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도서, 권장만하다 끝나(2001/9/10)
독서교육은 권장도서 목록을 나눠주면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에서 권장도서는 `이름난 책'과 거의 같은 말로 쓰인다. 그러나 학교 독서교육에서 권장도서를 단순히 이름난 책으로만 채우면 실패하기 쉽다.
교사들은 권장도서를 운영하면서 실패한 사례로 <백범일지>를 꼽는다. 최근 일부 중학교에서 <백범일지> 읽기대회를 열었는데, 50년 이상의 세월을 건너뛴 만큼 이 책에 공감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고 한다. <백범일지>가 좋은 책이고 꼭 읽어야 되는 책임은 분명하지만, 책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한테 무턱대고 권장하다 보니 오히려 외면당하는 상황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권하는 책은 `재미없는 책'이란 생각이 굳어지고,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게 된다. 광동종합고 송승훈 교사는 “올바른 권장도서 목록은 중고생 독서교육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열쇠”라며 “단순히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와 문화적 환경을 이해하고 책을 골라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학생용 권장도서 목록은 `풍요 속의 빈곤'에 처해 있다는 평이다. 각 시·도 교육청과 한국간행물윤리위 등에서 목록을 내고 있지만 교사들은 아이들 수준을 너무 높게 잡는다고 느낀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http://club.dreamwiz.com/elibrary) 등 교사 모임에서 새로운 목록을 만들고 있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서울사대 부설여중 서미선 교사는 “권장도서 목록이 우리 아이들 절반이 못 읽는 책들로 채워진다”며 “교사들이 필요한 것은 상위 10%를 위한 것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목록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목록을 다루는 태도도 중요하다. 같은 책을 읽히는 `필독독서'라는 개념보다는 아이들 각각의 개성과 체질에 맞는 다양한 분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싫은 아이, 집이 싫은 아이, 호기심이 많은 아이, 똑똑해 지고 싶은 아이 등 수준과 정서에 맞게 풍부하게 제시해 스스로 고르게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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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점검 7차 교육과정>교과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200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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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전에 버금가는 권위를 누렸던 교과서는 이제 `학습자료'일 뿐이다. 다뤄도 좋고 다루지 않아도 그만이다. 제7차 교육과정 교사용 지도서에도 “단원 학습목표를 달성을 위해 교과서 이외의 자료 사용도 가능하다는 열린 교과서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새 교과서를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교사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다른 교과자료가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과서는 여전히 `진도를 나가야 할'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일부 교사들이 갑갑함을 호소하는 대목은 문학교육 분야이다. 교육 목표를 국어 사용 능력의 향상에 두다보니 문학 작품은 이를 위한 도구일 뿐이고, 이에 따라 앞뒤가 잘리거나 축약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 교과서 체계상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 국어교과서는 다양한 읽을거리를 원문 중심으로 모아 놓은 자료집이라기보다 학습활동을 전제로 한 연습책(워크북) 형태를 띄고 있다. `네모칸에 낱말 넣기' 등 연습활동 중심의 책이다.
만약 자료를 풍부하게 싣다보면, 혹시 책이 두꺼워져 학습부담이 늘어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지금 <읽기>, <쓰기>, <말하기·듣기> 등 분철된 3권의 책을 합한 것에 비해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교대 황정현 교수(국어교육과)는 “좋은 글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국어수업이 되도록 교과서의 형태가 바뀔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3권으로 분철되면서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현 교과서의 지루함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 선정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눈높이'가 고려돼야 한다. 황 교수가 서울의 초등학생 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교과서에 싣고 싶은 동화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4~6학년 아이들의 대답에 동화작품은 거의 없었고,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동백꽃>, <소나기> 등 소설이 주류를 이뤘다.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성숙한 아이들은 이제 동화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학년별 기준도 정립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출판사나 단체에서 도서목록을 발표하지만, 대부분 엄정한 연구 없이 심정적인 차원에서 선정된 것이다. 지난 98년부터 3년동안 <국어-읽기> 교과서 집필진에 참여했던 서울 오륜초등학교 이경화 교사는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일정한 기준이 없어 무척 힘들었다”며 “아이들 발달단계에 적합한 문학작품에 대한 연구가 정책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현행 국정교과서 체제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춘천교대 김상욱 교수(국어교육과)는 “오직 한 종류만 나오는 국정교과서는 `불편부당'의 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꽃 이야기와 같은 보편적인 작품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교과서가 나와 교사들이 아이들의 처지와 수준에 맞게 독자적인 학습자료를 짤 수 있도록 자유발행제가 실현되야 한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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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어린이 열악한 독서환경“책읽기가 괴로워요” (2000/04/27)
4월 어느 날 오후 4시. 화창한 봄날에 엄마를 따라 나선 은혜(6)와 선혜(4)는 신이 났다. 도서관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집을 나서는 것도 좋았지만 동화책을 읽어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두 자매는 더욱 흥이 났다. 10분을 걸어 도착한 고양시립마두도서관. 막상 도착해보니 이미 도서관 안의 어린이도서실은 아이들로 붐볐다. 어린이도서실의 좌석 수는 36석. 남은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서가 여기저기를 돌아보던 아이들은 각각 그림책과 만화책 한권씩을 골랐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서서 듣던 선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가 아프다며 보채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찬 시멘트바닥에 세 모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엄마는 동화책 읽어주는 소리가 다른 어린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눈치가 보였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게다가 선혜는 바닥이 차갑다며 점점 더 보챘다.
