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는 나라 (2幕(막) 18場(장)) 趙海一(조해일)·原作(원작)
[막] 1막
장치
무대 중앙에 큰 장방형 나무상자가 놓여있다. 이 상자는 침대도 되고, 데스크도 되고, 노래 부르는 단도 되고, 걸터앉는 의자도 된다. 그 상자 뒤에는 회색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이 커튼을 실내 장면에선 그냥 두고, 실외장면에선 거두어(열어) 호리굴트가 보이게 한다. 기본장치는 이것 뿐이다. 이 기본장치에다 장면에 따라 약간의 소품을 곁들여 장면을 조성한다. 이 간단한 장치를 보충하기 위해서 조명에 특히 신경을 써야한다. 더구나 이 작품이 추리극인만큼 조명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장] 제 1장 (나이트 클럽)
(무대 상수쪽에 흰 보를 씌운 작고, 둥근 테이블과 의자 두개가 있고,
하수쪽에 "축 개업"이라고 써붙인 커다란 화환이 있다. 그 화환 앞에 정장한 지배인이 서있어 정중하게 손님을 안내한다 동희와 마기자가 들어온다)
[지배인] 저 실례지만 초대되셨는지요? 초대되지 않으신 경우라면 입장료를 지불하셔야 합니다만---
[마기자] (초대장을 내보이며) 한성일보 기자요
[지배인] 아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 (안내한다)
(동희와 마기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는다)
[지배인] 자 그럼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하수쪽으로 가서 선다 웨이터가 곧 다가온다)
[웨이터] 저 뭣이든 분부하실 일이 있으면 저한테--- 당번 웨이터 미스터 박입니다
[마기자] 아 우리 맥주 좀 주고 뭐 적당한 안주 하나 주지 (동희를 건너다 보며) 참 미스 한, 뭐 청하고 싶은게 있으면 청하지 그래
[동희] 없어요
(마기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웨이타는 사라진다)
[마기자] 가만있자--- 미스 한 한테 애인이 있던가?
[동희] 네? --- 그건 왜 또 갑자기?
[마기자] 아니 만일 있다면 아무리 직업상의 일하고 관계가 있다곤 하지만 이런 나이트 클럽엘 미스 한하고 같이 다니다가 들키는 날엔 영락없이 내 코뼈가 부러지는 거 아냐?
[동희] 어마 난 또---
[마기자] 후배 교육시키다가 괜히---
[동희] 염려 마세요 애인은 있지만 마선배 코뼈 부러지는 일은 없을테니
[마기자] 이건 실망인걸 코뼈는 아무래도 좋다치고 애인이 없단 대답이 듣고 싶었는데--- 정말 있어요?
[동희] 선배 속이는 후배 보셨어요?
[마기자] 야 이건 점점 실망인걸 하긴 선배 속이는 후배가 전혀 없지도 않지만
[동희] 난 그런 나쁜 후배 아니예요
[마기자] 차라리 나쁜 후배였으면 좋겠는데---
[동희] 어머!
[마기자] 그 애인 뭐하는 사람이요?
[동희] 형사예요
[마기자] 형사? 이거 코뼈를 조심해야 되겠군 그래 형사라면 어디 근무하는?
[동희] 시경 강력계예요
[마기자] 아이쿠. 야 이거 내 코뼈는 이제 내 코뼈가 아니구나
[동희] 염려마세요 그렇다고 애인 선배의 코뼈를 어떻게 하거나 할 사람은 아니니까요
[마기자] 아무래도 오늘 내가 단단히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동희] (곱게 눈을 흘긴다) (웨이타 맥주를 가져다 두개의 컵에 따른다)
[마기자] 자 들어요 설마 맥주도 못한다고 하진 않겠지 (동희와 마기자 맥주를 든다 지배인 여섯 쌍의 남녀를 안내해서 들어와 상수쪽으로 나간다 -상수밖에 많은 테이블이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들의 태도는 거침없다 이윽고 상수밖에서 그들의 떠드는 소리가 어수선하게 들려온다 동희 그쪽을 주시한다)
[마기자] 미스 한 오인방 얘기 못들어 봤소?
[동희] 오인방이라뇨?
[마기자] 이 사회부 기자 참 딱하군 그럼 사인방이 뭣인지는 알아요?
[동희] 아, 중공의 강청 일파를 일컫는 말이죠?
[마기자] 그런데 우리 나라에 오인방이 있단건 모르는군
[동희] 도대체 무슨 얘기죠?
[마기자] 말하자면 중공의 사인방을 흉내 낸 건데, 저 친구들이 자신들의 그룹에 붙인 이름이요
[동희] 그럼 왜5인방이죠 ? 저 사람들은 5명이 훨씬 넘는데
[마기자] 아 여자들은 그냥 데이트 상대로 데려온 애들일 거고 남자 친구 6명중에서도 한 친구는 정식 멤버가 아니고 액세서리인 셈이지
[동희] 액세서리?
[마기자] 음 요즘 한창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가수 배수빈이란 친구요
[동희] 그럼 나머지 "오인방"이란 사람들은?
[마기자] 모두 최근 몇년 사이에 눈덩이 처럼 규모가 커진 재벌급 회사의 경영주 2세들이지 그리고 그들은 명문 K고교의 동창생들이기도 하고
[동희] 오인방이라고 하면 좀 나쁜 사람들의 모임같은 인상이 들잖아요? 왜 그런 명칭을---?
[마기자] 그야 자기들 나름의 멋이겠지 (부르스 음악이 울린다)
[마기자] 자 우리도 춤이나 한번 출까?
[동희] 어머 나 춤출 줄 몰라요
[마기자] 이런!
[동희] 미안해요
[마기자] 아 정말 못춰요?
[동희] 네 미안해서 어떡하죠?
[마기자] 하는 수 없지 내 오늘 일진은 잘못짚은 모양이군 (광배 상수에서 춤추며 나왔다가 도로 춤추며 들어간다)
[마기자] 주택 재벌 R 건설 회장의 세째 아들인 김 광배란 친구야 (용기 역시 춤추며 나왔다가 춤추며 들어간다) [마기자] D 증권 사장의 맏아들 박용기란 친구
(영일 춤추며 나왔다가 춤추며 들어간다)
[마기자] Y종합식품 회장의 둘째아들 선우영일이란 친구
(명근 춤추며 나왔다가 춤추며 들어간다)
[마기자] M 자동차 회장의 막내아들 최명곤이란 친구
(상철 나영과 더불어 춤추며 나온다)
[마기자] 저 친구가 바로 이 호텔의 회장 둘째아들인 이상철이고 그 파트너가 유명한 패션모델 채나영이지
[동희] 네 여성잡지 화보에서 많이 봤어요
[마기자] 채나영은 저 친구의 애인 겸 여자애들의 리더격이지
(그동안에 두쌍의 손님들이 지배인에게 안내되어 상수쪽으로 들어간다 광배와
나영이 신나게 춤추며 도로 상수로 들어가려 할때 오규가 여자 파트너와 함께 나온다 나영 오규와 시선이 마주치자 몹시 당황한다)
[오규] (중얼거리듯) 아 채나영---
(광배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수로 들어간다 오규도 넋나간 사람처럼 따라 들어간다 부르스 음악 그친다 수빈 나와서 단(상자)위에 올라간다 박수 갈채 소리가 상수밖에서 들려온다)
[마기자] 저 배수빈이란 친구 요즘 젊은 애들간에 인기가 대단하지 알맞게 저속하고 또 알맞게 저속하잖거든
[수빈]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재롱삼아 맹인가수 레이 찰즈의 노래를 약간 흉내내 보겠읍니다
(박수와 갈채소리)
수빈 포켓에서 짙은 색안경을 꺼내 쓰고 노래한다 가슴 밑바닥에서 짜내는 듯한 음울하고 절규에 가까운 흑인 영가 이다 수빈 도중에서 갑자기 빠른 디스코의 리듬으로 바꾼다 조명도 빠른 속도로 켜졌다 꺼졌다 한다 모두 쌍쌍이 나와 열광적으로 춤춘다 수빈도 단에서 내려와함께 어울러 춤춘다 밴드 연주소리 요란해져 수빈의 노래를 삼켜버린다 그 순간 그 음악소리를 뚫고 한 여자의 짧고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거의 단말마에 가까운 두번째
비명 소리 밴드 연주가 멈춰진다 여자들의 한꺼번에 내지른 찢기는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사람이 죽었다" 고 외치는 소리 "평상 조명으로 어서 바꿔!" 하는 다급한 남자 소리 조명 평상조명으로 바뀐다 상철 가슴에 칼이 꽂힌채 쓰러져 있다 그 곁에 손에 피가 묻은 윤두식이 거꾸러져 있다 동희 너무 처참한듯 외면한다)
[마기자] 아니 저건 이상철 아냐! (동희의 어깨를 꽉 잡으며) 이봐요 미스 한 특종이야 특종!
[나영] 야아. (사색이 되어 쓰러지려 한다)
[수빈] (냉큼 부축하고) 나영씨 정신차리세요!
[장] 제2장 (시경 강력계 실)
(상자 위에 "강력계장"이란 푯말과 전화기가 놓여있다 말하자면 상자가 테이블이 된 셈이다
그 테이블 앞에 의자가 두 개 놓여있다 경식과 계장이 이야기 하고 있다)
[계장] 반형사 엊그제 밤 Q호텔 나이트 클럽사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경식] 그 사건의 범인은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읍니까
[계장] 자네의 그 사건에 대한 관심은 그 정돈가?
[경식] 계장님 그 사건에 뭐가 있읍니까?
[계장] 일이 좀 재미있어질 것 같애---
[경식] 네?
[계장] 오늘 아침에 아주 흥미있는 편지 한 통이 배달됐어
[경식] 뭐라고 써 있었읍니까?
[계장] (편지를 건네주며) 직접 읽어 보게
[경식] (앞면을 보며) "시경 강력계 앞"이라--- (뒷면을 보며) "정직한 시민"이라--- 이건 왼손글씨 같은데요?
[계장] 김식반의 견해도 마찬가지였어
[경식] 그럼 벌써 감식반을--- ?
[계장]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꺼내 보라구 이유를 알게 될테니까
(경식 편지 알맹이를 꺼내든다 편지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서 전달된다)
[스피커] 안녕들 하십니까? 난 아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정직한 시민입니다 우선 한가지 밟혀드릴 사실은 여러분이 체포한 Q 호텔 나이트 클럽 사건의 범인은 진짜 범인이 아니란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짐작이 안가십니까? 그건 물론 나자신이 범인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밝혀 드릴건 범행 당시 내가 취한 행동입니다 이걸 밝히지 않으면 그가 진범이 아니란 내 주장이 매우 불성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염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정직한 의도에 위배됩니다 아 그리고 여기서 미리 한가지 더 밝혀 둬야 할 것은 내가 왜 그런 공개된 장소를 택했는가 하는 점이군요 난 되도록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가능한 한 극적으로 내 일을 수행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 일이 나에겐 "시작"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으니까요 시작이란 누구에게나 중요한 게 아니겠읍니까? 자 이제 내 범행에 대해 말해야겠군요 내가 준비한 것이라곤 고작 과도 한자루였읍니다 범행 순간은 "디스코 타임"이었지요 난 그 시간에 어떤 조명이 사용된다는 걸 알고
있었읍니다 난 그 조명의 효과를 정확하게 사용했지요 그리고 난 디스코 춤의 생리도 대강 알고 있었읍니다 그것은 단조롭기 때문에 자세의 변화를 저절로 요구하지요 때로는 파트너와 등을 돌리고 돌아서게 까지 되지요 난 그 순간을 기다렸는데 고맙게도 피살자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읍니다 난 그의 심장에 칼을 정확하게 꽂았읍니다 그는 이미 칼에 찔렸는데도 나로부터 피하려는 동작으로 비틀거리며 자기 파트너 쪽으로 돌아서더군요 잠시후에 그의 파트너가 비명을 질렀으며 그는 쓰러졌읍니다 난 근처에 있던 한 친구를 밀어 넘어뜨려 날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보호하려 했지요 이상입니다
난 최대의 정직한 편지를 쓰려곤 했읍니다만 아직 이 이상 정직해질 순 없는 내 입장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경식 복잡한 시선으로 계장을 바라본다)
[계장] 왜 기분이 묘한가?
[경식] 글쎄요 놀림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계장] 아뭏든 얘긴 좀 재미나게 될 것 같지?
[경식] 재미나게 된 게 아니라 복잡하게 된것 같은데요
[계장] 하지만 자넨 본래 복잡한 걸 좀 좋아하는 편 아니던가?
