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홈플러스 서울 영등포점. 한경숙(48·여)씨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장보기’가 직업이다. ‘피커(Picker)’로 불린다. 한씨는 고객 이름이 적힌 장바구니 6개를 실은 카트를 끌고 지하 1층 식품 매장을 빠르게 돌며 생수, 라면 등 생활필수품을 집어 들었다. 주문 정보가 담긴 단말기를 상품 바코드에 갖다댈 때마다 ‘삐’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정육코너 뒤 피커존(zone)에 상품을 내려놓은 한씨는 빈 바구니를 카트에 싣고 다시 매장으로 나왔다. 한씨는 이날 하루 동안 고객 26명이 주문한 상품 490개를 찾아 장을 봤다.
피커는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매장에서 대신 골라주는 사람으로 현명한 구매와 소비를 도와준다. 대다수가 주부 10년차 이상의 베테랑이다. 고객 입장에선 직접 장을 보는 것처럼 믿고 맡길 수 있어 좋고, 주부(피커)들은 쇼핑 노하우를 살려 일자리도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채용됐다가 6개월 이상 지나면 계약직으로 전환된다. 근무시간이 오전 8시30분∼오후 5시로 고정돼 있는 것도 장점이다.
상품 고르기는 오전 8시30분, 11시, 오후 2시 세 차례 진행된다. 보통 대형마트가 오전 9시 문을 열지만 피커의 하루는 30분 정도 더 일찍 시작된다. 취합된 상품은 하루 네 번 배송된다. 설을 앞둔 요즘은 주문고객 수가 매일 200명을 넘나든다. 한씨는 “만보기를 차고 걸었더니 최소 3만보 이상은 나왔다”고 했다.
피커도 주부여서 알뜰한 씀씀이를 잘 안다. 한씨는 단말기에 적힌 대로 장을 보던 중 고객이 주문한 올리브유가 행사 상품으로 나와 싸게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곧바로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6700원짜리 500㎖ 올리브유를 주문하셨는데 같은 브랜드의 900㎖ 2개들이 제품이 990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어떤 걸로 담아드릴까요?”
한씨는 고객 요청에 따라 2개들이 올리브유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한씨는 “10원이라도 아끼고 싶은 주부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주문한 것보다 싼 물건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지난해 홈플러스 온라인 매출은 전년도 대비 115% 증가했다. 주문고객 수도 85% 늘었다. 주문 신청은 오후 1시 이전에 홈플러스 홈페이지를 통해 하면 된다. 물건값 외에 별도의 수수료는 없고, 시간대에 따라 1000∼4000원의 배송료만 내면 된다.
지난해 인기품목 1위는 생수. 그 뒤를 바나나, 컵라면, 봉지라면, 감자, 우유, 감귤, 커피믹스, 수박, 무가 잇고 있다. 무게가 나가거나 대량 구매하면 좋은 가공식품뿐 아니라 채소, 과일 등 신선식품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배송 당일 신선한 제품을 점포에서 직접 골라 배송해주기 때문에 고객 반응이 좋다는 게 홈플러스 측 설명이다.
피커 서비스를 애용한다는 주부 김선아(33)씨는 “아침에 출근해서 인터넷으로 자반고등어를 주문하면 퇴근 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장보는 부담을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전국 114개 중 46개 점포에 있는 300명의 피커를 올해 연말까지 420명으로 40% 늘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