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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히9:1-10) 예배가 무엇입니까? 교회 열심히 다니면 예배하는 것이 맞습니까?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오늘은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나눠보겠습니다 성막을 왜 여기에 언급을 했는지 보겠습니다. 성막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되는지 보여주는것이지 기도에 대한 모형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성막은 1절에 섬기는 예법이라고 나와있다. 구약의 예배란뜻이다. 구약의 예배는 신약의 예배의 그림자다. 구약의 예배를 통해서 신약의 예배를 밝히 볼수있어야되는데 기도에 갖다대고 영적인 체험에 갖다되는 것은 아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 보는것, 하는것 어느것이 맞습니까? 예배는 하는것입니다 예수님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했다. 교회 열심히 다니면 예배하는것인가요 예배를 정확하게 알아야된다. 히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느것으리 모형과 그림자라 옛언약은 새언약의 모형이다. 예수님이 더 나은 중보시요 새언약의 중보시다. 9장에는 그 언약안에 예물과제사, 옛제사와 새로운제사 그것을 비교하고있다 구약의 제사가 모형이고 제물도 모형이다 신약에서는 예물과 제사의 실물이 오셔서 완성한 것을 보여주는데 다시 옛날처럼 돌아가서 똑같이 그짓을 하고있느냐 를 말하고있다. 9장의 핵심은 성막에 대해서 알고있어야된다.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아야된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 영적예배가 무엇인지 알아야된다. 9장의 핵심단어는 1절 섬기는예법, 6절 섬기는 예, 9절 장막은 비유다.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수없다. 10절 육체의 예법이다. 이부분이 핵심이다. l 1절에 섬기는 예법 섬기다 = 예배하다, 예법: 하나님이 정해놓은 법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 첫언약의 예배는 이렇게 해야한다란 것이 섬기는 예법이다. 성막을 말하고있다. 성막은 예배의 모형이다. 어떻게 예배해야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섬기는 예법이란뜻이다. 여기는 제사를 동반한 예배가 들어가있다. 제물과 제사가 있다. 제사를 지낼려면 제사장이 있어야된다. 그것을 이제 실제 신약에 어떻게 대체되는가를 보여주는것이다. 그러니까 성막에 있었던 제물을 가지고 제사하는 모든법은 오늘날 예배의 그림자다. 그 그림자는 그안에 깊은뜻을 담고있다. 그것을 알아야 예배를 알수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잘못알고있었다. 전통적으로 잘못 규정했다. 이 섬기는 예법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정한방식으로 예배를 해야한다란 것을 여기 성막에 실물교육이다. 왜그런가하면 하나님과 분리되어서 전부 애굽에 있었다 제사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출애굽하고 제일먼저 가르치는 것이 예배란법을 가르쳤다. 우리가 예배에 대해서 잘못알고있고 추상적으로 알고있다. 전통적인 어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보다 먼저있었던 토착종교나 여러가지 그런것들이 몸에 베어있어서 교회에서도 그런식으로 예배를 하는줄알고있다. 그런게 아니다. 성막은 어떻게 예배를 하는가를 말로 설명할수없어서 실물을 통해서 성막은 하늘의것의 모형이니까 하늘에 가면 이렇게 할것이다. 우리는 하늘에 속해있고 교회도 하늘에 속해있다. 그렇게 해야된다란 것을 말하고있는것이다. 그런데 지금 소,양잡나요 안잡는다. 소,양은 모형,그림자란것이다. 실물로 보여주면서 하늘의것을 이해하라는것이다. 그런데 다시 모형으로 돌아간다면 말이 안된다. 우리도 예배하는데 옛날방식을 그대로 따르고있다. 외적으로 그러니까 잘못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자를 찾는다란것이다. 그때까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자가 없었다란것이다. 성막은 하늘의 예배를 그림자로 보여주는것이다. 그래서 성막에서 제사지낼 때 제일먼저 하는일이 제단에서 제물을 잡아 피를 뿌리고 태우고 물두멍에 가서 씻는다. 그것은 먼저 죄문제를 해결해야된다란것이다. 구약의 예배를 지금 말하고있는것이다.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결,거룩해야된다. 그래서 제사장이 자신을 먼저 정결하게했다.