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시 황궁으로 뭇향주들이 헤어진 이후 진근남은 위소보의 손을 잡고 객실로 들어 가서는 입을 열었다. "북경의 천교(天橋)에 고약을 파는 늙은이가 있는데 성이 서(徐)씨 이다. 다른 사람들은 고약을 파는 깃발에 그려놓은 색깔이 모두 검은 것이지만 이 서 늙은이의 깃발만은 반은 검고 반은 푸르니라. 네가만 약 어떤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에게 연락하고자 할때에는 천교로 가서 이 노인을 찾으면 된다. 그때에는 다움과 같이 그에게 물어야한다.'나 쁜독을 ㅆ어내고 장님이 된 눈을 다시 밝게 하는 청독복명(淸毒復明) 고약이 있소?' 그러면 그는 말할 것이다. '있긴 있으되 값이 너무 비 싸오이다. 세냥의 황금과 세냥의 백은(白銀)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너는 다음과 같이 물어봐야한다. '다섯냥의 황금과 다섯냥의 백은에는 팔지 않겠소?' 그러면 그는 네가 누구인지 알게 될것이다." 위소보는 매우 재미있다고 느끼고 웃으면서 말했다. "상대방에서 세 냥의 값을 달라고하는데 다섯냥의 값을 주겠다니 천 하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진근남은 미소했다. "그것은 공교롭게도정말 그에게 청독복명의 고약을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봐 방비하는 것이란다. 그는 네가 황금다섯냥과 백은 다섯냥을 내놓겠다고 하면 묻게 될 것이란다. '어째서 그토록 비싼 값을 주려고 하시오?' 그러면 너는 말해야한다. '비싸지 않소. 비싸지 않아. 정말 로 밝음을 되찾게 된다면 당신의 소와 말이 된다 하더라도 비싸지 않 소.' 그러면 그는 읊을 것이다. '지진고강(地振高岡) 일파계산천고수 (一派溪山千古秀)' 그러면 너는 다음과 같이 읊어야한다. '문조대해 (門朝大海) 삼하합수만년류(三河合水萬年流)'그러면 그는 다시 물을 것이다.'홍화정(紅花亭)가의 어느당에 속하시오?' 그러면 너는 '청목 당'이라고 대답해야한다. 그러면 그는 다시 물을 것이다. '당상에서 몇 대의 향을 피우시오?' 그러면 너는 대답해야한다. '다섯 대의 향' 다섯대의 향을 피운다는 것은바로 향주를 뜻하는 것이다. 그는 청목당 의 형제로써 너의 관할에 속하는 것이다. 네가아떤 일이 있을때는 그 에게 시키면 되는 것이다." 위소보는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 진근남은 다시 주고받는 말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여 위소보에게 한번 연습을 시켰는데 한자도 틀리지 않았다. 진근남은 다시 말했다. "이 서노인은 너의 관할에 속하기는 하더라도 무공이 매구 뛰어나니 너는 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위소보는 응낙을했다. 진근남은 말했다. "소보. 우리가 강친왕부를 발칼 뒤집어 놓은 바람에 오랑캐들은 사 방으로 사람을 보내 조사를 하고 있으니 우리들은 이곳에서 오래 모무 를 수 없다. 오늘 너는 궁안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을에게 사로잡혀가 게 되었는데 밤중에 계책으로 지키는 사람을 죽이고 궁안으로 도망쳐 왔다고 해라. 만약에 너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그 강도들을 잡으라고 한다면 너는 군사를 데리고 이곳으로 오도록해라. 우리는 오배의 시체 와 수급을 뒷 채원(菜園)에 묻어두겠다. 네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파 내가면 그 누구도 너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때 모두들 이곳에 계시지 않을 것이지요?" 진근남은 말했다. "네가 떠난 이후 모두들 헤어질 터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사흘 이후 나는 북경성으로 가서 너에게 무공을 전수하겠다. 너는 동성(東城) 참 수정(참水井)을 찾아 오도록 해라. 골목 입구에는 형제들이 모여서 기 다리고 있을 것이니 자연히 너를 데리고나를 찾게 해줄것이다."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 진근남은 가볍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 다. "그럼 이제 가봐라." 위소보는 즉시 안으로들어가 모십팔과 작별을 했다. 모십팔은 그가 이미 천지회에 가입하여 향주가 된줄 모르고 이것저것 물었으며 지극 히 관심을 보였다. 위소보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그 는 빼앗겼던 비수등 물건을 이미 되찾은 후였다. 진근남은 사람을 시 켜 그가 타고갈 말을 준비하도록 하고는 친히 문밖까지 전송을 해주었 다. 이역세와 관안기 현정도인등 청목당의 형제들은 그를 삼마장 밖까 지 전송했다. 위소보는 길을 물어 본 이후 말을 재촉해서는 북경성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궁에 들어가게 될때는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그는 즉시 강희 황제를 찾아뵈었다. 강희는 이미 오배가 강친왕부의 죄수실에서 위소보에게 상해당했다 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위소보가 오배의 한 패거 리들에게 잡혀갔으니 반드시 목숨을 잃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터지게 되자 청나라 조정에서는 즉시 사방에서 오배의 잔당 을 체포해 고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었으나 전혀 단서를 찾을 길이 없었다. 강희는 크게 울적해져 잇었다. 그런데 갑자 기 위소보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놀람과 기쁨이 엉켜 급히 불렀다. 그리고 그가 서재로 들어서자 재빨리 말했다. "소계자....너는....너는 어떻게 이렇게 도망쳐 나왔느냐?" 위소보는 길을 오면서 이미 해야할 거짓말을 생각해 놓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한떼의 사람에게 잡혀 갔으며 어떻게 대추상자에 감 춰져서는 옮겨지게 되었는가 하는 등의 사정을 거짓말 할 필요는 없었 다. 그리하여 그는 뭇간악한 무리들이 영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그때 한 수뇌인물을 기다리느라 잠시동안 그를 죽이지 않고 한칸의 어둠침침한 방에 묶어 놓게 되었는데 밤중에 손발을 묶은 밧줄 을 갈아서 끊고는 지키는 사람을 죽인 후 여차여차하여 도망쳐 나왔으 며 또 어떻게 풀더미 속에 몸을 숨겨서 ㅉ는사람을 피하게되었고 또 어떻게 하여 말을 훔치게 되어 길을 빙돌아오게 되었는가 그럴싸하게 정말 생동감있게 이야기 해주었다. 강희는 매우 흥미진진하게 듣더니 연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 의 말을 했다. "소계자. 정말 너는 대단해."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번에는 정말 고생이 많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 오배를 추종하는 그 무리들의 세력은 정말 대단했소이다. 소 신이 도망쳐 나올때 길을 기억해 두었는데 우리들이 즉시 군사를 데리 고 가 잡는것이 좋지 안겠어요?" 강희는 기뻐서 말했다. "그것 참 잘됐다. 그럼 너는 빨리 가서 색액도에게 삼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너를 따라 그잔당들을 잡으러가자고 해라." 위소보는 서재에서 물러나 사람을 시켜 색액도에게 통지를 했다. 색 액도는 소계자가 오배의 부하들에게 잡혀갔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궁 에서 크게 도움을 줄 사람을 잃게 되었다고 대단히 걱정을 하고있었 다. 소계자가 죽게 된다면 은자를 차지할 수 있지만 역시 따지고 볼때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소계자가 도망쳐 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크게 정신이 솟아나 재빨리 인마를 인솔하고 위 소보와 함께 잔당을 잡으러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중도에 이르게되 었을때 강친왕이 사람을 시켜 위소보의 옥화총을 보내왔다. 위소보는 그야말로 명마에 올라타고는 거드름을 피우며 달려갈 수 있었다. 천지회 형제들이 모이는곳에 이르렀을 때는 물론 사람의 그림자라고 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색액도는 명을 내려 수색을 하도록 했 다. 얼마후그들은 채원에서 오배의 수급과 시체를 파낼 수 있었다. 그 리고 한 조각의 '대청소보일등초무공오배대인지영위(大淸少保一等超武 公吳拜大人之靈位)'라는 영패를 찾아내게 되었고 오배의 죽음을 조상 하는 만련(輓聯)을 또 찾아내게 되었다. 이는 물론 진근남이 일부러 남긴 것이었다. 