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범석 목사02 다시 일어나라/ 2023 영남합회 장막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선교에는 위기는 없고 기회만 있다는 주제로 요나서의 말씀을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많이 피곤하십니까? 그런데 여러분 눈빛이 왜 이렇게 빛나시지요?
아마도 여러분의 마음이 비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그 빈 마음에 성령께서 가득 채워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요나서 2장 1절로 4절의 말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서울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서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하였더라. 아멘.
오늘 저는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다시 일어서라 다시 일어서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기를 원합니다.
얼마 전에 뉴욕 타임즈에서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한 학교가 어느 학교인가라는 기사가 났어요.
여러분 어떤 학교가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했을까요?
그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역사상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는 하버드대학입니다.
여러분 하버드는 노벨상 수상자뿐만 아니라 오바마와 루즈벨트 같은 유명한 국가 지도자도 배출했고요.
우리가 잘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마크 저크버거 같은 사람도 이 대학 출신입니다.
두 번째로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는 뉴시 버클리입니다.
그리고 지난 20년만 기준으로 보면 스탠퍼드 대학이지.
여러분 우리가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한 학교를 생각하면 아이비리그나 세계의 유수한 대학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놀랍게도 뉴욕타임즈의 대답은 결론은 고난의 학교라는 거예요.
고난의 학교라는 말은 사무엘 사무엘 스노우즈가 쓴 셀프헬프 자조론이라는 책에 등장하지요.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은 반드시 대학에 다닌 사람이 아닐 수 있으며, 위대한 기술자나 발명가 역시 기계학을 가르쳐주는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
위대한 발명의 시작은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에 있으며 훌륭한 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바로 인생 고난의 학교였다.
여러분 고난의 학교가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성경의 위대한 인물도 전부 고난의 학교를 거쳤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에서 정말 고생을 했지요.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기도 하였습니다.
모세도 사람을 죽이고 저 위대한 광야에 가서 40년 동안 처절한 외로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경의 사람들은 전부 고난의 학교를 거쳤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 다윗, 이사야, 침내 요한,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까지.
여러분 영감의 글에도 이 고난의 학교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와요.
특별히 요셉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글을 크게 쓰시기 위하여 고난의 학교에서 준비시키고 계셨으며 그는 필요한 훈련을 거절하지 않았다.
감옥 속에서 그는 정리의 동정과 자비의 공가를 배웠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지혜와 자비심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었다.
또 모세에 대하여 극기와 고난의 학교에서 그는 인내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기 전에 그는 순종하기를 배워야 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기 전에 그 자신이 자신의 마음이 그분과 완전히 조화되어야 하였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으로 잘 교육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해야 할 사업을 위해 준비하는 데 적합한 모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내를 배우고 그의 성정을 다스려야 했다.
자아 부정과 고난의 학교에서 그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알려진 교사 중 가장 완전한 교사이셨다.
그분으로부터 지혜와 지식을 얻는 것이 모세에게는 애굽의 어떤 가르침보다 가치 있는 것이었다.
여러분 그러면서 영감의 그라는 이렇게 덧붙이지요.
세상에서
하나님과 인류를 위하여 참된 봉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슬픔의 학교에서 예비 훈련을 받는다.
책임이 중하면 중할수록, 봉사의 책임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시험은 더욱더 철저하고 그 단련은 더욱 혹독하다.
다윗이 비록 훈연해 큰 죄로 손상을 입기는 하였으나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하였다는 경력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 고난과 슬픔의 학교에서 받은 훈련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고난의 학교를 거쳐야 한다는 거예요.
특별히 중요한 직임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철저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물론 이 학교의 교장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 여기 여러 글들을 보았을 때 이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과목은 순종, 자아 포기, 기다리는 법, 인내와 자제력, 겸손, 감정을 조절하는 법, 하나님의 마음과 조화되는 법 이런 것들이겠죠 여러분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을 온전히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의 학교에 입학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도 지금 고난의 학교를 다니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대답은 별로 없는데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는 거 보니 꽤 많은 분들이 그러신 것 같아요.
