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이 Ioanna Mouskouri 인 나나 무스쿠리는 1934년 10월 13일 그리스의 크레타에서 태어나.세 살 때 아테네로 옮겨간 그녀는 12세 때부터 보컬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 프랭크 시내트라나 엘라 핏제럴드, 빌리 홀리데이 등의 재즈 보컬리스트, 등 샹송 가수들에게 사로잡히기시작했고 16세 때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했지만 결국 재즈에 빠져들어 재즈 밴드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결국 성악가의 길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이 무렵, 유명한 그리스의 거물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와 만나게 되면서 대중음악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다키스의 노래를 담은 EP 음반을 1958년 발표했고 이듬해 그리스 음악제(Greek Song Festival)]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녀는 지중해 음악제(The Mediterranean Song Festival) 에서도 대상을 수상,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해외로 진출한 그녀는 하지다키스의 노래에 독일어가사를 붙인 ‘Weisse Rosen Aus Athen’(‘The White Rose Of Athens’)이독일에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트윈폴리오가 ‘하얀 손수건’으로 번안해 부른 ‘Me T'Aspro Mou Mantili을 히트시켰고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1960)의 주제곡 역시 그녀의 몫이었다. 2005년 SBS 드라마 '하늘이시여' 주제곡으로 알려젔고 그녀와의 이별을 아쉬워 할 팬들을 위해 베스트 앨범과 라이브 실황을 담은 DVD가 합쳐진 스페셜 투어 에디션을선 보었다.
고대와 동방의 향기 속에 담긴 삶의 노래 그리스 음악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라는 성악가의 노래로 친숙했던 ‘기차는 8시에 떠나고(To Treno Fevgi Stis Okto)’나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와 [페드라(Fedra)] 속의 음악들은 그리스 음악을 대표하는 곡으로 적지 않은 음악팬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명곡 ‘나의 어머니(Manoula Mou)’와 이미 오래 전부터 트윈 폴리오의 번안곡으로 들어왔던 ‘하얀 손수건(Me T'aspro Mantili)’ 등이 담긴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의 음반은 LP 시절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또한
비영어권 국가의 음악에 관심을 가져왔던 애호가들에게는 현대 그리스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와 마노스 하지다키스(Manos Hadjidakis)의 작품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의 국민 가수로 사랑받아 온 요르고스 달라라스(George Dalaras)나 하리스 알렉시우(Haris Alexiou)의 노래들이 대단히 특별한 감성을 전했을 것이다.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그리스 음악에서 우리의 것과 비슷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때 비영어권
국가의 음악으로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했던 이탈리아의 칸초네나 프랑스의 샹송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동방의 향취가 담긴 그리스 음악만의 독특함이 그 선율 속에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음악 이면의 배경들은 우리와 닮은 부분이 많다. 반도 국가라는 유사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외세에 시달렸던 비슷한 역사의 아픔을 지녔고, 어두운 현대사를 겪어왔다. 이는 그리스의 음악이 우리의 귀와 마음에 특별하게 와 닿아 정서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Nana Mouskouri - Me t'aspro mou Mantili (하얀 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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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Me t'aspro mou mantili tha s'apoheretiso
Ke gia na mou 'rthis piso stin ekklisia tha bo
하얀 손수건으로 당신께 작별을 고할 것입니다.
저에게 되돌아올 수 있도록 교회로 갈 겁니다.
(저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교회로 가 기도 할 것입니다)
Tha anapso to kantili ke to keri tha zviso
Ta matia mou tha kliso ke tha se onirefto
촛불을 켜고 양초를 끌 것입니다.
눈을 감고 당신의 꿈을 꿀 겁니다.
Giati ise lipimeno ke de milas ki esi
Pouli taxidemeno se makrino nisi
먼 섬으로 널리 여행한 새야,
왜 슬퍼하며 침묵에 빠져 있니?
Iha ta dio sou hili krifo tis nihtas teri
Ma to diko mou asteri min pernis ap' edo
저는 당신의 두 잎술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어둠속에 숨은 별이여... 제 별은 빼앗아 가지 말아주세요
Sou harisa kohili na to kratas sto heri
Os t'allo kalokeri pou tha se xananaido
다음 해 여름 당신을 다시 만날 때까지 간직할 수 있도록
조개껍질을 당신께 선물했어요.
Giati ise lipimeno ke de milas ki esi
Pouli taxidemeno se makrino nisi
먼 섬으로 널리 여행한 새야,
왜 슬퍼하며 침묵에 빠져있니?
