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럭무럭 잘 자라주는데 조금 크니까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고 동네 어린애들 우유 안 받아 먹는 애들 없을정도로 모두 우유를 받아 주더군요. 저도 없는 생활이지만 애들 우유를 받아 주었습니다. 시장을 가던지 마트를 지나가면 눈에 본 것이 있음 사 달라고 메달리고 울고불고하던 애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학교 잘 댕겨서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숙제도 본인이 알아서 잘했고 물품도 잘 챙겨가고 3학년 올라갈 때 동생이 입학을 하니 동생도 잘 챙겨서 델고가고 비가오면 우산도 챙겨서 주고 저는 마음이 편했습니다. 갑자기 시골에서 언니애들이 대구에 와서 공부를 한다고 우리집으로 온다카이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애들 둘 언니 애들 둘 네명이 같은 학교에 댕기는데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 애들은 언니네 애들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너머다 보고 언니 애들이 학년이 높다보니 나이차이가 4,5 살 차이가 나는데 애들은 똑같더라고요. 운동회를 하면 언니네 식구 모두와서 같이 놀아주고 하니까 고맙고 감사히 생각했습니다. 처음은 서먹하니까 얌전도하고 눈치도 보고 1,2년 지나니까 얌전이고 눈치도 안보고 자기네들 집처럼 생활하니까 꾸중을 할 수 없고 엄마 떨어져 있는 것이 불쌍하다 싶어서 우리 애들만 꾸중을 했더니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갔는데 그만 나쁜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집을 이층 주택에 생활을 하다가 상가 주택을 샀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출금이 있어서 저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섬유회사 취직을 해서 회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큰애가 친구들따라 한교도 안가고 딴길로 간다고 선생님께서 연락이 왔는데 저도 회사 생활하니 시간을 맞추지를 못해서 회사 퇴근하면 오후 2시 바로 학교로 갑니다. 학교에 가면 애는 없습니다. 해가 지면 집에오는데 타일러보기도 하는데 엄마 말이 귀에 들어갑니까. 친구말이 귀에 들어가지 하루 이틀 세월을 자꾸 가는데 속이 터질듯하지만 밤에 집에오면 또 달래 봅니다. 옷사달라고 하더군요. 옷사주면 학교 꼬박꼬박 갈끼가 하니 간다고해서 바지하나 그때돈 10만원카면 큰 돈인데 그래도 학교가라고 사줘서 달래서 이튿날 학교 보냈는데 한 일주일 잘 댕기더니 또 학교에 왔다가 수업안하고 갔다고 하데요. 회사 갔다오면 딸 찾으러 삼만리 댕기면서 찾아서 델고와서 타이르고 언니애들은 잘 댕기고 조카가 하는 말이 이모 가만히 놔두고 온다고 하는데 부모 마음이 그럴 수 있나요. 이럭저럭 조카들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하고 방을 따로 얻어서 생활하기로 하고 제가 한번씩 찾아가서 봐주기로 하고 우리애들만 같이 생활하니까 조금 낫기는 한데 농띠가 생각이 바뀌는게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고등학교는 제일여상 학교 입학을 해서 일학년때 잘 댕기더라고요. 2학년 올라가니까 도 나쁜 행동을 하기 시작하데요. 학교 선생님께서 연락이 오면 알만하죠. 회사일 마치고 집에와서 신발확인부터 저는 학교로 찾아갔습니다. 학교가면 한쪽 구석에 친구들이랑 모여서 뭘하는지 수군거리고 있는데 딸래미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엄마가 왠 일이냐고 학교 수업 했냐고 물어보면 몰라서 수업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얘기하니 선생님께서 연락왔더라 하면서 달래서 집에 델고와서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암 소리 안하고 내가 알아서 할게 하면서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나중에는 또 옷 사달라고 학생이 교복입음 되지 옷이 뭐가 필요하냐 친구랑 어디간다고 어딜가는데 극장간다고 하니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저는 우째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손에 쥐야지 몇 번이고 달래고 또 달래고 알겠다고 대답은 잘도해요. 당분간 학교 열심히 댕기더니 친구를 델고왔는데 그 친구는 부모님이 없는 친구를 델고왔는데 왜 부모님도 없는 친구를 사귀느냐 하니까 불쌍해서 델고왔다 우째끼나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받구로 학교 꼬박꼬박 댕기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연락이 와서 가면 파출소에 붙잡혀서 꾸중 듣고 있고 뭐 잘못했노 물어보면 잘못이 없다고하고 문제는 친구들 땜시 그런건지 알수는 없는데 심심하면 노래방에 있고 학생이 무슨 노래방가노하면 학생은 돈을 조금만 받는다고 하니 저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 한테 부모님 없으면 우리집에서 학교댕기라고 부탁도 해봤지만 그말은 잠시고 학교가는 날보다 안가는 날이 많으니 회사 마치면 집에 현관문열고 신발확인하고 신발이 있음 마음이 편하고 신발이 없음 가슴 답답하니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 둘수도 없고 한번은 앞집아지매가 집에는 돈 벌 생각하지 말고 자식부터 바로 잡아야겠다 하시면서 들어가시길래 예 대답하고 얼마나 농땡이를 쳤는지 저런 말이 나오나 싶어서 딸내미 보고 학교가서 열심히해서 대학교 가거라 하니까 간다고 대답은 잘도해요. 