖아. 미친 놈도 피하고
사랑도 시작하고..
그제야 감이 온 승희가 흘겨보고 문을 연다.
# 21 빌딩 앞
태성이 차를 세운다. 기다리고 있던 승희가 어째 내키지 않는 얼굴로 보고 있다가 꾸벅 인사를 한다. (여전히 편하고 헐렁한 옷차림)
태성이 차를 돌아와서 조수석의 문을 열어준다.
승희 다시 고개를 숙여보이고 차에 올라탄다.
태성이 차를 돌아오는 동안, 승희 재빨리 차의 유리창으로 주위를 살핀다. 태성이 운전석에 올라와 승희를 돌아보자 얼른 자세를 바로한다. 태성이 상체를 기울여 승희의 안전벨트를 빼내려 하자 얼른 자기가 벨트를 잡아 한다. 태성도 미소지은 얼굴로 자기 벨트를 하고.
# 22 강변 도로 차 내부 / 밤
달리는 차. 운전을 하던 태성이 승희를 돌아본다. 승희는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고 있다가 ( 쫓아오는 차가 없는지 살피는 중) 태성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바로한다.
태성, 미소로 운전을 계속하다가 다시 승희를 돌아봤을 때, 승희는 벨트를 두손으로 꼬고 있다.
태성 그렇게 불편해요?
승희 (후딱 봤다가 다시 앞을 보더니 ) 할말이 있어요.
태성 하세요.
승희 ... 차 좀 세워줘요.
태성 여기서요?
# 23 강변 교각 밑 / 밤
전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교각을 달려 지나쳐간다.
그 밑에 태성의 차가 세워져있다.
운전석의 태성이 강 쪽을 보고 있다가
태성 그런 걸 스토커라고 하죠?
승희 (무뚝뚝하게) 미친 놈이라고도 하구요.
태성 그러니까 오늘의 데이트는 그 놈 보라고 하는거에요?
승희 ...미안해요. 그 놈은 그쪽하고 내가 같이 있었던 거 다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걸 아주 신경쓰는 거 같았구요.
태성 그래서요?
승희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그쪽에게 해를 끼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오늘 이렇게 같이 나오기 전에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하는 건데.. 미안하게 됐어요.
태성 그리고요?
승희 (돌아보는)
태성 그 미친 놈에게 우리 둘이 친한 거 보여주고 그 다음에 어쩔
생각이었는데요?
승희 나타나게 하려구요. 초조해지면 본색을 드러낼 거에요.
태성 직접.. 만나겠다는 거에요?
승희 그런 놈들은 숨어있을 때나 큰소리 치는 거에요. 막상 만나면
쥐새끼같은 놈일 게 분명해요. 하나도 겁나지 않아요.
태성 (말없이 보고 있는)
승희 (어색해지고)
태성 단 둘이 만날 생각이에요?
승희 걱정마요. (그러더니 문득 무릎에 놓여있던 가방을 주섬주섬 열 어서 그 안의 무언가를 꺼내 보여준다)
태성 가스총이에요?
승희 (끄덕)
태성 (보다가) 승희씨는 가족들 없어요? 아버지는요.
승희 돌아가셨어요.
태성 어머니나 형제는요
승희 형제는 없구. 엄만 재혼했어요. (말하면서 반항기가 든다)
더 조사할 거 있어요?
태성 (웃지 않고 보는) 도망가는 게 어때요.
승희 영은이한테도 말했지만 싫어요. 왜냐하면...
태성 도망가요. 집도 바꾸고 회사도 바꾸고.. 그게 제일 좋아요.
승희 (태성을 물끄러미 보다가 알았다는 듯 ) 겁나고 기분 나쁜 거
이해해요. 이런 일에 끌어들여서 정말 미안해요. 저기.. 아무 정류 장까지만 태워주면 그냥 나 혼자 갈게요.
태성, 말없이 보다가 자세를 바로 하더니 시동을 건다.
# 24 승희 집 앞 / 밤
태성의 차가 들어와 선다. 서자마자 조수석에서 내리는 승희. 차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간다. 운전석에서 보고 있는 태성.
# 25 승희의 집 내부
현관문이 열리며 승희가 들어선다.
불을 켜고 조심스레 내부를 둘러본다.
아무 이상이 없어보인다. 문을 잠그고.. 체인까지 걸고..
거실로 올라서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다. 천장 가까이 부분도 둘러보고.. 그렇게 승희의 눈길이 지나간 곳. 승희는 눈치채지 못한 해바라기의 그림이 똑바로 걸려져 있다.
# 26 오피스텔 주차장 진입로
차 내부 시선으로 가파른 진입로를 빠른 속도로 들어간다. (가파르고 뱅글뱅글 계속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분위기의 음침한 주차장 입구이면 좋겠음) 바닥과 마찰하는 요란한 굉음.. 창 앞에서 위험스럽게 돌아가는 진입로의 벽들..
# 27 승희의 집 욕실
마악 샤워를 끝내서 김이 서려있는 상태. 커다란 목욕수건을 두른 승희가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걸려있는 옷가지를 집으려다가 문득 멈춘다. 무슨 생각인지 잠시 그 자세로 있다.
# 28 승희집 거실
욕실의 문이 조심스레 열린다. 거실에는 불이 켜져있다. 승희가 욕실에서 나오는데 옷을 차려입지 않고 목욕수건만 두른 모습이다. 승희는 어디에선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춤주춤 걸음을 옮겨 안방으로 향한다. 도중에 거실의 불을 끄려다가 그만둔다.
# 29 승희집 안방
침대 옆의 스탠드 불이 켜져있는 상태. 승희, 수건을 걸친 채 침대로 간다. 이불을 젖히고 들어간다. 눕는다. 잠시 그대로 있다가 손을 뻗쳐 불을 끈다. 어두워진 속에서 승희 슬그머니 손을 뻗어 침대 옆의 가방을 끌어당겨 뒤적이더니 가스총을 꺼내 조용히 베게 옆에 놓는다. 다시 침묵.. 문득 승희 어둠 속에서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승희 후딱 불을 켠다. 누운 채로 공중의 냄새를 맡는 승희. 이제 승희는 냄새만으로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스탠드의 조명 속에서 긴장하여 문쪽을 본다.
# 30 그의 방 내부
흑백의 모니터에는 승희의 안방이 비춰지고 있다. 침대 위에 누은 승희가 중앙에 잡히고 있다. 문득 손이 뻗쳐나와 모니터 위의 승희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승희의 얼굴 위 부분을 만지다가 몸쪽으로 훑어 내려간다. 천천이.. 애무하듯이..
마치 그 손길에 반응하듯 승희가 불편하게 뒤척여 자세를 바꾼다.