트윈폴리오 (송창식,윤형주) - 하얀 손수건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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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동방의 향기를 동시에 지닌 그리스의 음악
유럽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그리스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에 견줄 만한 오랜 역사와 고대로부터 물려받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닌 나라다. 신과 인간이 공존하며 예술과 학문의 찬란한 꽃을 피우기도 했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로서 항상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해 온 탓에 숱한 고초를 겪으며 힘든 역사를 견뎌온 나라이기도 하다. 서유럽과 동쪽의 아시아, 위로는 동유럽에서 뻗어 내려온 발칸 반도, 그리고 지중해 남쪽 건너편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을 두고 있었기에 기원전부터 다양한 지역의 문화가 이곳에서 만났다. 로마 제국이 정복했지만 거꾸로 헬레니즘 문화가 로마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 로마 제
국의 분열 이후에는 비잔틴 제국에 속했다가 오랫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융합이 일어났다.특히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는 그리스의 문화와 동방의 문화가 직접적으로 부딪히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그리스 음악만이 지닌 독특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터키로부터 독립한 이후의 그리스 역시 순탄치 못했다. 세계 대전들을 겪으며 강대국의 입김에 휘둘리기도 했고, 군부 독재 정권의 철권통치에 시달리다 70년대 중반을 넘어선 후에야 민주화
를 이루게 되는 굴곡 심한 역사를 살아왔다. 이렇듯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동·서양이 맞물려 있는 그리스는 음악 역시 고대로부터 이어 온 그들만의 전통과 만난 다양한 문화의 산물이 어우러져 있다. 또한 다른 발칸 반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터키에서 유럽 각지로 흩어졌던 집시들이 페르시아 지역을 거치며 습득한 음악을 그리스적인 것으로 표현해내기도 했다. 시간 속에 묻힌 고대의 멜로디에서 시작된 그리스의 음악은 이 모든 배경 속에서 단련되어 이제는 그리스 음악만이 들려 줄 수 있는 고유한 향기로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Nana Mouskouri - Manoula Mou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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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shame, such a shame my mother and how I'm gonna get rid of it, not even under river's rush can't be removed, my mother What's the point of a couple of tears and of 42 sighs, my little mother and what if my tear's fresh my mouth is speechless and bitter, my little mother And I'm running to find someone and he asks me and I ask him, "what will happen" who's gonna get hurt, who's gonna get hurt | 몇 번의 눈물이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42번의 한숨 중, 나의 작은 엄마 내 눈물이 신선하다면 내 입이 말문이 막히고 쓰라려, 나의 작은 어머니여 그리고 난 누군가를 찾기 위해 달리고 있어 그는 나에게 묻고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고 묻는다. 누가 다칠까, 누가 다칠까 |
레베티카와 부주키
삶의 이야기를 담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들 중 대부분이 가난한 하층민들의 찌든 삶 속에서 태어났다. 그 음악들은 오늘날 각 나라나 민족의 대표적인 정서를 담고 가장 중요한 음악으로 부각되어 있기도 하다. 포르투갈의 파두나 아르헨티나의 탱고처럼 그리스 역시 항구 도시의 하층 문화에서 시작되어 그리스 음악 이야기 속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레베티카(Rebetika)라는 음악이 있다. 렘베티카(Rembetika) 혹은 레베티코(Rebetiko)라고도 불리는 레베티카는 전통적인 색채
를 띤 현대 그리스 대중음악의 근간이라 할 만한 것이다. 그리스 현대사의 중요한 기점이라 할 수 있는 1922년 터키와의 전쟁 이후, 소아시아 지역으로부터 150만 명에 이르는 많은 난민들이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이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층 문화를 이루게 된다. 특히 아테네의 외항(外港)인 피레우스를 중심으로 이들만의 개성 있는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데, 레베티카는 이들이 거주하던 거리의 카페나 술집에서 부르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마약과 매춘, 실업, 밀수 등으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생겨난 레베티카는 가난과 연애와 같은 통속적인 것들과 소외된 삶, 사회적인 문제들을 소재로 한 노래였다.
