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문단)
물한계곡
지옥임
단풍구경을 놓치면 가을을 놓친 것이라는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올해는 유난히도 가을벌판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단풍 또한 예년과는 달리 아주 곱게 단장을 한 채 돌아갈 차비를 하고 있다. 마지막 가는 길이 서러워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동안 어우러져 사느라 자기를 드러내지 못한 한풀이라도 하는지,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멀리서라도 누가 나를 봐주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물이 하도 차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민주지산의 물한계곡, 골짜기를 따라 가는 길 양쪽으로 산세가 제법 수려하다. 계곡 초입부터 형형색색 아름다운 단풍들이 장관을 이루며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도로에서 정상까지 무려 30여km에 이르는 길이 앞뒤 없이 사방으로 불이라도 난 것처럼 벌겋다. 여름에는 모두가 초록색이라 구분할 수 없었는데,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어우러진 모습이, 흡사 곱게 색칠을 한 뭉게구름이 떠있는 것만 같다. 자연의 위대한 솜씨에 매료되어 감탄사를 자아내며 정신없이 굽이를 돌고 또 돌았다. 다 왔나 싶으면 또 다른 굽이가 나타난다.
셀 수 없이 많은 산굽이를 돌아 도착한 곳은 가을이라 어설프긴 하지만 맑은 물이 졸졸졸 콜콜 꼬르륵 쏴~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이다. 깨끗한 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이 넓고 좁은 바윗골을 지나 낭떠러지에서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니 마치 배가 래프팅을 하는 것만 같다. 이 계곡은 한여름에도 물에다 발을 담그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갑다. 산이 좋고 긴 계곡물이 좋아 전국에서 모여드는 피서객들로 인하여 몸살을 앓기도 한다는 이곳이야말로 계곡으로서의 매력을 완전히 갖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계곡 옆의 등산로는 길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낙엽이 쌓여, 늦은 가을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그래서인지 아까 보았던 가을과는 전혀 다르게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어디선가 가냘픈 새소리가 들린다. 위를 보니 꽉 들어찬 나뭇가지 사이로 시리도록 파란하늘이 보인다. 한지로 걸러낸 듯한 엷은 햇살은 어린 시절 싸우고 삐져 토라진 언니처럼 싸늘해 보인다. 잎이 떨어진 가느다란 가지 끝에는 계절을 감지했는지 외로워 보이는 멧새 한 마리가 울고 있다.
저만치 앞서가는 노신사의 뒷모습이 너무나 쓸쓸해 보인다. 노신사 그리고 나의 인생길을 계절로 치자면 지금쯤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처럼 생동감 넘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낙엽을 밟으며 지나온 날을 뒤돌아보니, 육십 평생 걸어온 길에 아쉬움이 남아 머릿속과 가슴속을 다 비워낸 듯 허전하다. 내년 봄을 기약하고 떠나가는 낙엽의 처연함을 보며 남은여생을 스케치 해본다. 단풍처럼 곱게는 아니더라도 산책길에 떨어진 낙엽처럼 밟히는 황혼이 되지 않기를 ……
운치가 최고에 달한 계곡에는 우리 일행만이 가을을 만끽할 뿐이다. 같이 간 친구가 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며, 산책을 하는 내내 신성하고 아름다운 계곡과 일치되는 듯한 고운 음색으로 노래를 부른다. 마치 친구의 맑은 심성이 비워낸 가슴속을 채워 내 영혼이 맑아지는 것처럼 따뜻함이 느껴진다.
풍요로운 계절에 높고 푸른 하늘과 자연만이 존재하는 이곳에 와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귀한 노래까지 즐겼다. 이런 곳에 올 수 있는 건강을 주신 하나님과 눈길이 가 닿는 모든 만물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추억여행
지옥임
특별한 볼 일도 없는데 왠지 새벽시장에 가고 싶어졌다. 환절기라서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스크며 장갑까지 끼고 사방이 캄캄한데 집을 나서 버스를 탔다. 어디쯤에서 탔는지 거무죽죽한 보따리가 버스바닥에 죽 늘어져있다. 자리에는 몇몇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있다.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버스 안을 한 바퀴 휙 돌아보니 자다가 그냥 나왔는지 머리가 부스스한 채 졸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농사를 지어 새벽시장에 팔러 나가는 사람들 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날은 훤하게 밝아오고 금방까지 졸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정신이 났는지 버스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서로 먼저 내리려고 야단들이다. 보따리를 굴리기도 하고 내던지다시피 서두른다. 도대체 저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저토록 함부로 대하는지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버스에서 내려 역전 마당에 도착하니 어디서 모여든 사람들인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도시의 시장이 아니라 시골 오일장 싸전에 간 것처럼 귀가 먹먹하다. 눈을 돌려 둘러보니 그저 없는 것이 없다.