여러분 특별히 책임이 중하면 중할수록 더 훈련이 혹독하다고 하였는데 어쩌면 여러분이 섬기는 목사님들은 더 심한 훈련을 받는 분들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한 번은 저의 후배가 저에게 와서 목사님 목회가 뭡니까? 이렇게 물어봤는데 저도 모르게 참는 거라고 대답을 했어요.
참는 거 어느 목사님이 하도 마음이 안 다스려져서 기도하러 산에 갔는데 속이 시커멓게 탄 나무를 본 거예요.
그 목사님이 나무를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너도 목회했냐?
여러분, 우리가 다 고난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데 특별히 우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목사는요 교회 요람에 보면 양들을 돌보라고 보내신 하나님의 목자이기도 하지만, 목사의 가정은
교인들이 돌봐야 할 또 하나의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기왕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목자를 보내셨는데 그 목자로 근심하게 하지 마시고 용기를 주시고 신나게 목회하도록 도와주는 그런 성도가 되시면 우리에게 더욱 큰 유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여러분, 철새들은 매년 수천 km를 날아가는데, 조류학자들이 이 철새들이 날아가면서 계속 개역개요 소리를 내면서 우는 그 울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들의 연구의 결론은 가장 앞에서 인도하면서 바람의 저항을 가장 심하게 받는 그 앞에 있는 새를 향하여 외치는 화이팅 구호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목사님들에게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용기가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왕이면 우리 목사님 힘내시도록 용기를 주시는 그런 성도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 하늘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주의 사명을 감당할 사람들은 예외 없이 고난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다 하였어요.
그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이든, 갑자기 찾아오는 질병과 고통이든, 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든, 또 인생에 당하는 여러 가지 좌절스러운 순간이든 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훈련하기 위하여 이 학교에 입학시키신다는 것이지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고통의 불이 반드시 붙어야 하며, 우리의 의지 또한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당해야 한다.
우리는 구조의 형상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 가장 고통스러운 연단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좀 더 단단하고 좀 더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커리큘럼은 천편일륜적이지 않아요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정말 힘들 때는 피할 길도 내시면서 우리를 단단하게 세워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먼저 고난의 학교를 거친 우리 믿음의 선배는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요나서 2장을 통하여 고난의 학교에 입학한 요나를 만나게 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이렇게 기도하지요.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수월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여러분 요나가 이 고난의 학교를 훈련받은 교실은 물고기 뱃속이었습니다.
그 물고기 뱃속을 오늘 요나서 2장에는 스오래 뱃속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여러분 스이란 말이 구약 성경에 65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31번이 지옥이라고 잘못 번역이 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단어입니다.
원래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덤, 구덩이 이런 의미지요.
다행히 최근에 번역되는 번역서들은 지옥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무덤이나 구덩이로 제대로 번역하기도 하고 또 여기처럼 그냥 스리라고 그대로 그렇게 표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
영어로 seoul 우리는 서울 이렇게 읽지만 외국 사람들은 소 이렇게 읽든지 소 이렇게 읽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왜 한국은 수도를 지옥이라고 지었냐 그래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요 교통지옥이기도 하고 입시 지옥이기도 하지요.
여러분 아무튼 요나는 그가 물고기 뱃속을 수골의 뱃속이라고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의 상황이 정말 무덤처럼 힘들고 죽기처럼 고난스러운 그런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때로 우리 인생도 정말 힘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죽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정말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고난스러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우리가 잠깐 이야기를 중단하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어요.
사람이 정말로 물고기 뱃속에서 사일을 생존할 수 있을까요? 한 번은 스카브 박사가 쓴 글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느 날 그 박사님의 아들이 학교에서 오더니 이런 질문을 하더래요.
아빠 아빠는 정말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는 것을 믿어요 여러분 성경에 고래라고 안 하고 큰 물고기라고 했지?