위소보와 색액도는 북경으로 돌아와 만련등의물건을 강희에게 바쳤 다. 위소보의 표정은 커다란 공을 세운듯 환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강희는 몇마디 그들을 격려해 주고는 오배를 장사지내도록 분부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계속해서 조심하여 사찰하도록 일렀다. 위소보는 일부러 연신 대답하며 얼굴에는 충성스럽고도 힘써 일을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웃고있었다. 사흘 후 위소보는 강휘황제에게 품의를 했다. 밖으로 나가 오배의 잔당들을 조사해야 겠다는 구실이었다. 그리고 궁을 나서서 곧장 첨수 정 골목으로 찾아갔다. 골목 입구에서 십여 장 쯤 되는 곳에 혼돈(혼돈)을 파는 사람이 있었 다. 혼돈을 파는 사람은 위소보를 보자 혼돈을 집어내는 기다란 대나무 젓가락을 들고서는 돈을 넣는 대나무 통을 탁탁탁! 하니 세 번 쳤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 다시 두 번을 치더니 재차 세 번을 쳤다. 그러자 몇 장 쯤 뒷쪽에서 무우를 팔고 있던 사람이 무우를 깍는 칼을 들고서는 왼쪽 지게에 대고는 똑같이 두드리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천 지회에서 전갈하는 방법인가 보다고 짐작하며 한 빙당호로(빙당호로)를 파는 장사아치를 따라 골목안으로 들어서서는 검은 칠의 대문을 한 한 채의 집 앞에 이르게 되었다. 그 대문 앞에는 세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 는데 종이 석회로 벽을 바르고 있었다. 그들은 위소보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돌칼을 들고 벽에다가 몇 번을 쳤다. 그러자 대문이 즉시 열렸다. 위소보는 마당 안으로 들어가 곧 대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진근남은 이미 대청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즉시 앞으로 나아가 큰 절을 올렸 다. 진근남은 무척 기뻐하며 말했다. "네가 일찍 와주어서 정말 잘 되었다. 나는 본래 이곳에서 며칠을 머물 면서 너에게 무공을 전수하려고 했으나 어제 복건성에서 큰일을 몇 가 지 처리해야 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달려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 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하루만 머무르게 되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기뻐했다. (사부님이 나에게 무공을 전수할 기회가 없으니 장래 내가 무공을 제대 로 연마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부님으리 탓이지 제 탓은 아니 예요.)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실망의 빛을 띠었다. 진근남은 품 속에서 한 권의 얇은 책자를 꺼내더니 말했다. "이것은 본문에서 내공을 연마하는 기본적인 법문(法門)이다. 너는 매 일같이 스스로 공부를 하도록 해라." 그리고 책자를 펼쳤다. 매 책장에는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리고 그 즉시 내공을 연마하는 법문과 구결을 전수했다. 위소보는 일시 에 모조리 터득할 수가 없어서 애써 기억하려 노력했다. 진근남은 약 두시진을 소비하면서 그 내공을 모두 전수한 후 말했다. "본문의 무공은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신실하게 가지도록 해야 한다. 너는 자주 쓸데없는 생각을하는 사람이라 본문의 무공과는 어울 리지 않는 사람인지라 연마하기 더욱더 어려울 것이니 반드시 특별히 힘써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만약에 연마하게 되었을 때 마음과 뜻이 번거롭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며 눈이 가물가물해질 때는 연마하지 말고 조용히 잡념을 거두어 들이도록 한 이후 다시 처음부터 연마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커다란 위험에 부딪히게 된다." 위소보는 응낙을 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책자를 받아서는 품 속에 갈무리했다. 진근남은 다시 자세히 해대부가 전수한 무공의 형태를 물었다. 그리하 여 위소보가 시늉까지 하면서 일일이 설명을 해주자 진근남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너도 그와 같은 무공이 이미 가짜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 다행이다. 정 말 적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조금도 쓸모가 없다. 그런데 내가 이상하 게 생각하는 것은 오랑케의 황태후가 오랑태의 소황제에게 전수한 무공 도 역시 가짜라는 데에 있다." 위소보는 말했다. "늙은 갈보는 소황제의 친 어머니가 아니예요. 거기다가......거기다가 늙은 갈보는 좋은 사람이 아니예요. 굉장히 나쁜 사람이예요." 그리고 그는 늙은 갈보가 소황제의 어머니를 죽인 모든 사정을 설명하 려면 관계된는 이야기가 많고 중대한 일이므로 사부에게 말을 할 수 없 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 일은 사부와 전연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닌 가. 진근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해대부의 위인과 하는 일을 물어 보았따. 그리고 그 늙은 태감의 행위 가운데는 야릇함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소보는 한동안 이야기를 하더니 별안간 왁! 하니 울음을 터뜨렸다. 진근남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소보, 왜 그러느냐?" 위소보는 흐느끼면 해대부가 몰래 독약을 넣던 일을 이야기하고 끝내는 다시 흐느끼며 말했다. "사부님, 제가 먹은 이 독은 풀 수가 없읍니다. 제가 죽은 이후에 청목 당의 형제들은 다시는 엣 방법을 따를 수 없게 되었읍니다." 진근남은 물었다. "옛 방법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오배가 윤향주를 해쳐 죽였는데 제가 오배를 죽였다고 해서 모두들 저 를 청목당의 향주로 추대해 주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해서 늙은 폐 병장이를 죽인 갈보가 청목당의 향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번 만큼은 늙은 갈보를 모셔다가 청목당의 향주로는 삼지 못할 것이 아 닙니까?" 진근남은 소리내어 껄껄 웃고는 세심히 그의 맥을 짚어 보고 그의 아랫 배가 아픈 증상을 자세히 물어 봤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뻗쳐 그의 아 랫배의 사방 혈도를 가볍게 혹은 무겁게 눌렀다. 그리고는 잡시 동안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해대부의 독약은 이 세상에서 정말 해소시킬 수 있 는 약이 없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력으로 독을 몰아낼 수 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하며 잇따라 말했다. "정말 사부님 감사합니다." 진근남은 그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침대 위에 눕도록 하고는 왼손으로 그의 가슴팍 전중혈(전中穴)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그 의 등줄기에 있는 대추혈(大椎穴)을 눌렀다. 잠시후 위소보는 두 가닥 의 뜨거운 기운이 점차 아랫배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더니 전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롤 쾌적했다. 그리하여 몽롱하게 그 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더니 잠 속에서 갑자기 배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아이구!'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리고는 부르짖었다. "사부님......저는......대변을 봐야겠읍니다." 진근남은 그를 데리고 변소 입구 쪽으로 갔다. 위소보는 막 바지를 벗 자마자 설사가 좍 쏟아졌다. 그런데 그 냄새는 비릿한 것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입으로는 크게 구역질을 했다. 