갓 잡아왔다고 소리치는 아줌마 손에 들린 꽃게를 보니 집게발을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싶어 안간 힘을 쓴다. 다리가 긴 낙지는 길바닥까지 기어 나와 빨판을 이용하여 찰싹 달라붙어 자기들이 살아있음을 과시하며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가지에 담긴 빨간 연시와 검붉게 잘 익은 대추를 비롯한 갖가지 과일들, 국직하고 소담스러운 토란대, 어젯밤에 캤는지 싱싱한 생강도 보인다.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온 모든 채소들을 앞에다 놓고 여기는 원래 내자리라면서 자리싸움을 하기도 한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잡고 흥정하는 소리, 싸다고 어서 오라는 고함소리로 시끌벅적 시장이 떠들썩하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지면서 무엇인가를 빨리 사야지 자칫하다가는 남들이 다 사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바빠진다.
별로 살 것도 없으면서 엄청 바쁘기라도 한양 종종거름으로 인파속을 헤치고 부산하게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그제야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삶이 힘들고 팍팍할 때에는 새벽시장을 가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새벽별을 보고 이곳에 나온 사람들이야 말로 세상을 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 이 사람들 때문에 우리들의 싱싱하고 맛있는 식단이 짜여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좌판을 벌이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아까 버스에서 본 광경과는 전혀 다르게 주름지고 검게 그을린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하고 있다. 그들 속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을 발견한다. 추석대목이 돌아오면 밤 대추를 따 상품가치를 올리려고 깨끗하게 손질해 놓고 내일 새벽 통근열차로 대전 장에 갈 준비를 한다. 시계가 없던 시절이라 밤잠을 설쳐가며 샛별이 어디쯤 떴는지 보고 조금 있다 또 문을 열고 확인한다. 샛별이 동쪽 안산 산마루에 번쩍 떠오르면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고 호롱불을 켜놓고 익숙하지 못한 손놀림으로 어설픈 화장을 하고 어른들을 따라 나선다.
별을 보고 시간을 가늠하며 밤 대추를 머리에 이고 오솔길을 따라 산을 넘어 십리 길을 가다보면 비라도 맞은 것처럼 땀에 흠뻑 젖는다. 아까 호롱불 밑에서 곱게 한 화장이 얼룩진 줄도 모르고 장사꾼들과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아귀다툼을 하던 생각이 난다. 어린나이에 돈 몇 푼 손에 쥐어지는 재미로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대전 장을 드나들었다.
그 어렵게 손에 들어온 몇 푼의 돈을 가지고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큰 시장으로 쪼르르 달려가 부엌살림을 샀다. 그리고 내 것보다는 동생들 옷가지 챙기는 재미가 더 컸던 것 갔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비단 장사들은 내가 감히 쳐다보기조차 민망한 것 같아 몰래 곁눈으로 흠처보곤 했다. 어느 정도 컸을 때에야 그곳이 중앙시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먼 훗날 그 중앙시장에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그 사람들과 상부상조하며 한복집을 할 때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났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이기도 하지만 중앙시장은 모두들 예전 같지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한다. 그러나 역전 새벽시장만은 아직까지 내가 어렸을 적과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생동감이 넘쳐나는 경쟁이 치열한 삶의 현장. 신선하고 저렴한 먹을거리들, 소박한 인심, 정겨운 얼굴들, 옛날과는 반대로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어디 없을까 찾아보지만 낯익은 얼굴은 하나도 없다. 그 옛날에는 밤 자루를 이고 대전 장에 가는 것을 교복 입은 친구들이 보기라도 할까 봐 먼발치에서부터 두리번거리다가 친구들이 타지 않는 칸을 골라 타곤 했다. 내가 타고 내리는 간이역은 아침저녁으로 통근열차만이 섰기 때문에, 숨어 다녀도 친구들에게 들켜 창피했던 기억이 꼬리를 물고 스쳐 지나간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 아직은 먼 줄만 알고 있었던 가을, 짓 고추가 많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올해도 가을걷이가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짓 고추를 한 자루 사고, 삭혀 담을 요량으로 노랗게 익은 들깻잎도 좀 샀다. 토실토실한 알밤과 고구마 등 옛날에 먹어본 것들을 사가지고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추억여행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이 기분이 한동안은 갈 것 같다. 생각 난 김에 옛날 대전 장에 같이 다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이야기라도 나눠야겠다.