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붙이고갔다 성결하지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그러니까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기위해서는 거룩하게 들어가야된다. 죄를 가지고는 못들어간다. 그러면 우리는 죄인이라 못들어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죄값을 치러야된다. 죄값을 치를려면 죽어야된다. 그러면 죄값을 치를려면 그 당시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겠나요 다 죽어버린다. 그러면 답이없다. 그러니까 애궂은 소,양등을 죽이는것이다. 그래서 그 피를 흘려야 죄가 사해진다. 왜냐면 죄값을 치르는 것은 목숨을 죽여야된다. 그것은 목을 치면 피를 흘린다. 그래서 죽었다란 증거로 하나님앞에 보여주어야 하나님앞에 갈수있다. 그래서 제물을 먼저 쪼개고 피를 받아서 대제사장이 자기에게 피를 뿌리고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것이다 그래야 죄값을 치렀다라고 인정해 주는것이다. 그것이 모형이다. 그것이 성막의 예배의 모형이다.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 것을 보여주는것이다. 그게 섬기는 예법이다. 바로 구약의 예배는 이렇게 해라하고 정해준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집행할려면 집행하는 제사장이 있어야된다. 제사장이 자신을 먼저 성결하게하고 그다음에 죄인이 오면 동물을 되리고오면 죄인이 동물에게 안수를 하면 죄를 전가시키는것이다. 그 죄를 뒤집어쓴 동물을 죽여버리면 죄가 사해지는것이다. 그래서 피를 받는다 피를 흘려야 죽었다란 증거다. 그리고 번제단에서 완전히 태워서 연기가 올라가면 하나님이 이제 흠향한다. 드디어 이놈 죽었구나 그래서 이게 하나님이 받음직하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씻는다. 이것은 유월절의 제단이다. 이것으로 구원이 시작이 되고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나온자들은 홍해(물두멍)에서 씻어야된다. 세례,할례다 육적몸,자아,나를 벗는것이다. 번제단에서는 구원의 시작, 예수이름으로 구원을 얻었다. 구원을 얻어서 홍해를 건너와야된다 육적몸을 씻는 것을 말하고 그다음에 성소로 들어가는데 광야다. 광야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 불기둥,구름기둥이 덮고있다. 물이 반석에서 나오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바로 떡상에있는 떡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바로 금촛대를 말하는 성령이다. 금향로는 거기에다 기도를 통해서 지성소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봐야 예배를 할것이 아닌가요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성막이다. 성막인데 여기서 자세하게 말안하겠다라고한다 왜냐면 이미 대체를 했기 때문에 성막을 연구하고 그런다 본질을 까먹어버린다. 이 제사를 집행해야할 제사장이 필요한데 이 제사장이 불완전하다. 예물도 불완전하다 이 예물(짐승)이 이 사람의 죄를 속했나요 외부로 지은죄만 속할수있다. 죄의본질은 이 짐승이 속하지못한다. 답이없다란것을 말하고있다 그래서 제사장인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이 제물, 어린양 예표다. 어린양의피도 예수님의 피다. 번제단은 십자가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쪼개질 때 우리죄를 어린양에게 안수하듯이 한것이다. 우리죄가 거기에 다 들어가서 쪼개져서 죽으셨다 그래서 우리의 죄의본질이 다 사해졌다란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다. 기도하는 모형이 아니다 속지말라. 본질의죄를 그대로 있는상태에서 행위만한것이다. 희생제사, 섬기는예법이다. 섬기는것은 예배를 말하고 예법은 예배를 하는방법이라고 말할수있지만 예법이란 단어가 의라는 단어다 의는 하나님과 올바른관계다. 섬기는예법이란것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예배다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관계회복되나요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말한다. 관계를 회복할려면 죄를 가지고 회복이 안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신 죽었으니까 이제 너희는 예수님의 이름과 피를 힘입어 들어간다. 예수님이 다 대체를 했다. 예수님이 어린양이 되어서 죽었고 피를 자신이 받아서 들어간것이다. 그래서 제사장 가슴앞에 흉배가 12지파다,(이스라엘,교회,나)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우리는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다. 분리되어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할수가없었다. 예배는 의의 관계다. 하나님과 올바른관계다. 