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미인(美人)과 두 추녀(醜女)
언니가 비록 몸이 약간 불편하지만 이 세상에는 예쁘게 생기고도
언니보다 훨씬 더 괴로운 사람들이...... 괴로운 사람들이......."
이 약한 소녀는 마치 자신의 운명의 괴로움을 생각해 낸 듯 참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녀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언니에는 마음씨 좋은 고모가 보살펴주고 있지만 그렇지만
나는...... 나는.......
갑자기 가박피가 대갈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비! 이리로 돌아오지 않고 뭘 하는 거냐?
예쁜 몸매가 부르르 떨리더니만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머리밑에 꽂았던 은비녀를 빼내어 악마의 손에 쥐어주고
황급히 몸을 돌려 가박피 옆으로 돌아갔다. 악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가볍게 탄식했다.
"마음씨 착한 아가씨로구나! 하느님이 너를 보살펴주실 것이다!"
이 부드러운 말과 자상한 용모는 마치 관음보살의 화신인 듯했다. 그러나
그 외모 속에 악마와 같은 심장을 감추고 있을 줄을 알겠는가? 주칠칠은
악마의 모습을 쳐다보며 눈물이 붉은 피로 변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왕련화나 단홍자 같은 사람들이 비겁하고 악독하고 음험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이순간 그 사람들을 이 악마와 비교한다면 마치 천사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이미 망가졌고 또 이와 같은
이 지독한 악마의 손에 떨어진 이상 죽는 수밖에 그녀에게 더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녀는 이를 악물고 더이상 한톨의 쌀도 한 방울의 물도 먹으려
들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 악마는 그 집 점원의 동정과 배려로 그 집에서 가장
청결하고 깔끔한 방으로 들어갔다. 주칠칠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그녀는 비로소 배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목이 마른 것은 참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마치 불구덩이 속에 있는
듯 타올랐다. 점원이 차 한 주전자를 갖다주고 탄식을 하며 돌아갔다. 방
안에는 마침내 주칠칠과 그 악마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악마는 주칠칠을
바라보며 험악한 웃음을 띠었다. 주칠칠은 눈을 감고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악마는 주칠칠에게 다가와 험악하게
머리채를 휘감고 말했다.
망할 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는 거지? 죽겠다는 거냐?
주칠칠이 번쩍 눈을 떠서 표독스럽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비록 그녀는
말을 하진 않았으나 그녀의 눈빛은 이미 죽으려는 결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악마가 날카롭게 외쳤다.
네년이 내 손에 떨어진 이상 네년 마음대로 죽는 것이 그렇게......
헤헤! 그렇게 쉬울 것 같애? 얌전히 내 말을 들어라. 그렇지 않을
경우.......
그녀는 손을 번쩍 쳐들어 주칠칠의 얼굴을 한 대 세차게 후려 갈겼다.
그러나 주칠칠은 이미 죽음을 결심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두려울게 없어져
여전이 표독스럽게 악마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비분에 가득찬 눈빛은
여전히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어떻든 이미 죽으려고 결심했는데 뭣이 겁난단 말이냐? 때릴 테면
때리고, 살릴 테면 살리고, 죽일려면 죽여봐라! 네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봐라, 내가 네 말을 들어주나.)
갑자기 악마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망할 년! 네년이 이렇게 독할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겁나지 않는다
이거지? 좋다! 네년이 겁을 내는지 어떤지 두고 보자!
그녀의 말은 끝부분에 이르러 이미 남자의 음성으로 변해 있었다. 이와
동시에 두 손을 내밀어 주칠칠의 가슴 앞으로 다가왔다. 주칠칠은 비록
악마가 음흉하고 악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꿈에도 남자가 여자로
변장한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찍' 하는 소리가 나며 악마는
이미 주칠칠의 앞가슴의 옷을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주칠칠의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젖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수치와 분노로 눈물이
흘러나왔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비록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이렇게 악마의 희롱과 모욕을 받자 견딜수가 없었다.
악마는 통쾌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네년을 아주 좋은 곳으로 보내주려고 했는데......! 네년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니 내가 먼저 맛을 볼수밖에......!