# 31 승희집 전경 / 아침
승희가 출근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색을 등에 메고, 노트북 가방을 들고 걸어나오다가 멈칫하여 선다. 그곳에 태성의 차가 서있다. 운전석에서 승희를 빤히 보고 있던 태성이 문을 열고 나선다.
승희 여기서 ...뭐해요?
태성 보초 서고 있었어요.
승희 놀라서 보는데 태성은 미소짓고 있다.
# 32 빌딩 내 복도
역시 출근차림의 영은이 승희의 옆을 바쁘게 따라오며
영은 설마.. 설마 밤새 거기 있었단 말야?
승희 ...
영은 밤새 니 집 앞에서 보초를 섰대? 그랬대?
승희 (시무룩) 그런가봐.
영은 (멈추더니 가슴에 손을 얹고) 어머. 내 가슴.. 이거 심장마비
증세.
승희는 할수없어 멈춰 돌아보는데, 영은 넋나간 표정으로.
영은 승희야. 내가 가질래. 나 줘. 그 남자 내꺼 할래.
# 33 수납원 휴게실
한쪽에 락카들.. 명순과 다른 동료가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고.
마악 들어서는 승희와 영은.
대충 눈이 마주치면 인사들을 나누면서
영은 (자기 락카로 가며) 너 두 번 생각할 것두 없어. 그냥 잡어.
내 말 들어. 나중에 나한테 엎드려 절하게 될거야. 그러니까.
잡어.
승희 좀 웃으며 자기 락카로 가서 열쇠로 문을 열다가 짧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선다.
영은 (자기도 놀라 비명을 지르고는) 뭐야 왜그래.
승희 굳어서 락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영은 조심스레 같이 들여다본다. 락카 안에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한다발 들어있다.
명순 등도 뭔가해서 들여다보고 하는 와중에 승희가 공포에 질려 서있다.
# 34 일식 주방
상식이 겁에 질린 얼굴로 보고 있다. 주변의 다른 조리사들도 보고 있고.
상식의 앞에 과장이 서 있는데 상식의 스포츠 가방을 들고 있다.
과장 이 가방 니꺼 맞지?
상식 (겁에 질려 끄덕이는)
과장 이 가방 안에 있는 이거. 이거. (고급 술병을 하나씩 꺼내 옆 에 늘어놓으며) 이거 다 뭐야.
상식 난.. 난.. (소심증으로 말이 안나온다)
과장 어째 요즘 술병이 하나씩 없어진다 그랬어. 이 모자란 놈의 자식 아. 술을 훔쳐가두 이눔아. 손님이 맡겨놓은 거 까지 건드리면
어쩌자는거야. 어?
상식 그렇지만 난..
과장 너 이거 한병에 얼마짜린 줄 알지? 알어 몰라.
상식 문득 한쪽을 본다. 거기 다른 조리사들 뒤에 태성이 우뚝 서서 무심한 눈으로 상식을 보고 있다.
과장 너 어뜩할래. 경찰서루 갈래. 아니면 토해낼래.
대답을 해. 이놈의 자식아아.
# 35 일식 입구
영은이 안을 기웃거리며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는데..
스포츠 가방에 사복 차림의 상식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해고되어 나오는 중이다.
영은 얼른 상식에게 붙으며
영은 여기서 일해요?
상식 (멍해서 보는)
영은 여기 이태성씨라구 있죠. 좀 불러줄래요?
상식 (눈에 초점이 맞춰진다)
영은 지금 여기 쉬는 시간 맞죠? 점심하고 저녁 중간에 쉬죠?
상식 안..안에 있어요.
영은 좀 불러달라구.
상식, 고개를 젓는다. 영은, 그제야 상식을 이상하다는 듯 보더니 손을 설레설레 흔들어 놔두라는 표시를 하고는 다시 안을 기웃거린다.
상식, 두어걸음 가다가 주춤거리며 다시 돌아오더니.
상식 저기..저기요.
영은 (돌아보면)
상식 한승희라는 분 친구세요? 친..친구..
영은 어라 승희를 어떻게 알아요? 어머어머 태성씨가 막 떠드나부다.
승희 얘기 막 하고 그래요?
상식 (두려운 듯 안을 한번 살피고는 음성을 낮춰서)
무서운 사람이에요. 피..피하라구 그러세요.
영은 (잉? 해서 보며) 뭘 피해요?
상식 난.. 알아요. 난.. 봤어요. 나..
그러다가 후다닥 가버린다. 영은 영문 몰라서 돌아보면, 여종업원이 입구를 나서며 직업적인 미소로 영은을 보고 있다. 다시 돌아봤을 때 상식은 이미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 36 빌딩 내 까페
유리잔 안에 가득 담겨있는 파르페.
그러나 아직 하나도 손을 대지 않은 상태이다. 파르페 앞의 영은, 열내며 얘기하는 중이다.
영은 문이 잠겨있는 우리 여직원 휴게실 안에. 문이 잠겨있는 락커를 열고 거기다 꽃을 집어넣은 거에요. 이건 그냥 장난이 아니잖아 요. 그렇게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놈이믄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태성 (앞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는)
영은 내가 듣기론 그 놈이 승희네 집에도 들어왔었나 봐요.
들어오기만 한 게 아니구 아예 집안 구석 어디에 카메라까지
설치하구 지켜보는 거 같다구요.
태성 카메라요?
영은 그러니까 내가 미치잖아요. 승희 그앤 그거 알면서두 냅두고
있어요. 봐라 이거에요. 봐라. 나 여기 있다. 올래믄 와.
어서 와봐. 이러구 있는거에요. 지금. 얘두 점점 이상해져가구 있 어요. 그냥 놔두면 일내구 말거라구요.
태성 그런 얘기.. 왜 저한테 하시는거죠?
영은 ...예?
태성 (보고 있는)
영은 (정말 이상하다는 듯) 신나지 않아요?
태성 신..나요?
영은 봐요. 승희 맘에 있죠? 맘에 있는 여자가 위기에 처했어요.
이건 절호의 찬스잖아요. 아무 남자나 다 이런 기회 갖는 거
아니에요. 좀만 잘하면 그대로 백마 탄 기사가 되는 거라구요.
태성 ... (여전히 웃음기 없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
하시는 거죠?
영은 (답답하다는 듯) 저번에두 말했지만 뭐..결혼을 하래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진지해지더니) 승희 좀 지켜줘요.
태성 (조금씩 미소가 떠오르는데 그 미소가 좀 묘하다) 지켜주라구요.
영은 그럼요. 원래 남자가 하는 일이 그거에요. 지 여자 지켜주는 거.
요새 와서 완전 헷갈리게 되버렸지만 원래는 그래요.
태성 (음성이 좀 낮아져있다) 내 여자요.
