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집 별집 제4권 / 현가궤범 부록(絃歌軌範附錄) / 시율신격〔詩律新格〕
옛날에는 시가(詩歌)가 모두 사언(四言 네 글자)이었으나, 후세에는 오로지 오언(五言)과 칠언(七言)만을 숭상하는데, 이 또한 시대에 따라 변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시의 체제가 변하고 나면 그 음향 또한 시대에 따라 그에 맞추어 절도를 맞추게 되는 일이 반드시 있게 된다. 이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읊조리는 보통의 격식에 바탕을 두고 약간 바로잡아서 금율일칙(琴律一則)을 새로 정하고, 한가로이 지내면서 요즘 체제의 시 가운데 노래할만한 것을 얻게 되면 곧 이에 의거하여 금을 연주하여 박자를 맞추고 노래하였다. 이것이 동떨어지고 엉성하여 곡조도 이루지 못하여서 후세의 사람들에게 보일 말한 것이 못된다는 것은 본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균을 세워 소리를 취한 절도는 선유(先儒)들이 전한 옛날의 율법을 착실하게 따르면서, 감히 어긴 바가 한번도 없었다.
칠언사운의 율격〔七言四韻律格〕
시의 체제의 변화는 오언이 먼저 나오고, 칠언이 뒤에 나왔으며, 고시(古詩)가 먼저 나오고, 율시(律詩)가 뒤에 나왔다. 그렇지만 그 장구(章句)의 체재(體裁)는 칠언사운(七言四韻)에 이르러 완전히 갖추어졌다. 따라서 이제 이에 의거하여 격식을 세우고, 그 나머지는 이를 미루어 적용한다.
황종각조(黃鍾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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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각조(黃鍾角調) - 본궁의 율의 순서〔本宮律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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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칠언율시(七言律詩)를 잘 부르는 사람은 한 연(聯)을 부를 때마다 내구(內句)의 첫 번째 글자를 높고 낮은 음 사이의 가운데 소리를 써서 시작하고, 끌어 두 번째 글자에 이르면 가장 낮아지며, 세 번째 글자에 이르면 다시 가운데 소리를 쓰고, 끌어 네 번째 글자에 이르면 가장 높아진다. 다섯 번째 글자와 여섯 번째 글자는 다음으로 높고 다음으로 낮은 소리로 돌리다가〔流轉〕 마지막 글자에 이르러서 가운데 소리를 써서 멈춘다. 외구(外句)의 첫 번째 글자는 또한 가운데 소리를 써서 시작하고, 끌어 두 번째 글자에 이르면 가장 높아진다. 세 번째 글자는 다시 가운데 소리를 쓰고, 끌어 네 번째 글자에 이르면 가장 낮아진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글자는 다음으로 낮고 다음으로 높은 소리로 거두어 줄이며〔收殺〕, 마지막 글자에 이르러서는 가운데 소리를 써서 끌어 길게 하고,〔引長〕 오래도록 남은 소리가 있게 한다. 이것이 보통의 격식이다. 지금 이를 본떠 황종궁을 써서 4연1장의 율격을 정하였는데, 첫 번째 연은 고선을 취하여 가운데 소리로 삼아, 황종과 태주는 가장 낮은 소리와 다음으로 낮은 소리가 되고, 임종과 유빈은 가장 높은 소리와 다음으로 높은 소리가 된다. 두 번째 연은 한 등급을 바꾸어서 유빈을 취하여 가운데 소리로 삼아, 태주와 고선은 가장 낮은 소리와 다음으로 낮은 소리가 되고, 남려와 임종은 가장 높은 소리와 다음으로 높은 소리가 된다. 세 번째 연은 임종을 취하여 가운데 소리로 삼아, 고선과 유빈은 가장 낮은 소리와 다음으로 낮은 소리가 되고, 응종과 남려는 가장 높은 소리와 다음으로 높은 소리가 된다. 이 모두는 앞에서 말한 노래하는 법도에 따라 배치한 것이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곡을 끝마치게 되므로, 다시 첫 번째 연과 같이 고선을 써서 가운데 소리로 삼는다. 다만 노래하는 법도가 변화가 있어서 내구와 외구가 조금 바뀐다. 이는 처음으로 돌아가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형세상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보통의 격식을 바로잡아 스스로 한 조(調)를 이룬 것이다. 그 법상(法象)은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였다. -
대려각조(大呂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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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각조(太簇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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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종각조(夾鍾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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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각조(姑洗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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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려각조(中呂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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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각조(蕤賓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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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각조(林鍾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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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칙각조(夷則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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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려각조(南呂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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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각조(無射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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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종각조(應鍾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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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대려 이하의 11조는 황종일조(黃鍾一調)의 56성이 선궁하여 자리를 바꾼 것으로, 다른 법도가 아니다. 십이율에는 저마다 성정(性情)이 있고, 저마다 기상(氣象)이 있는데, 짝지운 열 두 달의 계절과 사물의 모습을 관찰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이 시를 노래하며 율을 맞추는 방법은 그 일의 실정에 따라 선궁하고 조를 바꾸었으며, 또 금을 연주하는 사람은 또 달에 따라 계절에 조화하는 법도가 있었다. 이제 그 숫자를 다 채워 그 시종이 이처럼 늘어놓고 응용하기를 기다린다. -
덧붙여 말한다. 새로 정한 시율에서 옛날의 율법을 착실히 지켜 감히 어기지 않은 것은 다섯 가지 일이고, 자기 뜻을 가만히 붙여 법상에 담은 것이 일곱 가지 일이다.
