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옹졸입니다 / 황선영
동생네가 왔다. 모처럼 두 식구가 함께 외출하는 길이다. 스타벅스부터 들리기로 했다. 나는 커피를 안 마셔서 특별한 카페 취향은 없는데 얘는 꼭 여기 것만 먹으려 든다. 커피 맛도 다르고 혜택도 많다나. 모두에게 마시고 싶은 걸 묻는다.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주문했단다. 참 뭐든 간단한 세상이다. 집 근처라 금방 도착했다. 차에서 마실 거라며 나한테 찾아 오란다. "언니, 황허세로 주문했어!" 내리는 내 뒤통수에 크게 소리친다. 문이 곧 닫히고 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질 못했다. "황허세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아까 외치던 말이 저건가 보다. 직원에게 가니 우리가 고른 음료가 맞다. 멀쩡한 이름 두고 이런 이상한 별명은 뭐람. 재미는 있네. 자기 성격이랑 딱 맞게 잘도 지었다. 양손 가득 마실 것을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황허세'라. 입과 머릿속에 맴돈다. 마침 쓸 만한 필명을 연구하던 참이다. 쥐뿔도 없는 인생 허세라도 부려 볼까? 방학 동안 황성훈 선생님을 따라 '브런치 스토리'에 도전했다. 내친김에 '북스타그램(책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시작했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내 글은 전혀 인기가 없다. 우리 글쓰기 반 선생님들은 재밌다고 했는데. 인스타그램은 팔로워가 800 명이 넘는다.
"야, 그 이름 나 주라."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실실 웃는다. "언니는 허세가 아니야." 그럼 뭐냐고 물으니 화 안 낸다고 약속하면 말한단다. 손도장 찍고 사인까지 했다. "언니는 옹졸." 운전하는 남편, 조주석에 탄 제부, 뒷자리 애들이 맞장구를 치며 박장대소를 한다. 나도 눈은 째려보고 있지만 웃음이 난다. 찔리는 점이 있다. 남편은 사기 결혼을 했다면서 입을 뗐다 잘 웃고 까불길래 성격 좋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인색하고 속이 좁아 사는 게 피곤하다나. 두 아들도 거든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 우리 집은 북한이나 다름없었다고 쏟아냈다. 핸드폰을 늦게 가져서 불만이 많았다. 사 주곤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했다. 지켜야 할 온갖 것을 벽에 써 붙여 놓고 애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때가 있는데. 독재자 시절이 그립다. 하하. 반박하자면 나는 웬만하면 규칙을 지키는 게 좋다. 기준이 없는 것은 만들어 놔야 불안하지 않다. 제부는 자기 딸을 안 봐줘서 서운하단다. 넷을 낳았다고 아이를 좋아할 거란 오해는 말아 달라. 세상에서 애기랑 노는 게 제일 재미없다. 그래도 자식은 예뻤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 동생은 지금도 조카들을 물고 빨고 한다. 출산 때마다 휴가를 다 써가며 수발 들러 왔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뭐 형편이 그렇기도 했지만 마음이 우러나지가 않아서. 똥, 오줌 가리면 봐 주겠다고 했다. 검색창에 '옹졸하다'를 넣었다.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다.'라고 나온다. 옛날 같았으면 발끈하고 한바탕했을 텐데 요사이 인정하고 내 구겨진 면을 보는 게 좀 쉬워졌다. 글쓰기 치료 덕인가? '브런치 스토리', '인스타그램' 이름을 '황옹졸'로 바꿨다.