[경식] 아뭏든 흥미는 당기는군요
[계장] 한번 뛰어 보겠나? 필요한 지원은 해줄테니까
[경식] 글쎄요 한번 슬슬 뛰어볼까요?
[계장] 근데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될 인물들에 문제가 좀 있단말야---
[경식] "오인방"말입니까?
[계장] 음 그 친구들은 신분이 신분인만큼 조심해서 다루잖으면 좀 시끄러워질지 모른단 말야
(동희 나온다)
[동희] 안녕하세요
[계장] 어서 오오 한기자
[경식] 웬일야 동희?
[동희] 경식씨한테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경식] 나한테? (계장을 넌지시 본다)
[계장] 난 자릴 피하지
[경식] 죄송합니다 계장님
(계장 하수로 나간다)
[경식] 상의할 일이란 뭐야?
[동희] 사실은 나 약간 이상한 편지를 한장 갖고 있어요
[경식] 무슨 편진데?
[동희] 여기서 볼래요
[경식] 글쎄 무슨 편진데 그래?
(동희 코트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준다)
[경식] (뒷면을 보고) "정직한 시민!"--- 이 편지가 배달된게 언제지?
[동희] 부장이 나한테 넘겨 준게 한시간쯤 전이니까 아뭏든 오늘 오전일거예요
[경식] 음 거의같은 시간에 배달됐다고 할수있군
[동희] 네? 그게 무슨 소리죠?
[경식] 음 실은 나도 방금 이 비슷한 편지를 봤어
[동희] 네?!
[경식] (냉큼 편지 알맹이를 꺼내 읽는다 차츰 흥분한다) 그 편지와 똑같군!
[동희] 그래요?
[경식] 다만 이 구절만다를 뿐이야 "---귀 신문의 기사가 특히 자상하고 세밀한 부분에까지 언급이 되어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현장의 생생한 묘사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잘못된 보도라는 사실을 감히 알려드리지 않을수 없읍니다 범인은 잡힌게 아니라 지금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동희] 어머 어쩜!
[경식] 아니 어저께 그 기사 동희가 쓴거야?
[동희] 네 그래서 부장은 이 사건을 계속 날더러 맡으란 거예요
[경식] 그럼 동희가 사건현장에 있었단 얘기야?
[동희] (고개를 끄덕인다)
[경식] 아니 그럼 사건 당시 그 나이트클럽에---?
[동희] (또 고개를 끄덕인다)
[경식] (어이없다는듯이 웃고) 누구하고 간거야?
[동희] 우리 신문사의 마기자란 분하고요
[경식] 마기자가 누군데?
[동희] 신문사 선배죠 뭐
[경식] 신문사 선우배끼린 그런데도 같이 가나?
[동희] 어머!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경식] 그래 질투하는 거야 왜?
[동희] 옹졸해
[경식] 나 옹졸한 줄 이제 알았어?
[동희] 어머 점점
[경식] 아 이거 불쾌한데
[동희] 나 좀 봐요 경식씨
[경식] 지금 뚫어져라고 보고 있어
[동희] 끝까지 그런 식으로 굴면 나 갈래요
[경식] 내가 불쾌해 한게 기분 나뻐?
[동희] 기분 나뻐요
[경식] 하, 나 이거. 좋아, 그럼 나 불쾌했던 것하고 동희 기분 나쁜것하고 비기기로 하지
[동희] 못비기겠어요
[경식]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옹졸엔 옹졸인가?
[동희] 그래요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감돈다)
[경식] 그럼 우리 일을 의논해 볼까 공교롭게도 같은 사건을 맡게 됐으니 말야
[동희] 그러세요
[경식] 어때? 동희가 목격한 상황하고 편지에 쓰여진 상황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점은 없어?
[동희] 그런건 없는것 같아요
[경식] 그럼 일단 사건현장에 있던 사람중의 하나가 쓴 편지임에 틀림없다고 봐도 되겠군?
[동희] 네 그런데 편지 쓴 사람이 정말 범인일까요?
[경식] 글쎄 일단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아니, 가능성은 상당 히 커 [장] 제3장 (인천의 호텔 방 안)
(상자에 화려한 모포가 덮여지고 그 위에 화려한 침구가 깔려 있다 말하자면 상자는 침대가 된 셈이다 나영과 영일 그 침대에 걸터 앉아있다)
[영일] 나영씨 정말 변화가 있다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군 상철이한텐 좀 미안하지만 녀석이 죽잖았으면 나한테 이런 기회가 왔겠어?
[나영] 어머 영일씬 벌받을 소리!
[영일] 하하 난 무신론자 입니다요
[나영] 금방 의리의 사나이라고 한건 누군데요?
[영일] 그야 변함없지 죽은 친구의 여자를 거두어 주려는 것 뿐이니까
[나영] 이런 법이 어딨어요 기분전환을 시켜준다고 이곳 인천까지 데리고 나와 놓구서
[영일] 이 이상의 기분전환이 어딨어 예수도 말했다구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맡기라구
[나영] --- 정말 너무하시다
[영일] 하하 화났어?
[나영] (짐짓 슬픈 표정을 짓는다)
[영일] 나영씨 정말 화났어?
[나영] 나같은게 화낼 권리나 있겠어요 이사람 저사람 돌려가면서 차지하려드는 비참한 신세가 그저 가엾을 뿐이죠---
[영일] 난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냐 미안해
[나영] 미안해 하실것 없어요--- 난 본래 그런 여잔걸요 뭐 --- 나같은게 무슨 지조가 있겠어요
[영일] 글쎄 그런 뜻이 아니래도
[나영] 그래도 그런말 싫어요
[영일] 하하 좋아 그럼 다시 안하지
[나영] 약속해요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영일]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며) 좋아 약속하지 자 피곤할텐데 목욕이나 하지
[나영] 먼저 하세요
[영일] 먼저해
[나영] 영일씨 먼저 하세요 그동안 내가 맥주 시켜다 놓을 테니까요
[영일] 하 이거 --- 그럼 함께 할까?
[나영] 어머머
[영일] 상철이하곤 함께 한 적 없나?
[나영] 어머머 그런일 없어요?
[영일] 하하 정말?
[나영] 금방 상철씨 얘긴 안하기로 약속해 놓구서
[영일] 하하 미안 미안 자 먼저 해 아무래도 레이디 퍼스트니까
[나영] ---
[영일] 또 화났어!
[나영] 아녜요 그럼 먼저 할께요
[영일] 놀래라 난 또 화난줄 알았지
[나영] (잠시 망설이다가) 잠깐 불을 꺼도 괜찮겠죠? 옷을 벗으려면---
[영일] 하하 괜찮아
(나영 전등 스윗치를 내리고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나영] 어머 이쪽 보고 계심 싫어요
[영일]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자기 손으로 불을 껐잖아
[나영] 그래도 싫어요 저쪽으로 돌아서세요
[영일]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나영이
[나영] 어머 이러심 어떡해요?
[영일] 나영이!
[나영] 어마 나 부서지겠어요 조금만 놓아줘요---
[영일] 안돼 도망치잖겠다고 약속하면 몰라도
[나영] 도망치지--- 않을께요
[영일] 좋아 그럼 가만 있어 침대로 옮겨 줄테니까
[나영] 난--- 몰라요---
[영일] 몰라도 돼 가만 있기만 하면 돼 자
(어둠속에서 두사람의 뜨거운 숨소리가 고조된다)
[장] 제4장 ("오인방"의 연락 사무실)
(상자에 비싼 테이블보가 덮혀있고 그 둘레에 의자가 여러개 놓여있다 "오인방"과 나영 수빈이 저마다 그 의자에 앉아있다 광배 상수쪽 테이블 모서리에 서서 말한다)
[광배] 사실은 나영씬 이자리에 부르지 말까도 생각해 봤지만 상철이 하고 제일 가까웠던 사람을 빼놓는단 것도 뭣하구 해서 불렀다구 미스터 배도 그날 우리하고 같이 있었기 땜에 부른거구 자 그렇게들 심각해 할건 없어 단지 경찰이 현장에서 잡은 용의자가 혐의 사실도 희박하고 증거도 불충분하단 이유로 풀려났단 것 뿐이니까 오늘 아침 신문들 봤지?
(모두 수긍하는 태도로 잠자코 있다)
[광배] 그럼 도대체 어떤 놈이 상철일 죽였냐? 이거야 경찰과 신문사에 투서를 한 놈이 범인같은데 그놈이 도대체 누굴까? 경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난 윤두식이란 그 친구를 제외하고 그날 우리와 함께 춤추었던 친구가 세명이 더 있는데 여자들은 빼놓고 말야 그 친구들 중의 하나일까? 하지만 말야 경찰을 일단 우리까지도 혐의대상에 포함시키려고 할거란 말야
[명곤] 야 광태 넌 그럼 우리들 중에 범인이 있을 가능성도 있단 얘기냐 뭐야?
[광태] 아니 난 경찰이 어떻게 나오리란걸 예상하고 하는 말일 뿐이라구 우릴 성가시게 할게 틀림없어서 말야
[영일] 그런 문제라면야 경찰 간부 층에다 얘기해서 우릴 건드리지 말라고 하면 될거 아냐
[용기] 하지만 경찰이 협조를 요청해오면 귀찮아도 일단 협조하는 태도는 보여줄 수밖에 없겠지
[명곤] 만일 우리가 협조하는 태도를 보여주잖으면 그땐 정말 우릴 의심할지도 모를거야
[광배] 명곤이 말이 옳아 문젠 거기에 있다구 그러니 이쪽의 체면을 손상당하지 않는 범위에서 협조 요구에 응하면 어떨까?
[영일] 좋아 (모두 수긍한다)
[영일] 그런데 범인은 도대체 누굴까?
[광배] (농담으로) 혹시 우리 나영씨가 한 짓 아냐?
[나영] 어머 나빠요 정말
[광배] 하하 농담이라구 그런데 그렇게 펄쩍 뛰는 걸 보니 좀 수상한데?
[나영] 어머머!
[광배] 하하 미안 미안
[수빈] 혹시 광배 형님이 범인 아니우? 아까부터 말하는 투가
[광배] 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나도 사건현장에 있었으니까 가만 혹시 수빈이 너 아니냐?
[수빈] 아이구 형님도 난 이래뵈도 파리 한마리 못죽이는 성미라우
[광배] 누가 아니? 파리는 못죽여도 사람을 죽일수 있는지
[수빈] 아 나이거 말한마디 잘못했다간 밑천도 못건지겠는데
[광배] 야 임마? 너 정말 수상해 도둑이 제발이 저린다고 너 임마 네가 한짓을 나한테 덮어 씌우는 거 아냐?
[수빈] 아이 형님도 농담 한번 잘못했다가 살인누명 쓰겠네
[광배] 하하 임마 그러니까 농담도 함부로 하는게 아냐
[수빈] 농담은 형님이 먼저 했잖우? 나영씨한테
[광배] 하하 그랬던가
[용기] 뭐가 유쾌한 일이라고 시시덕 거리고들 그래?
[광배] 미안해 용기 자 우리 기분도 좀 바꿀겸 자릴 옮겨 볼까?
[영일] 그거 좋겠군
[용기] 나이트 클럽은 피하는게 좋겠어 우리 중에 누가 또 하나 작살 날지 알아?
[영일] 야 용기야 거 또 왜 소름끼치는 소릴 하고 있어 (모두 웃는다)
[광배] 우마담 집에나 가지 새로 들여온 비디오 테이프가 있대 스웨덴제로 푸지고 허벅지다는거야
[영일] 그거 좋지 (모두 찬성한다)
[나영] 난 그럼 빠질래요
[광배] 아 참 나영씨가 있었지--- 웬만하면 같이 가지?
[나영] 어머 여자 혼자서 어떻게 그런 장소엘 끼어요?
[광배] 아 가서 딴 여자애들도 부를테니까
[나영] 그래도요 상철씨가 죽은지도 며칠 안됐는데---
[명곤] 하긴 그렇군 우선 나영씨 파트너가 없는 셈 아냐?
[영일] (시치미를 떼고) 단순히 그 문제라면--- 파트너쯤이야 내가 대신 해 줄 용의도 있다구
[광배] 야 이 영일이 놈 봐라 동작 한번 빠르네
[영일] 이것들 보라구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안그래? 친구가 죽었다고 해서 친구 애인을 못본체 할수야 있나 상철이란 놈도 참 가엾고나 의리를 지켜주는 친구 놈이라곤 겨우 이 선우영일밖에 없으니
[광배] 의리 좋아하네 자식이 알고보니 아주 의뭉하긴---
[용기] 야 임마 거 한번 묘하게 둘러 붙이느라고 애썼다
[영일] 아뭏든 지금부터 나영씬 내 파트너다 알겠니?