선생이 균을 세워 음악을 제정할 때에는 반드시 5정음(正音)과 2변음(變音)을 써서, 하늘에서는 칠정(七政)에 맞추었고, 사람에서는 칠정(七情)에 맞추었다. 이것은 바뀔 수 없는 숫자인데도 후대의 세속의 음악은 절도없이 이를 늘렸지만, 지금 칠성(七聲)을 착실히 지켜 감히 어기지 않았다.
선궁하여 율을 펼치는 것은 임금과 신하와 백성과 일과 사물에 따라 저마다 등급과 지위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마땅히 가늘면서도 커야하는 것〔細而大〕은 반드시 그 소리를 반으로 줄여 그 순서에 따랐다. 이는 신하가 임금을 억누르지 않고,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의리인데, 지금 착실하게 지켰다. - 선궁하는 법도는 본래 6변율(變律)이 있어서 응종 이하의 7궁의 사용에 응하였다. 금율만은 변율이 없고 정율만 있는데, 마땅히 가늘면서도 커야하는 곳을 만나면 그 소리를 반으로 줄일 뿐이다. 이는 옛날부터 이미 그러한 것으로, 윤리에 큰 장애가 없다. -
모든 궁에는 다 반성(半聲)이 있는데, 황종일궁만은 반성이 없다. 모든 율은 다 다른 율에 부림을 받는데, 오직 황종정성만은 다른 율에 부림을 받지 않는다. 이는 왕이 대일통(大一統)하여 사물에 명을 내릴 뿐 사물에게서 명을 받지 않는다는 의리인데, 지금 착실하게 지켰다.
소리를 취하여 조를 만들면, 5정음이 모두 조를 시작하여 한 장(章)의 벼리가 될 수 있지만 오직 2변음은 거기에 참여할 수 없다. 이는 윤(閏)이 정(正)에 간여할 수 없고, 서자가 적자를 탈 수 없다는 의리인데, 지금 착실하게 지켰다.
한 장에서 칠음을 번갈아 사용하여 한 곡(曲)이 굽이굽이 여러 번 바뀌지만 곡을 마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조를 시작했던 소리를 반드시 다시 사용한다. 이는 자손이 선조를 잃지 않고,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고 돌아간다는 의리인데, 지금 착실하게 지켰다.
이상 모두 다섯 가지 일이다.
새로운 조에서는 반드시 가운데 소리를 중시하여, 칠언 한 구에서 위의 네 소리는 가운데에서 일어나서 위 아래로 분포되고, 아래의 세 소리는 위아래에서부터 가운데로 돌아가 끝난다. 구마다 한 구의 가운데 소리를 세워서, 온갖 일들이 저마다 갖추고 있는 중(中)을 형상하였다. 장의 첫머리에는 한 장의 가운데 소리를 세워 전체의 큰 근본〔統體大本〕인 중을 형상하였다.
저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바른 이치이고, 예악에서 나아가고 돌아오는〔進反〕 때에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이를 중시하는 까닭이다. 온갖 소리들이 다 중으로 설 수 있지만, 특히 각성(角聲)을 한 장의 통체의 중으로 삼은 것은, 각이 본래 오성의 가운데 위치에 있고 - 천지의 성기(聲氣)의 근원〔元〕으로 보자면 황종이 가운데 소리여서 육율과 오성이 하나의 황종의 시종이다. 한 균의 오성의 위치로 보자면 각성이 가운데 위치에 있어서 모든 율의 높고 낮은 소리가 모두 여기에서부터 절충된다. - 오행에서는 목(木)에 속하여, 그 덕이 인(仁)한데, 인이라는 것은 모든 선의 으뜸이어서 또한 드러내어 밝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운데 소리로 시작하여 첫머리에서 궁의 위치에 조회하는 것은 - 매 장은 비록 가운데 소리로 조를 시작하지만 두 번째 소리는 반드시 궁성을 이용한다. 그러므로 “첫머리에서 궁의 위치에 조회한다”고 한다. - 신하가 임금을 뒤로 하지 않는 모습으로, 옛날 율법에서 상이 궁을 억누르지 않는 뜻과 같은 이치로 귀결된다.
