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금강산과 비교하며 폄하하지 마라."
언젠가 인터넷 댓글에서 본 글이다.
짙은 안개로 가려서 풍경을 감상 할 수 없는 것을 '곰탕'이라 부르는 등산 은어는 이런 때를 말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새벽 2시 50분 부터 시작한 산행이 대여섯 시간 쯤 지났을까 8시 반경 왕관바위 바로 아래에서 아침을 먹고 막 일어났을 때 순간적으로 시야가 확보되고 하늘이 활짝 열리면서 외설악의 속살과 민낯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절세미인이 수줍어 하며 얼굴을 잠시 보여준 것처럼.
그것은 어릴적 교과서나 잡지에서 보던 금강산의 기암괴석과 다를바 없었다.
옆에 있던 한 여성 대원이 "아이고, 세상에 ..." 라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동안 대청봉, 천불동 계곡, 공룡능선등 법정탐방로를 따라 여러번 설악을 등산했지만 이런 경관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했다.
장도(長途)에 올랐던 울산바위가 설악에 정착했다는 말이 있듯이 금강산의 일부가 옮겨와서 설악에 자리잡은 것은 아닐까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것은 설악에 대한 모욕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보다 더 황홀하고 신비스러울 수 없다고 여겨졌기에 금강산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천상의 석조 공원, 첨탑들의 전시장이요 경연장이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형상은 석가탑, 다보탑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크고 작은 그런 모형 수천 ,수만개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으니 속계(俗界)와는 다른 차원의 세상, 신천지에 잠시 와 있는 듯 했기에 형언 할 수 없는 만족감과 신비,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황홀하기 그지 없었다.
탑처럼 생긴 것만이 아니라 칼날처럼 삐죽 삐죽 솟아 있는 놈들은 또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봐야 하는가.
그것은 신기(神技)가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광경이었다.
신(神)이 되기 전단계가 인간이라고 했지만 인간의 영역과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굳이 설명듣거나 배우지 않아도 눈앞에 펼쳐진 설악의 진면목을 보면서 넉넉히 알 수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느 선배 대원은 전람회 능선을 지나면서 이곳을 20대 때부터 왔다고 했고 또 다른 대원은 모두 스물 번 이상 왔다고 했다.
20대 청춘때부터 60대 중, 후반까지 왔다면 평생을 산과 더불어 살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미인도 너무 자주 보면 질린다던데 같은 곳을 수십 번 오다니 ...
처음에는 그 이유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이제서야 그분들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 것같았다.
산행 시작 후 2시간여 지났을까 비선대와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 능선까지 1.8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본 후 얼마 안가서 갑자기 하산하는 것처럼 좌측 계곡쪽으로 꺾어 들어가서 본격적인 비탐방길(비법정 탐방로)로 접어들었다.
국공(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길을 밝혔던 헤드랜턴도 소등한 채 물이 마른 계곡, 길이 없는 경사진 돌너덜길을 어둠속에 내려 가고 있는데 갑자기 "우두둑" 하는 무엇인가 뿌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앗" 하는 비명과 함께 한 남자가 머리를 정면으로 해서 두번 굴렀다.
뿌러져 두 동강난 고사목이 필자의 발앞에 나뒹굴었고 사고가 난 남자는 바위 옆에 쓰러졌다.
바로 필자 뒤에서 걸어오던 대원이었다. 멀쩡한 나무처럼 서 있는 고사목을 비탈길에서 손으로 짚었다가 썩은 나무가 뿌러지면서 체중때문에 앞으로 고꾸러졌던 것이었다.
피가 난 흔적이 있어서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왼쪽 귀 뒷부분과 팔꿈치의 찰과상에서 난 피였고 머리를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아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두 바퀴 구르는 동안 머리를 바위에 부딪혔으면 대형사고가 발생, 구조헬기를 불러야 하는 등 엄청난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아마 조상이 도와서 목숨을 구하고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튼튼한지 검증되지 않은 수목에 의존 할 때는 반드시 확인 후에 해야 된다는 기본을 무시한데서 비롯된 사고였다.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필자도 수년전 파주 감악산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썩은 나무를 모르고 짚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안다.