결국 동화책 한권을 채 읽어주지 못하고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나와야 했다. "어려서부터 도서관 분위기를 익혀 주려고"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의 노력은 이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어린이도서관에 가도 바닥에 앉아 책읽어
지난해 5월에 개관한 고양시립마두도서관은 인구 약 40만의 일산에 유일한 도서관이다. 그나마 어린이도서실을 따로 갖춘 전국에 몇 안 되는 도서관 중 하나이다. 약 1년 만에 어린이책만 8천여권을 확보했다. 역사가 6년에 이르는 인근 고양시립행신도서관에 육박하는 장서 수준이다. 나름대로 고양시로부터 집중투자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서는 단 한명뿐이다. 원래 정해진 사서 인원은 3명이지만 개관 때부터 지금껏 사서는 이은진씨 혼자뿐이다. 지난 1년 동안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만 3만여권. 일일이 책을 읽어보고 고르기는커녕 목차를 분류하고, 입력하기도 벅찬 형편이다. 이처럼 사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열람실 관리는 행정직 출신인 강화수 주사가 맡고 있다. 마두도서관 어린이도서실에서 대출.반납되는 책만 해도 주말에는 평균 800여권, 평일에는 300여권이다. 게다가 그는 종합열람실 관리도 함께 맡고 있다. 공공근로하는 사람들이 보조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책을 제자리에 꽂아주고, 쓰러진 책을 세우기에도 바쁘다"는 강씨의 말이 결코 엄살만은 아니다.
비단 마두도서관뿐 아니라 전국 어느 도서관이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이책 전문사서를 두는 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행정적인 구조상 전문사서가 클 여지가 거의 없다. 국가가 전문사서를 키우겠다는 의지와 계획 없이 그저 행정적 필요에 따라 사서들을 배치하는 탓이다. 하지만 독서습관이 길러지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독서지도를 해줄 어린이책 전문사서는 꼭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문적 안목 없는 일반사서들이 예산부족으로 그나마 빈약한 어린이도서실을 불필요한 책들로 가득 채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질 낮은 전질류도 쉽게 발견되고, 어린이책의 분류체계도 매우 무성의하다. 문학, 사회과학, 순수과학 등 어른들 책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분류체계에다, 저학년과 고학년 구분이 없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신간을 따로 모아놓지 않은 도서관도 허다하다.
적절한 어린이책만 구비했다고 공공도서관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젠 도서관이 책읽기 모임을 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지역 문화공간의 구실을 해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전문서점도 위기 "공공성 인정해야 한다"
이런 실정에서 비록 일부지역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곳이 있다. 일산의 어린이 전문서점 "동화나라"도 그 한 예이다.