매 구(句)의 끝에 반드시 첫 소리로 돌아가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버리지 않는 모습으로, 옛날의 율법에서 필곡(畢曲 곡을 끝마침)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뜻과 서로 시종이 된다.
매 련의 내구와 외구의 2, 4, 5, 6 성이 반드시 반대로 합체하는 것은 부부가 합궁하는 모습이다. 1, 3, 7 성이 반드시 같은 덕(德)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벗이 도와 이롭게 하는 모습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연의 가운데 소리와 모든 율이 모두 비늘같은 순서로 등급을 바꾸는 것은 형제가 나이에 따라 순서가 있는 모습이다. 형제의 순서를 정하면서 나이 많은 사람, 중간 사람, 적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갖추어졌으니, 율의 위치를 펼치는 것 또한 이미 다하였다. 마지막 한 연에서 다시 나이에 따라 순서를 정하지 않는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 부조(祔祖)하는 것이 스스로 하나의 덕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이 모두 일곱 가지 일이다.
사람의 도리는 중과 인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그 윤리는 오전(五典 오륜)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지금 그 법상이 한 장 속에 대략 갖추어졌다. 그렇지만 그렇게 펼쳐 배치한 까닭을 찾아보면 실로 사람의 목소리의 혼성(混聲)의 체(體)에 뿌리를 두고, 천연적으로 본래 있는 질서에 따라 수식한 것일 뿐이다. 나는 그 사이에 뜻을 두고 작위한 적이 없다.
칠언절구의 율격〔七言絶句律格〕
상련(上聯)의 내구(內句)는 칠언사운(七言四韻)의 율격(律格)의 첫 번째 연(聯)에 있는 소리를 쓰고, 외구(外句)는 두 번째 연에 있는 소리를 쓴다. 하련(下聯)의 내구는 세 번째 연에 있는 소리를 쓰고, 외구는 마지막 연에 있는 소리를 쓴다. 율을 배치하는 법은, 상련은 사운율의 첫 번째 연의 법도를 쓰고, 하련은 마지막 연의 법도를 쓴다.
칠언장편의 율격〔七言長篇律格〕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은 사운율과 같다.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 사이에 있는 나머지 연은 사운율의 두 번째 연의 법도를 써서 한번 나아가고 한번 물러나며 순환하여 바꾼다. ○만일 세 번째 연이 짧다면 첫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은 앞의 법도대로 하고, 가운데에 있는 한 연은 사운율의 두 번째 연의 내구와 세 번째 연의 외구의 법도를 써서 내구와 외구를 삼는다.
오언사운의 율격〔五言四韻律格〕
칠언사운에서 구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소리를 빼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위 아래를 바꾼다. 매 연마다 내구의 첫 번째 두 소리가 이미 높은 소리에서 낮은 소리로 갔으면, 그 다음 두 소리는 낮은 소리에서 높은 소리로 가야한다. 외구의 첫 번째 두 소리가 이미 낮은 소리에서 높은 소리로 갔으면, 그 다음 두 소리는 높은 소리에서 낮은 소리로 가야한다. 따라서 반드시 위 아래를 변화시켜주어야 절선승강(折旋升降)하는 법도에 맞게 된다.
오언절구의 율격〔五言絶句律格〕
오언사운을 토대로 율법을 변통하는데, 칠언절구가 칠언사운을 토대로 했던 것과 똑같이 한다.
오언장편의 율격〔五言長篇律格〕
오언사운을 토대로 율법을 변통하는데, 칠언장편이 칠언사운을 토대로 했던 것과 똑같이 한다.
장단구사의 율격〔長短句詞律格〕
전편의 대체적인 배치는 하나같이 오언장편과 칠언장편에 의거하여, 칠언을 만나면 칠언의 법도를 쓰고, 오언을 만나면 오언의 법도를 쓴다. 삼언(三言)을 만나면 칠언의 앞에 나오는 4성 가운데 세 번째 소리를 빼고 쓴다. - 이처럼 위 구절을 이어서 끝맺는 말은 곧바로 칠언의 뒤에 나오는 3성을 쓴다. - 사언을 만나면 앞에 나오는 4성을 다 쓴다. - 만일 한 장의 마지막 연이라면 아래에 있는 사언의 율격의 마지막 연의 법도에 의거하여 소리를 바꾸어 쓴다. - 육언(六言)을 만나면 여섯 번째 소리를 빼고, 팔언(八言)을 만나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소리 사이에 중성(中聲 중간 소리)을 하나 더 넣는다.