영은 나두 할수 있는데까지 도와줄게요. 나 원래 스릴러는 안 좋아하 지만 로맨틱 스릴러는 괜찮아요. 그럼 뭣부터 해야죠 우리?
태성 우선.. (더운지 넥타이를 늦추며) 그 놈을 잡아야죠. 승희씨를
이상하게 만드는 놈.
영은 그렇죠. 그거에요. 근데 어떻게요?
태성 락커에 꽃이 들어있다구 했습니까?
영은 그래요. 그거 거기 넣으려면 어제밤이었을 거에요. 어제 밤
명순이가 제일 늦게 퇴근했는데 그게 10시쯤. 그리고 아침에
8시에 문을 열었대거든요. 그 중간이요.
태성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해바라기같이 큰 꽃을 들고 다녔으면 누군가의 눈에 띄었을
겁니다. 순찰도는 경비들이 봤을지도 모르죠.
영은 경비들한텐 내가 벌써 물어봤어요. 그런 놈은 못봤대요.
하긴 뭐 그런 놈이 순찰 눈도 못 피했겠어요?
(하다가 문득 멈춘다. 멈추어 새삼 태성을 본다)
태성 (셔츠의 깃을 벌리다가 영은을 본다)
영은 어떻게 알았어요?
태성 (보는)
영은 내가 해바라기라고 말했어요? 그냥 꽃다발이라고 안했어요?
태성 (미동도 없이 보며.. ) 해바라기라고 하셨어요.
영은 (보고 있다)
# 37 정산소2
영은이 정산소에 앉아있다. 마악 옆의 차 운전자에게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내주고.. 그리고 깊이 생각에 빠져있다가.. 구내전화기를 든다. 구내 번호를 누르고 신호를 기다리고..
영은 여보세요. 승희니? 나 물어볼 거 있는데 어제 밤에 말이야.
태성씨 분명히 니 집 앞에서 밤 샜니?
# 38 수납원 휴게실
승희 노트북을 앞에 놓고 글을 쓰다가 전화를 받은 것.
승희 아침에 그 자리에 있었어. 왜.
영은E 밤에도 그 자리에 있는 거 봤어? 니 눈으로 확인했어?
승희 (의아해서) 무슨 소리야?
# 39 정산소2
수화기를 든 영은, 앞을 보면 명순이 교대를 하려고 오고 있다.
영은 나 지금 금방 올라갈게. 너 거기 고대로 있어. (끊으려다가)
지금 혼자 있니? 문 잘 잠그고 있어. 알았지? 문 잠궈.
전화를 끊고는 다급하게 소계표를 출력한다. 빨리 나오지 않자 기계를 퍽퍽 친다. 명순이 옆에 와 들여다보며
명순 뭐가 그리 급해? 아직 교대 5분 남았어.
영은 대꾸도 안하고 출력되는 소계표를 나꿔채 뛰어나간다.
명순 (뛰어가는 영은에게) 오늘 저녁에 회식 있는 거 알지? 올거야?
영은 뒤도 안보고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다.
# 40 지하 엘리베이터 앞
영은 급히 달려오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막 닫히고 있다. 버튼을 눌러보지만 소용없다. 영은 조바심을 내며 옆의 엘리베이터를 본다. 번호가 멀었다.
영은 비상계단 쪽으로 간다.
# 41 비상계단
영은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계단 옆의 층수 표시가 B1/1.
올라가는 영은의 발. 층수표시는 2/3으로..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면서 영은 아이고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오르는데. 문득 멈추고 고개를 번쩍 든다. 영은의 얼굴에 어리는 공포. 이윽고 억지로 미소를 띄우며
영은 아... 하하 이상한데서 만나네요. 지금 저녁때 아닌가...
계단 위에 태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다. 그의 눈빛을 하고 있다.
영은. 웃는 얼굴에 어쩔 수 없이 공포의 빛이 서리며.. 뒷걸음질로 계단을 한두개 내려가며
영은 아무래두 운동부족인가.. 몇층 오르는데 정말 힘드네.. 그럼..
마악 돌아서려는데 그 영은의 어깨를 잡는 태성. 영은 놀라 돌아보는 순간, 간단하게 밀어버린다.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굴러떨어지는 영은. 몇바퀴 굴러 중간지점에 떨어진 영은. 간신이 상체를 일으키며 올려다본다. 태성이 천천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영은 울며 도망치려지만, 다리가 부러진 듯. 기어서 어떻게든 움직여보려는데 바로 옆으로 내려와 선 태성. 영은 비명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
공포에 울며 도망치려는 순간 태성이 거의 괴력으로 영은을 들어올리더니 다시 밀어버린다. 다시 굴러떨어지는 영은. 머리를 부딪히며. 영은의 시선에서 보이는 태성의 다리. 계단을 서두는 법도 없이 한걸음씩 내려오고 있다. 영은의 시야가 어두워지고 암흑이 된다.
# 42 이층 엘리베이터 앞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튀어나온 승희가 급히 달려간다.
달려가는 승희의 앞에 유리문 밖으로 앰블런스가 마악 출발해 가고 있다.
# 43 건물 밖
승희가 달려나왔을 때 앰블런스는 이미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제복을 입은 직원들과 명순이 서서 어쩔 줄 모르고 가는 앰블런스 쪽을 바라보고 있다. 명순, 다가오는 승희를 보고는 울음을 터뜨릴 거 같이 되서 승희를 흔들며
명순 이게 무슨 일이래. 이게 무슨 일이야아.
승희 (굳어서 길만 보고 있는)
명순 내가 마지막으로 봤어. 아주 급하게 달려갔단 말야. 뭐가 그리
급하냐구 내가 물었거든. 대답두 안하고 갔다구. 뭐가 급해서 응? 뭐가 급하다구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어. 엘리베이터 놔두구
계단은 왜 올라가아.
승희 (간신이 소리를 내어) 어느 병원으로 간거야?
# 44 일식 락커룸
아무도 없는 시간. 락커들이 주욱 서있는데 그 한구석에 태성이 웅크려 앉아있다. 수그린 어깨가 조금씩 떨리고 있다. 이윽고 고개를 드는데 태성은 울고 있었다.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절망과 당황함으로 두려운 듯 사방을 둘러본다. 이제 그는 태성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 45 병원 응급실 내부 문 앞
응급실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밀침대에 눕혀진 영은을 둘러싸고 나오는 의료진들. 급한 발걸음으로 침대를 밀어간다. 침대의 영은은 의식불명인 상태. 응급조치를 취한 모습이다.
침대는 마악 오고 있던 승희를 지나치며 급히 간다. 승희, 지나가는 영은을 본다. 승희는 공포와 충격으로 반쯤 얼이 빠져있는 상태다.
# 46 병원 외경 /저녁- 밤
저녁 어스름이 깊어지고.. 병원의 불들이 켜졌고..