위소보는 침실로 되돌아오자 두 다리에 맥이 풀려 시큰거렸고 거의 제 대로 설 수도 없었다. 진근남은 미소했다. "되었다. 네가 중독된 것은 이미 십중팔구는 해소되었으며 나머지의 것 은 관계없게 되었다. 나에게 열 두 알의 해독영단(解毒靈丹)이 있으니 너는 열 이틀 날로 나누어서 복용해라. 그렇게 한다면 나머지 독은 깨 끗하게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품 속에서 한 조그만 자기병을 꺼내서는 위소보에게 내 밀었다. 위소보는 받아들었다. 그리고 무척 고마워서 말했다. "사부님, 이 알악은 아직도 많있읍니까? 모두 저를 준다면 나중에 사부 님께서 중독되셨을 때......!" 진근남은 빙그레 웃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독을 쓰려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쓰지는 못할 것 이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진 것을 보자 진근남은 사람을 시켜 밥을 내오도록 했다. 그리고는 위소보와 함께 먹었다. 위소보는 겨우 네 가지의 흔한 반찬 뿐인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은 대영웅이신데 이토록 형편없는 찬을 드시는구나.) 그는 자기의 몸에 극독이 이미 해소된 것을 알게 되었던 터라 매우 흡 족해져서는 밥을 먹을 때 사부님의 밥을 담아 주기조차 했으며 얼굴에 는 싱글벙글 웃음을 띠우는 등 무척 좋아했다. 식사가 끝나자 위소보는 다시 사부님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진근남은 몇 모금 차를 마시고 말했다. "소보, 네가 착한 애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가가 있다면 경성으로 돌아와 너에게 무예를 가르쳐 주마."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 진근남은 말했다. "좋다. 이제 너는 황궁으로 돌아가거라. 오랑캐 놈은 교활하기 이를데 없다. 네가 총명하다고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매사에 조심하도록 하여라." 위소보는 말했다. "사부님, 저는 궁안에서 살아 가기가 매우 답답하다고 느껴집니다. 언 제쯤 저는 사부님을 따라 강호에 나가 돌아다닐 수 있겠읍니까?" 진근남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몇 년만 참아라. 본회를 위해 큰 공을 몇 가지 세우도록 해라. 그리 고......몇 년 더 기다려서 너의 음성이 변하게 되고 수염도 자라게 되 었을 때는 다시 태감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 그때 궁에서 나오 도록 해라." 뒤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궁에서 좋은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천지회에서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따라서 나의 향주 지위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쉽지 않 을걸. 내가 나이가 먹고 무공을 잘 연마하게 된다면 어쩌면 천지회에서 나를 몰아내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 예. 사부님, 그럼 저는 가보겠읍니다." 진근남은 몸을 일으키더니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소보, 오랑캐는 이미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 를 되찾는 일은 정말 어렵게 되었다. 너는 황궁에서 시시각각 위험한일 을 당하게 될 것이다. 너는 나이가 너무 어리고 또 아무런 진짜 무공도 배우지 못홰 나는 정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천지회 에 가담한 이상 이 몸뚱아리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반청복 명의 큰 일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설사 불덩이 속이라는 ㄱ을 알면 서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애석하게도 너를 수 시로 내 곁에 둘 수가 없으니 내가 제대로 너를 가르칠 수가 없구나. 아무쪼록 장래에 네가 나를 얼마 동안이라도 따를 수 있기를 바라겠다. 지금 천지회의 형제들이 너를 우러러보는 것은 나의 체면을 봐서 그럴 뿐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너늘 한평생 돌볼 수는 없다. 장래 남들이 너를 우러러 보든가 업수이 여기든가 하는 것은 모두 너에게 달려 있 다." 위소보는 말했다. "잘 알겠읍니다. 저의 얼굴이 깍이는 것은 상관이 없어도 사부님의 얼 굴을 깍이게 할 수 없습니다." 진근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신의 체면이 깍이는 것도 안 된다."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알겠읍니다. 그렇다면 저는 소계자의 얼굴이 깍이도록 해야겠읍니 다. 소계자는 오랑캐의 태감이니 우리가 소계자의 체면을 깍게 한다는 것은 바로 오랑캐의 체면을 깍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청나라를 물 리치고 명나라를 되찾는 길이 아니겠읍니까." 진근남은 길게 탄식했다. 실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기의 처소로 돌아온 이후 색액도 가 준 수십장의 은표를 살폈다. 모두 다 사십 육만 육천 오백 냥이나 되는 거액이었다. 그는 보고 또 보고 하며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원래 색액도는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본래 사십 오만냥의 은자를 주겠 다고 했는데 뒤에 오배의 가산을 팔고 보니 생각했던 값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일만 냥 남짓하게 더 얹어 주게 되었던 것이 다. 그는 한동안 은표를 살펴 본 후 갈무리를 했다. 그리고 진근남의 그 무공책자를 꺼내서는 젓수받은 비결을 ㄸ라서 단정히 앉아서는 연마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은표를 받아들고 은표에 적힌 숫자를 보고 또 은 표에 찍혀있는 붉은 도장을 살펴볼 때는 정신이 또렷또렷하게 들었었는 데 무공의 도보(圖譜)를 펼치게 되자 그만 크게 흥미를 잃고 말았다.더 군다나 자기 책에 설명된 백여 자 가운데 한 자도 알 수 없을 지경이었 다. 그리하여 채 반 시진도 연마하지 못해 머리가 어지럽고 눈꺼풀이 무거워서 그만 침대 위에 엎드려서는 잠이들고 말았다. 이튿날 깬 이후 그는 서재로 가서 황제의 시중을 들고는 다시 자기 방 으로 돌아와 재차 무공 연마를 하려고 했으나 얼마후 또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본래 진근남의 무공의 입문은 지극히 어려웠다. 따라서 매우 큰 의지력이 없으면 제일관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웠다. 위소보는 총명하 고 기민하나 그와 같은 의지력이 적었다. 첫번째의 앉는 자세마저도 연 마하기에 어려워 끝이 없는 양 느껴졌고 그저 혼곤히 잠이 오려고만 했 다. 그리고 잠이 깨어나서 보면 이미 야밤이었다. 따라서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무공을 연마하라고 했지만 그의 무공은 정말 재 미가 없구나. 그러나 만약 게으름을 피우고 연마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 사부님으리 뵈올 때 사부님께서는 조사를 해보고 나의 무공이 전혀 진 보된 것이 없는 것을 보시면 반드시 불쾌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어 쩌면 나를 청목당의 향주에서 몰아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는 몸을 일으켜서는 다시 책자를 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법칙에 따라 타좌(打坐)해서는 연마했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두 눈 꺼풀이 다시 무거워져 오면서 잠이 왔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냇물을 건너게 되면 다리를 부수려고 작정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이 다리는 청석판으로 세운 큰 다리도 좋고 썩은 나무토막으로 만 들어진 외나무 다리라도 좋다. 그들은 언젠가는 무너뜨릴 것이니 내가 무공을 연마하고 안 하고는 아무런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는 무공을 연마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을 찾게 되자 그만 느긋해져서 는 머리를 파묻고 쿨쿨 잠이 들고 말았다. 