원래 올바른관계안에있었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분리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었다. 그런데 올바른관계를 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는사람은 위 과정을 통해서 회복할수있다 그래서 이렇게 와라 구약은 잡고, 씻고, 대제사장이 홀로들어가서 다 죄를 사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왔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연합을말한다. 분리에서 다시 연합이 예배의법이란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동물에만 안수하고 또 죄짓고 다음날 또 동물가져오고 또 죄짓고 반복한다. 그래서 히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다. 이것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유예배, 껍데기예배하고있었다. 그리고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할수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제사 많이 지내도, 아무리 예배 많이 드려도 헛것이다. 예배보러온것이다. 외적인것을 본다. 외적인 희생제사, 형식만있고 외적인 경건만 있는 바리새인적인 예배를 말한다. 이러면 관계회복이 안된다. 이러한 희생제사는 섬기는예법이라고했는데 핵심은 죄사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 하나님과 영생의 교재를 누리는 것을 예배라고한다. 성막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피흘림을 통해서 정결하고 거룩하게 되어서 우리가 그안에서 그 품에 품고 들어갔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것이다. 12지파를 품고 들어가는 것, 예수외에는 없다. 예수안에서는 우리모습이 없다. 다 죽었다. 성막,예배의 본질은 내가 번제단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물두멍에서 내자아의 더러운것들이 싹다 씻겨져나가서 예수그리스도로 옷입고 들어가는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분리가 되어서 죄덩어리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들어가면 다 죽는다. 못들어간다. 우리가 죄없이 들어가야 하나님과 다시 연합해서 교재를 누릴수가있다 그런데 죄된몸으로는 못들어간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것을 단번에 제사를 지내서 새롭고 산길이 열린것이다 그래서 들어가는것이다. 나를 안본다. 예수님의피를 뒤집어쓴것만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나가는것이다 이제 피 안뿌려도된다. 예수님의 품에 안겨 말씀과 성령의 인도로 우리가 마치 기도의향이 되어서 위로 올라가는것이다. 그렇게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있다. 이것이 예배다 기도가 아니고 예배다. 껍데기성막, 예배, 알멩이는 예수님안에서 하나님앞에 나가는 파레시아 이것이 예배다. 그렇게 예배하고계시나요 교회만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나요 그러면 예배한 것이 아니다. 예배: 프로스(~향해나가다) + 퀴네오(입맞추다) = 하나님께 나아가 입맞추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는데 죄를 가지고 들어가면 바로 죽는다. 깨끗하게 나가야된다. 그래서 예수님탈을 쓰고 가는것이다. 이것이 의(義)다. 예법 = 의 = 관계 속죄를 해야된다. 옛날에는 동물의 피를 뿌려서 속죄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이 동물이 되어 피를 뿌렸다. 그래서 예수님이 동물구유에 온것이다. 말먹이가 되기위해서다. 나아가다 = 파레시아 예수님의 피를 바르고 들어가는것이다. 내모습으로는 갈수없다. 예수님안에서 들어가는것이다. 예수님의 탈을쓰고 들어가면 열려있다 왜냐면 예수님이 우리를 마음에 품고 지성소로 들어가는것이다. 예수님 안에서다. 그래서 신령(성령)과 진정(예수,진리의말씀) 으로(안에서) 예배하라. 금촛대(성령), 떡상(12지파 식사값이다. 말씀,살아있는떡)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으로 예배하러가는것이다. 내멋대로 예배하면 없는것이다. 진노를 달래는것이다. 14절에 죽은행실이라는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고가야된다 그래서 번제단과 물두멍이 먼저있는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앞에 나갈려면 죄가 예수님의피로 완전히 사해졌지만 육적인몸을 가지고있었던 죄들이 있잖아요 그런것들을 회개하는 것이 정당하잖아요 그러면서 그리스도로 옷입고 들어가는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예배합니다. 