주칠칠의 몸은 그녀의 손 아래에서 쉬지 않고 떨렸다. 그녀의 그 옥처럼
하얗고 매끄러운 젖가슴은 이미 이 악마의 주물럭거림으로 인해
분홍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악마의 차가운 웃음은 그녀의 귀에서
울리고 악마의 손은 그녀의 몸을 주무르고, 그녀는 피할수도. 그렇다고
반항도 할 수 심지어 분통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그녀의 눈물이 가득찬
눈에는 애걸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악마는 음흉하고 징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두렵다는 거냐?
주칠칠은 마음 속에서 끌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
말했다.
그렇다면 다음부터 얌전하게 말을 듣겠다는 거지?
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주칠칠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그녀는 천성적으로 성격이 매우 강했으나 이 악마의 앞에서는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악마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 말이 되지!
목소리가 또 부드러운 부인의 목소리로 변했으며 가볍게 주칠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얘야! 얌전히 있거라. 내가 잠깐만 있다가 곧 돌아오마!
이 악마에게는 두 개의 용모와 두 종류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그는 남자에서 여자로 또 여자에서 남자로 변할 수가 있었다.
주칠칠은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보고 즉시 대성통곡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악마가 비록
나가버렸으나 그녀는 감히 경거망동을 할 생각을 버렸다. 그녀는 다만
마음 속에서 끌어오르는 공포와 비분, 원한과 실망, 창피함과 속상함을
눈물로 만들어서 흘릴 뿐이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은 옷을 적시고 이불과
요를 적셨다. 그녀는 울다가 울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잠이
들었다. 주칠칠은 악몽중에서 일진의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가슴으로
몰아닥침을 느꼈다.
주칠칠은 그 선뜻한 차가움에 몸을 부르르 몇 번 떤 다음 눈을 떴다. 문은
이미 열려 있었으며 악마는 돌아와 있었다. 그 악마의 겨드랑이에는
길죽한 보따리가 끼어 있었으며 그녀는 왼손으로 문을 닫은 다음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침대 곁으로 다가온 그녀는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 있던
보자기를 내려놓으며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얘야, 잘 잤니?
주칠칠은 그녀의 웃음을 보고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 이 악마의
목소리와 웃음이 그녀의 마음 만큼이나 악독하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이 다정하고 목소리가 자상하면 할수록
주칠칠은 더욱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옆구리에 끼었던
길죽한 보따리를 풀어 헤치면서 말했다.
얘야, 봐라! 이 고모가 얼마나 너를 귀여워하니? 너 혼자 있으면
적절할까봐서 네 친구 할 사람을 데려왔단다!
주칠칠이 눈을 돌려 돌아보자 그녀의 가슴이 다시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그 보따리 속에는 백의의 여자가 싸여 있었는데 그녀는 봉숭아처럼 빛이
도는 양볼에, 눈을 가볍게 내리감고 편안히 자고 있었다.
잠자는 그녀의 얼굴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바로
백비비였던 것이다. 그 가련한 소녀 백비비도 이 악마의 손에 떨어졌던
것이다. 주칠칠은 표독스럽게 악마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분노와
원한이 가득차 있었다. 사람의 눈빛이 만약 살인을 할 수 있다면 이
악마는 주칠칠의 눈빛에 수십 차례는 죽었을 것이다.
악마는 품속에서 검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 검은 주머니에서 종이같이
얇은 작은 칼과 번쩍번쩍 빛나는 갈고리, 정교하게 만들어진 집게 그리고
국자, 가위, 세 개의 조그마한 옥병, 얼핏봐서 인두 혹은 미쟁이들이
사용하는 흙손 같은 것을 네다섯 개 꺼냈다. 그 물건들은 모두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나 작고 장난감 같아 어린아이들이 갖고 노는 그러한 물건
같았다. 주칠칠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몰랐으나 그녀가 이러한
물건을 꺼내는 것을 보고 멍청해졌다. 그때, 악마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얘야! 만약 네가 심장이 터져 죽지 않을 수 있다면 한쪽에서 내가 하는
것을 봐도 좋다. 그렇지만 이 고모는 네가 눈을 감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으면 좋겠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칠칠은 곧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악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착한 애로구나!