박사님이 대답했답니다. 그래 믿지.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 고래는 식도가 좁아서 작은 새우밖에 못 먹는데 그리고 물고기 뱃속은 산소도 희박하고 위산이 나와서 사람이 살 수 없는데 어떻게 3일을 있을 수 있어요? 이렇게 물어보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스카브 박사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지 아들아 너 하나님이 물고기 만드신 거 믿니? 믿지요
하나님이 요나도 만드신 거 믿니? 얘 믿어요.
그럼 하나님 만드신 물고기가 하나님 사람을 삼키는 것이 뭐가 이상하니? 아들아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요나가 고래를 삼켰다고 해도 나는 믿을 수 있단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서 자꾸 의심하고 따지는 것은 헬라식 사고 방식이에요.
그런데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됐는데 히브리어에서는 어떻게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왜라는 말이에요.
어떻게 하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의심하지 않고 그 대신 왜 하나님께서 요나를 물고기 뱃 속에 허락하셨는가
왜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에게 물고기 뱃속 같은 고난을 허락하시는가라는 그 왜라는 질문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고난을 허락하실까? 때때로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의 학교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오늘 이 요나서 2장의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첫 번째로 우리가 물고기 뱃속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간절한 기도라는 거예요.
간절한 기도 요나가 여기 이렇게 기도하지요 2장 1절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서울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여러분 요나서를 읽다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까지 그가 기도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어요.
여러분 요나서 1장에 사명을 받았을 때도 그는 기도하고 결정하지 않았어요.
그냥 불순종했어요. 심지어 풍랑이 이는 가운데 이방인들은 자기 신들에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요나는 그 순간에도 기도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정말 죽음과 같은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평안할 때 기도 잘 안 합니다.
기도를 해도 그렇게 간절하게 잘 안 합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어려움을 만나면 그때서야 눈물, 콧물 흘리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어쩌면 여러분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 하였는데 호흡이 끊어지면 죽는데 우리가 하도 기도 안 해서 죽을까 봐 하나님이 고난을 주셔서라도 기도해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유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 2절에 요나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이렇게 표현했는데 이 부르짖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와라는 말입니다.
샤와 근데 여러분 이 부르짖었다는 샤워라는 말이 구약 성경에 22번 쓰였는데 그중에 10번은 시편에 쓰였고, 8번은 욥기에 쓰였어요.
그리고 다른 구약 성경을 통틀어 네 번밖에 쓰이지 않은 것이 여기에 쓰인 거예요.
여러분, 왜 그럴까요?
시편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한 거예요.
요은 그의 인생에 당한 정말 어려운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는 샤와의 기도를 드린 거예요.
우리가 고난의 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간절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 간절함을 임계량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물 물리학에서는 어떤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극적으로 바뀌는 시점을 임계점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물을 가열할 때에 99도까지 끓지 않다가 100도가 되는 순간에 수증기로 변하죠.
그때를 임계점이라고 하고 그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적으로 가열하는 에너지의 총량을 임계량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임계량의 법칙을 아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아요.
80도가 되어도 끓지 않네 아이고 포기해야지 그러지 않아요.
100도가 될 때까지, 끓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이 바로 간절함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혈루병을 거친 여인은요 정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군중이 많았지만
나의 몸이 약했지만 내가 반드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리라는 그 간절함이 예수님께 다가가게 했고 그의 질병을 고친 능력이 되었던 것이지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는 정말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 딸을 고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고 그 간절함이 능력이 되었던 것이지요.
바디메오는 다윗의 자손이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조용하라고 제지했지만 계속 외쳤어요.
그는 정말 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 간절함이 믿음의 임계량이 되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극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왜 이러는가라는 책을 쓴 이나모리 가지오는 간절함이 없다면 꿈도 꾸지 마라 이렇게 말했어요.
간절함이 없다면 꿈도 꾸지 마라. 여러분 우리 신앙에 정말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너희가 내게 그냥 때가 돼서 기도하면 들어줄 것이오 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들어줄 것이고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만날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살만한 세상에 살면서 간절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소방관하고 경찰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누가 이길까요? 소방관이 이기지요 왜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우기 때문에 그 소방관하고 소경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소경이 이기지요 왜요?
