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금이 간 거울
정용화
얼어있던 호수에 금이 갔다
그 틈새로 햇빛이 기웃거리자
은비늘 하나가 반짝 빛났다
그동안 얼음 속에서
은어 한 마리 살고 있었나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지느러미
출구를 찾아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 속을 헤엄친다
넓게 퍼져 가는 물무늬
한순간 세상이 출렁거린다
질긴 가죽도 없이
깊고 넓은 어둠 속에서
너를 지켜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
금이 간다는 것은
또다는 세상으로의 통로다
깊이 잠들어 있는 호수 속에서
물살을 헤치고 길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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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정용화
매서운 기세로 겨울이 당도했습니다
바라보던 눈빛 그대로 두고 이파리 다 떨군 나뭇가지는
그 모습만으로도 춥습니다 하지만 나뭇가지 속에는
겨울이 푸른 어둠으로 꿈꾸고 있음을 믿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시를 품고 살았습니다
문학은 내게 있어 미완성적 허기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시가 되기 위해 기다리던 사물들이 언어를 만나
갇혀있던 존재에게 제 이름을 붙여주고 작고 하찮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면서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내안의 또 다른
나를 다독여야했습니다
언젠가 수필집에서 꿀벌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 꿀벌은 몸집에 비해 날개가 작아서 날 수 없는데
꿀벌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날개짓을 해서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나 역시 꿀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부족한 글에 눈 맞춰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생을 부여해주신 부모님과
인생의 동반자이면서 같은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남편,
예비 시인인 딸 혜미와 함께 당선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십년동안 변함없이 시창작을 지도해주신 배준석 선생님과
안양여성문학회 문우들에게 이 영광 돌리고 싶습니다
날카로운 지적 아끼지 않았던 박남희 선생님과 문학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던 인사동 착시 모임도 꼭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입니다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간절히 날기를 원하기
때문에 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인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신 대전일보사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참된 미학을 지향하는 시쓰기로 보답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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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2편)
거미집
김두안
그는 목수다 그가 먹줄을 튕기면 허공에 집이 생겨난다 그는 잠자리가 지나쳐 간 붉은 흔적들을 살핀다 가을 비린내를 코끝에 저울질 해 본다 그는 간간히 부는 동남쪽 토막바람이 불안하다 그는 혹시 내릴 빗방울의 크기와 각도를 계산해 놓는다 새털구름의 무게도 유심히 관찰한다 그가 허공을 걷기 시작한다 누군가 떠난 허름한 집을 걷어내고 있다 버려진 날개와 하루살이떼 돌돌 말아 던져버린다 그는 솔잎에 못을 박고 몇 가닥의 새 길을 놓는다 그는 가늘고 부드러운 발톱으로 허공에 밑그림을 그려넣는다 무늬같은 집은 비바람에도 펄럭여야 한다 파닥거리는 가위질에도 질기게 버텨내야 한다 하루 끼니가 걸린 문제다 그는 신중히 가장자리부터 시계방향으로 길을 엮고 있다 앞발로 허공을 자르고 뒷발로 길 하나 튕겨 붙인다 끈적한 길들은 벌레의 떨림까지 중앙 로터리에 전달 할 것이다 그가 완성된 집 한 채 흔들어 본다 바람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고 거미집이 숨을 쉰다
입가에 물집처럼
김두안
달이 뜬다
해도 지기 전에 뜬다
나는 어둠이 보고 싶어
내 어두움도 보일 것 같아서
부두에 앉아 있는데
달이 활짝 뜬다
달빛은 심장을 욱신거리게 하고
희번득 희번득 부두에 달라붙고 있다
아 벌리다 찢어진 입가에 물집처럼
달빛은 진물로 번지고 있다
달은 어둠을 뻘밭에 번들번들 처바르고 있다
저 달은 환하고도
아찔한 내 안에 근심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초병에게 쫒겨가는
통제구역인 것 같아서
나는 캄캄한 나를
어떻게든 더 견뎌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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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들이 골라 온 작품은 모두 11편이었다.
응모된 전체 작품 수를 고려하면 뜻밖에도 너무 적은 양이었다. 그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의 시 부문 심사절차가 지닌 독특성이 고려되어야 할 듯하다. 즉 예심위원이 본심을 겸하는 만큼 아예 예심 단계에서부터 본심에 임하는 각오로 작품을 선별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어쨌든 11편을 두고 예심을 치러 아쉽지만 6편을 탈락시켰다.
이여명의 ‘돌을 쪼다’정철웅의 ‘철거민’이유훈의 ‘저수지에서 경전을 읽다’조인호의 ‘알라딘과 코카콜라의 요정’이연희의 ‘장독하나 묻어두고’김두루의 ‘얼룩말’이 그 작품들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 가운데 박희진의 ‘햇쑥’은 인고의 계절을 딛고 선 초봄의 여린 햇살처럼 따스하고도 빛나는 서정성이 돋보였으나 작품을 구조적으로 맵시 있게 갈무리하는 솜씨가 다소 서툴러 보였고, 또 소품에 그치고 만 것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정지현의 ‘직선의 방정식의 일반형’은 곧고도 날렵한 음조를 지닌 의욕적인 목소리와 능란한 은유의 구사가 매력적이었지만, 아직은 저 수사가 소리의 의욕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 듯했다.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데에도 보다 오랜 고민과 세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드린다. 배호남의 ‘고래꿈’은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된 작품이어서 오랜 습작과 훈련의 세월을 읽게 만들었다. 그 점은 함께 출품된 ‘사군자의 꿈’ 같은 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단 한 편만을 뽑을 수밖에 없는 심사위원들의 처지에서는 그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부족해보였다.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오선희의 ‘꽁치’로서, 구조적 완결성에 있어서 발군의 솜씨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실직 가장의 죽음과 구운 꽁치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삶의 엄숙함과 핍진함을 형상화한 이 작품이 당선작이 되지 못한 데에는 그러므로 순전히 운명의 여신의 장난이 작용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실망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시길 각별히 당부 드린다.
당선작인 김두안의 ‘거미집’은 어떠한 과장된 수사나 현란한 말재간도 사양한 채, 차라리 어눌할 정도로 느껴지는 작고도 여린 목소리로 이 삶과 존재의 미세한 결을 한 땀 한 땀 정직하게 발음해내는 섬세한 내면 감각이 단연 돋보였다. 세상의 말들이 제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시의 언어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기회가 되었다.
