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 땋아 틀어/은비녀 꽂으시고/옥색 치마 차려입고/사뿐사뿐 걸으시면 천사처럼 고왔던/우리 어머니/여섯 남매 배곯을까/치마끈 졸라매고/가시밭길 헤쳐가며/살아오셨네/헤진 옷 기우시며/긴 밤을 지새울 때/어디선가 부엉이가/울어대면은/어머님도 울었답니다
20여 년전 쯤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우연히 이효정이란 가수의 “우리 어머니”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어쩌면 가사 내용이 우리 어머니의 인생하고 똑같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5월 9일 교회에서 예배가 끝날 때 “어머니의 은혜”를 목사님이 위해 함께 부르자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 노래를 도저히 부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앞부분만 겨우 불렀을 뿐이었다.
우리 어머니처럼 고생한 분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골에 살던 내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에는 무심했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다하셨다. 바느질로 우리 7남매를 힘들게 키우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는 생활이 막막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무슨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얼마간 어머니와 잠깐 행상을 하시다가 다음 해에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신 어머니의 삶의
고단함이야 말할 수 없었다. 나는 7남매 중 넷째였고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만 13세도 안된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자개 공장 직원, 신문돌리기, 대학도서관 사환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어렵사리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기업을 1년 정도 다니다가 공무원이 되었다. 다시 공무원을 그만 두고 공기업에서 6년 동안 임원으로 근무했다.
보통 자식이 결혼할 때 보통의 경우 부모들은 결혼생활에 필요한 집이나 세간을 마련해 준다. 그런데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암만 생각해도 결혼할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결혼할 때 물질적으로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빚을 내서 겨우 아내와 함께 살 방만 얻어 결혼했다. 가구니 전자제품 등 가재도구들은 아내가 다 준비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니 그건 어머니의 눈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시골에 살 때 새벽에 어머니가 장독대 위에 정안수 떠 놓고 자식들을 위해 치성드리던 모습, 그리고 우리 가족의 끼니 해결을 위해 산 넘고 물 건너에 있는 큰 집에서 보리쌀, 감 등을 얻어서 큰 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이고 힘에 겨워 가쁜 숨을 내쉬던 어머니의 모습은 내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다. 나는 어렵게 자라 공부했지만, 어머니의 고생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7남매를 책임진 삶의 무게로 쓰러질 듯 고생을 하셨던 어머니의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 형제들에게 “너희들이 에미를 잘못 만나 너희들을 잘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해 미안하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나를 결혼 시키시면서 “나는 니한테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 부디 잘 살아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다. 나도 어머니한테 “괜찮아요. 잘 살테니 염려마세요”하며 애써 눈물을 감추었다. 물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어머니였지만, 안타까워하시는 눈물만으로 나는 충분했다.
결혼한지 40년이 지났는데, 나는 항상 어머니의 눈물의 의미를 새기며,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려고 했다. 어머니의 눈물은 나의 결혼생활의 눈에 보이지 않는 크나 큰 살림살이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2006년 6월 20일 89세에 돌아 가셨다. 나는 당시 공기업의 전무로 있었는데, 내 임기가 만료되기 10일 전에 돌아 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머니가 내게 큰 선물을 하시고 돌아가신 것이라 했다. 결혼할 때는 비록 물질적으로 아무 것도 해 주지는 못 했지만, 눈물을 선물로 주셨고, 돌아가시면서 눈에 보이는 물질(?)을 선물해 주셨다.
나는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점이라 믿는다. 언젠가 나도 하늘나라에서 어머니를 만날 소망을 품고 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께 눈물을 거두어 달라고 해야겠다.
첫댓글 일제 통치 기간 해방 그리고 625 동란 이후 일이십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는 아마도 8할이 어머님 살신적 자기 희생과 가호 덕에 자랐습니다 어머님이 나의 女神이실겝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참 우리 세대의 어머니... 고생만 하시다 살 만하니 그냥 가시더이다. 불효한 자식만 남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