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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막에 천주교가 전해진 시기는 병인박해 무렵부터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멀리 수원 지방에서 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들이 강원도 평창 지역에 살다가 박해가 뜸해지자 그 일부가 용소막에서 멀지 않은 황둔으로 내려와 거기서 얼마를 살다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충북 제천시 송학면 오미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곳에는 최씨와 백씨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 용소막 성당의 개척자인 최석완은 1848년에 제천 청풍에서 태어나 18세 때 병인박해를 겪고,1893년 풍수원 본당의 르메르(Le Merre, 李類斯, 1858~1928, 루이) 신부로부터 전교 회장에 임명되어 각처를 다니며 전교하다가 1898년 용소막에 정착 5, 6명의 교우들과 신부 방이 포함된 초가 10칸의 아담한 경당을 짓고 원주 본당 관할의 용소막 공소를 설립한 뒤 초대 공소 회장을 맡았다. 용소막 성당에는 1988년 11월 용소막 출신 사제로, 성모영보수녀회(聖母領報修女會)를 설립하고 성경 번역에 큰 자취를 남기고 1976년에 선종한 선종완(宣鍾完, 1915~1976, 라우렌시오) 신부의 삶과 공적을 기리는 유물관을 성모영보수녀회의 도움을 받아 설치하였다. 성서학자인 선 신부의 유품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성경과 자료들이 풍성하게 전시되어 있다. 선종완 신부는 성경의 신·구교 공동 번역 주관자로 1955부터 1976년까지 신구약 성경을 번역해 냈다. 유물관에는 한글과 영어는 물론 라틴어 성경과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성경들이 전시되어 있다. ![]() ▒ 선종완(宣鍾完) 신부 선종완(1915~1976, 라우렌시오) 신부는 성서학자이며, 성모영보수녀회 설립자다. 1915년 8월 8일 용소막에서 독자로 출생하였다. 가톨릭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선종할 때까지 후배 양성과 성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1958년부터 1963년까지 구약 성경을 나누어 번역하였고, 1960년 3월 5일 3명의 수녀 지원자로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였다. 1968년부터 8년간 신구약성경 공동 번역의 가톨릭 전문 위원으로 성경 번역 사업에 힘을 쏟아, 선종 전날 병상에서 원고 교정을 모두 마치는 정열을 보였다. 1976년 7월11일 간암으로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 중 선종, 과천 성모영보수녀원 내에 안장되었다. ▒ 성모 영보 수녀회(聖母領報修女會) 1960년 3월 25일 가톨릭대학 교수이면서 성서학자인 선종완 신부에 의해 경기도 소래에 창립된 수녀회다. 선종완 신부의 성경 번역을 돕던 몇 명의 처녀들이 입회함으로써 시작되어 한국인에 의해 한국에서 설립된 관상 수녀회이자 반봉쇄 수녀회로서 실제로 가난한 생활을 함으로써 빈곤한 자를 돕고 근면한 생활로 노동의 존귀함을 드러내자는 것이 창립 정신이다.1967년 6월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산골짜기에 그 터전을 이전하여 흙벽돌을 찍어 새수도원을 건설하였고 1969년에는 피정의 집을 마련하였다. 수녀회의 입회 자격으로는 다른 수녀회와 달리 국민학교 졸업 이상으로 학력을 한정하고 있다.‘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이라는 수도회 정신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며 말씀의 증거자로 살아온 성모영보수녀회가 ‘창설 50주년’ 여정에 나섰다. 50주년을 맞는 2010년 3월 25일까지 고 선종완 신부의 창설 정신에 따라 말씀을 증거하는 수도회 본연의 삶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 ■ 찾아가는 길 ![]() ■ 순례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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