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을 만들고 민중을 愚弄(우롱)하는 돼지들(공산당 간부들)
돼지들이 우유를 마신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과 落果(낙과: windfalls)도 수집해서 돼지숙소로 보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동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모든 돼지들은 우유와 사과를 돼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스퀼러로 하여금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하였다:
“동무들! 나는 우리 돼지들이 이기심이나 특권의식에서 이렇게 한다고 동무들이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돼지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부터 그것들을 싫어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먹는 유일한 목적은 건강 때문입니다. 우유와 사과는 (동무들, 이것은 과학에 의해서 증명되었습니다) 돼지의 건강에 필수적인 물질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돼지는 두뇌노동자(brainworkers)입니다.
우리 농장의 모든 관리와 조직은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동무들의 복지를 위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유를 마시고 사과를 먹는 것은 동무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돼지들이 우리의 의무수행에 실패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아십니까? 존즈가 돌아옵니다. 예, 동무들, 분명히 그 놈이 돌아옵니다. (중략) 동무들 중에 누구도 존즈가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지요?”
동물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우유와 사과는 돼지만이 먹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였다.
돼지들처럼 인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고 인민의 이름으로 부당하게 사치와 특권을 享有(향유)하는 지배 엘리트와 이를 黙從(묵종)하는 민중은 어느 체제에서나 있을 수 있지만 평등과 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공산주의나라에서 거의 예외 없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人間事(인간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농장주들(자본주의 국가들)의 침공과 돼지농장의 승리
농장에서 逐出(축출)당한 존즈씨는 술집에 틀어 박혀서 사람들에게 농장을 탈취당한 이야기를 하였지만 농장주들(프랑스, 독일 등 자본주의 국가들)은 존즈씨의 불행에 동정을 표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불행을 이용해 먹을 궁리만 하였다. 게다가 농장주들 상호간에도 사이가 나빠서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할 공동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매너농장의 동물들이 서로 싸우거나 굶어서 죽게 될 것이라며 사태가 곧 진정될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동물농장이 계속 지탱되고 혁명 소식을 들은 농장주 자신들 농장의 동물들이 動搖(동요)하기 시작하자 이들은 존즈씨와 함께 동물농장을 침공하였지만 동물들은 스노우볼의 탁월한 지휘 아래 승리를 거둔다. 동물들은 승리의 환희에 열광한다. 그들은 이 전투를 '카우세드의 전투'(the Battle of Cowshed: cowshed는 외양간을 의미)라고 명명한다.
동물들은 지금의 열광과 환희가 미래의 공포와 고난의 前兆(전조)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은 대중이든 엘리트이든 이념의 마법에 걸리면 열광하면서 파멸로 향해 돌진하는 멍청한 존재이기도 하다. 혁명을 조직하고 선도하는 혁명가는 권력의 행복을 향유하지만 혁명에 동원되는 대중에게는 대리만족 외에는 혜택이 없다는 것이다. 혹독한 독재와 처절한 빈곤의 고통을 당하지만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혁명의 열기에 쉽게 뛰어 든다. “혁명가는 일단 권력을 잡으면 압제자 이상으로 폭군이 된다.”(…once in power, the revolutionary becomes as tyrannical as his oppressor.)라는 Conrad(콘래드. 영국소설가)의 지혜로운 警句(경구)도 민중들에게는 馬耳東風(마이동풍)인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일 것이다.
스노우볼(트로츠키) 축출과 나포레온(스탈린)의 독재
겨울이 왔다. 추위로 인해 바깥에서의 작업이 불가능해 지자 매일 회의가 열렸다. 스노우볼과 나포레온의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스노우볼은 뛰어난 연설 솜씨로 때때로 회의를 주도하였지만 그 때 마다 나포레온의 친위부대인 羊(양)들이 “네 다리는 좋은 것이고 두 다리는 나쁜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회의를 중단시키곤 하였다.