그가 다시 무공을 연마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자 이후의 나날은 매우 제멋대로 그리고 자유롭게 보낼 수가 있었다. 열 두 알의 알약은 모두 가 복용하게 되었고 아랫배의 통중은 종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낮 에는 서재로 가서 강희황제를 몇 시진 동안 시중드는 것 이외에 나머지 시간은 온씨 형제들과 주사위 놀음을 벌이곤 했다. 그는 이제 몸에 수 십 만 냥의 은자를 지니고 있는 대부호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사위를 던질 때 속임수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양고(羊고)를 앞에 두고 몇 번 속이지 않으면 마음속이 어쩐지 어정쩡하고 통쾌하지 못했다. 따 라서 온씨 형제와 펴위, 노형 등은 그에게 빚진 노름빚이 가면 갈수록 자연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위소보는 도박빚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 리고 해대부 역시 세상에 없는지라 온씨 형제들은 노름빚을 많이지게 되었지만 별로 걱정하지도 않았다. 상선감의 일은 자연히 아랫사람인 태감에 의해서 처리를 했다. 그리고 매달 초이틀과 열 엿새 날 일을 보는 태감이 사백냥의 은자를 위소보의 거처로 보내 주곤 했다. 이때 색액도는 이미 그를 대신해서 오만 냥의 은자를 궁중의 귀빈이나 권세있는 태감, 그리고 시위들에게 나누어 준 바가 있었다. 따라서 위소보의 주둥이가 매섭고 또 강희는 그를 매우 총애하는지라 이 몇 달 동안 그는 궁중에서 뭇사람의 칭찬을 받게 되었 고 또 그를 대하는 사람들 마다 모두 엇는 얼굴로 맞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ㅆ. 날이 하루하루 다르게 추워졌다. 어느 날 위소보가 서재 에서 나서게 되었을 때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볼 일이 있을 때는 천교로 가서 서노인과 연락을 하라고 했다. 별일 없지만 나가서 그 노인을 찾아 보고 한 번쯤 암호로 말을 주고 받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지진고강·일파계산천고수·문조 대해·삼하합수만년류라고 읊게 되는 것도 퍽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 고 이것 보시오. 당신의 이 고약은 석 냥의 항금에다 석 냥의 백은은 너무 비싸오. 다섯 냥의 황금과 다섯 냥의 백은에 팔지 않겠소? 하하, 하하.) 그는 궁문을 나섰다. 그리고 큰 거리를 몇 바퀴 돌았다. 그러다가 한 찻집에서 이야기꾼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안으로들어가 차를 한 주전자 시키고는 앉았다. 이야기꾼이 하는 이야기는 바로 영렬전(英 烈傳)이었다. 그런데 그 대목은 주원장(朱元璋)과 진우량(陳友諒)이 파 양호에서 크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따라서 어떻게 하여 주 전(周顚)이 주원장을 안고서 배를 바꾸게 되고 어떻게 하여 진우량이 전선(戰船)에서 화포를 쿵!하고 쏘게 되며 주원장이 타고 있던 배가 박 살이 나게 되었는가하는 이야기였다. 이와 같은 줄거리에 대해서 위소 보는 이미 외울정도로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꾼의 설명동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게 되자 반 시진이 넘 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 후에는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다니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놀기만 했고 결국 이 날은 천교 쪽으로 가지도 않고 말았다. 이튿날 그리고 사흘 째 되는 날도 시종 천교 쪽으로 가지 않았다. 매일 밤 잠을 자기 전에 내일은 반드시 서노인을 만나 봐야지 하고 생각햇 다. 그러나 그 이튿날 주사위 놀음을 벌이지 않으면 나가서 이야기꾼들 의 이야기를 듣거나 아니면 거리에 나가 마구잡이로 은자를 쓰는 일이 었다. 이 며칠 동안 황궁에서 그는 정말 자유롭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 다고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태감으로서 지내는 것이 천지회의 무슨 향주인지 취주인지 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는 자기의 이와 같은 생각이 매우 못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그런 점 에 대해서는 될 수 있으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간혹 생 각이 떠오르게 되면 그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어쨌든 나는 볼 일도 없는데 서노인을 찾아가서 무엇 하겠는가! 기밀 을 누설하게 되면 나의 조그만 목숨쯤 잃는다는 것은 상관이 없지마는 오히려 천지회의 큰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다시 달포를 보내게 되었다. 이날도 위 소보는 찻집에서 영렬전을 듣고 있었다. 차박사(茶博士)는 그가 궁중의 태감인 것을 알고 또 차값 외에 윗전을 많이 얹어 주는지라 언제나 그 를 위해 가장 좋은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가 그가 들이닥치면 좋은 차를 끓여서는 올리곤 했다. 위소보는 그야말로 이 며칠 동안 남들에게 떠받들어져서 살아가는 생활 에 젖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차박사의 아첨을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 지마는 귀로 듣기에는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고 흐뭇했다. 단상에서 이 야기하는 이야기꾼은 대장군 서달(徐達)이 출정을 하게 되어 오랑캐들 을 몽고 쪽으로 내쫓았다는 대목을 이야기했다. 이 경성이란 곳에 있는 찻집에는 ㅇ야기를 듣는 만주기인(旗人)도 무척 많은 편이었다. 공공연 히 오랑캐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원병(元兵), 원나라 장수니 하면 서 침을 튀겨 가면 재미있게 이야기를 엮어 나가곤 했다. 위소보가 한창 신이 나서 이야기ㅐ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말 을 걸어왔다. "실례합니다." 그리고 그는 옆의 탁자에 주저앉았다.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리며 약간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직이 말했다. "소인에게 좋은 고약이 있어서 공공에게 팔고자 하니 공공께서 한번 구 경을 하십시오."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탁자 위에는 한장의 고 약이 놓여 있는데 반은 푸른 빛이고 반은 붉은 아닌가. 그는 마음속으 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서 물었다. "이게 무슨 고약이지?" 그 사람은 말했다. "이것은 고약한 독을 씻어 내고 두 눈의 밝음을 되찾게 하는 고약이죠. 이 고약에는 이름이 있는데 독청복명 고약이라고 하지요." 위소보는 그 사람을 살펴보았다. 나이가 삼십 세 정도 외었으며 영기가 발랄한 편인데 결코 사부가 말씀하시던 서노인은 아니었다. 그는 속으 로 의심이 들어 물었다. "이 고약을 얼마에 팔겠소?" 그 사람은 말했다. "세 냥의 백은과 세 냥의 황금에 팔겠읍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다섯 냥의 백은과 다섯 냥의 황금에 팔지 않겠소?" 그 사람은 말했다. "그것은 너무 비싸지 않읍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비싸지 않소. 비싸지 않아.정말 독을 씻어낼 수 있고 밝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대의 소나 말이 된다ㅣ 해도 비사지 않은 것이외다." 그 사람은 고약을 위소보의 앞으로 밀며 나직이 말했다. "공공, 잠시 귀를 좀 빌릴까요." 그리고 나서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찻집을 나섰다. 위소보는 이백 문이라는 엽전을 탁자위에 던지고는 고약을 들고서 따라 나갔다. 그 사람은 바로 찻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동쪽으로 가더니 한 골목길로 들어서서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지진고강·일파계수천고수." 