곧이어서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 병마개를 여는 소리, 칼로 피부를
자르는 소리, 가위 소리,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 등이 들렸다. 한참이
지나서 악마가 한숨을 불어내쉬며 칼끝으로 후벼파는 소리, 그리고
백비비의 가벼운 신음소리 등이 들려왔다. 이 죽음처럼 적막한 깊은 밤에
이러한 소리들은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에 족했다. 주칠칠은 겁이
났으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슬며시 눈을 떠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악마가 등이 그녀의 시야를 가리고 있어 그녀는 악마가 두 손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약 차 두 잔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일진의
쇠붙이들이 부딪치는 소리, 병마개를 닫는 소리, 주머니를 잡아 묶는 소리
등이 들렸다. 이 소리에 이어 악마가 길게 한숨을 불어내며 말했다.
다 끝났다!
주칠칠은 오장육부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랑스럽고 작은 비둘기
같던 백비비는 이미 머리가 반은 희어버렸고 얼굴에는 곰보 자국이
더덕더덕 붙어 있고 위로 말려오른 눈썹에 매부리 코를 가진 기이할
정도로 못생긴 중년부인으로 변해 있었다. 악마는 기쁜 듯 웃으며 말했다.
얘야! 이 고모의 솜씨가 어떠냐? 이 계집년의 친부모가 봤다 해도 자기
딸인 줄은 모를 거다.
주칠칠이 더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악마는 통괘하다는 듯이
웃으며 손을 뻗어 백비비의 옷을 잡더니 순식간에 그녀를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벗겨버렸다. 등불빛 아래에서 백비비의 아름답고 날씬한 몸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 가는 영양과 같이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련한 마음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혼백을 뺏아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악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대단한 미인이로구나!
주칠칠은 다만 멍한 기분을 느끼며 뜨거운 피가 머리끝까지 용솟음치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귓볼은 불처럼 타오르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악마는 이미
백비비에게 거칠고 낡은 청포로 만든 옷을 바꾸어 입혀 놓고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악마는 득의에 찬 모습으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얘야! 솔직히 말해봐라! 네가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곰보딱지 붙은
얼굴의 중년부인이 바로 그 예쁘고 아름답던 미인이라고 믿을 수가
있겠니?
주칠칠은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비로소
자기의 모습이 변했던 과정을 알 수 있었다. 그녀 자신도 틀림없이
백비비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내 몸을 더듬던 네 녀석의 두 손을
잘라버리고 내 몸을 살펴보았던 네 녀석의 두 눈알을 빼내어서 네 녀석이
다시는 만지지도 보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야 말겠다!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그러한 기분을 맛보게 하고야 말겠다!)
복수하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굳세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모욕을 당한다 해도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악마가 다시
득의에 찬 웃음소리를 떠뜨리며 말했다.
너는 이 역용술 기법이 옛날 운몽선자(雲夢仙子)의 비법을 전수받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 고모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아니?
주칠칠은 순간 왕삼기의 주인 왕련화의 뛰어난 역용술을 떠올렸다.
왕련화의 역용술은 확실히 이 악마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왕련화는 바로 그 운몽선자의 후예란 말인가? 그 선녀처럼
아름답고 뛰어난 무공을 가졌던 부인은 운몽선자였단 말인가?)
그녀는 즉각 이러한 사실들을 심랑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평생 어쩌면 다시는 심랑을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심랑을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감을 느꼈다.
이튿날 새벽, 세 사람은 다시 길을 걸었다. 주칠칠은 여전히 노새의 등에
타고 있었으며 악마는 한 손으로는 노새의 고삐를 잡고 한손에는 백비비의
손을 잡아 서로 의지하며 걸어갔다. 그러한 모습은 더욱 가련하게 보였다.
악마는 백비비가 근본적으로 반항하지 못할 것을 알고 몸의 기력을
빼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칠칠은
백비비를 쳐다볼 수 없었다. 주칠칠은 백비비의 눈물이 가득찬 눈에
놀람과 두려움을 담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성격이
그처럼 강한 주칠칠도 겁이 나서 미칠지경인데 하물며 심성이 유약하고
담력이 적은 백비비임에랴!
