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쳤다. 실습도 마쳤다. 허기가 급작스레 몰려왔다. 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고모님과 점심식사나 같이 할까 전화를 넣었더니
사촌 여동생이 부재를 알린다. 한 때는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더랬는데, 10 년의 세월 참 무상하구나.
도심 곳곳에 자리잡은 이름도 생소한 고층 아파트와 상가 빌딩들이 즐비하다. 참으로 익숙하기도 하고 참으로 낯설기도 하다.
발길 놓을 데를 몰라 방황하다 학원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포일동 인덕원 방면이 눈에 띠어 기사님을
찾았다. 출발시간을 알려주어 잠시 기다리고 있던 중 때마침 고모님이 전화를 주신다.
모처럼 찾아와 전화하게 된 사연이 뜻밖이었을 것이다. 잠시 시장보러 나온 고모에게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니, 사촌 여동생은
무슨 큰 일이라고 장보러 가신 고모님을 부랴부랴 쫓아가 알렸단다. 사촌 오라버니가 무슨 대단한 사람으로 알고 있나 보다.
치매를 앓고 계신 고모부 병수발 받드시느라 마음고생 많으신 고모님을 위해 점심 대접이나마 할까 싶었지만, 이미 드셨단다.
기왕지사 근처에 왔으니 인사겸 점심식사는 물 건너갔고, 면허 합격하면 다시 연락하겠노라 하고 전화 안부로 사연을 마쳤다.
셔틀 출발시간이 다 되어 버스를 타러 갔다. 기사님, 점검을 마치고 앞 좌석으로 타라신다. 청춘을 뽐내는 두 수강생과 OB 세대인
나무가 동승했다.
출발직전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인상....해서 넌즈시 물었다.
"혹시 OO룡님 아니신지요?"
잠시 고개를 갸웃 하는가 싶던 기사님. 간단명료하게 한다.
"맞아."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02 한일 월드컵 열리기 직전이었던 때, 교차로 신호등 대기선에서 신호가
들어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미러로 보니 스쿠터급 오토바이가 슬며시 대기 차량들 사이를 비집고 내 차 옆으로 와서 멈췄다.
무심코 차주 얼굴을 봤다. OO룡 삼촌? 맞다!
촌음을 다퉈가며 안부를 주고 받고 연락처를 나누자마자 신호가 두 사람을 갈라 세웠다. 그로부터 세월은 가고 추억은 멈췄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뀐 세상. 그 구간이 순간적으로 짤려나가고 기사님은 곧바로 삼촌 조카 사이가 되어 뒷좌석 두 청춘들이 듣거나 말거나 멈추었던
추억구간이 복원되기 시작했다.이게 무슨 유전자 조작도 아니고 세월의 조작이란 말인가.
그후, 한 달을 채워 마침내 면허를 발급받았다.
3전 4기, 3번 불합격 후 4번째 도전 끝에 성공.
합격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통제관 다가와 합격이라고 알려준다.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오토바이를 몰고 진입코스로 퇴장하자 응시생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2022년 6월 18일 합격 후 6월 20일 발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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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추억을 더듬으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삶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월 멀고 거리 멀어 자주 하지 않았더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도
보면 ,
반갑기 그지없음에,
세월도 잊을만 하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늘 변함없는 것,
우연이라도 소홀함 하나없으니,
참 좋은 인연이라고,
오늘은 구태여,
글로 남겨둡니다. 2022/05/26/나무날에
고향 동네 조카를 위해 셔틀 연장까지 해가며 도움 주신, 00룡 삼촌께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참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그때 함께 하신 샘들과 실습생들 모두 건강과 행복을 빌며, 연천 나무.
잊었던 옛 추억
오가는 바람과 구름 사이로 지나네.
한 세상 덧없다 하여도
고향 찾아가는 길에 마주하는 인연
가뭇없던 날들 바람 따라 구름처럼 가네
무수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옛일도 오늘도
촘촘이 엮어져 또 다른 추억이 되는구나 2023/6/25
첫댓글 오랫만
Goooooooo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