이 서점은 지난 96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책읽기 모임", 고학년을 위한 "어린이 영상모임" 등을 꾸준히 지속해오고 있다. 특히 책읽기 모임은 일산에 사는 동화작가들이 직접 어린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는 "빛그림 구현동화"도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그림책을 15컷 정도의 필름으로 옮겨 대형화면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생생한 동화구현도 곁들여진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을 위한 배려도 있다. "동화 읽는 어른모임"에 무료로 공간을 제공해 준다. 이런 프로그램과 행사를 위해 동화나라는 서점 지하에 따로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다. 동화나라 정병규 대표는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이 제구실을 하게 될 때 어린이책 전문서점은 그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만이라도 공공성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이 제구실을 다하기 전부터 어린이 전문서점은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겨울까지만 해도 전국 90여개에 달하던 어린이 전문서점이 최근 70여개로 줄어들었다. 대형할인마트의 책 가격할인 공세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속속 생겨난 대형할인마트 안의 서점들은 20~30%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팔고 있다. 자금력을 앞세운 이들은 어린이도서시장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대형할인마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할인된 가격 이상의 마진율을 보장해야 하는데 생산비를 많이 들여 책을 공들여 많드는 출판사들에게는 불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유통마진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렇다 보니 공들인 책은 마진율 보장이 힘들어 대형할인마트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결국 대형할인마트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이 선호하는 책은 낮은 비용으로 출판한 책이나 손쉽게 만든 번역서적이 대부분이다. 설사 양질의 어린이책을 갖추어 놓더라도 이 책들은 서점 한구석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구색 맞추기에 그치는 것이다.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재미마주 이호백 대표는 "외국에서는 양질의 어린이책을 보호하기 위해 할인되는 책의 종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가격파괴가 계속된다면 공들여 어린이책을 만드는 작은 출판사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개탄한다. 가격파괴가 일반화되면 누가 공들여 좋은 책을 만들겠느냐는 얘기다. 그저 빨리, 많이 찍어낼 수 있는 책만 양산되는 상황이 벌써부터 우려되고 있다.
가격할인이 소비자들에게 꼭 좋은 것도 아니다. 할인이 대부분의 서점에서 관례화되면, 출판사는 할인된 가격을 미리 염두에 두고 정가를 매길 수밖에 없게 된다. 정가를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할인이라는 허울을 쓴 채 부담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좋은 책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책의 할인을 특정기간에만 제한하거나, 할인품목을 엄격히 정하는 규제도 한번쯤 생각해 봄직하다.
책을 사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정서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이런 점에서 대형할인마트 내 서점의 풍경은 좀 메마른 듯하다. 아이들만이 남겨진 공간. 그 시간에 부모들은 쇼핑을 하고 있다. 이 책 저 책 뒤지던 아이들이 지루해질 때쯤 되면 부모가 데리러 온다. 아이가 책을 사달라고 조른다. 마치 라면이나 생수를 사듯 책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사주는 부모들. 매장에는 아르바이트 학생들뿐, 책에 대해 식견을 가진 사람이 없다. 어린이 전문서점에서처럼 조언을 해줄 사람은 더더욱 없다. 이 대표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라며 "사람들이 대형할인마트에서 비슷한 책만 사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한다.
양서 출판 가로막는 대형매장의 가격파괴
이처럼 어린이 독서환경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다. 대형할인마트의 가격파괴와 같은 무분별한 시장논리 속에 어린이책마저 내맡겨진 탓이 크다. 최소한 어린이책에 관한 한 공공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량도서를 선별하고, "보호"하는 방패막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은 점점 더 적어질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아직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그 공공성의 여백을 메우던 어린이 전문서점마저 점점 줄어드는 현실. 그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신윤동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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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참고서 할인판매, 그 더러운 사슬 (2000/04/13)