주칠칠은 비록 백비비를 쳐다보지는 않았으나 지금의 모습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녀는 백비비도 마음 속으로 바로 자신과 같이 하늘을 원망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악마는 도대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일까? 도대체 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백비비는 틀림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노새 말굽소리가
뚜벅뚜벅 나고 눈물이 얼굴을 적시며 마주 불어오는 먼지바람에 지나가는
행인들의 동정이 가득찬 연민의 눈빛 등. 이러한 모습들은 어제와 꼭
같았다. 이 사람을 미치게 할 것 같은 여행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 것인가? 참을 수 없는 이 고난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
갑자기 지붕을 덮은 마차 한 대가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낡은 마차는 종종 보이는 그러한 마차와 다를 점이 조금도 없었다. 마차를
끄는 말은 비쩍 말랐고 약하고 늙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차를
모는 사람은 바로 그 신비한 김무망이었고 김무망의 옆에 앉은 사람은
꿈에도 그리던 심랑이 아닌가?
주칠칠의 심장은 즉시 밖으로 뛰쳐나올 듯했다. 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미칠 듯한 기쁨에 주칠칠의 가슴은 울렁거리며 머리가 멍청해졌다. 그녀는
머리가 멍해지고 눈앞이 부옇게 흐리더니 순간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나옴을 느꼈다. 그녀는 필생의 힘을 다해 마음 속에서부터 외치기
시작했다.
(심랑! 심랑! 빨리 와서 저를 구해주세요! 빨리! 빨리요!)
그러나 심랑은 당연히 그녀의 마음 속에서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그는
주칠칠을 몇 번 돌아보더니 가볍게 탄식을 하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마차가 다가오는 속도는 극히 느렸으며 주칠칠이 타고 있는 노새도
극히 천천히 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주칠칠은 조급하고 원통스럽고 급한
마음에 미칠 듯했다. 그녀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졌다. 그녀는 계속 속으로
외쳐댔다.
(심랑! 심랑! 부탁이에요! 제발, 저를 좀 봐주세요! 제가 바로 밤낮으로
당신만을 생각하는 주칠칠이에요! 저를 모르시겠어요?)
그녀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랑이 이 순간에
그녀의 마음 속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심랑은 조금도 그러한 기색을 모르는 듯했다. 그러나 악마는
갑자기 심랑 등이 타고 있던 마차 앞으로 다가가서 그 길을 막아설
줄이야! 그녀는 마차를 막아서서 손을 벌려 애처로운 소리로 애걸했다.
마부 어르신! 적선 좀 하세요. 이 불쌍한 년에게 적선 좀 하세요!
하느님이 복을 내리실 겁니다.
심랑의 얼굴에 갑자기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하는 듯한 기색이 얼핏
스쳐갔다. 심랑은 마차를 가로막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김무망은 그 악마에게 몇 장의 은표를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주칠칠은 눈을 크게 끄고 심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마치 피가
뿜어져 나올 듯했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의 부르짖음은 이미 분노에 찬
욕설로 변해 있었다.
심랑! 심랑! 당신은 진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단 말인가요? 이 무정하고
사람 생각을 해줄 줄 모르는 사람! 심장도 없는 악한! 당신......! 당신!
나를 더이상 보지도 않다니!)
심랑은 확실히 그녀를 더이상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다만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악마와 김무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악마가
중얼거렸다.
좋은 분이시군요! 하느님이 당신을 행복하게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김무망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은표를
주고 나서 가볍게 채찍을 들어 말의 궁둥이를 내리쳤다. 그들이 탄 차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주칠칠은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심랑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심랑을 만나기
전까지는 미약하게나마 약간의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마차는
덜컥덜컥 하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마차는 그녀의
모든 희망을 가져가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완전히 절망한다는 것이
어떠한 기분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슬퍼하지도 원망하지도
두려워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심신은 완전히 마비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그녀의 눈앞은 깜깜한 암흑이었으며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이 미칠 듯한 마비현상! 이것이 아마 절망의 느낌인 듯했다. 길에는
행인들의 왕래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쁜
소리로 왁자지껄 떠들고 지나갔으며, 어떤 사람들은 슬픔에 찬 모습으로,
어떤 사람들은 침중한 모습으로, 어떤 사람은 마치 무엇을 찾는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진정한
절망의 기분을 아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심랑과 김무망이 탄 마차는 이미 백 장 밖으로 벗어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앞쪽으로 불어닥치자, 심랑은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던 그
비싸지만 이미 낡아버린 담비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눈썹과 눈빛이 보이지
않도록 푹 눌러썼다. 그는 더이상 김무망을 쳐다보지 않았다. 다만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삼 일, 삼 일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구나! 약속한 날짜는 갈수록 다가오는데.......
