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본 문 / 마태복음 5장 14∼16절
주 제 /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빛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작성일 / 2024년 5월 26일. (№ 24-21)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a)
2024년 신앙생활의 목표를 외치자. “예수의 법으로 살자!”(롬 8:1∼2)
우리는 ‘예수님의 법의 근간’인 ‘팔복’을 배우고, 팔복이 제시하는 천국을 품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2가지 역할을 부여하셨다. 첫째는 ‘소금의 역할’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 5:13). 둘째는 ‘빛의 역할’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빛’은 무엇일까?
첫째, ‘지식’이 ‘빛’이다. ‘무지’는 ‘어둠’이다. 아는 만큼 밝아지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야말로 빛 중의 빛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면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다. 아니라면 어둠에 갇혀 사는 사람이다.
둘째, ‘정의와 진실’이 ‘빛’이다. ‘불의와 거짓’은 ‘어둠’이다. 바르고 진실하게 살고 있다면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다. 아니라면 ‘어둠’ 속에 갇힌 사람이다.
셋째, ‘기쁨과 행복’이 ‘빛’이다. ‘우울과 불행’은 ‘어둠’이다. 기쁘고 행복하다면 빛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면 어둠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다.
넷째, ‘생명’이 ‘빛’이다. ‘죽음’은 ‘어둠’이다. 특히 ‘영’이 살아 있다면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아니라면 어둠 가운데 갇혀 있는 사람이다.
지식, 정의와 진실, 기쁨과 행복, 생명, 모두가 ‘예수님의 본질’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곧 빛이다. 가장 크고 밝은 빛이다.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우리는 예수님의 본질인 빛을 입고 있는 작은 빛이다. 세상에 대하여 ‘지식의 역할’, ‘정의와 진실의 역할’, ‘기쁨과 행복의 역할’, ‘생명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Ⅱ 산 위에 있는 동네 (마 5:14b)
“…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b).
사진을 보니, 지중해 연안의 마을들은 산 능선을 타고 형성되어 있다. 그러니 바다에서 보면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보인다. 고대 가나안지역의 마을들도 그렇게 산 능선을 타고 형성되었다. 주로 흰색 석회암으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태양빛이 반사되어 먼 곳에서도 저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밤에는 집집마다 밝힌 등불이 창밖으로 흘러나오니 아무리 캄캄한 밤일지라도 저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팔복을 배운 사람, 즉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은 산 위에 있는 마을처럼 누가 봐도 ‘예수의 사람’인 것을, ‘빛의 자녀’인 것이 드러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딛 1:15a).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그 깨끗함이 일상에서 베어난다. 마음이 더러운 사람 역시 그 더러움이 일상에서 베어난다.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무엇을 하든, 그 안에 있는 팔복과 천국이 베어난다. ‘빛의 자녀’인 것이 베어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팔복을 가르치고 천국을 품게 하는 교회’와 ‘기복을 가르치고 땅을 품게 하는 교회’는 다르다. 분위기가 다르다. 찬송소리가 다르다. 기도가 다르다. 설교도 다르다. 딱 10분만 있어보면 이 교회가 팔복을 가르치는지 기복을 가르치는지, 천국을 가르치는지 땅을 가르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저희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한 번은 보라매공원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셨는데, 금방 돌아오시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이상한 이단이었다고 하셨다. 금방 알아보고 돌아오신 것이다.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들, 예수의 본질인 빛을 입은 사람들, 또 그런 교회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Ⅲ 등불은 등경 위에 (마 5:15)
예수님이 다음으로 하신 말씀은 “등불은 등경 위에”(마 5:15)란 말씀이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5).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놓는 경우는 없다. 등불을 겨면 당연히 등경 위에 둔다.” 이런 말씀이다.
우리에게 ‘팔복’을 가르치시고, ‘천국’을 품게 하신 이유, 즉 우리에게 빛을 입게 하신 이유는 은밀히 감추었다가 마지막 때에 남몰래 천국으로 빼돌리기 위함이 아니다. 공개하여서 이웃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패션디자이너’는 자신의 옷을 ‘모델’에게 입혀 세상에 선보인다. 사람들은 모델이 입은 옷을 보고 그 옷을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결정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빛을 ‘우리’에게 입히셨다. ‘팔복과 천국의 모델’로 삼으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웃에게 하나님의 작품을 알려야 한다. ‘팔복’을 배운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천국’을 품은 사람이 얼마나 우아한지 보여야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웃들이 우리가 입은 빛을 부러워해야 한다.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야 한다. 그러라고 우리에게 빛을 입히신 것이다.
Ⅳ 착한 행실 (마 5:16)
그러면 무엇으로 우리가 입고 있는 ‘빛’을 이웃에게 보일 수 있을까? 마태복음 5장 16절을 보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예수님은 ‘너희 빛’과 ‘너희 착한 행실’을 동일시한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는 방법, ‘산 위에 있는 마을’이 되는 방법, ‘등불’이 되는 방법은 ‘착한 행실’이다.
로마서 13장 12∼14절을 보니, ‘바울’이 이렇게 말한다. “…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술 취함과 방탕’, ‘음란과 호색’, ‘시기와 다툼’은 ‘어둠의 일’ 즉 ‘어둠의 옷’이니 그 옷을 벗어버리고,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옷’ 즉 ‘빛의 옷’을 입자고 권면한다. 빛의 자녀답게 착하게 살자는 뜻이다. 속이지 말고, 훔치지 말고, 빼앗지 말자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고 살자는 뜻이다. 부족한 중에 나누면서 살자는 뜻이다. 그렇게 단정하게 살면 우리가 입은 ‘빛의 옷’이 돋보인다. ‘팔복과 천국’이 밝히 드러난다.
사도행전 9장 32∼43절은 ‘다비다의 일화’이다. ‘다비다’란 여 제자가 병에 걸려 죽었고, 그녀의 장례를 준비하던 성도들은 마침 근처에서 사역 중이던 ‘베드로’에게 다비다의 장례식 집례를 부탁한다. 베드로가 다비다의 장례식장으로 오자 여신도들이 다비다가 생전에 자신들을 위해 지어준 옷들을 보이면서 “이렇게 착한 사람이 왜 일찍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베드로’는 사람들을 물리고 다비다의 시신을 향해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말한다. 그러자 다비다가 눈을 뜨고 일어난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결단하게 한 사건이 되었다. 그런데 ‘누가’는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에 이렇게 말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 착하게 산 신도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부활하였고, 그녀의 부활은 수많은 사람을 예수님께 돌아오게 하였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이처럼 ‘착한 행실’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Ⅴ 착한 행실은 천국백성의 삶의 태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님의 법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하여 빛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통해 예수님을 봐야 하고, 그리스도인을 통해 천국을 봐야 한다. 이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우리도 ‘다비다’처럼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은혜를 나눠야 한다.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답게 착한 행실로 ‘빛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 그렇게 살아보자.
<기도>
하나님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이 팔복을 배우고 천국을 품은 사람답게 세상의 빛으로 살게 하소서. 착한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