올해 둘째를 중학교에 보낸 주부 김아무개(39.서울 도봉구 수유동)씨는 얼마 전 아이에게 들어가는 참고서 비용을 계산해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필요한 참고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10여개 과목의 자습서에 문제집을 더해 모두 20여권. 한권당 6천~9천원씩 하는 참고서를 다 마련하다보니 15만원이 훌쩍 넘었다. 지난 2월 새 학기를 앞두고 고등학교 다니는 첫째 아이의 참고서 비용으로 이미 30여만원을 지출했던 김씨로서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이런 사정은 김씨를 비롯한 대부분 학부모들이 다르지 않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참고서를 15~30% 싸게 파는 할인매장이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싼 집"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할인매장은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는 구마다 대여섯개씩 생겼고 부천과 인천 등 수도권 몇몇 지역에서도 꾸준히 늘고 있다. 참고서 값 말고도 학원비 등 사교육비로 커다란 부담을 안고 있는 학부모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총판 마진 폭 서울과 지방이 달라
그러나 즐거워만 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다. 할인매장의 성업은 한편으로 "어떻게 정가보다 싸게 팔 수 있을까" "참고서의 정가에 거품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는 참고서 시장의 유통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참고서의 공식 유통경로는 출판사<>총판<>서점이다. 출판사는 참고서의 생산가(마진 포함)에 영업활동비, 총판과 서점의 마진 등을 더해 정가를 결정한다. 그리고 출판사의 몫을 빼고 전국의 총판(대리점)에 책을 공급한다. 일반적으로 서울지역의 경우 출판사는 정가의 65%로 책을 공급한다. 총판의 마진은 정가의 10%이고, 서점은 25%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내려가는 책의 공급가는 65%에 훨씬 못 미친다. 출판사와 참고서 종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정가의 40~50%선에 머문다. 심지어 35%에 내려보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과 지방의 공급가가 달라지는 이유는 바로 일선 학교에 대한 "부교재 채택영업" 때문이다. 서울은 채택영업을 위해 출판사가 직접 영업사원을 두고 활동을 벌이지만, 지방 총판은 자체적으로 사람을 쓴다. 출판사는 지방 총판의 영업비 부분을 보전해준다는 명목 아래 그만큼 공급가를 낮춰준다. 결국 두 지역 공급가의 차액인 정가의 15~30%가 바로 채택영업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부교재 채택을 위한 영업비용으로 들어가는 만큼 채택비리만 없어진다면 상당부분 줄일 수 있는 "거품"으로 볼 수 있다.
지방 총판은 서울에 되팔아도 마진율 비슷
할인매장이 정가보다 15% 이상 싸게 팔 수 있는 구조도 이런 "거품" 때문에 가능하다. 지방 총판이 영업활동 비용을 한푼 쓰지 않고도 마진을 챙겨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즉 서울의 할인매장 업자들에게 10% 안팎의 마진으로 되파는 것이다. 할인업자는 만약 50%로 지방에 내려간 책이라면 해당 총판의 마진 10%를 떼주더라도 60%에 가져올 수 있다. 할인매장은 이렇게 사온 책을 20% 할인해도 20%의 마진이 남는다. 비록 서점의 마진보다는 작지만 매출이 많기 때문에 수지맞는 장사가 된다. 서울 강남의 할인매장과 동대문의 할인매장 등은 대표적인 경우다. 거의 모든 출판사의 참고서를 비치해 높은 할인율로 판매하고 있다. 이들 업소 주변은 평소에도 붐비지만 새 학기 때면 교통경찰이 나서 차량 정리를 해줘야 할 정도로 성업중이다.
출판사의 한 영업사원은 "출판사로서도 지방으로 내려간 물건이 다시 서울로 올라와 팔리면 서울의 해당지역 총판이 피해를 입는 것이어서 골치를 썩는다"며 "하지만 200개 넘는 지방 총판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책을 막을 도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서점연합회(서련)의 한 관계자는 할인매장의 성업은 참고서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교재 채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방 총판의 책이 서울로 역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채택" 과정이 존재하는데서 비롯된다. 지방 총판은 학교에서의 채택을 전제로 싼 값에 물량을 받는다. 싼 만큼 영업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채택에 실패하면 판매량은 공급량에 훨씬 못 미치게 되고, 나머지는 반품해야 한다. 하지만 현금 순환을 위해 총판은 반품 대신 낮은 마진으로라도 할인매장에 팔아버리는 것이다."
서점계는 "부교재 채택"과 관련해 카르텔화한 지방 총판이 비리를 부추기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방은 서울과 달리 경계가 명확해 카르텔화가 쉽다. 실례로 경기도 안양시와 인근 군포 의왕 과천시는 총판업계를 한 집안이 장악하면서 하나의 영업권으로 통합한 지 오래다. 안양권에서는 참고서가 한 학교의 교재로 채택되면 판매량 산출이 거의 확실하게 나온다. 안양권 학생이 참고서를 사러 서울로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 총판은 부교재 채택에 열성적이게 되고, 채택시에는 확실하게 학교쪽에 "보답"하는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부교재 채택의 재량권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돈을 갖다주는 카르텔이 존재하는 한 비리구조는 사라지기 힘들다. 이런 카르텔만 해체된다면 학생들은 채택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만큼 싼 값에 책을 살 수 있고, 출판사들도 좋은 책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게 될 것이다." 안양시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신아무개씨의 제언이다.
