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성삼재-만복대-정령치 등반>
성장통 여정
2112이예진
비록 발은 퉁퉁 붓고 온몸엔 파스 냄새가 진동할 만큼 고단한 하루였지만 많은 것들을 얻고 배워간 하루였던 것 같다.
2017년 10월 26일 우리 구례고는 가을 현장체험학습으로 지리산을 다녀왔다. 소문으로만 내돌던 말이 현실이 되니 참으로 착잡하고 우울했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란 말이 있듯이 나는 가방에 잔뜩 소풍 느낌을 담고 큰 돗자리를 챙겼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명주쌤께 안 힘들다는 대답을 듣고는 산행 선두 그룹에서 아람이와 걷기 시작했다. 오기 전에 만복대가 평지라는 소문이 들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힘들지 않았다. 가다보니 조금씩 오르막길이 있어 숨이 차긴 했지만 앞에 친구를 놓치지 않고 잘 따라 갔었다. 그런데 소문으로 들은 평지는 없었고 오르막길이 지속되자 나는 뒷 친구들에게 선두 자리를 내어주고 돗자리에 않아 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으로 쉬다 40명가량의 친구들을 보낸 뒤 아람이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고, 나 나름대로 오르막길을 끝내면 쉰다는 규칙을 만들어 휴식을 보상으로, 천천히 올라가던 것 같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소리를 질렀는데 갑자기 “예진아 빨리와!”라고 거의 고함에 가까운 송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람이와 급히 올라가보니 고리봉이었다. 나는 처음에 고리봉이 끝인 줄 알고 환호성을 질렀다가 끝이 아니라는 얘기에 좌절감을 느꼈었다. 또 다시 우울모드에 들어가고 있는데 송수가 호통을 쳤다. 나 때문에 20분이나 기다렸다고 말이다. 문학 조별과제로 조끼리 사진 찍기가 있는데 나 때문에 송수랑 유진이가 20분이나 기다렸다고 해서 참으로 미안했다. 아무튼 사진찍기를 뒤로하고 고리봉에 올라오니 그동안 힘들어서 안보였던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에 푸르던 지리산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가을 산을 보니 짜증이 싹 가실 뻔 하였는데 지원이가 가리킨 만복대 정상을 보니 갑자기 명주쌤 얼굴이 떠오르고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고리봉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아람이와 나는 또 고된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멘탈붕괴 상태로 정신없이 걸어가고 있는데 이미 다른 친구 가방 2개나 든 지원이가 도움을 자처했다. 그때의 지원이는 나라를 살린 이순신 장군 같았다. 미끄러운 길은 잡아주고 오르막길은 밀어줬다. 거짓말을 좀 보테서 5분에 한 번꼴로 쉬면서 아람이, 지원이, 나 이렇게 셋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현이한테 전화가 왔다. 이미 정상에 도착해 있던 창현이와 중혁이가 내가 너무 늦게까지 올라오지 않자 전화를 걸은 것이었다. 창현이와 중혁이는 우리를 구조하려 정상에서 내려왔다. 창현이와 중혁이가 오자 지원이는 안심된다는 듯이 다른 애들 가방을 들고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창현이와 중혁이가 생명수도 구해주고 정상까지 밀어줘서 만복대에 무사히 올라 갈 수 있었다. 만복대에 다다랐을 때 미남쌤이 박수를 치면서 축하해주셨지만 명주쌤의 웃고 있는 모습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아무튼 만복대에 도착하자마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짐밖에 안되던 돗자리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누워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정상에 오른게 기뻐서라기보다는 무사히 올라왔다는 안도감에서였던 것 같다. 솔직히 이번 산행은 비만에 평발에 저질체력인 나에겐 너무나도 힘든 코스였다. 멘탈도 나가 있었고, 길도 좋은 편이 아니라 다칠까봐 온몸에 긴장을 하고 가다가 정상에 오니 긴장이 풀려서 그랬던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난 흐른 뒤 진정이 됐고 그제서야 점심밥을 먹기 시작했다. 산꼭대기서 먹는 김밥은 떡볶이에 김말이 튀김을 찍어먹는듯한 황홀함 그 자체였다. 밥을 먹고 나니 정신이 온전해져 경치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산바람을 만끽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하산을 하라고 하셨다. 그 소리가 나에게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같았다. 입을 앙 다물고 나는 이번에도 선두그룹에서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곧 잘 따라가다가 또 많은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나에겐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게 더 힘들뿐더러 길도 올라갈 때보다 더 험해서 온몸에 바짝 긴장을 하고 갔다. 너무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커다란 명주쌤 얼굴을 생각하며 꾹 참았고, 서정이가 앞장서서 미끄러운 곳 알려주고 손을 잡아줘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내려온 다음 바로 보리차물 하나를 사서 다 먹은 후에 송수, 유진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벤치에 누웠다. 내 몸은 이미 과도하게 사용해 망신창이가 되었지만 모든게 끝났다는 사실에 누워서 본 파란하늘이 너무나도 예뻤던 것 같다.
나는 이번 산행을 계획하신 명주쌤이 밉고도 감사하다. 미운이유는 명주쌤같은 산악인도 스틱과 등산화등 무장을 하고 다니셨는데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고 저질체력인 나와 몇몇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감사한 이유는 많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심적으로는 많은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산행의 처음과 끝까지 내 곁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어줬다. 만복대까지 나를 보좌해준 아람이, 힘에 부친 나를 도와준 지원이, 나를 구조하러 온 창현이, 중혁이, 하산할 때 나를 보좌해준 서정이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너무나도 고맙다. 친구들에게는 그저 자기보다 힘든 친구를 도와준 일뿐이라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내가 받은, 내가 겪은 그 감정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어딘가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힘들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 주저앉았다가도 옆에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을 내어 다신 걸어가는 것 같다. 명주쌤께서는 이번 산행이 많이 힘들었던 사람은 더 기억이 많이 날것이라고 하셨다. 이제는 더 이상 명주쌤이 밉지 않다. 명주쌤 덕분에 많은 것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말 힘들고 싫지만 이런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또 입을 앙 다물고 산을 올라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첫댓글 파란하늘이 눈이 부셔서 눈물을 흘린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