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선문 방문 후기
오늘은 문 탐 13기(심화)현장 첫 수업의 주제로 “조선의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 방선문과 취병담을 방문하는 날이다. 방선문은 두세 차례 와보았으나, 아직 계곡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었다. 입구에 방문해서는 방선문이 얼마나 대단할까? 라는 생각으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솔직한 마음이있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입구의 각종 마애명을 강의한 후 방선문 계곡으로 내려가는 순간 아~~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할 광경을 보았다.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들도 감탄사의 연발이었고, 한 선생님은 “지금까지 방문한 제주의 모든 것 중에 단연 최고다”라고” 감동했다. 나 역시 공감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방선문에 대해서 교수님의 설명과 함께 조선 선비의 발자취를 느껴보자.
1. 방선문(訪仙門) 유래
방선문은 제주시 중심부를 흐르는 3대 하천 가운데 가장 큰 한천(漢川)의 상류에 6km 지점에 위치한 계곡이다. 조선의 가장 큰 강을 한강이라 불렀듯이, 제주의 가장 큰 한천은 탐라계곡에서 발현하여 용연까지 흘러 내려가는 하천으로 평소에는 물이 없는 건천이나, 많은 비가 올 경우 화산암 사이 숨골로 빠지지 않은 물이 흘러내려간다.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같이 난대림 숲이 우거지지 않은 계곡으로 봄이면 진달래가 가득한 풍경과 웅장한 계곡의 기기묘묘한 바위와 어우러진 풍경은 과히 절경이었을 것이다. 매계 이한우가 ‘영주 10경’ 중에 영구춘화라고 표현하여 제주의 봄 풍경의 대표로 꼽았다. 아쉽지만 지금은 계곡 주변에 난대림이 형성되어, 진달래, 철쭉 등 작은 나무가 많이 줄어들어 그 옛날 풍경을 볼 수 없지만, 방선문의 신비하고, 웅장한 광경은 그대로 볼 수 있다.
방선문은 ‘신선이 방문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계곡의 중간 지점에 있는 큰 바위가 아치형 터널처럼 형성된 것을 가리킨다. 영구춘화의 유래를 보면, 영구(瀛邱)는 들렁귀의 한자표기로, 특히 들렁귀(登瀛丘)의 ‘들러’은제주 고유의 말로 ‘들어 올려진 바위’를 뜻하며 ‘귀’는 ‘입구’를 뜻한다. 교수님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계곡에 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으로 다가오는 방선문(들렁귀)와 계곡의 형국은 오랜 세월의 풍파로 다양한 흔적을 간직한 기암괴석이 자연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하였다. 풍류를 아는 그 당시 선비들이 계곡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인간과 신선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 또는 신선이 사는 영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예부터 목사가 관기를 거느리고 나와 주연을 베풀기도 했으며, 시인 묵객들이 모여 시회를 열기도 했다. 신선들이 드나들던 문이라는 전설이 얽힌 방선문이 있고 홍중징 등 많은 목사들과 최익현 등 유배인들의 마애각을 볼 수 있다. 제주도 내에서 선인들의 마애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수님의 열띤 강의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에게 ‘방선문’, ‘최익현’등 마애각을 찾아보라고 퀴즈 아닌 게임으로 수업의 즐거움을 더 해 주신다. 한 선생님이 ’ 최익현’을 찾았다고 외치면, 다 같이 다가가 확인하는 재미도 좋았다. 또한 "조선시대 제주에 온 선비들은 얼마나 될까?" 라고 질문을 던진다. 당시 조정에서 발령 내는 목사, 대정/정의현감, 판관 각 286명 정도이면, 유배인은 우리가 잘 아는 광해군, 추사 김정희, 면암 최익현 등 약 200여 명이라고한다. 대충 계산하면 약 1,300여 명 된다. 방선문 계곡을 즐겨 찾았던 인물들은 주로 유배형에 처한 조선의 중앙관리와 제주 목사 및 관리, 양반 등이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아름다운 계곡 경치를 감상하면서 달래기 위해 즐겨 찾았던 무릉도원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게 한다. 특히, 대원군의 서원 철폐를 반대하여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이곳을 거쳐 한라산을 오른 최익현의 흔적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정조 10년(1786)에 제주에 부임하여 흉년이 심하게 들었을 때 구휼에 힘쓴 이명준 목사, 제주도청 인근에 칠봉서당을 열어 제주의 인재 양성에 힘쓴 이기온, 대원군의 실각으로 유배에 처한 윤상화 등 이곳을 거쳐간 많은 선비들의 이름이 당시 사람들의 발자취를 실감하게 한다
2. 방선문(訪仙門)의 지질형태
방선문 계곡은 점성이 높은 현무암질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두꺼운 용암지대에 하천이 침식해 형성된 지형이다. 방선문의 단면은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수직의 주상절리와 수평의 판상절리가 잘 발달해 있다. 침식된 여러 단면에는 마애명을 새겨 놓았다. 판상절리의 용암류 하부는 유수 작용으로 인해 차별침식을 받아 암반 하부에 발생한 통로다. 이곳의 규모는 내부 통로 높이가 5m, 길이는 15m, 폭은 15∼20m 다.. 그런데, 과거와 달이 지금은 위 바위가 떨어진 것 같다.