함께 제출된 ‘입가에 물집처럼’도 저 우직할 정도의 정직성을 높게 사 아울러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드린다.
심사위원= 김기택, 황인숙,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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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개기월식
곽은영
밤의 문이 열렸어요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800Cal 가게 문을 열고 누가 왔어요 저녁을 먹다간 입가 훔치며 정육점 여자는 일어섭니다 반쯤 닫힌 문틈으로 둥근 밥상 가장자리가 보여요 오늘은 개기월식이 있겠습니다 어린 딸 리모컨을 눌러요 채널을 바꿔요
여자는 손님에게 웃어보이지요 붉게 물든 장갑을 끼고 비닐장갑을 또 끼고 차가운 살덩어리 하나 척 베어서 저울에 올려요 200g 중력이 달랑 하늘에서는 쓱쓱 사라지는 하얀 달조각 여자는 능숙하게 고기를 썰어요
엄마 나 쉬 마려 칭얼대는 딸 탁탁탁 도마에 칼을 부딪치며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해요 마지막 한 조각까지 쓸어모아 검은 비닐에 담아 들려 보내요 달랑 떠 있던 마지막 달조각이 사라졌어요
달이 밟고 가는 모든 길에 검은 비단을 깔고 바람은 휙휙 채찍질 구름마저 쫓아버렸어요 이제 무엇을 바치오리까 보셔요 은빛 가면 벗고 강림하신 핏빛 달님 여자는 장갑을 벗고 선지 한그릇 뚝 떠내요 스테인리스 밥그릇 안에 오늘은 핏덩어리 달이 잠겨요
36.5℃ 365일
달님의 체온은 몇 도인가요
엄마 나 정말 쉬 마려 발 동동 구르는 딸 여자는 계집애 팔 잡고 한 볼기 때리고 바지를 까내리고 엄마 한번 쳐다보고 제 오줌줄기 한번 쳐다보고 바람이 보듬어가는 어린 것의 지린내 윤기나는 밤의 비단에 싸서 달님 앞에 내려놓아요 하얗고 새초롬한 아가씨 얼굴로 돌아오는 달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아 여자와 아이가 다시 밥을 먹어요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돌려요 달은 개기월식 궤도를 완전히 벗어났어요 그녀 힐끔, 가게 문을 쳐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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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예심을 통하여 본심에 합류한 시들은 산문성이 농후하였다. 시는 다른 장르의 특징을 시적인 것으로 포용하여 그 장르적 영토를 변용시켜 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 쓰기 방법은 시를 다른 장르, 산문에 복속시켜 버리게 되는 위험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본심 작품들 중에서 세 사람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이운성의 ‘황금나무 밑을 간다’ 외 4편의 시는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시각, 그에 따른 해석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보다는 대상을 설명적으로 묘사하거나 산문적 전개가 거슬렸다.
주영중의 ‘시조새’ 외 6편의 시는 응축된 이미지들의 전개로 하나의 국면을 조성하는 형상화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응모된 여타의 시들에서 읽을 수 없었던 낯설고 신선한 표상을 시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 그러나 시적 언술이 전개되는 중에 이미지가 비약하거나 소홀히 처리되고만 시들이 지적되었다.
곽은영의 ‘양철인형’ 외 5편의 시들은 치밀한 표현, 선명한 이미지, 그 이미지들을 능숙하게 서사적 전개 속에 배치하는 형상화 능력들이 눈에 띄었다.
아울러 응모된 작품들 모두가 완성도가 높고, 수준이 골랐다. 우리는 응모된 모든 시들 중에서 ‘개기월식’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쉽게 합의하였다.
‘개기월식’은 정육점 여자, 살코기, 월식 중인 달과 아이의 요의와 배설이 중첩되거나 흩어지면서 먹고, 먹히며, 배설하는 풍경 속에 숨은, 생의 비의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최승호 시인 김혜순 시인
(예심: 반칠환 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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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이윤설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같아서 뼈째 씹어야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 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 것의 비린 나무 냄새.
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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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활달한 상상력, 시어를 부리는 탁월한 능력”
언어를 통하여 삶을 투시하는 힘, 절제된 표현, 무엇보다 참신한 패기를 기대하며 심사에 임했다. 박민규의 ‘낙산’, 신미나의 ‘부레옥잠’, 한인숙의 ‘마이산’,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남궁선의 ‘폭설’, 김종훈의 ‘국소 마취’는 상당한 시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 박민규와 이윤설의 작품을 최종 심사 대상으로 올렸다.