되는 게 없기 때문에 서경하고 노인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노인이 이겨요.
왜요? 살만큼 살았으니 죽기 살기로 싸우기 때문에 여러분 우스갯 소리일지 모르지만 뼈가 있어요.
간절함이 이긴다는 거예요. 우리 예수님도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그 간절함으로 기도하시면서 우리를 구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성경은 엘리야가 기도했더니 하늘이 닫히고 3년 반 동안 비가 안 오고 다시 엘리 엘리야가 기도했더니 하늘을 열어서 비를 내려주셨단 말이에요.
여러분 엘리야에게는 우리가 없는 뭔가 특별한 다른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성경이 똑같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엘리야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왜 우리는 하늘을 변화시키지 못하는가 그에게는 간절함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가 갈매산에서 기도할 때 정말 하나님 비를 주실 때까지 그의 얼굴을 무릎에 묻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고 했어요.
그런 간절한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제가 중학교 시절에 저희 국어 선생님이 해준 얘기를 잊지 못해요.
심순남 선생님 이분이 그분의 어머니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그분의 어머니가 6.25 전쟁 당시에 서울에 살았답니다.
이제 피난을 가야 하는데 한강을 건너야 하는데 한강 다리가 폭발된 거예요.
이분은 수영을 할 줄 몰랐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저쪽에 한 건장한 남자가 준비 운동을 하는 것을 보니 헤엄쳐서 건너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곁에 살 히 다가갔다가 이 남자가 이 물속에 뛰어드는 순간 달려들어서 그 남자의 다리를 콱 붙잡았어요.
여러분,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도 다리 하나 잡힌 채로 수영할 수가 없죠 이 남자가 살기 위해서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이분은 놓지 않았어요.
다행히도 이 남자가 수영 선수 출신이라서 한 다리를 붙잡힌 채로도 간신히 간신히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랬.
강을 건넌 다음에 이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지요.
아주머니, 어쩌면 그렇게 즐기세요? 여러분 그럴 수밖에 없지 왜? 놓치면 어떻게 되니까요.
여러분, 그 정신이 우리의 기도의 정신이 되면 좋겠습니다.
위험에 처한 이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가장 열렬한 믿음이 섞인 간절한 기도와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의 어두운 그늘을 던질 때에 하나님께 매달려 의지하는 정신이다.
여러분, 정말 어려운 시대, 풍족한 시대가 되어서 우리 신앙의 간절함을 잃어버렸다면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때때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으로 세워주시기 위함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때때로 인생의 고난의 자리에 서게 된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불평의 자리가 아니라 다시 한 번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 붙드는 능력의 자리임을 깨닫고 간절한 기도를 회복하시고 승리하게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 두 번째로 우리가 고난의 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진정한 감사지요 진정한 감사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라는 단어를 떠올려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소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여러분 고난은 우리에게 참된 감사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는 영혼의 울림이 있는 진정한 신앙고백이겠지요.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박안서 씨가 쓴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을 여러분도 아마 읽어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었다.
세면대에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의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 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것은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프기 전과 후가 이렇게 명확하게 갈리는 게 몸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 전에는 젊은 아래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몇 년에 걸쳐 점점 건강이 나빠져 이제 그분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렸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때의 빛나던 재능도 다 소용없구나 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는 등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다만 그러한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대개는 너무 늦은 뒤라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알고 무리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사나흘 노인네처럼 파스도 붙여보고 물리치료도 받아보니 알겠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감사한 일임을 이번에 또 한 번 배웠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이분이 아파보니 그동안 내가 살았던 일상이 기적이고 감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진정한 감사를 배우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코로나를 겪어보니까 이렇게 모여서 장막붕회를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더 절실하게 깨닫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진정한 감사라는 거예요.
여러분, 낮은 대로 임하소서에. 그 원래 주인공인 안유한 목사는 37살에 실명을 당하고 나서야 진정한 감사를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하루 세 번씩 약을 먹어보라고 그간 제안을 한답니다.