대략은 이와 같지만 문리(文理)와 곡절(曲折)에 따라 상황에 맞게 미루어보아 바꾸며, 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가령 육언의 구절에서 만일 사언과 이언(二言)이 겹친다면 진실로 위에서 말한 법도대로 해야 하지만, 만일 삼언 둘이 겹친다면 칠언에서 세 번째 소리를 빼야 한다. - 곧 상삼언법(上三言法)과 하삼언법(下三言法)을 겹쳐 써야한다. - 팔언의 구절에서 만일 사언 둘이 겹친다면 진실로 위에서 말한 법도대로 해야 하지만, 만일 오언과 삼언이 겹친다면 칠언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소리 사이에 중성을 하나 더 넣어야 한다. - 중성은 오언의 종성(終聲)이다. - 또 삼언의 구절에서도 또한 마땅히 먼저 중성을 붙여야할 곳이 있고, - 가령 ‘산아아수야양(山峩峨水洋洋 산은 높고 물을 넓다)’이라고 할 때에는 ‘산’과 ‘수’ 자에 마땅히 중성을 붙여야한다. - 마땅히 뒤에 중성을 붙여야할 곳이 있는데, - 가령 ‘노자작앵무배(鸕鷀酌鸚鵡盃)’라고 할 때에는 ‘작’과 ‘배’ 자에 마땅히 중성을 붙여야한다. - 모두 이러한 경우다. 한 구절만 있고 대구가 없는 것은 또한 글의 뜻이 어떠한가를 잘 살펴서, 만일 위 구절을 맺는 글이라면 외구의 체제를 쓰고, 아래 구절을 일으키는 글이라면 내구의 체제를 쓴다.
부록 사언의 율격〔 附 四言律格〕
사언사운(四言四韻) 또한 칠언사운에서 구마다 아래의 세 소리를 빼며 마지막 연의 외구에 이르러서는 첫 번째 소리와 두 번째 소리를 바꾸고, 세 번째 소리와 네 번째 소리를 바꾼다. 단장장편(短章長篇)은 또한 오언장단편과 칠언장단편의 예에 따른다. ○사언의 율법은 이미 장악원에서 정한 율이 있으니, 덧붙일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체제가 융숭하여 각각의 체에 변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처럼 따로 세워서 오언과 칠언의 뒤에 붙인다.
부의 율격〔賦律格〕
부의 율 또한 시의 율에 의거하여 정하는데, 매 구마다 칠언의 여섯 번째 소리를 빼고, 네 번째 소리와 세 번째 소리를 바꾼다. 앞에 나오는 세 글자는 저절로 삼언의 체제를 이루기 때문에 삼언의 법도를 쓰고, 네 번째는 허자(虛字)이기 때문에 중성을 쓰는데, 만일 이 중성을 빼면 바로 오언의 율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것이 보통의 형식이다. 만일 앞에 나오는 삼언이 혹 사언으로 바뀌었을 경우에는 칠언에서 앞에 나오는 4성을 쓰고, 뒤에 나오는 이언이 혹 삼언으로 바뀌었을 경우에는 칠언에서 뒤에 나오는 3성을 쓴다. 그 밖에 들쭉날쭉하여 일정하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또한 미리 격식을 만들어놓기가 어려우니, 상황에 따라 잘 헤아려서 써야 한다.
