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관문
신금철
한껏 물 먹은 갈맷빛 나무들이 바람에 안겨 춤을 춘다. 더러 벤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이도 있고, 강아지의 재롱에 간드러진 웃음을 쏟아내는 이도 있다. 나는 기도가 필요한 지인을 위해 열심히 묵주를 돌리며 공원을 돈다. 복대동 대농공원 해거름의 풍경이다.
집 가까이 공원이 있어 행복하다. 대부분 남편과 함께 공원을 걸으며 하루의 일과, 노년의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로 정담을 나눈다. 둘 다 고령에 접어들었으니 최소한 힘이 덜 들고 건강에 도움이 되도록 하루 한 시간쯤 공원을 걷는다. 혹여 혼자 걷는 날엔 침묵 속에서 자신과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리하며 마음의 일기를 쓴다. 나에게 대농공원은 친구요, 피로 회복제이며, 위로자이다.
솔밭을 마주한 대농공원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가벼운 산책과 운동을 하기에 적당한 공원이다. 공원 안, 다목적문화관은 유명 화가의 미트 아트전을 비롯하여 소프트웨어 교육의 거점 공간으로 교육과 체험장소로 가끔 이용하기도 한다. 공원 바로 옆에는 체육관, 수영장, 도서관 등 신축건물이 공사 중이어서 인근 주민들을 비롯한 청주시민의 건강 증진과 여가 생활 장소로 기대된다.
2009년 3년에 입주를 했으니, 어느새 K아파트에 둥지를 튼 지도 13년이 되었다. 처음 입주 시엔 대농공원을 비롯하여 부근이 미개발지역이었는데 이제는 청주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고층 아파트와 상가들이 서울을 방불케 한다.
아파트 근거리에는 충청권 유일의 현대백화점을 비롯하여 대형 할인마트, 병원, 쇼핑몰, 극장 등이 즐비하여 생활하기에 편리하다. 특히 유명 학원이 몰려 학생들이 선호하여 청주의 강남으로 불리고 있다.
복대동은 교통 환경도 으뜸이다. 청주 내외부를 연결하는 순환로가 인접해 있어 청주 전역의 이동이 수월하며 경부고속도로 서청주 나들목도 가까워 인근 주요 도시로의 광역교통망도 좋다. 여행을 자주 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최적의 교통로이다.
솔밭을 끼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심장으로 청주의 경제에 기여가 큰 공장이다. 가끔 출퇴근 시간에 쏟아져나오는 하이닉스 직원을 보면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나라 반도체의 희망을 보는 듯 뿌듯하다. 이렇듯 복대동은 문화, 산업, 의료, 교육 등 고루 갖춘 청주의 랜드마크로 급부상되어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복대동 대농지구는 동양 최대의 방직공장이 살아 움직였던 자리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 산업의 주력 업종이었던 ‘대농 방직공장’은 12만 7,354평의 부지에 만여 명의 종업원이 땀 흘리며 섬유산업인 면직물을 직조하여 지역경제는 물론 해외 수출로 나라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던 산업현장이었다.
1977년 대농 방직공장 내의 양백여상은 산업체 부설 학교로, 일하며 공부하는 여성 근로자들의 땀과 눈물이 배인 곳이기도 하다. 가정형편으로 상급 학교의 진학이 어려웠던 그들의 노고는 가정경제의 큰 보탬이 되었고, 주경야독으로 배움의 한을 풀며 보람도 느꼈을 것이다.
1953년에 설립하여 동양 최대를 자랑하던 대농 방직공장은 섬유산업의 사양화斜陽化와 경쟁력 상실, 인력난으로 폐사되어, 양백여상도 2006년 2월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대농 방직공장은 청주시민의 경제와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큰 몫을 했던 산업의 명소로 기억되고 있다.
얼마 전 문화원 주최로 열린 인문학 강의에서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청주문화원 청주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인 박병철 박사님의 강의를 통해 복대동의 지명에 대한 유래를 알고 흐뭇했다.
복대동福臺洞의 복대福臺는 ‘짐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짐대’는 돛대나 사찰에서 종을 달아 세우는 대臺를 의미한다. 복대동 일대는 신앙을 옹호하는 기관이나 사람들이 많아 짐대를 흔히 볼 수 있는 곳이라 한다. 한자 차용 표기漢字 借用 表記에는 ‘짐대’를 ‘복대卜大’로 썼는데, 그것이 1961년에 간행된 청주지淸州誌부터 음은 같으면서 뜻이 좋은 복대福臺로 바꾸어 썼다는 것이다.
‘행복이 올 거라고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행복은 오지 않는다’ 미국 시인 더글러스 맬럭의 말이다. 청주의 관문인 복대동의 의미처럼 복이 올 거라 믿으며 복대동 주민의 자긍심을 갖는다.
늘 보던 석양이 오늘따라 더욱 곱다.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씩씩하게 걷는 대농공원 산책로에 행복이 앞서고 있다.
첫댓글 복대동에 얽힌 서사의 내용 안으로 끌려들어가게 되네요.
대농, 양백여상 등 익숙했던 단어들이 예전 풍경을 떠올리게 하네요.
어느 누구든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생각으로 살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일이겠지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십 년을넘게 살다보니
정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