무슨 약일까요? 감사의 약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돌아보면 우리 삶에 감사가 아닌 것들이 없지요 코로 숨쉬는 공기 또 마시는 물 한모금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 주시고 또 때때로 고난 주셔서 하나님 뜻 깨닫게 하신 것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 노래 아십니까?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 돼도 혹시 이 찬양 아시는 분 계십니까? 우리 같이 한번 불러볼까요? 반주 가능합니까? 예 고맙습니다.
오늘 이 찬양이 저와 여러분의 진정한 하나님께 향한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거 감사 내 뜻대로 안 되도 주가 인도하신 거
모든 것 감사 내게 주신 모든 것 감사 때론 가져가심도 사내게 고난 주소서.
주 뜻 알게
모든 사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 신 주 사랑 감사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때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고생하라고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당하여 진정한 감사를 배우고 그 감사를 통하여 고난을 넉넉히 이기도록 힘 주시기 위함임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감사를 통하여 고난을 이기는 그러한 법을 배우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우리가 고난의 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은 다시 일어서는 믿음이에요.
다시 일어서는 믿음 여러분 기억하시겠습니까? 첫 번째는 무엇이지요? 간절한 기도 두 번째는
진정한 감사 세 번째는요 다시 일어서는 믿음입니다.
요나는 드디어 이렇게 고백하지요.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여러분 다시 성전을 바라본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다음에 하나님 앞에 봉헌 기도로 이렇게 기도하지요.
하나님 혹시 내 백성이 범죄하여서 다른 나라의 포로로 잡혀갈지라도 거기서 다시 한 번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와서 이 성전 있는 곳을 향하여 회개 기도하면 하나님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백성들 용서하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 기도에 근거하여서 바벨론의 70년 포로 상황 가운데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지요.
여러분 그러므로 요나가 다시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말은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겠다는 말입니다.
주님 손 붙들고 다시 일어나겠다는 그런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제 우리는 요나의 신앙이 내려가는 신앙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는 요바로 내려갔고, 배로 내려갔고, 밑바닥까지 내려갔고, 결국은 바닷 밑까지 내려갔어요.
여러분 여기에 히브리어 야드, 야라, 야라드라는 단어를 계속 반복하면서 내리막길 걷고 있는 요나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요나에 대하여 야라드마라는 말이 반복하여 쓰였다면 하나님에 대하여는 만화라는 말이 반복해서 쓰이는 거예요.
그 만화라는 뜻은 예비하사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큰 물고기도 예비하시고, 박롱클도 예비하시고, 벌레도 예비하시고, 뜨거운 동풍도 예비하셔요.
여러분,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이 모든 매개물들은 요나를 회개시키는 매개물들이었어요.
계속 추락하는 요나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회개하고 다시 일으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많아
만화, 만화, 만화 하면서 준비하시다가 여러분 이사야 53장 12절에 보면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 이 말씀도 만화에 결국 자신을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다는 말은 자신을 죄를 짊어진 범죄자로 예비하셨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을 땅속에 계셨던 경험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다시 나온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결국 요나를 회개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를 예비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를 회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도 예비하시고 부활도 예비하셔서 우리를 다시 살리려 하신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회계로 이끄시기 위하여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도 여러 가지를 예비하셨어요.
때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언해 주신 말씀을 통하여, 또 목사를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마음 가운데 찔림을 주시거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회개시키시고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나를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베드로에게는 하나님 예비하신 것이 닭 소리였어요.
꽃기유 하는 소리를 듣는데 그의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울었다고 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니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하신 그 음성이 들릴 때 멸시하지 마시고 회개하셔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매일 회개하기를 요구하신다고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고 또 넘어질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안 넘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7번 넘어질지라도 염치불구하고 십자가 은혜 붙들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 하는데 평균 2천 번은 넘어진다고 해도 아이가 넘어졌다고 야단치는 부모 있습니까? 오히려 용기를 주면서 괜찮아 다시 한번 해보자 여러분,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일어서려고 하신
1981년에 스페인의 아스트리아스라는 지방의 한 가난한 광부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가난하여 할 것이 없었던 이 아이는 동네 공터에서 공을 차면서 축구 선수로 꿈을 키우게 됩니다.
