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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수요일(3월27)
유월절 준비, 성만찬, 산헤드린에서 음모를 꾸밈
마태복음 26:3~5, 17~19절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하다>
26:3~5절 (막 14:1~2: 눅 22:1~2)
마 26: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루살렘의 통치기구인 산헤드린의 전체 총회가 아닌 대표자들입니다. '관정'은 대제사장의 사적 거처이고 가야바는 주후 18~36년의 대제사장이자 전 대제사장인 안나스의 사위입니다
5절에서 '명절'은 매년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여행했고 그때마다 그들의 조상이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된 일을 상기하면서 민족주의적인 열기가 고조되었습니다. '민란', 특히 그런 명절 기간에는 민란이 점점 흔해졌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대중적 인기 때문에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체포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유월절 만찬 준비> (막 14:12~16; 눅 22:7~13)
마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무교절의 첫날', 무교절은 니산 월 3/4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 계속되었습니다(레 23:5~6)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준비하기를', 유월절 준비는 목요일 오후(니산 월 14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목요일 저녁 일몰 후(즉 니산 월 15일)에 유월절 식사를 하셨고 그날 밤에 성만찬을 제정하셔습니다.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예수님이 유대 관원들을 피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친구들과 사전에 약속하셨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이 만남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유월절 규례>
출 12:4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44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5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 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47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49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50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으며 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빠져나올 때 다른 여러 민족들도 그들과 함께 나왔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을 올바로 지키는 것에 대한 규례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주하면 그들이 절기들에 참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생활 가운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유월절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모든 타국인 남자들은 할례를 받은 후에야 그 절기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 세례는 할레와 비슷한 역활을 합니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셰례는 어떤 신앙인이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것을 공식으로 나타내고 증거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여기서도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유월절 식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46절에서 '뼈도 꺾지 말지며' 요한복음 19장 36은 유월절에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을 통해서 이 구절이 성취되었다고 이해합니다.
요 19: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시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고난주간 목요일(3월27일)
<유월절과 성만찬> (막 14:17~26)
20~35절을 보겠습니다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20절에서 '함께 앉으셨더니', 공식적인 정찬에서 손님은 방의 삼면을 따라 깔린 긴 의자에 누웠습니다. 주인은 양편으로 최고 귀빈에 둘러싸인 채 여러 U자 모양의 낮은 식탁에서 중앙 좌석을 차지했고 손님들은 머리는 식탁 쪽으로 기대고 발은 벽쪽으로 기댔습니다.
23절에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빵 한 조각이나 빵 안의 고기 한 점을 식탁 위에 함께 먹는 소스 그릇에 찍어 먹는 것이 당시 관습이었습니다. 방 안에 있는 각자가 그렇게 했고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열두 제자 중에 누구라도 배신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나를 팔리라', 불성실과 배신의 극치는 친구와 함께 식사한 뒤에 배신하는 것입니다.
24절에서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이사야 42~53장의 고난받는 종에 대한 예언입니다. '화'는 예수님을 배반한 자에게 임할 신적 심판의 확실성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백성의 죄에 대한 속죄 제물이 되실 것이므로 예수님의 몸은 유월절 어린 양과 기타 구약 제사 들을 둘러싼 의식들의 최종적 성취가 될 것입니다.
'또 잔을 가지고 감사 기도 하시고....이것을 마시라', ',잔', 이는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라는 출 6:6에 나오는 하나님의 세 번째 약속에 상응하는 유월절에 마시는 네 번째 잔 중 세번째 잔- 축복의 잔 또는 구속의 잔일 것입니다.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잔은 예수님이 피를 흘려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것을 예시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관계를 통한 모든 민족의 구속을 위한 길이 열립니다(참조, 렘 31:31~34).
29절에서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 메시아적 잔치를 말합니다(참조, 계 19:9).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베드로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칠 것입니다. 그들은 제자이기를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박해에 직면해서 주님 곁에 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도망친 뒤에도 은혜롭게 그들과의 교제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경고에 주의하지 않고 제자들이 곧 맞닥뜨릴 극한적인 믿음의 시험을 과소평가합니다.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합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허세에 휩쓸립니다. "닭 올리기 전에", 해가 떠서 날이 밝았음을 뜻하는 관용구입니다.