위소보는 말했다. "문조대해·삼하합수만년류." 그리고 그가 묻기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물었다. "귀하는 홍화정 가의 어느당에 속하오?" 그 사람은 말했다. "형제는 청목당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당상에는 몇 대의 향을 피우시오?" 그 사람은 말했다. "세 대의 향을 피웁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은 나보다 직위가 두 계급 아래이군.) 이때 그 사람은 팔짱을 끼고 몸을 굽히며 나직이 말했다. "형씨는 청목당에서 다섯개의 향으리 피우시는 위향주가 아니십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바로 그렇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 왜 나를 보고 형씨라고 하지? 차라 리 좀 듣기에 좋게 부려려면 '나으리'라고 하든지 아니면 '어르신네'라 고 하든지 하지.) 그 사람은 말했다. "이 형제의 성은 고(高)이고 이름은 언초(彦超)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 향주의 부하가 됩니다. 오래 전부터 향주의 영명을 들어왔는데 이렇게 뵙게 되닌 실로 다행스럽기 그지 없읍니다." "고형은 별 말씀을 다 하시오. 모두 한집안 식구인데 겸손할 필요는 없 소." 마언초는 말했다. "본당에는 서씨라는 서형이 있읍니다. 언제나 천교에서 약을 파는데 오 늘 그 누구에게 맞아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위향주에게 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물었다. "나는 이 며칠간 궁에 볼일이 있어서 그를 만나 보지 않았소. 그는 어 쩌다 상처를 입었으며 누구에게 맞은 것이오?" 마언초는 말했다. "이곳에서는 자세한 말씀을 하기가 불편하니 위향주께서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언초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위소보는 멀리서 그의 뒤를 따랐다. 일곱 여덞 채의 거리를 지나 조그마한 거리에 이르게 되었다. 마언초 는 한약방 안으로 들어갔다. 위소보는 그 집 간판에 다섯자가 씌어 있 는 것을 볼 수 있었으나 한 자도 알아볼 수 없었다. 또한 자세히 바라 보지도 않고 아마도 약방의 이름이겠지 생각하고는 따라서 들어갔다. 계산대 안쪽에는 아주 뚱뚱한 주인이 앉아 있었다. 마언초가 앞으로 나아가 그의 귓가에 나직이 몇 마디 말을 하자 그 주인은 잇따라 읍했 다. "예. 예."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위소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말했다. "손님께서는 좋은 약재를 사시겠다구요.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리고 위소보와 마언초를 데리고 내실로 걸어들어가더니 문을 닫아 걸 었다. 그리고 몸을 구부려서는 한 조각 땅바닥에 깔려 있는 판대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나의 동굴이 나타났고 돌계단이 있어 아래로 통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위소보는 지하도가 컴컴한지라 속으로 놀람과 의심이 엇갈리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정말 천지회의 형제일까?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겠는데. 아래쪽이 이 위소보를 도살하기 위한 도살장이라면 야단나지 않겠나!) 그러나 마언초가 뒤를 따르고 있어서 이제는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탄 꼴이라 그저 주인장을 따라 그 지하도로 걸어들어갈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하도는 지극히 짧았다. 십여 걸음 옮기게 되자 그 주인장은 한쪽의 판자문을 열었다. 저쪽에서 등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위 소보는 문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핏 보니 한칸의 열자 정도 되는 조 그만 방이었는데 그 방안에는 이미 다섯 사람이나 앉아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이 나즈막한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거기다 다시 세사람이 들어 서게 되자 그야말로 몸 돌릴 여지도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뚱보 주 인은 즉시 물러섰다. 마언초는 말했다. "여러 형제들 위향주께서 당도하셨소" 방안에 있던 다섯 사람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몸을 일으 켜서는 허리를 굽히며 절을 했다. 지하실 방은 너무나 작아 여러 사람 은 그저 한 덩어리로 비집고 서는 꼴이었다. 위소보는 포권을 하고 반 례를 했다. 그러고 보니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도사인데 바로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현정이라고 하던 그의 법호마저 떠올랐다. 그는 바로 우스게 소리로 관안기에게 그의 처인 십족진금과 이혼을 해야 한다고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번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본 적이 있었다. 위소보는 낯익은 사람을 보게 되자 마음이 느긋해졌다. 마언초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형의 몸에 중상을 입어서 일어나 예를 차릴수 없읍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별말씀을 다하시오." 라고 말하면서 그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보니 침대 위의 그 사람 은 온 얼굴이 주름져 있었는데 핏기라고는 전혀 없었고 두 눈은 꼭 감 겨 있었다. 그리고 숨소리도 미약한게 허연 수염 위에는 핏방울이 얼룩 져 있었다. 그는 물었다. "누가 서형에게 상처를 입혔소? 혹시..... 혹시 오랑캐의 앞잡이가 아 니오?" 마언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닙니다. 운남성 목왕부의 사람입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운남성 목왕부...? 그들... 그들은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아니오?" 마언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향주님, 서형은 오늘 아침 간신히 이 회춘당(回春堂)의 약방으로 돌아 와서는 응급조치를 했고 그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은 목왕부의 두 젊은 이인데 모두 백(白)씨 성을 가졌다고 했읍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성이 백씨라고? 그렇다면 목왕야 아래 사대가장(四大家將)의 후손이 아니오?" 마언초는 말했다. "태반이 그럴 것입니다. 아마도 바로 백한송(白寒松)과 백한풍(白寒楓) 형제로서 백씨쌍목(白氏雙木)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일 것입니다." 위소보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두개의 썩은 나무토막이라면 대수로울 게 뭐가 있소?" 마언초는 말했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영웅호걸이 아니오. 그런데 당은 뭐고 계는 뭔데 싸웠을까? 혹시... 혹시... " 그는 속으로 계를 옹호한다면 혹시 자기 소계자를 옹호한다는 것이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느껴지지 않아 말을 중단하고 말 했다 마언초는 말했다. "목왕부는 계왕(桂王)의 부하이죠. 그리고 우리 천지회는 과거 당왕(唐 王)천자의 부하였읍니다. 서형은 아마도 그들과 명분을 갖고 다투다가 언쟁을 벌이게 되었고 결국 충돌을 하게 된 모양입니다." 위소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해 물었다. "계왕의 부하는 어떻고 당왕의 부하는 또 무엇이란 말이오?" 마언초는 말했다. "그 계왕은 진짜 천자가 아니고 우리 당왕이야말로 진짜 천자이죠." 현정도인은 위소보의 내력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뱃속에든 먹물 이 적다는 것을 알고는 불쑥 입을 열어 설명했다. "위향주, 과거 이틈(李闖)이 북경을 공격하여 숭정황제(崇禎天子)를 죽 게 했을때 오삼계는 청나라 군사를 이끌고 중원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화려한 강산을 차지하고 말았지요. 