김무망이 말했다.
그렇소! 이미 희망이 없는 것 같소이다.
심랑의 입가에 맑고 깨끗한 웃음이 번쩍 스치더니 말했다.
희망이 없다구요? 그렇지만 희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있는 겁니다.
김무망이 말했다.
그렇소! 이 세상에 어떠한 일도 신념을 완전히 절망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오.
김 형께서는 나의 유일한 희망이 무엇인지나 아십니까?
그는 말을 멈췄으나 김무망이 대답이 없자 다시 이어서 말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주칠칠입니다. 그녀가 이번에 실종 된 것은
틀림없이 무슨 비밀을 발견해 냈기 때문일 겁니다. 그녀는 심기가 깊고
오기가 대단한 아가씨라서 제가 생각하기에 혼자 힘으로 이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살짝
사라져버렸던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자기 혼자만 사라질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그렇소! 어떠한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도 모두 심 형을 속이지는
못하는데, 하물며 주칠칠의 마음 씀씀이야.......
그렇지만 삼 일이 지났는데도 그녀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마
다른 사람의 손에 떨어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성격으로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우리는 그녀의 소식을
얻어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소.
심랑이 갑자기 웃음소리를 내며 김무망의 말을 잘라 말했다.
나는 계속하여 네 번이나 말을 했는데 김 형께선 계속하여 '그렇소' 하고
대답을 하는군요. 김 형께서는 무슨 다른 걱정거리라도 있는 건가요? 방금
제가 했던 말은 근본적으로 김 형께서 대답할 필요도 없던겁니다.
김무망이 아무말 없이 한참을 있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심랑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별다른 표정이 없었으나 입으로는
천천히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소. 심 형의 짐작이 맞았소. 나는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소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심 형께서는 짐작해내실 수
있겠소?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짐작을 해낼 수는 없지만 좀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죠?
심랑의 눈빛이 번쩍 하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방금 길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부인을 만났는데 김 형께서는
그녀에게 일만 냥 은자의 은표를 아무말 없이 내주시었소. 그것이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김무망이 한참 동안 말없이 있더니 입가에 갑자기 웃음기가 돌면서 말을
했다.
세상에 심 형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일은 진짜 없다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많지는 않다고 봅니다.
당신도 상당히 호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오?
그렇소이다. 나에게 만약 일만 냥의 은자가 있을 때 방금과 같은 그렇게
가련한 구걸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나도 일만 냥 은자 전부를 그녀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죠?
심랑의 눈빛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본래 집을 떠난 떠돌이지만 김 형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 형은 근본적으로 그렇게 남에게 적선이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소이다. 그런데 그 부인은 왜 하필 나에게 구걸을 하지 않고 김 형에게
구걸을 했을까요?
김무망의 고개가 점점 밑으로 숙여지며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일도 당신을 속일 수는 없으니...... 당신을 속일 수는
없으니.......
김무망이 갑자기 머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표정은 다시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소이다! 제가 그 부인에게 은표를 준 것은 확실히 이상한 것이오.
그렇지만 나는 그 관계를 얘기해 드릴 수는 없소이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심랑의 입가에
가벼운 웃음이 떠돌더니 이 웃음은 점점 멀리 펴져나가 온 얼굴이 웃는
모습으로 변했다. 김무망이 말했다.
심 형의 웃음은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는 듯한데.......
김 형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을 직접적으로 해주지 않으신다 해도
제가 약간은 추측해 볼 수가 있을 것 같소이다.
그렇게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번 추측해 보도록 하죠.
심 형 마음대로 해보시오. 다른 일은 심 형께서 추측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만 이번 일 만큼은.......
마차를 끄는 말들의 발굽에서 일어나는 먼지들을 주시하면서 심랑이
천천히 말했다.