이 아이가 9살 되던 해에 동네 지역 랑그레오 축구팀에 입단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연습하다가
대퇴부 골절 부상을 당하고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부러지는 그런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이 다리에 깁스를 하고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좌절하여 집구석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찾아와서 용기를 줍니다.
얘야, 다시 일어나자. 너에겐 왼쪽 다리가 있잖니 이 아버지 호세 마누엘 비아는 광부일을 마치고 피곤했지만
아이를 데리고 공터에 가서 이 오른다리 깁스한 아이에게 공을 굴려주면서 왼발로 차는 연습을 시키면서 그의 꿈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는 거예요.
여러분, 아버지의 격려와 헌신 덕분에 재활에 매진한 아들은 다시 회복하였고 선수로 다시 등록할 수 있었어요.
이전에는 오른 다리만 썼지만 이제는 두 다리를 모두 쓸 수 있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요
15살 되던 해에 감독이 부르더니 너는 체구도 작고 재능도 부족하니 축구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하면서 쫓아낸 거예요. 이 아이가 집구석에 또 들어가서 좌절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또 용기를 주는 거예요.
얘야, 다시 시작하자. 너는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어.
아버지는 공터에 데려 나가서 다시 아들과 공을 차면서 그에게 용기를 주는 거예요.
여러분, 이 아이가 다시 열정을 회복하고 연습해서 그 라이벌 팀인 스포르팅 히혼에 입단하게 되었고, 후에는 연봉 100억을 받는 선수가 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비드 비아입니다.
스페인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기도 하였지.
여러분, 이 아버지가 좌절에 빠진 아이를 일으켜 세운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일어서려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죄책감에 눌려 주저앉아 있을 때 다시 일어서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나 같은 죄인은 하나님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하고 그렇게 차마 하늘을 바라보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괜찮아
다시 회개하고 일어서자 이렇게 용기를 주시는 거예요.
신준모 작가가 이런 책을 썼지요. 다시 용기를 부르는 주문이라는 책에 다시 일어서자 다시 용서하자 다시 사랑하자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거기에 몇 가지를 덧붙였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다시 일어서자
다시 주를 바라보자 다시 회개하자 다시 열심을 내자 다시 헌신의 삶을 살자.
여러분 이것이 주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결국 요나는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산에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여러분 요나서에 요나가 하나님을 1장에 12번 부르는데 모두 여호와라고 불러요.
그런데 2장에서 비로소 나의 하나님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요나는 고난을 통하여 비로소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나의 하나님을 만난 것은 제가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잘 보이십니까? 잘생겼지요? 제가 군대 가서 처음 배치된 곳은 1사단 통신대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식일마다 매를 맞았어요.
제가 교회를 가겠다고 하니 한 번은 안식일에 저를 내무반에 앉혀놓고 한 명씩 중대원을 보내서 저를 설득시키는 거예요.
한 사람이 오더니 야 나도 삼육학교 출신이야.
우리 대대는 군기가 세서 그동안 한 명도 안식일 지킨 사람 없어 야 3년 반쯤 조용히 살자.
그래서 제가 고집을 부리니까 또 한 사람 보내고 계속 저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다가
한 번은 그물을 서고 있는데 제가 그 지하방카라고 하는 데서 새벽 2시까지 매일 그물을 썼어요.
그런데 한 번은 그 그물을 서고 있는데 그 지하방카에서 고참이 저에게 밤 10시에 자기 생일 파티를 해야 하니 술하고 라면을 사오라는 거예요.
여러분 밤 10시에 어디 가서 사 옵니까? px도 문 닫았는데 그 명령에 거절할 수는 없어서 소위 군인들이 말하는 그 개구멍이라는 데가 있어요.