각체시사의 배율 각각의 체마다 1장의 배율을 들어서 보기를 보인다. 〔各體詩詞配律 每體各擧一章配律以示例〕
명도선생술회시(明道先生述懷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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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하매 조용하지 아니한 일이 없고 / 閑來無事不從容
잠 깨니 동쪽 창에는 해 이미 붉게 떴네 / 睡覺東囪日已紅
만물을 조용히 살펴보니 모두 나름대로 살고 있고 / 萬物靜觀皆自得
네 계절의 좋은 흥취를 사람과 함께 누린다 / 四時佳興與人同
도는 하늘과 땅의 형체 밖으로 통하고 / 道通天地有形外
생각은 바람 불고 구름 이는 변화 속으로 들어가네 / 思入凮雲變態中
부귀해도 지나치지 않고 빈천해도 즐거우니 / 富貴不淫貧賤樂
사내가 이 경지에 이르면 큰 인물이리라 / 男兒到此始豪雄
위는 명도선생(明道先生)의 〈술회시(述懷詩)〉이다. - 칠언사운율이다. -
강절선생모춘음(康節先生暮春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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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늘 살며 느지막히 일어나노니 / 林下居常睡起遲
하물며 요즘에는 찾아오는 손님도 없음에랴 / 那堪車馬近來稀
봄 깊어 낮이 길어지니 주렴은 땅까지 드리워지고 / 春深晝永簾垂地
마당엔 바람 없어도 꽃잎 스스로 날리네 / 庭院無凮花自飛
위는 강절선생(康節先生)의 〈모춘음(暮春吟)〉이다. - 칠언절구이다. -
회암선생수모시(晦菴先生壽母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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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 서늘하고 날씨는 쌀쌀한데 / 秋凮蕭爽天氣凉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이 대청에 올랐는가 / 此日何日升斯堂
대청에 앉은 노인은 오래 살고 건강하여 / 堂中老人壽而康
붉은 뺨 짙푸른 귀밑머리에 두 눈동자 반듯하네 / 紅顔綠鬂雙瞳方
집이 가난하고 아이가 어리석어 그저 깊이 숨어지내며 / 家貧兒癡但深藏
다섯 해 동안 문을 나가지 않으니 마당이 황량하네 / 五年不出門庭荒
부뚜막에는 열흘에 나흘은 불 때지 못하니 / 竈陘十日九不煬
달고 부드러운 음식 어찌 마련하여 그릇에 채우겠는가 / 豈辨甘脆陳壺觴
고개 숙인채 부끄러워하며 물 흐르듯 땀 흘리는데 / 低頭包羞汗如漿
노인은 이런 마음 잊은 지 오래라 / 老人此心久已忘
웃으며 말하길, 너 어찌 마음 아파하느냐 / 一笑謂汝庸何傷
사람 세상의 영화가 어찌 영원할 수 있겠느냐 / 人間榮耀豈可常
그저 도의가 있을 뿐임을 끝없이 생각하며 / 惟有道義思無疆
너의 절조를 힘써 닦아 더욱 굳건하게 하라 하시니 / 勉勵汝節彌堅剛
희(熹)는 그 앞에서 두번 절하며 어머니께 고마워하네 / 熹前再拜謝阿娘
예로부터 선을 행하면 하늘이 상서로움을 내리나니 / 自古作善天降祥
그저 바라옵건대 해마다 오늘처럼 지내시며 / 但願年年似今日
노래자(老萊子)의 모자처럼 함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 老萊母子俱徜徉
위는 회암선생(晦菴先生)의 〈수모시(壽母詩)〉이다. - 칠언장편이다. -
강절선생동지음(康節先生冬至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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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자정 / 冬至子之半
하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아 / 天心無改移
하나의 양이 처음 움직이는 자리 / 一陽初動處
만물이 아직 생겨나기 전의 시간 / 萬物未生時
현주(玄酒)의 맛은 바야흐로 담박하고 / 玄酒味方淡
큰 소리는 정말 잘 들리지 않네 / 大音聲正希
이 말을 못믿겠으면 / 此言如不信
복희씨에게 다시 물어보라 / 更請問庖犧
위는 강절선생의 〈동지음(冬至吟)〉이다. - 오언사운율이다. -
회암선생운곡시(晦菴先生雲谷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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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구름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 寒雲無四時