학원은 더 심각하다
참고서 채택에 따른 가격의 거품은 학교뿐 아니라 학원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 최근 보충수업이 줄어들면서 방과후 초.중.고등학생들의 발길이 학원가로 몰리자 출판사들은 학원영업 전담팀을 구성해 채택 영업에 나서고 있다. 아예 기존 총판과는 별도로 학원에만 참고서를 공급하는 학원전담 총판을 따로 두는 출판사도 생겨났다. 참고서 판매의 비율도 서서히 학교영업에서 학원영업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경기도 부천에서 학교.학원 영업을 같이 하는 한 총판은 올 매출 목표 10억원 가운데 학원 매출을 6억원으로 잡았다.
"요즈음 들어 학원 영업이 강화됐다. 새로운 책을 기획하기도 하고, 영업사원도 늘렸다. 지역도 세분했다. 학원용 관리프로그램을 CD로 만들어 제공하기도 하고, 체육대회 등 학원연합회 행사에 협찬을 하기도 한다."( 출판사 영업사원)
문제는 학원의 경우 서적 판매상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 소매단계인 서점의 마진율이 필요없는데도 정가의 50~70%의 가격에 책이 공급된다는 사실이다. 출판사가 학원의 채택 대가로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 학원 관계자가 퇴직 뒤 서점을 차린다며 안양시 서점조합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 학원은 40%에 참고서를 공급받는다는 얘기였다. 그도 서점으로 들어오는 공급가가 75%라는 점을 알고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안양시 서점연합회장 신우진씨의 경험담이다. 출판사는 매출을 올려서 좋고, 학원은 학생들에게 판매한 차액을 남길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학원들은 싸게 공급받은 책을 학생들에게 약간 싸게 팔기도 한다. 아예 공짜로 지급하는 학원도 있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은 수강료에 부교재 가격이 포함된다. 또 출판사들은 학원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일반 서점에는 공급하지 않는 말 그대로 "학원용" 참고서를 생산하기도 한다.
"시중 교재를 그대로 쓰면 차별성이 없어진다. 그래서 학원용이 필요하기도 하다. 출판사와 학원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보통 정가의 60~70% 가격으로 들어온다. 영업사원이 처음 왔을 때는 영역확보 차원에서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학원들은 이렇게 들어온 참고서를 정가나 또는 조금 싸게 학생들에게 판매한다." 서울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씨의 말이다. 결국 학교 부교재 채택과정에서 발생하는 참고서의 가격 거품이 학원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서점계는 할인매장과 학원에서의 참고서 판매 대부분이 무자료 거래라는 추정 아래 출판사와 할인매장 학원의 탈세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할인매장은 지방에서 퍼올린 책에 대해 정상적인 거래를 하지않아 소득세를 탈루하고 있으며, 학원은 애초 서적판매 사업등록이 없음에도 책을 판매하고는 소득이 아닌 경상경비로 처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할인매장의 탈세문제는 실제 지난해 서울 동대문구에서 할인매장의 탈루의혹에 대한 세무조사가 벌어져 수천만원어치의 소득신고 누락이 드러나기도 했다.
서점계는 앞으로 학원의 참고서 수요 증가와 함께 탈세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해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 탈세도 탈세지만 차제에 학원의 참고서 판매 자체를 문제삼겠다고 나섰다. 현행 사회교육법에는 학원이 강의 이외에 다른 영리행위를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원법에는 서적 판매를 규제하거나 허용한다는 규정이 없어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서점계는 교육부의 유권해석을 요구했으나, 교육부의 답변은 "각 교육청이 판단할 사항"이라며 명확한 입장표명을 피하고 있다.
정가 판매 서점주인이 폭리업자로 몰리기도
지난 몇년 사이 할인매장이 득세하면서 정가대로 팔아야 하는 소규모 서점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중.소규모 서점들은 참고서의 매출비율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 참고서 할인판매의 여파는 더욱 크다. 서울지역의 경우 서점 수는 97년 말 1165개였으나, 지난해 말 868개로 줄어 26%나 감소했다. 서점 숫자의 감소 말고도 정작 서점 주인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책을 정가대로 팔려고 하면 학생들이 서점 주인을 "폭리업자"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왜 할인을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맞는 말이지만 정가의 75%로 받아서 15~20%씩 할인해 팔면 처음에야 버티겠지만 결국에는 지나친 출혈로 쓰러질 수밖에 없다." 서련 강동지구 위원장 형남렬씨의 한탄이다. 형씨는 "동네 서점은 지역 출판문화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주춧돌"이라며 "참고서는 물론 출판물 전체의 가격 거품이 하루빨리 제거돼 서점에서도 싼값에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조성곤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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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필독도서 믿을 게 못 되네 1999/05/06
최근 서울 어린이도서연구회에는 격앙된 목소리의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다.