박민규의 ‘낙산’은 시어를 다루는 솜씨와 객관적 서술력이 돋보였지만 신인의 패기보다는 모법답안이 주는 안정성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은 활달한 상상력과 살아있는 시어를 부리는 능력이 탁월했다. 섬세한 묘사로 주제를 구체적으로 서술해 감으로써 한편의 시로서 스스로를 지탱시키는 힘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과 함께 보내온 다른 응모작들도 두루 수준을 이루고 있어 그동안의 습작의 흔적도 알 수 있었다. 부드럽고 미화된 언어보다 정확하고 정직한 언어가 감동으로 직결된다. 언어 사용자로서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한 시인의 탄생을 기다리는 분들께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라며, 오래오래 깊은 향기를 터뜨리는 시인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시인·문정희·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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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봉제동 삽화
김성철
천둥 번개가 치자 공장엔 정전이 찾아왔다
소나기의 망치질 소리가 시작되면
둥 번개가 치자 공장엔 정전이 찾아왔다
늙은 배선이 어김없이 누전 빙자한 어둠을 불렀다
여공들의 환한 치아가 깜빡깜빡 불 밝히고
재단사 김씨는 하늘위로 쌓아올려진
회색원단 눈길로 만지며 납품기일 손꼽는다
창틀 등지고 불어오는 바람
미싱 선반 위로 펼쳐진 꽃길타고 달려간다
손 맞잡은 여공들 바람의 허리춤을 잡고
꽃길 위로 걸어 들어간다
피지 못한 꽃들이며 줄기 오르지 못한 실밥들이
보푸라기 흔들며 반긴다
페달 밟는 미싱공 꽃들에게 먼저 수인사 건네자
웃자란실꽃들 서둘러 뿌리 걷으며
손에 핀 봉제선 위로 올라탄다
때 묻은 손목, 손목들
산수유열매처럼 붉게 흔들린다
재봉중인 꽃술이 실밥을 흔들었으나
접근금지를 알리는 도안선이 유난히 날을 세운다
작업반장의 기침소리와 함께 기지개 다시 피는 형광등
주파수 맞추는 고물전축, 후후 바람 불어 목청 가다듬고
여공들은 와 하며
공장안으로 퉁긴다
봉제동 수출공장
시동 거는 미싱들 서역 향한 길을 재촉한다
실크로드 사막의 모래처럼 날리는 보푸라기
봉제동 여공들은 실크로드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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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민중의 삶 진전된 감각으로 표현"
예심을 거쳐서 본심에 넘겨진 작품들은 대체로 상당기간 수련과 일정한 수준의 솜씨를 보여줬다. 아직도 시인 지망의 열정을 가진 높은 수준의 후보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응모작들은 최근 시단의 흐름이 반영된 탓인지 전반적으로 크고 무거운 주제보다는 작고 가벼운 일상사를 소재로 한 미시적인 삶의 세계를 천착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짧고 기지가 번득이는 시, 밝고 건강한 시, 서구적 감성의 시 등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까지 당선작으로 검토의 대상이 된 것은 '페르세포네의 동굴' '소설(小雪) 일주일 후, 첫 눈' '봉제동 삽화' 등의 작품들이었다. '페르세포네의 동굴'은 신선한 신생의 감각이 두드러졌으며 '소설(小雪) 일주일 후, 첫 눈'은 깔끔하고 완결된 서정적 구조가 돋보였다. '봉제동 삽화'는 봉제공장 여공들의 건강한 삶의 풍경을 소재로 한 시로서 약간 익숙하긴 하지만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었다.
세 편의 작품은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한결과, '페르세포네의 동굴'은 현실에 대한 밀착감이 조금 부족했으며, '소설(小雪) 일주일 후, 첫 눈'은 전체구도의 시적 완결성에 비해 마지막 결말 처리에 있어서 내적 에너지가 약했다. 결과적으로 '봉제동 삽화'를 이의없이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는데, 그것은 이 시가 기존의 민중시와 달리 새롭게 진전된 감각을 긍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민중시가 지닌 부정이나 분노의 감정을 벗어나서 "여공들의 환한 치아가 깜빡깜빡 불 밝히고" "웃자란 실꽃들 서둘러 뿌리 걷으며/ 손에 핀 봉제선 위로 올라탄다" "실크로드 사막의 모래처럼 날리는 보푸라기" 등의 사실적인 표현들은 노동현장에서의 삶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새롭게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같이 응모한 '거미집'이나 '만물상' 등의 작품도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점 또한 선자들의 결정에 참조사항이 됐다. 당선자가 새로운 민중시의 지평을 걸어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당선자에게는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깝게 탈락된 많은 응모자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신경림·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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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검둥오리사촌에 관한 사유
강경보
서울과학관 바닷새 전시관에서
바닷새 본다 재갈매기 쇠가마우지
고방오리 바다쇠오리 검둥오리사촌
사촌?
검둥오리도 아니고
검둥오리 아닌 것도 아닌 그가
전시관 밖의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제 속에 쟁여놓은 생각은 생각도 아니라는 듯
풍선처럼 부풀린 몸 꿈쩍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응시가
천 년은 된 것처럼 바람 불고
파도소리가 다 들리는데
박제된 내 가슴은 소용돌이 밑으로
더욱 가라앉는다
어찌 아니랴, 오래전부터 나는
검둥오리사촌의 사촌이었으니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었으니 오늘도
저 고요 바깥에서 불편한 이름 하나
알처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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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바뀐 신발
천종숙
잠시 벗어둔 신발을 신는 순간부터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분명 내 신발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길이 덜커덕거렸다
닳아있는 신발 뒤축에서
타인의 길이 읽혔다
똑같은 길을 놓고 누가
내 길을 신고 가버린 것이다
늘 직선으로 오가던 길에서
궤도를 이탈해 보지 않은 내 신발과
휘어진 비탈길이거나 빗물 고인 질펀한 길도
거침없이 걸었을 타인의 신발은
기울기부터 달랐다
삶의 질곡에 따라
길의 가파름과 평탄함이
신발의 각도를 달리 했던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은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는 길,
나는 간신히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었다
....................................
[당선소감]
찾아와 주지 않는 행운을 사려고 꽃집에 갔다. 팔다리가 잘리고 몸통이 삭둑 잘린 행운들이 태연하게 옆구리에서 행운의 싹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뼈아픈 절망의 칼날이 몸통을 수천 번 지나가도 쑥쑥 자라나는 행운,싹은 자랄수록 비쌌다. 한번도 피워보지 못한 너무 큰 행운은 버거운 짐이었다. 행운을 누리고 싶은 간절함과 몇 장의 지폐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동안 행운은 서서히 시들어 갔다. 행운은 아무나 피워 올리는 게 아니었다. 꽃집을 나서며 행운을 꽃피우려던 가지 하나씩 잘라냈다. 머리를 자르고 팔다리를 잘라내고 나니 몸통만 남은 옆구리에서 뜻밖의 행운이 돋아나고 있었다.
시는 내 삶의 희망이며 절망이었다. 희망과 절망의 팽팽한 줄다리기에 지쳐 그만 줄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허탈감과 함께 포만감이 밀려들었다. 먼저 부족하고 모자라는 제게 희망의 줄을 잡게 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죽을 힘을 다 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의 뿌리를 내리게 해 주신 유병근 선생님,언제나 힘이 되어 주시는 이선희 선생님,고맙습니다. 시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문우들에게도 작은 희망이 되고 싶다. 끝으로 말없이 나를 믿어 준 가족에게 이 벅찬 마음을 함께하고 싶다.