이 산골짜기 여기저기 넘쳐흐르네 / 散漫此山谷
다행히 장맛비 내리는 모습 적으니 / 幸乏霖雨姿
유독(幽獨)에게 아양 떨기에 무슨 문제 있겠는가 / 何妨媚幽獨
위는 회암선생의 〈운곡시(雲谷詩)〉이다. - 오언절구이다. -
회암선생원유편(晦菴先生遠游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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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술 마시기를 멈추고 / 擧坐且停酒
내가 부르는 원유가(遠遊歌)를 들으라 / 聽我歌遠遊
멀리 간다면 어디까지 가는가 / 遠游何所至
구주(九州)를 지척으로 여기네 / 咫尺視九州
구주는 얼마나 아득한가 / 九州何茫茫
빙 둘러싼 바다를 경계로 삼네 / 環海以爲畺
위로는 외로운 봉새가 날고 / 上有孤鳳翔
아래로는 천리마가 뛰어 오르네 / 下有神駒驤
누가 멀리 가기를 꺼리지 않고 / 孰能不憚遠
날 위해 그 곳에 다녀올 수 있겠는가 / 爲我遊其方
그대에게 잔을 올리고 / 爲子奉尊酒
칼집을 두드리며 강개하게 노래하네 / 擊鋏歌慨慷
그대를 배웅하러 큰 길에 나서니 / 送子臨大路
차가운 해는 빛을 잃었네 / 寒日爲無光
비감한 바람이 먼 골짜기에서 불어오는데 / 悲風來遠壑
손을 잡고 괜히 어슬렁거리네 / 執手空徊徨
그대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노니 / 問子何所之
가거든 관문과 다리를 조심할지어다 / 行矣戒關梁
세상에는 온갖 험하고 어려운 일들 많아 / 世路百險艱
문을 나서면 근심하기 시작하네 / 出門始憂傷
동쪽으로 가면서는 해가 뜨는 곳을 걱정하고 / 東征憂暘谷
서쪽으로 가면서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을 두려워하네 / 西遊畏半膓
남쪽으로 수레 몰면 풍토병에 걸리고 / 南轅犯癘毒
북쪽으로 수레 몰면 바람이 옷속에 스미네 / 北駕風製裳
그대 단단한 수레 마련하여 / 願子治堅車
험한 곳 지나며 그 강한 기세를 꺾으라 / 躐險摧其剛
높은 산도 그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면 / 峨峨旣不支
저 자잘한 것들이 누가 맞설 수 있겠는가 / 瑣瑣誰能當
아침에는 남쪽 끝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가 / 朝登南極道
저녁에는 태행산에 오르라 / 莫宿臨太行
곁눈질해서 보면 바로 만리나 되지만 / 睥睨卽萬里
문득 벗어나면 세상 끝을 넘어서네 / 超怱凌八荒
하지 말지니, 비틀거리는 사람 되어 / 無爲蹩躠者
하루 내내 빈 집만 지키는 일 따위는 / 終日守空堂
위는 회암선생의 〈원유편(遠游篇)〉이다. - 오언장편이다. -
회암선생초은조이장(晦菴先生招隱操二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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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깊은 곳 / 南山之幽
계수나무 빽빽하여 / 桂樹之稠
나뭇가지 뒤얽혀 있네 / 枝相樛
천 길 절벽 위의 가을 하늘을 높이 휘젓고 / 高拂千崖之素秋
아래로는 깊은 골짜기에 맑은 물을 굽어보네 / 下臨深谷之寒流
왕손(王孫)은 어디서 배회하며 오래 머물러 있나 / 王孫何處盤桓久淹留
산 속의 호랑이와 표범은 낮에 울부짖는다는 말도 듣고 / 聞說山中虎豹晝噑
산 속의 곰과 큰 곰 밤은 밤에 울부짖는다는 말도 들었네 / 聞說山中熊羆夜咆
빽빽한 깊은 숲에 사슴이 우우 울고 / 叢薄深林鹿呦呦
원숭이는 그대와 함께 살고 있으며 / 獼猴與君居
산의 귀신이 그대와 함께 노니는데 / 山鬼伴君遊
그대는 어찌 홀로 즐거워하는가 / 君獨胡爲自聊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 歲云暮矣將焉求
그대 그리워도 보지 못하니 내 마음 근심만 가득하네 / 思君不見我心徒離憂
위는 회암선생의 〈초은조(招隱操)〉 2장(章)으로, 1장은 6구, 1장은 8구이다. - 장단구사(長短句詞)이다. -
반초은조이장(反招隱操二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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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는 / 南山之中
계수나무에 가을바람 불고 / 桂樹秋風
구름 짙은데 / 雲冥濛
그 아래 쓸쓸히 지내는 늙은이 있어 / 下有寒捿老翁
나무열매 따먹고 골짜기 냇물 마시며 세월 가는 줄 모르네 / 木食澗飮迷春冬
