昭公 13年(紀元前 529年)
十三年春, 叔弓圍費, 弗克, 敗焉. 平子怒, 令見費人執之, 以爲囚俘. 冶區夫曰 : 「非也. 若見費人, 寒者衣之, 飢者食之, 爲之令主, 而共其乏困, 費來如歸, 南氏亡矣, 民將叛之, 誰與居邑? 若憚之以威, 懼之以怒, 民疾而叛, 爲之聚也, 若諸侯皆然, 費人無歸, 不親南氏, 將焉入矣?」 平子從之, 費人叛南氏.
십삼년춘, 숙궁위비, 불극, 패언. 평자노, 영견비인집지, 이위수부. 야구부왈 : 「비야. 약견비인, 한자의지, 기자식지, 위지령주, 이공기핍곤, 비래여귀, 남씨망의, 민장반지, 수여거읍? 약탄지이위, 구지이노, 민질이반, 위지취야, 약제후개연, 비인무귀, 불친남씨, 장언입의?」 평자종지, 비인반남씨.
[解釋] 소공 13년 봄에, 叔弓이 費揖을 포위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패전하였다. 계평자가 노하고, 명령하여 비읍 사람을 보거든 체포하여, 포로를 삼으라고 하였다. 노나라 대부 야구부가 말하기를, 「이것은 옳지 않은 계책이다. 그렇게 하지 말고 만약 비읍 사람을 보거든, 의복이 없어서 떠는 사람에게는 옷을 입혀 주고, 먹을 것이 없어 주리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먹여 주어, 이들의 좋은 주인이 되어서, 그들의 빈궁함과 곤액을 한가지로 하면, 비읍 사람들의 돌아옴이 제 집으로 오는 것 같고, 南氏가 망하리니, 백성이 이반한 다음에야, 누구와 함께 비읍을 지키겠는가? 이와는 달리 위력으로 탄압하고, 분노하여 두렵게 한다면, 백성이 우리를 미워하여 배반하여, 남씨를 위해서 모여 단결할 것이니, 만약에 제후들이 모두 그렇다면, 비읍 사람은 돌아갈 데가 없으리니, 남씨를 친근하지 않고, 장차 어디로 들어갈 것인가?」라고 하였다. 계평자가 이 계책을 따랐더니, 다음 해 費邑 사람이 南氏를 배반하였다.
楚子之爲令尹也, 殺大司馬薳掩, 而取其室, 及卽位, 奪薳居田. 遷許而質許圍. 蔡洧有寵於王, 王之滅蔡也, 其父死焉. 王使與於守而行申之會, 越大夫戮焉. 王奪鬪韋龜中犨, 又奪成然邑, 而使爲郊尹.
초자지위령윤야, 살대사마위엄, 이취기실, 급즉위, 탈위거전. 천허이질허위. 채유유총어왕, 왕지멸채야, 기부사언. 왕사여어수이행신지회, 월대부육언. 왕탈투위구중주, 우탈성연읍, 이사위교윤.
[解釋] 楚나라 영왕이 令尹으로 있을 때, 大司馬 薳掩을 죽여, 그 가재를 빼앗고, 임금이 된 뒤에는, 위엄이 집안 薳居의 땅까지 빼앗았다. 또 영왕은 허나라를 멸해서 옮기고 허나라 대부 위를 볼모로 잡아 두었다. 또 蔡나라 洧는 초나라 영왕에게 벼슬을 하여 총애를 받았는데, 영왕이 채나라를 멸망시키자, 채나라에 있던 유의 아버지는 죽음을 당했다. 또 옛날에서 회합을 열었을 때 월나라 대부로 있던 常壽過가 초나라 여왕에게 창피를 당한 일이 있다. 그 후 영왕은 이유로 하여금, 빼앗은 채나라 땅에, 유수를 삼아 놓고 간계로 떠났다.
蔓成然故事蔡公. 故薳氏之族及薳居許圍蔡洧蔓成然, 皆王所不禮也. 因羣喪職之族啓越大夫常壽過作亂, 圍固城, 克息舟, 城而居之. 觀起之死也, 其子從在蔡事朝吳曰 : 「今不封蔡, 蔡不封矣. 我請試之.」
만성연고사채공. 고위씨지족급위거허위채유만성연, 개왕소불례야. 인군상직지족계월대부상수과작난, 위고성, 극식주, 성이거지. 관기지사야, 기자종재채사조오왈 : 「금불봉채, 채불봉의. 아청시지.」
[解釋] 그런데 이 蔓成然은 본래 지금 채나라의 옛 왕 책임바인 채공을 초나라 왕으로 추대하려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薳氏의 일족과 薳居 許나라의 圍, 蔡나라의 洧 蔓成然 등이, 모두 영왕에게 예우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라. 이들은 또 실직하여 영왕을 원망하는 다른 여러 대부들과 창피를 당하여 월나라 대부 常壽過와 합세해서 난을 일으켜, 固城을 포위하고, 息舟를 빼앗아, 城을 접수하고 점거하고 있었다. 한편 초나라에서 빼앗은 채나라 옛 땅에서는 觀起가 죽은 뒤. 그의 관종이 옛 채나라 대부 조오를 섬기고 있는데 관중이 조오에게 말하기를, 「지금이야말로 우리 채나라를 다시 광복하지 못하면, 우리 채나라를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제가 일을 한번 꾸며 보겠습니다.」고 하고서,
以蔡侯之命召子干子晳, 及郊, 而告之情, 强與之盟, 入襲蔡. 蔡公將食, 見之而逃. 觀從使子干食坎用牲加書, 而速行. 己徇於蔡曰 : 「蔡公召二子將納之, 與之盟而遣之矣, 將師而從之.」
이채후지명소자간자석, 급교, 이고지정, 강여지맹, 입습채. 채공장식, 견지이도. 관종사자간식감용생가서, 이속행. 기순어채왈 : 「채공소이자장납지, 여지맹이견지의, 장사이종지.」
[解釋] 채공의 명령으로 진나라에 도망가 있는 자간과 정나라로 도망가 있는 자석을 채공이 있는 곳으로 불러들여, 그들이 교외에 도착하자, 이 일을 채공 몰래 관중이 꾸민 일임을 알리고, 그들과 억지로 맹세를 하고, 채공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때 채공은 마침 식사를 하려다가, 이들을 보자 무슨 영문이지를 몰라 숨어 버렸다. 그래서 관중은 자간에게 채공이 물려 준 음식을 들게 하고 자기는 구덩이를 파고 희생으로 쓴 소피를 파묻고 맹세한 문서도 그 위에 파묻고 나서, 자간에게 빨리 채공의 공궁에서 나가게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채나라로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蔡公이 자간과 자석을 불러들여, 동맹을 맺고 그들을 다시 초나라로 들여보내고, 군사를 거느리고 위를 따를 것이다.」고 꾸며냈다.
蔡人聚, 將執之, 辭曰 : 「失賊成軍, 而殺余, 何益?」 乃釋之. 朝吳曰 : 「二三子若能死亡, 則如違之, 以待所濟, 若求安定, 則如與之, 以濟所欲. 且違上, 何適而可?」
채인취, 장집지, 사왈 : 「실적성군, 이살여, 하익?」 내석지. 조오왈 : 「이삼자약능사망, 즉여위지, 이대소제, 약구안정, 즉여여지, 이제소욕. 차위상, 하적이가?」
[解釋] 이어 채나라 사람들은 모여들어, 관종을 잡으려 하자, 관종은 말하기를, 「모반을 꾀한 사람은 달아났고 군사들도 출동하려는데, 나를 잡아, 무슨 소용이 있겠소?」라고 하였으므로, 곧 그를 놓아 주었다. 거기에 덧붙여 조오가 말하기를, 「당신들이 만약 초나라 영공을 위해서 죽겠다면, 채공의 명령을 어기고, 나중의 성패를 기다릴 것이고, 만약 안정되기를 구한다면, 채공의 명을 따라, 목적을 달성시켜야 할 것이오. 또한 채공의 영을 어긴다면, 어디에 가서 살 수가 있겠소?」고 하므로,
衆曰 : 「與之.」 乃奉蔡公, 召二子而盟于鄧, 依陳蔡人以國. 楚公子比公子黑肱, 公子棄疾蔓成然, 蔡朝吳帥陳蔡, 不羹許葉之師, 因四族之徒, 以入楚. 及郊, 陳蔡欲爲名, 故請爲武軍, 蔡公知之曰 : 「欲速, 且役病矣, 請藩而已.」 乃藩爲軍.