어둠 속을 달려온 앰블런스가 응급실 앞으로 도착하고..
# 47 중환자실 앞 복도 혹은 병원내 복도
면회인인 듯한 남녀가 지나간다. 둘 다 절망스러운 얼굴로.
그들 지나간 복도 저 끝에 혼자 앉아있는 승희가 보인다.
잔뜩 움추린 모습. 여름 날씨에 추운 듯 양팔로 감싸 비비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승희의 눈으로 보이는 복도의 사람들.
저만치 어떤 남자가 멀거니 서서 게시판의 글을 보고 있다. 그 옆으로 의심스럽지 않은 가족이 보이고.. 다시 어떤 남자가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이 보인다. 휙 고개를 돌려 보면 이만치에서 가운을 입은 의사 둘이 얘기를 하며 오고 있고. 그 뒤로 어떤 남자가 지나가는 모습. (모두가 의심스럽고 무섭다)
# 48 병원 내부 휴게실 / 밤 -아침
공동으로 보는 테레비젼에서 쇼프로가 방송되고.. 환자 몇과 간병인들이 앞의 의자들에 앉아 시청을 하거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 한쪽에 승희가 앉아있다.
// (시간경과) 이른 아침이 되었다.
청소부가 쓰레기통을 비우며 지나간다.
휴게실에는 이제 사람이 없는데. 그 한구석 의자에 승희가 잠이 들어있다가 청소부가 지나는 바람에 놀라 잠이 깬다.
덜 깬 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 49 중환자실 앞 복도
승희, 세수를 했는지 젖은 머리칼을 손수건으로 닦아 올리며 걸어오다가 멈칫 선다.
저 앞에서 영은의 가족(엄마와 오빠 정도)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 태성이다.
태성, 무심히 고개를 돌리다가 승희를 발견하고는 영은의 엄마에게 뭐라 인사를 하더니 승희쪽으로 온다.
승희 못 박힌 듯 서있는데. 태성 다가와 서더니.
태성 밤새 집으로 전화했었어요. 혹시 하고 일루 와본 겁니다.
승희 (말없이 보는)
태성 영은씨.. 어느 정도에요?
승희가 대답하려는데 그들 뒤로 밀침대를 민 의료진이 지나간다.
태성이 그들을 비켜 승희에게로 다가선다.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의 옆에는 부인인 듯한 여자가 울며 따르고 있다.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태성 나갈까요. 좀 시원한데로.
승희, 영은의 가족 쪽을 본다. 울먹이는 모친의 어깨를 감싸며 오빠는 뭐라 말해주고 있다.
# 50 외부 일각 / 아침
간병인인들인 듯한 가족 몇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을 보고 있는 승희. (가까이에 다른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하는 기분) 승희와 태성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있다.
승희 ... 몇군데 부러졌고... 아직 의식이 안 돌아왔어요. (딱딱한 어조)
태성 혼수상태군요.
승희 정신 차릴거에요. 정신 차리면 누군지 말할거구요.
태성 누군가.. 영은씨를 그렇게 만들었다구 생각하는 건가요?
승희 (마른 침을 삼키더니) 형사들한테두 그렇게 말했어요.
(돌아보는)
태성 (자기 앞으로 보며) 나두 만났어요. 형사들.
승희 그쪽을요?
태성 낮에 영은씨가 나 찾아왔었어요. 그 때 무슨 얘길 했냐구
묻든데요.
승희 무슨 얘길 했는데요?
태성 (돌아보더니) 승희씨 얘기요.
승희 ...
태성 나하고 만났단 얘기 안하든가요?
승희 (태성을 살피는 기분) 아뇨.
태성 승희씨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순한 눈으로 보며)
영은씨 다친 거.. 그 놈.. 그 스토커 짓이라고 생각하는거죠?
승희 영은인. 날 만나러 오는 중이었어요. 아주 급하게.. 나보고
꼼짝말고 기다리라고 해놓고..
태성 다른 얘긴 없었어요?
승희 (빤히 태성을 보며) 나를 만나러 오기 전에 전화루..
그쪽 얘기 했어요.
태성 (여전히 순한 눈) 어디까지요?
승희 (잠깐 망설이다가) 어제 밤. 그쪽이 내 집 앞에서 밤 샌 거
확실하냐고.
태성 그리구요.
승희 ... 길게 얘기 못했어요.
태성 (끄덕이더니) 나한테두 같은 말 물었어요.
승희 그쪽에두요?
태성 밤에 승희씨 집 앞에 있으면서 뭐 본 거 없냐구. 밤새 확실히
지킨 거 맞냐구.
승희 ....왜요?
태성 모르겠어요. 난 밤에 차에서 좀 잤거든요.
...영은씨 깨어나면 물어보고 싶어요. 왜 그런 말을 했냐고.
(이 부분은 진심이기도 하다) 왜 그런 말을 물어봤냐고. ...
승희 (아직 의심이 다 풀리지 않아서 보는)
태성 부탁이 있는데요.
승희 ?
태성 나.. 승희씨 집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줄래요?
승희 (의외라서 보는)
태성 열쇠만 빌려줘요. 해야 될 일이 있어요. (진지하다)
승희 무슨 일이요?
태성 영은씨한테 부탁받은 일이에요. 이거 하려구 나 결근까지
하구 왔어요.
# 51 거리 / 낮
태성의 차가 달리고 있다.
운전석의 태성와 조수석의 승희는 둘 다 말이 없다.
# 52 승희 집 앞
세워져있는 태성의 차. 그 옆에 마주 선 승희와 태성. 승희는 열쇠를 태성에게 내주고 있다.
태성 나하구 같이 집 안에 있는 거 싫으면 여기 있어요. 혼자 다녀
올게요.
승희. 살피듯 태성을 보고만 있다. 태성, 입구까지 걸어가다가 돌아온다.
태성 어느 집이죠?
# 53 승희의 집 내부
현관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태성.
거실에 올라서기 전에 잠시 서서 내부를 둘러본다. 싸움을 앞 둔 사람같은 긴장감으로.
# 54 집 앞
승희 우뚝 서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자기 집 쪽을 본다.
# 55 승희 집 내부 거실
테이블을 질질 끌어가는 태성.
내부와의 싸움 때문에 점점 행동이 거칠어지고 있다.
테이블에 올라서 감시용 카메라를 거칠게 뜯어낸다. 뜯어낸 카메라를 거실 가운데 내동댕이 친다.
# 56 승희 안방
태성, 안방의 카메라도 뜯어낸다. 고정부분이 잘 안 뜯기자 화를 버럭 내며..