* 1957년 경남 고성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
[심사평]
시들이 조금씩 어둡다. 시대가 어둡다고 시가 어두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고,고통 속에서 희망을 읽어내는 변화의 징후를 시에서 엿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품을 읽어 내렸다. 여섯 사람이 쓴 여섯 작품이 마지막까지 뽑는 이들의 손에 남았다. '기억에서 봄을 검색하다','몸빼','유마경변상도','없다,해돋이 광장에는','결혼기념일',그리고 '바뀐 신발'이 그것이다. 모두 남다른 수련 흔적과 작품 세공력을 숨기지 않은 작품이다. 게다가 주변의 구체적 일상에 충실하고자 한 점 또한 공통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천종숙의 '바뀐 신발'을 당선작으로 미는 데에 뽑는 이들은 쉽게 동의했다. 신발은 흔한 글감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흔하지 않는 예각적 체험으로 되돌려 내는 눈매는 오랜 적공의 결과다. 첫 싯줄에서 마지막 싯줄까지 다소 둔탁하지만 거침없는 사색이 제 맵시를 잘 갖추었다. 함께 보낸 작품들의 수준이 가장 고른 점도 장점이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시가 먼저 변해야 한다. 이제껏 이고 다닌 나이와 경력은 지금부터 잊어야 하리라. 신인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모험의 세계로 즐겨 나아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시인 황동규·박태일·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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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집
박순서
언 강을 떠나는 새는
내 눈 속으로 들어와 집을 짓는다
나는 차마 관 뚜껑을 닫지 못한다
하루살이처럼 세상 휘저으며 여태껏 살아
나는 누구의 보금자리가 되었는가
언 강에도 새들의 집이 있고
꽃이 진 마른 대궁에도
봄볕의 집은 남아있다
내 눈 속의 새들아
이제 돌아갈 길일랑 잊어버려,
마지막 웅덩이에 고인 빗물처럼
흐르다 흐르다 내 몸에 칭칭 감기어
안온한 보금자리에 머무름 같이
너 이제 날개를 묻으라
능선을 넘으면 내 무덤이 있다
낯선 바람에 끌려가다
부리로도 울지 못한 네 눈물이 있다
저기, 보아라
저승 가는 길목에 굶주린 까마귀가
까르륵 까르륵
빈 솥에 밥을 푸고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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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차 예선을 거쳐 심사위원에게 넘겨진 작품은 49명의 285편이었다. 3일 동안 꼬박 밤을 지새면서 읽었다. 어느 해 보다도 정성들인 시편들의 높은 수준에 즐거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은행나무에 걸린 곡예사’(부산 박미경)는 소재가 이색적이고 신선했지만 어딘지 설득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았다. 시어 선택이 너무 경직된 탓이 아니었을까. ‘아궁이’(충북 박태순)는 너무 물기 없는 시적 분위기가 당초의 의도를 다 살리지 못한 것 같았고, ‘호박 속의 모기’(경북 권영하)는 주제 설정도 좋았고 잘 읽혔지만 구성이 약간 산만스러웠다. 집중력이 조금 부족했다. ‘풍장’(광주 정철웅)도 좋았지만 ‘수만리에서’가 더 잘 읽히고 애정이 갔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남은 작품이었다. 기승전결중에서 결이 약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집’(서울 박순서)은 그 끈적끈적한 시어들이 끝까지 놓지 않게 했다. 전체적인 시의 구도도 짜임새가 있었다. 그릇, 형식에 알맞는 내용이 잘 맞아 들어간 것 같다. ‘수만리에서’와 두 작품을 놓고 겨루다가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 설득력이 앞서는 ‘집’을 당선작으로 민다. 다른 작품과 달리 절제된 시어로 인하여 이미지가 투명해서 전달력이 뛰어나다. 금년도 응모작품들은 모두 상당기간의 수련을 거친 분들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아직도 표현을 위하여 너무 많은 시어들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것은 주제가 잘 익고 절실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너무 일찍 손댄 것일 수도 있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리다 보니 말이 앞서고 많아졌다. 어느 한곳에 카메라의 초점을 잘 맞춰야만 하는데 이런저런 사물들을 사용하다보니 길어지고 이미지 또한 흐려지고 말았다. 설득력이 떨어지고 나 홀로의 시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감동 또한 약해졌다. 시는 장시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짧아야만 이미지의 투명성이 돋보이고 리듬이 되 살아난다. 그래야만 호소력도 강해진다. 주제에 따른 언어의 경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초부터 카메라의 위치를 잘 선택해야만 한다.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려서 많은 사물을 담으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집을 건축하는데 쓸데없이 많은 재료들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오늘의 시는 눈보라치는 겨울밤의 연탄불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 당선된 분께 박수를,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공부하시다 보면 좋은 소식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박희선<시인>
[당선소감]
내 집은 내 안에 있다.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기를 두드렸다. 첫눈에 알았다. 누가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나는 괜히 먼저 흥분했다.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두 번이나 건넸다.
“ 당선입니다! ” ‘내가 뭘 잘못 듣기라도 한 것은 아닌가?’ 외로운 날들아, 아픈 날들아,
바다가 차오르고 새들이 날아가도 나는 거기 그대로 돌아서지 않았다. 북풍이 아무런 말도 없이 다가와 나를 죄 많은 아이라며 후들겨 팰 때, 눈물샘을 나온 내 눈물이 그 짧은 볼을 못다 흐르고 볼 위에 살얼음으로 남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훑어 내어야 나도 집을 지을 수 있는가.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것은 아직도 내가 그림자 속에 있는 탓인가. 외로웠다. 그러나 별이 떠나간 새벽은 나만의 세상이다. 세상에 가진 것 없는 내게 밤마다 꿈은 풍요로웠다. 꿈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몇 날을 투덜거렸다. 그런 며칠 후, 흰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눈을 밟으며 하얗게 피어오르는 어린 날의 나를 생각했다. 밤새 호롱불을 켜놓고 연필심지에 침을 발라가며 써놓은 원고지를 아버지가 몽땅 불 태워버렸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면 도대체 밥은 뭘로 먹고 살 거냐!’ 이제 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 계시고, 나는 지금도 소년이다. 그때처럼. 부족한 저에게 너무나 큰상을 주심에 송구스럽다.
