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문화연구회>
2022년 2번째 답사
언제:3월 8일 화요일
장소:화석정 자운서원 파산서원 우계기념관과 성혼묘역 혜음원지
참석자:반경호 이세희 이가경 이유인(가나다순)
회비잔액:125,000원
《파주에서 만난 사람들》
파주에 가면 아주 틀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그와 오랜 친구였던 우계牛溪 성혼成渾입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의 오랜 친구였고 같은 스승에게서 학문을 했으며
조선 중후기 이후 정권의 중심이었던 기호학파 노론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2월의 답사를 코로나 이슈로 제 때 가지 못하고 번개형식으로 다녀왔습니다
<화석정>
먼저 율곡의 본가인 덕수이씨 집안의 별서정원이었다는 화석정에 다녀왔습니다
세종때 처음 지어졌던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불타서 현종때(1673년) 다시 지었는데 625 한국전쟁때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1966년에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하였다고합니다
현판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글씨입니다
임란때 피난가던 선조가 화석정을 불태워 어두운 임진나루를 건넜다는데
도보로 10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기는 하지만 직선상에 위치하지않고
강이 곡선으로 굽어지는 반대편이라 신빙성은 없어보입니다
율곡의 뛰어남을 강조하기위해 후손들이 부풀린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이 사진에서 화석정과 임진나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율곡이 8세때 지었다는 이 시도 동의하기가 어려워보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나 정치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지었을 그런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율곡의 천재성을 강조하다보니 생긴 무리수가 아닐까요?
저의 사견입니다
이 정자의 주소가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입니다
율곡에게 이 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같습니다
건물이야 최근에 복원되었지만 이 곳의 역사는 정자를 호위하듯 서있는 이 나무들이 말없이 보여줍니다
인증샷도 남겨보았습니다
<율곡선생유적지>
율곡선생유적지입니다
이 안에 기념관도 있고 묘소도 있고 자운서원도 있습니다
기념관에서 바라본 자운서원의 모습입니다
여견문을 지나 울곡의 가족이 묻힌 묘역으로 들어갑니다
전쟁의 상처가 선명합니다
율곡 부모님의 묘 위쪽에 율곡의 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부인 곡산노씨의 묘가 있습니다
부부를 합장하지않고 상하로 묘를 쓴 것도 전쟁때문입니다
임진왜란때 부인이 묘를 찾았다가 이 곳에서 왜인들에게 능욕당하지 않으려
여종과 함께 목숨을 끊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찾았을 때는 유골만 남아
어느 유골이 부인이고 어느 유골이 여종인줄 몰라 숨진 그자리에 그대로 매장해서 생긴 결과라고 합니다
전쟁의 참혹함이 휩쓸고 지나간 이 곳에서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없기를
그리고 지구촌에서 지금 진행중인 참혹한 전쟁이 빨리 종식되기를 빌어봅니다
<자운서원>
1615년( 광해군7)에 설립되어 1650년(효종 1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고종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 것을
1969년 지방유림의 기금과 국비보조로 복원하고 1975~1976년에 보수하였습니다
서원묘정비 신도비 그리고 노거수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현대에 지어진 것입니다
내삼문을 지나면 문성사가 있습니다
율곡 이이의 위패와 초상화가 있습니다
김장생과 박세채를 함께 배향하고 있습니다
파산서원은 우계 성혼의 아버지 성수침과 우계
그리고 우계와 율곡의 스승이자 성수침의 친구(?)인 백인걸
성수침의 동생 성수종이 배향되어 있습니다.
서원의 뒷산이 파산이고 서원 앞의 하천이 우계牛溪입니다.
선조1년인 1568년에 창건되었으나 거의 100년 뒤인 1650년(효종1년)에 사액되었습니다.
이는 우계가 동인들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임진외란 때 불타서 1611년인 광해군 3년에 복구하였습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은 피했으나 625전쟁은 피하지 못하고 불타서 1966년에 사당건물만 복원되었습니다.
사당 서쪽에는 찰륜당이라는 현판이 걸린 재실리 있습니다.
우계와 율곡은 기호학파의 중심이며 서인 특히 노론세력의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
친구이며 동지였던 두 사람 옆에 송익필이라는 또 한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는 걸국 천민이 되고 그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흉혼독철이라는 모진 소리를 들었던 성혼도 그 이름이 빛을 잃으며
나중에는 율곡이 오롯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 율곡"이라는 말까지 하게되나봅니다.
두 사람은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점에서는 비슷했으나 학문적으로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졌습다.
성혼은 퇴계와 율곡 사이에서 퇴계로 약간 기울어진 학문적인 성향을 보였지만
그로인해 두사람의 우정이 영향받지 않았다고하니 참 벗의 모습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가하게 됩니다.
당시에 능력에 따른 인재의 등용을 주장하며 서얼뿐만 아니라 천민도 능력에 따라 등용해야한다고 주장한 율곡
병조판서를 맡았으며 여진족을 물리치기도 했으며 임진왜란을 예측하기도 했다는데....
흉혼이라는 지독한 저주에 가까운 말을 들었던 성혼
그는 억울했을까요?
그로인해 다른 사람들이 억울했을까요?
유학자로서의 송익필은 어떠했을까요?
학문 이전에 인간 됨됨이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혜음원지>
댓 글
이세희(천안)
문득 퇴계, 남명, 율곡, 서애 선생을 군대 참모로 기용한다면 어느 부서를 맡겨야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라면 인사참모에 율곡, 정보참모에 서애, 작전참모에 남명, 군수 후방지원참모에 퇴계 선생을 기용하겠습니다.
그만큼 서로간에는 비교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 분들 입니다.
모레있을 산청의 남명 선생과 그 후손, 제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꼭 누구를 밟아야 자기 스승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장점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단점을 들춰내어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가는 현 세태가 뭇내 아쉽습니다.
모레 산청 삼매라 하는 원정매, 정당매, 남명매를 보고 올 것입니다.
저는 그 틈바귀에서 이름없이 홀로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야매가 더 정겹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錦輪 최윤희
@이세희(천안)
수요일 몇시 출발인지요?
이가경 서울64
@이세희(천안)
저 대단하신 분들을 참모로 기용하신다면?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겠네요
이세희(천안)
그저 내 감정에 취해 글을 올린 이가경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네요.
Ssorry!
錦輪 최윤희
율곡의 자취 따라
파주 나들이에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결코 거칠지는 않으나
유유히 우리 생활과 가슴에 흐르는 바른 심성 그 바닥에 든든히 지키고 있는 조상의 가르침을 일깨웁니다.
그 얼을 찾아가는
선비문화연구회의 활동이 더욱 빛납니다.
이가경 서울64
@최윤희
이번에는 특별히 때가 좋아 탐매도 하니 같이 가요~~~
지종석
오~~오늘날 제가 불교미술에 빠질도록 30년전 마음을 흔들어놨던 지리산 단속사지로 가시는군요!
정당매 뿐만 아니라 앞 솔밭 속 늘신한 당간지주도 보시길.
가경샘 해설 해주실 겁니다.
이가경 서울64
@지종석
헐
그런 사연이 있으셨네요
처음 만나는 님들이라 가슴 두근거립니다^^
이세희(천안)
제 눈에는 매화만 보여서 훈남 형제를 지나쳤네요.
가서 지 선생님 안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