각처의 충신과 위사들은 다투어 태 조황제(太祖天子)의 자손을 왕으로 추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먼저번에 도 복왕(福王)이 남경에서 천자노륵을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복왕이 오랑캐에게 해를 입고 돌아가시게 되자 우리 당왕이 복건성에서 천자의 오르게 된것이며 이는 국성야 정씨 집안의 사람들이 옹호한 것이니 그 야말로 진짜 천자이지요. 그런데 또 한떼의 사람들은 강서성과 운남성 에서 계왕을 천자로 추대하게 되었고 또 한떼의 사람들은 절강성에서 노왕(魯王)을 천자로 추대했는데 그들 모두는 가짜 천자입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늘에 두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는 법이외다. 당왕이 천자가 되었다면 계왕이나 노왕은 천자가 될 수 없죠." 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언초가 대답했다. "그렇죠. 위향주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현정도인은 말했다. "그러나 강서성과 절강성의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욕심내어서 그들이 옹 호하여 세운 사람이 진짜 천자라고 우기는 것이죠. 그리하여 모두들 스 스로 우습게 다투었답니다." 이어 한숨을 내쉰 이후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그후 당왕, 노왕, 계왕은 차례로 난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몇 년 동안 강호의 호걸들은 명나라를 잊지 않고 각기 세왕의 후손을 찾아 주군으로 받들어 모시고 청나라룰 무찌르고 명나라를 찾겠다는 커 다란 일을 벌이고 있죠. 계왕의 부하들은 계왕의 자손을 옹호하고 노왕 의 부하들은 노왕의 자손을 옹호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계파(桂派)와 노 파(魯派)로 갈라지게 되며 그들은 또 우리 천지회를 당파(唐派)라고 부 르죠. 당.제.노 삼파는 모두가 청나라를 무찌르고 명나라를 되찾자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우리 천지회만이 정통이고 계파와 노파 는 그야말로 그 자리를 찬탈한 셈이죠."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목왕부의 그 사람들은 계파이군. 그렇지 않소?" 현정도인은 말했다. "바로 그렇죠. 이 세파의 사람들은 십 몇년 동안 끊임없이 다투고 있는 형편입니다." 위소보는 옛날 북경으로 올라오게 될 때 강서성 북쪽에서 목왕부의 인 물을 만났던 사실을 상기했다. 그 당시 그들은 얼마나 오만무례했던 가. 그리고 그 사람 역시 백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백가가 바로 이 두 썩은 나무토막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당시 모십팔이 그 백가를 무섭게 두려워 하는 것을 보고 못 마땅에게 생각하던 참이라 그는 말했다. "당왕이 바로 진짜 천자라면 그들은 더 다투지 말아야 할 것이요. 소문 에 들으니 목왕야는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구려. 그러나 그 어르신 이 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 부하들은 아마도 약간 뒤죽박죽이 된 모양 입니다." 지하실의 뭇사람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위향주의 말씀이 옳으신 말씀입니다." 현정도인은 말했다. "강호의 호걸들은 목천파(沐天波) 목공야께서 충성을 다하시다가 돌아 가신 점을 생각해서 목왕부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느 정도 양보를 하 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자 목왕부의 사람들 가운데 개나 고양이 까지고 오만무례하게 되었죠. 우리 이 서형으로 말하면 다시 말할 수 없이 어 진 사람이고 또 그는 과거 당왕천자를 모셨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야말 로 충성심이 여간 강하지 않는 분이라서 선제(先帝)를 들먹이기만 하더 라고 눈물을 흘린답니다. 틀림없이 목왕부의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또 그 어느땐가 선제를 가볍게 여기거나 모욕하는 말을 했었겠지 요. 그렇지 않았다면 서노형이 어찌 목왕부의 사람과 싸웠겠습니까." 마언초는 말했다. "서형은 오전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 뭇형제들에게 자기를 위해 화 풀이를 해 달라고 하셨소이다. 직예성 경내에서는 본회의 책임자는 위 향주 한분 뿐이니까 본회의 규칙에 따라 이와 같은 큰일을 만나게 되었 을 때는 반드시 위향주에게 품한 이후 행동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오 랑캐의 앞잡이를 상대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다르죠. 오랑캐의 앞잡이를 죽이는 것도 좋지마는 형제들이 본회를 위해 난을 당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왕부는 강호에 서 명성이 자자하며 따지고 들면 역시 한집안 사람과 다름이 없읍니다. 그리고 그들과 교섭을 하게 된다면 크게 싸움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게 되고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위소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그는 이미 나를 발견했었구나) 그런데 마언초는 다시 말을 이었다. "서형은 총타주께서 분부하셨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위향주께서 만약 볼 일이 있을 때에는 자연히 그를 찾게 될 것이나 볼일없이 위향주를 찾지 말라는 분부였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형은 위향주를 보고도 감 히 앞으로 나가 아는척 하지 못했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침대 위의 늙은이를 한번 바라본 이후 속으로 생각했다. (저 늙은 여우는 몰래 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구나. 내가 거리에서 물건 을 마구 사고 함부로 돈 쓰는 것을 이미 보고 있었구나. 제기랄, 이후 그가 우리 사부님을 뵙게 된다면 반드시 고자질을 하겠는걸. 그야말로 저 늙은 여우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아 그냥 이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나에게는 낫겠구나.) 현정도인은 말했다 "우리는 상의한 결과 부득이 위향주를 이곳으로 모시고 와 대국을 이끌 어 나가도록 한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일개 어린애에 불과한데 어떻게 대국을 이끌어 나간단 말인가!) 그러나 그 사람들이 자기에게 매우 공손한 것을 보고 속으로 의기양양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처음 천지회에 가입하게 되었을 때 사부님 외에 아홉 분의 향주들도 모두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오래된 편 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 가운데 자기의 지위가 가장 높다고 생 각하니 그야말로 두둥실 하늘로 떵르는 감이 절로 났다. 이때 한 명의 중년에 접어든 거칠고 건장한 사내가 화가 난다는 듯 말 했다. "모든 사람들이 목왕부의 사람들에게 삼분쯤 양보하는 것은 목공야(목 공야)의 위인이 충성심이 강하고 의리가 깊어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쳤 다는데 있소이다. 하지만 천지를 진동시킬 큰 일을 한 점에 있어서는 우리 국성야께서 목공야보다는 십배 더 뛰어날 것이오." 그 번씨 성의 번강(樊綱)이 말했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다섯 자 정도 받들어 모시면 그들은 마땅히 우리 들을 열 자 정도로 받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우리가 겸손 하면 겸손할수록 그들은 오히려 기세드등하니 어찌 야단이 아니란 말이 오. 이 일을 분명하게 규명하지 않는다면 이후 천지회는 목왕부의 사 람들에게 압박을 받아 고개도 들지 못할 것이니 모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냔 말이오!)