수십 미터 높이의 벼랑을 따라 암벽에 붙어서 긴장속에 지나는데
" 풀을 잡더라도 힘을 주어 당기지 말고 그저 몸의 균형을 잡는 정도로만 하세요. 풀을 잡아 당기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라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고 암릉을 기어 오를때는
"두렵다고 암벽에 납작 엎드려 붙어서 오르지 말고 몸을 가능한 암벽에서 띄워 공간을 만들어 시야를 확보하세요."
하면서 주의 사항을 대원들에게 환기시키는 말을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계곡 바닥을 길 삼아 한참을 내려 온 끝에 갑자기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목전에 드러난 풍경에 "와 ~" 하는 함성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감탄한 형제 폭포 상단에서의 조망이었다.
칠십대에 접어 들었거나 가까왔을 것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한 선배 대원이 말했다. "이것 볼려고 지금까지 (계곡을 타고 힘들게 여기까지) 온거야."
이번 산행에서 비탐방길에 접어 든 이후 하산 전 우리 일행이 아닌 유일하게 마주친 사람이 있었는데 이 남자는 폭포 상단 포토 존(photo zone)에서 웃통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알탕을 하고 있었으므로 사진 촬영을 위해 빨리 좀 자리 비켜달라고 아우성 치는 소리가 들렸다.
평화로운 가을 하늘에 잠자리가 날개짓 하듯이 아침 햇살이 반짝이는 심산유곡에 갑자기 헬기가 떴다. 장군봉쪽이었다.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보였지만 십중팔구는 사고등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사히 수습되고 구조되기를 소망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2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고 1명이 중상이라고 했다. 안타깝고 가슴아픈 일이다.
https://v.daum.net/v/20220918141437598
손톱바위, 더듬이 바위, 피카츄 바위, 도깨비 바위등 설악산 전문 작명소가 있는것도 아닐텐데 누가 그렇게 어울리는 이름들을 모두 붙였줬는지..
각자 기기묘묘한 모습을 뽐내며 산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더 오랜 시간 마주 보며 놀고 가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더듬이 바위를 몇 번 더듬어 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피카츄 바위에 올라 연인처럼 포웅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대원들의 흡족한 표정에서 스킨십(skinship)은 연인 사이, 혹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 사이에서만 정서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무생물간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때도 길없는 계곡바닥을 따라 돌너덜길을 걸어 내려왔는데 가장 신경쓰였던 것이 가파른 경사로 인해 언제 뒤쪽에서 낙석이 덮칠지 모르고 걸음을 옮길때마다 마사가 흘러내리는 것과 물기가 묻어 있어 미끄럽기 짝이 없는 돌과 바위들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선대로 이어지는 천불동 계곡을 걸어내려오면서 무박 2일, 12시간 산행을 할때마다 들머리부터 날머리까지의 여정(旅程)이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락(苦樂)과 한계, 위험과 감동, 피할 수 없는 난관의 봉착, 고통과 인내 그리고 극복과 만족감등이 밀물과 썰물처럼 쉴세없이 왔다가며 녹아 있는 여정 말이다.
왕관바위 가는 길에서 마침내 짙은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열린 듯 외설악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전람회 능선을 넘고 피카츄 바위와 도깨비 바위를 지나 하산 하던 중 한 여성대원이 공중부양 하듯이 암릉을 오르고 있다.
필자가 맨 뒤쪽에서 분홍색 모자를 쓴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피카츄 바위
도깨비 바위
형제폭포 상단.
어둠속에 너덜길을 오랜시간 힘들게 내려와야 했는데 이곳에서 필자는 자신도 모르게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염라폭포
아침 햇살이 반짝이는 설악의 창공에 잠자리가 날개짓 하듯 헬기가 떴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워 보였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긴급상황, 즉 사고의 발생을 의미한다. 무사하길 소망했지만 가슴 아픈 일이 장군봉에서 발생했다.
손톱바위
첫댓글 와~
말이 필요 없네
항상 안산하길~~
형님, 잘 계시지요 ?
함께 산행하고 맥주 한잔 같이 하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요즘 핫~~ 근데 넘 사람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