"도대체 제본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책들이 어떻게 학교 추천도서로 선정될 수 있습니까." "학교 도서바자회에서 산 책들이 하나같이 조잡합니다. 학교 수익금을 마련한다기에 어쩔 수 없이 샀지만 어떻게 이런 책들을 바자회에 진열할 수 있는 겁니까."
학교도서관을 한 출판사 책으로 채우기도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 추천도서에 대해 느끼는 불만 섞인 신고전화였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저자와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이 대부분인데다 삽화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고, 어떤 책은 삽화와 책 내용이 다르기까지 하다는 얘기였다.
"추천도서 선정과정을 보면, 교사들이 출판사 또는 도서총판에서 보내주는 도서목록만 참고한 채 생각없이 목록을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교사들이 적어낸 책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온 순서로 추천목록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조차 읽지 않은 책들이 추천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요." 어린이도서연구회 조월례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얼마 전 한국교육개발원이 한 독서교육 지정학교의 "필독도서" 목록을 분석한 결과는 학교현장의 독서지도 실태를 잘 보여준다. 이 목록의 특징은 대부분이 현직교사들이 지은 책이라는 점과 최근 1~2년 사이 출간된 책이라는 점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검증된 "명작"과 외국인의 작품, 죽은 사람의 작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학교도서관에서 구입하는 모든 도서가 한 출판사의 책으로 도배되는 경우도 일어나고 있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독서지도의 파행은 학부모회가 마련하는 도서바자회에서 좀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각 학교는 1년에 한두 차례씩 "학교 발전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도서바자회를 열고 있다. 바자회는 학부모회에서 주관하지만, 진열될 책의 출판사는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자회 출품 출판사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학교 고위층과 뒷거래가 있게 마련입니다. 아예 관행화돼 있습니다. 오히려 좋은 책을 진열하려는 학교 교장은 "왕따"가 되기 십상이지요." 어린이책 전문유통업체인 "서당" 백성원 부장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출판사는 바자회를 여는 학교와 학부모회에 각각 책값의 10% 정도를 리베이트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경쟁상대가 있을 경우 책값의 40~50%까지 커미션으로 떼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출혈 판매"로 생각되겠지만 이들 출판사는 그래도 이익을 "짭짤하게" 낼 수 있다. 이런 출판사는 애초에 서점용으로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학교 바자회용 책"만을 전문적으로 만든다. 서점에 납품하는 정상적인 출판사가 1년에 찍어내는 어린이용 책은 보통 3천권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바자회 전문 출판사가 만들어내는 책은 1년에 10만권을 넘어선다. 업계에서는 이런 책의 실제작비가 정가의 10~20%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뒷돈을 많이 떼줘도 일단 팔기만 하면 상당한 수익이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바자회 출판사"가 서울에만 10여 군데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출판사는 학교 바자회만을 전문적으로 뚫는 총판을 두고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출판사와 총판은 직접 학교쪽과 "거래"를 하기도 하지만, 퇴임한 교장이나 교육관료 출신을 내세우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총판의 경우는 5년 이상 학교장들을 관리하면서 현임 때는 물론 퇴임 후에도 그 학교의 바자회 납품권을 따내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도서바자회를 여는 초등학교는 최근까지 전체의 90%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나마 나머지 학교들도 제대로 된 바자회를 여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다. "가령 학부모회에서 바자회의 수익이 문제가 아니라 좋은 책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춰 행사를 준비하더라도 막판에 교장에게 제지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학부모회 대표는 "좋은 책 소개"에 중점에 두고 바자회 계약을 맺으려다 교장에게 불려가 "당신 돈 먹었지"라고 추궁받는 바람에 어이가 없어 포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서당" 백 부장의 씁쓸한 경험담이다.