[나영] (짐짓 새침하니) 어마 싫어요 날 갖고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뭐예요
[영일] 장난이라니 난 지금 진정으로 하는 얘기라구
[나영] 나 먼저 가겠어요
[영일] (앞을 가로막으며) 나영씨!
[나영] 비키세요!
[광배] 영일이 그럼 파트너 설득해 보렴 우린 먼저 나가 기다릴께
(광배 용기 명곤 수빈 모두 나간다 나영 곱게 눈을 흘긴다)
[영일] 정말 화난거야? 난 그런식 으로하도 일단 공포를 해두는게 좋을것 같아서 한 소린데---
[나영] (손으로 입을 막고 쿡쿡 웃으며) 정말 그리 능청을 부리는데가 어딨어요 난 웃음이 나와 혼났어요
[영일] 아 난 또--- 연기를 한거였군 나영이도 단수가 여간 아닌데
[나영] 그럼 그자리에서 웃으란 말예요?
(광배 나와 상체를 내민다)
[광배] 아직 설득 안됐나?
[나영] (영일의 손을 과장해서 뿌리치고) 이거 놓으세요!
(나영 휭하니 나간다)
[영일] 나영씨!
[광배] 자네도 별 수 없군
(영일 양 어깨를 으쓱 치켜 올린다)
[장] 제5장
(권오규의 아파트) (상자를 허름한 모포로 덮고 그 위에 싸구려 침구가 깔려있다. 하수쪽에 텔레비젼이 놓여 있다 오규 나영을 안내하며 들어온다 나영, 낯을 찌프리며 방안을 둘러 본다)
[오규] 이렇게 누추한 제 아파트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영] 자의로 온건 아녜요 안오면 과거에 결혼한 적이 있는걸 폭로하겠대서 억지춘향으로 온거죠
[오규] 오, 물론 하지만 와주셨단 사실이 내겐 중요합니다 나영씰 이렇게 가까이 대하는 것도 실로 5년만이군요
[나영] 옛날의 해묵은 얘긴 질색이예요 어서 용건을 말하세요
[오규] 참, 그런 뜻밖의 불행을 당하셔서 충격이 크시겠읍니다. 듣기론 죽은 이상철씬 나영씨의 약혼자였다고---?
[나영] 약혼자는 아니었어요
[오규] 아참 애인 사이셨다고 하던가요 어쨌든 내가 너무 무리한 짓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용서하십시오. 난 또 이러지라도 않곤 견디기 어려운 심정이었으니까요 그 나이트 클럽에서 5년만에 대하게 된 이후로 난---
[나영] 무슨 말인지---?
[오규] 하하, 적어도 나영씬 내가 나영씨한테 과거에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진 잘 알고 계실텐데요
[나영] (싸늘하게) 그럼 오규씨도 내가 오규씰 과거에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계시겠네요
[오규] (미소 지으며) 물론 나영씨가 날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셨단 걸 알고 있읍니다. 내가 너무 서툴렀죠 게다가 난 그때 나영씨가 원하는게 사랑이 아니란 것도 몰랐죠
[나영] 잘 보셨어요. 난 사랑 따위를 원하는 여자가 아니예요
[오규] 그래 실은--- 나도--- 나영씨가 원할듯 싶은걸 조금 마련해 보았죠
[나영] 네?
[오규] 나영씨가 애초의 희망이었던 배우가 못된 것처럼 나도 영문학자는 못되고 학원 강사가 됐읍니다만 그 강사 노릇이 수입은 영문학자보다 괜찮은 편이더군요. 그래 돈을 약간 모았는데 그 돈으로 나영씰 잠깐이나마 차지해볼수 없을까 하는 망상을 해 봤읍니다만---
[나영] 말하자면 날 돈으로 사보겠단 뜻인가요?
[오규] 더도 말고 하루 저녁만 살 수 있다면 그이상 기쁨이 없겠읍니다만
[나영] 그럼 꽤비싸게 사실 각오가 돼 있군요?
[오규] 글쎄 나로선 준비를 해보느라곤 했읍니다만 (수표를 꺼내 겸손한 동작으로 나영에게 내민다)
[나영] (차게 웃으며 수표를 힐끗 내려다 보다가 놀라며) 2백만원
[오규] 2백만원이란 결코 충분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나로선 힘껏 내는 금액입니다.
(사이)
[나영] (차갑게 웃으며) 좋아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분명한 거래예요. 단 한번만의
[오규] 아, 그건 염려 마십시요. 난 이래뵈도 5년 전의 풋내기 권오규는 아니랍니다.
(나영, 냉정하고 건조한 동작으로 천천히 옷을 벗어 브라쟈와 팬티 바람이 된다)
[오규] 생각했던 대로 역시 아름다운 몸이군요 눈이 부셔서 지금 잠깐 장님이 되는가 싶었읍니다.
[나영] 다행이군요. 난 실망시켜 드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규] 실망이라뇨 난 지금 장님이 되잖은 것만 고마울 따름입니다. (넥타이 푼다)
[나영] 난 이대로 서있어야 하나요?
[오규] 아, 이런 실례 침대에 들어가시죠
(나영, 침대로 들어간다. 오규 와이셔츠를 벗고 나더니 전등을 푼다 어둠속에서 두사람의 대화만이 들려온다)
[오규] 미안합니다 내 몸은 별로 보여드릴만한게 못돼서
[나영] 괜찮아요. 난 돈을 낸 것도 아니니까요
[오규] 하하, 농담을 하시는군요
[나영] 거래를 하고 있단 걸 분명히 한것 뿐이예요
[오규] 하하, 아무렇든 좋습니다 (사이)
[오규] 아, 황홀한 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내가 5년동안 얼마나 꿈꿔 왔는지 아십니까. 이렇게 간단히 수표 한장으로 살 수 있는것도 모르고 빌어먹을 (사이)
[오규] 이봐, 이 어리석은 여자야, 당신은 좀더 버텼어야 해, 그랬으면 난 한장쯤 더 낼 생각도 하고 있었어
[나영] 나뿐 비열한 악랄한
[오규] (싸늘하게) 오오, 생각보다 아직 순결한 맘이 상당히 남아 있는것 같군. 그런 정도에 모욕을 느끼는 걸 보니 (사이)
[오규] 하하, 이제 좀 여자를 산 기분이 나는군. 적어도 지방이나 단백질 덩이를 산 기분은 아니로군 (사이)
[오규] 이런 떨고 있군 그래. 이건 정말 뜻밖인걸. 기분을 한결 돋구는데
[나영] (떨리는 작은 소리로) 부탁이예요 수표를 돌려 드리겠어요. 날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오규] 하하, 점점 더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이 드러나는군 하지만 스스로 거래임을 분명히 했으면서 그리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려들면 쓰나
[나영] 제발--- 몸을 보여드린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요? 수표는 돌려드리겠어요
[오규] 글쎄 그건 곤란해 지금 마치 손해를 봐주겠단 태도인듯한데 손해를 입어서도 입혀서도 안되지 우리는 거래를 완성하는 일 뿐이라구. 자, 거래자답게 떳떳이 굴으라구, 나영씨 답게---
[나영] 알았어요 그럼 --- 계약대로 하세요
[오규] 하하, 그래야지. 그래야 나영씨 답지
[장] 제6장 (시경 강력계실)
(테이블에 환등기가 놓여있다. 그 환등기로 커튼에 걸어놓은 흰막에다 차안 운전석에서 뒤통수를 얻어맞고 죽은 선우 영일의 사진을 몇장 비친다 그 사진을 경시과 계장, 박형사가 보고 있다)
[계장] 비참하게 죽었군
[경식] 선우 영일씨가 저렇게 죽다니요 (경식이 박형사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 지시하자 그는 곧 상수로 나간다)
[계장] 반형사, 그 편지 생각나나?
[경식] 네, 저도 지금 그 편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입니다. 아무래도 그자의 소행이 아닌가 싶은데요
[계장] 음, 그자 편지속에(시작) 이란 말이 있었지? 그말이 노상 맘에 걸렸었단 말야
[경식] 저도 그게 맘에 걸려 속으로 미구에 제2의 사건 같은게 터지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걱정을 했었죠
[계장] 어쩌면 또 그자의 편지가 날아들지도 모르겠군
[경식] 글쎄요, 아주 교활하고 대담한 자임에도 틀림없는거 같습니다.
[계장] 그런 거 같애 (사환, 상수로 들어 온다)
[사환] 계장님, 과장님이 잠깐 오라십니다
[계장] 음, 가지 (계장, 상수로 나가려다가 마침 들어서는 동희와 마주친다)
[동희] 안녕하세요
[계장] 어서 와요 한기자 (나간다)
[경식] 동희, 또 취재차 온거야?
[동희] 이번 선우 영일씨 살해범에 대한 기사자료 없어요?
[경식] 없어
[동희] 역시 저번 이상철씨 살해범과 동일범의 짓이겠죠?
[경식] 응? 글쎄---
[동희] 어머, 경식씨 날 경계하는 거예요?
[경식] 경계는 무슨---
[동희] 좋아요, 그럼. 나도 중요한 정보를 하나 가르쳐 주려고 했지만 그만 두겠어요
[경식] 어이구, 동희도 이제 제법인데 단수가 늘었어. 정말 뭐가 있는거야?
[동희] 있긴 뭐가 있겠어요, 단수가 늘어서 그러는 거겠죠
[경식] 죽겠는데--- 자, 정보가 뭐야?
[동희]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궁금하세요?
[경식] 괜히 나한테 기사거리를 빼려구 꾸며댄거지?
[동희] 글쎄요
[경식] 아냐?
[동희] 글쎄요
[경식] 꾸며댄게 아니라면 약 올리지 말고 어서 얘길해봐
[동희] 나 취재부터 시켜준 다음에 얘기할래요
[경식] 좋아, 그럼. 알고 싶은걸 물어봐
[동희] 경찰이 생각하고 있는 범인이 저번 이상철 살해범과 동일범인지 아닌지만---
[경식] (빙그레 웃으며) 글쎄--- 그건 좀 곤란한데
[동희] 역시 동일 범으로 보고 있겠죠
[경일] 글쎄
[동희] 어머 그까짓게 무슨 수사 비밀이라고 그래요?
[경식] 그게 무슨 소리지?
[동희] 지난번 범인이 보낸 편지에 이 상철씨를 죽인건 자기 일의(시작)이라고 했잖아요?
[경식] 그랬던가?
[동희] 어머. 끝까지 이러기예요?
[경식] 하하, 경찰보다 더 빤히 알고 있으니 속여먹을 재주가 있나
[동희] 맞죠? 동일범이죠?
[경식] 음, 일단은 그리 보고 있는거지
[동희] 그럼 역시 스무명, 아니 이제 선우 영일씨가 죽었으니까 열아홉명이군요. 그 열아홉명 중의 한 사람이겠군요?
[경식] 그렇다고 봐야겠지
[동희] 그 열아홉명중 여자가 열명이나 끼어 있는데 설마 여자들중에 범인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곤 생각지 않겠죠?
[경식] 글쎄, 모든 상황으로 봐서 일단 여자들한텐 혐의가 적다고 봐야겠지
[동희] 여자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그것도 두번이나
[경식] 그야 잔인하기로 치면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더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구
[동희] 설마---
[경식] 요즘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 사건들을 보라구 여자가 두목인 단체들이 얼마나 많은데
[동희] 범행 동기는?
[경식] 응?
[동희] 사람을 1주일 간격으로 두명씩이나 죽일땐 무슨 동기가 있을게 아녜요?
[경식] 그게 수수께끼라구. 그걸 풀고나면 범인의 윤곽도 상당히 드러나겠지 이젠 동희가 정보를 줄 차례로군
[동희] (생글생글 웃으며) 사실은 나--- 정보는 무슨 정보가 있겠어요 거짓말예요
[경식] 그게 정말이야?
[동희] 네.
[경식] 설마--- 거짓말이겠지
[동희] 어머, 사람을 그리 안 믿기예요?
[경식] 사람을 믿게 해줘야 믿지. 어느쪽이 진짜 거짓말이야?
[동희] 거짓말이라고 한게 정말이예요
[경식] 정말이라고 한건 거짓말이 아니구?
[동희] 어마, 헷갈려요
[경식] 헷갈리게 한건 누군데?
[동희] 헷갈리게 하게 한건 누군데요? 난 기사가 바빠서 그만 신문사로--- (돌아갈 태세를 취한다)
[경식] 어? 정말 이렇게 떡먹듯 배신하기야?