중왈 : 「여지.」 내봉채공, 소이자이맹우등, 의진채인이국. 초공자비공자흑굉, 공자기질만성연, 채조오솔진채, 불갱허섭지사, 인사족지도, 이입초. 급교, 진채욕위명, 고청위무군, 채공지지왈 : 「욕속, 차역병의, 청번이이.」 내번위군.
[解釋] 모두들 말하기를, 「그렇게 하겠소.」라고 하였다. 이어 蔡公을 받들고, 자산과 자석을 불러들여 등 지방에서 동맹을 맺을 때, 군국을 잃은 陳蔡 두 나라 국민의 힘을 빌어서 대신 그들의 조국을 독립시켜 주기로 했다. 楚나라 公子 比와 公子 黑肱과 公子 棄疾과 蔓成然과 蔡와 朝吳 등이 陳, 蔡와 不羹, 許葉의 군사를 거느리고, 薳氏 許나라, 圍 蔡나라 洧 蔓成然 등 네 집안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초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래서 수도의 성곽밖에 이르자, 陳蔡두 나라가 후대 사람들에게 복수하였다는 명분을 남겨 놓기 위하여, 일부러 보루를 축조하자고 하니, 蔡公이 이를 알아차리고 말하기를, 「지금은 신속히 들어가야 하고, 또 역사를 하여 군사들을 수고롭게 시킬 수가 없으니, 울타리만 만들어 놓읍시다.」고 하므로, 곧 대나무로 울타리만 만들어 보루를 이루어 놓았다.
蔡公使須務牟與史猈先入, 因正僕人殺大子祿及公子罷敵. 公子比爲王, 公子黑肱爲令尹, 次于魚陂. 公子棄疾爲司馬, 先除王宮, 使觀從師于乾谿, 而遂告之, 且曰 : 「先歸復所, 後者劓.」 師及訾梁而潰.
채공사수무모여사패선입, 인정복인살태자록급공자파적. 공자비위왕, 공자흑굉위령윤, 차우어피. 공자기질위사마, 선제왕궁, 사관종사우간계, 이수고지, 차왈 : 「선귀복소, 후자의.」 사급자량이궤.
[解釋] 그리하여 蔡公은 須務牟와 史猈 등 자기로 한패인 두 사람의 초나라 대부를 먼저 들여보내어, 패자의 근신을 끼고서 영왕의 大子인 祿과 公子 罷敵을 죽였었다. 그러고서 공자 자간으로 왕을 삼고, 公子 黑肱으로 令尹을 삼아, 우선 魚陂지방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公子 棄疾로 司馬를 삼아, 먼저 도성으로 들어가 왕궁을 말끔히 소제하게 하는 한편, 觀從으로 하여금 영왕이 있는 乾谿지방으로 가서, 영왕을 살펴보고, 또 이르기를, 「돌아오는 자는 이전과 같이 복직되어 살 것이고, 뒤에 쳐져 오는 자는 코를 베는 형벌을 받들 것이다.」고 하게 했다.
王聞羣公子之死也, 自投于車下曰 : 「人之愛其子也, 亦如余乎?」 侍者曰 : 「甚焉. 小人老而無子, 知擠于溝壑矣.」 王曰 : 「余殺人子多矣, 能無及此乎?」
왕문군공자지사야, 자투우거하왈 : 「인지애기자야, 역여여호?」 시자왈 : 「심언. 소인노이무자, 지제우구학의.」 왕왈 : 「여살인자다의, 능무급차호?」
[解釋] 이에 영왕이 군사를 돌이켜 訾梁에 이르렀더니 군사들이 흩어져 달아났다. 영왕이 公子들의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니, 스스로 수레서 뛰어내려 주저앉아 말하기를, 「사람들이 그 자식을 사랑함이, 또한 나 같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시종하는 자가 아뢰기를, 「더욱 심하옵니다. 서민들은 늙어 자식이 없으면, 반드시 저 구렁텅이에 나동그라져 죽을 줄을 알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영왕이 말하기를, 「내 남의 아들을 죽인 것이 많으니, 이러한 처지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右尹子革曰 : 「請待于郊, 以聽國人.」 王曰 : 「衆怒不可犯也.」 曰 : 「若入於大都, 而乞師於諸侯.」 王曰 : 「皆叛矣.」 曰 : 「若亡於諸侯. 以聽大國之圖君也.」 王曰 : 「大福不再, 祗取辱焉.」 然丹乃歸于楚.
우윤자혁왈 : 「청대우교, 이청국인.」 왕왈 : 「중노불가범야.」 왈 : 「약입어대도, 이걸사어제후.」 왕왈 : 「개반의.」 왈 : 「약망어제후. 이청대국지도군야.」 왕왈 : 「대복부재, 지취욕언.」 연단내귀우초.
[解釋] 右尹 子革이 아뢰기를, 「청하옵건대 교외에서 기다리시며, 國人 귀족들의 향배를 들어 보소서.」라고 하였다. 영왕이 다시 말하기를, 「군중들의 분노를 침범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아뢰기를, 「그러면 다른 大都邑으로 들어가서, 제후들에게 군사를 청하여 보소서.」라고 하였다. 영왕은 다시 말하기를, 「벌써 모두 배반하여 버렸다.」고 하였다. 아뢰기를, 「그러면 이웃 나라로 도망하시오. 大國에 구원을 청하여 보소서.」라고 하였다. 영왕은 이에 말하기를, 「大福은 다시 오지 않나니, 다만 치욕을 취할 뿐이니라.」고 하였다. 자력도 이에 영왕을 버리고 초나라 도성으로 들어가 버렸다.
王沿夏, 將欲入鄢. 芋尹無宇之子申亥曰 : 「吾父再奸王命, 王弗誅, 惠孰大焉? 君不可忍, 惠不可棄, 吾其從王.」 乃求王, 遇諸棘闈以歸. 夏五月癸亥, 王縊于芋尹申亥氏. 申亥以其二女殉而葬之.
왕연하, 장욕입언. 우윤무우지자신해왈 : 「오부재간왕명, 왕불주, 혜숙대언? 군불가인, 혜불가기, 오기종왕.」 내구왕, 우저극위이귀. 하오월계해, 왕액우우윤신해씨. 신해이기이녀순이장지.
[解釋] 영왕이 한수를 따라, 장차 남으로 내려가 언에 들어가려 하였다. 이때 芋尹 無宇의 아들 申亥가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가 두 번이나 왕의 명령을 위반하였어도, 임금님은 죽이지 않았으니, 은혜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임금은 차마 버릴 수 없고, 은혜도 버릴 수 없으니, 내가 임금님을 시종하겠다.」고 하고서, 곧 임금을 찾아 나서, 棘이라는 마을의 위문에서 만나서 모시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름 5월 癸亥日에, 영왕이 그 집에서 목매어 죽었다. 申亥는 그의 두 딸로서 순장하여 장례를 지냈다.
觀從謂子干曰 : 「不殺棄疾, 雖得國, 猶受禍也.」 子干曰 : 「余不忍也.」 子玉曰 : 「人將忍子, 吾不忍俟也.」 乃行. 國每夜駭曰 : 「王入矣.」 乙卯夜, 棄疾使周走而呼曰 : 「王至矣.」
관종위자간왈 : 「불살기질, 수득국, 유수화야.」 자간왈 : 「여불인야.」 자옥왈 : 「인장인자, 오불인사야.」 내행. 국매야해왈 : 「왕입의.」 을묘야, 기질사주주이호왈 : 「왕지의.」
[解釋] 觀從이 子干을 보고 말하기를, 「棄疾을 죽이지 아니하면, 비록 나라를 회복했더라도, 오히려 화를 당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子干이 나는 차마 하지 못하리라.」고 하니, 子玉이 말하기를, 「기질이 장차 그대를 죽이리니, 나는 차마 기다리지 못하겠소.」라고 하고서, 곧 달아났다. 그러나 도성 안이 저녁마다 떠들썩하여 말하기를, 「영왕이 쳐들어온다.」고 서로 두려워하는데, 乙卯日 밤에, 棄疾이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뛰어 돌아다니며, 영왕이 들어왔다.」고 호통을 치게 하였다.