함께 응모한 모든 문학도들과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다. 길은 여러 갈래로 나있어 흩어질 것 같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 따스함으로 상대를 녹일 수 있도록 말이다.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북어>
기명숙
살점이 뭉텅 빠진 들쑥날쑥한 몸 하나 허공에 걸려있다
쾡한 눈알을 바람이 핥고 지나가자 파르르 눈가의 잔주름이 흔들린다 헤쳐가야 할 길을 또렷이 바라볼수록 굳은살처럼 딱딱한 몸은 야위어간다 그 해 누군가 억센 손으로 그의 내장을 파내고 그 속에 단단한 뼈대를 세웠다 그의 몸 바깥에서 느닷없이 아카시아꽃이 펑펑 지고, 군화자국이 지나간 자리마다 비늘 같이 꽃잎이 소복하게 쌓였다 바람 불어 허공이 저 혼자 우는 밤, 그는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뻣뻣해졌다
스물다섯 해, 맷집 하나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는 북어가 있다 상한 지느러미 곧추세워 풍향계처럼 헤엄치려 하는데 아무도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 큰오빠……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한다 입술을 달싹이는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꽁치>
기명숙
접시 위에 잘 구워진 채 퍼덕거린다 물때가 채 가시지 않은 맑은 눈을 또랑또랑 뜨고 꽁치는 지금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꽁치가 다시 날아가지 못하도록 젓가락들이 날렵하게 접시 주변을 들락거린다 그러다 보니 꽁치의 살과 살 사이 흰 머리카락 같은 가시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참 성가시게 달라붙어 있다 용케도 힘을 나란히 모으면서 촘촘히 박음질한 무명 천 조각처럼 가시는 끄떡없다 이 가시는 바다에서 꽁치의 몸을 찌르던 바늘이었다 바다를 벗어나고 싶은 꽁치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을 때마다 가시는 단단해졌다 가시 때문에 아파서 푸른 물결을 뚫어야 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도망치다 보니 꽁치는 길쭉해졌다 그러다가 꽁치의 몸에 청회색 바다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길게 들어와 박히게 되었다 젓가락들이 바다를 뜯어먹게 놔두고
지금 꽁치는 다시 날아가려고 기우뚱 몸을 한번 뒤집고 있다
반대쪽 살이 통통하다
당선 소감 "미숙한 출발 치열하게 정진할 터"
터널 속을 통과할 때 잠시 겪는 적막감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발길에 채이는 것은 온통 고개숙인 것 투성이고 문득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럴 때마다 일기장 귀퉁이에다 주절거리기도 하고 수신인이 없는 엽서에 한없이 깊고 슬픈 내 사랑을 꾹꾹 눌러 썼다. 삶의 비의가 날카롭게 나를 스쳐가고 문학을 향한 그리움이 세월의 톱니바퀴 속에서 자잘하게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두리뭉실하게 살아버리자, 하며 나를 달래고 있을 때, 기적과 같은 당선소식이 내게로 왔다.
과문한 문장,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인데 시인으로서 명찰을 달아주신 전북일보와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석대 문창과 안도현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었다. 그분들의 존재가 너무 커서 혹 뒤뚱거리다 그림자라도 밟을까 늘 조심스러웠다. 우석대 문창과 꼬맹이들아! 정말 고맙다. 문학캠프 담임선생님, 윤석정 선생님, 두 분의 열정이 무지하고 소심한 내게 불을 지폈습니다. 그 고마움을 오랫동안 잊지 못 할 것 같고, 무엇보다 나를 믿고 지켜봐 준 사랑하는 남편과 내 아이들, 사랑하는 아버지, <북어>의 모델이 된 오빠, 멋진 기행숙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시인의 모습으로 다시 살고 계실 어머니! 당신이 내 몸에 남겨놓은 풍류객의 피가 결국 무대 위로 나를 세우는군요. 친구 황미숙, 그 외에 나를 아껴주는 많은 친구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무턱대고 달아오르는 문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시작한, 미숙한 출발이지만 앞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치.열.하.게.
약력
전남 목포 출생
한양대학교 졸업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
심사평 -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인 수작
예심을 거친 17 사람의 시가 우리에게 넘겨졌다. 한 사람이 대략 3-5 편씩, 더러는 10여 편이나 20 편 가까이 응모한 이도 있었다. 한 사람이 열 편도 넘게 응모하는 것은 응모하는 이에게 아무래도 손해가 될 것 같았다. 그 중에 좋지 않은 게 섞여서 그 사람의 다른 시들도 도맷금으로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 단위가 아니라 넘겨받은 시 한 편 한 편을 독립시켜 읽어보고자 했다. 오늘이 동짓날,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고는 해도, 오후 2시부터 심사를 시작했으니 시간은 우리에게 녹녹한 편이었다.
예선을 거친 작품들이어선지 시들은 그러나 모두 녹녹치 않았다. 선 밖으로 일단 밀어놓는 작품들이 쌓일 때마다, 하얀 실에 검정물이 드는 것을 보고 한없이 울었더라는 墨子 생각이 나곤 했다. 노란 색 파란 색 빨간 색 그 어느 색깔로도 다시는 물들일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검정색이 아니기를 빌면서 우리는 자꾸만 선 밖으로 작품을 밀어냈다. 한 편만 뽑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야속한 선택인가.
「얼룩동사리」, 「어머니에게 ‘잊혀진다’는 말은」, 「날아다니는 꽁치」,「북어」등 마지막 4 편이 그렇게 우리의 선 안에 남았다. 선 밖으로 작품을 밀어낼 때마다 우리는 작품의 흠결들을 주로 화제로 삼곤 했는데 이제부터는 작품의 좋은 데를 서로 들춰보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곳으로 한 곳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얼룩동사리」는 정확한 관찰과 참담한 부성애를 집요하게 부각시키는 전개 솜씨가 돋보였지만, 마지막 부분의 자살한 사람과 얼룩동사리와의 대비가 시적 긴장을 결정적으로 상쇄시킴으로써 시 전체가 사람이 미물만도 못한 거 아니냐 하는 일반론에 함몰되고 만 것 같다.
「어머니에게 ‘잊혀진다’는 말은」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우리는 가장 길게 의견을 나누었다. ‘잊혀지는 것’과 ‘잘 삭아서 숙성되는 것’을 일원적으로 파악하는 시적 착상이 무엇보다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땜질 흔적이 드러나 보이는 구조상의 문제점과 숙성이 덜 된 시어들이 끝내 우리들의 맘에 걸렸다.