(옥천예총)
청령포
지옥임
일요일만 되면 어디론지 떠나고 싶어 하는 남편을 따라 친구내외와 아무 생각 없이 가다보니 강원도 영월까지 가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영월하면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곳이 있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 청령포라는 외진 곳.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나룻배가 아니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고 깎아지른 듯한 뒷산은 하늘에 닿을 것만 같다. 어린나이에 숙부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인적조차 끊어진 이곳에 유배되었다가 사약까지 받은 단종이 생각난다.
우리 일행이 그곳을 찾았을 때에는 휴가철이라 그런지 청령포를 찾아 배를 타려고 서있는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청령포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강 건너에서 오백여년 전에 열일곱 살 어린나이에 비명횡사한 단종을 생각했다. 두고 온 궁궐을 그리며 아내 송비를 목이 터져라 불렀을 단종, 숙부 수양대군을 원망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다 죽어간 단종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찡하게 울려온다.
내가 단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사학년 때다. 아버지가 심청전, 춘향전, 단종대왕 실기라는 책을 읽으실 때 나는 전해져 내려오는 옛날 얘기로만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읽다둔 책을 읽으면서 무능한 문종을 기록해 놓은 부분에서는 어린나이지만 내가 나서서 어떻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간신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조정하며 충신들을 차례로 죽여 갈 때에는 원망을 했던 기억도 난다. 어린조카를 상왕으로 물러 앉혀 놓고, 그것으로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내어 쫓을 생각을 하는 수양대군이 정말 미웠다.
결국은 궁궐을 뒤로하고 몇날며칠 영월 땅 청령포로 가는 대목에서는 너무 슬퍼서 책이 젖도록 울었다. 말없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가에 서서 멀리 한양 쪽을 바라보며 시를 읊고 복귀될 날을 기다리는 단종의 애끓는 울음소리에 귀촉도도 같이 슬피 울어 댄다는 구절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 갈 때에는, 옆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도 함께 소리 내어 울었다.
청령포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 장릉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임금께서 어쩌다가 수양대군 같은 아들을 두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일행 중 한사람이 이조 역사 중 아들을 제일 많이 둔 임금이 세종이라고 한다. 18명의 아들과 딸 넷을 두다보니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을 한다.
청령포에서 단종을 모신 장릉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들렀을 때에는 능이 허물어지는 등 너무 허술해서 씁쓸한 여운을 안고 돌아섰는데, 이번에 와보니 만족스러우리만큼 잘 정리가 되어있어 기분이 좋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동안 내가 잊고 있던 부분들과 모르는 부분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우리의 역사가 피비린내로 엮어졌다는 사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권자의 자리란 부자간에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특성이 있다고 하지만, 세조임금(수양대군)이야말로 큰 뜻을 품고 야심차게 찬탈한 자리가 아니던가. 선군의 길은 아니더라도 오래오래 그 자리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려야 마땅하나, 보좌에서 13년 큰 뜻을 펼치기도 전에 몸에 병이 들어 그렇게 오랜 세월 머물지도 못했다. 역사에 포악한 임금으로 기록을 남겨 후회가 많았을 것이다. 요즘정치인들도 이것을 보고 뭔가 느끼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하들의 역할에 따라 어진 정치를 하고자하나 불명예를 안고 퇴진하는 일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일본의 어느 외교관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한국에 대해 한마디 하라고 했더니, 한국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무서워도 여럿이 있을 때에는 분열이 잘되어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말을 했단다. 그 말이 왜 이렇게 머릿속에 남아 맴도는지 알 수가 없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할 위정자들이 사리사욕에 눈멀어 자기가 한말에 책임 짓지 못하며, 옭고 그른 것을 판단하지 못하고 무리를 지어 편 가르기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며 핏빛으로 역사를 얼룩지게 하던 그때나 지금이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목숨이라도 걸고 나서야 할 자리에서는 언제나 눈치를 살피는 지도자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떠오르는 용이라고 쾌재를 부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빚이 900조나 된다고 한다.
오천년 역사 강대국들에 의해 수도 없이 침략을 당하고 빼앗기고도 한데 뭉치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지……. 우리민족이 한데 뭉쳐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더불어 바른길로 인도하며 책임질 줄 아는 지도자가 나와 언젠가 해야 하는 통일문제도 하루속히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