國人大驚, 使蔓成然走告子干子晳曰 : 「王至矣, 國人殺君司馬, 將來矣. 君若早自圖也, 可以無辱, 衆怒如水火焉, 不可爲謀.」 又有呼而走至者, 曰 : 「衆至矣.」 二子皆自殺.
국인대경, 사만성연주고자간자석왈 : 「왕지의, 국인살군사마, 장래의. 군약조자도야, 가이무욕, 중노여수화언, 불가위모.」 우유호이주지자, 왈 : 「중지의.」 이자개자살.
[解釋] 온 장안 사람들이 크게 놀라 법석을 떨어, 蔓成然을 급히 달려 보내어 子干과 子晳에게 보고하여 말하기를, 「영왕이 들어오자, 국민들이 임금의 사마를 죽이고, 곧 임금을 죽이려고 올 것입니다. 임금께서 만약 일찍이 도모하실 것 같으면, 곤욕이 없으려니와 군중의 노기가 물이나 불길과 같아, 른 계책을 꾀할 도리가 없습니다.」고 하였다. 거기다가 또 호통을 치며 달려 들어오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군중들이 몰려 닥친다.」고 하므로, 子干과 子晳은 이 꾀에 넘어가 자살하고 말았다.
丙辰, 棄疾卽位, 名曰熊居. 葬子干于訾, 實訾敖. 殺囚, 衣之王服, 而流諸漢, 乃取而葬之, 以靖國人. 使子旗爲令尹. 楚師還自徐, 吳人敗諸豫章, 獲其五帥. 平王封陳蔡, 復遷邑. 致羣賂. 施舍寬民, 宥罪擧職.
병진, 기질즉위, 명왈웅거. 장자간우자, 실자오. 살수, 의지왕복, 이유저한, 내취이장지, 이정국인. 사자기위령윤. 초사환자서, 오인패저예장, 획기오수. 평왕봉진채, 복천읍. 치군뢰. 시사관민, 유죄거직.
[解釋] 丙辰日에, 棄疾이 왕위에 나아가서, 이름을 熊居라고 고쳤다. 子干을 訾에 장사지냈으니, 이에 訾敖라고 칭하였다. 죄수를 한 사람 죽여서, 왕의 의복을 입혀, 한수에 떠내려 보냈다가, 건져내어 장사지내어, 국인들로 하여금 영왕이 죽어 장사지낸 줄로 알 게 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만서연으로 영윤을 삼았다. 초나라 군사가 서에서 돌아오는데, 오나라 군대가 예장에서 이를 쳐서 궤멸시키고, 장수 5명을 잡아갔다. 이에 초나라 平王이 陳과 蔡 두 나라를 다시 봉하고, 빼앗았던 읍을 모두 이전대로 회복시켜 주었다. 그리고 중전에 나라를 빼앗으려 일을 일으켰을 때에 받은 재물 등을 모두 돌려주었다. 또 은혜를 베풀고 조세를 포탈한 것을 면제하여 백성의 경제를 너그럽게 하여 주고, 죄인을 용서하여 풀어 주어 폐지되었던 관직을 정비하여 회복시켰다.
召觀從, 王曰 : 「唯爾所欲.」 對曰 : 「臣之先佐開卜.」 乃使爲卜尹. 使枝如子躬聘于鄭, 且致犨櫟之田. 事畢弗致, 鄭人請曰 : 「聞諸道路, 將命寡君以犨櫟, 敢請命.」
소관종, 왕왈 : 「유이소욕.」 대왈 : 「신지선좌개복.」 내사위복윤. 사지여자궁빙우정, 차치주력지전. 사필불치, 정인청왈 : 「문저도로, 장명과군이주력, 감청명.」
[解釋] 觀從을 불러 놓고, 평왕은 말하기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리라.」고 하므로, 관종은 말하기를, 「신의 조상이 복서의 일을 일찍이 맡았었습니다.」고 하여, 곧 그를 卜尹으로 삼았다. 그리고 枝如子躬을 보내어 정나라를 방문하게 하고, 또 주역의 땅을 돌려주게 하였다. 그리고 방문하는 일을 마치고 나서도 오히려 땅을 실지로 돌려주지 않으므로, 정나라 사람이 와서 청하기를, 「풍편에 듣자 하니, 우리 임금에게 犨櫟의 땅을 보내 준다고 하였으니, 감히 그것을 청구합니다.」고 하였다.
對曰 : 「臣未聞命.」 旣復, 王問犨櫟, 降腹而對曰 : 「臣過失命, 未之致也.」 王執其手曰 : 「子毋勤, 姑歸. 不穀有事, 其告子也.」 他年, 芋尹申亥以王柩告, 乃改葬之.
대왈 : 「신미문명.」 기복, 왕문주력, 강복이대왈 : 「신과실명, 미지치야.」 왕집기수왈 : 「자무근, 고귀. 불곡유사, 기고자야.」 타년, 우윤신해이왕구고, 내개장지.
[解釋] 이에 지여자궁이 대답하기를, 「나는 그런 명령을 맡지 못하였습니다.」고 하였다. 정나라 사신이 돌아가자, 평왕이 犨櫟의 일을 물으니, 지여자궁은 웃옷을 벗고 사죄하며 대답하기를, 「신이 잘못하여 명령하신 것을 잊어 버려, 들려주지를 못하였습니다.」고 하였다. 평왕이 그의 손을 잡고, 그대는 스스로 욕되이 굴지 말고, 아직 돌아가 있어라. 뒤에 일이 있거든, 내 그대에게 알리리라.」고 하였다. 다른 해에, 芋尹 申亥가 영왕의 관이 묻힌 곳을 보고하여 왔으므로, 곧 개장하였다.
初靈王卜曰 : 「余尙得天下?」 不吉, 投龜, 詬天而呼曰 : 「是區區者而不余畀, 余必自取之.」 民患王之無厭也. 故從亂如歸. 初共王無冢適, 有寵子五人, 無適立焉.
초영왕복왈 : 「여상득천하?」 불길, 투구, 후천이호왈 : 「시구구자이불여비, 여필자취지.」 민환왕지무염야. 고종난여귀. 초공왕무총적, 유총자오인, 무적입언.
[解釋] 당초에 영왕이 점을 치면서 말하기를, 「내가 오히려 천하를 얻겠는가?」고 하였더니, 불길하므로, 거북을 던져 버리고, 하늘을 크게 꾸짖어 부르짖기를, 「이 조그만 천하를 나에게 주지 아니하니, 내 반드시 스스로 차지하리라.」고 하였다. 백성들이 왕의 자족함이 없는 것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난리를 따르기를 제 입으로 돌아가듯 하였다. 처음에 공왕에게는 적자가 없고, 총애하는 아들 다섯이 있었는데, 누구를 태자로 세워야 할지를 몰랐다.
乃大有事于羣望, 而祈曰 : 「請神擇於五人者, 使主社稷.」 乃徧以璧見於羣望曰 : 「當璧而拜者, 神所立也, 誰敢違之?」
내대유사우군망, 이기왈 : 「청신택어오인자, 사주사직.」 내편이벽견어군망왈 : 「당벽이배자, 신소입야, 수감위지?」
[解釋] 이에 성신과 산천에 큰 제사를 지내게 되자, 기도하기를, 「청컨대 신들은 5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국가를 주관하게 하소서.」라고, 곧 두루 구슬을 가지고 성실과 산천에 보이면서 말하기를, 「구슬을 밟고서 절하는 자는, 신명이 세우는 사람이니, 누가 감히 신의를 어기리오?」고 하였다.
旣乃與巴姬密埋璧於大室之庭, 使五人齊, 而長入拜. 康王跨之, 靈王肘加焉. 子干子晳皆遠之, 平王弱. 抱而入, 再拜, 皆厭紐.
기내여파희밀매벽어대실지정, 사오인제, 이장입배. 강왕과지, 영왕주가언. 자간자석개원지, 평왕약. 포이입, 재배, 개염유.