「날아다니는 꽁치」와 「북어」는 둘 다 기명숙씨의 작품이었다. 데생이 정확한 화가가 좋은 그림을 오래 그릴 수 있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할 만큼 두 작품 다 섬세한 관찰력이 우선 돋보였다. 「날아가는 꽁치」의 시적 긴장이 유지되는 상상 또한 그런 섬세함 때문에 더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북어」는 북어라는 媒材를 통하여 시대의 그늘과 그 아픔이 우리들의 삶 속에 어떻게 얼룩져 있는가를 가시화하고 있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
선 밖에 빚더미처럼 쌓인 작품들이 내내 맘에 걸렸지만 우리는 이견 없이 이 두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고 신문사를 나섰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 뽑았지만, 가장 좋은 작품이 가장 긴 밤과 큰 축복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팥죽도 못 얻어먹은 동짓날 짧은 해가 무슨 미련이 남아 있는 듯 녹다 만 눈길 위에 머뭇머뭇 기울고 있었다. (이운룡. 정 양)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조각보를 짓다
이은규
그믐, 공명 쟁쟁한 방에 외할머니 앉아 있네요 오롯한 자태가 새색시처럼 아슴아슴 하네요 쉿, 그녀는 요즘하늘에 뜬 저것이 해이다냐 달이다냐, 세상이 가물가물 한다네요 오늘따라 총기까지 어린 눈빛, 오방색 반짇고리 옆에 끼고 앉아 환히 열린 그녀, 그 웃음자락에서 꽃술 향이 피어나기는 어찌 아니 피어날까요 시방 그녀는 한 땀 한 땀 시침질하며 生의 조각보를 짓고 있네요 허공 속에 자투리로 남아있을 어제의 어제들 살살 달래며, 그 옆에서 달뜬 호명을 기다렸을, 아직 色스러움이 서려있는 오늘의 오늘들을 공들여 덧대네요 때마침 그믐에 걸린 구름이 얼씨구 몸을 푸는데, 세상에서 제일 바쁜 마고할멈 절씨구 밤 마실 나왔나 봐요 인기척도 없이 들어와선 그녀 옆에 척하니, 그 큰 궁둥이를 들이대더라고요 그러더니 공든 조각보가 어찌 곱지 않으랴, 조각보에 공이 깃들면 집안에 복인들 왜 안 실리랴, 이러구러 밉지 않은 훈수를 두네요 마치 깨진 기와조각으로 옹송옹송 살림 차리던 소꿉친구 모양새로 앉아서는 말이지요 마고할멈의 넓은 오지랖이야 천지가 다 아는 일, 그 말씀 받아 모신 그녀는 손끝을 더욱 맵차게 다독이네요 한때 치자빛으로 터지던 환희들이 어울렁, 석류잇속 같이 아린 화상의 점점들이 더울렁, 쪽빛 머금은 서늘한 기원들까지 어울렁더울렁 바삐 감침질 되네요 生의 감칠맛을 더하던, 갖은 양념 같은 농지거리들도 착착 감기며 공글리기 되더니, 이내 그 色들色들 어우러져 빛의 시나위 휘몰아치네요 드디어, 우주를 찢고 한 장의 조각보가 첫 숨을 탔네요 금방이라도 선율 고운 장단이 들썩이며 펄럭일 것 같네요 저만치 아직 조각보에 실리지 않은 시간들은 羽化登仙이라 적힌 만장을 펄럭이며 서있네요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마고 할멈, 다 빠져버린 이빨 설겅설겅한 잇바디 내보이며 방짜유기빛으로 쨍하게 웃고요 외할머니야 그 조각보를 가슴에 안고 어린애처럼 좋아라, 술렁술렁 일렁일렁 거리네요 마침 장지문 밖에서 그믐달이 막 玄牝之門으로 드는 때 말이지요.
심사평
토속의 기운 신선하게 느껴져
선자(選者)에게 넘겨진 시편들은 예심을 거쳐 온 작품이라서, 어느 정도의 시적 성취가 고루 엿보였다. 그러나 습작기의 신인들에게서 흔히 살펴지는 판에 박힌 수사나 장식적 언술에서는 모두들 비켜서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검토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들은 이하정의 '합천 가는 길', 이인주의 '모자를 쓴 사철나무', 이은규의 '조각보를 짓다' 등 세 편이었다.
이하정의 시에서는 한 세대 전의 자옥했던 체험이 조밀하게 읽혀진다. 그러나 낡은 화폭을 대하는 듯한 느낌은 화자가 선택한 회상의 어조가 고루한 문맥 위에 얹혀있는 탓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인주의 응모작들이 보여주는 신선한 문체는 평가받을 만하였다. 시화의 선택이나 상상력의 밀도 또한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시의 힘을 한데 모으려는 집중력에서는 신뢰가 떨어진다. 집중력은 작품을 관통해가려는 시적 긴장감의 바탕이자 일관성의 핵심인 것이다.
이은규의 시편에서도 여러 결점들이 눈에 띄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선작으로 뽑힌 '조각보를 짓다' 역시 수다스러운 언사에 필적할 만한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현빈지문(玄牝之門)'처럼 공연한 현학이 이 시에 무슨 보탬이 되었는지는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노자(老子)에 기댄 이 구절은 '만물을 낳게 하는 근원의 길'을 가리키지만, 그런 어사가 아니더라도 모성(母性)의 주술적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살려낼 수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겹겹의 말에 감싸인 '마고(麻姑) 할미'와 같이 토속에의 생식적 기운이 이 시의 신화적 토대가 되어 작품의 일체감을 어느 정도 건사해내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함께 공감하였다. 당선을 축하하며 거듭 정진하길 당부한다. 김명인·오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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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시는 달게 받아야 할 고통이자 희열
추사의 '사난결(寫蘭訣)'에는 "인품이 고고특절 하여야 화품도 높아지는 것인데 세인이 공연히 형상만 같이하기에 애를 쓰거나 혹은 화법으로만 꾸려가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 또 비록 9천 9백 99분까지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나 9천 9백 99분까지 갔다고 난이 되는 것이 아니요, 그 9천 9백 99분까지 간 나머지 1분이 가장 중요한 난관이니 이 난관을 돌파하고서야 비로소 난을 그린다 할 것이다"라는 크고 깊은 문장이 나온다.