스노우볼과 나포레온은 풍차건설을 놓고도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스노우볼은 풍차를 건설하여 전기를 이용하면 노동력이 절약되어 일주일에 3일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고 이에 대해 나포레온은 풍차건설에 시간을 낭비하면 동물들이 굶어 죽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풍차문제 말고도 농장의 방어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나포레온의 생각은 무기를 구입하고 훈련을 강화하여 자주국방을 해야한다는 것이고 스노우볼의 주장은 혁명이념을 수출하여 다른 농장에서도 봉기가 일어나면 자주국방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풍차건설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스노우볼의 승리가 확실해질 것 같을 때 나포레온은 자신이 비밀히 관리해온 9마리의 거대한 猛犬(맹견)들을 풀어놓아 스노우볼을 공격하게 한다. 스노우볼은 죽음만 겨우 면한 채 농장을 탈출해 도망간다. 스노우볼을 제거한 나포레온은 모든 회의를 폐지한다. 농장경영에 관련된 모든 문제는 그가 주도하는 특별위원회에서 결정하고 다른 동물들은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몇몇 동물들이 이 결정에 항의하였지만 맹견들의 위협과 양들의 천둥 같은 구호에 주눅이 들어 침묵하였다.
#8
나포레온의 독재옹호
나중에 스퀼러가 농장을 순회하면서 나포레온의 독재를 옹호한다:
“동무들! 여기 있는 모든 동물들은 나포레온 동무의 희생정신을 높이평가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동무들! 지도자의 자리가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그 것은 대단히 힘들고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자리입니다. 나포레온 동무는 그 누구보다도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포레온 동무께서는 모든 일을 여러분 스스로 결정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면 정말로 기쁘실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동무들은 잘못된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동무들이 스노우볼의 풍차 헛소리를 따르기로 결정하였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범죄자에 불과한 스노우볼을!(중략) 우리가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우리의 적들이 우리를 덮칠 것입니다. 여러분은 존즈가 다시 오기를 원하지 않지요?”
그 날 이후로 복서를 위시한 모든 동물들은 “나포레온 동무가 어떤 것을 말하면 그것은 옳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포레온은 항상 옳다”를 불변의 金言(금언)으로 채택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얼마 후에 풍차건설의 지시가 내려와도 동물들은 異議(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설혹 이의가 있어도 맹견이 무서워서 감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상(理想)의 비정상적인 추구는 독재를 낳는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이것은 인간을 만든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은 또한 욕망의 추구에 한계를 없애버림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만족을 모르게 한다. 그래야만 종족의 보존이 더 확실해 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보다 나은 것을 갈망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이상을 꿈꾸는 동물이다. 이상은 혁명을 낳고 혁명은 나포레온 같은 독재자를 낳기 쉽다는 것을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 공산혁명이 입증한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 혁명을 한 결과 독재자가 나타나는 역설은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강한 자가 무리를 지배하고 이끄는 것이 種(종)의 확산을 원하는 자연의 목적에 符合(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권력의지를 가지고 태어나고 지배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대중은 강력한 지도자의 그늘에 들어가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한다. 민주적인 통제장치가 느슨하거나 아니면 그 장치가 마비되거나 아예 없는 사회에서는 혁명의 과정에서 善意(선의)의 독재자 아니면 나포레온 같은 포악한 독재자가 나오게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선의의 독재자보다는 나포레온 같은 포악한 독재자의 수가 월등히 많다.
나포레온의 공포정치와 동물들(민중들)의 참혹한 고난
혁명을 독재자가 가로채면 민중은 참혹한 고난을 당하게 된다. 동물농장의 동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허리가 부러지도록 중노동에 시달렸다. 그들은 노예처럼 일하였다. 나중에는 일요일 오후에도 일을 해야 했다. 동물들은 항상 춥고 배가 고팠다. 어떤 때는 식량배급이 여러 날 동안 중단되기도 하여 餓死(아사)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독재자의 거짓을 믿게 되었다. 그들은 풍차건설은 원래 나포레온의 아이디어이며‘풍차가 붕괴된 것은 강풍이 아닌 간첩 때문이며, 카우세드 전투의 승리는 나포레온의 功績(공적)이고, 스노우볼은 애초부터 존즈의 첩자라는 명백한 거짓말들을 믿어야 했고 믿게 되었다. 그들은 혁명의 약속과 이상이 파기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위협 당하고 洗腦(세뇌)되었다.