[解釋] 말을 마치고 나서 공왕의 애첩 巴姬와 함께 비밀히 구슬을 조묘의 뜰에 묻어 놓고 나서, 5인에게 재계하게 하고서, 장유의 차서에 따라 들어와 절하게 하였다. 그런데 강왕은 그 구슬을 파묻은 그 위를 넘어서 지나쳤고, 영왕은 팔이 그 위쪽에만 닿았었다. 子干과 子晳은 모두 멀었고, 平王은 가장 어린 터라, 안겨 들어와서, 두 번 절하였는데, 다 구슬 끈의 위쪽을 눌렀다. 이때 구슬 끈을 조금 보이게 하여서 표지를 하여 놓았었다.
鬪韋龜屬成然焉. 且曰 : 「棄禮違命, 楚其危哉.」 子干歸, 韓宣子問於叔向曰 : 「子干其濟乎?」 對曰 : 「難.」 宣子曰 : 「同惡相求, 如市賈焉, 何難?」
투위귀속성연언. 차왈 : 「기례위명, 초기위재.」 자간귀, 한선자문어숙향왈 : 「자간기제호?」 대왈 : 「난.」 선자왈 : 「동오상구, 여시고언, 하난?」
[解釋] 鬪韋龜가 이러한 소식을 듣고서 그 아들 성연에게 평왕을 받들도록 부탁하고, 또 말하기를, 「장자를 세우는 예를 버리고 구슬로 결정한 것은 천명을 어긴 것이니, 초나라는 위태로워지리라.」고 하였다. 자간이 진나라로부터 초나라로 돌아오자, 진나라에서는 한선자가 숙향에게 묻기를, 「자산은 성공할 수 있겠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어려울 것 같다.」고 하였다. 한선자가 말하기를, 「다 같이 공동으로 미워하며 목적을 찾는 것, 이익을 찾는 시장의 장사꾼과 같으니, 무엇이 어렵겠소?」라고 하였다.
對曰 : 「無與同好, 誰與同惡? 取國有五難, 有寵而無人, 一也, 有人而無主, 二也, 有主而無謀, 三也, 有謀而無民, 四也, 有民而無德, 五也.
대왈 : 「무여동호, 수여동오? 취국유오난, 유총이무인, 일야, 유인이무주, 이야, 유주이무모, 삼야, 유모이무민, 사야, 유민이무덕, 오야.
[解釋] 대답하기를, 「함께 좋아하는 것이 없으니, 또한 함께 미워할 수가 있겠소? 나라를 취득하는 데는 오난이 있으니, 총애만 있고 현인이 없는 것이, 하나요, 현인은 있으되 안으로 내응하는 주인이 없는 것이, 둘이요, 안으로 내응하는 주인이 있으되 책모가 없는 것이, 셋이요, 책모는 있으되 백성이 없는 것이, 넷요, 백성은 따라오되 덕이 없는 것이, 다섯입니다.
子干在晉, 十三年矣, 晉楚之從, 不聞達者, 可謂無人, 族盡親叛, 可謂無主, 無釁而動, 可謂無謀, 爲羈終世, 可謂無民, 亡無愛徵, 可謂無德. 王虐而不忌, 楚君子干, 涉五難以弑舊君, 誰能濟之?
자간재진, 십삼년의, 진초지종, 불문달자, 가위무인, 족진친반, 가위무주, 무흔이동, 가위무모, 위기종세, 가위무민, 망무애징, 가위무덕. 왕학이불기, 초군자간, 섭오난이시구군, 수능제지?
[解釋] 자간이 우리 진나라에 망명하여 와서 있는 지가, 13년이 되지만, 진`초의 사람 중에서 자간에게 상종하는 사람들로서, 현달한 자가 있음을 듣지 못하였으니, 현인이 없다고 이를 수 있고, 친족이 한에 있어서 모두 배반하여 떠났으니, 내응하는 주인이 없다고 이를 만하고, 별달리 큰 흔단도 없는데 동하였으니, 책모가 없다고 이를 만하고, 망명하여 나그네 되어 한평생을 거의 보냈으니, 이는 백성이 없다고 할 만하고, 망명하였어도 애모하는 자가 없으니, 덕이 없는 것이오, 지금 초나라 영왕은 포학하니 꺼리는 바가 없는데, 초나라가 자간으로 임금을 삼고자, 다섯 가지 어려움을 범하면서 옛 임금을 시살하려 하니, 누가 왕위 탈취를 성공할 수 있겠소?
有楚國者, 其棄疾乎? 君陳蔡, 城外屬焉, 苛慝不作, 盜賊伏隱, 私欲不違, 民無怨心, 先神命之, 國民信之. 羋姓有亂, 必季實立, 楚之常也, 獲神, 一也, 有民, 二也, 令德, 三也, 寵貴, 四也, 居常, 五也, 有五利以去五難, 誰能害之?
유초국자, 기기질호? 군진채, 성외속언, 가특부작, 도적복은, 사욕불위, 민무원심, 선신명지, 국민신지. 미성유난, 필계실입, 초지상야, 획신, 일야, 유민, 이야, 영덕, 삼야, 총귀, 사야, 거상, 오야, 유오리이거오난, 수능해지?
[解釋] 초나라를 다스릴 사람은, 棄疾일 것이오. 기질은 陳, 蔡에서 임금 노릇을 하였으니, 초나라 도성 밖이 모두 이에게 연관이 되었고, 가혹하고 악랄한 정사를 하지 않아, 백성들이 도적질을 하거나 임금을 속임이 없었고, 사욕 때문에 백성의 일을 부당하게 그르치지 않아, 백성들이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고, 성신과 산천의 신명이 명하였으니, 국민이 믿을 것이오. 그러므로 초나라의 미성이 난리에 처하면, 반드시 맨 끝에 자손이 황위에 오르는 것이, 초나라의 상정이요, 신명을 얻은 것이, 하나요, 백성이 믿어 귀의하니, 둘이요, 아름다운 덕이, 셋이요, 총애 받는 아들임이, 넷이요, 막내라는 상례에 있는 것이, 다섯이니, 다섯 가지 이익을 가지고서 다섯 난을 제거하면, 뉘라서 능히 이를 해치리오?
子干之官, 則右尹也, 數其貴寵, 則庶子也, 以神所命, 則又遠之, 其貴亡矣, 其寵棄矣, 民無懷焉, 國無與焉, 將何以立?」
자간지관, 즉우윤야, 수기귀총, 즉서자야, 이신소명, 즉우원지, 기귀망의, 기총기의, 민무회언, 국무여언, 장하이입?」
[解釋] 자간의 벼슬은, 별 것이 아닌 우윤이자, 그 신분을 따진다면, 서자이고, 신명의 명하신 것으로 말하면, 또 구슬 끈에서 멀어서 맞지 않았으니, 그 구함은 높지를 못하고, 사랑을 잃었으며, 백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나라 안에 내응하는 친척이 없으니, 장차 어떻게 임금이 되겠소?」라고 하였다.
宣子曰 : 「齊桓晉文不亦是乎?」 對曰 : 「齊桓, 衛姬之子也, 有寵於僖, 有鮑叔牙賓須無, 隰朋以爲輔佐, 有莒衛以爲外主, 有國高以爲內主, 從善如流, 下善齊肅, 不藏賄, 不從欲, 施舍不倦, 求善不厭. 是以有國, 不亦宜乎?
선자왈 : 「제환진문불역시호?」 대왈 : 「제환, 위희지자야, 유총어희, 유포숙아빈수무, 습붕이위보좌, 유거위이위외주, 유국고이위내주, 종선여류, 하선제숙, 부장회, 부종욕, 시사불권, 구선불염. 시이유국, 불역의호?
[解釋] 한선자가 말하기를, 「천하고 서자인 점으로 말하면 제나라 환공이니 진나라 문공이 또한 그러하지 아니했는가요?」고 하니, 숙향이 대답하기를, 「제환공은, 衛姬의 아들로서, 희공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鮑叔牙와 賓須無와 隰朋이 있어서 輔佐하였고, 거`위에 망령 하였을 때에 외가의 유력한 내응자가 있었고, 제나라 상경인 국씨와 고씨가 있어서 국내의 내응자가 되었고, 선을 따르기를 흐르는 물같이 빠르게 하였고, 착한 일을 행할 때는 엄숙하고 공경스럽게 하였으며, 청렴하여 뇌물을 받음이 없었고, 검소하여 욕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은덕을 베풀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고, 착한 일을 찾아 행하기를 싫어하지 아니하였소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차지함은, 또한 당연하지 않습니까?