Nana Mouskouri - Pame Mia Volta Sto Fegari (달로 산책을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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Είμαι μακριά σου 3 μέρες Τρεις νύχτες έμεινα μόνος Τα δάκρυα σκέπασαν τα βουνά όταν έβρεχε από τον ουρανό. «Τίναξε τη λύπη σου, κορίτσι Πώς μπορώ να τινάξω αυτή τη θλίψη περπατώντας; Πάμε μια βόλτα στο φεγγάρι». Τα λόγια του... θυμάμαι τα λόγια του... περπατώντας με το φεγγάρι Α, μπορώ πραγματικά να τραγουδήσω;;; περπατώντας με το φεγγάρι Θα καταφέρω ποτέ να παρηγορηθώ;;;; | 당신과 3일동안 떨어져 있었습니다 3일밤 동안 난 혼자였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릴때 눈물이 산을 덮었지요.. "슬픔을 떨쳐버리세요 아가씨 걸으면서 이 슬픔을 어떻게 떨쳐내야 하는지.. 달로 산책이나 갑시다" 라고 했던~ 그의 말...그의 말이 생각 납니다.. 달과 함께 걸으면 아~ 과연 내가 노래를 부를수가 있을까??? 달과 함께 걸으면 내가 과연 위로를 받을수 있을까???? |
3,40년대를 지나면서 레베티카는 “레베티카의 할아버지”로 불리는 마르코스 밤바카리스(Markos Vamvakaris)를 비롯한 뛰어난 음악가들을 배출하며 나름의 전형을 만들어 갔다. 특히 레코드 산업에 편입되어 널리 보급되며 대중음악으로서의 면모도 서서히 갖추기 시작했다. 2차 세계 대전 즈음에는 그리스 전역에 퍼져나가면서 하나의 도시 대중음악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또한 음악적으로도 터키와 소아시아 지역의 색이 짙은 초기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변화가 있었다. 이 당
시 대표적인 레베티카 뮤지션으로 바실리스 치차니스(Vasilis Tsitsanis)를 손꼽는다. 그는 서구적이고 상업적인 면모를 더해 레베티카를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과 대중화는 레베티카의 주된 계층이 중산층으로 옮겨가는 결과를 낳으며 1955년 그 전성기를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레베티카는 이후 그리스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며, 보다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면모를 지닌 라이카(Laika)라는 음악으로 발전한다. 현재 그리스 고유의
색채를 지닌 대중음악의 대부분이 이 라이카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레베티카는 부주키(Bouzouki)라는 악기와 함께 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 음악에 사용되면서 그리스 고유의 색깔을 지니게 하는 감초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악기다. 부주키는 터키를 통해 받은 동방의 문화적 산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2세기 초 터키 서해안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추방당해 그리스 본토로 들어올 때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부주키는 타원형의 몸체와 긴 목을 지닌 류트형의 악기다. 복현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현은 때론 청승맞게, 때론 발랄한 울림으로 연주되면서 그리스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소리로 평가받고 있다.
Eleftheria Arvanitaki - To Parapono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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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키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나 마노스 하지다키스와 같은 그리스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비롯한 수많은 음악 속에서 그리스 민중의 애환을 담아내는 악기로 사랑받아 왔다. 마르코스 밤바카리스와 바실리스 치차니스를 비롯한 레베티카의 많은 명인들이 뛰어난 부주키 연주자이기도 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음악을 담당했던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명배우 안소니 퀸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춤을 추는 인상적인 장면에 흐르던 음악 ‘조르바의 춤’을 연주하는 악기가 바로 부주키다. 지금도 그리스의 관광지구나 시골의 선술집에서는 해가 떨어질 무렵부터 부주키가 연주되고 그 선율에 맞춰 전통적인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의 블루스(Blues)”라고 불리는 레베티카와 그 선율을 엮어 나가던 부주키의 울림. 그것은 20세기 그리스 민중들의 삶의 소리와 다름없는 것이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기차는 8시에 떠나고(To Treno Fevgi Stis Okto)’라는 명곡으로 우리나라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그 이름을 깊이 각인시켰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의 암울했던 현대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인물이다. 애수 어린 선율 속에 겉으로는 연인의 이별을 그리고 있는 이 노래는 그리스 민주화 운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곡이기도 하며, 이후 그는 군부 독재 정권의 탄압 속에 조국에서 추방당해 망명의 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스의 국민 작곡가로 불리며 세계의 존경을 받아 온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1925년, 그리스의 유서 깊은 지역인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비잔틴 성가와 그리스 민속 음악을 배우며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쌓