# 57 거실
커텐을 힘껏 잡아당겨 틈새 없이 여며 놓는 태성.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가다가 문득 해바라기의 그림을 본다. 액자는 조금 비뚤어져 있다. 태성, 저도 모르게 다가서며 액자를 바로해놓다가 그러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낸다. 액자를 뜯어내어 팽개치려다가 겨우 자제하여 액자를 끌어안고 벽에 기대 가쁜 숨을 쉰다.
태성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혼잣말.. 둘 중의 어느 쪽 음성이지 모 르게 목 쉰 낮은 ) 하지 마.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다.
# 58 집 앞
서성거리며 서있던 승희, 문득 멈춘다.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공중에 점차 짙어지는 냄새를 맡다가 집을 돌아본다. 밀려드는 불안한 생각들.. 승희, 집을 향해 뛰어들어간다.
# 59 집 앞 복도
뛰어오는 승희. 가방을 뒤지며 가스총을 꺼내들고 있다.
# 60 승희 집 내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승희.
거실에는 아무도 없다. 승희, 두손으로 가스총을 부여잡아 앞을 항한 채 겁에 질려
승희 이봐요. 이태성씨. ..태성씨?
순간 욕실문이 벌컥 열린다. 승희 기겁을 하여 그쪽을 향해 가스총을 들이대는데. 욕실에서 나서는 태성. 세수를 했는지 젖은 얼굴에 젖은 머리칼. 태성, 승희를 보고 그 손에 잡힌 총을 본다.
승희 아무 일 없어요?
태성 왜..그래요?
승희, 아직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승희 전화 안왔어요?
태성 아뇨.
승희 냄새가 났어요. 그 냄새. 그 놈이 날 볼 때 그 때.. 그 냄새가..
태성 한가지 충고해도 되요? 그 가스총..
그렇게 보란 듯이 내밀고 있으면 상대는 피할거에요. 그러니까
숨겨놓고 있다가 기회를 잘 잡아서 사용하도록 해요.
승희 (태성을 보는데 어쩐지 웃음이라도 나올 듯. 그만큼 마음이
풀렸다 )
태성 큰 가방 있어요?
승희 가방..이요?
태성 짐을 싸요. 한달쯤 버틸 수 있을만큼.
승희 난 도망 안가요.
태성 도망가라고 안했어요. 여행가요. 어디 가고 싶었던 데 없어요?
승희 난..
태성 말은 하지 마요. 어디루 갈건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그냥 떠나요.
승희 ..역시 그놈 짓이라고 생각하는거죠? 영은이 일도.
태성 그놈이 승희씨한테 나타난다면 영은씨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에요. 말로 해서 설득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승희 (보다가) 암만 생각해도 이상해요.
태성 뭐가요.
승희 왜 나에요?
태성 ...
승희 내가 남자라면 나같은 여자한텐 관심두지 않아요. 나라면
좀 더 재미있고.. 주고 받을 수 있는 여잘 찾을 거에요.
태성 (웃는데 쓸쓸하다) 그거 알아요? 난 지금.. 승희씨를 좋아하지
않으려구 필사적이에요.
승희 (보는)
태성 지금 이 순간도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요.
승희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 좀 웃는)
태성 (여전히 쓸쓸한 웃음의 여운으로) 그러니까 그만 일어나서 짐 싸 요. 내가 보내줄 수 있게.
# 61 승희 집 앞
태성이 승희의 여행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있다.
트렁크 문이 타앙 닫히고. 보고 있던 승희. 머뭇거리며 조수석으로 탄다. (등에는 색, 손에는 노트북 가방 )
운전석으로 타는 태성. 열쇠를 꽂으며
태성 서울역으로 갈까요. 아님 버스 터미널로 가는 게 낫겠어요?
승희 ..영은이한테 먼저 가보고 싶어요.
태성 (잠시 망설이더니 시동을 건다)
# 62 중환자실
영은이 의식불명인 채 누워있다. 그 옆에는 여러 가지 기기들..
복도로 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승희.
영은을 골똘이 바라보고 있는 승희의 얼굴 위로.
영은E 나 물어볼 거 있는데 어제 밤에 말이야.
태성씨 분명히 니 집 앞에서 밤 샜니?
승희 더욱 자세히 기억하기 위해 얼굴을 찡그리고.
영은E 밤에도 그 자리에 있는 거 봤어? 니 눈으로 확인했어?
태성E 나한테두 같은 말 물었어요.
밤에 승희씨 집 앞에 있으면서 뭐 본 거 없냐구. 밤새 확실히
지킨 거 맞냐구.
승희, 뭔가 조합이 안되는 말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다 문득 손에 들린 노트북을 내려다본다.
# 63 간호사실
간호사 한명이 승희를 안내해 들어온다.
간호사는 전화코드 있는 곳을 가르쳐주며
간호사 전화선은 여기 있는데요. 오래 쓰실 거 아니죠?
승희 금방 되요. 고맙습니다. 금방 쓰고 정리해놓을게요.
# 64 병원 외경 / 낮
입구 근처에 태성이 서있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입구 쪽을 보고.. 잠시 생각해보다가 입구로 들어간다.
# 65 간호사실
모뎀이 접속하는 소리가 들리고...
전화코드에 꼽혀있는 모뎀선을 따라가보면. 승희가 노트북에 전화선을 연결해서 작동시키고 있다.
화면에 승희가 타자 치는데 따라서
[PF DARK]라는 글자가 뜬다.
잠시 후 떠오르는 글자..
[해당되는 회원 아이디가 없습니다. !! ]
(이것은 천리안이라는 가정 하에 이런 글자가 뜹니다.
DARK라는 아이디로 개설했다가 해지했다는 설정입니다.)
승희.. 망설이다가 재빨리 마우스를 클릭해가기 시작한다.
# 66 중환자실 내부
영은의 침대 주변에 설치된 기기들...
링거 병에 액이 떨어지든지.. 체크 기기가 작동하고 있든지..
내부에서 보이는 아까의 유리창으로 태성이 영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67 중환자실 앞 복도
태성, 천천이 움직여서 중환자실 입구로 이동해가는데, 그 문이 열리며 간호사 한명이 나선다. 그 간호사와 인사를 나누며 다른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간다.
멈칫하여 섰던 태성, 입구를 지나쳐 간다.
# 68 간호사실
승희 빠르게 타자를 쳐나가고 있다.
승희E 영주는 추적자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집요하게
영주에게 메모를 보내오던 그 자가 바로 그 추적자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다크님. 나에게 해바라기를 보낸 건 당신인가요?
내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내 친구를 다치게 했나요?
난..
승희, 고개를 든다. 과연 이래도 될 것인가.. 결심하여 계속 친다.
지우는 기능으로 한 글자를 지우고 다시 쳐나가는..
승희E 당신은 정말 나를 원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나에게 보여줘요.
