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떠오른 생각을 잊을까봐 손가락에 실을 매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퇴근을 하여 집에 돌아온 그는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신문을 뒤적이다가
손가락에 감긴 실을 발견하고는
"내가 뭘하려고 했지?" 하면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어느새 새벽 2시가 되었을 때
마침내 섬광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오늘은 집에 가면 일찍 자야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엇인가에 몰두 한다는 것은
분명 비난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영부영 하며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을 미루어 볼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맞딱뜨리고 있는 처지를 잊어버린 체,
바쁜 일상에 파묻혀 사는 태도를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기는 하되,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지금 내가 사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갖고 있지 않다면
참으로 딱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를 앞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100 일 동안 기도를 했더니 참 좋더라.
내가 부처님을 뵈니까 환희심이 나더라.
내가 삼천배를 하고 났더니 무엇이 이루어지더라." 라는 등의
갖가지 반응이 입에서 입으로 떠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취에 대한 측정 기준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범주로 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일 경우에는 자못 사태가 심상치 않게 됩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
부처님의 영험이 있기는 뭐가 있어?
아예 절간에는 가지도 마라." 라고 하는
반응이 줄줄이 엮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