<유월절 식사와 성찬 제정>
누가복음 22장 14~30절
눅 22: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누가가 묘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과의 마지막 유월절 식사는 두 가지 면에서 마태나 마가와 다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배신에 대한 진술을 식사 이전이 아닌 이후에 배치하며 잔도 하나가 아닌 둘을 언급합니다.
14절에서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유월절을 기념할 "때"(15절) 그리고 더 넓은 의미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때"입니다.
'앉으사'(ESV, '상에 기대어'), 유월절 식사는 다른 절기 식사와 마찬가지로 기댄 자세로 했습니다(마 26:20 해설).
예수님은 다음 몇 가지 이유로 이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고 원하셨습니다. 첫째, 이 식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성립을 상징했습니다.
둘째, 예수님 자신이 이제 곧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희생될 참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려 했고 따라서 이 유월절 식사는 오랜 시간 동안 메시아를 고대하면서 유월절을 기념하던 시대의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이 식사가 제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시는 것을 풍부하게 상징할 것임을 아셨습니다.
넷째, 이 유월절 식사 자체가 천국에서의 어린 양의 혼인 자체를 예표했습니다(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여기서 '성만찬'(Eucharist)이란 단어가 유래되었습니다.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떡을 가져'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의 유사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말씀은 교회 역사 내내 매우 다양한 해석을 낳았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 의해 세워진 개혁파(개신교) 교회 루터파는 문자적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마치 스펀지 안에 물이 들어 있는 것과 비슷하게) 빵과 포도주 안과 겉과 아래에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성공회 교인들은 빵과 포도주 안에 있는 그 시도의 '실제 현존'을 언급합니다. 그 밖에 대다수 개신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문자적으로, 육체적으로, 또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상징적으로' 실재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대다수는 또한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받는 신자들과 함께 그들 안에 임재하셔서 그들의 믿음과 주님과의 교재를 강화시키고 이를 통해 그들의 영혼을 먹이신다고 덧붙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는 마 18:20, 28:20을 근거로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주는', 막 10:45; 눅 2:24; 갈 1:4에서 희생 제사와 관련하여 바로 이 동사가 사용됩니다. '너희를 위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구문(헬 '휘페르'+속격)은 종종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한다는 대리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 성만찬의 거행에서 표현되는 예언된 것처럼 예수님이 속죄의 회생제물이 되시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이 그 백성의 죄를 '간과'하실 때 예수님의 몸은 유월절 어린 양을 둘러싼 의식들의 단회적인 성취가 될 것입니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참조, 고전 11:24)
20절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가 새 언약을 인치는 희생의 피임을 가리킵니다. '붓는', 즉, 죽음 가운데 붓는 것의 의미는 "너희를 위하여"라는 막 14:24의 "많은 사람을 위하여"를 더 명백하게 표현해줍니다.
22절에서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에게 다가오는 사건들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유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반박합니다. '우리 중에서....누구일까', 유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유다의 외적 행위는 이전의 행동과 마찬가지여서 외관상으로는 유다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있습니다.
30절에서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예수님 재림 이후에 신약의 열두 사도인 제자들(가롯 유다는 제외되고 바울 사도가 포함될것. 바울은 하늘보좌 24장로에도 들어갈 것으로 보임)은 구약에서 구원받지 못한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질 것입니다.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의 피'>
출 24: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체결을 확인하는 행위로서 모세는 회생제물의 피를 재단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립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피를 뿌리는 의식은 정결과 대속을 의미할 것입니다. 피는 제단과 이스라엘 백성을 서로 연결시켜줍니다. 따라서 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통해서 서로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와 맺은 언약을 지키라고 요구하십니다. 언약의 규정들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될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언약의 피',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잔을 가리키시면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성찬을 구약 성경의 화목제에 비유하십니다.
<축복의 잔>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 바울은 성찬식의 잔을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이 잔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최초의 기독교 성찬식에서는 이 관습을 따라 했습니다. 참여는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나 성령과의 교제를 가르키며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곤경이나 대의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문맥은 이방 신전에 참여하는 것과 성전에 참여하는 것이 양립 불가능함을 강조하므로 바울은 주의 만찬을 먹는 자들은 예수님과 보조를 같이 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예수님의 죽음에서 유익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떡이 하나요....한 몸이니', 예수님은 감사 기도하시고 떡을 떼신 뒤에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교회의 지체들이 그들의 공통된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서로 연합되었음을 밝히는 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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