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범주를 넓히니 ‘삶’이 견딜 만하다.>
화순 고등학교- 김도영
이훈 교수님의 “글쓰기 수업의 실제”라는 수업명을 보았을 때부터 ‘내가 어떤 주제이든 글을 한 편 써야 지나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감을 ‘공부’로 주셨을 때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공부를 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임용고시 이후로 매우 멀어졌으며 이후 한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조력자로 살아와서 ‘공부’라는 단어의 주인공으로 내가 자리하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무엇에 대하여 글을 쓰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여전히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공부한다.’라는 표현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배운다.’라는 표현으로 바꾸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였다. 두 단어 모두 ‘학문이나 기술을 익힌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나는 여전히 ‘공부하고 있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처음에 ‘공부’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수치화된 결과만을 위한 배움에 한정하여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학 입시를 위한 성적표, 임용 모집 인원에 들기 위한 시험 점수들, 공부란 나에게 타인과의 경쟁이 전제된 도구였다. 공부라는 범위를 너무 좁게 생각했던 탓이다. 나의 존재를 기쁘게 하는 배움은 공부에 포함시키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경쟁을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요즘은 내 존재를 즐겁게 하는 ‘공부’를 끊임없이 시도해 보는 중이다. 국어 영역을 벗어난 공부는 한참동안 해보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음악, 외국어, 운동 등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를 통해 나에 대한 탐구의 즐거움을 누리는 중이다. 그 동안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차 안에서 들었던 클래식 음악을 알고 들으면 더 재미있겠다 싶어 도서관에서 가장 쉬워 보이는 클래식 관련 책을 빌렸다. 비발디의 ‘사계’가 표현하고 있는 사계절의 모습을 알게 되었고 바흐의 삶이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되었는지도 공부했다. 공부하기 전에 들었던 음악이 더욱 새롭게 들리는 경험은 나에게 생각보다 큰 즐거움을 주었으며 더 많은 음악 속 이야기들을 알고 싶게 만들었다.
또 이전까지는 관심도 없고 잘하는 분야도 아닌 운동 종목도 도전해 보았다. 지난 겨울 스키를 처음으로 배웠다. 처음 스키장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스키장의 규모에 압도되어 잔뜩 주눅 들어 눈썰매나 가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3박 4일 동안 정선까지 왔으니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포기하자라는 마음으로 직선 주행하기, A자 형태의 스키로 턴과 정지 동작 능력 배우기, 스키의 바닥보다는 에지의 각과 사이드 컷을 사용하여 턴하기 등을 단계적으로 배웠다. 3일 동안 아침마다 강습 나가는 길에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까라는 생각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는데 강습 마지막 날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야간 스키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기 싫은 업무를 할 때, 클래식을 들으면서 하면 조금은 괴로운 마음을 잊고 일할 수 있었다. 정규수업에, 보충수업, 심화수업, 야자 등 별을 보며 지쳐 퇴근하는 일상 속에서도 겨울방학이 오면 어렵게 배운 스키를 또 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다시 기운을 낼 수 있다. 이렇게 즐거움 자체를 위한 공부, 배움은 이제 나에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에 질려 있던 나에게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는 이제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발적 공부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