이렇게 가는것이다. 예수님의피를 힘입어 내가 당당히 예배할 권세가 권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속했다라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교회와서 당당하게 예배하는것이다 이것이 천국모형이다. 그리고는 그안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말씀대로 해야된다. 말씀전하는자도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해야된다. 내뜻대로 세상돌아가는말을 하면서 바로 불타야된다. 예수님의 피를 힘입고있기 때문에 용서해주는것뿐이지 하나님은 그것을 안받는다. 그렇게 나가는데 나가서 무엇을 하냐 그것이 퀴네오란것이데 입맞추다란것이다. 완전히 복종, 무릎을 끓고 대상을 경배하는것이다. 당신이 나의 주인입니다 내목숨은 당신것입니다. 왕에 대한 경외를 표하는것이다. 하나님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주로 받들고 그앞에 무릎을 끓는것이다 이것을 예배라고한다. 예배를 하러와서 주로 받들고 무릎을 끓나요 아니면 예배드리러 와서 예물드리는 것이 예배인줄알죠 그리고 이제 내리는 복을 받아가고 그게 아니다. 하나님을 주로 모시겠나이다 멋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예배다. 바라크하고 비슷하다. 그렇게 하러 예배당에 오셨나요 아니면 내안에 있는 가득한 죄악의 욕심을 이루려고오셨나요 그것을 멋지게 쇼값으로 포장해서 내안에 죄는 잔득있는데 예배당에 멋진옷을 입고 들어와 봉투를 싹 내밀면 하나님이 받아서 복을주는 것이 예배인줄 알았죠 그 봉투를 왜내나요 복채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쇼값이다. 그것을 바로 죽은행실이라고한다. 성막에서 드리는 예배는 예수님이 완성했다 계속 예수님안에서 하나님앞으로 들어가는것만 남아있는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는제사 영적인예배라고 하고 신령과진정으로 하는예배, 정해놓은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삶가운데 예수님안에서 예수님을 계속 올려드리는것 예수님안에서 하나님앞에 나가 하나님과 교재하는 것을 예배라고한다. 삶을 말한다. 그렇게 산 사람들이 주일날와서 그렇게살았더니 하나님이 멋진일을 하셨다 이런것들을 서로 간증하고 그렇게 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교회는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모형이잖아요 천국잔치를 일주일에 한번하시고 돌아가는것이다. 이해 가나요 쇼보러오신 것이 아니다. 히9: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죄의본질은 그대로 있는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피로 가리고있는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피를 힘입고왔네 하면서 봐주시는것이다. 진노를 멈추시는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행위로 그것을 가릴려고한다 더 멋지게 하면 그것이 쏵가려질것같지요 그것이 자기의라는것이다. 그건 하나님을 놀리는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했다 생명이 없는예배, 하나님을 놀리고 기만하는것이다. 7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죄인에게 나타나는 허물을 속하기 위해서 들어가는것이라는것이다. 그런데 8절부터는 히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성령께서 성막예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란것이다 장막의 규례들, 섬기는예배,예법을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짜말씀하시고자하는 것, 우리에게 깨우치고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게 바로 8절,9절,10절이다. 이게 본질이라는것이다. 그것을 깨우쳐주기위해서 성령이 이렇게 말하고있다란뜻이다. 그러니까 옛날의 습관 구약의 제사에 만족하면 안된다 그것은 비유다. 실체가 아니다 진짜는 이것이다라는 것을 성령이 지금 가르쳐주신다. 성령께서 성막의 이런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똑바로 알고 예배를 해야되는가 그것을 말씀하신다란뜻이다 8절 첫장막(옛날성막)이 서있을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것이라 첫장막이 있는동안에는 아직 지성소로 들어가는길이 열려져있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안열려져있었다 그것이 패하면서 예수님이 휘장을 찢으므로 인해서 그 예배가 폐하여지고 그리스도안으로 새롭고산길이 열리는 예배가 이루어진것이다. 