我先君文公, 狐季嬉之子也, 有寵於獻, 好學而不貳, 生十七年, 有士五人. 有先大夫子餘子犯以爲腹心, 有魏犨賈佗以爲股肱, 有齊宋秦楚以爲外主, 有欒郤狐先以爲內主, 亡十九年, 守志彌篤. 惠懷棄民, 民從而與之.
아선군문공, 호계희지자야, 유총어헌, 호학이불이, 생십칠년, 유사오인. 유선대부자여자범이위복심, 유위주가타이위고굉, 유제송진초이위외주, 유란극호선이위내주, 망십구년, 수지미독. 혜회기민, 민종이여지.
[解釋] 우리 선군 진문공은, 狐季嬉의 아들로서, 진헌공의 총애를 받았고, 학문을 좋아하여 딴 생각이 없었으며, 나이 17세에, 5인의 선비를 차지하였소. 곧 先大夫 子餘와 子犯은 심복이 되고, 魏犨와 賈佗 등은 股肱이 되었으며, 齊나라 宋나라 秦나라 楚나라가 국외의 호응자가 되고, 난지의 극곡과 호돌과 선진 등이 나라 안의 내응자가 되었으며, 망명한 지 19년에, 뜻을 지키기를 더욱 독실하게 하였었소. 그런데다 전혜공과 진희공은 백성들을 돌보지 아니하니, 백성들은 다만 진문광만을 따라 한패가 되었소.
獻無異親, 民無異望, 天方相晉, 將何以代文? 此二君者, 異於子干. 共有寵子, 國有奧主. 無施於民, 無援於外, 去晉而不送, 歸楚而不逆, 何以冀國?」
헌무이친, 민무이망, 천방상진, 장하이대문? 차이군자, 이어자간. 공유총자, 국유오주. 무시어민, 무원어외, 거진이불송, 귀초이불역, 하이기국?」
[解釋] 또 헌공에게는 문공을 빼놓고 다른 친속이 없었고, 백성들도 문공을 제쳐놓고 달리 돌아갈 곳이 없었으며, 하늘도 진나라를 도우려 하는 판국이었으니, 어떻게 문공을 대신할 수 있었겠소. 그러므로 제환공과 진문공 이 두 임금은, 자간과는 다릅니다. 공왕에게는 총애하는 아들이 있고, 초나라에는 지금 궁정 깊숙이 묻혀 있는 왕이 있는데다,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풂이 없었고, 원조함이 없어, 우리 진나라를 떠날 대도 석별하며 보내 주지 않았고, 초나라로 돌아가서도 환영하여 맞이하는 이가 없었으니, 어떻게 나라를 차지하기를 바라겠소?」라고 했다.
晉成虒祁, 諸侯朝而歸者皆有貳心. 爲取郠故, 晉將以諸侯來討, 叔向曰 : 「諸侯不可以不示威.」 乃並徵會, 告于吳. 秋晉侯會吳子于良, 水道不可, 吳子辭, 乃還.
진성사기, 제후조이귀자개유이심. 위취경고, 진장이제후래토, 숙향왈 : 「제후불가이불시위.」 내병징회, 고우오. 추진후회오자우량, 수도불가, 오자사, 내환.
[解釋] 晉나라가 虒祁의 궁성을 완성하자, 諸侯들이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모두 그 사치함을 천시하여 두 가지 마음을 품게 되었다. 노나라의 郠지방을 취하기 위하여, 진나라가 장차 제후를 거느리고 와서 토벌할 때에, 叔向이 말하기를, 「諸侯를 대하는 데 시위로써 하지 않을 수 없도다.」고 하고서, 곧 모두 함께 회합을 열자고 요구하고, 오나라에 고하였다. 가을에 진나라 소공이 오나라 임금을 良지방에서 회합하는데, 수로와 교통이 순조롭지 못하므로, 오나라 임금은 사양하고, 돌아갔다.
七月丙寅, 治兵于邾南, 甲車四千乘. 羊舌鮒攝司馬, 遂合諸侯于平丘. 子産子大叔相鄭伯以會, 子産以幄幕九張行, 子大叔以四十, 旣而悔之, 每舍, 損焉, 及會亦如之.
칠월병인, 치병우주남, 갑거사천승. 양설부섭사마, 수합제후우평구. 자산자태숙상정백이회, 자산이악막구장행, 자태숙이사십, 기이회지, 매사, 손언, 급회역여지.
[解釋] 7월 병인일에, 邾나라 南쪽에 군사를 정비하여 놓으니, 무장한 수레가 4천 승이나 되었다. 숙향의 아우인 羊舌鮒가 사마 직책을 겸임하고, 드디어 제후를 평구에서 회합하였다. 子産과 子大叔이 정나라 임금을 도와서 회합에 임할 때에, 子産은 천막 9장을 사가지고, 子大叔은 사십 벌을 준비하였는데, 너무 많은 것을 후회하여, 숙사를 옮겨올 때마다, 감손하여, 회의 날짜에 이르러서는 역시 자산의 9장과 같게 하였다.
次于衛地, 叔鮒求貨於衛, 淫芻蕘者. 衛人使屠伯饋叔向羹與一篋錦曰 : 「諸侯事晉, 未敢攜貳. 況衛在君之宇下, 而敢有異志? 芻蕘者異於他日, 敢請之.」
차우위지, 숙부구화어위, 음추요자. 위인사도백궤숙향갱여일협금왈 : 「제후사진, 미감휴이. 황위재군지우하, 이감유이지? 추요자이어타일, 감청지.」
[解釋] 이때 제후의 군사들이 위나라 땅에 주둔하였는데, 오나라 양설부는 재화를 위나라로부터 바치게 하기 위하여, 풀을 베고 나무하는 사람에게 난폭하게 일을 시켰다. 그래서 위나라 사람이 대부 도백을 시켜 숙향에게 갱과 한 상자의 비단을 보내고 말하기를, 「제후들이 진나라를 섬기는 데, 감히 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위나라는 진나라 임금의 지붕 밑에 있는 것과 같이 가까우니, 감히 다른 뜻을 두겠습니까? 소꼴을 베고 나무하는 자들이 전과 다르니, 감히 금하여 주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叔向受羹反錦曰 : 「晉有羊舌鮒者, 瀆貨無厭, 亦將及矣. 爲此役也, 子若以君命賜之, 其已.」 客從之, 未退而禁之.
숙향수갱반금왈 : 「진유양설부자, 독화무염, 역장급의. 위차역야, 자약이군명사지, 기이.」 객종지, 미퇴이금지.
[解釋] 이에 숙향은 羹은 받고 비단은 돌려보내면서 말하기를, 「晉나라에 羊舌鮒라는 자가 있어, 뇌물을 여러 번 요구하여 쉴 줄을 모르니, 또한 그 화액이 미치리라. 이러한 일을 하고 있으니, 그대는 만약 위나라 임금의 명령으로 주는 것이다 하여, 그에게 주면 금지시킬 것이오.」하였다. 도백이 이대로 따라서 하니, 사자가 물러나오기도 전에 금지되었다.
晉人將尋盟, 齊人不可. 晉侯使叔向告劉獻公曰 : 「抑齊人不盟, 若之何?」 對曰 : 「盟以厎信, 君苟有信, 諸侯不貳, 何患焉? 告之以文辭, 董之以武師, 雖齊不許, 君庸多矣. 天子之老請帥王賦, 元戎十乘, 以先啓行, 遲速唯君.」
진인장심맹, 제인불가. 진후사숙향고유헌공왈 : 「억제인불맹, 약지하?」 대왈 : 「맹이지신, 군구유신, 제후불이, 하환언? 고지이문사, 동지이무사, 수제불허, 군용다의. 천자지노청솔왕부, 원융십승, 이선계행, 지속유군.」
[解釋] 晉나라 사람이 장차 종전의 맹세를 재확인하려 하는데, 제나라 사람이 옳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진나라 임금이 숙향으로 하여금 제나라의 경사인 劉獻公에게 고하게 하기를, 「도대체 제나라 사람이 동맹을 재호가인하지 아니하니, 어째서입니까?」고 하였다. 유헌공이 대답하기를, 「맹세한 신의를 극진하게 하는 것이오. 진나라 임금께서 진실로 신의를 갖고 있다면, 제후가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니, 무엇을 걱정하겠소? 文辭로써 와서 고하고, 무력으로써 군사를 감독하니, 비록 제나라가 허락하지 않아도, 당신네 임금의 공은 큽니다. 천자의 대부가 왕의 군사를 청하여 다스려 거느리고, 융거 10승으로, 선두에 서서 길을 열어, 조만간 당신네 임금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고 하였다.