난 오늘 저녁 남자와 함께 있을 거에요. 당신이 정말 나를
원한다면.. 나에게 와서.. 나를 데려가요.
승희 마침표를 치고. 자기가 친 글을 다시 본다.
# 69 병원 로비
걸어나오던 승희. 기다리는 태성을 본다.
태성, 다가와 승희의 노트북을 받아주며
태성 늦으시길래 영은씨 있는 곳까지 가봤어요.
승희 잠시.. 전화선을 빌려서 통신을 했어요.
태성 통신이요?
승희 통신에 글을 올리는 게 있거든요. (힐끗 태성을 살피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누군가 봐줬음 하는 글이 있어서.
아무 대꾸가 없어서 승희가 다시 태성을 보았을 때, 태성은 말없이 승희를 보고 있다가 생각난 듯 미소를 짓더니..
태성 갈까요.
# 70 병원 주차장
걸어오는 태성과 승희. 아무 말이 없다가.. 태성이 조수석의 문을 먼저 열자.
승희 (불쑥) 댁이 어디에요?
태성 (돌아보는)
승희 가족분들하고 같이 살아요?
태성 ... 아뇨. 혼자 살아요.
승희 아..
태성 (살피는)
승희 괜찮으면.. 오늘 저녁 초대해줄래요?
태성 ...
승희 (초조해서 말이 버벅대며) 아무래도 더 이상 혼자 있는 거 ..
힘들어요. 무섭고.. 오늘 저녁만. 같이 있어주면 좋겠어요.
괜찮다면..
태성 (어쩐지 억눌린 듯한) 좋은 생각같지 않은데요.
승희 (고개 들어 보는)
태성 한번 나한테 왔다가 다시 내가 안놔주면 어쩔려구 그래요.
(억지로 농담이라는 듯 웃어보이는)
승희 ... 난 그쪽을.. 태성씨를 좀 더 알고 싶어요. 그리고 난..
지금 누구하구 같이 있음 좋겠어요. 누구하고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 별로 잘 안해요. 그런데 지금은..
(말을 멈추었다가 똑바로 보더니)
먼저 다가온 건 그쪽이잖아요. 근데 지금은 싫어요?
태성, 말없이 승희를 보고 있다.
# 71 오피스텔 지하주차장 진입로
길고 뱅글거리는 진입로를 내려간다.
굳은 얼굴의 태성이 운전을 하고 있고. 그 옆에는 승희가 역시 굳은 얼굴로 앉아있다.
# 72 태성의 오피스텔
문이 열리며 태성이 먼저 들어선다. (이 오피스텔은 그의 방과 나란히 달려있는 옆집)
뒤따라 조심스레 들어서는 승희. 미소지으며 안내하는 태성을 따라 신을 벗고 들어서며 내부를 조심스레 둘러본다. (컴퓨터를 찾고 있다. 실내에 컴퓨터는 없다)
그의 평소 성격답게 환하고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있는 내부.
태성, 승희의 시선을 따라 자기도 내부를 둘러보며 어색해하며..
태성 손님이 온 적이 별로 없어요. 앉으세요.
승희. 역시 어색해하며 소파에 앉고..
태성, 어색한지 두 손을 비비고 섰다가..
태성 차 드실래요? 좋은 거 있는데..
승희 (고개 숙여보이고)
태성 얼른 주방쪽으로 움직인다.
// (경과) 가스 레인지 위에서 물주전자가 올려진다.
// 주욱 꼽혀있는 시디를 손가락으로 따라가보던 승희. 문득 고개를 돌려 본다. 어색함이 남아서.
// 시디플레이어의 플레이 버튼이 눌려지고..
// 주방 쪽에서 다기 도구들을 꺼내던 태성이 언뜻 고개 돌려 본다. 미소..
// 거실의 장식품을 구경하던 승희가 돌아서며 본다.
// 차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다.
// 테이블에 다기들이 놓여진다. 다기들을 놓던 태성이 고개를 들어 승희를 보며 미소짓는다.
// 찻잔에 따루어지는 말간 차. 따르던 태성, 앞에 앉은 승희를 올려다보고. 그러는 새. 차가 넘치고. 태성과 승희가 함께 옆의 차행주를 들려다가 손이 마주친다. 얼결에 서로 마주보고..
창 밖은 이제 저녁 어스름. 음악은 계속.
태성, 스탠드 불을 돌아가며 켜다가
태성 저녁 내가 준비해도 되요?
승희 (손목시계를 보다가 고개 들어 보는)
태성 같이 먹어줄거죠?
승희 ...저도 도울게요.
태성 그게 내 꿈이에요.
승희 ?
태성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내 집의 저녁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같이 텔레비젼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게 꿈이라면 시시하죠?
승희 ...대부분 다 그렇게 살잖아요.
태성 그러게 말입니다. (주방 쪽으로 가며) 뭐가 있나 볼까요..
승희 (그 뒤를 보다가) 컴퓨터는 없나봐요
태성 (멈췄다 돌아본다) 컴퓨터요?
승희 통신 같은 건 안하세요?
태성 ...아뇨. 구식이죠? (웃고 냉장고를 열어보는)
승희 난 통신에 연재소설을 쓰고 있어요. 추리소설이에요.
태성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며) 덮밥 좋아해요? 간단하게 괜찮겠어요?
승희 근데 언제부턴가 소설을 올리고 나면 그 냄새가 나는 거에요.
살아오면서 몇번 그런 적이 있어요.
태성, 천천이 돌아서서 승희를 본다.
승희 어려서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올 때면 난 가죽냄새를 맡았어 요. 아버지가 동네골목에 들어서기도 전에 먼저요. 그럼 난
엄마하구 같이 도망쳤어요.
아버진.. 술에 취하면 가죽으로 된 허리띠로 우릴 때렸거든요.
엄마하고. 나하고.
태성 아까 승희씨 집에서 그 냄새가 났다고 한건가요?
승희 초가 타는 냄새에요. 이번엔.
태성 ...지금은요?
승희 그자가 가까이 오면 난 알 수 있을 거에요.
(태성을 빤히 본다) 그래서 그쪽을 의심할 수가 없어요.
태성 ... 나를요?
승희 (끄덕인다)
태성 나를 의심했어요?
승희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여러 가지루. 뭣보다.. 나한테 그렇게
친절한 거..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말했잖아요. 내가 남자라면 나같은 여잔 관심 갖지 않아요.
태성 (웃어보려지만 잘 안된다)
승희 나 지금.. 그 놈을 기다리구 있어요. 소설에 올렸어요. 내가 기다 린다구. 나 데려가보라구.
태성 (옷깃을 벌린다. 더워지고 있다)
난 승희씨를 멀리 보내려구 했어요.
승희 알아요.