담벼락 밑을 거쳐서 마을로 가서
그 시킨 것을 사려고 슈퍼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헌병에게 발각되었지요. 헌병이 저를 쫓아옵니다.
저는 죽어라 하고 도망을 갔어요. 도망 도망을 가다가 쌀 창고로 들어갔어요.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가 되었습니다.
쌀을 높이 쌓아놨는데 그 쌀을 짚고 올라가서 그 위에 죽 엎드렸어요.
그런데 헌병이 너 여기 있는 거 알아? 빨리 나와 하고 소리를 치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주인을 부르더니 지금 전깃불을 끌어올 수 없느냐고 말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 거기를 탈출해야 하는데 입구가 봉쇄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보니
저 지붕하고 벽하고 사이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리로 빠져나가야겠다 해서 그리로 빠져나가면 밖으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여러분 그리로 빠져나갔더니 그 옆에 다른 건물이 있었는데 그 벽과 벽 사이 아주 좁은데 제가 거기 몸이 이렇게 끼이게 된 거예요.
근데 거기 거미줄이 얼마나 많았는지 거미줄이 저를 둘렀는데 거기 끼어서 꼼짝달싹 못하게 된 그 신세가
요나의 물고기 뱃속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갑자기 마을에 사이렌이 울리고 이장님이 방송을 하는데 우리 마을에 탈영병이 숨어들었으니 빨리 문단속하시고 혹시 여러분 집에 쌀이나 옷이 없어지면 즉시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마을 방송이 들리는 거예요. 참 기가 막혔어요
여러분 안식일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이 영창에 가게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제 눈에 들어온 것이 내온 십자가였어요.
여러분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에 하나님, 제가 여기서 무사히 나가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보다
그동안 내가 지었던 죄들이 생각나면서 하나님 앞에 거기서 눈물로 회개를 하는 경험이 저에게 있었던 거예요.
한참을 울면서 회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서 이제 제가 떨어진 그 구멍을 향해 손을 뻗쳐봤더니 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안간힘을 내서 다시 구멍으로 들어 나갔는데 헌병도 없고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걸어서 쌀창고를 나오려고 하는데 그 잠깐의 순간이 헌병이 자기 혼자서 저를 잡을 수 없으니 지원군을 부르러 간 거예요.
4명이 집차를 타고 저를 잡으러 오는데 저와 마주쳤는데 여러분, 그 순간에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가려주신 것 같아요.
그 4명이 전부 저를 보지 못하고 그냥 저를 잡으러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저는 그 순간에 걸음마 나설려라 다시 달려서 부대 안으로 돌아왔지.
그런데 그날 경험 이후에 이상하게 저의 마음 가운데 기쁨이 있는 거예요.
확신이 있는 거예요. 그 주에 사이렌이 울리고 비상이 걸려서 이제 완전 군장을 하고 집합을 하였는데 인사개님이 저를 부르더니 너 당장 짐을 싸라는 거예요.
우리 대대는 대대장님이 불교인이라 너의 안식일을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우리가 너를 다른 부대로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더블백 하나의 짐을 싣고서 팔려가는데 그날이 금요일이었어요.
참 서글픈 마음이 들었어요. 트럭에 실려서 어디론가 가는데 벌써 해가 지고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꽤 늦은 시간에 저를 어딘가 내려놓았는데 거기 여러 곳에서 병력이 집결하고 있었고 내리자마자 좌로 굴러 우럭굴러 하면서 얼차를 주고 있었어요.
그 가운데 병력을 분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정신없는 와중에 저 앞에 4명의 장교가 서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병력을 분류하나 보다 그런데 저 왼쪽에 있는 장교가 가장 인상이 사나워요.
하나님,
저 부대만큼은 걸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했는데 그 중대에 딱 걸렸어요.
그날 밤 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게 되었는데 저는 잠을 이룰 수 없었지요.
중대장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편지를 써서 이 중대장실 밑으로 집어넣고 밤새 기도하면서 아침을 맞게 되었습니다.