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지껄였다. 모두 다 화가 나 서 하는 말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모두들 위향주의 지시를 받들도록 하 게." 위소보로 하여금 닭을 훔치거나 개를 잡던가 또는 속임수를 쓰라고 하 면 어느정도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와 같은 큰 일을 앞에 놓고 그보고 처리하라면 그야말로 그의 꼴 사나운 꼴을 보자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에누 리없는, 확실히 진근남의 제자이고 천지회 십 대 향주들 가운데 한 사 람이었다. 직예성 일대에서는 천지회의 뭇형제들 가운데서 그가 으뜸가 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며 서가라는 노인과 다른 몇 사람 도 모두 다 그의 청목당 직계부하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의 시선이 자기의 얼굴만 주시하는지라 크게 어색해져 속으로 투덜거리 지 않을 수 없었다. (제기랄, ... 이걸 어떻게 하면 좋지?) 그는 속으로 겸연쩍어진 나머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훑어 보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사람들 표정에서 조금의 단서라도 얻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거칠고 건장한 사내를 보게 되었을 때 갑자기 그의 입가에 떠도는 미소를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는 교활한 빛이 떠올라 있지 않는가. 이 사람은 조금 전만 하더라도 큰 소 리로 떠들어 댔으며 가슴 가득히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기뻐서 웃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었다. 그리하여 그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별안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십여 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애이다. 향주라고 하지마는 나 의 생각이 어찌 그들보다 나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나를 방패막이로 삼고자 하고 있다. 이후 아무 일도 없으면 괜찮지만무슨 일이 있게 된 다면 모두 나에게 미루며 청목당의 위향주가 모든 형제를 거느리고 한 짓이며 향주께서 명령을 하시니 우리들 로서는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 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은 본래계란에서 뼈다귀를 찾아내서 이 향주를 몰아내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앞장을 서서 목왕부의 사람과 싸우게 된다면 지든 이기든 간에 어쨋든 그들에게 커다란 뼈다귀를 찾아내 주 게 해주는 꼴이 된다. 좋다. 제기랄, 나는 이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겠 다.) 그리하여 그는 짐짓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하는 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여러 형님들, 소제가 향주가 되긴 했으나 우연히 오배를 죽인것뿐이지 본래 재간은 조금도 없는 몸이었고 달리 계책이라고는 더욱더 있을 수 가 없소이다. 내가 보기에 역시 현정도장께서 계획을 짜시는 것이 반드 시 저보다 고명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의 이와 같은 한수는 물결에 따라 배를 끄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즉 한 대의 나무토막을 현정도인의 어깨 위에 지우려는 수작인 것이다. 현정도인은 빙그레 웃더니 번강에게 말했다. "번 세째형의 머리는 나보다 훨씬 낫지 않소. 그대가 보기에는 어떻소 이까?" 번강은 솔직한 사내라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방법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소. 우리는 바로 백씨 네 집으로 찾아가서는 그들 보고 서형에게 절을 하며 사과를 하라고 햇 거 정말 사과를 한다면 그때는 만사가 순조롭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을 때는 부득이 먼저 예를 한 이후에 싸운단 말이 있듯이 한바탕 부 딪쳐 볼 수밖에 없는 일이외다."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것은 바로 이 한 마디이기도 했다. 다만 목왕부는 강호에서 위명이 자자하고 또한 청나라를 무찌르고 명나 라를 되찾는다는 뜻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먼저 그와 같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번강이 그와 같이 말을 하자 몇사람이 찬성을 표했다. "맞소. 맞았소. 번 세째형의 말이 지극히 옰소. 물론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소. 그러나 우리 천지회가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고도 가만히 있 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상대방에서 맞아 이모양이 됐는데 가만 있을 수야 없지 않겠느냔 말이오." 위소보는 현정과 다른 한 사내를 향해 물었다. "두분은 어떻다고 생각하시오." 현정도인은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부득이 양산(楊山)으로 올라가는 것으로써, 방법이 없는 일이 아니겠소이까? 우리들로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위소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그덕였다. 그리고 왈가왈부 하지 않았 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장래에 잡아떼자는 생각이겠지만, 나 는 반드시 당신으로 하여금 잡아떼지 못하도록 만들어야겠소) 위소보는 물었다. "현정도장, 그대는 번 세째형의 생각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 이죠?" 현정은 말했다.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반드시 매우 신중하게 일을 다 루어야 된다고 생각하오. 만약 목왕부의 사람들과 손을쓰게 된다면 첫 번째로는 져서는 안되고 두번째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외다. 만약에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일을 일으키는 것입니 다." 번강은 말했다. "말을 그렇지만 만약에 서형의 상처가 빨리 치료되지 않을 때는 또 어 떻게 한단 말이오?" 현정은 다시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모두들 상의해서 방법을 강구하도록 합시다. 여러 형님들은 견문이 많 고 먹은 소금이 내가 먹은 쌀보다도 많을 것이며 내가걸은 길보다 건너 게 된 다리가 더 많을 것이니 생각해 내는 방법이 반드시 저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현정은 그를 한번 바라보더니 담담이 말했다. "위향주는 대단하시구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도장 역시 대단하십니다." 뭇사람들은 한동안 상의를 했다. 그리고 역시 번강의 방법을 따르도록 했다. 위소보로 하여금 뭇사람들을 데리고 목왕부로 달려가 따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각자 몸에 몰래 무기를 지니되 될수 있 는 참고 양보를 하여 나중에라도 할 말이 있도록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 었다. 즉 가장 좋은 방법은 목왕부의 사람들이 먼저 손을 써서 사람을 때리게 되었을 때야 반격하자는 것이었다. 이때 현정도인이 다시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들은 북경성 안의 몇 분 명성을 떨친 무사를 함께 데려가 그들로 하여금 증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문이 나 더라도 우리 천지회에서 그들에게 찾아가 그 사람들을 업수히 여겼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외다. 