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서 있는데 달새님이 빨리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리고는 디지털 카메라의 작은 화면을 보여 주더군요. 그 속에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예수님 사진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아멘"이라는 말이 튀어 나왔습답니다..
"형님...저도 이 사진 꼭 찍고 싶어요."
그런데 해는 이미 넘어갔답니다. 딱 1분사이에 해는 예수님 머리로 지나간 것이지요. 달새형님은 어디서 의자 하나를 들고 오셨습니다.
"의자에 올라 가서 찍어"
붉은 노을이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외로운 쪽배만이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환희, 도도, 애절, 연민...제 언어 창고에 있는 벌써 용어들이 바닥이 났습니다.
작은 배는 자연의 축복을 마음껏 받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긴 제가 보는 시각에서 그렇게 느낄 뿐이지 해는 골고루 세상에 빛을 뿌려주고 있답니다. 그걸 깨달은 제가 축복받은 사람일겝니다. ^^
다시 장비를 챙기고 차 있는 곳으로 달려 갔습니다. 어여 빨리 갈매못 성지를 찾아가자. 그런데 이것이 왠일입니까? 제가 주차한 곳이 바로 갈매못 성지 정문이 아니겠어요? 주님은 가끔 이렇게 저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청양 줄무덤 성지에서 이름모를 순교자를 만나고 보령의 갈매못 성지로 향합니다. 갈매못의 일몰사진을 찍기 위해 조금 속력을 냈답니다. 21번국도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더군요. 중간에 묵주기도를 바치며 도보순례를 하는 수녀님이 지나갑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주님 만나는데 방해될까봐 그냥 지나칩니다.
해안가에 접어들자 때 맞춰 멋진 일몰이 시작되더군요. 황홀한 석양의 유혹 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었습니다. 동승했던 달새님이 급히 차를 세우라고 말하더군요. 너무나 느낌이 좋은 곳이라서 사진을 꼭 찍어야 된다고...... 차 세울 곳이 만만치 않아 반대편에 차 한대 세울 공간이 있어 차를 세우고 카메라 장비를 꺼내 바닷가로 달려 갔지요.
(사진:다블뤼 주교님 동상)
다블뤼 주교
1845년 조선땅에 입국한 다블뤼 주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마구잡이로 처형이 되자 스스로 체포될 것을 결심한 뒤 다른 선교사들에게도 자수를 권유하는 편지를 쓰고 체포됩니다.
'이 한몸 죽어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의 피해가 줄어든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주교님의 편지를 받은 오매르트 신부와 위앵 신부님도 기꺼이 십자가의 길에 동참합니다. 두 신부님은 죽음의 서신을 받고 인간적으로 고뇌했겠습니까?
성수가 담겨진 곳에 조개껍데기가 놓여 있네요. 수녀님께서 해변을 산책하다고 몇 개 주워 왔다고 합니다. 그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수녀님. 정말 아름다운 곳에서 사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갈매못에서 성지를 가꾸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