점심 값과 볼링비를 두고 사다리타기 게임을 했다. 각 가정의 대표가 나섰다. 메뉴는 나주 채선당 샤부샤부 뷔페. 휴일 점심이라 인당 2만 원쯤 할 것이다. 초등학생은 좀 싸다 해도 수가 아홉이나 되니 밥값이 만만치 않다. 꼭 볼링비여야 한다. 와우, 내 바람대로 됐다. 기분 좋다. 나주까지 가는 길도 즐겁고 오랜만에 먹는 샤부샤부도 맛있다. 거의 먹어 가는데 남편이 안 보인다. 후식 가지러 갔구나 생각하고 겉옷을 챙겼다.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들어 식탁을 살폈다. 계산서가 안 보인다. 이 인간이 또 착한 척하러 갔고만. 아니나 다를까 미소를 머금고 걸어온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계산했냐니 고개를 끄덕인다. 왜 규칙을 안 지키냐고 이빨을 꽉 물고 물었다. "우리 집 식구가 더 많잖아." 아니, 그 사실을 누가 몰라? 동생은 형부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지켜보던 막내의 말이다. "엄마, 옹졸하게 왜 그러세요."
첫댓글 아들이 우리집은 북한이니 다름 없었다는 말에 빵 터졌어요. 글이 감칠맛이 나네요.
하하. 그랬어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하! 저도 조옹졸로 바꿀까 봐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황'보다 '조'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선생님 가지실래요? 하하하.
저는 허세로 할게요.
@황선영 오메 , 좋은디요.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잘 쓰시나요? 교회 가기 전에 딱 본 바람에 다 읽고 가느라 늦을 뻔 했어요.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하하하.
아이고 재미는요. 읽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예배는 늦으면 안 돼요. 하하.
브런치 스토리에서 인기가 없다구요? 믿을 수 없네요.
진짭니다. 믿으셔야 해요. 선생님이 '좋아요' 좀 눌러 주십시오!
하하하! 재미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짜 옹졸하다면 쓸 수 없는 필명인 것 같습니다. 그 단계를 벗어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술술 잘 읽어지며 재미있는 글입니다.
미래의 황완서 작가님이세요.
@심지현 오메, 선생님.
고맙긴하지만 이러시면 저 쥐구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해요.
@황선영 제가 저번엔 정신이 없어서 못챙겼는데 진짜 사인받을 종이 다음엔 가지고 갈께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제가 듣고 싶은 말입니다. 옹졸하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기도 했고요. 옹졸한 걸 공개하고 앞으로 이는 째째한 감정까지도 자유롭게 쓰고 싶거든요. 히히.
황허세와 황웅졸, 막 웃음이 나왔습니다. 재치 넘치는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을 웃게 했다니. 뿌듯합니다. 하하.
황선영, 황성훈. 두 황 씨는 브런치까지 진출했군요.
글 쓸 자격 충분합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곧 사랑받을 겁니다.
황옹졸은 발음이 어색합니다.
황허세에 한 표 던집니다.
올해는 황허세님처럼 재미난 글 쓰고 싶은데,....매번 어렵네요.
동생에 선생님 댓글 캡쳐해서 보여 주니
'허세' 갖다 쓰라네요.
저도 황허세에 한 표 던집니다.
이 글 읽고 당장 브런치 스토리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구독 꾹 눌렀답니다.
내친김에 온라인으로 저 같은 사람들에게(필력은 없으면서 욕심으로 똘똘 뭉친)
글쓰기 가르쳐 보세요. 제자 1호에 신청합니다. 하하
오메. 선생님.
좋게 봐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아, 그러면 허세로 갈랍니다. 하하.
구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황옹졸, 황허세 중 안 쓰는 건 저에게 양보해 주십시오/
사무관님! 황옹졸이 남았군요.
어쩌나요?
하하, 역시 재밌는 글이네요. 늘 거침없는 선생님 글 읽고 싶었답니다. 이번 학기에도 잘 부탁해요. 그리고 열심히 배울게요.
하하. 고맙습니다!
역쉬, 여전하시네요! 제 스타벅스 닉네임 때문에 남편한테 한소리 들었어요. '째까니 고객님' 하고 부르는데 너무 창피했다고. 하하. '황옹졸 고객님' 좋은데요. 하하.
너무 부럽다. '째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