[동희] 그럼 이 사건에 관한 한, 앞으로 나한테 계속 자료를 주겠다고 약속하겠어요?
[경식] 암, 약속하지.
[동희] 우리 신문사 미자가 나흘전에 인천에 갔다가 목격했다는데요 채나영이 죽은 선우 영일씨하고 아침에 나란히 호텔에서 나오더래요
[경식] 채나영이 선우영일하고?
[동희] 네
[경식] 마 기자란 이상철씨가 피살되던날 밤 동희를 나이트 클럽에 데려갔던 바로 그 친군가?
[동희] 네
[경식] 알았어
[동희] 이상하죠. 여자 한명하고 관계된 두명의 남자가 1주일 간격으로 살해를 당하다니
[경식] 흔한 일은 아니지
[동희] 그 채나영이란 여자가 묘한 여잔가봐요
[경식] 채, 나, 영--- (계장, 편지를 들고 들어온다)
[계장] 그자한테서 자네에게 편지가 왔더군
[경식] (정직한 시민)한테서 말인가요?
[계장] 음. (건네준다) 이번엔 전문처럼 간단해
[동희] 어머 (눈이 빛난다)
[경식] (읽는다)반경식 형사, 나는 이제 내 두 번째 일을 수행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내 사건을 담당하신 귀하에 대한 내 우정의 표시로서 정직한 시민
[동희] 동일범이 틀림없군요?
[장] 제7장 (다방)
(상자위에 열대식물의 화분이 놓여있고 그 앞에 작고 네모진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그 의자에 나영과 오규가 앉아있다 레지가 코피를 갖다놓고 나간다)
[오규] (커피를 저으며) 나영씨 간밤에 잠을 좀 설쳤지?
[나영] 네?
[오규] 소식 못들었어? 선우 영일씨가 피살됐단 소식
[나영]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땜에 내가 왜 잠을 설치죠?
[오규] 난 충격을 받아서 잠을 설치지나 않았나 하고
[나영] 내가 왜 충격을 받죠?
[오규] 아, 그야 나영씨 애인이었던 이상철씨가 피살된지 일주일밖에 안돼서 또 그친구가 피살됐으니 충격을 받는데도 이상할거야 없지 [나영] 놀라기야 했죠 하지만 그때문에 잠까지 설치진 않았어요
[오규] 그랬군.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나영씬 선우 영일하고도 보통 사이는 아닌것 같던데
[나영] 네?
[오규] 아, 그리 긴장할 것까진 없구 뭐 있을수 있는 일 아니겠어?
[나영]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길 하는거죠 오규씨?
[오규] (조용히 웃으며) 글쎄, 무슨 근거로 내가 그런 얘길 했을까
[나영] ---
[오규] 하하, 그럼 그 얘긴 그쯤 해두지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커피들지 그래, 식는데
[나영] (쏘아보며) 날 어쩌자는 거죠?
[오규] (짐찝) 오, 그런 매서운 눈초리는 싫군
[나영] 도대체 날 어쩌자는거예요?
[오규] 글쎄, 내가 나영씰 어쩌긴. 그저 혹시 도울 방법이 없을까 하는것 뿐이지. 경찰이 만일 나와 비슷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일단 나영씰 유력한 용의자로 볼수도 있잖겠어?
[나영] 기가 막혀
[오규] 명심하라구. 난 어디까지나 나영씨 편이야 나한테 숨길건 없다구
[나영] 뭐라구요?
[오규] 혹시 이상철과 선우 영일, 모두 나영씨가 죽인거 아냐?
[나영] (어처구니 없어한다)
[오규] 내게 숨기진마. 숨기면 도울수가 없으니까. 하긴 나도 이상철씨가 죽던 날 밤 현장에 있었으니깐 일단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지 모르지만
[나영] 지금 날 완전히 살인자로 보고 하는 소리예요?
[오규] 만일에 그렇다면 돕겠단 얘기지. 나영씬 필요하다면 충분히 그럴수 있는 여자 아냐
[나영] (무섭게 노려본다)
[오규] 아니던가?
[나영] 나쁜사람
[오규] 호오, 내 충정을 몰라주는군. 나영씬 내 영원한 여왕이고, 난 그 노예이고 싶은데 말야
[나영] 제발 그만하세요
[오규] 그럼 그만하지. 그대신 날 박대하지만 않겠다고 약속해줘
[나영] 무슨---뜻이죠?
[오규] 그저 노예로만 계속 머물러 있게 해달란 뜻이지 (의미심중하게 미소짓는다)
[나영] 그건 바꿔 말하면 날더러 오규씨의 노예가 돼라 그런 뜻인가요?
[오규] 나 이런, 무슨 소리야?
[나영] 오규씬 내가 정말로 그 두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오규] 쉬, 목소리 좀 낮추라구.
[나영] 상관없어요. 난 죄지은 거 없으니까. 내가 정말 그 두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오규] 아니야?
[나영] 기가막혀
[오규] 아니라면 그야 별문제지. 그럼 선우 영일씨와의 관계는? 그것도 아니야?
[나영] 도대체 무슨 근거로?
[오규] 그런가, 아닌가만 대답하라구
[나영] 아니예요
[오규] 호오, 그럼 앞의 대답도 그 진실성을 인정하기가 어려운데. 좋아, 그럼
한가지만 더 묻지. 선우 영일씨하고 인천에 간적 없어?
[나영] ---
[오규] 이 상철씨가 피살된 후에 말야. 정확하게 말하면 나흘전, 그러니까 3월 11일 오후부터 12일 오전까지
[나영] --- (질린다)
[오규] 왜 대답을 못하지?
[나영] 알고보니 비열하게 사람을 미행하고, 그러고도 모른체하고 사람을 또 농락하고, 이제 와선 그걸 약점으로 사람을 협박하고---
[오규] 오, 이제야 성실한 대답을 하는군
[나영] 그래요. 다 인정하겠어요. 하지만 그게 어쨌단 거예요?
[오규] 가만 다 인정하겠다니, 그건 두사람을 죽였단 것도---
[나영] 난 사람을 죽이진 않았어요
[오규] 그건 이번에 그 두사람을 죽이잖았단 뜻이겠지?
[나영] ---?
[오규] 다시 말해서 어른을 죽인 일은 없단 얘기겠지?
[나영] ---?
[오규] 자기가 낳은 아기를 자기 손으로 죽인건 부인 못하겠지?
[나영] (충격적이다)
[오규] 사기 결혼에 속아 낳은 아기를 --- 처녀 행세를 하기 위해서--- (두 손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시늉을 한다)
[나영] (체념한듯) 알고 있었군요?
[오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영] 지독한 사람 그런 걸 다---
[오규] 버림받아 원한에 사무친 내가 무슨짓을 못했을까
[나영] 악마 (오규의 따귀를 갈긴다)
[오규] 따귀야 얼마든지 때리라구--- (악마적인 미소를 짓는다)
[장] 제8장 (바아)
(상자 위에 비닐로 만든 꽃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그 앞에 테이블 보로 덮은 작고 둥근 테이블과 두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나영과 광배, 그 의자에 앉아있다)
[광배] 참, 요즘 좀 외롭잖아?
[나영] 네?
[광배] 요즘 외롭잖으냐구? 상철이도 없고 또---
[나영] ---?
[광배] --- 영일이도 저렇게 됐고.
[나영] 영일씨 얘긴 나한테 왜?
[광배] 하하, 다 알고 있다구.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영] 무슨 얘기죠 광배씨?
[광배] 하하, 영일이 하고 인천에 간일 다 알고 있다구. 그럴수도 있는 거지 뭐 그래
[나영] ---
[광배] 그렇게 무슨 죄지은 사람 같은 얼굴 할것 없다구 나영이가 상철이 와이프도 아니었구. 게다가 그 친구는 죽었는데 무슨상관이야
[나영] ---그 애기 누구한테 들었죠?
[광배] 아, 어저께 반형사가 찾아와서 그런 얘길 하더군 솔직히 말해서 약간 놀랬지. 하지만 염려 말라구 나만은 이해하니까
[나영] 그자리에 누가 또 있었나요?
[광배] 응, 명곤이랑 용기도 같이 있었지.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만은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어때? 외롭잖아?
[나영] 외롭다면 거둬주시겠단--- 건가요?
[광배] 거둬준다기 보다도 애인이 돼줄수 있단 뜻이었지
[나영] 그러다가 상철씨나 영일씨처럼 되면 어떡하죠?
[광배] 그건 나도 비명에 죽게 되면 어떡하느냐, 그런 얘긴가?
[나영] 결과를 보셨잖아요.
[광배] 그야 우연히 그리 된 거겠지. 우연치곤 좀 묘하긴 하지만
[나영] 설령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그 우연이 광배씨 한테도 일어난다면---?
[광배] 에이, 그런 우연이 어디 세번씩이나 일어날라구
[나영] 거보세요. 겁나죠?
[광배] 겁나긴. 그렇다면 오히려 모험심이 동하지
[나영] 자신이 아주 대단하시네요
[광배] 나영씬 그럼 그 두 친구가 나영씨와 관계를 가졌기 땜에 죽었다고 생각하나?
[나영] 글쎄요. 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나타났잖아요
[광배] 아무튼 난 설령 그런일이 나한테 일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나영씰 내 애인으로 만들고 싶은데?
[나영] 나로선 광배씨마저 그런 일을 당하게 하고 싶잖아요
[광배] 거 또 기분 나쁜 소리
[나영] 그럼 죽지 않을 자신 있으세요?
[광배] 포탄이 한번 떨어진 자리엔 두번도 잘 떨어지잖은다는데 하물며 세번까지야---?
[나영] 만일 떨어지면 어떡하죠?
[광배] 그땐 맞지 뭐
[나영] 어머, 그런 각오라면 좋도록 하세요 (웨이터 술과 잔을 놓고 간다)
[광배] (잔에 술을 딸고) 자, 들지. 애인이 된걸 기념하는 뜻에서
[나영] 광배씨의 용감한 행동을 위해서.
[광배] 건배 (건배한다)
[나영] 건배
[광배] (도 술을 딸며 넌즈시) 그런데 나영씬 뭐 지피는 일이라도 없어?
[나영] 지피는 일이라뇨?
[광배] 글쎄, 그 두 친구의 죽음이 나영씨와 맺은 관계 때문이란, 무슨 맘에 걸리는 일이라도 혹시---?
[나영] (빤히 쳐다보며 웃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게?
[광배] 글쎄
[나영] 없어요. 그런 건
[광배] 그런데 왜 자꾸 나한테 기분 나쁜 소릴 하지?
[나영] 앞으론 안할께요. 그대신 또 우연이 일어나는건 난 책임 못져요.
[광배] 또 기분 나쁜 소리
[나영] 어머, 우연은 겁안난다고 하셨잖아요?
[광배] 좋다구 똑같은 우연이 세번 일어난다면 그야 달게 받는 수밖에 자, 그런 뜻에서 우리 인천에나 가볼까?
[나영] 인천에는 왜 하필--- ?
[광배] 재밋잖아? 이왕이면 우연의 조건을 골고루 갖출겸 오늘밤 나하고도 인천엘 가보자, 이거지
[나영] 어머, 순--- 위험한 장난하는 어린애 같애요
[광배] 장난은 위험할수록 재밌잖아?
[나영] (잠시 눈을 반짝이며 무엇을 헤아리더니) 좋아요 그럼 가요.
[광배] 역시 나영씬 내 기분을 알아준단 말야
[나영] 장난은 위험할수록 재밌다면서요?
[광배] 바로 그거야 자, 그럼 우리 오늘 밤의 위험한 장난을 위해 또 건배하자구
[나영] 네 그러세요 (두사람, 의기양양하게 건배한다)
[장] 제9장
(제3장과 같다. 화려한 잠옷을 입은 나영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고, 역시 잠옷 바람인 광배는 그녀 앞을 슬슬 오가고 있다)
[광배] 역시 내가 위험한 장난을 벌이길 잘했군
[나영] 그건 두고 봐야죠. 결과가 나타나려먼 아직 이르다고 할수 있으니까
[광배] 세번째 우연 말이지? 그런건 일어나잖을거야
[나영] 글쎄요, 그건 자기 암시 아녜요?
[광배] 자기 암시라니?
[나영]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잖은 일이 있을때 강한 자기 암시의 최면술을 걸면 효과가 있다구요
[광배] 아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에게 최면술을 걸고 있다 그거야?
[나영] 네, 괜히 무서우니까
[광배] 난 무섭잖아, 다만 나영씰 갖고 나니까 세상 모든게 하잘것 없어졌어. 그러니까 다른건 몰라도 내 목숨만은 좀 아껴야겠어 나영씰 계속 갖기 위해서도 말야
[나영] 피이, 결국은 그건 죽는게 무섭단 뜻 아녜요?