히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예수님이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는데 이것은 비유라는것이다. 제발 똑바로 알고있어야된다 이것을 모르고 예배한다고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것이다 그모습을 보니 죄로분리되어 만신창이가 되어있다란것이다. 예수믿고도 똑같이 이것을 하고있다란것이다. 예배가 하나님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입맞추는것이다. 이 더러운놈하고 입맞추시겠나요 우리가 깨끗해질수가있나요 그런데 깨끗한옷입고와서 그짖을 한다란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속인다란것이다. 이 장막은 장차있게될 일을 비유로 우리에게 보여주고있는것이다. 장차있게될일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제물이고 제사장이 되어서 죄를 완전히 사하고 예수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받으실수있는 예배하는자로 우리가 새롭게되는 것을 말한다. 히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지성소)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보여주는 예표라는것이다.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란것이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환란,핍박이 오니까 상징예배하러 다시 돌아간다란것이다. 첫번째가 열려있지않았다란것이고 두번째는 그것이 전부 비유다. 세번째는 이대로 드리는 예물(코르반,하나님께 가까이나가는 것) 제사가 섬기는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할수없다. 외적,육적인 예배행위 아무리 많이해도 그것이 예배하는 나를 그 양심상 온전케못한다. 양심까지는 터치가 안된다란것이다. 히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오직 육체의 예법에 불과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하고있다. 그러면 예배를 안한것이다. 하나님을 놀리고간것이다. 쇼만하고 간것이다. 예배를 멋지게 드릴려고 노력한것이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다 자꾸 드린다고하니까 봉투를 크게 가지고 와서 드려야될것같다. 옷을 깨끗하게 입고와서 예배를 정화수떠놓고 하는것과 똑같다. 그것을 예배라고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통신앙, 이단적인것들이 그안에 토착화되어서 기독교가 나중에 왔으니까 그위에 올려져있는것이다. 하나님도 그렇게 이단의괴수 섬기듯 되는줄아는것이다. 오늘날 똑같이 하고있다. 하나님이 송아지노릇하는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좀 멋지면 웅장한 감동이오고 눈물도 나고 한편의 멋진영화를 본것같고 그래서 예배를 영화처럼 만든다고한다. 죽어가는자를 살리는 것이 사랑이다. l 양심은 하나님과 전인적인 관계를 말한다. 양심: 헬) 쉬네이데시스 쉰(함께) + 에이도(보다,알다,경험하다) 양심은 의미는 알다, 인식하다 분리되면 하나님을 모른다. 양심이 없는것이다. 쉰(함께)이란 단어는 믿는성도가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뿐만아니라 그리스도와 적극적인 교재안에있는 것을 말한다. 만물이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섯느니라 연합되어 안에있을 때 쉰을 쓴다. 신과함께, 친밀하게 아는관계 에이도: 보다,알다,경험하다 함께 친밀한 관계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알고 경험하는 것이 양심이란뜻이다. 분리된 인간이 멋드러진 예배를 하더라도 양심은 제로다. 그래서 아무리 해서 양심상으로 온전케못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덥을때만 죄가 사해지기 때문에 양심상으로 온전케되는길이 열린것이다. 십자가가 연합이다. 분리되어있으면 매일 죄안에있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낀다. 그러니까 하나님앞에서 계속 예배를 해도 계속 죄의식에서 못벗어나는것이다. 아무리 멋진예배를 해도 죄의식에서 못벗어나는것이다. 하나님과의 전인적인 관계를 말하는데 하나님과 분리된상태에서 아무리 좋은예배행위 멋진삶을 억지로 살아내도 그 양심이 온전케안된다. 아무리 더럽고 추하고 죄인중의 괴수로 살아도 예수님안에 쏙 들어가면 이게 양심이 있는것이다. 양심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거기서 나오는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피를 힘입고들어가면 죄책감이 없는것이다. 왜냐면 예수님이 죄를 사했기 때문이다 죄의몸이 멸했다 그런데 죄지었다고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직도 구약의 쇼하는 백성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그런사람들이 많다.