나포레온이 인간들과도 거래를 하고 자신을 지도자라고 부르게 하며 개인숭배를 강요해도, 돼지들이 저택으로 이사를 하고 호사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사치를 하여도, 나포레온의 친위대인 맹견들이 다른 동물을 죽여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지옥의 공포 속에 살아야 하였다. 나포레온의 공포정치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계란 貢納(공납)을 반대하는 닭들을 학살하였다. 그는 스노우볼의 첩자를 잡아낸다면서 온 농장을 수색하였다. 그는 1월의 대학살을 통해 동물농장을 공포의 지옥으로 변형시켰다.
그는 9마리의 호위 맹견을 대동하고 나타나서 동물농장 동물 전원이 보는 앞에서 일요회의폐지에 반대하였던 네 마리의 젊은 돼지를 스노우볼의 첩자라고 自我批判(자아비판)을 시키고는 무참하게 학살하였다. 이어서 그는 세 마리의 닭, 한 마리의 거위, 양 두 마리도 자아비판을 하게 하고서 모두 즉석에서 처형하였다. 자아비판과 처형은“…until there was a pile of corpses lying before Napoleon's feet and the air was heavy with the smell of blood… 나포레온의 발 앞에 시체더미가 쌓이고 공기가 피 냄새로 가득할 때까지”계속되었다.
狂的(광적)인 개인숭배 강요
1월의 학살 이후 나포레온에 대한 개인숭배가 한층 더 강화되었다. 그는 항상 “우리의 지도자 나포레온 동무”라는 존칭에 “전 동물의 아버지”,“인류의 공포”,“牧羊場(목양장)의 보호자”, “오리의 친구”등등의 경칭이 매일 매일 늘어갔다. 스퀼러는 나포레온의 英明(영명)함을 말 할 때는 눈물을 흘렸다.
모든 업적은 나포레온의 功(공)으로 돌렸다. 닭들의 “우리의 지도자 나포레온 동무의 지도로 엿새 동안 다섯 개의 알을 낳았습니다.”라든지 “나포레온 동무의 지도로 물맛이 너무나 좋습니다.”라는 소들의 말이 일상의 일이 되었다.
“부모 없는 사람의 친구이며 행복의 원천이시며…”로 시작되는 “나포레온 동무”라는 訟詩(송시)가 七誡命(7계명)이 있는 맞은 편 벽에 새겨지고 나포레온의 대형초상화도 걸렸다. 동물들이 피땀 흘려 재건한 풍차의 이름은 나포레온 방앗간으로 명명된다.
공포는 존경으로 轉移(전이)된다
공포와 세뇌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공포의 대상을 존경하고 숭배하게 하기도 한다. 공포가 존경으로 轉移(전이)되는 것이다. 이제 동물들은 나포레온을 숭상하고 나포레온의 판단과 행동에는 誤謬(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나포레온이 Pinchfield(핀치필드: 독일) 농장주인 Frederick(프레데릭)과 Foxwood(폭스우드: 영국)의 농장주인 Pilkington(필킹톤)과 비밀 거래를 하다가 이들로부터 배신당하고 이들과 전쟁까지 하게 되어 수많은 동물들이 죽고 다치고 풍차마저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들은 나포레온 동무의 지도로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생각에서 전쟁의 傷痕(상흔)도 잊게 되었다.