[광배] 물론이지. 내가 죽어서야 쓰나. 앞서 한소린 그런 일이 일어나잖을게 뻔하니까 한소리지.
[나영] 그럼 그런일이 만일 일어날게 뻔한 경우는 역시 두려워하겠군요?
[광배] 이거 왜 이래? 그야 죽는거 좋아할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나영] (야릇하게 웃으며) 그럼 결국 광배씨도 겁장이군요
[광배] 아냐, 난 죽는게 싫긴 하지만 만일 나영씰 위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죽을 용의가 있어
[나영] 어쩜 이렇게 거짓말을 식은죽 먹듯 할까?
[광배] 정말야 그런데 혹시 내가 나영씰 위해 죽을만한 일이 있어?
[나영] 안심하세요. 그런 일은 없으니까
[광배] 그런데 왜 자꾸 내가 겁장인가 아닌가를 확인해 보려고 하지? 나영씬 뭔가 짐작되는 일이 있는거 아냐?
[나영] 어머, 난 공교로운 일이 두번이나 일어났으니까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어쩌나 싶어서 한소리일 뿐인데. 아까 포탄이 한번 떨어진 자리엔 두번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데, 하물며 세 번이나 떨어지겠냐고 하셨지만, 벌써 두 번이나 떨어졌으니까 세번째 떨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늘어났다고 할수 있잖아요?
[광배] 가만, 그런 얘기가 또 성립되나?
[나영] 왜? 그러니까 정말 겁이 나세요?
[광배] 겁나는데
[나영] 거 보세요, 역시--- 금방은 날 위해서라면 죽음도 주렵잖다더니
[광배]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 하지만 이 경우는 나영씰 위한 거라고 할 수 없잖아?
[나영] 하지만 날 갖기 위해서라곤 할수 있죠, 뭐
[광배] 그렇게 되나. 그렇다면야 좋아 무슨일을 당해도 겁 안내기로 하지
[나영] 죽음까지도?
[광배] 죽음까지도.
[나영] 정말?
[광배] 정말
[나영] 아이, 좋아 (나영 호들갑스럽게 팔을 뻗어 광배의 목을 껴안고 빰과 입술에 키스한다 광배, 나영의 키스레 응하면서도 검은 회의에 사로 잡힌다)
[나영] (키스를 멈추고 나무라는 억양으로) 어마,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거죠?
[광배] (당황했으나 천연스럽게) 응? 생각은 무슨 생각?
[나영] 지금 딴생각 안했단 말예요?
[광배] 딴 생각이라니?
[나영] 시치밀 떼지 마세요 내가 둔한줄 아세요?
[광배] 하하, 죽겠군. 그럼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것 같애?
[나영] 거 봐요. 딴생각을 한건 틀림없지
[광배] 미안, 미안. 자 맞춰보라구
[나영] 부인 생각?
[광배] 천만에
[나영] 그럼--- 다른 애인 생각?
[광배] 애인이 또 어딨어.
[나영] 피이, 거짓말
[광배] 이거 왜이래. 나영씬 나 말고 어디 애인이 또있어?
[나영] 어머, 왜 나한테 덮어 씌우죠?
[광배] 사실 난 나영씨한테 혹시 숨겨놓은 애인이 있잖나? 그생각을 했다구
[나영] (펄쩍 뛰듯 하고) 어마 괜히 딴생각 하다가 들켜 할말이 없으니까---
[광배] 아냐, 혹시 어디 숨겨놓은 애인 없어?
[나영] 기가 막혀
[광배] 난 있을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정을 주고받은 소녀시절의 애인이라든가--- 혹시 그 애인이 상철이나 영일이의 죽음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거 아냐?
[나영] (어이없어하며) 어디가 약간 이상해진거 아녜요? (순간적으로 긴장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다)
[광배] (그것을 알아차렸으나 태연히) 글쎄 매력적인 여자한테, 소녀시절의 애인쯤 있대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잖아?
[나영] 설령 나한테 그런 애인이 있다쳐요 하지만 그게 상철씨나 영일씨의 죽음하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예요?
[광배] 관계가 있을수도 있지. 우선 그 경우 그 애인은 상철이나 영일이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을 테니까
[나영] 그럼 광배씬 나한테 그런 애인이 있어 상철씨랑 영일씰 죽였다고 생각했단 말예요?
[광배] 그건 아니지.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라구
[나영] 아무리 가정이라도 그런 기분 나쁜 가정을 하다뇨 말도 안돼요 난 그런 애인 같은 건 없으니까요
[광배] 정말?
[나영] 어마
[광배] 하하, 그 가정이 성립돼야 포탄이 같은자리에 두번이나 떨어진 이유가 설명이 되는데 말야
[나영] 정말 이러기야요?
[광배] 하하, 농담이라구, 농담
[나영] 아이, 기분 나빠
[광배] 하지만 만일 무슨 사정이 있어서 나한테 숨기는 거라면 얘기 하는게 좋아. 내가 도움이 돼줄 수도 있으니까. 난 이래뵈도 의리의 사나이라구
[나영] 괜히 넘겨 짚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런 얘기 자꾸 하면 나 광배씨 더이상 안만날 거예요
[광배] 미안해. 자, 그 얘긴 이제 그만 두자구 (보드라운 손길로 나영을 당겨 안는다)
[나영] (버티는 몸짓으로) 어머머
[광배] 왜 김샜어?
[나영] 김새지 않구요, 그럼
[광배] 하하, 우리 다시 김 꽉 채우자구 자---
[나영] 싫어요
[광배] 글쎄 그러지 말구
[나영] 그럼 그런 얘기 다신 안할거예요?
[광배] 약속하지.
[나영] (몸에서 힘을 풀며) 정말 이제 안하기예요. (그들 서로 애무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그들, 서로 마주보며 의아스러워한다. 벨은 계속 울려댄다 광배, 가서 송수화기를 든다)
[광배] 아, 여보세요? (응답이 없는듯) 아, 여보세요?
[소리] (나직하고 위협적이다) 지금 전화 받으시는분의 성함이 김광배씨 맞습니까?
[광배] 예, 그렇소만 댁은 누구요?
[소리] 아, 전 아직 이름을 밝힐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광배] 뭐라구?
[소리] 아무튼 전화로나마 이렇게 김광배씰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광배]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소리] 아, 그건 방금 말씀드렸는데요 아직 이름을 밝힐수 없다고. 그러니 다만 제가 전화드린 이유만을 간단히 말씀드리죠. 당신은 지금 무서운 모험을 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곧 죽게 될겁니다. 당신의 친구처럼 지금 바로 당신곁에 있는 여잔 당신을 죽음으로 이끌겁니다. 그리고 한가지 수고를 덜어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이 전화를 끊은뒤에 혹시 제 소재를 알아보시기
위해 호텔의 교환양에게 물어 보시더라도 그건 헛수곱니다. 자.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요
[광배] 야, 임마 전화 끊지 마
[소리] 당신과 함께 있는 여자에게도 편안한 잠을---
[광배] 야, 임마 임마 (광배 멍히 나영만 바라본다. 나영, 바짝 긴장한다)
[나영] 무슨 전환데 그러죠?
[광배] 음, 어떤 자식인지 모르지만, 우릴 미행한 모양인데.
[나영] 네 미행이라구요?
[광배] 응, 어떤 자식이 우릴 미행해서 여기있는걸 알고 있는 모양이야
[나영] 누, 누가요?
[광배] 아직 이름을 밝힐순 없대.
[나영] 뭐라고 그래요 도대체?
[광배] 내가 곧 죽게 될거래. 상철이나 영일이처럼---
[나영] 네? (나영과 광배가 불안스러운 가운데 조용히 막이 내린다)
[막] 제2막
[장] 제1장 (채나영의 침실)
(조명이 침대만을 비치면 나영 화려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커튼의 한가운데에 큰거울이 걸려 있다 그녀의 머리맡에 있는 전화벨이 울린다 나영이 일어나는 동시에 상수쪽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면 전화를 거는 경식이 떠오른다)
[나영] 여보세요?
[경식] 아 시경의 반경식입니다
[나영] 네 또 무슨 일이죠?
[경식] 아 급하게 좀 여쭤볼 말씀이 있어서요
[나영] 뭔데요?
[경식] 저 전 권오규란 사람 알고 계시나 해서요
[나영] 네? 누구요?
[경식] 에치 학원에 영어강사로 있는 권오규란 사람말입니다
[나영] 그런 이름 난 들어본 적도 없어요
[경식] 잘 생각해 보십시요
[나영] 첨 듣는 이름이에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경식] 실은 그 사람 이상철씨가 피살되던 날 밤, 사건현장에 있던 사람들중의 한 사람이거든요
[나영] 그렇다고 내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죠
[경식] 마 난 그저 혹시나 해서---
[나영] 혹시나가 아니던데 뭘 그러세요 괜히 넘겨짚고 그러지 마세요
[경식]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군요
[나영] 기분 나쁘네요
[경식] 아 이거 죄송하게 됐읍니다
[나영] 그런데 누구라고 했죠?
[경식] 권오규
[나영] 그 사람이 어떻게 됐나요?
[경식] 네 실은 그 사람이 어제밤에 호텔창문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나영] 네 투신자살이었나요?
[경식] 투신자살로 보기엔 미심쩍은 점이 많아서
[나영] (냉철하게) 그러세요
[경식] 그런데 전혀 모르시는군요
[나영] 네 전혀 모르는 사람이예요
[경식] 알겠습니다 (스포트 라이트 꺼진다 나영 거울 앞에 가서 머리를 매만진다 옥자 모닝
코피를 들고 상수로 들어온다)
[옥자] 내가 늦잠이 들었었나봐요 정말 정신없이 잤어요
[나영] 고단했었나보지
[옥자] 별로 고단하지 않았는데 어젯밤엔 이상하게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지더니 모닝 코피가 늦어서 미안해요
[나영] 괜찮다 나도 방금 일어났는걸
[옥자] 수면제 먹은 것처럼 꼬박 잠이 들었지 뭐예요
[나영]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옥자] 네?
[나영] 수면제는 무슨 수면제야 어서 나가봐 (옥자 나간다 나영 커피를 마시며 골똘히 뭣인가 생각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나영이 송수화기를 들자 하수쪽에 스포트 라이트가 비치면 전화를 거는 광배가 떠오른다)
[나영] 아 여보세요?
[광배] 아 나 김광배요
[나영] 왠일이세요 아침 부터?
[광배] 다름이 아니라 권오규란 사람을 아나해서---
[나영] 누구요?
[광배] 권, 오, 규--- 몰라?
[나영] 아 어젯밤에 호텔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단 사람 말이군요?
[광배] 맞았어 나영씨도 들었군
[나영] 조금전에 시경 반형사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광배] 그랬어? 그래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나영] 네 그런데 왜 그러죠? 그 사람이 죽은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인가요?
[광배] 만일 알던 사람이면 상관이 있을 수도 있지 혹시 나영씨가 죽음의 원인이 됐을수도 있고
[나영] 끔직한 소리 마세요 알긴 커녕 이름도 조금전에 들어본 사람이라니까요
[광배] 정말이야?
[나영] 어마
[광배] 하하 미안 미안
[나영] 아이 기분 나빠
[광배] 아침부터 김새는 소리 들었다 이거지?
[나영] 난 무슨 반가운 소식이나 주려나 했더니
[광배] 반가운 소식? 아. 있지
[나영] 뭔데요
[광배] 오늘 오후에 나하고 여행이나 떠나자구
[나영] 어머 어디로요?
[광배] 부산 어때?
[나영] 회사일은 어떡하구요?
[광배] 나영씨하고 여행하는데 회사 일은 아무려면 어때
[나영] 피이
[광배] 피이라니?
[나영] 그게 그럼 정말이란 말예요?
[광배] 비행기표도 벌써 예약을 해놨어
[나영] 괜히 생색내지 마세요 회사일로 출장가는 거죠?
[광배] 아 이건 두손 바짝 들었는데 어떻게 그리 잘 알지?