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다.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다 완성했다. 매일 죄를 지어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것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히면 안된다. 교회 열심히 나오면 죄가 가려진듯한 감정이 들지않나요 양심은 친밀한관계안에서 하나님을 보고알고경험하는 것, 영생하고 비슷하다. 그 관계밖에서 아무리 멋진예배를 해도 안변한다. 그래서 그 죄의식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릴수가없는것이다. 예배라는 멋진 행위를 올려드리고 받는 양심이 아니잖아요 오직 예수님이 행하신 그 예배,제사를 완성하신것에 들어가서 그냥 누리는것이다. 공짜다. 그러니까 양심에 가책이 있다면 율법아래서 예배하고있는사람들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다면, 그럼 더 멋지게하면 그 죄책감이 없어지나요 가짜다 그래서 많은사람들이 많이 예배하고 잘난척한다. 그래서 한번 예배하는사람들을 꾸짖는다. 그렇게 멋지게 예배활동을 한사람들은 아주 높이 올라가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 그것은 하나님없이도 내가 이런 멋진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영역안에 들어가있는것이다. 그것을 히브리스(교만)라고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의영역을 넘보는것이다 절대 의로워질수없는데 예배행위를 통해서 의롭다고 높이 하나님자리에 가있는것이다. 친밀하고 밀접한관계를 통해서 경험하여 아는 것이 양심이고 그런 경험을 못하게되면 예배행위를 아무리 많이해도 죄책감을 가지고있는것이다. 사59: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죄의본질을 가지고있으니까 연합이 안된다. 연합이 되는 것이 양심인데 이 분리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혼돈,공허,흑암이 계속 나오는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하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수가 없던것이다. 연합되어야 그것들이 없어지고 새로운피조물이되지는것인데 예배행위 아무리해도 양심상 온전케못되는것이다. 육적인 행위로는 죄를 없애고 하나님께 나가 친밀한 교재를 할수있도록 인도하지못한다. 오직 그리스도예수안에서만 가능한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예수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영적인 예배를 하라고 말하는것이다. 그래서 생각,지식,도덕 이런것들은 양심하고 좀 다르다. 육적인 단어다. 양심은 영적인 단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 하나님앞에서 나의상태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양심이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죄밖에 안보인다. 왜냐면 율법은 죄인이라는 것을 지적하기위해서 있는것이기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회개할것밖에 없는것이다. 예수그리스도안에 있으면 그게 없다. 그래서 헛된예배속으로 옛날로 다시 돌아가겠느냐를 반문하고있는것이다. 이게 아니고 이것은 비유고 이것은 육체의 예법이고 이것은 양심상 온전케할수도없고 예수님이 올때까지만 적용되었던것인데 이제 예수님이 오셨다가 성령이 오셨는데 너희가 환란,고통,괴로움이 오니까 문제해결하기위해서 옛날로 다시 돌아가서 금욕적인예배, 이상한 예배행위를 더 해서 해보겠다고 그것을 없애고 새것을 주셔서 완전케하시기위해서 오셨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겠다고 완전케하신 예수님을 배신하고 불완전한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하겠다고 이말이다 우리가 예배라고 하고있는 것이 이것을 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전혀 몰랐던것이다. 양심이 전혀없는것이다. 제사는 잘지냈다 절기는 철저하게 지켰다 전혀 몰랐던것이다. 그래서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게 예배다. 예수님의 피가 양심을 깨끗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예수님의피를 힘입어 나가는 제사지 내행위 내잘남, 나의 무언가를 가지고나가 양심에 위로를 받고 이런 것이 아니다 다 속임수다. 인간은 본질상 연약하고 더럽고 부정하고 죄밖에 없는존재다 그런존재가 예배행위를 통해서 깨끗하다라고 말하수없다 오직 예수님만으로 가능한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