김 형과 제가 교분을 쌓기 시작한 이래 김 형께서는 어떤 일도 저를
이렇게 속이려고 하지 않으셨소. 그렇지만 이 일에 대해서
김형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보건대 이 일과 김 형과의 관계의
중요성은 말씀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짐작이 가오.
어, 그래요? 으흠.......
이 일과 김 형의 관계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제가 생각하건대 이것은
틀림없이 그 쾌락왕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는 비록 말발굽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으나 사실상
김무망의 얼굴에 나타나는 조그만 변화도 그의 눈을 피해갈 순 없었다.
심랑이 이곳까지 말했을 때 김무망의 얼굴에는 과연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심랑이 즉시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그 가련한 부인은 틀림없이 쾌락왕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부인의 그 가련한 모습은 아마 연극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김무망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김무망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얼굴이
마치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마치 서로가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기라고 하겠다는 듯이......!
김무망은 심랑의 안색에서 도대체 심랑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하였으며, 심랑은 김무망의 얼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얘기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듯했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서로 쳐다만 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마차는 이미 또 백여 장 이상의 거리를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던 김무망의 얼굴이 점점 펴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심랑의 마음도 풀리기 시작했으나 그는 애써서 얼굴 표정이 부드럽게
변하는 것을 막았다.
그 까닭은 심랑은 이 순간이 바로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심리적 대립과정에서 상대방보다 우세를
점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그 미묘한 순간인 것이다. 만약 이 순간 자신이
참지 못하고 말을 하게 된다면 김무망은 더이상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을 심랑은 알고 있었다. 김무망이 마침내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렇소! 그 청의 부인은 틀림없이 쾌락왕의 수하요!
심랑이 어찌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는 김무망의 말이 끝나자마자 즉각
반문했다.
김 형은 쾌락왕 밑에서 재물을 장악하고 있으니 그 지위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부인이 스스럼없이 김 형에게 돈을 요구했고
김 형은 한 마디도 없이 내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볼때 그녀의 지위는
김 형보다 아래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녀는 누구입니까? 바로 주, 색,
재, 기 사대 사자 중에 하나인가요? 그렇지만 그는 왜 사대사자인데도
여자입니까?
그의 말은 마치 회초리처럼 한 마디 한 마디가 김무망에게 숨돌릴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의 질문은 모두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김무망은 심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 그는 갑자기 반문했다.
심 형께서는 이 천하에 역용술로 운몽선자 일파 외에 어느 파가 가장
뛰어난지 아시오?
심랑이 가볍게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 천천히 말했다.
역용술은 원래 무공의 범위에는 들어가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역용술이 뛰어나다고 반드시 무림의 명가라고는 할 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무릎을 탁 치더니 실성한 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김 형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산좌사도(山左司徒)가 아닌가요?
김무망은 머리를 들지도 않았고 더이상 말을 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말채찍을 높이 쳐들어 말의 궁둥이를 힘껏 내리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이미 늙고 기력이 다하여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더이상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심랑의 눈에 흥분한 기색이 떠오르더니 말했다.
산좌사도 가문은 비단 역용술에만 뛰어날 뿐 아니라 경공이나 암기,
미혼약 등에 두루 뛰어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지난날 강호상에서의
지위도 운몽선자에게 약간 뒤쳐질 뿐이었소. 최근 강호상에서는 비록
산좌사도 가문의 무공이 대부분 음험하여서 하늘의 재앙으로 일문이 모두
죽어서 그 대가 끊겼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다리가 많은 벌레는 죽어서도
넘어지지 않듯이 산좌사도 가문도 틀림없이 살아있는 후인, 후손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명예와 지위를 볼 때 만약 그들이 쾌락왕
문하로 들어갔다면 틀림없이 그 지위는 사대사자 정도에 임명되었을
것이오.
그러나 김무망은 여전히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심랑이 또 중얼거렸다.
내가 만약 쾌락왕이라면, 그리고 만약 산좌사도의 자제들이 내 문하로
투항해 들어왔다면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임무를 맡기는 게 가장
적절할까요?