[나영] 뻔하지 뭐 남자들 속셈
[광배] 하하 하지만 회사일은 잠깐이면 돼 나머진 우리 시간이라구
[나영] 진작 그렇게 솔직히 나와야죠 좋아요 가요
[광배] 오케이 그럼 이따 차로 데리러 갈께
[나영] 아녜요 내가 나갈께요
[광배] 그럼 두시에 김포공항으로 나와
[나영] 네 그럼 이따 만나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장] 제 2장 (김포공항)
(상자위에 항공 시간을 적은 큰판이 놓여져 있다 스피커에서 여객을 안내하는 소리가
리며 무대가 밝아지면 여행차림의 나영과 광배가 서 있다 그들 이외의 몇 명 여객 가운데 박형사도 섞여 있다
[광배] 즐거운 여행이 예상되는걸
[나영] 나도 오랜만의 여행이라 마치 국민학교 때 소풍떠나는 기분같아요
[광배] 그럼 나한테 고맙단 인사를 해야겠군
[나영] 피이 그건 광배씨도 마찬가지죠 뭐 혼자 가면 심심할테니까
[광배] 하하 그렇던가
[나영] 아네요 그럼?
[광배] 하하 치사 좀 받아 보렸더니 다 틀렸군 (여행차림의 수빈 나온다)
[나영] 어머!
[수빈] 아 나영씨 웬일이십니까?
[광배] 어 수빈이 아냐?
[수빈] 아니 광배 형님도 (두사람을 번갈아 보며 약간 난처해한다)
[광배] 어딜 가려고?
[수빈] 부산에요
[광배] 무슨일로 공연이 있나
[수빈] 아뇨 (약간 겸연쩍어 하며) 사실은 좀 있다 리사이틀을 가질까 하거든요 형님들한테도 곧 의논을 드리려고 했어요
[광배] 아 리사이틀 가질때가 됐어 부산에서 가지려구?
[수빈] 아뇨 서울에서 갖고 웬만하면 부산에서도 가져볼까 해서요
[광배] 아 그러니까 사전답사 및 극장 교섭차 가는 셈이구나?
[수빈] 네
[광배] 너도 어지간히 지독한 놈이다 매니저 한명 안두구
[수빈] 원 형님도
[나영] 매니저 두면 뭘해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을 되놈이 가져가는 꼴밖에
더 돼요
[광배] 아 참 우리 나영씨가 수빈의 열렬한 팬이었지
[나영] 팬이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지 뭐예요 안 그래요?
[수빈] 역시 나영씨 밖에 없군요 하하 (문득) 그런데 형님은 부산에 무슨 볼 일로?
[광배] 자식은 능청은 ---그래 임마 나영씨하고 볼 일이 있어서 간다 어쩔래?
[수빈] 원 형님도 어쩌긴 내가 뭘---
[광배] 소문 퍼뜨릴래?
[수빈] 내가 뭐 세살 먹은 어린앤줄 아세요?
[광배] 좋았어 그 대답 그 대답 책임져야 돼
[수빈] 알았어요 형님 (박형사 유심히 그들의 거동을 살핀다)
[장] 제 3장 (바닷가)
(커튼이 걷어져 호리존트가 온통 바닷물 빛으로 조명되어 있다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와 함께 무대가 상자위에 나란히 서서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호리존트를 바라보고 서 있다)
[광배] (돌아서며) 정말 눈부신 아침바다로군
[나영] 정말 근사해요
[광배] 우리 저 바다물에 빠져 정사라는거 한번 해볼까?
[나영] 네?
[광배] 어때? 나하고 같이 죽어줄 용의 있어?
[나영] (웃으며) 나보다도 광배씬 죽을 용기가 있구요?
[광배] 암 있구말구 나영씨만 동의해 준다면
[나영] 귀하신 분이 뭐땜에 나 같은 여자하고 정사를 해요
[광배] 모르는 소리로군 정사에 그런게 무슨 상관이야 죽음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이지
[나영] 왜 갑자기 그런 엉뚱한 생각을? 물론 농담이겠지만
[광배] 농담 아니라구 저 바다땜이야 저 장엄한 바다의 품속에 나영씨 같은 멋진 여자와 함께 뛰어들어 정사할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이 될까 아 바다가 날 유혹하는 걸까
[나영] 어머 갑자기 무슨 예술가가 되신것 같네요
[광배] 예술가는 특별한 사람인가?
[나영] 암요 수빈씨 같은
[광배] 흥 그리고 어차피 조만간에 죽게 될거라면 아름다운 방법이 좋잖을까? 스스로 선택하는 게
[나영] 왜 자꾸 죽는단 소릴하고 언제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하더니
[광배] 내가 그랬던가?
[나영] 어머 인천에서 그랬잖아요
[광배] 응 생각나는군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어졌어 도저히 피할수 없단 생각도 들고
[나영] 무슨 소리죠?
[광배] 상철이 영일이 다음엔 내 차례야
[나영] 도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예요?
[광배] 머잖아 내가 죽게 될거란 말야 그리 되기전에 나영씨하고 정사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어 어때? 같이 동반해 주겠어?
[나영] 동반해 준다면 정말 죽을거예요
[광배] 저 바다가 우릴 편안하게 해주겠지
[나영] 죽어서 편안한것 보단 난 살아서 불편한 걸택하겠어요
[광배] 야박하군 난 농담으로도 혹시 동반하겠단 대답이 나오리라 했더니
[나영] 난 농담으로라도 죽는단건 싫어요
[광배] 그럼 진담이라면 더 싫겠죠
[나영] 물론이죠
[광배] 그럼 강제정사라도 시도해 볼까 (순간 음험한 눈빛이 스친다)
[나영] (약세를 보이지 않으려고) 강제정사요 그런것도 있나요?
[광배] (나영의 눈속을 들여다보고 싱글싱글 웃으며) 있구말구 둘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한쪽의 의사만으로 강행하는 정사도 흔히 있으니까
[나영] 그게 어째서 정사예요? 살인이지
[광배] 호오 그 무슨 무시무시한 소리야 두남녀가 사랑이 원인이 돼서 함께 죽었을땐 우린 그걸 정사라고 부르는거라구
[나영] 죽고 싶잖은 사람을 죽이는게 어떻게 아름다울수 가 있어요?
[광배] 원하잖은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건줄 알아 원하잖았지만 결과는 좋은 것일 경우가 얼마든지 있어
[나영] 그런말을 왜 지금 내 앞에서 하는거죠
[광배] 그럼 내 앞에 누구 딴 사람이 있어?
[나영] 그렇게 어물쩍 도망가지 말아요 내 앞에서 그런 얘길 할땐 분명 무슨 저의가 있어요 뭐죠 그 저의가?
[광배] 요컨대 나영씨하고 정사하고 싶단거지
[나영] 그건 날 죽이겠단 뜻인가요
[광배] 이거 왜 이래?
[나영] 조금전에 강제정사 어쩌고 했잖아요
[광배] (눈빛을 번쩍 빛내고 음울한 소리로) 역시 나영씬 영리하군 어떻게 눈치를 챘지?
[나영] ---
[광배] 실은 조금전에 나영씨가 딱 잘라 거절했을때 난 살의를 느꼈었어 왠지 알아? 가증스럽기 때문이야 나영씬 결코 그리 떳떳이 죽음을 거부할 입장이 못돼지 나와 마찬가지로
[나영] 도대체 무슨 얘길?
[광배] 인간이 가진 염치의 감정에 대해 얘기 하는거지
[나영] 그게 무슨 소리죠
[광배] 권오규란 친구가 죽기 두시간전쯤 호텔에서 나한테 전화를 걸었었단 사실은 미처 모르고 있을테지?
[나영] ---
[광배] 그렇지
[나영]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죠
[광배] 호오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데
[나영]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니까요
[광배] 그 친구는 나영씨가 스스로 낳은 아기를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더군
[나영]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광배] (빙그레 웃으며) 이제야 알아들은 눈치로군
[나영] --
[광배] 그 친군 자신의 죽음을 얼마간은 예감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 자기 이외의 누군가에게 나영씨의 비밀을 알려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거지 그 비밀 전달자로 선택된 게 나였던거야
[나영] ---
[광배] 자 이제 내 정사 제의를 거절하기가 좀 힘들었졌겠지?
[나영] 그랬군요 그래서 날 부산까지 데려온 거로군요 하지만 그런 얘길 하기 위해서라면 부산까지 일부러 올 필요가 없는걸 그랬네요 그런 터무니 없이 꾸며낸 얘길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말예요
[광배] 호오 대다한 기백이야 그게 꾸며낸 얘기라구?
[나영] 하긴 광배씨로선 그 얘길 믿고 싶겠죠 그래서 날 맘놓고 괴롭힐수 있을테니까
[광배] 그럼 나영씬 아기를 죽인일이 없단 말이야?
[나영] 기가 막히는군요 내가 아기를 죽이다니 난 아기를 가져본적 조차도 없어요
[광배] 흐음 그럼 그 얘길 했을때 나영씨 안색이 왜 창백해졌지?
[나영] 하도 터무니가 없어서 그랬죠
[광배] 흐음 그럼 그 친군 뭣땜에 나한테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일부러 했을까?
[나영] 나도 그게 궁금하군요
[광배] 나영씨한테 단단히 무슨 원한이 있는 모양이지?
[나영] 모르죠
[광배] 이거 왜 이래? 그 친군 5년간이나 나영씰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다고 하던데
[나영] 모두 꾸며낸 얘기예요
[광배] 좋아 그럼 경찰에 가서 털어놔도 괜찮겠지?
[나영] --
[광배] 왜 대답이 없지?
[광배] 염려마 그런 서투른 수작을 하지 않을테니까
[나영] ---날 어떡할 거죠
[광배] 정사 어쩌구 했지만 그건 농담이었고 앞으로 내 애인 노릇만 잘 해주면 돼 나마져 죽이려 들지 말구
[나영] 네?
[광배] 권오규 나영씨가 죽였지? 솔직히 털어놔봐
[나영] (슬픈 눈으로 광배를 보며) 정말 너무하군요 나중엔 숫제 살인범으로까지
[광배] 그럼 그 친구는 나영씨가 죽인게 아니란 말야?
[나영] 난 그날 밤 아파트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광배] 그럼 누가 죽인걸까?
[나영] 나도 알고 싶어요
[광배] 경찰이 이 사실을 안다면 대뜸 나영씰 의심하게 될걸
[나영] --
[광배] 다행인줄 알라구 그 친구가 죽기전에 이 사실을 나한테 알렸다는 걸
[나영] -- (갈매기와 파도소리 한층 높아지며)
[장] 제 4장 (부산의 호텔 방안)
(상자를 화려한 모포로 덮고 그 위에 비싼침구를 깔았는데 인천의 호텔 것과는 다른것이어야 한다 하수쪽에 텔레비젼이 놓여 있다 뉴스보도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지면 나영과 광배가 방바닥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뉴스] 오늘 아침 여섯시 반에 디 증권 사장 박충현씨의 맏아들 박용기씨가 자택의 풀장에서 수영복차림으로 칼에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됐읍니다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박용기씨는 매일 아침 여섯시가 되면 풀에 나가 수영을 즐겼다고 합니다 오늘도 박용기씨는 평상사처럼 수영하러 갔다가 이런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편 오늘 오후 세시 20분에 엠자동차 회장 최상돈씨의 막내아들 최명곤씨는 남산에서의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졌읍니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최명곤씨는 자가용차띵 가 스스로 과속 운전하다가 길가의 바위를 들이박아 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용기씨와 최명곤씨는 친한 친구 사이라서 같은 날의 공교로운 사고에 사람들은 놀라고 있읍니다 또한 그들은 전에 살해된 바 있는 이상철씨와 선우영일 씨하고도 친한 친구 사이라서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읍니다 잇따른 재벌 2세들의 사고가 왜 일어나는지 사람들은 놀라는 한편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광배 텔레비젼 스위치를 끈다)
[나영] 무서워요 도대체 이게?
[광배] (충격이 크다)
[나영] 어떻게 명곤씨마저 교통사고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예요?
[광배] (천천히) 음 나도 모르겠어 무서운 일이군
[나영] 도대체 범인은 누굴까요 상철씬 죽이고 영일씨를 죽이고 또 이젠 용기씨 마져 죽인 범인은
[광배] 나영씨가 아닌것만은 확실해졌지
[나영] 뭐라구요?
[광배] 나영씨가 아닌것만은 확실해졌다구 나영씬 어제 오늘 쭉 나하고 같이 있었으니까
[나영] 그렇잖으면 날 의심했을 거란 말예요?
[광배] 그랬겠지 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영씨에 관한 의심을 풀지 않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제 적어도 그 의심 하나는 풀린셈이로군
[나영] 그럼 또 다른 의심은 아직 남아 있단 말인가요?
[광배] 있지
[나영] 뭐죠?
[광배] 권오규
[나영] 흥 그 사람을 죽인건 아직도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군요 지독한 사람
[광배] 지독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나영씨지
[나영] 뭐라구요
[광배] 자기 아기를 죽일 수 있는 여자니까 그리고 어쩌면 권오규도
[나영] 그날밤은 아파트에서 한발짝도 꼼짝안했다고 했잖아요?