여기 이 즐거움 실컷 누리매 아득히 어찌 끝이 있겠는가 / 此間此樂優游渺何窮
내가 양지바른 숲을 사랑하니 낮에는 봄꽃 붉고 / 我愛陽林春葩晝紅
내가 그늘진 절벽을 좋아하니 밤에는 차가운 샘물 졸졸거리네 / 我愛陰崖寒泉夜淙
대나무 잣나무에는 안개 끼고 푸른 산은 고요하네 / 竹栢含烟悄靑蔥
느릿느릿 걸으며 청상(淸商)의 소리 내고 / 徐行發淸商
편안히 앉아 마른 오동나무〔枯梧〕 어루만지네 / 安坐撫枯梧
단표(簞瓢)와 누공(累空) 따지지 않고 / 不問簞瓢累空
그저 밝은 달을 품고 기꺼이 오래도록 누리다 죽으리 / 但抱明月甘長終
사람 세상이 비록 즐겁다 해도 이 마음 누가 함께 하리오 / 人間雖樂此心與誰同
위는 〈반초은조(反招隱操)〉 2장으로, 1장은 6구, 1장은 8구이다. - 장단구사이다. -
회암선생복괘찬(晦庵先生復卦贊)
삽화 새창열기
많고 많은 온갖 것들 / 萬物職職
그 생겨남은 끝이 없네 / 其生不竆
누가 이를 주관하는가 / 孰其尸之
조화가 만든 것이라네 / 造化爲工
음은 닫고 양은 열며 / 陰闔陽關
한번 고요하고 한번 움직여 / 一靜一動
조화가 끝이 없네 / 於穆無疆
전체의 묘한 작용이 / 全體竗用
어찌 이것 뿐이겠는가 / 奚獨於斯
양을 숨기고 음을 성하게 하니 / 潛陽壯陰
밝구나 / 而曰昭哉
이것이 하늘과 땅의 마음으로 / 此天地心
남김없이 다 덮었네 / 盖翕無餘
이것이 처음 열리니 / 斯闢之始
살리는 뜻이 무성하여 / 生意蓊然
이 온전한 아름다움 갖추었네 / 具此全美
그것이 사람에게 있으면 / 其在于人
본성의 인이라 하는데 / 曰性之仁
마음에 거두어 담고 / 斂藏方寸
포괄하여 끝이 없네 / 包括無垠
그것이 싹트니 / 有茁其萌
측은지심이 있어 / 有惻其隱
이를 가득 채우니 / 于以充之
온 세상이 이를 따르네 / 四海其準
말하노니 바로 지금 / 曰惟玆今
아득히 먼 곳에서 / 眇綿之間
이로써 재계하여 / 是用齋戒
몸을 가리고 문을 닫고서 / 掩身閉關
복희의 그림〔羲圖〕을 우러러보고 / 仰止羲圖
경(經)을 살피고 전(傳)을 참고하여 / 稽經協傳
감히 찬송하는 글을 하나 지어 / 敢贊一辭
하늘의 운행에는 게으름 없음을 밝히노라 / 以詔無倦
위는 회암선생의 〈복괘찬(復卦贊)〉이다. - 사언장편이다. -
회암선생감춘부(晦菴先生感春賦)
삽화 새창열기
으슥하고 험난한 세상의 길을 만나 / 觸世塗之幽險兮
고삐를 움켜쥐고 안정시키네 / 攬余轡其安之
바퀴가 쳐박히고 말이 뒤얽힘을 개탄하여 / 慨埋輪而縶馬兮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약하네 / 指故山以爲期
큰 거울의 밝음을 우러러 보고 / 仰皇鑑之昭明兮
내 마음 돌아보니 아직 없어지지 않았네 / 眷余衷其猶未替
이미 펼친 것에서 더욱 겸손하게 하며 / 抑重巽於旣申兮
들에서 밭갈이하겠다는 처음 뜻을 따르네 / 徇耕野之初志
내가 돌아오고 나서 / 自余之旣還歸兮
꽃부리를 모두 감추었는데 봄이 되니 피어나네 / 畢藏英而發春
숲 속 오두막에 숨어 조용히 지내니 / 潛林廬以靜處兮
초라한 대문 고요하여 찾는 사람 없네 / 閴蓬戶其無人
먼지 낀 책을 펼쳐 반복하여 읽으며 / 披塵編以三復兮
옛 성현들의 밝은 가르침을 깨닫네 / 悟往哲之明訓
아, 책을 덮으며 말을 잊으니 / 㗳掩卷而忘言兮
멀리 미치는 생각 마음 속에 담아두네 / 納遐情於方寸
아침엔 신발 신고 걸으며 노래하고 / 朝吾屣履而歌商兮
저녁엔 맑은 금소리로 잇네 / 夕又賡之以淸琴
천년의 멀고먼 세월이 어떠한가 / 夫何千載之遙遙兮
바로 내 마음 속에 깨달을 뿐이네 / 乃獨有會於余心
문득 새소리 들리니 기뻐하며 / 忽嚶鳴其悅豫兮
마당에 있는 나무의 푸른 잎을 올려다보네 / 仰庭柯之蔥蒨
아리따운 달이 이미 저버린 것을 슬퍼하며 / 悼芳月之旣徂兮
고운 님 생각하지만 볼 수 없네 / 思美人而不見
저 고운 님의 아름다움이여 / 彼美人之修嫮兮
벗어나 홀로 밝은 빛 속에 있네 / 超獨處乎明光
붉은 노을을 엮어 끈을 삼고 / 結丹霞而爲綬兮
밝은 달을 차서 귀걸이 삼네 / 佩明月而爲璫
좋은 시절 다시 올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 悵佳辰之不可再兮
훌륭한 말씀 품어 잊지 못하네 / 懷德音之不可忘
나의 즐거움을 즐기니 / 樂吾之樂兮
진실로 다할 수 없으며 / 誠不可以終極
그대의 근심을 근심하니 / 憂子之憂兮
내 마음의 영원한 아픔을 누가 알겠는가 / 孰知吾心之永傷
- 모든 ‘혜(兮)’ 자는 우리나라 말의 구결(口訣)의 예에 따라 소리를 바꾸었다.〔轉聲〕 구결의 예는 아래에 보인다. -
위는 회암선생의 〈감춘부(感春賦)〉이다. - 장단구부(長短句賦)이다. -
회암선생자양금명(晦菴先生紫陽琴銘)
삽화 새창열기
그대의 중화의 바른 성품을 길러 / 養君中和之正性
분노하고 욕망하는 그대의 삿된 마음을 금하라 / 禁爾忿欲之邪心
하늘과 땅은 말이 없지만 사물에는 법칙이 있으니 / 乾坤無言物有則
나 홀로 그대와 함께 그 깊은 뜻을 찾아보리라 / 我獨與子鉤其深
위는 회암선생의 〈자양금명(紫陽琴銘)〉이다. - 칠언장구명(七言長句銘)이다. -