화(畵)의 길과 시(詩)의 길은 일맥이며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추사가 "나머지 1분의 경지는 누구나 다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하자면 인력으로 되는 경지가 아니요, 그렇다고 인력 이외의 것도 아니라"고 한 그 1분의 경지는 내겐 먼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그 미래를 위해 이제 비로소 9천 9백 99분까지의 험한 행로가 눈앞에 준비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게 시는 달게 받아 모실 고통이자 희열이고, 또 푸른 미래이다.
시인으로 살아가는 고통과 희열을 늘 몸소 보여주시는 고재종 선생님과 남도의 미풍으로 다가오는 광주대 문창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 천금같은 내 귀인께도 어여쁜 절 올리고 싶다. 아울러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내 시가 세상 첫 숨을 타도록 도와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와 함께 부지런히 쓰겠다는 다짐을 올릴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2006년 전북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숭어/심인숙
한밤, 봉숭아꽃 가득한 마당에서 숭어들이 뛴다. 다닥다닥 붙어사는 셋방 여인들이 마당 수돗가에서 목욕을 한다.
청상과부 선아 엄마, 집 나간 서방을 기다리는 애경엄마, 그냥 이모라 불리던 사투리 걸죽한 부안댁이다.
아침이면 식당이나 병원, 공사판으로 마른 꽃씨처럼 흩어졌다가 밤이되면 물오른 입을 들고 돌아오던 여인들. 한바탕 얘기꽃을 피우며 한 겹씩 옷을 벗고 있다.
빨래줄에 걸린 이불호청사이로 달빛이 든다. 보초세운 어둠이 슬쩍 돌아서 있다. 좁은 수돗가에서 미끈한 숭어들이 비늘을 떼고 있다.
찬물을 끼얹을 때마다 저절로 한숨같은 비음이 흘러나온다.
지느러미처럼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깔깔, 허공을 질러 담을 넘어 간다. 숭어들이 별빛을 따라 밤하늘을 헤엄치고 있다. 몰래 숨어든 달의 이마가 붉게 물들었다.
시 심사평 -삶의 단편 생생한 이미지로 형상화
287편의 응모시 중 여덟 분의 작품이, 72편의 시조 중 일곱 분의 작품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왔다. 모든 작품들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 이들 중 한 작품만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신문사측에서 당선작을 뽑아 통보할 때까지 응모자의 이름은 물론 성별, 직업, 나이 등 어떠한 정보도 일체 제공하지 않아 작가와 작품세계와의 최소한의 상관관계 조차 전혀 가늠할 길이 없었다.
문학이 상상력의 소산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특히 시에 있어서는 작가의 삶과 생각이 녹아들기 마련인지라 과연 소중한 작품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방침이 그러한지라 오직 응모된 작품 그 자체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작품의 구조, 시적 형상화, 어휘 구사력 등 작품의 철저한 해부와 분석에 치중하게 되었다. 작가에 대한 이해는 없었으나 어떠한 예단이나 선입견 없이 작품에만 매달렸음으로 오히려 개운한 느낌도 든다.
이미 말한 것처럼 예심을 거쳐 온 모든 작품들이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어 장고를 거듭해야만 했다. 시조 부문에서 정행년씨의 ‘바다, 숨 고르다’와 송필국씨의 ‘현애’ 등은 오래 시선을 머물게 한 작품이었으며 김자연·황호정·박선양씨의 작품들도 기성작가 못지않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바다, 숨 고르다’에서 “지난 밤 그 상머리 기름진 언어들도/ 월포리 산자락 끝에 변명처럼 스러진다”는 절창이었다.
시 부문에서는 ‘숭어’·‘달의 각’ 등을 응모한 심인숙씨, ‘덕지덕지’·‘청개구리’ 등을 응모한 임상훈씨, ‘염전여자’·‘숯 굽는 마을’ 등을 응모한 김민규씨, ‘가면의 표정’·‘산티아고의 바다’ 등을 응모한 이현수씨, ‘농경’·‘패랭이꽃’ 등을 응모한 한인숙씨 등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빼어난 시적 직관력과 상상력을 전개하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확고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숭어’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숭어’는 한마디로 읽히는 작품이다. 어떠한 이념의 색깔이 칠해지지 않은 싱싱하고 질박한 삶의 단편이 선명한 이미지로 생명감 넘치게 재현되고 있다.
시 구조도 유기적으로 잘 짜여있어 시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삶의 한 구체적 순간을 예민한 감각과 관찰로 포착하여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의 능력에 기인한다. 비록 신산한 삶이지만 수돗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의 담을 넘는 웃음소리는 우리에게 건강한 관능과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여인들을 비유하는 '숭어'는 물론 작품 도처에서 나타나는 여러 비유들도 능숙한 솜씨다. 작가의 다른 작품 ‘달의 각’도 만만치 않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부대낄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그 속에서 존재의 가치를 캐내는 역동적인 시를 계속 기대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기회를 놓친 분들께는 격려를 보낸다.
<호병탁 문학평론가·문학박사, 정순량 시조시인·우석대 대학원장, 김 영 시인·호서대 겸임교수>
심인숙 시 부문 당선소감
마감 이틀을 남기고 폭설의 중심부로 특급우편이 달려갑니다. 도착이 어렵다는 우체국 직원의 염려를 넘어 한 마리의 말이 눈발 속을 헤치고 숨 가쁜 제 詩를 넘겨줍니다. 따가닥 따가닥, 제 귀를 며칠 전부터 간질이던 말발굽소리!
오늘에야 어렴풋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어둠이란 녀석에게 질질 끌려 다녔습니다. 빛도 없는 터널 속을 혼자 헤매고 다녔습니다. 허공에 외쳐대는 목소리는 늘 어둔 땅 밑으로 묻히고 엄습해오는 추위와 불안과 조급함을 몸에 달고 출구를 찾는 일.
그때마다 몇 개의 창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햇살의 등을 훔쳐보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달래곤 했습니다. 최면은 이럴 때 필요한가요.
반신반의하며 걷던 제가 햇빛 가까운 출구로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지루한 어둠 한 끝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하늘을 바라봅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려 주위를 둘러봅니다. 빛나는 햇살과 하얗게 눈 덮인 저 능선, 깊은 하늘의 눈매와 하나가 되어 서 있습니다.