았다. 2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이 침공했을 때 레지스탕스에 가담했고, 전쟁 이후 좌파와 우파로 나뉜 내전 속에서는 좌파에 가담해 혹독한 시련과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성향은 그의 음악 속에도 반영되어 그리스의 음악 전통을 바탕으로 한 대단히 민족적인 곡들을 쓰게 되는데, 67년부터 시작된 군부 정권의 독재 치하에서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금지곡 처분을 당하고 구속과 고문 끝에 국외로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군부 정권이 끝나고 난 뒤에야 조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그는 부주키의 울림이 담긴 레베티카 음악의 전통에 특유의 서정성을 부여하며 시대의 아픔과 조국의 슬픔을 담아냈고, 칠레의 시인 네루다(Pablo Neruda)의 시를 오라토리오로 표현한 ‘Canto General(모두를 위한 노래)’와 같은 대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Agnes Baltsa & Friedrich Gulda - To Treno Fevgi Stis Ok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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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교향곡을 비롯해 무용곡, 오페라 등 클래식 작품들도 남겼으며,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도 했다. 그리스의 존경받는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대표작을 영화로 만든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들려주었던 그리스 전통의 향기가 담긴 부주키의 선율들은 지금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그는 그리스 배우들이 주연하거나 해외의 인권 운동 관련 영화들에서 인상적인 음악을 남겼는데, ‘죽어도 좋아’라는 번안 제목으로도 유명한 영화 [페드라]나 [계엄령], [Z] 등의 음악을 맡으며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많은 음악들은 격랑의 그리스 현대사에 맞서 싸우며 만들어 낸 것이었고, 그리스 국민들의 가슴에 희망을 주었던 것이기에 음악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마노스 하지다키스(Manos Hadjidakis)
영화 [페드라]에 등장했던 배우이자 가수였던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가 주연했던 영화 [Never on Sunday(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주제곡을 비롯해 역시 영화 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던 마노스 하지다키스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함께 그리스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을 수 있다. 특히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를 비롯한 몇몇 가수들이 표현해 낸 그의 음악들은 다소 어두운 색조와 회색빛 서정을 지니고 대단히 특별한 인상을 전한 바 있다. 항상 그리스 음악의 첫 머리에 등장해 ‘투사’의 이미지를 지니고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는 달리 내성적이고 지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지만, 세상을
떠난 지금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의 음악을 해석하고 싶어 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성을 담은 작품들을 남겨 놓았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작품들이 극음악 형태의 모음곡으로 남아 있는데, 이에 대한 발굴과 새로운 리코딩을 통해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리스 특유의 정서가 때론 난해하게 표현된 곡들도 있지만, 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서적, 음악적 색채는 그리스 음악 내에서도 대단히 특별한 위치를 가진다. 또한 그리스를 대표하는 가수들의 노래로 발표된 그의 곡들 대부분은 우리 정서에도 잘 어울리는 것으로, 국내 그리스 음악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Manoula Mou(나의 어머니)’ 역시
그의 모음곡에서 발췌된 곡이다. 렘베티카의 시대가 끝난 후 그리스의 대중음악에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요소들이 들어오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뮤지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던 대표적인 1세대 가수로 마리아 파란투리(Maria Farantouri), 마리아 데메트리아디(Maria Demetriadi),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uri)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들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음악을 통해 그리스의 정서를 노래했고, 군부독재 정권 시절에는 민주화의 열망을 드러내며 망명의 길을 걷기도 했다. “지중해의 존 바에즈”로 불리기도 했던 마리아 파란투리는 그리스 음악의 힘을 보여주었던 여장부로, 미
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했던 가수로 찬사를 받았다. 주로 테오도라키스의 음악 속에 담긴 민족적인 색채를 강인한 포크 음악으로 해석하며, 74년까지 이어졌던 군부정권 시절 해외에서 수많은 공연을 통해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함께 그리스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까만 뿔테 안경과 청아한 목소리로 세계의 사랑을 받았던 나나 무스쿠리는 크로스오버 팝 가수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활동 초기에는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페르소나로 그리스 고유의 정서가 담긴 노래들을 부르며 찬사를 받았다. 이들의 뒤를 잇는 세대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의 국민 가수로 사랑받아 온 요르고스 달라라스
(George Dalaras)와 하리스 알렉시우(Haris Alexiou)가 첫 손에 꼽힌다. 요르고스 달라라스는 그리스 사람들의 정서와 고유한 음악 색깔이 담긴 수많은 노래들을 발표했고, 재즈, 라틴권의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목하기도 했다. ‘Little Grace’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하리스 알렉시우는 레베티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리스 음악의 멋을 알렸던 인물이다. 90년대 이후에는 허스키한 중음의 목소리로 깊은 내면의 감성을 담은 서정적인 노래로 감동을 전하고 있다.
Savina Yannatou - Nani N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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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출처 : 황윤기 (음악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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