3. 방선문(訪仙門)의 전설
효성이 지극한 나뭇꾼이 신선을 만났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방선문은 신선세계로 통하는 문으로 신선세계와 인간세계의 경계로, 옛날 백록담에서는 매년 백중날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는데 이때마다 한라산 산신은 방선문 밖 인간세계로 나와 선녀들이 하늘로 돌아갈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만 했었다. 그런데 어느 백중날 미처 방선문으로 내려오지 못한 한라산 산신이 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말았고, 이에 격노한 옥황상제가 한라산 산신을 하얀 사슴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그 뒤 한라산 산신은 매년 백중날이면 백록담에 올라가 슬피 울었고, 하얀 사슴의 연못이라는 백록담의 이름은 이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방선문 일대는 한국 고전문학 중 해학소설 '배비장전 '의 무대이기도 하다. 화북포구도 배비장전의 무대의 하나로 교수님은 기회 있으면 읽어보라고 권유하신다.
◆ 용연(취병담) 탐방 후기
내가 처음 용연을 방문했던 때는 2년 전 올레 17코스를 걸으면서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첫 인상은 용연의 물색깔이 너무나 선명한 비취색이라는 것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는 용연으로 알았으며, '취병담'이라 불리오는 것을 몰랐었다. 용연, 취병담에서 대해서 알아보자.
1. 취병담(翠屛潭)의 유래
용연은 방선문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제주시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흐르는 한천(제주시 용담동 소재)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교수님은 우선 용연을 취병담이라 불리는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조선의 낭만 선비, 최초의 올레꾼, 시인, 백호 임재(1549∽1587)가 29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 급제하여, 제주목사로 있는 아버지 임진목사에게 알리기 위해 제주 방문하여, 제주 경치에 반해 한 바퀴 돌며 유람하며, 남긴 “취병담”이라는 시가 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한천이 바다로 흘러 드는 이 냇골을 예로부터 용담(龍潭) 또는 용연(龍淵)이라 불렀다. 가까운 곳에 용의 형상을 한 용두암이 있는데다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이곳의 물속에 용이 잠겨 있다. 여긴 옛사람들이 이를 신성시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한천의 하구는 용암이 두껍게 흐르다가 굳은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겪으며 깊은 계곡이 되었다. 그래서 그 양쪽 기슭에는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잘 발달하였다. 예로부터 용연 주변은 경치가 아름다워 영주 12경의 ‘용연야범(龍淵夜泛)’으로 유명하다. 용연야범은 여름철 달밤에 용연에서 뱃놀이하는 것을 말한다.
2. 용연(龍淵)의 전설
교수님은 어린 시절 여기에서 수영하고 놀았던 곳이라 했다. 구름다리 아래 비취색의 물속은 수심이 20m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얽힌 설문대 할망 신화가 있다. 설문대 할망이 자기의 큰 키를 자랑하려고 깊은 물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용연 물은 맑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하여 용연에 들어섰는데 발등 까지만 물이 찼다고 한다. 그다음 깊은 물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서귀포 홍리 물리 깊다고 하여 들어가 보았는데 허리까지만 물이 찼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에 깊은 물을 물어보았는데 물장오리 물이 깊다고 하여 물장오리에 들어갔는데 지금도 나오지를 않았다.
3. 용연(龍淵)의 기우제
옛날 9년 동안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는데, ‘고대정’이란 심방이 용꼬리를 길게 만들어서 용연에 담그고서는 기우제를 지냈는데, 7일째 되는 날 다행히 비가 와서 용연은 기우제의 영험한 곳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 탐방 후기
나는 방선문을 보고 정말 지금까지 본 자연경관 중에 최고라고 할 정도록 감동을 받았다. 특히, 방선문을 둘러싸고 있는 난대림 숲과 용암이 흘러간 자리에 수만 연의 자연 풍화활동으로 만들어진 수직의 수상절리와 수평의 판상정리가 만들어낸 제주 하천 특유의 경이로움 경관이었다. 정말 좋은 곳을 탐방할 수 있었으면, 이런 곳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다. 하지만, 낙석을 이유로 몇 년째 이런 좋은 자연경관이자 관광자원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 금치 못했다. 또한 취병담(용연)의 물위에 떠다니는 쓰레기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를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훌륭한 강의와 함께한 동료 선생님들과 자유로운 토의와 의견 교한은 정말 좋았다. 마지막으로 방선문의 '등영구' 시로서 마무리한다.
등영구 (登灜邱)
뚫어진 바위 입을 크게 벌린듯
무수한 꽃들이 암벽사이로 피어났네
꽃사이로 퍼지는 풍악소리 따라
신선태운 난 새 학 새 날아오르는 듯
영조 15년(1739년) 제주목사 홍중징의 시 '등영구"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곳"
첫댓글 자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비취빛 물색 고운 날
바람마저 신선하고 싱그러웠어요.
바위 위에 서서 경탄하며 터뜨리는 탄성이 진심으로 다가와 같이 즐거워했습니다ㅎㅎ
선비의 감흥이 느껴지는 멋진 후기…
수고하셨어요~^^
이럴 줄 알았습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은 자세한 후기. 후발 주자들을 살~짝 좌절시키는 이런 후기 쓸 줄 알았다니까요! 방선문은 정말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이었어요. 위험을 무릅쓰고 가까이 접근해서 보고 느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 마애명 찾기 퀴즈며, 반장 된 기념으로 사모님이 부쳐 준 미나리전하며. 즐거운 첫 심화반 야외수업이었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
감사합니다.
그냥 읽으면 교양이 듬뿍생기네요.
한 올 한 올 직조한 그날의 이야기가 사진처럼 선명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