이제 저는 시의 출발선을 딛고 나아갑니다. 희망이란 단어 하나를 움켜쥐고 고통을 꿈꿀 수 있습니다. 제 이름 석자에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합니다.
설움도 많이 주시며 무지한 저를 이곳까지 끌어주신 맹문재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중대 예술대학원 문창과정 지도교수님들께도 일일이 감사드립니다.
고영 선생님과의 인연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중대 동인들과 선후배 여러분들, 시울림회의 탄탄한 격려와 애정에도 감사드립니다. 날아오르는 가오리들과 알 굵은 고구마줄기에도 따뜻한 사랑을 전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엄마! 말없이 믿어주는 한 남자와 자랑스럽게 전역하게 되는 아들에게도 돌격과 함께 사랑한다고 외쳐봅니다. 부족한 저에게 빛 한 줄기 성큼 내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1953년 인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졸업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눈발 날리는 마당/ 김운영
눈발 날리는 마당을
보고 있으면요
마른 저녁도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마는데요
발목 잃어버린 눈발은요
땅에 닿지도 못하구요
약한 한숨처럼 담벼락 위
아버지의 여윈 어깨 위
에도 말이지요 관절
절룩거리면서 아버지 뒤란으로
가시더니요 불쏘시개 송구나무
가마솥 물 끓이는데요
등겨같은 닭털이 공중에
몇 날아다녔나요?
오래오래 눈발이 아버지
빈 어깨에 배꽃처럼 쌓이면요
오래오래 가마솥 연기
마음의 暴政(장작불) 몸 밖으로
서서히 증발되고 있으면요
아버지 사발에 담아
안방에 어머니에게요
아버지 붉은 동맥 모세혈관 풀어
어머니에게 비는
견고한 용서
닭백숙의 용서를 말이지요
살과 뼈 허물어지는 解産처럼
맑은 국물 눈물 말이지요
어머니가 밤새 소리없이
우시는 날에는요 다음날
말없는 닭백숙 한 그릇
눈발 날리는 마당에서 말이지요.
[불교신문 2193호/ 1월1일자]
“먼 길을 돌아 詩의 섬으로 귀환”
시 당선소감
음모에 빠졌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당선되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아무래도 큰일이 생기고야 말았다는 두려움이, 이제 어찌해볼 수 없는 공모의 한 가운데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불길한 예감이 한동안 마음을 짓눌렀다.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공포와의 대면이었던가. 시를 짓지 않기 위해 너무나 많은 길들을 우회했다. 잘도 피해왔다. 시 근처에 집 짓고 시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면서 한 평생을 그냥 그렇게 살려 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다시 이 섬으로 돌아오게 되었단 말인가. 온갖 전쟁과 모험 속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귀환한 오디세우스처럼. 내 몸에는 시가 할켜놓은 단 한 개의 생채기도 남아 있지 않다.
시 쓰기를 위해 뜬 눈을 새운 저 절망의 밤조차도 등록되어 있지 않다. 내 몸은 문학이론으로 적절하게 소독되고 논리로 증류되어 있을 뿐이다. 사이보그처럼. 내 혈관 속에 아직도 20대에 갇혀 있던 그 시의 피들이 웅웅대고 있단 말인가. 오 맙소사. 당선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실어증에 걸려 버리고 말았으니.
그러니 음모는 성공한 것이 아닌가.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어떤 언어도 없다. 혀가 잘린 것 같은 겨울 아침, 나는 새로 시작할 것이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 두려운 시쓰기에 대해 크나큰 용기를 주신 것이다. 무엇보다 시적 감수성을 키워주신 모교 은사 김현자 선생님, 이어령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늦된 나에게 다시 시를 써보라고 권한 어느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인생에서 또 하나의 매듭점을 맺게 해주셨다.
고통과 희망이 묘약처럼 입 안에서 함께 섞이고 있다. 열심히 써서 그 모든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김운영(본명 김용희)
[불교신문 2193호/ 1월1일자]
낮고 따뜻한 언어의 큰 감동
시 심사평
우리의 모국어는 신춘문예가 터뜨리는 눈부신 불꽃으로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올해 불교신문에 응모된 시와 시조는 오랜 전통을 가진 일간지들과 응모편수에 있어서나 수준에 있어서 당당히 맞설 만큼 풍작을 이루고 있었다. 신문의 이름 탓인지 산사를 소재로 삼았거나 불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쓴 역작들이 비교적 집중되고 있는 것이 한 특색이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향가에서부터 고려의 선승들의 게송(偈頌)을 타고 내리던 이 나라의 시의 강심에는 불교의 정혼이 흐르고 있던 것이 아니겠는가.
반면에 한 때 시류에 얹혀가던 공허한 시대와의 불화 또는 어두운 그늘의 풍경을 그리는 시들은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체온이 느껴지는 낮은 감도의 언어가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지름길이다.
당선작 김운영의 ‘눈발 날리는 마당’은 나와 먼 거리에 있는 낯선 풍경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이거나 바로 내 이야기가 되는 소박한 정서를 고른 숨결로 써내려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마른 저녁도 입다물어’‘발목 잃어버린 눈발’같은 말의 버무림이라든지 눈발이 가마솥에 다아 녹아가듯 한 잎 한 잎의 낱말들이 작은 슬픔을 데리고 마침내 읽는 이의 마음을 저며 내고 있는 것이라든지, 글감을 집어내기에서부터 시의 매듭을 짓기까지 탄탄한 공법이 다른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힘이 되었다. 이대로 한 걸음씩 쉬지 말고 나아가시기를 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시와 시조를 분리해서 모집하지 않는 까닭에 시조 부문의 당선자를 내지 못한 점이다. 시조에서도 역작이 많이 올라왔는데 특히 ‘금동반가사유상’은 역사적 사물을 오브제로 하여 깊이 있게 천착하고, 시조만이 갖는 특유의 운율과 형식의 묘미를 잘 살렸으나 자유시의 거센 물결과 겨루다 마지막에 밀렸음을 밝힌다. 이밖에도 ‘해발 60m의 굴뚝새’ ‘껍질경전’ ‘보이차 흔들리다’ 등이 끝까지 당선권에 맴돌았음을 밝힌다. 이근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