- 우리 동쪽나라 사람들은 한문을 읽을 때 구절이 끊어지는 곳에서는 으레 우리말로 구결을 붙인다. 지금 사언의 악장을 노래할 때에는 구결을 전혀 쓰지 않지만, 오언과 칠언의 근체시(近體詩)에는 구결을 쓸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고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만, 만일 노래하는 사람이 구결을 쓴다면 금을 연주하는 사람 또한 구절이 끊어지는 곳에서는 마지막 글자의 소리를 그대로 써서 한 두 소리를 거듭 연주하여 이에 호응한다. -
[주-D001] 금율일칙(琴律一則) : 금의 율을 정하는 하나의 규칙을 말한다.[주-D002] 절선승강(折旋升降) : 선율을 꺾어 음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말한다.[주-D003] 곡절(曲折) : 곡조에서 음이 높고 낮게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주-D004] 상삼언법(上三言法) : 칠언의 앞에 나오는 4성 가운데 세 번째 소리를 빼고 쓰는 법도를 말한다.[주-D005] 하삼언법(下三言法) : 칠언의 뒤에 나오는 3성을 쓰는 법도를 말한다.[주-D006] 노자작앵무배(鸕鷀酌鸚鵡盃) :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나오는 구절로서, 가마우지를 새긴 술잔과 앵무새를 새긴 술잔을 말한다.[주-D007] 술회시(述懷詩) : 이 시의 원 제목은 〈추일우성(秋日偶成)〉이다.[주-D008] 희(熹) : 주희(朱熹) 본인을 가리킨다.[주-D009] 노래자(老萊子) : 중국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일흔 살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의 놀이를 하여 어버이를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小學 稽古》[주-D010] 현주(玄酒) : 물을 말한다.[주-D011] 유독(幽獨) : 세상을 벗어나 깊은 산골짜기에 홀로 사는 은자를 말한다.[주-D012] 원유가(遠遊歌) :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을 읊은 노래를 말한다.[주-D013] 구주(九州) : 전체 중국 땅을 말한다.[주-D014] 태행산 : 중국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에 있는 산으로 길이 몹시 험준하다.[주-D015] 청상(淸商) : 음을 가리키기도 하고, 가을바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아래의 현악기와 연관지어 보면 음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주-D016] 마른 오동나무〔枯梧〕 : 오동나무로 만든 금(琴) 등의 현악기를 가리킨다.[주-D017] 단표(簞瓢) : 밥을 담는 대그릇과 물을 뜨는 표주박이라는 뜻으로 가난한 살림살이를 가리킨다. 《논어》 〈옹야〉의 “어질구나, 회야!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서 사는데, 다른 사람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건만, 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구나, 회야!〔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주-D018] 누공(累空) : 쌀 독이 자주 빈다는 뜻으로 가난한 살림살이를 가리킨다. 《논어》 〈선진〉의 “회는 도에 거의 가까우나 자주 쌀 독이 비었다〔回也 其庶乎 屢空〕”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주-D019] 복희의 그림〔羲圖〕 : 복희씨가 그렸다고 하는 팔괘(八卦)를 말한다.[주-D020] 바퀴가 …… 얽혀있음을 : 《초사》 〈구가(九歌) 국상(國殤)〉의 “수레의 두 바퀴는 쳐박히고 수레를 끄는 네 마리 말은 서로 뒤얽혔네”〔霾兩輪兮縶四馬〕”에서 나온 말로, 오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초나라 병사들이 죽고 무너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금나라의 공격을 받아 송나라의 형세가 기울어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 하영휘 박해당 노재준 권민균 (공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