문제는 이렇게 싸게 제작되는 책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오히려 학교쪽의 공식행사를 통해 아이들의 손에 들어간다는 데 있다. 싸게 대량으로 제작되다 보니 색감이 떨어지는 것은 예사고, 삽화와 내용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아이들의 책읽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올해 들어 이런 식의 바자회가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 교육부의 단속도 있었고, 어린이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에서만큼은 모습을 감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5월이 지나면서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어요. 일종의 잠복기인 셈이죠." 백 부장의 말대로 최근 경기 시흥에서는 한 총판이 학교 운영위원에게 도서목록을 보내 바자회를 주선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 학교 학부모 가운데 "동화읽는 어른 모임" 회원이 이 목록을 확인한 뒤 "상업성이 짙다"는 판단 아래 바자회를 거절했다.
엉터리 책 구입 부추기는 어린이신문 단체 구독
많은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구독하는 "어린이신문"도 어린이책의 왜곡된 유통에 일조하고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 어린이신문의 12면 가운데 6면에 통단 책광고가 실렸는데, 대부분이 취미나 오락, 단순한 흥밋거리의 책들이었다. "실제 아이들은 어린이신문 광고를 통해 동네 서점 등에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이신문 단체 구독이 어린이들의 책 구입을 부추기면서 신문사의 광고수입을 도와주는 꼴이지요." 조사를 담당한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주영 이사의 지적이다.
"어린이책과 관련해서는 좋은 책의 출판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도서 유통과정이 건전해져야 합니다. 유통시장의 주도권을 불건전한 세력이 쥐고 있을 때 좋은 책이 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출판계는 물론 소비자와 정부가 함께 유통문화 건전화에 앞장서야 합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이 이사의 제언이다.
조성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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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시각 : 1999/04/13 13:57
엉터리 '필독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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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뭐게?" "그야, 자식 입에 젖 들어가는 소리,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 자식이 책 읽는 소리지."
우리나라 속담이다. 어느 부모가 책 읽는 자식을 마다하랴. 이런 부모의 심정으로 지난해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독서교육을 부르짖었을 것이다. 곳곳에 교육부 지정, 시도교육청 지정 연구학교.실험학교들이 생겨나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힐까 밤낮없이 분주하다.
독서교육의 방법 중 가장 중요한 두 기둥은 어떤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이다. 독서의 양과 질에 문제가 없어야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기서 일선 학교에서 흔히 정해지는 필독도서는 책의 질에 해당한다. 이 필독도서가 어떤 책들인지, 어떤 경로를 거쳐 선정되고 있는지를 규명하기 전에는 독서교육의 성공을 말할 수 없다. 필자의 경험담이다.
어느 독서교육 지정학교는 학생들 책 읽히기에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는 통계가 나와 우수학교상을 받았다. 양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문제는 독서의 질이었다. 이 학교에서 읽는 소위 필독도서를 들여다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학교는 학년당 필독도서를 10권씩, 전교 60권을 정해 읽히고 있었다. 문제는 그 중에서 수상쩍은 책들이 수두룩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었다. 필독도서는 누구나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는 명작이어야 한다. 좋은 책의 조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과 공간의 검증이다. 그런데 어째서 최근 책들만 필독도서가 되었을까? 왜 우리나라 책만 필독도서가 되었을까? 그 필독도서가 정해진 경로를 추적했다.
선정 경로는 이랬다. 선생님들은 각자 좋은 책을 몇 개씩 써낸다. 그 중에서 빈도가 높은 책이 필독도서로 선정된다. 문제는 그 책들의 대부분은 선생님들도 읽지 않은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독서지도로 너무나 바빠서' 학교로 오는 책 보급자들이 만든 팸플릿 속에서 간단한 해설을 보고 책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그 팸플릿들을 만든 회사는 출판사는 아니고, 더구나 양서를 만드는 유명출판사는 아니었다. `<><><>연구회' 등의 이름을 달고 주로 학교에 책을 판매하는 회사였다. 학년별 팸플릿을 만들어 학교에 보내면 학교에서 그 팸플릿을 보고 책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이 목록의 내용에 따라 한국 학교의 독서교육이 좌우되는 현실이다. 목록의 특징은 세가지였다. 첫째로 현직 교사들의 책. 둘째로는 출판된 지 1~2년도 안된 책. 따라서 세번째 특징은 외국인의 책이나 명작 고전은 없다는 것이다. 죽은 자도, 외국인도, 학교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도 그 목록에 끼여들기 힘들다.
역사상 정책이 나쁜 적은 없다. 문제는 방법에서 비롯됐다. 독서교육을 위해 교육부가 할 일은 도서비를 올리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어떻게 질 높은 책들을 읽게 하느냐에 강조점을 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