[광배] 하지만 그건 아직 확인이 되잖았어
[나영] 맘대로 생각하세요 (싸늘한 표정으로 잠시 궁리하는 듯하더니) 그대신 오늘 밤 조심하시는게 좋을 거예요 아마 깊이 잠 들잖는게 좋을거요
[광배] 왜?
[나영] 광배씰 내가 죽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의심은 안해보셨나요
[광배] 아 물론 해봤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안하는게 좋을껄 그건 나영씨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도 되니까
[나영] 무슨 얘기죠?
[광배] 난 지금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몸이라구
[나영] 네?
[광배] 나영씨도 마찬가지라구
[나영] 무슨 소리예요?
[광배] 우린 지금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어
[나영] 뭐라구요?
[광배] 어제부터 주욱 미행을 당하고 있었단 말야
[나영] 네
[광배] 틀림없이 경찰일거야 아까오후에야 나도 겨우 눈치를 챘어
[나영] 네
[광배] 아까 우리 태종대 갔을때 말야 왠지 몸이 스멀스멀한게 누가 꼭 우릴 미행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 조심해서 살펴봤더니 한 친구가 우릴 미행하고 있더군
[나영] 어머 그럼 그 얘길 왜 이제야 하죠
[광배] 숫제 안하려고 했지 그런데 나영씨가 그것도 모르고 실수를 할까봐 하는거야 거듭 말하자면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구 그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나영] 흥 그래서 광배씨도 날 어쩌지 못했군요 강제정사 어쩌고 하더니만
[광배] 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전화벨이 울린다)
[광배] 응 무슨 전화지?(송수화기를 접어들고) 여보세요
(무대 상수쪽에 스포트 라이트가 비치면 전화를 걸고 있는 수빈이 나타난다) [수빈] 아 형님이세요 수빈입니다
[광배] 너 아직 서울 안올라갔구나
[수빈] 네 볼일이 좀 늦어져서요
[광배] 그런데 무슨 일이지?
[수빈] 아형님 신문 아직 못보셨어요 오늘 여기 석간 신문을 봤더니
[광배] 응 용기 얘기로구나 난 조금전에 텔레비젼 뉴스를 봤는데 이건 꼭 무슨 탐정소설 같구나 그러잖아도 지금 기분이 아주 묘하다
[수빈] 저도 신문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광배] 게다가 명곤이마져
[수빈] 내 명곤이 형님도 무슨 일이 있었나요
[광배] 아 신문엔 명곤이 얘긴 아직 안난 모양이구나 개도 교통사고로 지금 중태란 거야
[수빈] 명곤이 형님은 교통사고를요?
[광배] 매스컴들은 소위 재벌2세들이 잇달아 사고를 당하니까 무슨 잔치라도 만난듯 법석을 떠는 모양이지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알수가 없구나
[수빈] 정말 이해할수 없는 일이군요
[광배] 아뭏든 내일은 일찍 서울로 올라가 봐야겠다 너도 내일 올라가니
[수빈] 네 전 내일 오후쯤 올라가려구요
[광배] 그럼 서울 가서 보자
[수빈] 형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광배] 고맙다
[수빈] 그럼 서울 가서 뵙겠어요
[광배] 그래 (광배가 송수화기를 놓자 스포트라이트가 꺼진다)
[광배] 자 클럽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지
[나영] 난 기분 나빠서 못가겠어요
[광배] 기분이 나쁘니까 한잔 하자는거지
[나영] 사람을 순전히 살인범으로 몰아넣고도
[광배] (지그시 나영의 눈을 들여다보며 웃음기 띈 얼굴로) 그쯤이야 외눈하나 깜짝 안할 나영씨 아냐 자 가서 한잔 하자구
[나영] 싫어요
[광배] 하아 왜 이러지? 우리가 행동을 통일해야 감시하는 그자도 좀 편할거 아냐
[나영] (눈을 흘긴다)
[광배] 그자는 우릴 보호하고 있는 거라고도 할수 있는데 우리도 협조를 해야지
[나영] 나중엔 별 걱정 다하는군요 (다짐하듯) 그럼 조금전 나한테 한말 전부 취소 하실래요?
[광배] 하하 그래 그래
[나영] 그런식으로 어물쩍하지 말구요
[광배] 좋아 정식으로 취소하지
[나영] 정말이죠
[광배] 정말
[나영] 그럼 가요
[광배] 역시 난 여자한테 약해서 탈이란 말야 (나영과 광배 하수로 나간다)
[장] 제5장 (부산의 호텔 방안)
(나영,광배와 함께 하수로 들어온다 광배, 안절부절을 못하고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나영, 그런 광배를 못마땅하게 째려본다)
[광배] 자 자지 오늘은 정말 피곤한데
[나영] 그냥 주무실 거예요?
[광배] 응?
[나영] 그냥 주무실 거냐구요
[광배] 응 특별히 무슨 할 얘기 있어?
[나영] (비웃듯)할 얘기가 있냐구요? 할 얘긴 없어요 하지만 난 잠이 안오는 걸요
[광배] 난 잠이 와서 죽겠는데
[나영] 주무세요 그럼 그런데 안심하고 주무셔도 되겠어요?
[광배] 무슨 소리야?
[나영] 나 의심스럽지 않아요
[광배] 뭐라구
[나영] 아무리 지켜주는 사람이 근처에 있다고 해도 이 방안엔 우리 둘 뿐 이잖아요? 내가 독한 맘만 먹는다면---?
[광배] 이거 왜 이래?
[나영] 내가 만일 권오규를 죽였다면 똑같은 이유로 광배씨도 죽일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광배] 만일 날 어떻게 한다면 나영씬 금방 감시하고 있는 경관에게 붙잡히고 말 걸
[나영] 나도 같이 죽으면 그만이죠 뭐
[광배] 뭐라구?
[나영] 절말 피곤한 거예요 아님 딴 문제 때문예요?
[광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나영] 상철씨, 영일씨 다음엔 광배씨가 죽을 차례란 건 무슨 뜻이었어요?
[광배] 그건 농담이라니까
[나영] 아침엔 말할 땐 단순한 농담 같지 않던데요?
[광배] 정사 어쩌고 한 게 농담이었듯이 그것도 농담이었어
[나영] 정사 어쩌고 한게 단순한 농담만은 아니었듯이 그것 역시 단순한 농담만은 아니었어요
[광배] 그래 뭘 알고 싶은 거야)
[나영] 광배씨가 안절부절 못하는 이유예요 옆에서 보기 딱해요
[광배] 그럼 내가 정말 딱하게 됐는데 나영씨 동정을 다 받게 됐으니
[나영] 어물쩍 넘기려 들지 마세요 상철씨,영일씨 다음엔 광배씨 차례란 건 무슨 뜻이었어요?
[광배] 집요하군 그건 농담이었지만 굳이 설명하라면 막연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해서였어
[나영] 막연히라구요? 거짓말예요 아침엔 무슨 확신을 갖고 하는 말이었어요
[광배] 농담일수록 그리고 확실치 않은 말일수록 확실한 척하는 법이라구
[나영] 그런 식으로 날 납득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광배] 뭐가 납득이 안 간단 거야?
[나영] 아침에 한 말이랑 용기씨와 명곤씨 사고 소식을 알고 난 뒤의 모든 태도 가요
[광배] 내 태도가 어땠길래?
[나영] 춤을 추면서 남의 발등을 그것도 몇 번씩이나 밟질 않나 한참 정신없이 추다가 갑자기 그만두질 않아
[광배] 그야 친구가 갑작스레 둘씩이나 엄청난 일을 당했는데 맘이 편할 순 없지
[나영] 아녜요 광배씬 이번 사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어요
[광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나 이거야 피곤한 사람 점점 더 피곤하게 만드는군
[나영] 좋아요 그럼 주무세요 그 대신 내가 아직 납득하잖았단 사실은 잊지 마세요
[광배] 좋을대로 생각해
[나영] 난 목욕좀 해야겠어요 (묘한 미소를 짓는다)
(나영 상수로 나간다 광배, 전등을 끄고 침대로 눕는다 이윽고 상수 쪽에서 욕조에 물 받는 소리 사이 머리와 옷이 흐트러진 신애가 앙칼지게 떠밀려 하수에서 튀어 나온다 서스펜션 라이트가 그 모습을 강렬하게 비친다 그와 동시에 광배는 "아앗" 하는 비명과 함께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핀 라이트가 그 얼굴만을 강렬하게 비친다)
[광배] (열에 뜬 사람처럼)8년 전이 었어---상철이네 별장에서 였지---
(여덟살이나 젊은 영일, 상철, 명곤, 용기, 광배 "대역이다" 가 야비하게 낄낄거리고 음란한 몸짓을 하며 뒤 따라 나와 신애를 둘러싼다 광배 신애를 걷어찬다 그리고 가위 바위 보로 차례를 정할것을 제의한다 모두 찬성한다 그리고 신이 나서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상철 맨먼저 이기고 으시댄다)
[광배] 상철이가 첫째고--- (영일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광배] 영일이가 둘째고--- (광배 (대역) 좋아서 날 뛴다)
[광배] 내가 셋째였지--- (용기와 명곤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용기는 낄낄거리고 명곤은 낯을 찌프린다)
[광배] 용기가 네째고, 명곤이가 꼴째였었지 (광배는 신애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용기와 명곤은 신애의 두 팔을 잡고, 영일 신애의 옷을 벗긴다 신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다가 기진맥진한다 상철 그 신애 위에 덮친다 서스펜션 라이트가 급격히 꺼진다 이 장면은 판토 마임으로 악몽처럼
전개된다)
[광배] (저주하듯이) 너무나 잔인한 사냥이었어--- (핀 라이트가 꺼지고 다시 어둠이 된다 섬찝하게 고즈넉한 사이 광배 일어나 전등을 켜고 상수로 나간다)
[소리] 이봐 나영씨 욕실 안에 없어? (노크 소리)
[소리] 나영씨! 어이 나영씨 문열어! 어이 나영씨! 문열어 어떻게 된 거야? (욕실 문을 부셔버리는 소리 사이)
[소리] 아앗! (비명) (섬찝하고도 무거운 사이 광배 축 늘어진 알몸의 나영을 큰 타울로 감싸안고
급히 들어와 침대에 눕힌다 나영은 여전히 축 늘어져 있다 그러나 광배가 상체를 마악 들려는 순간 나영의 두 팔이 뻗어 올라 그의 목덜미를 잡는다 광배 기겁을 하고 목을 뒤로 젖힌다 나영 더욱 힘있게 끌어당긴다)
[광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 사람 살려!
[나영] (반짝 눈을 뜨고) 어디로 도망치려고 그래요?
[광배] (어리벙히 나영을 본다)
[나영] (묘한 웃음기를 띠우고)여자를 놔두고 혼자 자려는 사람이 어딨어요 약이 올라서 장난 좀 해본거예요 어때요 내 연기?
[광배] 요사스러운! (난폭하게 나영의 두 팔을 뿌리친다)
[나영] (차갑게 웃으며)흥 난 요사스럽고 광배씬 음흉하니까 근사한 한쌍이지 뭐야 그래 숙제는 좀 풀었어요?
[광배] 숙제?
[나영] 광배씨가 죽을 차롄데 용기씨가 먼저 죽은 사실에 대해 뭘 좀 찾아냈나요?
[광배] 씨도 안 먹는 수작하지 마
[나영] 그래요? 그럼 이런 얘기 경찰에 가서 해도 괜찮을까요?
[광배] 뭐가 어째?
[나영] 왜요 마땅찮을 까요? 이건 광배씨가 나한테 써먹은 방법인데
[광배] 경찰이 할 일 없다고 그런 농담 따윌 귀 기울여 들을라구
[나영] (배시시 웃으며)그럼 한번 시험삼아 해볼 까요? 귀 기울여 듣나 안듣나
[광배] 마음대로
[나영] 정말?
[광배] 물론이지
[나영] 그럼 서울 가는대로 경찰에 얘길 해봐야지
[광배] 하지만 그 땐 나영씨도 꼬릴 잡힐 각오를 해야 할 걸 나도 내가 아는 얘길 털어놔버릴 테니까
[나영] 흥 거봐요 역시 내가 경찰에 가는 건 싫죠?