친구도 부모님 있는 친구들 사귀면 안되겠나 하니ᄁᆞ 부모님이 없어서 불쌍해서 같이 댕긴다고 합니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서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고 친구랑 자취해서 취업한다고 하더니 하루는 개를 한 마리 델꼬왔는데 개가 인물이 있더군요. 이름 있는 개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고 개를 옥상에 놔두었는데 학교에서 노래하면 개가 따라서 노래하고 신기했습니다. 어느덧 개가 얼마나 크는지 저는 이기지도 못해서 시골에 갔다주었습니다. ᄄᆞᆯ래미도 직장 잘 댕긴다고 자랑하고 집에도 자주오고 하더니 갑자기 소식을 딱 끊고 연락이 없었습니다. 저는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물어보니 잘 지낸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만 듣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6년 지나서 신용정보회사라면서 돈 구백만원 갚아라고 자꾸 연락이 와서 우리애는 집나가서 몇 년째 모른다고 하니 그래도 이 돈은 갚아야 된다고 협박을 주길래 친구한테 물어보니 돈을 빌려 쓴 것 같다고 하길래 우리애들한테 잘못될까봐 구백만원 갚았습니다. 또 세월이 흘러 몇 년 지냈는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친구 찾아가서 영아 어디있냐고 몰었더니 아무말이 없어서 그냥 집으로 오고 몇 번을 찾아 갔더니 부산 어디어디 있다고 가르쳐 주더군요. 주소를 듣고 찾아가보니 한달 월세를 그때 돈으로 70만원 주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속은 터졌지만 물어보니 한달 벌어서 월세금주고 나면 돈이 없어서 어ᄄᅠᇂ게 할 수가 없대요. 지아부지랑 의논해서 니가 이렇게 살면 되나 동생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월세금 줄이고 다시 출발해보자고 우리는 다음 약속하고 대구 올라와서 직장생활하고 한달 후에 연락이 왔는데 한달 월세금 20만원이라고 하길래 부산에 내려갔더니 계약서 쓰는데 2천만원에 월 25만원이라 하길래 20만원이라했는데 왜 25만원이고 이것 안된다 하니까 엄마아빠한테 거짓말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방 안얻어줄까봐 할 수 없이 2천만원 월세금 25만에 계약하고 앞으로 알뜰하게 생활하라고 부탁하고 대구집으로 우리는 올라왔습니다. 인제 인간이 될까 걱정이 조금되는데 몇 달 지나니까 다리다쳤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갈수록 산이다 싶기도하고 또 부산내려갔더니 왼쪽다리 기브스해서 목발짚고 있더군요. 우짜다가 다쳤노 쓰레기 버리고 돌아서다가 넘어졌대요. 치료 받음 낫겠지하고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방을 얻어줬으니 알아서 하겠지 믿고 우리는 우리생활하고 지내는데 한참을 지냈는지 또 연락이 왔는데 방이 더워서 생활을 못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정말 이런일을 우짜면 좋노 생활해봐라 생활하다 보면 괜찮겠지 달래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 세월이 얼마나 지냈을까 부산을 내려가서 방을 구하러 댕겨보니까 전세 1억을 넘어야 방을 얻겠더라고요. 딸래미는 돈은 하나도 없고 방은 비싸고 돈은 없고 하루종일 댕기니까 발도아프고 몸도 피곤하니 지아부지는 짜증을 나도 짜증자니만 부동산 한군데만 함 가보고 집에가자고 게작 달래서 마지막 부동산 한군데 가서 얘기 했더니 22평에서 7천만원 한다고 하길래 방구경하고 이것해라카이 딸래미 마음에 안든다고 지랄하니 저도 화를 내면서 나도 인제 모른다 니맘대로 하라고하니 알겠다고 계약하고 우리는 대구오고 이사하는 날 내려온다고 약속하고 그 다음 이사해줬더니 그렇게 알뜰하게 생활하고 치과 실장으로 있으면 월급 꼬박꼬박 모으고 착한 인간이 따로 없더군요. 전세 7천만원 얻어줬더니 헛돈나갈때가 없으니 금방 부자가 된 것 같더군요. 인젠 시집만 가면 되겠다 싶은데 시집을 죽어도 안간다고 소리지르고 저는 혼자 있는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사람은 욕심이 끝이 없나봅니다, 전세 얻어주면 되지싶더니 또 혼자 있으니 옆에 누군가 있으면 좋으련만 자나께나 신경이 쓰이는데 아는 언니한테 소개부탁했더니 구미 총각을 선을 보라고해서 보더니 마음에 안든다고 딴 친구한테 부탁해서 부산 총각을 선을 보더니 마음에 안든다고 지랄하더니 총각이 아파트 사놓고 메달리니까 할 수 없이 결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25평 아파트 생활했는데 3년동안 애가 없으니 애기는 포기하고 샐활하고 지내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된다고 병원가니까 임신4주된다고 기쁜소식을 들고왔습니다. 손자가 태어나서 가정이 화목하고 제가 손자 봐주로 월요일 새벽5시 부산출발 도착 7시 내가 손자 받고 사위 딸이 출근하고 몇 년을 그렇게 해도 즐거운 일이라서 그런지 마음은 뿌듯했습니다. 손자가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쁜일인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딸래미도 간호대학 4년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부산 모 병원에 간호사로 근무 잘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도 34평으로 이사를 해서 생활하는데 좋은 것 같고 손자가 엄마 아빠를 최고로 생각하고 할미 할비를 매일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어린 것이 생각하는 것이 기특해서 무엇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할미 마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