근데 아침에
이 성격이 괴팍한 중대장님이 내무반 문을 발로 펑 차고 들어오는 거예요.
문이 덜렁덜렁하면서 열렸어요. 이분이 오자마자 오범삭 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얘 입영 오 오범삭 하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고 일어섰는데 그분이 하는 말이 너 빨리 깨끗한 옷 갈아입고 교회 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옆에 있던 서무병이 깜짝 놀라서 중대장님, 어제 병력이 집결해서 대대장님도 집에 못 가고 있는데 어제 온 이등병을 어떻게 교회를 내보냅니까? 그랬더니 야 인마 네가 중대장이야 시키는 대로 해.
인사. 서우병이 말합니다. 밖에 내보내려면 외출 중에 인사과장님 도장이 필요한데 절대로 안 찍어줄 겁니다.
그랬더니 중대장님이 외출증 가져오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여러분 군대 말로 소위 가라 도장이라고 이렇게 돌려서 아무도 못 알아보게 자기 도장 찍더니 내보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군대 간 이래로 부대 밖을 나와서 물어 물어서 저 수원역 앞에 있는 수원중앙교회를 찾아갔어요.
그런데 교회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찬미 한 소절을 다 못 부르겠어요. 정말 얼마나 이 찬미가 은혜로운지 목사님 말씀이 어쩌면 이렇게 탄지 제가 주님 앞에 평생 충성하겠다고 서약을 했어요.
여러분 그 일이 있은 다음에 제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 제가 제대할 때까지 100명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100명 전도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있던 부대에 갑자기 부대대장님이 부임해 오셨는데 이분이 진급이 늦어서 대대장님보다 사관학교 선배님이셨어요.
이 부대대장님이 기독교인이었는데 여러분 군대 가면 연대급까지는 교회가 있지만 대대급에는 교회가 없어요.
그래서 독립 대대로 있는 우리 대대에도 교회를 하나 짓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대대장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여러분 그래서 이 교회를 지을 사람하고 자원을 받는데 저도 손을 들었어요.
5명의 병사가 자원을 해서 이 민간의 지원도 받고 해서 교회를 각 건물로 지었어요.
그런데 어느 교회가 헌신을 해줘서 천만 원을 헌신을 받아서 그 안에 에어컨도 설치하고 의자도 넣고 강대상도 놓고 피아노도 넣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 군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일요일에는 민간 목사님이 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그들이 말하는 수요 예배에는 설교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수요 예배 설교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 신학과 출신들을 모았더니 3명이 한 명 칼빈 신학 나온 사람은 자기는 1학년밖에 다니지 못해서 자기는 설교 못한다는 거예요.
대안신학 나온 사람은 누가 봐도 술, 담배 다 해서 누가 봐도 부적격이에요.
한 명 남았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신학교 36대학 신학과를 나온 사람만 남았어.
그분이 저에게 너 절대로 안식일교 가르치는 거 하지 말고 일반적인 성경만 가르쳐 해갖고 제가 성경을 수요일마다 가르치게 되었는데 여러분 이상하게도 네 중대별로 군대에서는 차출입니다.
25명씩 차출해서 그 교회 안에 꽉 차게 앉으면 100명이 앉을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그렇다고 다른 이야기만 했겠습니까? 제대할 때까지 안식일도 가르치고 다니엘, 계시록도 가르쳤어요.
여러분 저는 정말로 군대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붙들고 평생 승리하도록 허락하신 것이지요.
여러분 드디어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내는데 이제 고난의 학교 졸업시킨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 때때로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여러분에게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능력을 가르쳐 주시고 진정한 감사를 통하여 삶의 기쁨을 주시고
이제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 붙들고 다시 일어서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세워주시기 위함인 줄로 믿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다시 일어서는 믿음을 배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요나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시 일어서는 믿음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신에 간절한 기도로 주님 붙들게 도와주시고, 진정한 감사로 우리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도와주시고 다시 일어서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 다시 한 번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능력의 사람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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