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POSCO동기들 카톡방도 알게되었고, 이를 통해 후배들도 카톡방에도 초대가 되어서, 저의 동정에 대한 글을 보냈습니다. 한명 한명 모두들 보고 싶습니다.
와 다시 옛시절 생각나게 만드는 이름들이 너무 많아 행복합니다. 2016년 귀국후 페이스북등에서 POSCO지인들을 찾았지만 최근에 동기들과도 연결이 되고, 정ㅠㅠ씨랑과 연결되면서 여러분들 소식듣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POSCO 유학 귀국시 POSRI를 지원했지만 법인이 다르다고 거부가 되었고, 그러면 영어를 사용하는 부서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당시 자금부 국제금융실 외환관리팀으로 발령이 나면서 외환딜러 생활을 했었고, 이 분야는 경력도 학력(저는 노동경제학 전공)도 아무 관련이 없는 분야인데다가, 만년을인 조사부 출신이라서 차별도 심하고 텃세도 쎈분위기에서 최초 6개월은 주말도 없이 공부를 하면서 칼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6개월 이후부터 퇴직하던 날까지 재무본부 역사상 가장 많은 S고과를 받는 등 국제금융분야의 고수로 성장했으며, 최초의 과장시험을 2년선배들과 경쟁을 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회사단위가 아니라 본부단위로 인사권이 넘어간 상황에서 일면식도 없는 포항, 광양등 토착세력 들이 저의 승진을 방해했었고, 그 다음해에도 포스코의 위계질서상 동일한 상황이 발생했고, 저는 매우 실망을 한 나머지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제가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으로 결혼을 했고, 거기에 저축 한푼없이 보스톤이라는 부자동네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귀국 당시 재산은 오히려 (-)가 되었고, 서울로 전세를 와서는 다행히 자금부라는 장점을 이용해 3천만원을 대출받아서 반지하방에 3천만원 전세를 살았습니다. 당시에 이자가 15%대여서 월급의 상당부분이 이자로 들어갔었고, 아 이러다 원금도 못갑고 정년이 오겠구나 하는 암운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조건에 외국계은행으로 전직을 했습니다.
POSCO에 유학비용 1억을 물어내고(은행에서 무이자 대출을 해줌)빚은 더 늘어나는 등 도박을 했고, 30대중반에 전직, 그것도 업종이 다른 외국회사로 이직을 하는 것이라 주변의 반대도 심했지만, 나는 외통수 상황이라 주말도 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손님들도 많이 만나는 등 POSCO란 갑에서 영업맨이라는 을의 생활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매년 연봉이 두배가 오르는 등 흑자로 전환이 되었고, 말년에는 에쿠스에 기사, 10억대 법인 골프회원권 등이 제공되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를 분간 못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저는 인생백년인데 이 정도 재산이면 퇴직을 하고 인생백세를 설계하고 싶었고, 회사에 1년후 퇴사의사를 통보를 하고 2008년을 끝으로 호주 가족유학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치면 SKY대학에서 20대 천재들과 공부를 하며 고생을 한 끝에 다행히 2016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을 했습니다.
지금은 매일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연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0년째 주식은 왜 매일 가격이 변동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경제학, 수학, 통계학은 물론이고 요즘은 Wavelet등 물리학의 파동이론을 공부하고 있고, 다가올 양자컴퓨터 시대를 대비하면서 2023년에는 양자역학도 공부할 예정입니다. 향후에도 저는 기존의 경제학이론을 인공지능, 양자역학과 융합하는 그런 공부를 하면서 인생백년을 보낼겁니다. 저는 매일 매일 성장하는 학자이고, 어제보다 일보 진전한 나를 발견하면서 단순한 행복을 느낌니다. 물론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음에 따라 경제적기준으로 성공을 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유없이 이 세상에 왔지만, 이유없이 이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는 철학을 실천하면서 남은 반의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여러분과 본지가 오래되어 그간 저의 일상을 정리했습니다. 다시 여러분들을 보면 여러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