심랑의 얼굴빛이 차차 환해지더니 이어서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산좌사도는 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재물은 이미 김 형이
책임지고 있소. 나머지는 색사(色使)와 기사(氣使)인데 기사는 언제나
쾌락왕 곁에서 쾌락왕을 보호하고 있소. 그런데 그 산좌산도 자제들은
그렇게 호전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소이다. 그러나 만약 산좌사도
제자들로 하여금 쾌락왕을 위하여 천하의 미녀들을 모아오게 한다면 아마
그보다 더 적절한 임무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오. 김 형! 제 말이
맞습니까?
김무망이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소이다. 심 형이 말씀하신 건 모두 직접 추측해
낸 것일 뿐이오.
심랑의 눈빛이 '번쩍' 하더니 하늘을 우러러 깊은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한참 후 심랑이 또 천천히 말했다.
내가 만약 산좌사도의 자제들로 쾌락왕을 위해 천하의 미녀를 모아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나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했을까?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천천히 이어 말했다.
우선 나는 틀림없이 역용술로 나 자신을 여자, 혹은 부인의 모습으로
바꾸겠지. 그러면 내가 여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테니까.
김무망의 눈빛은 이미 감탄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심랑은 이어서 말했다.
내가 미녀들을 포획하여 온 후에는 또 어떻게 했을까? 옥문관(玉門關) 밖
쾌락왕이 있는 곳까지 미녀들을 옮긴다는 것은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닐
것이야. 왜냐하면 그 미녀들은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테니까.
여기까지 천천히 말하던 그의 입가에 다시 엷은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렇지만 내가 역용술에 뛰어난데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그
미녀들을 역용술로 더없이 못 생긴 여자들로 만들어버리면 그녀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한 번 바라보고 나서 더 보려고 하지도 않겠지? 그리고
또 그녀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그녀들에게 미혼약을 먹여서
말도 못하고 전신에 기력이 빠져서 꼼짝도 못하게 하면 말썽을 부리지
않게 할 수 있을 거야!
김무망이 길게 탄식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그 마차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중얼중얼 말했다.
네가 후일 심 상공의 반 정도만 총명하다면 그걸로 충분하겠구나.
그 아이는 며칠간의 쌓인 피로로 깊이 잠든 듯 김무망의 말은 못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김무망의 말은 그 아이에 대해 말했던 것이 아니라 '심랑
당신은 진짜 총명하오! 모든 비밀을 당신은 모두 알아맞췄소!' 하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랑이 어찌 김무망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지
못했을 것인가. 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돌아갑시다.
김무망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돌아가다니오?
방금 그 청의부인을 쫓아가던 그 두 명의 여자들은 틀림없이 괜찮은
집안의 딸들인 것 같소. 내가 어떻게 그녀들이 이처럼 비참한 경우에
떨어지는 것을 그대로 놔두고 본단 말이오?
김무망이 갑자기 냉소를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고 말했다.
네가 후일 크거든 어떤 일은 심 상공을 배워서는 안 된단다. 조그만 일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친다는 말, 너는 이것을 꼭 가슴에 기억해
두어라.
심랑이 가볍게 웃으며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차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계속 가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참이 지나서 김무망이
갑자기 심랑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심랑과 김무망이 같이 지내기를 수일, 김무망의 지금 이 웃음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우러났던 것이다. 심랑이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뭐가 고맙다는 거지요?
심 형께서는 한순간이라도 빨리 쾌락왕이 거처하는 곳을 알고
싶어하셨소. 또 그 산좌사도가 틀림없이 쾌락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소. 심 형께서는 몰래 산좌사도의 뒤를 쫓아갈 수 있었을
것이오. 그렇지만 산좌사도가 이미 심 형과 내가 같이 있다는 것을 본
이상 심 형이 그를 쫓아서 쾌락왕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죄는 내가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심 형은 나를 위해 이렇게
좋은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겠지요? 심 형께서 이렇게 나를 좋게
대해주면서도 입에서는 한 마디도 나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있으니 내가 어찌 심 형께 고맙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 냉막하고 과묵한 괴인이 이렇게 긴 말을 뱉을 줄은 심랑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김무망의 말에는 감동으로 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심랑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친구라는 것은 서로 알아준다는 데 그 소중한 뜻이 있는 거요. 김 형께서
이미 제 마음을 알아주셨으니 제가 더이상 무엇을 바라리까?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부딪쳤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이상 말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갑자기 도로 전방에서 일진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