그리고 이후 시비가 판가름나지 않을 때도 총타 주께서는 꾸짖지 못할 것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 그렇다면 무공이 뛰어난 사람을 될수 있으면 많이 모 시도록 하지요." 강서성 북쪽 길가의 반점에서 목왕부의 그 백가란 사람이 젓가락을 던 져 왐계의 부하들을 모조리 당바닥에 쓰러뜨렸던 광경을 위소보는 아직 도 눈에 선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목왕부의 사람들이 만약에 다시 동가도강(銅角渡江)이나 불화살로 코끼리를 쏘는 수단을 써온다면 야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북경성 안에서야 커다란 코기리진을 펼칠 수 없지만 쥐새끼들은 잡아 앞장세운다 하더라도 청목당의 위향주 로서는 그야말로 걸음아 나 살려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그는 그들과 함께 생동을 하는 것을 사양하고 가지 않 으려는 마음이 많았으나 차마 그와 같은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현정도인이 북경성의 유명한 무사들을 함께 초청해 가자고 하니 그야말 로 그의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현정은 빙그레 웃고 말했다. "우리들은 그저 명망이 있는 사람을 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들을 철 해서 싸움을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니 무공이 좋고 나쁜 것은 둘 째 문제지요." 마언ㅊ는 말했다. "명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무공이 십중팔구 고강한 편이죠." 그는 위소보를 도와 말하고 있었다. 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번강은 말했다. "그럼 우리는 몇분의 무사를 청해야 할 것같소?" 즉시 뭇사람들은 누구를 함께 데리고 갈 것인가를 상의했다. 초청을 받는 사람은 무림에서 명망이 있어야 하고 관가와는 내왕이 없 지만 천지회와는 어느 정도 교분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이 나누어서 청하러 가려고 했다. 이때 서노인이 갑자기 신음소리를 냈다. "아닐세... 아닐세... 외부인을 청해서는 안 되네." 번강은 물었다. "서형은 외부의 사람을 초청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오?" 서노인은 말했다. "위향주...위향주는 궁에서 일을 보고 계시네. 이...이 일은 누설되어 서는 안 되네. 그것이야말로...그것이야말로 목숨과 관계되고... 큰일 에도 관계가 되네." 그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모두 그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위소 보가 궁에서 태감노릇을 하는 것은 바로 총타주의 명령을 받고 하는 짓 이라 반드시 몰래 중대하게 도모하는 바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그런데 만약 외부의 사람이 알게 된다면 자연 소문이 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번강은 말했다. "위향주 계서는 친히 나설 것은 없소이다. 우리가 가서 두백가에게 따 진후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돌아와 위향주에게 보고하여 올리면 될 것이 아니겠소이까." 위소보는 본래 목왕부에 대해서 퍽이나 꺼리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 다. 그러나 무림에서 한 떼의 크게 명성있는 사람과 함께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싸우더라도 이쪽에서 이기는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생각 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주사위에 흑연을 넣어서 양고와 놀음을 하는 것 과 마찬가지인데 자기가 어찌 참가하지 ㅇ을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 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가지 않는다면 재미가 적을 것이오. 나의 성명과 신분에 관해서 형들이 외부의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니겠소." 현정도인은 말했다. "만약 위향주께서 가장을 한다면 위향주가 궁에서 일을 보고 있다는 살 실을 그 누구도 모를 것이외다...." 위소보는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손뼉을 치며 좋다고 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외다," 그 생각은 그야말로 그의 마음에 꼭 들었다. 남을 찾아가 시비를 건다 는 것은 본래 매우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변장을 하고 가서 일을 따진다면 더욱더 재미있고 멋이 있을 것 같았다. 뭇사람들의 마음에는 만약 위향주가 그들을 거느리고 가지 않는 다면 각자 크게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다가 위소 보가 그토록 열심히 가겠다고 나서자 그 누구도 이의를 말하지 않았다. 서노인은 말했다. "모두들... 모두들 절대 조심해야 하네. 위향주께서는... 어떤 사람으로 가장하시겠소?" 모든 사람들이 위소보를 바라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부자집 공자로 가장을 할까!아니면 거지로 가장을 할까?) 그는 기녀원으로 놀러온 왕손이나 공자들의 화려한 옷차림을 보고 언제 나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옷차림을 해볼 기회가 줄곧 없었던 것이 아니던가! 잠시 생각해 보던 그는 몸 속애서 석장의 오백 냥 은자 가 나가는 은표를 꺼내어 말했다. "여기 천 오백냥의 은자가 있소. 수고스럽지만 어느 형이 나의 옷을 사 주시겠소? 뭇사람들은 모두 다 움찔하는 눈치였으며 몇 사람들은 일제히 말했다. "그 토록 많은 은자가 어디에 필요합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위향주의 말씀이 옳소 이다. 마형제는 그대가 위향주의 옷을 사도록 하게나!" 위소보는 다시 천 냥이나 나가는 은표를 꺼내고서 말했다. "돈을 좀 더 많이 쓴는 것은 상관이 없소." 다른 사람들은 인 나이 어린 소년의 주머니에 은표가 많은 것을 보고 모두 다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로서도 위소보의 거실 에 사십 몇만냥의 은자가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사실 위소보의 본래 기질을 두고 말한다면 몸에 이삼 전의 은자가 있다 하더라도 다 써버려야만 개운해 할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십 만이 넘는 은자를 어떻게 다 써버릴 수 있겠는가! 따라서 그는 화려한 옷차 림을 하고서 신나게 뽐내 볼 수있는 이번 기회야말로 여간 좋은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마음 속으로 즐겁기 한이 없었다. 거기다 뭇사람 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 다. 그리고 손을 꺼내었을 때는 이미 삼천 오백 냥에 해당하는 은표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현정도인에게 내밀어 주었다. "형제는 여러 형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대접할 것도 없소이다. 그 러니 이 은자는 오랑캐로부터 손에 넣은 것이고 모두 다 이롭지 못한 돈이니 모두들 나를 도와서 써주시도록 하시구려." 천지회는 규칙이 엄했다. 함부로 남의 재물을 취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 었다. 번강과 마언초 등은 이미 궁한 형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향 주가 이토록 많은 돈을 꺼내어 오랑캐에게서 얻은 불의의 돈이라고 하 는 말을 듣게 되자 그가 청궁에서 일을 보는 만큼 그말에 거짓이 없으 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모두다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현정은 입을 열었다. "우리가 헤어져 사람을 청해야 하지만 오늘은 늦었소이다. 내일 모두들 이곳에서 삼가 위향주가 오시기를 기다리도록 하겠소. 그런데 위향주는 언제쯤 오실 수 있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오전에는 일을 봐야 하니 오후에 이곳으로 오겠소이다." 현정은 말했다. "매우 좋소이다. 내일 오후 우리는 먼저 이곳에서 모인 후 다시 가서 두 백가에게 따지도록 합시다." |
첫댓글 잼 납니다