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16장 채권자와 채무자, 돈이란 무엇인가?
어느 날, 일곱 사람과 스승이 독수리 둥지에서 방주로 돌아오자, 문 앞에서 샤마담이 발 아래 꿇어 엎드린 남자에게 종이조각 하나를 흔들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샤마담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의 부채 체납기간은 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젠 더 이상 관대해질 수가 없다. 지금 즉시 갚겠는가, 아니면 감옥에 가서 죽겠는가?"
샤마담의 발 아래 있는 남자는 러스티디온이었다.
그는 방주에서 돈을 빌려 쓰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나이와 가난 탓으로 허리가 굽었다.
러스티디온은 얼마 전 단 하나 있는 자식마저 잃고, 며칠 전 단 한 마리 있던 소마저 죽었으며, 그 때문에 아내가 중풍으로 쓰러졌다고 말하면서 이자의 지불기간을 더 연장해 달라고 탄원했다. 그래도 샤마담의 마음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스승은 러스티디온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겨, 그의 팔을 부드럽게 잡으면서 말했다.
"일어나라, 러스티디온, 그대 역시 신을 닮은 자. 그리고 신을 닮은 자는 어떠한 그림자 앞에서도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스승은 샤마담을 향하여 말했다.
"내게 차용증서를 보여 주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격노했던 샤마담이 어린 양보다 더 얌전하게, 갖고 있던 증서를 스승에게 건네주었던 것이다. 그 증서를 받은 스승은 찬찬히 그것을 살펴 보는 것을, 샤마담은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말없이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이 방주의 창시자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고리대금하기 위한 돈을 그대에게 유산으로 남겼는가?
팔기 위한 물건이나, 빌려주는 대가를 챙기기 위한 토지를 유산으로 남겼는가?
그대 형제의 피와 땀을 유산으로 남겼는가?
그리고 그대가 땀을 최후까지 착취한 자, 최후의 한 방울까지 피를 쥐어 짠 자를 넣기 위한 감옥을 유산으로 남겼는가?
방주의 창시자는 방주와 제단과 빛을 그대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그것 말고는 없다.
방주는 창시자의 살아 있는 육체.
제단은 창시자의 불굴의 마음.
빛은 창시자의 타오르는 신념.
그리고 창시자는, 신념이 없는 탓에 '죽음'의 피리에 춤을 추고 부정(不正)의 늪에서 버둥거리며 가라앉는 세계 한 복판에서 이 방주와 제단과 빛을 아무 손상 없이 순수하게 보존하도록 그대에게 명령한 것이다.
몸에 대한 걱정으로 영혼의 기운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대들은 신자들의 기부금을 받아 살아가도록 허락되었다.
그리고, 방주가 출범한 이래 기부금이 부족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보라!
지금 그대는 이 기부금을 그대와 기부하는 자 모두에 대한 재앙으로 바꾸고 말았다. 기부받은 것으로써 기부한 자를 예속시키기 때문이다. 그대를 위해 짠 실을 가지고 그대는 실을 짜 준자를 채찍질 한다.
그대를 위해 옷을 만들어 준 자에게서 옷을 벗겨내 벌거숭이로 만든다. 그대를 위해 빵을 구워준 자를 빵에 굶주리게 한다. 그대를 위해 돌을 깨서 다듬어 준 자를 똑같은 돌로 만든 감옥에 집어 넣는다.
그대의 따뜻함을 위해 나무를 벤 자를 똑같은 나무로 만든 멍애와 관 속에 집어넣는다. 그들의 피와 땀은 높은 이자를 붙여 빌려준다.
돈은 영리한 자들에 의해 동전이나 지폐로 바뀐 인간의 피와 땀에 지나지 않는다. 그 돈에 인간은 구속된다. 부(富)는 피와 땀을 가장 적게 흘린 자들에 의해 축적된 인간의 피와 땀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피와 땀을 가장 많이 흘린 자들의 등은 휘고 있다.
재앙이로다.