[광배]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러는건 아냐 다만 그리 되면 내 기분이 상할 테고 기분이 상하다 보면 내가 아는 나영씨 얘길--- 결국 후후후 (나직이 웃는다)
[나영] 내가 아무리 요사를 떨어도 광배씨 음흉한 속셈은 못 따르겠군요 이리 와 나 좀 안아나 주세요
[광배] 아 그야 어렵잖지 (전등을 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둘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나영] (콧소리로)잊어버리세요 쓸데없는 생각 같은 건 여자하고 있을땐 여자 생각만 하는 거래요 이잉---
[장] 제6장 (R건설 상무실)
(상자를 고급 테이블보로 덮고 그 위에 (상무. 김광배)난 표말과 전화가 놓여있다 그리고 그 앞에 고급 소파와 고급의자가 놓여있다 광배, 경식을 데리고 상수로 들어온다 그리고 소파에 앉힌다)
[광배] 날 꼭 만나야 할 일이 있단 건 무슨---?
[경식] 실은 사과의 말씀을 좀 드리려구요
[광배] 사과라니?
[경식] 실은 이번 부산에서 김상무님을 저희 경찰이 미행을 좀 했었죠
[광배] (일부러 놀란척)미행을 나를? 난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는데
[경식] 죄송합니다 저희로선 보호해 드린다는 뜻이었죠만
[광배] 그럼 내 사생활의 일부를 알게 됐단 얘기겠군요?
[경식] 본의는 아녔읍니다만 그런 결례도 저지를 결과가 죄송합니다
[광배] 우린 함께 여행을 했을 뿐이오 경찰이 관심을 가질만한 아무 일도 없었소
[경식] 하지만 저희로서 관심을 안 가질수 없는 점은 채나영씨가 벌써 세분 째나 가까운 친구들 하고 보통이 넘는 관계를 맺고 있단 점이죠 더구나 그 중 두분은 이미 살해를 당했단 점에서
[광배] 하지만 이번에 용기는 채 나영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해를 당했잖소?
[경식] 하긴 단순한 우연을 가지고 저희가 공연히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한 가지 실례될 질문을 드려도 용서해주실는지요?
[광배] 무슨 질문이오?
[경식] 김 상무님의 경우엔 채 나영씨 쪽에서 먼저 접근을 해왔는지요 혹은 김상무님 쪽에서---?
[광배] 하하 무슨 뜻인지 알겠소 채 나영이가 혹시 의도적으로 날 유혹한게 아닌가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그렇지가 않아요
[경식] (고개를 갸우뚱한다)
[광배] 내가 바람기가 있다는 걸 혹시 모르시오 게다가 모험심 비슷한 것도 동했구
[경식] 모험심 비슷한 것이라뇨?
[광배] 글쎄 일종의 장난기라고 할까--- 상철이나 영일이처럼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는 그런 거죠 여자를 유혹하는 데도 드릴이 있으면 한결 재미가 더하니까 하하
[경식] 좀 위험한 장난을 하신 것 같군요
[광배] 하지만 어쨌든 난 이렇게 건재 하잖소? 장담하기엔 아직 이른지 모르지만
[경식] 혹시 전에 친구분들하고 사냥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광배] (움찔하며) 사냥!?
[경식] 노루나 꿩 같은 걸 잡는 사냥 말이죠
[광배] 아니 해본 적이 없소
[경식] 그럼 혹시 그 비슷한 게임 같은 것도---?
[광배] 그 비슷한 게임이라니?
[경식] 이를테면 사냥 비슷한 모험심이나 드릴을 만끽할 수 있는 어떤 (광배의 표정을 살핀다)
[광배] (애써 태영하려 하며) 글쎄 그런 게임이 뭐가 있는지도
[경식] 노루나 꿩 대신 이를 테면 사람을 상대로 하는 비슷한 게임도 있을 수 있잖겠읍니까?
[광배]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게임?!
[경식] 네 가령 여자라든지
[광배] 무슨 소릴! (당황의 빛이 역력하다)
[경식] 여자를 상대로 하는 그런 사냥 비슷한 게임을 친구분들하고 같이---?
[경식] 도대체 무슨 얘길 하자는 거요?
[경식] 기분이 언짢으셨다면 용서하십시요 하지만 조금 전에 여자를 유혹하는 데도 드릴이 있으면 한결 재미가 더하다고 하셨잖습니까? 난 그런 의미에서 드릴이나 모험심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법으로---
[광배]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떻단 거요?
[경식] 그렇다면 최근 일련의 사건에 대한 설명이 혹시 가능하잖을까해서---
[광배] 뭐요?
[경식] 저희들 좀 도와주십시요 실은 오늘 최명곤씨가 혼수상태에서 헛소릴 했읍니다
[광배] 헛소릴?
[경식] 그 헛소리중에 (사냥)이란 말이 들어 있었죠
[광배] (얼굴빛이)변했으나 곧 태연하려 애쓰며) 명곤이가---?
[경식] 헛소리란 흔히 의식의 심층을 지배하던 어떤 억눌렸던 관념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거라고 하죠
[광배] 그래서?
[경식] 그러니까 (사냥)이란 말이 최명곤씨에겐 매우 중요한 어떤 경험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잖겠읍니까?
[광배] 무슨 얘기요 지금?
[경식] 그 (사냥)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겠느냔 말이죠
[광배] 날더러 명곤이가 했단 그 헛소리의 의미를 해석해 달란 말이오?
[경식] 도와주십사 하는 겁니다
[광배] 모르겠소 난!
[경식] (혼잣말처럼) 여잘 사냥했다면 얘긴 순조롭게 풀려 나가는데 (재빨리 광배의 표정을 살핀다)
[광배] (찔린 듯한 표정으로)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요
[경식] 아 화나셨다면 용서하십시요 난 다만---내 빈곤한 상상력으로 한 가정을 세워봤을 뿐입니다
[광배] 가정?
[경식] 네 만일 그 (사냥)이란 말이 여자를 사냥한다는 뜻으로 쓰였다든지 할 경우엔 최근 일련의 사건에 대한 설명이 뜻밖에 아주 순조롭게 되잖을까 하는 가정을---
[광배] (손을 들어 제지하며) 가만 난 필요하다면 당신 같은 무례한 사람이 다신 나타나지 못하도록 얼마든지 손을 쓸수 있는 사람이야 알겠어!
[경식] 아, 그러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사실을 끝내 숨기실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오햅니다
[광배] (경식을 노려보고 나서 누구러지며)미안하오 난들 왜 돕고 싶잖겠소 하지만 더 이상 도울게 없으니 어쩌겠소
[경식] (사냥)이란 말에 대해 정말 생각나시는게 전혀 없으십니까?
[광배] 글쎄 그런게 있었으면 좋겠소
[경식] 그럼 그 문젠 최 명곤씨가 의식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군요
[광배] ---
[경식] 실례헹습니다 (경식 상수로 나간다 광배 경식을 상수까지 바래다 주고 와서 의자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장] 제7장 (시경 강력계실)
(계장은 책상에 앉아 있고 경식은 서있다)
[계장] 도대체 범인은 어떤 자식이지?
[경식] 아뭏든 남은 열여섯 명중의 하나겠죠
[계장] 열 여섯 명?
[경식] 스무 명 가운데 피살된 네명을 제외하고 남은 열 여섯 명 말입니다 이 상철씨가 피살되던 날 밤 피살 시각에 호텔나이트클럽 플로어에 춤추러 나갔던 스무명 가운데 말이죠
[계장] 음 아뭏든 그럼 그 열 여섯명 가운데서 여자들을 제외하면 몇명이 남는 셈인가?
[경식] 여섯 명이죠
[계장] 여섯 명이라 여섯 명---그 중에서 또 두명을 제외해도 되겠지
[경식] 김 광배씨와 배 수빈씨 말입니까?
[계장] 음 이 사건이 만일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동일범의 짓이라면말야 그 두사람은 박 용기씨가 살해되던 날 부산에 있었으니까
[경식] 그렇군요
[계장] 그럼 남은 사람은 네 명이라고 할수 있는데
[경식] 거기서 한명은 더 제외시킬 수 있겠죠
[계장] 누구말인가?
[경식] 윤 두식 말입니다 이상철씨 피살현장에서 용의자로 체포 했던
[계장] 아 그 친구도 일단 제외할 수 있겠군 그럼 남은 건---?
[경식] 교통사고로 입원 가료중인 최 명곤씨와 박 시영이란 K 무역의 경리과장 김 진형이란 J 병원 피부과 의사 이렇게 세사람이 남는 거죠
[계장] 그 셋중의 하나가 결국 범인이 란 결론이 나오는군
[경식] 하지만 그 세 사람은 사건 때마다 너무나 아리바이가 뚜렷합니다 이상철 살해 때만 빼놓고
[계장] 그럼 도대체 범인은 누구람?
[경식] 계장님 여자 가운데 혹시 있지 않을까요? 가령 채 나영은 혐의가 짙습니다
[계장] 채 나영?!
[경식] 그 여자의 경우 권오규도 살해했을 가능성마저 있읍니다 물론 가정부가 아리바이를 주장합니다만 믿을게 못되죠
[계장] 하지만 박 용기의 경우는 아리바이가 훌륭히 성립되잖나? 그 여잔 부산에 있었으니까
[경식] 그게 제가 부닥친 벽입니다
[계장] 채 나영이라 (생각에 잠긴다)
[경식] (역시 생각에 잠긴다) (사환 명함을 들고 상수로 들어온다)
[사환] 반형사님 이 여자가 반 형사님을 만나자는데요
[경식] (명함을 받아보고)아니 채 나영씨가!
[계장]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경식] 무슨 일로?
[사환] 만나서 긴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다나 봐요
[경식] (상의하듯 계장을 건너다 본다)
[계장]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눈을 감아 보인다)
[경식] 이리 들어오도록 해 (사환 나간다)
[계장] 난 피하는게 좋겠어
[경식] 옆방에 가 계시죠
[계장] 음 잘해 보게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경식] 네 염려 마십시오 (계장 하수로 나간다 경식 흥분하여 실내를 거닌다 나영 사환에게 안내되어 들어온다 사환 둘을 호기심으로 번갈아본다)
[나영] 안녕하세요 반 형사님
[경식] 어서 오세요! (사환에게 눈짓한다) (사환 얼른 나간다)
[경식] 이리 앉으시죠
[나영] 네 고마워요 (의자에 앉는다)
[경식] 뭔가요 긴요한 말씀이란?
[나영] 반 형사님을 믿고 말씀드리겠어요 내가 얘기 했다는 거 절대 비밀로 해주신다는 보장아래서요
[경식] 내 그점 안심하고 말씀하십시요
[나영] 저 이번 사건의 동기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세요?
[경식] 글쎄요 그걸 아직
[나영] 모르시죠?
[경식] 네 솔직히 말해서 갈팡 질팡하고 있읍니다
[나영] 절대 비밀을 지켜주셔야 해요?
[경식] 그 점은 거듭 약속드리겠읍니다
[나영] 광배씨가 모든 걸 알고 있어요
[경식] 네! 김 광배씨가?
[나영] 네 틀림없어요
[경식] 그걸 어떻게---?
[나영] 이번에 광배씨랑 부산 여행하고 온 거 알고 계시죠? 미행까지 시키셨으니까
[경식] 아 알고 계셨군요 (머리를 긁적거린다)
[나영] 광배씨가 부산에서 귀뜸해줘서 알았어요
[경식] (혼잣말로)그리고도 나한텐 시침을 뗐군 음흉한 친구---
[나영] 네?!
[경식] 아 저 혼자 하는 소립니다
[나영] 광배씬 모든 걸 알고 있는 태도였어요 특히 용기씨가 피살됐단 뉴스를 보고 난 뒤의 태도는 그랬어요 범인이 누군지까지 알고 있는진 모르지만 왜 그런 연속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태도임에 틀림없었어요 심지어 광배씬 자기 차례가 가까와 오고 있단 말까지 했으니까요
[경식] 네!---분명히 그런 말까지
[나영] 네 농담 비슷이 그랬지만 분명히 농담만은 아니었어요 마치 무슨 죄를 짓고나서 그 죄에 대한 벌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같았어요 떳떳이 죽음을 거부할 입장이 못된다고 하던가 뭐 그 비슷한 말도 했구요
[경식] 혹시 그의 말 가운데 (사냥)에 대한 걸---?
[나영] 없었어요 사냥은 왜요?
[경식] 아 그건
[나영] 내가 이런 말 했다고 광배씨한테 무슨 피해가 가는 건 아니겠죠?
[경식] 물론입니다 (동희 무심코 들어온다)
[나영] (당황하며)그럼 난 이만
[경식] 가시겠습니까? (나영 황황히 나간다 경식 밖에까지 전송 하고 들어온다)
[경식] 동희 어서 와
[동희] 채 나영씨가 웬 일이예요?
[경식] 음 사건 경과가 궁금해서 들렸다는군
[동희] (날카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