叔向告于齊曰 : 「諸侯求盟, 已在此矣. 今君弗利, 寡君以爲請.」 對曰 : 「諸侯討貳, 則有尋盟, 若皆用命, 何盟之尋?」
숙향고우제왈 : 「제후구맹, 이재차의. 금군불리, 과군이위청.」 대왈 : 「제후토이, 즉유심맹, 약개용명, 하맹지심?」
[解釋] 이에 숙향이 제나라에 고하기를, 「제후가 맹약을 바라, 이미 이 땅에 이르렀소. 그런데 이제 제나라 임금이 찬성하지 아니하므로, 우리 임금님께서 특별히 청하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제나라 사람은 대답하기를, 「제후들이 두 마음을 가진 자들을 토벌한다면, 곧 동맹을 재확인하겠거니와, 만약 모두 명령에 복종할진댄, 어찌 동맹을 재확인 하리오?」고 하였다.
叔向曰 : 「國家之敗, 有事而無業, 事則不經, 有業而無禮, 經則不序, 有禮而無威, 序則不共, 有威而不昭, 共則不明, 不明棄共, 百事不終. 所由傾覆也.
숙향왈 : 「국가지패, 유사이무업, 사즉불경, 유업이무례, 경즉불서, 유례이무위, 서즉불공, 유위이불소, 공즉불명, 불명기공, 백사부종. 소유경복야.
[解釋] 叔向이 말하기를, 「국가의 패망은, 제후들에게 조현과 회합의 일은 있으되 공부의 업이 없으면, 일이 정상적인 것이 못되고, 業은 있으되 예가 없으면, 정상적인 차서가 서지 못하며, 禮는 있으되 위엄이 없으면, 차서가 공경스럽지 못하고, 위엄은 있으되 분명하지 않으면, 공경함이 밝지 못하나니, 밝지 못하여 공경을 버리면, 백 가지 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오. 그래서 국가가 전복되는 것이오.
是故明王之制, 使諸侯歲聘以志業, 間朝以講禮, 再朝而會以示威, 再會而盟以顯昭明. 志業於好, 講禮於等, 示威於衆, 昭明於神, 自古以來, 未之或失也.
시고명왕지제, 사제후세빙이지업, 간조이강례, 재조이회이시위, 재회이맹이현소명. 지업어호, 강례어등, 시위어중, 소명어신, 자고이래, 미지혹실야.
[解釋] 그러므로 현명한 왕의 제도는, 제후로 하여금 해마다 방문하여 그 맡은 업을 기로가게 하고, 3년 만에 한 번씩 조회하여 예절을 강론하고, 6년 만에 한 번씩 회합을 약속하여 위엄을 표시하고, 12년 만에 한 번씩 회맹하여 신의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오. 업을 닦아 기록하는 것은 교호하는 데 있으며, 상하의 예를 강론하는 것은 같은 동렬에 있으므로 조빙하게 하며, 위엄을 밝히는 것은 무리를 취합하는 데 있으므로 회합하게 하며, 맹세의 신의를 밝히는 것은 신명에게 고하는 데 있으므로 그래서 맹약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들은 예로부터, 조금도 어김이 없소.
存亡之道, 恒由是興. 晉禮主盟, 懼有不治, 奉承齊犧, 而布諸君, 求終事也, 君曰, '余必廢之.' 何齊之有? 唯君圖之. 寡君聞命矣.」
존망지도, 항유시흥. 진례주맹, 구유불치, 봉승제희, 이포저군, 구종사야, 군왈, '여필폐지.' 하제지유? 유군도지. 과군문명의.」
[解釋] 그래서 보존하거나 멸망하는 도리가, 항상 이로부터 말미암아 일어나오? 진나라가 선왕`선공의 예에 의하여 제후의 맹약을 주관함에, 잘못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맹세하는 희행을 봉승하여, 제나라 임금에게 고하는 것은, 일을 잘 마치기를 구하는 것이어늘, 임금님께서 이르시기를, '내 반드시 이를 폐하고 말리라.'고 하니, 어찌 맹세할 수 있으리오? 오직 임금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를 생각하여 도모하십시오. 우리 임금님께서는 오직 결정하시는 명령을 따를 것이오.」고 하였다.
齊人懼, 對曰 : 「小國言之, 大國制之, 敢不聽從? 旣聞命矣, 敬共以往, 遲速唯君.」 叔向曰 : 「諸侯有間矣, 不可以不示衆.」
제인구, 대왈 : 「소국언지, 대국제지, 감불청종? 기문명의, 경공이왕, 지속유군.」 숙향왈 : 「제후유간의, 불가이불시중.」
[解釋] 이에 제나라 사람이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소국이 사정으로써 말하였는데, 대국이 예의로써 제재하시니, 감히 명령대로 듣지 않겠습니까? 이미 명령을 듣기로 하였으니, 우리 임금님께서 공경을 다하여, 가서 오직 시행하겠습니다.」고 하였다. 叔向이 말하기를, 「제후들 사이에 간극이 있으니, 군대의 시위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소.」라고 했다.
八月辛未, 治兵, 建而不旆, 壬申, 復旆之, 諸侯畏之. 邾人莒人旆愬于晉曰 : 「魯朝夕伐我, 幾亡矣, 我之不共, 魯故之以.」
팔월신미, 치병, 건이불패, 임신, 부패지, 제후외지. 주인거인패소우진왈 : 「노조석벌아, 기망의, 아지불공, 노고지이.」
[解釋] 8월 신미일에, 전투 연습을 할 때, 정기만을 세우고 실전할 때면 세우는 패기를 달지 않았는데, 壬申日에, 다시 패기를 다니, 제후들이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주나라 사람과 거나라 사람이 진나라에 참소하기를, 「노나라가 조석으로 우리를 침범하여, 거의 멸망하게 되었으니,
우리들이 진나라에 조공하지 못하는 것은, 노나라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晉侯不見公, 使叔向來辭曰 : 「諸侯將以甲戌盟, 寡君知不得事君矣, 請君無勤.」 子服惠伯對曰 : 「君信蠻夷之訴, 以絶兄弟之國, 棄周公之後, 亦唯君. 寡君聞命矣.」
진후불견공, 사숙향래사왈 : 「제후장이갑술맹, 과군지부득사군의, 청군무근.」 자복혜백대왈 : 「군신만이지소, 이절형제지국, 기주공지후, 역유군. 과군문명의.」
[解釋] 그래서 진나라 임금이 노나라 소공을 보지 않고, 숙향을 보내어 와서 말하기를, 「제후들이 장차 갑술일에 맹세하려 하는데, 우리 임금님께서 노나라 임금님을 섬길 줄을 알지 못하겠으니, 청컨대 임금님께서는 수고로이 내회하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子服惠伯이 대답하기를, 「진나라 임금님께서 오랑캐의 참소를 듣고서, 형제의 나라를 끊고, 周公의 후손을 버리니, 또한 진나라 임금님의 명을 말하시오. 우리 임금님께서 명을 듣겠습니다.」고 하였다,
叔向曰 : 「寡君有甲車四千乘在, 雖以無道行之, 必可畏也, 況其率道, 其何敵之有? 牛雖瘠, 僨於豚上, 其畏不死. 南蒯子仲之憂, 其庸可棄乎? 若奉晉之衆, 用諸侯之師, 因邾莒杞鄫之怒, 以討魯罪, 間其二憂, 何求而弗克?」 魯人懼, 聽命.
숙향왈 : 「과군유갑거사천승재, 수이무도행지, 필가외야, 황기솔도, 기하적지유? 우수척, 분어돈상, 기외불사. 남괴자중지우, 기용가기호? 약봉진지중, 용제후지사, 인주거기증지노, 이토노죄, 간기이우, 하구이불극?」 노인구, 청명.