궁핍이 동물들을 괴롭혔다. 모든 물자가 부족하고 식량배급마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돼지들은 맥주까지 마시며 궁핍을 모르고 살았다. 스퀼러는 식량배급에서의 지나친 평등은 동물주의에 違背(위배)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물들은 자신들의 농장의 주인이라는 생각에서 궁핍의 고통을 다소라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끝없이 계속되는 시위와 노래와 연설과 생산증대 성과발표, 휘날리는 깃발, 祝砲(축포)등의 축제분위기도 동물들로 하여금 '배가 텅 비어있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게 하였다.
착취당하고 학대받는 우직한 민중과 인간존재의 비극성
복서가 죽었다. 그는 우직하였지만 착취와 궁핍이 없는 이상사회의 실현가능성을 확신하고 지도자인 나포레온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숭배하였다. 그는 근무시간외에도 자진해서 열심히 일했다. 심지어 풍차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일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기도 전에 나포레온은 그를 廢馬(폐마) 도살업자에게 팔아 넘겼다. 복서는 짐마차 안에서 발버둥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스퀼러는 복서가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동물농장 만세와 나포레온 만세를 부르며 임종하였다고 동물들에게 거짓말했다.
복서는 러시아 민중을 상징한다. 그들은 풍요하고 평등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소박한 꿈에서 공산주의혁명에 동참하였지만 스탈린을 정점으로 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철저하게 蹂躪(유린)당하기만 하였다. 민중이 이념이라는 마취제에 중독되면 이념의 칼날에 죽어가면서도 이념의 생산자와 이념의 집행자인 독재자를 崇尙(숭상)하고 따른다는 현상에서 인간존재의 비극성을 보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이 인류역사 전체를 통해서 반복되어 왔고 앞으로도 再演(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인간존재를 비관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며 그 우상에 의해서 이용당하고 때로는 학살까지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우상을 만들어 내는 한심한 존재이기도 하다.
변질되는 七誡命
돼지들이 인간처럼 두발로 걷기 시작하였다. “Four legs good, two legs better. 네 다리 가진 자는 좋은 것, 두 다리 가진 자는 더 좋은 것”라는 구호가 천둥같이 크게 울렸다. 七誡命(칠계명)은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MORE EQUAL THAN OTHERS: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바뀌었다. 동물농장의 명칭도 다시 매너농장으로 바뀌었다. 동물들은 파티를 즐기고 있는 돼지와 인간들을 보면서 어느 것이 사람인지 어느 것이 돼지인지를 구별 할 수 없었다.
혁명은 부패한다. 이것은 七誡命(칠계명)이 모두 배신당하고 원래의 혁명이념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 과정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혁명의 부패는 인간의 原罪(원죄)로 인한 것이다. 인간의 원죄는 人間性(인간성)에 內在(내재)하는 惡(악)을 말한다. 인간은 높은 道德性(도덕성)과 理想(이상)을 추구하는 善(선)한 존재이면서도 생존을 위한 沒道德的(몰도덕적) 공격본능과 무한의 욕망으로 인해 惡(악)에 대한 可能性(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矛盾的(모순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며 악마는 천사의 말로서 인간을 속이고 이용하고 죽이기도 한다.
공산주의자는 악마의 下手人(하수인)들
이상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大量虐殺(대량학살)을 恣行(자행)하고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악마가 되기 쉽다. 평등의 이상을 추구하며 증오의 불길을 지피고 있는 공산주의는 악마의 논리이다. 수백 수천 수만 명의 무고한 인민을 학살하고도 죄의식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히려 개인숭배까지 강요하였던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캄보디아의 폴포트,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등은 악마의 화신들이다.
이상은 神(신)의 영역이다. 神(신)의 영역을 불완전한 인간이 神(신)의 대리인이 되어 불완전한 인간에게 강요할 때는 엄청난 재앙이 따른다. 인류가 이것을 제대로 인식만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이 많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죠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이념의 악마성을 경고해주는 성경 같은 叡智(예지)의 소설이라고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