태성 승희씨 오늘 나 따라오면서 나를 좀 더 알고 싶다구 그랬어요.
그 말.. 그게 다 나를 의심해서였어요?
승희 이해..해줘요. 난 누가 날 좋아한다는 건 믿을 수가 없어요.
태성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한번쯤은 믿어보지 그랬어요.
(한걸음씩 승희에게 다가간다. 현재 그는 슬프고 힘들다)
누가.. 내가 승희씨 좋아하는 거.. 믿어주지 그랬어요.
승희 (느낌이 이상하다. 보는..)
태성 그랬으면 어쩌면.. 나도 제대로 될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태성, 다가오다가 앞에 걸리는 소파의 등을 잡고 간신이 멈춰선다. 이제 그는 땀을 흘리고 있다. 승희 놀라서 보고 있다.
태성 (목소리가 쉬어가며)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미안해요.
태성, 몸을 돌이키더니 어쩐지 휘청이는 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한다.
승희 태성씨. (일어서며) 괜찮아요?
태성, 문을 열고 나가고 있다.
# 73 오피스텔 외경 / 밤
밑에서부터 주욱 올라간 고층 중간 정도. 불이 켜진 방의 창문.
그리고 그 옆의 창문으로 이동하면.. 어둡게 불이 켜져있던 창문에 약한 불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촛불의 어른거림이다.
# 74 그의 방 내부
태성이 촛불에 하나씩 불을 켜고 있다.
가쁜 숨을 쉬며.. 그는 격렬하게 내부와 투쟁 중이다. 비틀거리며 옆의 컴퓨터를 부팅시킨다.
# 75 태성의 오피스텔 내부
승희가 당혹감으로 서성거리고 있다. 현관문을 돌아본다. 승희, 망설이다가 현관으로 나간다.
# 76 오피스텔 복도
승희 현관을 나서며 둘러본다. 복도엔 아무도 없고 닫혀진 문들만 주욱 늘어서있다. 승희 조심스레 걸어가기 시작한다.
# 77 그의 방 내부
컴퓨터 화면이 켜져있다.
화면에 뜬 글 중에서 가장 마지막의
[난 오늘 저녁 남자와 함께 있을 거에요. 당신이 정말 나를 원한다면.. 나에게 와서.. 나를 데려가요. ] 부분이 보여지고...
그 위로 들리는 두 개의 음성. (격해질 필요는 없이 대화로)
태성E 넌 그 여자를 원하지 않어. 내가 알어.
그E 넌 몰라.
태성E 이젠 다 틀렸어. 너 때문이야.
그 뒤로 태성,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있다. 그 위로
태성E 언제나 너 때문이야. 내 옆에 온 사람은 니가 다 보냈어.
언제까지 그럴거니. 나 이렇게 살다 죽어야 되니? 이렇게 혼자.
이렇게 숨어서?
태성,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 위로 손을 뻗는다. 자신의 얼굴에서 목으로 가슴으로 쓰다듬어가다가..
그 (이건 입을 열어서.. 그가 밖으로 나온 상태)
내가 더 외로와.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외롭다구...
# 78 복도
승희, 복도 비상구 혹은 다른 코너 쪽을 살펴보고 다시 돌아온다.
여러 가지 의구심에 머리가 복잡해서 걸어온다. 태성의 방 문 앞으로 와 문을 열려다가 멈춘다. 다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고개를 번쩍 들어 냄새의 방향을 알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후딱 옆 방(그의 방)쪽을 본다. 냄새를 잃지 않으려 하며 조심스레 그 방 앞으로 다가간다. 거의 방문 앞까지 왔을 때, 방 안에서 들리는 요란하게 겅루 깨지는 소리.
승희. 놀라서 방문을 보고는 더 생각할 것 없이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한다. 엘리베이터 있는 곳까지 달려온다. 버튼을 정신없이 누르며 뒤를 돌아본다.
# 79 그의 방안
전면거울이 산산조각으로 깨져 방바닥에 흐트러져 있다.
그리고 그 앞.. 바닥에 웅크려 있는 태성. 양팔로 복부를 감싼채, 웅크린 그는 마치 탈피하려는 곤충처럼 푸들거리고 있다.
(세트가 끝났으면 이 씬은.. 빼겠습니다)
# 80 엘리베이터 안
초조하게 서서 층수표시를 노려보고 있는 승희.
느린 듯 아래 층으로 바뀌고 있는 층수표시.
# 81 건물 로비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승희가 튀어나온다. 앞에서 기다리던 누군가와 부딪히며 달려나간다.
# 82 건물 밖 / 밤
정신없이 달려나온 승희. 무작정 길을 건너려다가 달려오는 차 때문에 기겁을 해서 서고. 그제야 헐떡이며 뒤를 돌아본다. 거기 건물이 있고. 승희 위를 올려다본다. 높이 솟아있는 건물.
그러다 문득 승희. 혼잣말로..
승희 태성씨... (갑자기 태성이 걱정이 된 것)
승희,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건물 위를 보다가 몸을 돌려 계속 도망가려다가 다시 멈추고 다시 돌아본다.
# 83 건물 로비
승희가 조심스레 다시 들어서고 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되며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한발 두발.. 후딱 고개를 돌려본다. 거기 엘리베이터가 와 서고, 문이 열린다. 그 안은 비어있다. 마치 승희를 기다리듯 문은 열린 채 잠시 있다.
승희, 그 엘리베이터를 거의 울듯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 84 복도
비어있다. 주욱 돌아보면 거기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층표시의 숫자가 더해지고 있다.
그리고 십몇층이 되었을 때 땡 소리와 함께 서고.. 문이 열린다. 거기 승희가 있다. 승희는 조심스레 밖을 살피고.. 문이 다시 닫히려하자. 열림버튼을 누르고 그리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선다.
빈 복도를 다시 살펴보고 낮은 소리로 한번 불러본다.
승희 태성씨..
저만치 태성의 방 문이 보인다. 승희 두려움으로 천천이 문을 향해 다가간다. 태성의 문 앞까지 와서 손잡이를 돌리는데 잠겨있다. 좀 더 격하게 돌려보고 잡아채보다가 문득 옆을 본다. 아까의 그 방.
그 방문이 아주 조금 열려있고. 그 틈새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인다. 승희, 고조되는 공포 속에 그 불빛을 보다가 결국 떨며 다가간다. 가까이 가면 더욱 확실해지는 틈새의 불빛. 촛불이어서 어둡게 흔들리고 있다. 승희 숨을 멈추고 살그머니 그 틈새 사이로 안을 엿본다.
// 인서트
방안의 모습.. 촛불.. 컴퓨터 등등..
승희, 완전히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다가 몸을 돌려 도망치다가 멈춘다. 그 앞, 엘리베이터 앞에 태성이 우뚝 서서 한손으로 버튼을 누른 채 승희를 보고 있다.