[解釋] 이에 숙향이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께서 甲車 4천 승을 가지고 와 있으니, 설사 도리가 없이 사용한다 하여도, 반드시 두려워 만하거든, 하물며 그 도리에 의하여 쳐들어온다면, 어찌 대적할 수 있으리오. 소가 비록 말랐다 하여도, 돼지 위에 엎어지면, 그 돼지가 죽지 아니하겠소? 南蒯와 子仲의 어려움을, 그 어찌 잊을 수 있겠소. 만약에 우리 진나라의 군사를 중심으로, 제후의 군사를 이용하고, 邾, 莒, 杞, 鄫의 노여운 기운을 빌어, 노나라의 죄를 토벌하되, 저 남괴와 자중의 두 가지 걱정이, 또 그 사이에 타고 들면 어찌 이기지 못하리오?」고 하였다. 이에 노나라 사람이 두려워하여, 명령을 따르기로 하였다.
甲戌, 同盟于平丘, 齊服也. 令諸侯日中造于除. 癸酉, 退朝, 子産命外僕速張於除. 子大叔止之, 使待明日. 及夕, 子産聞其未張也, 使速往, 乃無所張矣.
갑술, 동맹우평구, 제복야. 영제후일중조우제. 계유, 퇴조, 자산명외복속장어제. 자태숙지지, 사대명일. 급석, 자산문기미장야, 사속왕, 내무소장의.
[解釋] 甲戌日에, 平丘에서 동맹을 맺으니, 제나라가 복종하였기 때문이었다. 진나라 제후들에게 명령하여 정오에 동맹을 맺을 단을 만들라고 하였다. 癸酉日에, 자산이 먼저 진나라에 조회하고 나오자, 종들에게 명하여 속히 이루어 놓은 단에 천막을 치라고 하였다. 子大叔은 이를 제하여, 내일 치자고 기다리게 하였다. 저녁때가 되어서, 자산이 천막을 치지 않았음을 알고서, 빨리 가서 치게 하였으나, 이미 꽉 차서 칠 곳이 없었다.
及盟, 子産爭承曰 : 「昔者天子班貢, 輕重以列, 列尊貢重, 周之制也. 卑而貢重者, 甸服也, 鄭伯, 男也, 而使從公侯之貢, 懼弗給也. 敢以爲請. 諸侯靖兵, 好以爲事, 行理之命無月不至. 貢之無藝, 小國有闕. 所以得罪也. 諸侯修盟, 存小國也, 貢獻無極, 亡可待也. 存亡之制, 將在今矣.」
급맹, 자산쟁승왈 : 「석자천자반공, 경중이열, 열존공중, 주지제야. 비이공중자, 전복야, 정백, 남야, 이사종공후지공, 구불급야. 감이위청. 제후정병, 호이위사, 행리지명무월부지. 공지무예, 소국유궐. 소이득죄야. 제후수맹, 존소국야, 공헌무극, 망가대야. 존망지제, 장재금의.」
[解釋] 드디어 동맹을 하는 집회가 열리자, 자산은 공부의 차서를 가지고 다투어 말하기를, 「옛적에 천자께서 공부를 정하실 때, 경중을 열위로써 기준삼아, 위가 높으면 공부가 중한 것이, 주나라의 제도입니다. 위가 낮아도 공부가 중한 자는, 천자의 기내인 전복이니, 정나라는 백남의 나라이거늘, 공후의 공부와 같이 따라하게 하니, 공급하여 대지 못함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감히 청하는 바입니다. 제후들이 전쟁을 쉬어 편안한 것은, 좋게 일을 하려는 것인데, 예를 받들어 행하는 사신을 방문하게 하려는 명이 오지 않는 달이 없습니다. 공부에도 표준이 없어, 소국은 모자라. 이것이 대국에게 죄를 얻는 까닭이 됩니다. 제후가 맹세를 닦는 것은, 소국을 보존하려는 것인데, 공부의 납부에 한도가 없으면, 멸망할 것은 뻔한 일이라. 보존되느냐 멸망하느냐 제도가 장차 오늘날 법을 세우기에 달려 있습니다.」고 하였다.
自日中以爭, 至于昏, 晉人許之. 旣盟, 子大叔咎之曰 : 「諸侯若討, 其可瀆乎?」 子産曰 : 「晉政多門, 貳偸之不暇, 何暇討? 國不競亦陵, 何國之爲?」
자일중이쟁, 지우혼, 진인허지. 기맹, 자태숙구지왈 : 「제후약토, 기가독호?」 자산왈 : 「진정다문, 이투지불가, 하가토? 국불경역릉, 하국지위?」
[解釋] 그리하여 한낮으로부터 쟁의하여, 황혼에 이르자, 진나라 사람이 이를 허락하였다. 이윽고 맹세하고 나서, 子大叔이 이를 책망하기를, 「제후가 만약 와서 토벌하면, 쉽사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고 하였다. 이에 자산이 말하기를, 「진나라의 정사는 한 사람의 집에서 나오지 않으니, 두 번식이나 구차한 일을 할 겨를이 없으므로, 어느 겨를 에 토벌하여 오리오? 나라가 강하지 못하면 남의 침략을 받나니. 어찌 나라가 될 수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公不與盟. 晉人執季孫意如, 以幕蒙之, 使狄人守之. 司鐸射懷錦, 奉壺飮冰, 以蒲伏焉, 守者御之, 乃與之錦而入. 晉人以平子歸, 子服湫從. 子産歸, 未至, 聞子皮卒哭, 且曰 : 「吾已. 無爲爲善矣? 唯夫子知我.」
공불여맹. 진인집계손의여, 이막몽지, 사적인수지. 사탁역회금, 봉호음빙, 이포복언, 수자어지, 내여지금이입. 진인이평자귀, 자복추종. 자산귀, 미지, 문자피졸곡, 차왈 : 「오이. 무위위선의? 유부자지아.」
[解釋] 노나라 임금은 진나라가 주나라와 거나라의 참소를 믿어 노나라를 토벌하려는 것을 염려하였으므로 맹세에 참여하지 않았다. 진나라 사람이 季孫意如를 체포하여, 천막 속에 가두고, 적인을 시켜 파수 보게 하였다. 노나라 대부 사택역이 비단을 품고, 얼음 물병을 받들어 들고, 엎드려 들어가자, 지키는 자가 막으므로, 곧 비단을 주고서 들어가 먹였다. 진나라 사람이 季孫意如를 데리고 가자, 子服湫가 따라갔다. 子産이 돌아가는데, 아직 다 가지 못하여, 子皮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바탕 곡을 하고, 또 말하기를, 「나도 끝났다. 내 누구를 위하여 좋은 일을 할 것인가? 다만 그분만이 나를 알아주었는데.」라고 하였다.
仲尼謂 : 「子産於是行也, 足以爲國基矣. ≪詩≫曰, '樂只君子, 邦家之基.' 子産, 君子之求樂者也.」 且曰 : 「合諸侯, 藝貢事, 禮也.」
중니위 : 「자산어시행야, 족이위국기의. ≪시≫왈, '낙지군자, 방가지기.' 자산, 군자지구락자야.」 차왈 : 「합제후, 예공사, 예야.」
[解釋] 仲尼가 자산을 평하기를, 「자산이 이번 행차에서, 훌륭히 나라의 근기를 만들었도다. ≪詩經≫에 이르되, '화락한 군자여, 나라의 기본이다.'라고 하였으니, 子産은 군자의 낙을 구하는 자로다.」고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제후가 회합하여 맹세할 때, 공부를 마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은, 예의에 맞는다.」고 하였다.
鮮虞人聞晉師之悉起也, 而不警邊, 且不修備. 晉荀吳自著雍, 以上軍侵鮮虞, 及中人. 驅衝競, 大獲而歸.
선우인문진사지실기야, 이불경변, 차불수비. 진순오자저옹, 이상군침선우, 급중인. 구충경, 대획이귀.
[解釋] 鮮虞人들이 진나라 군사가 전부 동하여 갔다는 소식을 듣고서, 변경을 경계하지 않고, 또 방비를 하지도 않았다. 진나라 荀吳가 著雍지방으로부터, 上軍으로써 鮮虞를 침략하여, 중인성에까지 이르렀다. 충거를 몰아 적들과 싸워, 크게 노획하여 돌아왔다.