부를 축적함으로써 정신과 마음을 태워 없애고, 자신의 나날들을 살육하는 자는 재앙이로다. 무엇을 축적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부와 소의 땀, 양치기와 양의 땀, 수확하는 이와 이삭 줍는 이의 땀, 장님이나 장애자나 가난한 자의 땀....
부자의 창고는 이 모든 것들과 그 이상의 많은 땀을 축적한다.
고아나 건달의 피, 전제군주나 순교자의 피, 악인이나 정의로운 이의 피, 약탈자나 약탈당한 자의 피, 처형자나 처형된 자의 피, 거머리나 사기꾼의 피, 그들에게 당한 자의 피....
부자의 창고는 이 모든 것들과 그 이상의 많은 피를 쌓아 놓고 있다.
진실로 재앙이로다.
그 부와 재산이 인간의 피와 땀인 자는 재앙이로다.
피와 땀은 결국 대가를 거두는 것이므로, 또한 그 대가는 엄청나고, 무서울 정도로 다시 거두어들일 것이다.
빌려주는 것,
그것도 이자를 붙여 빌려주는 것!
그대의 생명 자체가 신이 주신 선물 아니던가?
만약 신이 그대에게 준 선물의 아주 작은 부분에라도 이자를 붙인다면 그대를 무엇으로 지불할 것인가?
이 세계는 각각의 인간, 각각의 사물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보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맡기는 공통의 금고가 아니던가?
종달새가 그대에게 노래를 빌려주는가?
샘이 반짝이는 물을 그대에게 빌려주는가?
양이 자기의 털에 이자를 붙이는가?
젖소가 자기의 젖에 이자를 붙이는가?
구름이 비를 그대에게 파는가?
태양이 햇볕과 따뜻함을 그대에게 파는가?
이런 것들과 그 밖의 무수한 것이 없다면, 그대들의 삶은 어찌 되겠는가?
또한 그대들 중에서 이 세계의 금고에 가장 많이 예금한 자는 누구인지(혹은 무엇인지)말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샤마담, 그대는 러스티디온이 방주의 보물창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계산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그대는 그의 기여를---아마도 그 중의 보잘것 없는 일부를---그에게 빌려주고, 게다가 이자까지 붙이려 한다. 더욱이 그대는 그를 감옥으로 보내, 그곳에서 그를 하릴없이 죽게 하려 한다.
어떤 이자를 러스티디온에게 요구하는 것인가?
그대가 빌려준 것이 러스티디온에게 무슨 이익을 가져다주었는지 모르겠는가?
죽은 자식, 죽은 소, 중풍 걸린 아내 이상의 어떠한 지불을 바라는 것인가?
구부정한 몸을 덮고 있는 냄새나는 누더기 이상의 어떤 이자를 거둔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아. 샤마담이여,
눈을 뜨라, 그대 역시 이자를 더한 빚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고, 그 빚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감옥에 끌려가 그곳에서 썩어 없어지기 전에 눈을 뜨라.
똑같은 것을 나는 그대들 모두에게 말한다.
동행자들이여, 눈을 뜨고 깨어 있으라.
줄 수 있을 때는 주라.
그대가 받은 모든 것을 주라.
그러나 결코 빌려주지는 말라. 생명까지 포함한 그대의 모든 소유물을 빌려주고, 빌려준 것들이 일제히 지불기한을 넘겨, 파산 상태에서 감옥으로 들어가면 안 되니 말이다."
스승은 이때 다시 손안에 있는 차용증서를 바라보고, 그 차용증서를 찬찬히 조각조각 찢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러고 나서 금고의 관리인인 힘발을 향해 말했다.
"러스티디온에게 소 두 마리를 살 정도의 돈과 부부가 평생 살아갈 만큼의 돈을 주라.
그리고 러스티디온, 안심하고 가라.
그대는 빚을 면제받았다.
절대로 채권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빌려주는 자의 부채가 빌리는 자의 부채보다 훨씬 무거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