조명은 어두워서 언뜻 얼굴의 표정이 안보이는 느낌.
승희 태성씨. (안도와 의구심으로 다가서며) 어디 있었어요.
저기 태성씨 옆방에 그 놈이.. 그 냄새가.. 아주 가까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그 안의 불빛으로 태성이 확실히 보이는데 그 얼굴은 이미 그의 것. 생기 없이 차가운. 그 느낌에 승희. 멈춘다. 이제 승회와 그의 사이는 서너 걸음 정도로 가까운데. 태성. 입을 열어 말하는데 그의 목소리다.
태성 나를 찾았어?
승희. 억눌린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복도를 달려서..
# 85 비상계단 입구
엎어질 듯 달려들어온 승희. 거기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입구와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승희 미친 듯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지만 층수는 멀고.. 승희 더 이상 못 참고 옆의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연다. 튀어 들어가고. 그 문은 닫긴다. 닫긴 문의 가로 손잡이(안에서 열기 힘든)가 보여지고.
# 86 비상 계단
달려내려오던 승희. 그 여세로 벽에 부딪히며 섰다가 그대로 멈춘다. 비상계단의 공간에 들리고 있는 발소리. 위인지. 아래인지... 승희 정신없이 살피다 보면.. 저 아래에 벽에 그림자가 어린다. 그림자는 서두는 법이 없이 올라오고 있다. 승희 정신없이 위로 다시 달려올라가기 시작한다.
// 달려오르고.. 급하지 않게 발걸음은 뒤를 따르고...
// 승희 비상구의 문을 안에서 열려고 하지만 그 문은 안에서는 열리지 않고..
// 반복되다가..
# 87 옥상 / 밤
문이 열리며 승희가 튀어나온다. 도망 갈 곳을 찾지만 더 이상 없다. 입구를 돌아보고.. 절망적인 심정에서 환풍구나 그 밖의 구조물 뒤로 달려가 숨는다. 동시에 문이 열리는 소리. 옥상 위로 걸어오는 발소리. 승희 이제 울고 있다. 그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기를 쓰면서 웅크린다. 발소리는 옥상 위를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급할 것이 없다는 투로..
그E 루나.. 니가 가진 해바라기 그림은 가짜야.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릴 때 진짜.. 응? 진짜 노란색을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
했는지 아니? 그런데 그걸 가짜 복사판으로 보면 안되지. 그런
짓은 해선 안돼. 내 말 듣고 있니?
승희 필사적으로 주위에서 뭔가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는다. 그러다 문득 저만치 앞에 쌓혀있는 몇 개의 파이프를 발견한다.
그E 너두 마찬가지였어. 너두 가짜야. 세상에 진짜 여자는 없어.
얼굴을 칠하고 광대같은 옷을 입고.. 속엔 아무 것도 없어.
걔는 그걸 몰라. 넌 그앨 속였어. 나도 속을 뻔 했어.
승희. 목소리의 위치를 가늠하며.. 소리내지 않게 조심하며.. 조금씩 파이프로 다가간다.
그E 잘못했지? 잘못했다구 말해봐.
승희 드디어 파이프를 손에 넣는다. 움켜쥐고 마악 몸을 돌이키는 순간, 그 팔목을 잡아채는 그의 손. 그대로 승희를 뒷 벽에 붙이며 파이프를 가로 잡아 승희의 상체를 누른다. 승희 울며 몸부림치지만 끄덕없고. 바로 앞에서 승희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
그 한번은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
승희 (그 말에 멈췄다가) 너.. 넌 누구야.
그 난.. 나는..
그가 순간 혼란스러워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승희. 있는 힘껏 그를 밀치고 도망치는데, 다음 순간 뒤에서 나꿔채고. 다시 한번 뿌리쳐 벗어나지만 엎어지고.
엎어진 승희를 뒤에서 잡아 들어올리는데, 그 와중에 승희의 손이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닿는다. 비로소 깨달아지는 자신의 무기의 존재. 그가 거칠게 승희를 밀어 제치는데 뒷 벽에 부딪히며 승희 가스총을 꺼내 발사한다.
그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꺽는 순간, 승희 도망친다. 그러나 이미 탈진하여 몇걸음만에 넘어진다.
울며 기어서 몇걸음을 진행하는데 그런 승희의 목덜미를 잡아채어 난간벽에 밀어 던지는 그.
승희 거의 남은 힘이 없어 무너져내리는데 그녀를 받쳐 앞을 막는 그.. 순간 그의 말. 태성의 목소리다.
태성 도망쳐요.
승희 태성의 몸으로 갇힌 채, 고개 들어 본다. 태성의 눈빛. 그러나 가스의 효력으로 거의 힘이 없이 무너지듯 승희에게 다가오는 얼굴. 그대로 태성이 승희에게 입을 맞춘다. 승희 얼어붙어 있고. 그리고.. 태성의 입술이 승희의 귓전으로 옮겨가며.. 속삭여..
태성 난 당신이... 가짜라도.. 상관없었어요.
잠시의 멈춤. 다음 순간 승희 울부짖으며 남은 힘을 다해 태성을 밀어제치고 도망친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이끌어 엎어지고 기고 다시 일어나 도망쳐 입구의 손잡이를 잡고 간신이 일어서다가 돌아본다. 멈춘다.
저만치 태성이 가스의 효력에 젖어가는 몸으로 난간 위로 기를 쓰고 올라서고 있다. 승희, 놀라 본다.
난간에 올라선 태성이 휘청이며 똑바로 서서 승희를 본다.
승희 본다. 승희를 보는 태성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듯 하더니.. 그대로 똑바로 뒤로 넘어진다.
승희 경악하여 주저앉는다. 다음 순간, 저 아래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차의 급브레이크 소리. 경적소리..
승희 넋이 나가서 주춤거리며 난간으로 다가간다. 간신이 내려다봤을 때..
저 아래 차도에 양쪽으로 차들이 멈춰서있고. 그 차들이 비추는 헤드라이트 불빛.. 그 가운데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그들 가운데.. 댓자로 누워있는 태성이 보일지.. )
승희. 믿을 수 없어 뒤로 물러난다. 바람이 분다. 모든 상황은 종료되어있다. 승희 어느만치에서 우뚝 선다. 넋이 나가서 몸을 돌려서는데.
태성E 내가 승희씨 좋아하는 거.. 믿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어쩌면.. 나도 제대로 될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승희 갑자기 정신이 드는 느낌. 내부에서 울음이 터져나오며 승희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양팔로 자기 몸을 감싸고 승희 격하게 울기 시작한다. 울고 있는 승희가 저 아래로 보인다. 넓은 옥상 위에서 혼자. 오두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