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味적인 시장-113]-[의령 오일장(3,8)] -2023. 8. 25. 금. 경향신문 기사-
경남 의령 오일장을 가기 전에 경북 의성에 들러 여름 사과인 산사와 신품종 루비에스를 보기로 하고, 의령에서 돌아가는 길에는 산청에 들러 여름 배인 한아름 배를 볼 예정으로 여정을 다듬었다. 경남 의령은 홍의장군 곽재우의 고향이다. 그런 이유로 그곳의 길 이름, 다리 이름 하나하나에 거의 모두 빠짐없이 [의병]이 붙어 있다. 그 외에도 의령과 함안은 남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므로 함안 못지 않은 수박의 산지이고, 망개떡, 국밥, 소바가 대중의 기억에 어느 정도 각인되어 있는 고장이다. 의령 시장이든 아니든 의령군을 다니다 보면 잘 알려진 위 세 가지 음식을 쉽게 만난다.
경남 의령장은 3, 8일장이다. 8이 두 개가 겹치는 8월 8일, 삼복더위의 끄트머리임에도 장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장을 보고 가는 이, 보러 오는 이로 활력이 넘쳤고, 가을 문턱 입추가 코앞인데도 장터는 여름 것들이 많았다. 산이 많은 의령, 초피(제피) 열매 파는 곳이 꽤 많다. 할매들이 들고나온 것도 있고 약초 파는 매장에서는 말린 것과 말리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가격은 1kg 3만원. 사람들은 농산품의 가격만 보고 비싸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상품이 내 앞에 놓여 있기까지의 수고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그 산물들을 생산해서 시장에 내놓기까지의 과정과 노고를 생각한다면 결코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도 그렇다. 시장 초입의 생선 좌판, 빨간고기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보통 적어 혹은 빨간고기로 불리는 생선의 본이름은 장문볼락. 우리나라에서는 잡히지 않는 생선으로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잡은 것을 수입한 것이다. 생선구이 집에서도 종종 맛볼 수 있다. 한번 맛본 적이 있다. 근해에 잡힌 생선은 살의 고소함이 매력이다. 빨간고기에서는 그 맛을 느끼기 어렵다. 빨간고기 옆에는 [민어 조기]로 파는 [영상가이석태]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온 생선이다.
시장에는 극강의 맛을 제공하는 여름 반찬 3가지로 꼽히는 고구마순, 호박순, 깻잎이 팔리고 있었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여름 반찬으로 깻잎지를 이길만한 반찬은 없을 듯싶다. 깻잎을 잘 씻고는 물기를 뺀 다음 양념장을 한 장 한 장 바르면 끝이라고, 그래서 만들기 쉽다고는 하지만 한 장 한 장 양념장 바르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깻잎을 씻은 다음 물기 빼는 사이 양념장을 만들고, 고춧가루, 참기름 아주 조금, 다진 마늘, 설탕 아주 조금, 간장에 멸치액젓을 넣었다. MSG의 감칠맛을 멸치액젓으로 대신한다. MSG만큼 강렬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한 감칠맛을 준다. 요리할 때 멸치액젓을 빼먹지 않는다. 양념장을 만들고는 간을 보면서 소금을 넣는다. 간장과 멸치액젓에도 소금이 들어 있기에 소금은 간을 본 다음 마지막에 넣는다. 그래야 간을 맞출 수가 있다. 130장 넘는 깻잎에 한 장 한 장 양념을 발랐다. 이틀 정도 지나면 양념이 깻잎에 잘 물들어 있다. 찬물에 말든 아니면 따듯한 밥 위에 올리든 이만한 여름 반찬이 없기에 여름이 오면 가끔 한다. 의령장에는 박도 꽤 있었다. 일찍 장본 할매의 쇼핑 카트 안에는 커다란 박이 몇 개 들어 있었다. 잘게 잘라서 팔기도 했는데 특별한 요리 방식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지방에서는 그냥 기름에 볶아 먹는게 맛있다고 한다. 충남 서산에서는 낙지국에 넣어 끓인 박속연포탕이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히기도 하는데 이 지방 사람들은 볶는 요리로 즐기는 듯 했다. 오동통한 짧은 몸통의 토종 오이는 백오이나 가시오이의 나름 맛있음을 단번에 제압하는 맛인데 토종 오이의 고소함은 다른 오이에서는 맛볼 수가 없는 그런 맛이다. 그러므로 여름에 장터에서 토종 오이를 만나면 무조건 사야 한다. 단단하기에 씹는 맛도 좋고 즙까지 많아서 맛이 아주 좋다. 의령을 대표하는 먹거리에 국밥, 망개떡 그리고 소바가 있다. 1박2일 있으면서 다른 것을 찾아서 먹을까 하다가 의령에서 이름난 세 군데 국밥집을 다 들렀다. 작년 의령 옆 함안에서도 소고기 국밥 거리에서 유명한 집 두 곳의 국밥을 먹어 봤기에 궁금함이 밀려왔다. 함안과 의령 국밥은 큰 차이라고 해봐야 선지의 유무. 함안은 선지가 들어 있다. 유명한 식당이 여러 곳일 때의 궁금함은 [어디가 맛있을까?]다. 처음 온 외지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궁금증이지 않을까 싶다. 세 군데 모두 국내산 한우와 육우를 비롯해 모든 재료가 국내산으로 같았다. 국물은 함안보다는 순했다. 함안이 얼큰한 육개장과 비슷했다면 의령은 곰탕처럼 국물이 부드러웠다. 세 군데 식당 중에서 수정식당이 가장 얼큰했다. 고기양은 거의 비슷했고 고기의 고소한 맛은 중동식당이 좋았다.
망개떡은 멥쌀로 만들었음에도 찹쌀처럼 쫀득쫀득한 맛의 비결이 궁금하여 확인해 보니 답은 이랬다. 쌀가루로 떡을 찔 때 물을 보통보다 조금 더 넣으면 식감이 그렇게 된다고 한다. 그보다 조금 덜 넣으면 가래떡이고 그보다 적으면 백설기의 식감이 된다고 한다. 떡 만드는 법을 들으니 그제야 망개떡의 쫄깃한 식감에 대한 궁금함이 풀렸다. 망개떡 중에서 지역에서 나는 아랑향찰 현미로 만드는 망개떡이 가장 특이했고 맛있었다. 쌀알이 살아 있는 모양새, 씹는 맛에 현미의 구수함이 더해져 달기만 한 흰 망개떡과는 다른 맛이었다. 흰 망개떡은 시장보다는 시장 밖에서 파는 것이 쫄깃하고 팥소의 맛이 더 좋았다. 시장 것은 팥소가 묽었다. 방앗간 안지 (055)573-4887
소바는 70년 된 식당(원조의령소바본점 다시식당) (055-573-2514, 경남 의령군 의령읍 의병로 18길 6)에서는 맛을 보지 못했다. 오일장 둘러보고 맛볼 생각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 장날이 쉬는 날이었다.
시장에 있는 가맹점 본사의 본점이라는 곳이 가장 사람이 많았다. 가맹점 본사의 의미인 본점을 원조와 헷갈리는 듯싶었다. 다른 곳에서 맛을 보니 멸치육수 맛이 꽤 괜찮았다. 다대기를 풀고 난 후 육수 맛을 보니 서울식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의 딱 중간 맛이었다. 멸치육수에 장조림 국물을 섞어 만든 육수 맛이 그렇다고 대변하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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