楚之滅蔡也, 靈王遷許胡沈道房申於荊焉. 平王卽位, 旣封陳蔡而皆復之, 禮也. 隱大子之子廬歸于蔡, 禮也. 悼大子之子吳歸于陳, 禮也.
초지멸채야, 영왕천허호침도방신어형언. 평왕즉위, 기봉진채이개복지, 례야. 은태자지자여귀우채, 예야. 도태자지자오귀우진, 예야.
[解釋] 초나라가 채나라를 멸망시키자, 靈王이 許, 胡, 沈, 道, 房, 申들을 형산으로 옮기게 했다. 平王이 즉위하자, 이미 陳나라, 蔡나라를 봉하여 주고 작은 나라도 모두 회복하여 주었으니,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隱大子의 아들 廬가 蔡나라로 돌아왔으니, 예에 맞는 일이었다. 悼大子의 아들 吳가 陳나라로 돌아 왔으니, 이것도 예에 맞는 일이다.
冬十月, 葬蔡靈公, 禮也. 公如晉, 荀吳謂韓宣子曰 : 「諸侯相朝, 講舊好也, 執其卿而朝其君, 有不好焉. 不如辭之.」 乃使士景伯辭公于河.
동십월, 장채영공, 예야. 공여진, 순오위한선자왈 : 「제후상조, 강구호야, 집기경이조기군, 유불호언. 불여사지.」 내사사경백사공우하.
[解釋] 겨울 10월에, 蔡나라 靈公을 장사지냈으니,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노나라 소공이 진나라에 갔더니, 荀吳가 韓宣子에게 말하기를, 「諸侯가 서로 조빙하는 것은, 구정의 아름다움을 강구하는 것인데, 이제 그 경대부를 가둬 놓고 그 임금의 조회를 받는 것은, 좋지 않소. 그러니 이를 사양하느니만 같지 못하오.」라고 하고서, 곧 士景伯을 보내어 노나라 임금을 황하가에 가서 오지 말라고 하였다.
吳滅州來, 令尹子旗請伐吳. 王弗許曰 : 「吾未撫民人, 未事鬼神, 未修守備, 未定國家, 而用民力, 敗不可悔. 州來在吳, 猶在楚也, 子姑待之.」
오멸주래, 영윤자기청벌오. 왕불허왈 : 「오미무민인, 미사귀신, 미수수비, 미정국가, 이용민력, 패불가회. 주래재오, 유재초야, 자고대지.」
[解釋] 吳나라 사람이 州來를 멸하자, 초나라 令尹子旗가 오나라를 토벌하자고 청하였다. 초나라 평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내 아직 백성을 어루만지지 못하고, 鬼神을 섬기어 재시를 극진히 받들지도 못하였고, 아직 국방수비를 정제하지도 못하여, 國家의 기반이 안정되지 못하였는데, 백성의 힘을 동용하면, 패하여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 州來가 현재 비록 오나라에 점령되고 있지만 우리가 다시 회복하여 취할 것이니, 오히려 초나라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대는 아직 기다리라.」고 하였다.
季孫猶在晉, 子服惠伯私於中行穆子曰 : 「魯事晉, 何以不如夷之小國? 魯兄弟也, 土地猶大, 所命能具, 若爲夷棄之, 使事齊楚, 其何瘳於晉? 親親與大, 賞共罰否, 所以爲盟主也, 子其圖之. 諺曰, '臣一主二.' 吾豈無大國?」
계손유재진, 자복혜백사어중항목자왈 : 「노사진, 하이불여이지소국? 노형제야, 토지유대, 소명능구, 약위이기지, 사사제초, 기하추어진? 친친여대, 상공벌부, 소이위맹주야, 자기도지. 언왈, '신일주이.' 오기무대국?」
[解釋] 季孫이 아직도 晉나라에 있으므로, 子服惠伯이 사사로이 中行穆子에게 말하기를, 「魯나라가 진나라를 섬김이, 어찌 저 오랑캐의 작은 나라만 같지 못 하리오? 魯나라는 兄弟의 사이요, 土地가 오히려 보다 커서, 진나라의 명령하는 것을 모두 공급하여 왔거늘, 만약 오랑캐를 위하여 이를 버리어, 제나라나 초나라를 섬기게 한다면, 무엇이 진나라에 이롭겠습니까? 친한 이를 친애하고 대국을 협화하며, 공경하는 나라를 포상하고 잘못하는 이를 징벌하는 것이, 盟主가 되는 까닭이니, 당신은 잘 도모하시오. 속담에 이르기를, '신하는 하나이지만 주인은 둘이라.'고 하였으니, 우리라고 어찌 진나라 말고도 다시 섬길 대국이 없겠습니까?」고 하였다.
穆子告韓宣子, 且曰 : 「楚滅陳蔡, 不能救, 而爲夷執親, 將焉用之.」 乃歸季孫. 惠伯曰 : 「寡君未知其罪. 合諸侯而執其老, 若猶有罪, 死命可也, 若曰無罪而惠免之, 諸侯不聞, 是逃命也. 何免之爲? 請從君惠於會.」
목자고한선자, 차왈 : 「초멸진채, 불능구, 이위이집친, 장언용지.」 내귀계손. 혜백왈 : 「과군미지기죄. 합제후이집기노, 약유유죄, 사명가야, 약왈무죄이혜면지, 제후불문, 시도명야. 하면지위? 청종군혜어회.」
[解釋] 中行穆子가 韓宣子에게 고하고, 또 말하기를, 「楚나라가 陳나라와 蔡나라를 멸망시키고도, 救하지 못했고, 또 오랑캐를 위하여 친근한 나라의 대부를 체포하였으니, 장차 어찌 그들을 부리리오.」라 하고서, 곧 季孫을 돌아가게 하였다. 이에 子服惠伯이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 죄를 알지 못하였소. 한 제후를 회합하여 놓고서 그 나라의 경을 체포하여 왔으니, 만약 죄가 있어서 그랬다면, 진나라의 명령에 죽는 것이 옮거니와, 이와는 달리 만약 죄가 있어 은혜로 사면하여 주는 것이라면, 제후들이 전연 알지 못하였을 때, 이는 진나라의 명령을 위반하여 도망하가는 것이 될 것이오. 어찌 죄를 면할 수 있으리오? 청컨대 맹회를 해서 보내주실 것이요 사사로이 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宣子患之, 謂叔向曰 : 「子能歸季孫乎?」 對曰 : 「不能, 鮒也能.」 乃使叔魚. 叔魚見季孫曰 : 「昔鮒也得罪於晉君, 自歸於魯君, 微武子之賜, 不至於今. 雖獲歸骨於晉, 猶子則肉之, 敢不盡情? 歸子而不歸. 鮒也聞諸吏, 將爲子除館於西河, 其若之何?」 且泣. 平子懼, 先歸, 惠伯待禮.
선자환지, 위숙향왈 : 「자능귀계손호?」 대왈 : 「불능, 부야능.」 내사숙어. 숙어견계손왈 : 「석부야득죄어진군, 자귀어노군, 미무자지사, 부지어금. 수획귀골어진, 유자즉육지, 감부진정? 귀자이불귀. 부야문저리, 장위자제관어서하, 기약지하?」 차읍. 평자구, 선귀, 혜백대례.
[解釋] 한선자가 이를 걱정하여, 叔向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季孫을 돌려보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숙향은 대답하기를, 「돌려보내지 못하겠으니, 내 아우 양설부는 잘할 수 있으리라.」고 하므로, 곧 叔魚를 시켰다. 叔魚가 季孫을 보고 말하기를, 「옛적에 제가 죄를 진나라 임금에게 짓고서, 스스로 노나라 임금에게로 돌아갔었는데, 그때에 맹무자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금에 이 꼴로 있지 못할지라. 비록 진나라로 뼈다귀를 가지고 돌아왔으나, 그대가 그 뼈에다 살을 붙여 준 것과 같으니, 감히 나의 진정을 다하지 않겠소? 진나라가 이미 그대를 돌려보냈는데도 당신은 돌아가지 않고 있소. 제가 어떤 관원에게 들으니, 장차 당신을 위하여 서하 가에다가 관사를 하나 만들어 준다고 하니, 그것을 어떻게 하리오?」라고 하고서, 또한 눈물을 흘렸다. 季孫意如가 두려워하여, 먼저 돌아오고, 子服惠伯은 진나라에 머물러 사면하여 보내주는 예절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